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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강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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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5,139회 작성일 21-07-11 23:40

본문

제7강


(3-1-1-3-3-22)  상사각을 밝히다 

이승(二乘)의 관지(觀智)와 처음 마음을 낸 보살은 생각(念)의 다 른 모양을 일으키는 바탕을 깨달아서 생각에 다른 모양이 없다 는 것을 안다. 

이는 거칠게 분별하는 집착의 바탕[麤分別執著相]을 버리는 까 닭으로 상사각(相似覺)이라 한다. 

;如二乘觀智、初發意菩薩等,覺於念異,念無異相,以捨麁 分別執著相故,名相似覺

(3-1-1-3-3-23)  수분각을 밝히다 

 법신보살(法身菩薩)은 생각의 머무는 바를 깨달아서 생각에 머 무는 모양이 없음을 안다. 분별하는 거친 모양의 생각[分別麤念 相]을 여읜 까닭으로 수분각이라 한다. 

;如法身菩薩等,覺於念住,念無住相,以離分別麁念相故, 名隨分覺

(3-1-1-3-3-24)  구경각을 밝히다 

보살지(菩薩地)가 다한 사람은 방편에 만족하여 한 생각이 상응 하여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아서 마음에 처음 모양이 없음을 안다. 

미세한 생각마저  멀리 여읜 까닭으로 마음의 성품을 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항상 머무르기에 구경각(究竟覺)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만약 어떤 중생이 무념(無念)을 관할 수 있다면  곧 불지(佛智)에 향함이 된다'고 말하였다.

;如菩薩地盡,滿足方便一念相應,覺心初起心無初相,以遠 離微細念故得見心性,心即常住,名究竟覺。是故修多羅說: 「若有眾生能觀無念者,則為向佛智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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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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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상사각을 설명하면서 나왔던 추분별집착상(麤分 別執着相)에 대한 원효 소의 내용을 살펴봅시다. 우리의 마음에 는 거친 분별과 미세한 분별이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감지 할 수 있는 것을 거친 것(麤)이라고 하고 어떤 상태라도 감지 못 하는 것을 미세한 것(細)이라고 합니다. 제8식의 움직임은 전부 미세한 움직임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알려고 해도 알 수가 없습 니다. 우리는 안, 이, 비, 설, 신과 의식의 6식으로 되어 있습니 다. 의식에는 세세생생 행위했던 모든 삶의 흔적, 업이 저장되는 저장창고 7식이 있습니다. 현재 일으키는 생각은 7식에 저장된 생각과 맞물려 일어납니다. 서구 사회에서는 ‘거짓말하는 것이 본성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것은 다름이 아니라 제7식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서구 사회의 과학, 심리학에서 다루고 있는 한계는 제7식에 그쳐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더 내려가면 제8식 아뢰야식이 있습니다. 이 세상의 진여나 각, 구경각 은 제8식의 이야기입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듯이 제8식은 제7 식의 그릇이고 물들기 전의 것입니다. 여기서 거친 것, 추(麤)라 고 이야기하는 것은 제7식 이상의 것(6식, 7식)을 말하고 7식보 다 더 밑의 것(8식)을 미세한 것, 세(細)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알려고 해도 알 수 없는 미세한 감정을 알기 위해서 끝없이 요동치는 번뇌망상을 가라앉혀야 합니다. 끝없이 가라 앉히다 보면 바닥이 나오는데 그제서야 미세한 흐름을 볼 수 있 는 것입니다. 그 미세한 흐름이 보이기 시작하는 상태를 각(覺) 이라고 합니다. 견성이 되는 것입니다. 도표를 보면 6추 3세가 있는데 6추는 6식과 7식의 이야기이고 3세는 제8식 아뢰야식 의 이야기입니다. 제8식은 우리가 죽다 깨어나도 감지 못하고 견성해야 감지하게 됩니다.

