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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강 의라는 것은 삼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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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6,730회 작성일 21-07-10 23: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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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강


(2-1-2) 심생멸상은 대승의 체에 대한 상용이다

이 마음의 생멸인연상(生滅因緣相)은 대승 자체의 상(相)과 용( 用)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是心生滅因緣相,能示摩訶衍自體相用故。 

(2-2) 의라는 것은 삼대이다 

의(義)에는 세 가지 종류가 있다. 所言義者,則有三種。云何為三? 

(2-2-1) 체, 상, 용 삼대를 설하다 

첫째는 체대(體大)이니, 마음의 본체가 커서 일체법이 진여평등 하여 증감이 없는 까닭이다. 둘째는 상대(相大)이니, 마음의 모 양이 미묘하여 여래장(如來藏)이 한량없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 한 까닭이다. 셋째는 용대(用大)이니, 마음의 작용이 무량하여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선한 인과(善因果)를 내는 까닭이다. 一者、體大,謂一切法真如平等不增減故。二者、相大,謂如 來藏具足無量性功德故。三者、用大,能生一切世間、出世間 善因果故。

(2-2-2)모든 불보살은 대승법을 굴리신다

모든 부처님이 본래 이법을 굴리는 까닭이며, 모든 보살이 이법 에 의지하여 여래의 경지에 이르는 까닭이다. 

一切諸佛本所乘故,一切菩薩皆乘此法到如來地故。已說立義分。


(3) 해석분 

[진제9] 이미 입의분(立義分)을 설명하였으니 다음에는 해석분 (解釋分)을 설명한다.

次說解釋分。

(3-0) 해석분을 세 가지로 나누다 

해석분에 세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현시정의(顯示正義)이며, 둘 째는 대치사집(對治邪執)이며, 셋째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 道相)이다. 

解釋分有三種。云何為三?一者、顯示正義,二者、對治邪 執,三者、分別發趣道相。

(3-1) 바른 뜻을 나타내 보이다 

(3-1-1) 법과 의를 자세히 해석하다 

(3-1-1-1) 입의분에서 세운 법을 해석하다 

[진제10] 바른 뜻을 나타내는 것은 일심법을 의지하여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첫째는 심진여문(心眞如門)이며, 둘째는 심생멸문 (心生滅門)이다. 

이 두 가지 문이 각각 일체의 법을 총섭하고 있다. 이 뜻이 무엇 인가? 이 두 문은 서로 여의지 않는 까닭이다. .

顯示正義者,依一心法,有二種門。云何為二?一者、心真如 門,二者、心生滅門。是二種門,皆各總攝一切法。此義云 何?以是二門不相離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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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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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이어서 의법과 의문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의법이란 무엇이 실재하는 지를 모르는 것입니다. 의문이란 많 은 가르침을 어떻게 받아들이면 좋을지 모르는 것입니다. 어떤 가르침을 택해야 쉽게 진리의 길로 갈 수 있는지 모릅니다. 

  원효는 의법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가지각 색의 물결이 일지만 그것은 영원한 마음의 바다에서의 일이다. 실로 하나인 마음의 빛이 가려짐으로 여섯 갈래의 중생의 모습 이 나타나는 것이며 그들을 구제하고자 하는 끝없는 원을 세우 는 것이며 여섯 갈래의 중생이 일심을 떠나 나타난 것이 아니므 로 세상은 그냥 일심동체의 세계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연못 에 돌을 던지면 여러 파문이 일어납니다. 하지만 연못과 파문이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연못에서의 일입니다. 파문이 여러 개 일어날 뿐 연못에서 일어나는 일일 뿐입니다. 이와 같이 육 도윤회하는 여섯 갈래의 중생은 일심을 떠나 나타난 것이 아닙 니다. 모두 일심을 품고 있으므로 일심동체의 세계 속에서 존재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알면 하나인데 진리를 모르면 각자의 삶 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행복해져야하는 이유가 일심동체 이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손가락에 가시가 찔리면 온 몸이 아 픕니다. 이와 같은 원리입니다. 일심을 알면 그렇게 되지만 일심 을 모르면 자기 삶 밖에 모르게 됩니다. 진여가 생사문 속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 삶의 모습이 중생으로서 번뇌망상 속 에서 살아도 진여가 있는 것입니다.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속에 도 진여가 있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을 일으키고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세상과 더불어 잘 살겠다는 마음을 일 으키면 진여가 빛을 발하게 됩니다.


