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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 훈습의 모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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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318회 작성일 21-07-12 1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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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강


(3-1-1-3-5-3) 훈습의 모양을 자세히 설하다 

(3-1-1-3-5-31) 염훈습을 밝히다 

[진제46] 어떻게 훈습하여 염법(染法)을 일으켜 끊어지질 않는 가? 이른바 진여법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無明染法)의 원인(因)이 있는 까닭으로 곧 진여를 훈습 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망심이 있어서 곧 무명을 훈습하고 진여법을 요달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의 생각 이 일어나서 망경계를 나타낸다. 

망경계의 염법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곧 망심을 훈습하여 집 착하게 되고 여러 가지 업을 지어 일체 몸과 마음의 괴로움을 받 게 된다. 

云何熏習起染法不斷?所謂以依真如法故有於無明,以有無明 染法因故即熏習真如;以熏習故則有妄心,以有妄心即熏習 無明。不了真如法故,不覺念起現妄境界。以有妄境界染法緣 故,即熏習妄心,令其念著造種種業,受於一切身心等苦。 

(3-1-1-3-5-32) 망경계훈습을 밝히다 

이 망경계 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증장념훈습(增長 念熏習)이니, 망녕된 생각을 조장하는 훈습이며, 둘째는 증장취 훈습(增長取熏習)이니 집착심을 조장하는 훈습이다.  

此妄境界熏習義則有二種。云何為二?一者、增長念熏習,二者、增長取熏習。

(3-1-1-3-5-33) 망심훈습을 밝히다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 업식근본훈습( 業識根 本熏習)이니, 능히 아라한과 벽지불과 일체보살이 생멸의 괴로 움을 받는 까닭이며, 둘째는 증장분별사식훈습(增長分別事識熏 習)이니, 능히 범부가 업에 매여 괴로움을 받는 까닭이다. 妄心熏習義則有二種。云何為二?一者業識根本熏習,能受 阿羅漢、辟支佛、一切菩薩生滅苦故。二者、增長分別事識熏 習,能受凡夫業繫苦故。

(3-1-1-3-5-34) 무명훈습을 밝히다 

무명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째는 근본훈습이니, 능히 업식을 성취하는 뜻이며, 둘째는 소기견애훈습(所起見愛熏習) 이니, 능히 분별사식을 성취하는 뜻이다. 

無明熏習義有二種。云何為二?一者、根本熏習,以能成就業 識義故。二者、所起見愛熏習,以能成就分別事識義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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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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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했던 훈습의 모양들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염훈습은 오염된 쪽으로 훈습되는 것으로 무명과 관련이 있습 니다. 정훈습은 오염되지 않는 맑은 훈습입니다. 이것은 진여 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염훈습의 망경계훈습은 전5식과 6식에 서 일어나는 훈습이고 망심훈습과 무명훈습은 제7식과 제8식 에 관계되는 훈습입니다. 망심훈습 가운데 업식근본훈습은 제 8식과 관계된 것이고 증장분별사식훈습은 제7식과 관계된 것 입니다. 무명훈습의 근본훈습은 업식근본훈습과 관계되고 소기 견애훈습은 증장분별사식훈습과 관계됩니다. 우리가 견성하고 깨우친 후 진여만 있을 때는 진여에만 물이 드는데 이것이 진여 훈습입니다. 이 가운데 자체상훈습은 체와 상을 훈습하는 것이 고, 용훈습은 작용, 용에 훈습하는 것입니다. 정훈습에는 진여 훈습 이외에 망심훈습이 있는데 이 안에는 분별사식훈습과 의 훈습이 있습니다. 망심훈습은 무명에서 진여로 오는 과정에서 일어납니다.

  “염훈습을 밝히다. 어떻게 훈습하여 염법(染法)을 일으켜 끊 어지질 않는가? 진여법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무명염 법(無明染法)의 원인(因)이 있는 까닭으로 곧 진여를 훈습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평생 우리는 중생의 모 습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오염된 제7식이 끊임 없이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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견성한다. 본래 성품(야뢰야식)을 본다. 

보니 안다. 알면 그 길로 다니면 길이 난다. 

