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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강 정진문의 수행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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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014회 작성일 21-07-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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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9강


(4-3-4-0) 정진문의 수행을 밝히다

어떻게 정진문(進門)을 수행하는가? 云何修行進門?

(4-3-4-1) 공덕을 부지런히 닦다 

모든 선한 일에 마음이 게으르지 않고 뜻을 굳게 세워서 겁약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오랜 세월[久遠]로부터 부질없이 일 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았던 것이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생각할 것이며, 이 때문에 응당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 이타하여 모든 고통을 여의는 것이다. 

所謂於諸善事心不懈退,立志堅強遠離怯弱。當念過去久遠已 來,虛受一切身心大苦無有利益,是故應勤修諸功德,自利利 他速離眾苦。

(4-3-4-2) 죄장을 부지런히 제거하다 

또한 사람이 신심(信心)을 수행하였으나, 지난 세상(先世)으로부 터 무거운 죄악 업장이 많은 까닭에 삿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에 게 괴롭힘을 받거나 어지럽힘을 당하며, 

혹은 세간의 사무(事務)에 여러 가지로 매이고 얽히게 되며 혹은 병고(病苦)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이러한 여러 많 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응당 용맹히 정근(精勤)하여 아침 저녁으 로 여섯 번씩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으로 참회하며 권청(勸請)

大乘起信論 講說 _ 479하고 수희(隨喜)하여 보리에 회향하기를 쉬지 않으면 모든 장애 를 벗어나 선근이 증장하게 된다. 

復次,若人雖修行信心,以從先世來多有重罪惡業障故,為魔 邪諸鬼之所惱亂,或為世間事務種種牽纏,或為病苦所惱。有 如是等眾多障礙,是故應當勇猛精勤,晝夜六時禮拜諸佛,誠 心懺悔、勸請、隨喜、迴向菩提,常不休廢,得免諸障、善根 增長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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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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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진문의 수행을 밝히다. 어떻게 정진문(進門)을 수행하는 가?” 학교 다닐 때 나름 열심히 공부합니다. 평소보다는 힘을 쏟 습니다. 평소보다 열심히 하는 것이 정진입니다. 어떤 문제를 해 결하기 위해 좀 더 집중하는 것입니다.

  “공덕을 부지런히 닦다. 모든 선한 일에 마음이 게으르지 않 고 뜻을 굳게 세워서 겁약을 멀리 여의고, 마땅히 과거의 오랜 세월[久遠]로부터 부질없이 일체의 몸과 마음에 큰 고통을 받았 던 것이 아무런 이익이 없음을 생각할 것이며, 이 때문에 응당 모든 공덕을 부지런히 닦아 자리이타 하여 모든 고통을 여의는 것이다.” 정진은 공덕을 부지런히 닦는 것입니다. 이 생에 아무 리 잘 살고 싶어도 안 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것은 닦아놓은 공덕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내 그릇만큼, 베푼 만큼 복덕이나 돈이 들어오는 것입니다. 내가 잘 살고 싶다면 부지런히 공덕을 닦으며 정진해야 합니다.

  선하다는 것은 내가 다른 생명들을 위해 긍정적인 마음을 낼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것들을 해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선 한 행동에 마음을 내고 행동한다면 이것은 마음이 게으른 것이 아닙니다. 겁약이란 마음이 약해서 할까 말까 고민하는 것입니 다. 할지 말지 뜻을 굳게 세우는 것입니다. 무지와 아집에 의해 끊임없이 고통을 받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그 오랜 세월 받아온 고통이 아무런 이익이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중생은 그 고통 속에 평생을 살아갑니다. 만약 공덕을 닦고 정진하면 모 든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다.