  원효 소로 돌아가봅시다. “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着相)은 역 경계와 순경계를 분별하여 탐과 진을 일으키는 것이다. 생각에 이상(異相)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이 상사각이다. 상사각은 이러 한 거친 집착상을 버리긴 했지만 아직 무분별의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상사각이라 한다.” 역경계는 부정적인 생각, 악 한 생각들이 여기에 포함되고 순경계는 긍정적인 생각, 선한 생 각들이 여기에 포함됩니다. 뭔가는 모르지만 탐욕을 일으키고 화내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우리는 일을 하면서 사람들과 만나 면서 항상 탐욕과 진심을 일으킵니다. 그것을 일으키는 것이 추 분별집착상(麤分別執着相)입니다. 말라식에 들어있는 것을 현 상적으로 나타내는 것이 추분별집착상(麤分別執着相)입니다. 

‘생각에 이상(異相)이 없다는 것을 아는 것’은 바로 다름이 없다 는 것을 안다는 말입니다. 탐심과 진심은 ‘탐진치만의견’에서도 나오고 이것은 5위 100법 번뇌심소의 6개 법입니다. 우리가 일 으키는 분별은 모두 여기에서 일어납니다. 이 6개 법이 다르게 보이지만 결국 다른 것이 없음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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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1. 본각과 시각과 불각과의 관계


  상사각은 진리를 어렴풋이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림자를 보 는 것입니다. 수분각은 흠뻑 젖은 상태이고 구경각은 완전히 흠 뻑 젖어 깨달음의 세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만약 누군가가 견 성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사각 이상의 상태인 것입니다. 그래 서 견성했다고 해도 철저하게 한 사람도 있고 60% 정도 한 사람 도 있습니다. 이는 상사각에서 불각으로 넘어가버린 것입니다. 구경각 정도가 되어야 깨달음이 끝없이 지속됩니다. 상사각이나 수분각에서는 불각으로 돌아갈 수 있습니다. 다시 소로 돌아 갑시다. 거친 집착상을 버리기는 했지만 확철하게 무분별의 깨 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에 모양만 비슷하다고 해서 상사각이 라고 합니다. 그냥 흉내만 내는 정도의 깨달음입니다.

  “사상(불각, 상사각, 수분각, 구경각)은 무명의 화합하는 힘에 의하여 심체로 하여금 생주이멸케 하는 것이다. 법신이 모든 번 뇌에 의하여 요동하게 되어 생사에 왕래함을 중생이라 이름한 다. 자성청정심이 무명풍에 의하여 움직인다.” 모든 업의 뿌리 는 무명에서 출발합니다. ‘무명에 화합했다’는 말은 무명에 의 해 물들었다는 말입니다. 우리는 무명에 의해 물들어 있기 때 문에 생주이멸하게 됩니다. 그래서 중생은 불각의 삶을 살아가 게 됩니다. 해탈하고 견성하게 되면 생주이멸에서 벗어납니다.

  원래 성성적적한 진여, 진리, 법신이 번뇌망상에 의해 요동하 게 됩니다. 요동하게 되어 생주이멸하고 생사를 왕래하게 됩니 다. 깨닫지 못한 존재들을 중생이라고 합니다. 자성청정심이 무 명의 바람에 의해 움직이는 것을 불각이라고 하고 중생의 삶이 라고 합니다.

  우리 중생은 분별을 하며 사는데 분별을 제대로 알아야 분별 을 극복할 수 있습니다. 분별에는 생삼(生三), 주사(住四), 이육 (異六), 멸칠(滅七)이 있습니다. 생삼은 업상, 전상, 현상을 분별 하는 것이고 주사는 아치, 아집, 아만, 아애를 분별하는 것입니 다. 생삼에서 모든 것이 생기고 주사에서 모든 것이 머무르고 있습니다. 이육은 탐, 진, 치, 만, 의, 견, 여섯 개입니다. 우리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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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2. 생삼, 주사, 이육, 멸칠의 구조 
 


일으키는 모든 분별의 뿌리이고 그것들의 더 깊은 뿌리는 치 즉 무명입니다. 멸칠은 없애야할 일곱 가지를 말합니다. 몸으로 짓 는 업인 살생, 투도, 사음과 입으로 짓는 죄 망어, 기어, 악구, 양 설이 있습니다.

