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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강 지관문의 수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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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작성일 21-07-12 12:53 조회 18,335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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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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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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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관을 수순한다는 말은 모든 경계를 그치고 정관의 지에 따 르는 것이다. 관관을 수순한다는 것은 인연관을 분별함으로써 정관의 관을 따르는 것이다. 이것은 아홉 가지 심주, 네 가지 혜 행으로 수순한다.” 심주란 마음이 머무는 곳입니다. 지(止)를 하 려면 내 마음이 어떤 상태인가 알아야 합니다.

  선정의 단계를 살펴봅시다. “초선(初禪)에서는 각(覺)과 관( 觀)으로써 욕계의 악을 떠나는데, 거기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 거움으로 초선을 얻으며, 초선을 얻을 때는 말을 멸한다. 이선 (二禪)에서는 각(覺)과 관(觀)이 쉬고 마음의 평정을 취하여 정( 靜)에서 생기는 기쁨과 즐거움으로 제2선을 얻는데, 2선을 얻 을 때는 감각과 관찰이 멸한다.” 각(覺)이란 깨어있는 상태를 말 합니다. 지금 우리는 번뇌망상에 싸여있어 경계에 따라 분별된 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깨어나는 것입니다. 관 (觀)은 관찰, 관조함으로써 기본 원리를 아는 것입니다. 욕계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에는 선한 마 음과 악한 마음이 항상 공존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한 마음이 좀 더 강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분별에 의한 자기 이기에 따라 살아갑니다. 선정을 하면 이 악한 마음에서 떠나 기쁨과 즐거움 이 생깁니다. 우리의 목적은 고에서 벗어나 낙으로 가기 위해서 욕계의 악한 마음을 떠날 필요가 있습니다. 선정의 기쁨이란 우 리가 일상생활에서 느끼는 기쁨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초선을 얻을 때 말을 멸한다는 것은 선정에 들면 말이 자연스럽게 없어 지는 것입니다. 절에서 묵언정진을 합니다. 이것은 공부를 열심 히 해서 선정에 들겠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선정에 들면 묵언이 됩니다.

  여기서 더 깊이 들어가면 이선의 상태가 됩니다. 깊이 들어갈 수록 오염되지 않은 부분들이 많이 나옵니다. 사선의 상태가 되 는데 이것이 견성입니다. 지혜가 열립니다. 이선에 들어오면 마 음이 평정하고 편안해집니다. 기쁨과 즐거움으로 얻는 것이 이 선입니다. 그 때는 감각과 관찰이 멸합니다.

  “삼선(三禪)에서는 공(空)에 머물러 즐거워함으로 제3선을 얻 는데 3선을 얻을 때는 기쁨을 멸한다. 사선(四禪)에서는 기쁨도 즐거움도 괴로움도 멸하고 맑고 깨끗함이 있는 정념(淨念)을 통 해 근본 자리에 들면 제4선을 얻는데, 4선일 때는 숨결이 멈춘 다.” 공에 머무른다는 것은 현상으로부터 벗어나 허공, 청정에 머무는 것입니다. 여기서는 무상과 무아를 철저하게 인식하게 되고 감정들이 전부 멸하게 됩니다. 사선은 확실하게 견성성불 하는 자리입니다. 여기서 끝없는 자비와 지혜가 샘솟는 것입니 다. 사선에 들면 숨결이 멈춥니다. 위대한 선사들을 보면 한 달 씩 선정에 들곤 합니다. 이것은 숨결이 멈추기 때문에 가능합니

다. 동물들을 보면 동면을 합니다. 석 달 동안 아무것도 먹지 않 고도 살 수 있습니다. 이것도 숨결이 멈추었기 때문에 가능합니 다. 의식이 없으면 죽은 것입니다. 숨결이 멈추는 것과 의식이 없는 것은 다릅니다. 전신을 통해 기를 받을 수 있고 기가 나갈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공부나 수행이 어느 정도 된 사람이 가 능합니다. 일반 중생은 문을 통해 기가 나가고 들어옵니다. 보 통은 기운이 머리 백회혈로 들어와서 발로 나갑니다. 들어오는 만큼 나가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욕심이란 나가는 것 을 적게 내보내게 합니다. 기운이 고여 몸과 마음에 병이 생기 는 것입니다. 들어오는 만큼 내보내는 마음 상태가 되면 모든 것 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됩니다. 사선을 통해 생기는 지 혜가 이런 것입니다.


