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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강 수행신심분, 부정취 중생, 신심의 네 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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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016회 작성일 21-07-12 1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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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5강


(4) 수행신심분 

[진제71] 이미 해석분을 설하였으니, 다음에는 수행신신분(修行 信心分)을 설한다. 

已說解釋分。次說修行信心分。 

(4-1) 부정취 중생에게 설하다

이 중에 아직 정정취(正定聚)에 들지 못한 중생들이 있기 때문에 신심을 수행함을 말한다. 

[진제72] 무엇이 신심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是中依未入正定眾生故,說修行信心。何等信心?云何修行? 

(4-2) 신심의 네 가지를 설하다

간략히 설명하면 신심에는 네 가지가 있다. 略說信心有四種。云何為四?

(4-2-1) 근본을 믿다

첫째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을 즐겨 생각하기 때문이다. 一者、信根本,所謂樂念真如法故。

(4-2-2) 부처님을 믿다

둘째 부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믿고 항상 부처를 가까 이 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여 선근을 일으켜 일체의 지혜[一切智] 를 구하기 때문이다. 

二者、信佛有無量功德,常念親近供養恭敬,發起善根,願求一切智故。 

(4-2-3) 불법을 믿다

셋째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고 항상 모든 바라밀을 수행하기 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三者、信法有大利益,常念修行諸波羅蜜故。

(4-2-4) 승가를 믿다

네 번째 승가가 바르게 수행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믿으며 항상 모든 보살을 즐겨 친근하며 여실한 수행을 배우려고 하기 때문이다.

四者、信僧能正修行自利利他,常樂親近諸菩薩眾,求學如實 行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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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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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승기신론의 내용은 크게 일심(一心, one mind), 이문(二 門, two aspects), 삼대(三大, three greatnesses), 사신(四信, four faiths), 오행(五行, five practices)으로 되어 있습니다. 지금까지 공부한 것은 삼대까지입니다. 이제부터 공부할 것은 사신과 오행입니다. 사신은 우리가 믿어야할 네 가지로 근본, 불, 법, 승입니다. 오행은 부처가 되기 위해 행할 다섯 가지입니 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지관입니다. 

  “수행신심분. 부정취 중생에게 설하다. ‘이 중에 아직 정정취( 正定聚)에 들지 못한 중생이 있기 때문에 신심을 수행함을 설한 다. 무엇이 신심이며, 어떻게 수행하는가?’” 정정취, 부정취,  악 취가 있습니다. 우리가 육도윤회를 하는데 제일 바닥에 지옥이 있습니다. 악취는 지옥, 아귀, 축생을 말합니다. 정정취는 육도 윤회 가운데 인간과 천상을 말합니다. 부정취는 어디에 태어날 지 정해지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러니까 이 내용의 목적은 부정 취 중생들에게 수행신심분을 설하여 제대로 수행하게 하여 정 정취에 들게 하려는 것입니다. 부정취에서는 공부에 확신이 없 지만 공부에 확신이 서면 정정취에 들어갑니다. 세세생생 이 공 부에서 물러나지 않게 됩니다.


  무엇을 믿어야 하는가에 대한 답입니다. “신심의 네 가지를 설하다. 근본에 대한 믿음이며 부처님에 대한 믿음이며 불법에 대한 믿음이며 승가에 대한 믿음이다.” 부처님에 대한 믿음은 깨달음에 대한 믿음이고, 불법에 대한 믿음은 깨닫는 법에 대한 믿음이고, 승가에 대한 믿음은 수행자에 대한 믿음입니다. 근본 에 대한 믿음은 이 세상에 일심, 진여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근본을 믿다. 근본을 믿는 것이니 진여법을 즐겨 생각하기 때문이다. (기신론소에서) 참되고 한결같은 마음, 진여한 마음 은 다 그곳으로 귀일하는 바이며, 모든 행위가 바로 그곳으로부 터 나오는 근원이기 때문에 근본이라고 하는 것이다.” 일심, 진 여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중생은 물들어서 본연의 모습을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가 추구하는 깨달음이란 물들기 전의 본래 성품, 청정한 것을 보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는 볼 수 있는 세계가 있는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가 있습 니다. 이것을 불교에서 진리, 진여라고 합니다. 불교에서는 보 이지 않는 세계에 대한 깨달음이 근본 목적이고 보이지 않는 세 계를 믿습니다. 원효의 해설을 봅시다. 오염된 중생의 마음은 이 기적인 생각에 의해 수시로 무상하고 바뀝니다. 일반적으로 일 으키는 생각은 제6식에서 일어납니다. 그 근본이 제7식 말라식 이고 말라식의 바탕이 되는 것이 제8식 아뢰야식입니다. 근본 에 해당하는 제8아뢰야식을 이해하면 모든 문제가 해결됩니다. 우선 근본, 즉 진여가 있다는 것을 믿어야 합니다. 