  “죄장을 부지런히 제거하다. 사람이 신심(信心)을 수행하였으 나, 지난 세상[先世]로부터 무거운 죄악 업장이 많은 까닭에 삿 된 마구니와 여러 귀신에게 괴롭힘을 받거나 어지럽힘을 당하 며, 혹은 세간의 사무(事務)에 여러 가지로 메이고 얽히게 되며 혹은 병고(病苦)에 시달리며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다.” 중생들 안에는 선한 업과 불선한 업들이 있습니다. 정진을 통해 이런 업 장이나 죄악들을 제거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병고를 당하 거나 일하면서 어려움을 겪습니다. 나쁜 것들이 나왔을 때 정진 을 하면 어느 정도 소멸이 됩니다. 그래서 정진을 하면 이 생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고 다음 생도 편안해집니다. 나쁜 현상들

大乘起信論 講說 _ 481이 일어났을 때 수행하지 않고 정진하지 않으면 내 삶이 망가져 버립니다. 우리는 정진하는 힘을 길러야 합니다.

  중생들은 정진을 해본 적이 없으니 이번 삶이나 다음 삶이나 달라질 것이 없습니다. 이것을 바꿀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정진 입니다.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렇게 노력하다 보 면 보이지 않는 세계, 깨달음의 세계도 보게 될 것입니다.

  “이러한 여러 가지 장애가 있기 때문에 응당 용맹히 정근(精 勤)하여 아침 저녁으로 여섯 번씩 부처님께 예배하여 성심으로 참회하며 권하여 청해 들으며[勸請] 기쁜 마음으로 따르며[隨喜] 보리에 회향하기를 쉬지 않으면 모든 장애를 벗어나 선근이 증 장하게 된다.” 인생의 장애를 없애는데 부지런히 용맹정진하는 것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정진바라밀(精進波羅蜜)이란 착한 일에 대하여 게으른 생각을 내지 않으며, 뜻을 굳게 세워 겁내고 약한 생각을 버리고, 모든 공덕을 골고루 닦아 나와 남을 이롭게 하고 뭇 고통 속에서 속 히 벗어나려고 진실의 도를 끊임없이 실천 노력하는 것입니다.

  정진은 크게 다음과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피갑정진(被甲精 進), 둘째 가행정진(加行精進), 셋째 유정들을 요익(饒益)케 하는 가행정진입니다. 보통 정진을 하면 자기 자신을 위해 합니다. 그 것이 다른 사람들에게도 좋게 영향을 미치기도 합니다. 일반 중 생들이 하는 정진은 피갑정진과 가행정진입니다. 중생을 뛰어 넘어 보살이 되면 유정들을 요익하게 하는 가행정진을 합니다. 피갑이란 갑옷을 입은 것입니다. 갑옷을 입으면 적군에게서 화 살이 날아와도 뚫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그래서 피갑정진이란 갑옷을 입은 것과 같이 용맹하게 정진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행 정진이란 평소보다 더욱 열심히 하는 정진입니다. 스님들이 마 지막 막바지 결제할 때 밤잠마저 안 자며 열심히 정진합니다. 이 런 것이 가행정진입니다. 가행정진은 용맹정진과 비슷합니다.

  용맹정진의 어원은 아난에서 출발합니다. 부처님 열반 하고 100일 후 수제자 가섭이 제자들을 모아 결집합니다. 이것이 제 1결집입니다. 제1결집은 아라한과를 터득한 사람만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아난은 부처님의 법을 제일 많이 들었던 제자였 지만 여기에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기 전에 아난에게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라고 당부하셨지만 아난 은 열심히 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난은 그 때부터 7일간 용 족산에서 용맹정진합니다. 이것이 용맹정진의 시초입니다. 그 제서야 아난은 아라한과를 터득해서 제1결집에 참가할 수 있었 습니다.

  이런 가행정진을 보살이 하면 유정을 요익케 하는 것입니다. “정진하지 않는 인생은 뿌리 없는 나무와 같다. 사람의 목숨 

또한 이와 같아 무상(無常)하니 인생은 잠깐이다. 부지런히 닦아 진리에 나아가게 하라.<시가라위경>”

  “정진이 없으면 바로 후퇴한다.<천태지자>” 다양한 교설들을 분류, 종합하는 것을 교상판석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완성시킨 사람이 천태 지자입니다. 교종의 종지부를 찍는 것이 천태종의 교상판석입니다. 