도인들은 그 길로만 다닌다.

무명의 상태는 말라식을 통하여 보지만, 견성한 상태는 아뢰야식과 

직접 통하여 본다.

그림5. 무명과 견성일때 생각을 일으키는 구조



  원래 진여였던 것이 무명에 의해 오염이 일어나고 그 무명에 의해서 제7식이 끊임없이 일어납니다. 이 무명은 방향이 없는 것인데 우리는 위빠사나를 통해 방향이 있는 정사유로 돌릴 수 있습니다. 그를 통해 무명을 소멸시킬 수 있습니다.

  “‘진여법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무명염법(無明染 法)의 원인(因)이 있는 까닭으로 곧 진여를 훈습하며’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진여법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이 있고’ 라는 것은 능훈과 소훈의 체를 나타낸 것입니다. ‘무명염법(無明染法)의 원인(因) 이 있는 까닭으로 곧 진여를 훈습하며’ 는 근본무명의 훈습입니 다.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는 말은 무명의 훈습 에 의하여 업식심이 있는 것이며, 망심으로 무명을 훈습하여 요 달하지 못함을 증가시키기 때문에 전식과 현식 등을 이루며, 불 각하여 망념이 일어나 망경계를 나타낸 것입니다. 이것은 앞의 구절을 구체적으로 설명한 것입니다. 제8 아뢰야식이 업식, 전 식, 현식으로 나누어집니다. 유식에서는 능훈과 소훈으로 나누 고 있습니다. 능은 주체이고 소는 객체, 대상입니다. 제8 아뢰야 식의 능훈인 뿌리가 소훈으로 나아가면서 제7 말라식이 일어나 게 됩니다. 이것이 능훈과 소훈의 체를 나타냅니다. 

  ‘근본무명의 훈습이다.’ 근본적으로 방향성이 없이 툭 일어나 는 부정사유가 무명의 출발입니다. 이런 생각이 무명의 숲을 만 들고 우리 의식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누 적된 삶의 흔적이 제7 말라식으로 저장된 채로 한 평생 살아갑 니다. 그 다음 ‘훈습하기 때문에 곧 망심이 있게 된다.’ 요달하지 못한다는 말은 곧 견성하고 깨닫지 못한다는 말입니다. 근본 업 식이 전식과 현식으로 나아갑니다. 불각하면 망령된 생각이 일 어나는데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생각이 망경계를 나타냅니다. 깨닫지 못한 상태에서 일어나는 모든 분별, 생각은 모두 망경계 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생각은 망경계에 속합 니다. 이런 상태에서 살아간다면 무명만 축적되어 번뇌망상만 커지게 됩니다. 이것이 망경계, 망심이고 깊이 들어가면 전식과 현식이고 그것들의 뿌리는 업식입니다. 무명에 의해 망경계를 일으킨다면 망심에 저장됩니다. 이것이 바로 무명의 상태입니 다. 무명과 망경계, 망심은 순환하는 것입니다. 

  “염훈습. 망심이 있어서 곧 무명을 훈습하고 진여법을 요달 하지 못하기 때문에 불각의 생각이 일어나서 망경계를 나타낸 다. 망경계의 염법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곧 망심을 훈습하여 집착하게 되고 여러 가지 업을 지어 일체 몸과 마음의 괴로움 을 받게 된다.”

  결국 중생이 살아가는 삶이 근본적으로 고(苦)인 이유는 무 명, 망경계, 망심이 누적되어 몸을 만들고 나의 삶을 살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알고 타파하면 락(樂)이 되는 것입 니다. 극락은 낙(樂)이 극에 달한 것입니다. 열반적정에 다다라 제7식이 깨지면 극락이 됩니다. 무지와 아집을 타파하고 해탈 과 편안함을 얻는 것이 열반적정이고 자유의 길인 것입니다. 대 승기신론에서는 이런 깨달음의 세계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있으며 우리 삶에서 피어난 꽃임을 말하고 있습니 다. 일심이라는 하나의 그림 속에 들어있는 모두가 진여를 피워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삶 속에서 가장 소중한 것은 지 금 이 순간입니다. 