  원효가 가장 좋아했다던 금강명경에서 진리를 찬양한 시가 있습니다.


  간밤의 꿈속에서 일어난 일

  그것을 내 마음 속에 깊이 되새겨보네

  한 황금 북이

  빛깔도 찬란하며

  장엄한 빛을 발하고 있었는데

  그 빛은 햇빛보다도 더 밝았네


  시방세계를 비춰

  항하사 같이 무수한 그 빛의 덕분으로 부처님을 보았네 

  그는 여러 보물의 나무 밑

  유리의 보좌에 앉아 계셨네


  수많은 사람이

  진여법을 듣고자

  둥글게 모여

  한 브라만이 치는

  황금의 북소리를 들었네


  여기서 말하는 꿈속의 일이나 황금 북은 진여를 가리킵니다. 진리를 보고 듣고 느꼈던 것을 시로 표현했습니다. 

  “부처님을 믿다. 부처에게 한량없는 공덕이 있다고 믿고 항상 부처를 가까이 하고 공양하고 공경하여 선근을 일으켜 일체의 지혜[一切智]를 구하기 때문이다.” 부처를 믿는다는 것은 깨달 음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깨달음의 내용은 다름이 아니라 대비 즉 끝없는 자비입니다. 한량없는 공덕이 있는 것입니다. 일체의 지혜가 다 갖추어져 있기 때문에 일체의 지혜를 구할 수 있습니 다. 지혜는 합리적으로 생각해서 얻어지는 지혜가 아닙니다. 그 것은 분별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지혜란 분별지를 포용하고 뛰어넘는 무분별지입니다. 자비가 넘치는 것이 지혜가 됩니다. 

  참고로 귀명삼보의 부처님 부분을 봅시다. “목숨을 거두어 돌 아가나이다. 어디에서나 어느 때에나 가장 훌륭한 일을 하시며, 두루 모르시는 바 없이 다 아시며, 그 인간성이 자유자재하시고 세상을 구하고자 큰 자비를 베푸는 자이시여.” 귀명삼보란 삼보 에 귀의하는 것입니다. 삼보는 앞에서 말했듯이 ‘불, 법, 승’입 니다. ‘목숨을 거두어 돌아간다’는 말은 목숨을 걸고 진리의 세 계로 들어가겠다는 말입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수행을 하고 부 처를 보는 것입니다. 훌륭한 일이란 모든 생명에게 자비를 베푸 는 것입니다. 깨달으면 6 신통이 생기는데 그 영향으로 두루 모 르는 바가 없게 됩니다. 숙명통이란 어떤 사람을 보면 그 사람 의 전생까지 다 아는 것입니다. 이것은 허황된 소리가 아닙니 다. 과학에서 DNA를 보면 전생부터 어떻게 살아왔는지 다 알 수 있습니다. DNA를 풀어보니 단세포 생물이 35억년 동안 살 았던 삶의 흔적들이 다 들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DNA 검사는 매우 비싸기 때문에 우리들은 도를 닦아서 알아야 합니다. 모두 막혀 있는데 식이 맑아지면 보입니다. 제8아뢰야식, 6추 3세의 3세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미세한 것도 알 수 있는 상태가 바로 적멸입니다. 적멸하니 미세한 것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 이 견성한 상태입니다. 

  우리는 살다가 죽습니다. 상태가 변합니다. 나의 상(형태)이 다 깨어집니다. 그래서 과거의 흔적들을 기억을 못합니다. 하지 만 공부하고 수행을 하면 식이 덜 깨어집니다. 전생을 기억하는 사람들은 이렇게 식이 덜 깨어진 사람들입니다. 공부하면 잘 알 고 암기를 잘 하는 것도 식이 맑아서 입니다. 식이 맑아지면 나 의 저장창고에 담긴 내용들을 다 알게 됩니다. 이것이 다름 아 니라 전생을 아는 것입니다. 

  목숨을 거두어 돌아간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무엇인들 못하겠 습니까. 진리를 대하는 마음은 진지하고 지극해야 합니다. 