  업상, 전상, 현상은 제8식 아뢰야식으로 무아임을 모르고 내 가 있다고 생각하는 어리석음(아치)이 생겨납니다.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고집이 생겨납니다. 그리고 아만, 아애가 생기게 되고 ‘나’는 평생 이것을 쓰고 삽니다. 이것이 제7식 말라식의 영역입 니다. 이것에 의해 나타나는 제6식의 영역에는 이육(異六)이 있 습니다. 여기까지는 아직 내 속에 있는 것이라 죄가 되지 않습니다. 탐하는 마음이 들어도 내 속에 있는 것이지만 이것이 현상으 로 나타나면 죄가 됩니다. 탐, 진, 치, 만, 의, 견 이런 생각들이 모여서 현상으로 나타나면 멸칠이 됩니다. 살생을 하고 투도를 하고 사음을 하고 망어를 하고 기어를 하고 악구를 하고 양설을 할 때 죄업이 됩니다. 나와 대상(법)이 부딪혀 나타날 때 죄업이 됩니다. 결국 아뢰야식에서 제7식에서 제6식에서 이 6식이 나 타나는 현상인 것입니다. 제일 근본적인 뿌리는 제8식인데 업 상에서 전상으로 전상에서 현상으로 전개되고 나아갑니다. 이 것들을 알면 우리 마음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생삼에 대해 자세히 살펴봅시다. 생삼이란 일으키는 바탕, 뿌 리입니다. “업상(業相)이란 무명에 의하여 불각의 망념이 움직 여 비록 생멸이 있지만 견분과 상분이 아직 나누어지지 않은 것 이다. 이는 오지 않은 생삼이 장차 곧 작용하려는 때에 이른 것 과 같다.” 불각의 망념이 움직인다는 것은 깨닫지 못한 무명이 서서히 요동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견분이란 내가 일으키는 생각이고 상분은 대상에 대한 생각입니다. 나와 대상, 주체와 객 체가 아직 분리되기 전의 것입니다. 제일 미분화된 상태의 생각 이 업상입니다. 제8식 아뢰야식이 미세하게 움직이는데 그 미세 한 움직임의 처음, 시작이 업상입니다. 임신을 할 때 아이가 생 기는 순간 머리, 손, 발이 나뉘어지기 전의 상태와 비슷합니다. 처음 형태가 생기는 그 순간입니다. 이 미세한 움직임이 조금 더 움직이면 전상(轉相)이 됩니다.

  “전상(轉相)이란 동념에 의하여 다음에 능견을 이루는 것이 다. 아직 오지 않은 생삼이 막 작용하는 때에 이른 것과 같다.” 

똑같은 생각을 일으키는 동념에 의해서 스스로 생각을 일으킬 수 있는 능견을 이루는 것입니다. 처음 움직이기 시작한 미세한 움직임이 조금 더 성숙되어서 형태를 구분할 수 있을만큼 발달 된 상태입니다. 그 다음 완벽하게 분리되어 모양을 갖출 정도가 되면 현상입니다.

  “현상(現相)이란 능견에 의하여 전상을 나타내는 것이다. 아 직 오지 않은 생상이 현재시에 이른 것과 같다.” 우리가 하나의 생각을 일으키면 순간 주관이 개입되는데 이것은 제7식에서 나 온 것입니다. 이 제7식이 현상에서 나옵니다. 현상이 투영된 것 이 제7식 말라식입니다. 완벽한 모양이 만들어져 그대로 투영되 는 것이 제7식이고 우리는 그것을 현재 의식으로 나타내는 것입 니다. 우리가 분별할 때 그 결정을 내리게 하는 것이 제7식인데, 제7식과 똑같이 투영되게 제8식이 생겨서 그것이 제7식을 유 발시키고 제7식에 의해 현상적으로 나타납니다. 최초의 생각이 나오고(업상) 그곳에서 불분명한 생각이 나오고(전상) 그곳에서 분명한 생각이 나옵니다(현상). 이 분명한 생각이 투영된 것이 제7식입니다. 그것을 나라고 생각하고 분별하는 것입니다. 생 삼까지는 아뢰야식의 이야기입니다.