  원효는 의문에 대한 답으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집착에서 벗어나는 행을 닦으라.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의 문이 열린다. 옳 게 판단하여 자비를 실천하라. 그러면 요동치고 산란한 마음의 문을 여의게 된다. 버릴 것을 버리며 동시에 볼 것을 보고 옳게 생각하고 행하면 생활은 깨달음으로 향하게 된다.” 우리의 삶을 되돌아보면 얼마나 많은 집착 속에서 살고 있는지 알 수 있습니 다. 집착은 눈덩어리와 같습니다. 눈덩어리는 작을 때는 상관없 지만 굴러다니다 점점 덩치가 커지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 도가 됩니다. 그러니 나중에 무언가를 하겠다고 할 것이 아니라 지금 마음을 일으킬 때부터 해야 하는 것입니다. 보시와 같은 것 도 마음을 일으킬 때 하는 것입니다.

  지금 이 마음을 일으킬 때 집착에서 벗어나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의 문이 열리고, 끝없이 자비 를 실천하여 우리의 삶을 진리에 들게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요동치고 산란한 마음에서 나오는 번뇌망상, 아집, 아만을 여의게 됩니다. 버릴 것을 버리고 볼 것을 보고 옳게 알고 행하 면 삶은 깨달음으로 향하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의 삶입니 다. 깨달음이 아닙니다. 지금 살고 있는 내 삶의 모습 속에서 스스로 깨달음을 찾아야 합니다. 깨달음은 이 삶을 떠나서 따로 있 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생사문 속에 진여가 들어있는 것입니다. 

  생사문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생사문이란 진여가 선, 불 선의 근본 원인이 되어 여러 가지 부차적인 조건과 결합하여 제 현상을 빚어내는 것을 말합니다. 내 속에 들어있는 진여가 부차 적인 조건들과 결합하여 살아가는 모든 모습을 나타내는 것입 니다.