  “불법을 믿다. 법에 큰 이익이 있음을 믿고 항상 모든 바라밀 을 수행하기를 생각하기 때문이다.” 불법을 믿는 것은 부처님 께서 깨친 내용을 믿는 것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법입니 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법칙이 있더라는 것입니다. 그것 이 연기입니다. 세상에는 법칙이 많습니다. 수학 시간에 배웠던 법칙들, 물리 시간에 나오는 만유인력의 법칙, 운동의 법칙, 관 성의 법칙, 상대성 이론 등 이런 것들이 모두 법칙입니다. 이 법 칙들은 생명, 무생물이 구분되어 적용되지만 연기의 법칙은 생 물, 무생물 모두에게 적용됩니다. 생물은 의지가 있지만 무생물 은 의지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생물은 어떤 조건에서 어떻게 하 면 그대로 결과가 나옵니다. 하지만 생물은 의지가 있기 때문에 어떤 조건에서 다른 결과가 나옵니다. 예를 들어 돈을 그냥 준 다고 한다면 돈이 많은 사람도 기분 나쁠 리가 없습니다. 반대 로 아무 이유 없이 따귀를 맞으면 기분 좋을 사람은 아무도 없 을 것입니다. 의지가 있어도 좋은 행위를 할 때 좋은 결과가 오 고 나쁜 행위를 할 때 나쁜 결과가 오는 원칙은 바뀌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은 베푸는 행위를 많이 했는데도 나 쁜 결과가 나오고 어떤 사람은 악행만 하는데 부유하게 삽니다. 이것은 과보가 어느 정도 수준까지 익어야 정확하게 결과로 나 타나지만 그렇지 않으면 결과로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 상의 모든 것은 아보가드로수만 넘으면 통계의 법칙, 확률의 법 칙을 따릅니다. 불교 경전을 보면 어마어마한 수나 공간들이 등 장합니다. 이것들은 통계와 확률을 바탕하고 있습니다. 결과적 으로 어떤 착한 일을 하면 바로 결과가 나타나지 않더라도 언젠 가는 결과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반대로 악한 일을 하면 언젠가 그 과보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것이 연기의 법칙이고 인과응 보입니다. 이 생에서 받고 있는 모든 것이 인과응보입니다. 세 상에 절대로 공짜는 없습니다. 그래서 경전에서 보시하라고 하 는 것입니다. 베푼 것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베풀지 않은 것이 자기에게 돌아오지 않습니다.

  귀명삼보의 법 부분을 봅시다. “목숨을 거두어 돌아가나이다. 그 (지혜롭고 자비로운 자의) 몸이여, 그 몸의 모습이여, 참되고 영원함이 저 바다와 같은 진리여.” 법은 체상용의 상에 해당합 니다. 부처님께서 연기의 법칙을 깨치셨지만 최초로 설법하신 내용은 사성제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시기 전 마지막에 설 법하신 내용도 사성제, 팔정도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세상 에 사성제와 팔정도 이외의 도는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시공 을 초월하여 누군가가 도를 이루려면 사성제와 팔정도를 행해 야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사성제는 고집멸도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에 생멸을 하고 이것이 반복되는 것이 윤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것을 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 는 삶의 현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집은 이유, 원인으로 부처님 께서는 일이 일어난 원인만 알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해결된 상태가 멸입니다. 해결하는 방법이 도입니 다. 사성제는 삶의 모습과 나아가야할 길이 나타나 있는 것입니 다. 연기를 풀어쓰면 고집멸이 됩니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 은 원인이 있어(집) 생겼으며(고), 원인이 소멸되면(도), 없어진 다(멸). 이것이 연기입니다. 

  과학도 원인 규명입니다. 어떤 현상이 있다면 그 현상에 합 당한 원인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원인을 아는 것은 보편성이 있 는 것입니다. 원인을 모르면 특수한 경우에는 적용될 수 있어 도 모든 경우에 적용이 안 됩니다. 원인을 알면 응용이 가능해 지고 보편성을 갖게 됩니다. 이것도 결국은 사성제입니다. 우리 는 사성제를 통해 연기의 법칙을 알고 터득하여 삶을 변화시켜 갈 수 있습니다.

  “승가를 믿다. 승가가 바르게 수행하여 자리이타(自利利他)를 믿으며 항상 모든 보살을 즐겨 친근하며 여실한 수행을 배우려 고 하기 때문이다.” 승가는 수행을 열심히 잘하려고 합니다. 우 리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도 승가에 해당합니다. 이것은 개인이 아닌 집단입니다. 수행하고 공부하는 집단입니다. 진리를 추구 하는 모임입니다. 실제로 그렇게 살아야 승가이지 간판만 승가 라고 해서 다 승가는 아닙니다. 