  나에게 평생 머물고 있는 주사(住四)는 네 가지 상을 일으킵 니다. 금강경의 주 내용이 “응무소주 이생기심”입니다. 우리는 소(제7식 말라식)에 머물지 않고 생각을 일으켜야 합니다. “주 사가  넷이라 함은 무명이 생삼과 화합함에 의하여 주사를 내 는 마음에 아와 아소가 없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네 가지 상을 일으킨다. 아치, 아집(아견), 아만, 아애이고 주사는 제7식 자리에 있다.” 탐진치의 뿌리는 무명입니다. 무명에 의해서 탐진이 나타나는 것입니다. 무명에 의해 물질적인 탐욕을 일으키는 것 은 탐이고 정신적인 탐욕을 일으키는 것은 진입니다. 아와 아소 가 원래 없다는 것을 알면 견성해서 마음의 뿌리, 즉 보이지 않 는 세계를 보게 됩니다. 하지만 아와 아소가 원래 없다는 것을 모르면 네 가지 상을 일으킵니다. 그 네 가지 상이 아치, 아집, 아만, 아애입니다. 우리가 평생 ‘나’라고 생각하고 살아가는 것 이 아치, 아집, 아만, 아애입니다. 이것들이 완벽하게 소멸되려 면 보살 7지 부동지의 경지까지 가야합니다. 이 주사에 의해 우 리들은 내 것을 만들며 살아갑니다. 내 것을 만드는 것이 아치, 아집, 아만, 아애입니다. 모든 것이 같다는 일심을 알기 전에는 여기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아무리 대상을 좋아한다고 해도 자 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만 못합니다. 자신의 자식 정도라면 자신 을 사랑하는 것에 가까울 수 있습니다. 아무튼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이 세상 어느 것과 바꿀 수 없는 것입니다. 업 가운데 부모 자식의 관계는 가장 큰 업 입니다. 부부 인연은 이에 비하면 아 무것도 아닙니다. 만났다가 헤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부모 자 식 관계는 어쩔 수 없는 인연입니다. 우리는 부모에게 잘 해야 하지만 철들어 잘 하려고 하면 돌아가시고 안 계십니다. 우리는 평생 아애에 머무르는데 여기서 벗어나야 뭔가 보입니다. 아애 가 있는 한 우리는 존재하는 모든 것을 객관적으로 볼 수 없습니 다. 그 속에 갇혀 있으니까 자기만 잘되면 되고 자기 자식만 잘 되면 되는 것입니다. 전부 자기 것에 머물러 버립니다. 그것을 깨트려 버리면 이 세상의 모든 것이 하나가 됩니다. 발을 딛고 있는 바닥 밑의 뿌리를 보면 하나인데 바닥 밑으로 못 내려갑니 다. 바닥 위의 자기 모습만 보니까 평생 자기 자신만 위하고 자 기 자신만 사랑합니다. 우리가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은 객관적 이고 본질적인 마음을 보기 위해서입니다. 나는 소중합니다. 하 지만 내가 소중한 만큼 세상 모든 것이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일심입니다. 그것이 끝없는 긍정적인 마음이 됩니다. 자기 자신에게 너그럽고 긍정적이듯이 세상 모든 것에 똑같은 마음을 일으켜야 합니다. 견성하면 주사에서 벗어날 수 있습니 다. 견성하면 상대방을 위하는 마음 밖에 없습니다. 때문에 어 떤 행위를 하더라도 상대방을 이롭게 하는 행위가 됩니다. 견성 하지 못한 사람은 나를 이롭게 하기 위해 어떤 행위든 합니다. 거짓말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아치(我癡)는 생멸의 과정에서 멸하고 새로 생할 때 원래 무 아인데 제8식 종자에서 새 생명이 형성될 때 그것을 자신이라 고 착각하는 것입니다. 아치는 나에 대한 어리석음입니다. 무아 인 것을 무아로 보지 못하고 아로 보는 그 마음입니다. 이것 때 문에 아집, 아만, 아애가 생깁니다. 아집(아견)은 없는데 있다고 집착하는 것이고, 아만은 자신만이 최고이며 항상 맞다고 생각 하는 것이고, 아애는 자신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왜 화 내고 싸웁니까? ‘내가 맞는데 왜 자꾸 엉뚱한 소리를 하느냐?’ 이런 생각 때문입니다. 상대방이 맞다고 인정하면 화 날 이유가 없습니다. 우리는 상대방에게 100% 동조, 동의하는 경우는 거 의 없습니다.