  “더디지도 빠르지도 않아야 한다. 빠르면 몸과 마음이 지치 고 더디면 삼매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새를 잡을 때에 서두

大乘起信論 講說 _ 483르면 지치고, 느리면 놓치는 것과 같으며 또 거문고의 줄을 조 절하는 경우에 너무 조이거나 지나치게 늘어지면 제 소리를 내 지 못하는 것과 같다.<성실론>” 정진에서 중요한 것은 속도입니 다. 정진한다고 목숨걸고 막 하다보면 지치게 됩니다. 반대로 너 무 느리면 삼매에 들 수 없습니다. 부처님 제자 아나율은 출가 후 하루 빨리 부처님처럼 되고 싶어서 3년 동안 심하게 용맹정 진을 합니다. 그 결과 눈이 멀어 버립니다. 우리 중생은 아나율 처럼 열심히 용맹정진한 적이 없습니다. 하루 이틀 정도는 했을 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장기간 동안 용맹정진한 적이 없습니다. 그래서 선정에 들지 못합니다. 이런 것은 원이나 생각이 없으면 못합니다.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거문고 줄처럼 너무 조아도 안되고 너무 느슨해도 안되는 것입니다. 적절하게 끊임없이 지 속적으로 해나갈 때 정진을 제대로 할 수 있습니다.

  “정진 앞에서 불가능은 없다. 물방울이 끊임없이 떨어지면 능 히 돌을 뚫는 것처럼 끊임없는 정진 앞에는 못 이룰 일이 없다. 게으름은 타락과 죄악에 이르는 문이오, 정진은 청정에 이르는 문이다. 게으름은 어지러운 마음에 이르는 문이오, 정진은 안정 된 마음에 이르는 문이다.<문수사리정을경>” 정진하다 보면 어 떤 일도 이루어집니다. 하지만 목적이 없으면 이룰 수 없습니다. 나름 목적을 세우면 그 목적을 위해 끊임없이 정진이 가능합니 다. 목적이 없으면 그냥 시간을 흘러 보내는 삶에 불과합니다. 중요한 것은 물방울이 떨어져 돌을 뚫듯이 목적을 정해두고 끊 임없이 부지런히 끝도 없이 하는 것입니다. 집중적으로 끊임없 이 하는 것입니다. 한 평생 열심히 정진하다 가야합니다. 내가 정진한다고 의식하면 모든 행동이 정진 속에 들어갑니다. 그렇 게 되면 자연스럽게 절제된 삶을 살게 됩니다. 

  정진에는 시간과 장소가 들어갑니다. 특정한 시간, 특정한 장 소에서 정진을 한다고 결심하면 실행에 옮기기 쉬워집니다. 이 렇게 해야 정진이 됩니다. 정해진 것 없이 되는대로 하다보면 꾸 준히 실천하기 힘듭니다. 정진이 안 됩니다.

  “방일. 게으름이란 모든 허물과 죄악의 바탕이다. 집에 있는 이가 게으르면 의식주가 부족하고 사업이 쇠퇴할 것이다. 출가 한 이가 게으르면 생사의 고통을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모든 좋 은 일은 정진에 의하여 일어나니 집에 있는 이가 정진하면 의식 주가 풍족해지고 사업이 번창할 것이다. 출가한 이가 정진하면 도법을 모두 성취하여 마침내는 부처의 경지에 이르리니 모두 가 정진에 의해 이루어지느니라.<보살분행장>”

  “정진의 다섯 가지. 첫째 홍서정진(弘誓精進)이란 넓게 서원 을 세워 굳게 결의하여 행하고자 하는 정진이다. 둘째 발행정 진(發行精進)이란 온갖 선심을 발해 실천으로 옮기는 정진이다. 셋째 무하정진(無下精進)이란 천하고 비열한 마음 없이 나아가 는 정진이다. 넷째 무염정진(無厭精進)이란 싫어함이 없는 마음 으로 나아가는 정진이다. 다섯째 부동정진(不動精進)이란 추위 나 더위 따위의 괴로움을 능히 이겨 흔들림이 없는 정진이다.< 대승자엄경>” 분별에서 벗어나야 이런 정진을 할 수 있습니다. 중생은 분별심이 있기 때문에 무하정진이나 무염정진이 안되 는 것입니다. 