  귀명삼보 승 부분을 봅시다. “목숨을 거두어 돌아가나이다.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공덕의 씨앗이여. 있는 그대로 그리고 모든 것 속에서 생활하는 그 숱한 구도자들이여.” 목숨을 거두어 진리로 돌아가는 이 사람들이 수행자, 승가인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법에 맞게, 즉 사성제에 맞게 살아가는지 냉정하게 돌 아보아야 합니다. 삶은 알고 시작하는 순간 달라집니다. 나를 되 돌아보지 않으면 똑같은 삶만 되풀이할 뿐입니다. 진리를 추구 하고 진리를 논하고 실천해야 승가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 람들은 부처님과 같이 자비심이 많아야 합니다. 집단 이기심이 강해지면 그것은 진정한 승가라고 할 수 없습니다. 요즘 종교들 은 집단 이기심이 매우 강합니다. 집단 이기심은 국가나 정치에 서도 강해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믿고 실천하며 살아갈 수 있어야 합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집단은 종교 수행집 단에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대학도 진리를 추구하는 곳입니다. 대학도 일종의 승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대학은 시스템 이 체계화되어 있고 종교 수행 단체는 계율은 있지만 비교적 덜 체계적이고 자율적인 부분이 많습니다. 이렇게 불교만이 아니 라 다른 것으로도 세상을 구할 수 있습니다. 진리를 공부하면 소 중하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불교뿐만 아니라 다른 종교들도 소 중하게 됩니다. 다른 것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서로 다른 것을 인정하면 화합할 수 있습니다. 


  *머리 식히면서 한번 보기_이군지비구 이야기 


  오늘은 이군지 비구의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기 원정사에 계실 때 어떤 바라문이 임신을 하여 아이를 낳았습니 다. 아기는 용모가 추악하고 몸은 더러웠고 행동도 포악하였습니다. 이 아기는 얼마나 포악한지 어머니의 젖이 헐 정도였습니 다. 이 아기가 바로 이군지 비구입니다. 세월이 흘러 가난했던 이군지는 비구들이 걸식하는 모습을 보고 비구가 되면 음식을 얻어먹을 수 있겠다고 생각하고 출가를 결심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가서 출가하겠다고 하자 부처님께서 출가를 시켜 주십니다. 

  출가한 첫째 날 사리불을 따라 걸식을 나갔는데 부부가 싸움 을 하여 걸식을 얻어먹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둘째 날도 사리불 을 따라 갔습니다. 그 날은 사리불이 여러 비구를 데리고 장자의 집에 초대를 받아 갔습니다. 하지만 장자는 이군지의 밥만 잊고 챙겨주지 못해 굶게 되었습니다. 셋째 날에는 이군지의 이야기 를 들은 아난이 그를 가엾게 여겨 음식을 가져오기로 했는데 잊 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넷째 날에는 아난이 다시 음식을 얻으러 갔는데 도중에 사나운 개를 만나 음식을 내팽개쳐버리고 와버 립니다. 다섯째 날에는 마우드갈라나 비구가 음식을 얻어주러 갔다가 도중에 새들에게 음식을 빼앗겨 버립니다. 여섯째 날에 는 사리불이 음식을 구하러 갔는데 바루를 떨어뜨려서 음식 자 체를 못 가지고 와버렸습니다. 마지막 일곱째 날에 이군지 비구 는 모래를 입에 넣고 물을 먹고 열반에 들고 말았습니다. 

  이군지 비구의 전생을 알아보니 그는 전생에 구미라는 장자 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는 불법을 만나 부처님과 비구들에게 지 극 정성 공양을 올렸습니다. 구미가 죽고 부인이 그 일을 하였 는데 그 일을 못마땅하게 여긴 아들이 어머니를 광에 가두고 먹 지도 못하게 하고 공양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7일 째 되는 날 아들은 어머니에게 “어머니는 모래로 밥을 쪄서 드십시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어머니는 굶어 죽었습니다. 그 업보로 추악 한 모습으로 태어나 그렇게 굶어죽은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큰 죄악을 저질렀으니 아무리 공양을 받아와도 먹을 수 없었던 것 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제대로 된 수행자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해공 제일 수보리가 있습니다. 그는 수닷타 장자의 조카입니다. 수닷타 장자는 부처님 살아생전 큰 후원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그는 항상 부처님 곁에 있었는데 부처님께서 어느 날 천상에서 법문을 하고 오셨을 때 연화색 비구니가 맞이하며 “부처님이시여 제가 가장 먼저 부처님을 마중하였습니다.”라고 하자, 부처님께서는 “네가 처음이 아니다. 수보리가 항상 나를 곁에서 모시고 있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렇게 부처님 옆을 항상 지키던 수보리였습니다만 왕사성에서 한 번 부처님과 떨 어진 적이 있었습니다. 왕사성에서 안거를 할 때였습니다. 빔비 사라 왕이 그를 위해 안거할 곳을 마련해줍니다. 그런데 너무 급 하게 만들다보니 안거할 곳의 지붕이 없었습니다. 원래 안거란 비를 피하기 위한 것인데, 희한한 것이 수보리가 안거를 시작하 자 왕사성에 비가 오지 않았습니다. 나라가 가뭄에 들처하자 빔 비사라 왕은 그제서야 수보리의 안거하는 곳에 지붕을 지어주 지 않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지붕을 지어준 후 그 다음날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수보리는 아난과 함께 부처 님 제자 가운데 잘생긴 미남으로도 유명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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