  “이육(異六), 이상(異相)이 여섯이라 함은 무명이 주상과 화합하여 계탁하는 바의 아와 아소가 공함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이 로 말미암아 여섯 가지의 이상을 일으킨다. 탐(탐욕), 진(진에), 치(무명), 만(자만), 의(의심), 견(악견)이다.” 이육이란 말 그대 로 다른 것 여섯 개입니다. 계탁(計度)이란 의식의 작용으로 여 러 사물을 잘 헤아려 분별하는 것을 말합니다. 원래 진리를 바로 보면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공(空)합니다. 하지만 아와 아소가 공 함을 모르기 때문에 여섯 가지 다른 모양이 생깁니다.

  이육의 여섯 가지를 간단하게 봅시다. “탐(貪)은 raga로 생사 윤회하고 있는 자신과 자신이 존재하는데 필요한 도구나 사물 에 대하여 탐하고 집착하는 마음이다.” 탐은 물질적인 것을 탐 하는 것입니다. “진(瞋)은 pratigha로 사람이나 생물에 대해 화 내는 마음이다.” 정신적인 것을 탐하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이 진입니다. “만(慢)은 mana로 자신의 마음이나 신체를 응시 하여 이것은 ‘자기(아)’이며 이것은 ‘자기에게 속한 것(아소)’이 라고 생각하며, 자신은 타인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오만불 손한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 때문에 우리는 상대방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살면서 상대방을 인정하면 평화가 유지됩니다. 끝없 이 자기 자신이 맞고 상대방은 틀린다고 생각합니다. “치(癡) 무 명(無明)은 진실, 진리를 알지 못하는 마음이다.” 12연기의 시 작이 무명으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세상이 벌어지는 첫 출발점 이 무명입니다. “견(見)은 drsti로 그릇된 견해이다. 유신견, 변 집견, 사견이다.” 유신견은 내가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변집 견은 내가 있는 것이 영원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사견은 잘못 된 생각으로 인과응보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의(疑)는 vicikitsa로 연기와 사제 등에 의심을 품는 마음이다. 선한 행위 를 하면 선한 결과가 오고 악한 행위를 하면 악한 결과가 온다는 인과응보에 의심을 품는 마음이다.” 이러한 마음들이 우리의 삶 을 물들게 하고 갉아먹는 잘못된 여섯 가지입니다.

  멸칠(滅七)로 넘어가봅시다. 거짓말은 이 가운데 망어에 속합 니다. 멸칠에서는 나타나는 하나의 현상을 보는 것으로 다른 것 도 다 똑같습니다. “멸상이 일곱이라 함은 무명이 이상(異相)과 화합하여 바깥 경계의 위, 순의 성격을 떠난 것임을 알지 못하 기 때문에 이로 말미암아 신삼구사(身三口四)의 일곱 가지의 멸 상을 일으킨다. 신(身)에는 살생, 투도, 사음이 있고 구(口)에는 망어, 기어, 악구, 양설이 있다.” 이것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여섯 가지 이상(異相)에 의해서 우리의 삶에 나타나는 일곱 가지 입니다. 우리는 다른 생명을 해치지 않았다고 해서 살생하지 않 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깨치지 못한 것은 자기 자신을 해치 는 것이기 때문에 이것도 살생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첫째 살생 입니다. 진여로 나아가지 않는 것도 살생인 것입니다. 그래서 살 생이란 나 자신이나 다른 생명을 죽이는 것입니다. 우리는 살생 만 하지 않아도 나머지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습니다. 내가 공부, 수행을 해서 잘 살아야겠다고 생각하면 나머지도 쉽게 따라서 해결됩니다. 그것이 안 되기 때문에 전부 해결이 잘 안됩니다.