  선정에는 앉는 자세, 복장, 손의 자세, 몸의 자세, 입의 모양, 눈의 자세, 호흡법, 사유(思惟)가 중요합니다. 선정은 내가 드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대신 들어가주는 것이 아닙니다. 공부를 익히기 위해서는 어떤 일정한 방법으로 익혀가는 것이 필요합 니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치듯이 초급과정을 거 치지 않으면 익히기 쉽지 않습니다. 익히고 나면 어떤 방법이 든 상관이 없습니다. 하지만 익히기 전에는 일정한 패턴을 반복 해서 습득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래서 선정도 수많은 과정을 거치며 어느 정도 표준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물론 그보다 간단 한 것도 있습니다. 걸으면서 명상도 그런 것입니다. 이것은 불 교를 잘 모르는 사람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스스로 공부하는 방법을 찾아갈 수 있습니다. 표준적인 방법 이란 실천해 보면 이 방법이 나름 편하고 쉬운 방법이란 것을 알 게 됩니다. 이것이 몸과 마음에 익게 되면 직접적으로 그 영향 이 나타납니다.

  앉는 자세는 가부좌 또는 반가부좌로 오른발을 왼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고, 왼발은 오른쪽 허벅지 위에 올려놓습니다. 복장 은 옷이나 허리띠는 조이지 않게 하며, 단정하게 합니다. 손의 자세는 오른 손은 왼발 위에 놓고 왼손은 오른손 위에 놓으며 양손의 엄지손가락이 끝을 서로 마주하되, 배꼽 아래 단전 밑에 일자로 대칭이 되게 합니다. 가부좌를 하는 이유는 척추를 곧게 피고 몸을 바르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몸이나 생각은 균형과 조 화가 중요합니다. 자세가 바르면 우리의 몸도 마음도 바르게 균 형잡히게 됩니다. 집의 기둥이 바르지 않으면 집은 무너지게 되 어 있습니다. 허리띠를 너무 조이게 하면 안 됩니다. 조이게 하 면 단전으로 내려가는 기운이 아래로 내려가지 않게 됩니다. 허 리띠가 느슨한 편한 옷이 좋습니다. 

  몸의 자세는 몸을 바르고 단정히 하되 왼쪽, 오른쪽, 앞, 뒤 어 떤 쪽으로도 기울거나 쏠리거나 휘어지지 않게 하며 귀, 어깨, 코, 배꼽은 반드시 일자(一字) 가로 대칭이 되게 합니다. 그리고 온 몸의 힘을 빼고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취합니다. 입의 모양은 혀로 입천장을 받치고 호흡은 코를 통해서 서서히 들이 마시며 머무르고 내쉬며 입술과 이빨을 서로 살며시 닿게 합니 다. 눈의 자세는 바르게 뜨되 크게 뜨거나 너무 가늘게 뜨지 않 고 코 끝을 봅니다. 몸의 자세에서 부드럽고 자연스러운 자세를 하는 것이 어렵습니다. 항상 힘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호흡법은 입을 열고 기를 뱉어내는 심호흡을 한 두 번 한 다

음 좌정하는데 몸을 일곱 여덟 번 작게 시작하여 크게 흔들다가 조용히 멈춥니다. 그리하여 올올단좌(兀兀端坐)가 됩니다. 호흡 은 네 가지가 있는데 바람(風), 기운(氣), 헐떡거림, 호흡(息)입니 다. 바람은 소리가 나고 기운은 맺히고 정체하며 헐떡거림은 숨 쉬기가 자유롭지 못하고 호흡은 앞의 세 가지 장애가 없는 것입 니다. 그러나 호흡 중에서도 헐떡거림에 빠지면 피로하고 기운 을 쓰면 맺히고 바람은 산란한 마음을 일으키며 호흡은 고요해 집니다. 몸을 여러 번 작게 크게 흔들다가 멈추라고 하는 것은 몸을 꼿꼿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호흡은 네 가지가 있는데 잘 못하면 바람, 기운, 헐떡거림이 됩니다. 참선을 하면서 호흡법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호흡을 편안하고 안정되게 해야 생각이 안정되기 때문입니다. 생각이 안정되면 깊은 곳으로 갈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고요해지면 평소에 듣지 못했던 소리가 들립니다. 고요해지면 미세한 것들의 움직임을 알게 됩니다. 고 요함이란 멍하니 있는 것과는 다릅니다. 주체가 있느냐 없느냐 의 차이입니다. 