  “심생멸이란 여래장에 의하므로 생멸심이 있는 것이니 이른 바 불생불멸이 생멸과 더불어 화합하여 같은 것도 아니고 다른 것도 아닌 것을 이름하여 아뢰야식이라고 하는 것이다.” 생멸을 일으키는 우리의 마음 속에 본질인 여래장이 들어있습니다. 원 래 들어있는 본질인 불생불멸의 여래장이 내가 일으키는 생멸 과 화합하여 나타나는 것이 아뢰야식입니다. 원효는 아뢰야식 을 좀 더 폭넓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7식이라고 이해하 고 있는 많은 부분을 아뢰야식 안에 포함시켜 설명하고 있습니 다. 아뢰야식은 본질이라기보다는 우리가 나타내는 모든 마음 의 표현과 관계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6식, 7식, 8식 과 관계가 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심생멸상은 대승의 체에 대한 상용이다.” “이 마음의 생멸인 연상(生滅因緣相)은 대승자체의 상(相)과 용(用)을 나타내기 때 문이다.” 생멸인연상이란 끝없이 나고 죽는 많은 형상과 그 형 상들을 빚고 번뇌망상을 일으키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대승의 체는 본질을 말합니다. “대승의 체에 대한 상용이다.” 이 말은 진여에서 생사가 나오는 것을 말합니다. 진여에서 모양과 작용 이 나타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견성한다고 했을 때 견성한 본질은 체이고 그것을 갖고 나타나는 모양은 상, 그것을 갖고 행 위하는 작용은 용입니다. 본체가 어떤 모양을 이루고 그 모양에 따라 어떤 작용을 하는 것이 바로 심생멸상입니다. 진여는 체이 고 심생멸은 상과 용입니다. 일심에서 진여와 생사가 갈라지기 때문에 이 상과 용에는 깨끗하게 나타나는 것과 오염되어 나타 나는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념의 작용을 나타내기도 하고 번 뇌망상의 작용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체상용은 깨달음의 세계 와 깨닫지 못한 세계를 모두 포함하고 있습니다. 유식의 모든 내 용은 깨닫지 못하고 물들어 오염된 상태의 마음을 설명하고 있 습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진여문과 생사문을 설명함으로써 오 염되지 않은 상태의 마음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상용 에는 진여의 상용도 있고 생멸의 상용도 있습니다. 이 문장에서 는 진여의 상용과 생멸의 상용 모두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일심 속에 전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은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고 우리 눈에 보이는 세상이 있는데, 중요한 것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입니다. 보이 지 않는 세계가 진여문이고 보이는 세상은 생사문인 것입니다. 이 보이지 않는 진여문이 생사문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만약 누 군가가 견성을 했다면 그 견성한 모습은 상과 용으로 나타납니 다. 그리고 견성하지 못한 사람의 살아가는 모습도 상과 용입니 다. 하지만 깨달았던 깨닫지 못했던 그 안에 체, 진여가 들어있 습니다. 저 진여의 마음이 들어있기 때문에 우리의 삶이나 부처의 삶이나 결국 다를 바가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의 하루 하루보다 더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숨쉬는 순간도 헛되 이 보내면 안되는 것입니다. 그 순간도 다시 오지 않습니다. 수 백 년 수천 년 지나도 오늘 이 하루는 다시 오지 않습니다. 이 대 승기신론에서 하고 있는 이야기는 상당히 긍정적입니다. 우리 가 살아가는 이 삶이 물들어 있건 물들어 있지 않건 소중하고 귀 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알고 모르고는 상관없습니다. 그 안에는 소중한 진여가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살아가는 이 삶이 소중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체, 상, 용 삼대를 설하다.” “첫째는 체대(體大)이니, 마음의 본체가 크서 일체법이 진여평등하여 증감이 없는 까닭이다. 둘 째는 상대(相大)이니, 마음의 모양이 미묘하여 여래장이 한량없 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까닭이다. 셋째는 용대(用大)이니, 마 음의 작용이 무량하여 일체의 세간과 출세간의 선한 인과[善因 果]를 내는 까닭이다.” 체, 상, 용 삼대의 구조로 세상의 모든 것 을 표현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타종교의 교리도 설명할 수 있 습니다. 성부는 체, 성자는 용, 성신은 상과 연결됩니다. 화엄경 의 육상도 삼대를 설명한 것입니다. 체대는 진여, 본질을 말합 니다. 마음의 본체가 크다고 하는데 그 이유는 일심으로 모두가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덮고 있는 하나가 바로 체입니다. 일심입니다. 하나이기 때문에 일체의 모든 법은 진여평등합니 다. 하나이기 때문에 평등하고 증감이 없습니다.

  상대(相大)에 대해 살펴봅시다. 마음의 모양이란 여기서 말한 것처럼 미묘합니다. 자신의 모습을 살펴보면 누구도 흉내내지 못할 신기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업이 얼마나 미묘한지 같은 모습이 없는 각자 자기의 모습을 드러내놓고 있습니다. 꽃이나 개도 다 다르지만 사람도 모두 다 다릅니다. 이것이 얼마나 미 묘합니까. 우리는 잘생겼다 못생겼다 할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 을 가졌기에 이런 형상을 하고 있을까하고 감탄을 할 처지인 것 입니다. 그 상태에서 만물을 보면 끝없이 신기한 마음만 일어날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자기 기준으로 맞다 안맞다를 따지기 때문에 세상은 모두 분리되어 있습니다. 만물이 왜 각양각색의 모습을 갖고 사느냐, 이것은 여래장이 한량없는 성품의 공덕을 구족한 까닭입니다. 자신의 업만큼 공덕을 구족했기 때문에 각 자 다른 모습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것은 모두 원만한데 깨닫지 못한 우리는 맞으면 원만하고 맞지 않으면 원만하지 못합니다. 우리는 각자의 모양대로 다 원만한 것입니다. 그런 마음이 일어 나면 세상이 좋아지기 시작할 것입니다. 내가 갈라야할 편이 없 어지고 적이 없어집니다. 우리 각자의 모습은 서로 다를 뿐이지 진리 앞에서 맞고 틀리고가 없습니다. 