  “수분각을 밝히다. 법신보살(法身菩薩)은 생각의 머무는 바를 깨달아서 생각에 머무는 모양이 없음을 안다. 분별추념상(分別 麤念相)은 분별하는 거친 모양의 생각을 여읜 까닭으로 수분각이라 한다.” 상사각은 겨우 꼬리 정도라면 수분각은 몸까지 깊 이 물들어 있는 것입니다. 60, 70% 견성한 것이 수분각입니다. 100%가 되면 구경각이 됩니다. 나는 자신(自身)이고 나 이외의 대상은 법신(法身)입니다. 나의 본래 성품은 자성(自性)이고 존 재하는 모든 것의 성품은 법성(法性)입니다. 이것을 통틀어 불성 (佛性)이라고 합니다. 나는 법에 포함되기 때문에 불성이 곧 법 성입니다.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은 거친 생각의 모양을 분별 하는 것입니다. 이 내용을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분별추념상( 分別麤念相)이 무엇인가 살펴봅시다.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이란 인과 아의 집착을 분별하는 것 이다. 무분별지와 상응하여 주상의 꿈으로부터 깨닫게 되어 ‘생 각의 주상을 깨달았다’고 말한다. 생각에 주상이 없다는 것은 네 가지 주상이 없어서 일어나지 않는 것이다.” 여기서 인이란 나 이외의 대상을 말합니다. 나와 대상에 집착하는 그 마음이 분별 추념상(分別麤念相)입니다. 생각의 주상이란 주사(住四)를 말합 니다. 생각의 주상을 깨달은 것이 분별추념상(分別麤念相)입니 다. 우리가 견성을 하고 보살지에 들어가면 아집, 아만, 아애, 아 치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네 가지 주상이 없어서 일어나지 않 는 것이다.’는 말은 주사가 깨트려져 없기 때문에 생각이 일어나 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나를 위한 생각이 일어나지 않는 것입니 다. 이런 생각이 통째로 물든 것이 구경각입니다.

  “구경각을 밝히다. 보살지(菩薩地)가 다한 사람은 방편에 만 족하여 한 생각이 상응하여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아서 마음에 처음 모양이 없음을 안다. 미세한 생각마저 멀리 여 읜 까닭으로 마음의 성품을 볼 수 있게 되어 마음이 항상 머무 르기에 구경각(究竟覺)이라 말한다. 그러므로 경에서 ‘만약 어 떤 중생이 무념(無念)을 관할 수 있다면 곧 불지(佛智)에 향함이 된다.’고 말하였다.” 보살은 초지보살부터 십지보살까지 있습니 다. 십지보살까지 가면 구경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살 지가 다한 사람’은 십지보살까지 간 사람을 말합니다. ‘방편에 만족하여 한 생각이 상응하여 마음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깨달 아서 마음에 처음 모양이 없음을 안다.’는 말은 바로 무분별지 를 말합니다. 분별지를 넘어선 무분별지가 된 상태가 구경각입 니다. 항상 생각이 깨어있는 상태입니다. 여기서 미세한 생각이 처음 나옵니다. 구경각 앞은 추(麤), 거친 생각으로 제7식 말라 식에서 깨치는 것까지 해당합니다. 구경각까지 가야 제8식 아 뢰야식에서 깨쳐 미세한 생각에 닿을 수 있습니다. 구경각은 미 세한 생각마저 여의었기 때문에 무념무상이 될 수 있습니다. 제 7식에서 깨우치면 이상(異相)이 없고 제8식에서 깨우치면 생각 마저 없게 됩니다. 첫 생각(처음 일어나는 생각), 뿌리를 보게 되 면 모양이 없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것이 무분별지이고 그 상태 가 무념입니다. 초기 불교에 나오는 사마타라는 말은 집중한다 는 뜻이고 생각을 모으는 것입니다. 생각을 모으면 거친 생각을 가라앉히고 미세한 생각까지 볼 수 있습니다. 그런 집중이 끝없 이 이어지면 선정에 들 수 있는데 그 선정에 든 상태가 무념에 든 것입니다. 선정이 바로 생각이 처음 일어나는 것을 보게 되 는 것입니다. 근본 무명을 타파한다는 말이 바로 처음 일어나는 생각의 모양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견성했다, 깨달았다고 할 때 무엇을 깨달아야 견성이 되고 견성의 단계가 어떤 단계가 있는지 살펴 보았습니다. 상 사각, 수분각, 구경각을 살펴보면 우리 마음의 상태를 통해 어 느 단계에 와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견성을 했는데 시간이 지 나니까 아니더라고 하는 사람은 상사각의 단계입니다. 한결같 이 견성한 상태로 있는 것은 구경각의 단계입니다. 우리도 공부 하다보면 간혹 깨칩니다. 불각의 상태지만 순간적으로 공부했 던 힘이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순간적으로 무념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견성을 한 뒤에 보림을 한다고 합니다. 한국에서 견성한 수많 은 사람들이 단명하는 이유가 구경각을 한 것이 아니라 상사각 이나 수분각에서 끝나버렸기 때문입니다. 견성을 한 후에도 더 욱 수행을 해서(보림) 구경각까지 가야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견 성했다고 소문이 나면 우루루 몰려가서 계속 수행할 기회를 주 지 않습니다. 가만두면 구경각까지 갈 수 있을텐데 가만두지를 않으니 공부가 쉽게 끝나버리는 것입니다. 사실 스님들의 법문 을 들어보고 1년 후, 10년 후에도 그 말에 그 내용 밖에 없습니 다. 부처님의 경전과 깨달음은 무궁무진합니다. 여러 가지로 다 양하게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불각인데 공부하여 시각의 상태로 넘어가 고 이 시각이 구경각의 단계까지 가면 본각이 됩니다. 이것이 진 여입니다. 여기서는 그 때 마음 상태를 설명해놓았기 때문에 어 떤 공부를 하든지 간에 공부 단계는 여기에 준합니다. 지금까지는 불각, 시각, 본각의 관계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머리 식히면서 한번 보기_오대산 노스님의 인과 이야기