  호흡은 배꼽 아래 단전에까지 복식호흡을 합니다. 숨이 들어 갈 때에는 들어가는 숨을 생각하여 여실히 알고, 숨이 나갈 때는 숨이 나가는 것을 여실히 알며, 혹은 길고, 혹은 짧게 일체 입식( 入息)과 출식(出息)을 생각하여 여실히 알며, 휴식(休息), 수행의 입식과 출식을 생각하여 여실히 관(觀)합니다. 단전에 손을 대고 호흡을 쭉 들이 내쉬면 복식호흡이 됩니다. 이런 복식호흡을 생활화되면 평상시에도 조용히 호흡이 됩니다. 그렇게 되면 항상 깨어있을 수 있게 됩니다. 산만하지 않고 집중이 됩니다. 만약 히말라야와 같은 산을 등산할 때 정신을 놓을 수 없습니다. 한발 만 헛디뎌도 죽기 때문입니다. 항상 깨어있으면서 집중해야 정 상에 갈 수 있습니다. 참선, 선정도 마찬가집니다. 깨어있어야 공부가 진척되고 나아갈 수 있습니다. 앞에서 나온 설명이 바로 위빠사나에서 호흡을 통해 알아차림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사유(思惟). 생각하되, 생각지 않아야 합니다. 생각하되 생각 지 않는 것이 좌선의 중요한 법으로, 곧장 번뇌를 소멸하여 지 혜를 체험하는 것입니다. 생각은 언제나 자기 배꼽의 중앙에 둡 니다. 배꼽은 호흡이 생성, 소멸되고 위와 장의 근원이며, 생각 이 일어나는 근원이며, 정기와 피가 하나로 뿌리를 내리는 곳이 배꼽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좌선하는 사람은 배꼽을 자세 히 관찰하는 것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탐욕과 진에에서 벗어나 야 합니다. 몸은 가다듬으면 되는데 생각은 가다듬기 어렵습니 다. 위빠사나, 묵조선, 간화선 등 여러 방법이 있습니다. 종파 특 유의 방법에 따라 생각을 정리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는 생각을 정리하게 하기 위해 이런 방법을 썼습니다. 머릿속에서 부처님 이나 관세음보살을 생각하며 끝없이 자비로운 마음을 일어나게 합니다. 이것은 ‘자비관’입니다. 그리고 탐욕, 음욕이 많은 사람 은 죽은 후 백골이 될 것을 생각하게 하여 욕심이 무상한 것임 을 알게 합니다. 이것은 ‘백골관’입니다. 이렇게 사유란 다양한 방법으로 할 수 있지만 기본 뼈대는 생각을 집중하여 고요하게 가라앉히는 것입니다. 몸동작은 사유를 잘하게 하기 위한 방법일 뿐입니다. 그러니 하나의 생각에 집중하고 몰두하게 하는 화 두와 같은 방법도 나왔습니다. 모든 번뇌를 하나로 모아 깨트리 는 것이 화두입니다. 결국 화두도 하나의 번뇌이기 때문에 마지 막에는 화두도 깨트려야 합니다. 이 산만한 번뇌들을 하나로 모 으면 강력한 힘이 되어 업의 벽을 뚫고 깊은 곳까지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유를 하면서, 경전을 보면서 제대로 수행을 하고 있 는지 중간 중간에 체크를 할 필요도 있습니다. 잘못된 방향으로 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모를 때는 다 똑같지만 공부가 어느 정도 익어 스스로 할 수 있게 되면 엉뚱한 생각들, 마장 등이 나 타납니다.

생각을 배꼽 중앙(단전)에 두라는 것은 무거운 것을 위에 두 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무거운 것을 위에 두면 균형을 잡기 힘 듭니다. 하지만 무거운 중심점이 아래에 있으면 흔들리지 않습 니다. 그래서 생각의 중심점이 배꼽에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 떤 유혹의 폭풍에도 흔들리지 않고 진전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화두가 맺힌다면 세세생생 자리 잡게 됩니다. 생각이 단전에 맺 힐 때까지가 힘듭니다. 하지만 단전에 생각이 맺히면 그 후로부 터는 공부가 매우 수월해집니다. 