  “용맹정진. 용맹정진하여 일체지기를 얻기 위해 37 조도법(

大乘起信論 講說 _ 485助道法)을 닦으며 악마에게 항복받는다. 보리심을 일으키며 중 생을 구제해 생사의 바다로부터 벗어나게 한다. 온갖 악도에 떨 어트리는 여러 가지 번뇌를 없애며, 무지(無智)를 무너뜨린다. 모든 부처님께 싫증을 내지 않고 공양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아 지닌다. 온갖 장애의 산을 파괴하며 중생을 교화해 완성시 킨다. 온갖 부처님의 국토를 장엄한다.<화엄경>” 여기서 말하는 내용들이 용맹정진을 하면 나타나는 것들입니다. 악마는 다른 것이 아닌 우리 속의 탐진치입니다.

  “37 조도품에는 사념처, 사정근, 사여의족, 오근, 오력, 칠각 지, 팔정도가 있다.” 37 조도품이란 불교에서 공부해야할 핵심 을 요약한 것입니다. 사념처(四捻處)는 사띠바리나로 알아차림 을 기울이는 곳이라는 뜻입니다. 신념처(身念處)에서는 몸은 깨 끗한 것이 아님을 알고, 수념처(受念處)에서는 감각작용(느낌) 은 괴로운 것임을 알고, 심념처(心念處)에서는 마음은 영원하지 않음을 알고, 법념처(法念處)에서는 모든 존재가 실체가 없음을 아는 것입니다. 무엇을 알아차려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 사념처 입니다. 신수심법에서 각각 알아차릴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사 념처를 통해 무아와 무상과 고를 알 수 있습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속성은 무아, 무상, 고인 것입니다. 사정근(四正勤)은 삼마 빠다나로 바른 노력이란 뜻입니다. 첫째 이미 지은 불선업을 다 시 짓지 않도록 빼어버리는 것이며, 둘째 아직 생기지 아니한 불 선업을 생기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셋째 생기지 아니한 선 업을 생기도록 노력하는 것이며, 넷째 이미 지은 선업을 거듭거 듭 다시 기억하여 크게 하도록 노력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노력할 것인가를 말한 것입니다. 선한 업은 증장시키고 불선한 업은 짓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바른 노력이란 불선업을 짓지 않고 선업을 짓는 것입니다. 사여의족(四如意足)은 이디빠다로 향상 하는 큰 신통이란 뜻입니다. 첫째 소원(欲)이란 이렇게 하고 싶 다고 바라는 것이며, 둘째 노력(進)이란 쉬지 않고 나아가는 것 이며, 셋째 생각(念)이란 마음에 분명히 새겨서 잊지 않는 것이 며, 넷째 지혜(慧)란 바르게 사유하고 분별하여 마음이 흐트러지 지 않는 것입니다. 쌍윳타에 나오는 네 가지 신통의 기초가 사여 의족 즉 사신족입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는 사여의족을 실천 해야 합니다. 부처님께서 법을 영원히 전하기 위해 시자로 아난 을 뽑습니다. 아난은 념(念)에 뛰어났기 때문에 뽑힌 것이었습니 다. 부처님께서 편하고자 시자를 뽑은 것이 아니라 옆에서 법을 듣고 그 법을 전하기 위해서 시자를 뽑은 것이었습니다. 그 후 25년 동안 아난은 부처님의 시자를 하면서 부처님의 법을 그대 로 기억하여 후세에 전하게 되었습니다. 오근(五根)은 인드라로 선업을 키우고 악업을 막도록 잘 다스리는 능력을 의미합니다. 지혜란 마음이 통일되어 더욱 더 지혜를 밝히는 것이며, 노력이 란 믿음을 가지고 더욱 더 노력하는 것이며, 알아차림이란 다시 돌이켜 마음에 새기는 것이며, 선정이란 마음에 새긴 지혜를 향 하여 마음이 산란하지 않도록 집중하는 것이며, 신심이란 진리 를 확신 있게 믿는 것입니다. 오력(五力)은 발라로 향상하고 번 영하기 위해 필요한 힘입니다. 건강의 힘, 지혜의 힘, 재산과 물 건의 힘, 예의와 행동 등이 좋은 것의 힘, 친구의 힘이 여기에 해 당합니다.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도에 이르는데 있어 도반이란 