  이 책의 주인공 묘법스님은 1914년에 태어나셔서 2004년에 돌아가신 중국 사람입니다. 수 년 동안 중국 오대산에서 폐관수 행을 해서 숙명통이 열립니다. 숙명통은 견성하면 열리는 부처 의 여섯 가지 신통 중 하나입니다. 숙명통이란 수많은 전생을 다 아는 것입니다.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의 전생도 다 압니 다. 그래서 스님이 다른 사람을 보면 그 사람의 전생, 과거 행위 들을 다 압니다. 묘법스님의 제자 가운데 과경이란 사람이 있었 습니다. 오대산 노스님이란 책은 과경이 묘법스님 옆에서 들었 던 이야기를 기록해서 책으로 낸 것입니다. 이 책의 일부를 살 펴봅시다. “병의 원인은 무엇인가. 병은 입으로부터 온다. 나는 불경을 보고 난 후 사람들이 병에 걸리는 진정한 원인을 비로소 알게 되었다. 그 후 실생활 속에서 수차례 검증하여 알게 되었 다. 탐, 진, 치가 병의 원인이다.” 이 내용과 관련된 묘법스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장씨라는 농민이 폐암에 걸려 묘법스님을 찾 아왔습니다. 그래서 묘법스님이 장씨의 아내에게 말씀하셨습니 다. “병자는 살생의 업이 매우 중합니다. 더욱이 닭을 죽인 업이 매우 많습니다. 맞습니까?” 장씨의 아내가 말했습니다. “제 남 편은 요리하는 것을 좋아하여 마을의 경조사 때 요리사로 초빙 되어 수십 마리의 닭을 잡아 요리를 했습니다.” 묘법스님이 말 씀하셨습니다. “당신들은 다른 집의 큰 수탉을 훔쳐 잡아먹은 일이 있지요? 이 수탉은 목 위 털이 황금색이고 몸의 털은 갈홍색이며, 꼬리는 흑녹색으로 빛이 나는 닭입니다.” 이렇게 말하 자 장씨 부부가 맞다고 합니다. 이 왕닭을 잡아먹은 업이 다른 닭들을 잡은 것보다 더 큰 업이 된 것이었습니다. 전쟁은 쫄병 이 수만 명 있어도 대장만 잡으면 전쟁이 끝나버립니다. 그만큼 대장의 존재는 큽니다. 그래서 폐암에 걸린 것이었습니다. 스님 은 장씨에게 지장경을 열심히 독송하라고 말해주었고 장씨는 고통스럽지 않고 편안하게 임종을 맞이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다른 이야기도 있습니다. 어느 날 50살 쯤 되어 보이는 신사 가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스님은 그 사람을 보고 “당신 허리가 아파 오셨군요?”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 남자가 말합니다. “스님은 정말로 신통하십니다. 제가 말씀 드리기 전에 아시는군 요.” 그 남자는 허리가 아파 특수 제작된 15cm 넓이의 허리 보 호대를 차고 있었습니다. 10년 동안 병원을 다녔고 백약을 써봤 으나 무효했습니다. 스님은 남자를 보고 이렇게 말합니다. “허 리가 아픈 것 외에 무거운 느낌이 들지 않습니까?” “스님 맞습니 다. 마치 허리를 무거운 물건이 누르는 것 같습니다.” 이 남자는 알고보니 큰 주물공장의 공장장이었습니다. 평사원에서 시작해 서 공장장까지 올라간 정말 능력있고 성실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남자가 어느 날부터 공장에서 자신이 주물한 물건을 집에 가져오기 시작했습니다. 스님은 그 사실을 꿰뚫어보시고 “ 공장에 있는 것은 당신 집에 다 있구먼!”이라고 말합니다. 스님 은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당신이 한 짓은 도둑질이다. 당신이 생각하고 만들어낸 물건들이지만 결국은 공장, 회사의 것이다. 당신이 허리가 아픈 것은 훔쳐온 물건 때문이다. 당신의 병이 낫고 낫지 않는 것은 당신 자신에게 달려있다.” 그 말을 듣고 신사 는 말합니다. “스님 오늘부터 저는 담배를 피우고 술을 마시고 고기를 먹는 것을 끊겠습니다. 또한 공장의 조그마한 물건도 탐 내지 않겠습니다. 참회합니다. 매일 불경을 보겠습니다.” 이 신 사는 다른 탐심이 있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물건이 예쁘고 마음 이 들어서 가져온 것인데 그것이 수십 년 누적이 되니까 트럭 몇 대의 양이 된 것입니다. 신사는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불경을 보 았는데 결국 병이 점점 나아져서 완쾌되었습니다.