  용대(用大)를 살펴봅시다. 마음의 작용은 무량하다고 합니다. 우리는 마음이 무량하기 때문에 못할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공 부해서 부처가 될 수 있고 악한 마음을 일으키면 지옥에도 갑니 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모든 것은 이렇게 미묘하고 작용이 무 량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하면서 나에게 맞고 틀리고를 따질 것이 아니라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의 무량한 가치를 인정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다름에서 오는 가치를 인정해주면 세상은 좋아질 것입니다. 부부싸움의 원인도 내가 맞다고 우기니까 평 생 동안 싸우는 것입니다. 다름을 인정하면 세상은 훨씬 더 살 기 편해질 것입니다. 세상이 적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와 함께 공존하고 있는 것만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국가들도 그 렇습니다. 적대국이 아니라 다 함께 잘 살기 위한 집단일 뿐입 니다. 이데올로기는 다르지만 그 속에서 잘 살려고 하는 집단들 입니다. 우리는 못난 사람들을 보고 안타까움을 느껴야지 그것 을 비웃으면 안됩니다. 체대, 상대, 용대를 잘 보면 세상이 무량 공덕입니다. 그래야 진리의 세계가 펼쳐집니다. 내 것만 생각하 면 끝없는 생사문 속에서 아집, 무지만 난무합니다. 하지만 눈이 열리면 이 세상은 열반적정, 극락의 세계가 됩니다.


  여래장은 진리, 진여를 나타내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진리, 진여가 중관사상에서는 공(空)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재가 수 행자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유마경과 승만경이 있습니다. 승 만경을 살펴보면 여래장 사상이 나옵니다. 원효는 여래장을 ‘일 심이라고 하며 고요하고 또 고요하며 모든 더러움이 사라진 것 이고 하나인 마음, 그(일심)와 같이 될 수 있는 씨앗’이라고 했습 니다. 일심을 진여의 입장에서 볼 때 그 마음이 여래장인 것입 니다. 모든 더러움에 물들기 전의 더러움이 없는 것입니다. 우 리의 본래 성품은 물들기 전의 것이기 때문에 청정이란 표현을 씁니다. 그 본래 성품을 보면 견성입니다. 견성한 마음으로 세상 을 볼 때 일심이고 그 성품이 여래장입니다. 내 것이 맞고 너의 것이 틀리고 내가 가져야 하고 축적해야 하는 온갖 자기중심의 것은 생사문에서 일으키는 생각입니다. 무엇이건 일심이 될 수 있는 씨앗인 진여, 여래장이 있지만 그 여래장이 움직이는 마음 의 모습이 심생멸문입니다. 그 자체는 진여이지만 움직이면 심 생멸문입니다. 움직이는 것은 무명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움직이는 것입니다. 

  “진여가 선, 불선의 근본 원인이 되어 여러 가지 부차적인 조 건과 결합하여 제 현상을 빚어내는 것이다. 제 현상은 나타나지 만 그 본성은 파괴되지 않고 있으므로 생멸문에도 진여는 그대 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삶의 모습으로 다 나타나지 만 본성은 파괴되지 않고 그 안에 있습니다. 생멸문 속에도 진 여는 그대로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 전부가 부처인 것입니다. 어떠한 생멸문 속에도 진여가 파괴되지 않고 있기 때 문에 나타내는 모습 전부가 진여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에 부처 아닌 것이 없습니다. 


  “해석분(解釋分)을 세 가지로 나누어보자. 무엇이 세 가지인 가? 첫째는 현시정의(顯示正義)이며, 둘째는 대치사집(對治邪 執)이며, 셋째는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이다.” 현시정의( 顯示正義)는 이것을 나타내어 바른 것을 보인다는 뜻입니다. 대 치사집(對治邪執)은 삿되고 잘못된 것을 진리로 바꾸는 것을 말 합니다. 분별발취도상(分別發趣道相)은 분별하여 도를 이루겠 다는 마음을 내어 나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생사문을 갖고 진여 문으로 나아갈 때 바른 것이 무엇인가를 보이고 바른 것을 가지 고 삿된 것을 바꾸고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것이 이 설명의 내용입니다. 

  “입의분에서 세운 법을 해석하다. 바른 뜻을 나타내는 것은 일심법을 의지하여 두 가지 문이 있으니 첫째는 심진여문(心眞 如門)이며, 둘째는 심생멸문(心生滅門)이다. 이 두 가지 문이 각 각 일체의 법을 총섭하고 있다. 이 뜻이 무엇인가? 이 두 문은 서 로 여의지 않는 까닭이다.”