大乘起信論 講說 _ 487전부 다이다.”라고 말씀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 만큼 도를 이룰 때 친구, 동료의 힘은 중요합니다. 여기서 친구는 같이 도를 닦 고 수행하는 친구, 동료를 말합니다. 혼자서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보다 일정한 시간, 장소에서 다 같이 공부하는 것이 더 낫습 니다. 칠각지(七覺支)란 보장가로 깨달음의 조건 7가지를 의미 합니다. 알아차림(念), 법을 살펴서 택함(擇法), 노력을 기울임( 正進), 기뻐함(喜), 가뿐하고 편해짐(輕安), 마음이 조용히 머묾 (定), 좋고 싫음에 기울지 않음(捨=平等)입니다. 법을 살펴서 택 함이란 선한 것인지 불선한 것인지 가리는 것입니다. 기쁜 것도 깨달음에 있어 중요합니다. 마음에서 기쁜 마음이 일어나야 공 부를 계속할 수 있습니다. 공부하는 것이 신이 나야 공부가 됩니 다. 공부가 익어가면 자연스럽게 기쁨이 넘칩니다. 마음이 가뿐 하고 편해지고 조용히 안정되게 됩니다. 고요한 바다처럼 됩니 다. 팔정도(八正道)란 여덟 가지 바른 길을 말합니다. 정견(正見) 은 바른 견해이고 정사유(正思惟)는 바른 생각이고 정어(正語)는 바른 말이고 정업(正業)은 바른 행위이고 정명(正命)은 바른 직 업이고 정정진(正精進)은 바른 노력이고 정념(正念)은 바른 알 아차림이고 정정(正定)은 바르게 마음이 머무는 것을 말합니다.  팔정도 가운데 정념과 정정은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세세생생 살아가며 정념과 정정을 하면 부처가 됩니다.

방일에는 12가지 과실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리살리성 에 계실 때 이차자에게 설법했습니다. 첫째 세상의 악한 행위를 즐겨함이오. 둘째 무익한 말을 즐겨 말함이오. 셋째 잠을 즐김 이오. 넷째 세속 일을 즐겨 말함이오. 다섯째 나쁜 벗을 가까이 함이오. 여섯째 항상 게으르고 태만함이오. 일곱째 늘 남을 경 멸함이오. 여덟째 무엇을 들으면 이내 잊음이오. 아홉째 소견이 바르지 못함이오. 열째 육근을 제어하지 못함이오. 열한번째 탐 욕의 포로가 됨이오. 열두번째 헛되이 시간을 낭비함입니다. 열 반경에 나와 있습니다. 세속 일을 말해봤자 헐뜯는 것 밖에 없 습니다. 여기서 세속 일을 즐겨 말하는 것을 방일에 넣은 것입 니다. 모두 대리만족하는 것입니다. 남을 흉보고 우월감을 느끼 며 대리만족하는 것입니다. 늘 남을 경멸하는 것은 자기만 잘났 고 남을 무시하는 행위입니다. 우리는 ‘나는 그렇지 않겠지’라 고 생각하지만 방일 속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방일. 악취에 떨어지는 일은 방일에서 생긴다. 방일의 과실 로 도(道)가 어긋나 가르침의 다리를 끊으며 선심(善心)의 씨를 깨트리며 온갖 망념(妄念)을 이끌어낸다. 게으름은 타락에 이르 는 문이며, 정진은 청정에 이르는 문이다. 게으름은 어지러운 마 음에 이르는 문이며, 정진은 안정된 마음에 이르는 문이다.<문 수사리저율경>”

정진은 결국 우리의 삶이며, 평생 살아가는 우리 삶의 모습입 니다. 모두 거룩한 모습으로 장엄하여 부처되도록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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