  온갖 선과 악도 도무지 생각지 않아 망념이 없어지면 곧 깨닫 게 됩니다. 깨달으면 곧 없어지니 오래오래 망념을 없애면 자연 히 밝아집니다. 이같은 마음을 얻으면 사대가 거뜬해지니 이른 바 열반으로 드는 문입니다. 깨달으면 용이 물을 얻은 것과 같 은 것이며, 아직 깨닫지 못한 이라도 계속 나아가야 합니다. 그러면 반드시 깨달음이 있게 됩니다. 집중해서 선정에 들면 망념 이 없어져 저절로 지혜가 생깁니다. 부처가 되고 열반적정에 들 기 위해 집중해서 선정에 드는 연습이 필요합니다. 선정 삼매 에 들면 보이지 않던 세계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청정한 세계 가 열립니다. 

  아홉 가지 심주는 내주(內住), 등주(等住), 안주(安住), 근주(近 住), 조순(調順), 적정(寂靜), 최극적정(最極寂靜), 전주일취(專住 一趣), 등지(等持)가 있습니다. 여기서 마지막 등지를 거치면 견 성하게 됩니다. 공부하다 보면 이 아홉 가지 심주를 거칩니다. 

  내주(內住)란 밖에 있는 일체의 반연하는 경계로부터 마음을 거두어 단속하여 안에다 두고 밖으로 산란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뭣고?’가 순일하게 잘 들리게 됩니다. 공부는 내가 직접 경 험하고 알 수 있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화두 가운데 ‘이뭣고’가 가장 쉽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이 몸 받기 전의 나는 누구였는 가?’는 누구나 알고 싶어 하는 문제입니다. 일체의 반연하는 경 계란 보이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내주는 외부의 대상에 마음이 이끌리지 않는 상태를 말합니다. 화두에 들면 외부에 휘둘리지 않습니다. 그래서 내주의 상태가 되면 ‘이뭣고’가 순일하게 잘 들리는 것입니다.

  등주(等住)는 최초에 계박된 마음은 그 심성이 거칠게 움직이 는 마음이어서 아직 똑같이 두루 머물게 할 수 없기 때문에 다음 에 이것이 반연하는 바 경계에 대하여 상속방편과 집중방편으 로 꺾어 미세하게 하여 두루 거두어 들여서 머무르게 하는 것입 니다. 좀 더 깊이 ‘이뭣고?’가 들리는 상태입니다. 처음으로 이뭣고에 얽매이게 될 때 마음의 상태는 거칩니다. 일반적으로 공 부에 깊이 들지 않는 상태에서 경험하는 것은 거친 것입니다.( 육추) 거친 것은 바다의 표면과 같습니다. 항상 파도가 칩니다. 여기서 좀 더 끊임없이 깊이 이뭣고가 일어나야 합니다. 좀 더 깊이 들어간 상태가 등주의 단계입니다. 표면에 무언가 일어나 면 금방 없어지지만 좀 더 깊은 곳에서 생기면 물들어 잘 안 없 어집니다. 

  안주(安住)는 마음이 또한 이처럼 내주, 등주하였으나 내주, 등주하는 마음을 놓쳐 밖으로 산란하기 때문에 또 다시 거두어 단속하여 내 마음안에 안치하는 것입니다. ‘이뭣고?’를 드는데 간혹 다른 곳으로 마음이 빠져나가면 이것을 다시 돌려놓는 것 입니다. 공부가 깊지 않으면 ‘이뭣고?’가 지속적으로 안 들립니 다. 그 생각 하나 뿐이어야 하는데 잡념이 계속 일어납니다. 이 뭣고에 드는 마음을 놓쳐버리면 그렇게 됩니다. 그런 생각이 일 어났을 때 이뭣고로 돌아올 수 있는 힘이 생기는 것이 안주의 단 계입니다. 공부가 안되면 잡념이 일어났을 때 그 쪽으로 계속 끌 려갑니다. 안주의 단계가 되어야 계속 갈 수 있지 이 단계가 되 지 않으면 망상을 따라 다른 곳으로 가버립니다. 

  근주(近住)는 먼저 이와 같이 친근하게 머무를 것을 늘 생각하 여, 자주 뜻을 일으켜 그 마음을 안으로 머무르게 하여 이 마음 이 밖에 머무르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항상 마음에 ‘이뭣고?’가 머물게 하는 것입니다. 바깥 경계에 이끌리지 않고 항상 화두에 머무는 단계가 근주입니다.