  일법계대총상법문체에 대한 설명을 봅시다. “이러한 까닭으 로 일체의 법이 본래의 언설(言說)의 모양을 여의었으며, 이름 의 모양도 여의었고, 마음에 반연하는 모양을 여의어 필경에는 평등하게 되며, 변하거나 달라지는 것도 없으며 파괴할 수도 없 는 것으로 오직 일심(一心)이니, 진여라 이름하는 것이다. 왜냐 하면 일체의 언설(言說)은 임시적인 이름일 뿐 실체가 없는 것 으로 망념만 따를 뿐 그 실체를 얻을 수 없는 까닭이다.” 이것은 나중에 이야기하도록 하겠습니다. 앞서 대승기신론에는 원효의 소와 감산의 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서 감산은 일법계대총 상법문체를 화엄의 법계연기와 연결시킵니다. 그것을 위해 화 엄법계연기를 먼저 설명하고 일법계대총상법문체를 나중에 설 명하도록 하겠습니다.

  화엄법계연기는 네 가지 사법계(四法界)로 되어 있는데 사( 事)법계, 이(理)법계, 이사무애(理事無礙)법계, 사사무애(事事無 礙)법계로 되어있습니다. 여기서 사(事)는 색(色)이고 이(理)는 공(空)입니다. 화엄법계는 삼대, 사법계, 육상(六相)으로 설명하 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육상의 원리로 되어 있습니다. 이 육상이란 총상(總相), 별상(別相), 동상(同相), 이상 (異相), 성상(成相), 괴상(壞相)을 가리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육상의 원리를 떠나지 않습니다. 이 작용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앞서 말한 일법계대총상이 바로 총상입니다. 이것을 집으로 보 면 집 전체를 가리킵니다. 별상은 대승기신론에서 설명되고 있 는 하나하나 구체적인 내용들을 말합니다. 일심, 이문, 삼세, 육 추, 오식, 육염을 말합니다. 이문은 진여문과 생사문을 말하고 오의는 상속식, 지식, 현식, 전식, 업식을 말하고 육염은 집상 응염, 부단상응염, 분별지상응염, 현색불상응염, 능견불상응염, 근본업불상응염을 말합니다. 이렇게 하나하나 나누어서 설명하 는 것이 별상입니다. 동상은 염정이 다르지만 동일한 진여임을 말하는 것입니다. 모두 다른 모양을 하고 있지만 진여에서 보면 같은 것입니다. 질그릇을 보면 다 다른 그릇들이지만 그 그릇들 을 만든 흙은 같습니다. 이것이 동상입니다. 이상은 염정제법이 각각 차별되어 있음을 말한 것입니다. 염정제법이란 오염된 법 과 깨끗한 모든 법을 말합니다. 이 모든 법이 다 차별이 있다는 것을 말합니다. 모양이 다른 질그릇들의 각각의 모양들을 말합 니다. 성상은 일념의 연기에 따라 생성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끊임없이 생성되는 상입니다. 괴상은 생멸에 의해 소멸하는 모 든 것을 말합니다. 파괴되어 없어지는 소멸하는 상입니다. 이와 같이 감산은 화엄법계연기에 나오는 육상의 내용을 대승기신론 에 나오는 일법계대총상법문체와 연결시켜 설명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일법계대총상법문을 일심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원효는 이 내용을 구체적으로 이해시키기 위해서 질문을 던집니다. 그 질문이란 ‘진여의 체는 무엇인가?’, ‘진여란 말은 무슨 뜻인가?’, ‘그러면 진여란 무엇이냐?’, ‘어떤 의문이 있을 수 있 는가?’입니다. 그 답들을 살펴봅시다. ‘진여의 체는 무엇인가?’ 란 질문에 대해서 원효는 ‘진여는 대총상이다.’라고 했습니다. 진여문과 생사문을 모두 포섭하기 때문에 대총상이라고 말합니 다. ‘진여란 말은 무슨 뜻인가?’란 질문에 대해 법이라고 말합니 다. 그 이유는 원리원칙에 따라 참된 이해를 낳게 하기 때문이 라고 답합니다. ‘그러면 진여란 무엇이냐?’란 질문의 답으로 문 이라고 말합니다. 그 이유는 중생들이 그 문을 통해 열반에 들 어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의문이 있을 수 있는 가?’란 질문에 대해서는 체를 설명합니다. 진여와 생사 모두 일 심을 체로 한다고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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