  또 다른 이야기를 봅시다. 어느 날 마흔이 넘는 여인이 남편 과 함께 스님을 찾아왔습니다. 여인이 스님에게 문제를 말합니 다. “저는 어두워지면 무서워 방에서 나가지 못합니다. 어두운 곳을 보면 모골이 송연해지고 무섭기 때문입니다.” 스님은 여인 에게 전생 이야기를 해주십니다. “당신은 전생에 남자였는데 가 난하여 등불을 켤 기름이 없어서 마을에서 행인들을 위해 마을 입구에 켜놓은 등불의 기름을 훔쳐가곤 했다. 그래서 마을 입구 의 등불은 꺼지게 되었고 밤에 다니는 사람들은 공포를 느끼게 되었다.” 이 과보로 여인은 어둠 공포증을 느끼게 된 것이었습 니다. 전생에 기름을 훔친 것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공포를 느낀 것에 대한 과보를 받은 것이었습니다. 스님은 여인에게 자비도 량 참법을 하라고 말해줍니다. 이 자비도량 참법은 우리나라에 서도 합니다. 자비도량 참법은 중국에서 넘어온 것인데 우리나 라에서는 분량을 줄여 일부분만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공부를 하면 숙명통이 열리는 것처럼 불로소득이 생 깁니다. 견성성불을 하면 여섯 가지 신통이 생깁니다. 오대산 노스님이 전생을 보면서 현생의 병을 고쳐준 사례들을 보았습니 다. 과거를 알면 현재를 수정하기 쉽습니다. 내 병의 원인을 알 면 처방전을 낼 수 있고 그 처방전에 따라 약을 복용하면 병은 낫게 됩니다. 전생 자체는 크게 중요하지 않지만 내가 전생을 한 번 보면 믿음이 생깁니다. 아무리 설명을 해도 100% 신뢰할 수 없습니다. 정말 대단한 사람들은 경전을 보면 그대로 100% 믿 어 버립니다. 알면 믿음이 오듯이 전생을 보면 이 생에서 일어 나는 모든 삶을 알게되어 100% 믿음이 생깁니다. 그 순간 내 생 각이 180도 바뀔 수 밖에 없습니다. 일심이 되면 세상을 보는 눈과 받아들이는 마음이 달라집니다. “나의 전생은 무엇이었을 까?” 생각해보면 어렴풋이 보이기도 하고 알 수도 있습니다. 공 부를 하면 여섯 가지 신통과 같은 큰 이득이 많은데 공부를 잘 안 합니다. 열심히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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