  조순(調順)은 갖가지 상이 마음을 흐트러지게 하니 소위 색성향미촉의 오경과 탐진치의 삼독과 남녀등의 상이 있습니다. 이 러한 상들은 근심거리가 되어 모든 상들에 대하여 그 마음을 꺾 어버려서 흐트러지지 않게 해야 합니다. ‘이뭣고?’ 외 다른 생각 이 일어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조순이란 순리대로 조화롭게 따르는 단계입니다. 번뇌망상은 마음을 끝없이 흐트러지게 합 니다. 색성향미촉 오경과 탐진치, 남녀문제 이런 것들이 마음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부딪히는 모든 경계가 마음을 흐트러지게 합니다. 화두가 순일하게 들리기 전까지는 항상 이런 생각들 속 에서 살아갑니다. 조순의 단계가 되면 이러한 것들에 마음이 흐 트러지지 않고 오로지 공부에 매진할 수 있게 됩니다. 

  적정(寂靜)은 욕, 에, 해 등의 나쁜 심사와 탐욕개등의 수번뇌 가 있어 마음을 요동케 하므로 여러 가지 법을 근심거리로 여 겨 어떤 것들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단계입니다. 탐욕개 는 오개에 속하는데 이 밖에 진에개, 수면개, 도회개, 의개가 있 습니다. 여기서 개는 덮는다는 의미입니다. 마음을 산란하게 하 는 오개를 덮어 적정을 이루는 것입니다. 적정은 오로지 ‘이뭣 고?’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적정까지 오면 마음이 어느 정도 안 정됩니다. 욕심내는 것, 화내는 것, 해롭게 하는 것 등의 나쁜 심 사나 탐욕개 등의 수번뇌에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이 적 정입니다. 좀 더 깊은 곳에서 일어나는 것이 욕에해나 탐욕개입 니다. 이런 것들에게도 마음이 흐트러지지 않는 것입니다. 오개 는 나쁜 마음들입니다. 탐욕은 욕심내고 탐하는 것이고 진에는 성내고 증오하는 것입니다. 수면은 마음을 잠들게 하는 치심(癡 心)을 말하고 도회개는 들뜨고 후회하는 것이고 의개는 의심하는 것입니다. 공부하면서 가장 안 좋은 것이 의심입니다. 자기 생각에 막혀 다른 소리를 듣지 않는 것입니다. 전생에 공부를 했 던 사람들은 진리를 들으면 믿음이 일어나는데 의심이 많은 사 람들은 그런 마음이 일어나지 않습니다. 

  최극적정(最極寂靜)은 적정의 마음을 놓침으로 해서 나쁜 심 사와 수번뇌가 잠시 현행할 때 곳에 따라 일어나지만, 받지 아 니하고 곧바로 토하는 것입니다. 순간 다른 생각이 일어나더라 도 마음을 흐트리지 않고 ‘이뭣고?’에 머무르는 것입니다. 적정 이 최고 극에 달한 것이 최극적정입니다. 중생들은 공부가 되다 가 안 되기도 합니다. 적정의 상태에 있지만 마음이 흔들려 적 정이 깨지기도 합니다. 이럴 때 나쁜 심사와 수번뇌가 나타납 니다. 하지만 최극적정의 상태에 있으면 이것들을 받지 않습니 다. 최극적정의 상태에서는 번뇌가 들어오더라도 다시 튕겨져 나갑니다.

  전주일취(專住一趣)는 가행이 있고 용공이 있어서 부족함이 없고 간격이 없어 삼매가 상속하여 머무르는 것을 말합니다. 항 상 ‘이뭣고?’의 삼매에 들어있는 것입니다. 끝없이 정진하여 공 덕이 생겨 부족함이 없고, 간격 없이 끝없이 삼매에 머무는 것 이 전주일취입니다. 오로지 하나에 머무는 것입니다. 오로지 삼 매에만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등지(等持)는 자주 닦고 자주 익혀 많은 수습으로 인연을 삼 기 때문에 가행도 없고 용공도 없게 되어 자연히 도에 들어가 는 것입니다. 선정 삼매에 들어 ‘이뭣고?’를 통하여 본래 성품 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전주일취가 계속되면 어느 순간 삼매에 들어 견성하게 됩니다. 일심을 터득하기 위해서는 선정 삼매에 들어야 합니다. 

  선정에 들면 네 가지 지혜가 저절로 생깁니다. 네 가지 혜행 은 내심의 사마타에 의지하기 때문에 모든 법중에 바르게 생각 하여 판단하며, 가장 지극하게 생각하여 판단하며, 빠짐없이 두 루 심사하며, 빠짐없이 두루 사찰하게 됩니다.

심주는 사마타를 하면서 생기는 아홉 가지 단계를 말한 것입 니다. 사마타를 하면 내 마음이 어떻게 되는가를 상세하게 설명 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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