  “사념처. 신이란 움직이는 발 끝에 생각을 모으는 것이고 수 는 일어나는 느낌에 생각을 모으는 것이고 심이란 분별심을 일 으키는 생각에 생각을 모으는 것이고 법이란 대상을 보고 객관 적으로 보는데 생각을 모으는 것이다.” 신은 내 몸이고 수는 느 낌, 감정이고 심은 일으키는 모든 분별이 있는 마음입니다. 법 이란 대상, 존재하는 모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신수심법 을 제대로 관찰하라고 하셨습니다. 신이란 걸으면서 마음 알아 차리기 운동입니다. 우리 몸에 대해서 어떻게 하느냐를 말한 것 입니다. 그 후에 일어나는 느낌에 생각을 모읍니다. 예를 들어 어떤 괴로운 생각이 있다고 합시다. 그 괴로운 생각을 따라가 보 면 그 끝이 무엇인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러면 괴로움이 없어집 니다. 그 다음 분별심을 일으키는 생각에 생각을 모아 무엇 때 문에 분별을 일으키는가를 생각합니다. 그 끝에 도달하게 되면 편안한 상태가 됩니다. 그 후 대상을 주관이 아닌 객관으로 볼 수 있는 힘을 기르면 대상을 탓하지 않고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 을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존재하는 모든 것을 있는 그대 로 볼 수 있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을 하게 되면 일체의 몸과 마 음의 괴로움을 받게 되는 망심훈습을 느끼게 됩니다. 느끼고 알 아차리면 차단됩니다. 그렇게 되면 염훈습에서 정훈습으로 넘 어가게 됩니다.


  “망경계훈습을 밝히다. 망경계훈습에는 두 가지 뜻이 있다. 

첫째는 증장념훈습(增長念熏習)이니 망년된 생각을 조장하는 훈 습이며, 둘째는 증장취훈습(增長取熏習)이니 집착심을 조장하 는 훈습이다.” 뿌리가 오염되어 생각이 일어나기 때문에 계속 망녕된 생각이 조장됩니다. 우리는 어떤 대상과 부딪혀 경계를 일으켜 끊임없는 망녕된 생각과 집착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물 들어 있는 오염된 것에서 생각을 끄집어내어 쓰기 때문입니다. 만약 뿌리가 진여라면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뿌리가 제 7 말라식이면 오염된 것이기 때문에 물들어 있는 것에서 일어나 망녕된 생각이나 집착심이 더 조장됩니다. 그래서 내가 알아차 리지 못하면 끝도 없는 번뇌망상과 집착 속에서 한 생을 살다 갑 니다. 망경계훈습을 통해서 이러한 것이 더 증장됩니다.

  증장념이란 망경계에 의하여 분별사식 중 법집분별념을 증장 하는 것입니다. 증장취는 사취의 번뇌장을 증장하는 것입니다. 사취는 삼계의 번뇌를 네 가지로 나눈 것입니다. 욕취, 견취, 계 금취, 아어취입니다. 욕취란 욕계에서 오욕의 경계에 대하여 일 으키는 탐집입니다. 견취는 잘못된 견해를 진실이라고 집취하 는 것입니다. 계금취는 바른 계행이 아닌 것을 바른 계행이라고 집취하는 것입니다. 아어취는 색계, 무색계의 각각 16개의 견혹 과 3개의 수혹입니다. 염(念)이란 생각하는 것이고 취(取)는 내 가 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애욕 다음 취가 옵니다. 법집분별 념이란 끝도 없이 일어나는 분별념입니다. 취에는 네 가지가 있 습니다. 여기서 욕취, 견취, 계금취는 욕계에서 일어나는 것이 고 아어취는 색계, 무색계에서 일어나는 것입니다. 아어취는 색 계, 무색계에서 일어나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망심훈습을 밝히다. 망심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째는 업식근본훈습(業識根本熏習)으로 능히 아라한과 벽지불과 일체 보살이 생멸의 괴로움을 받는 까닭이며, 둘째 증장분별사 식훈습(增長分別事識熏習)으로 능히 범부가 업에 매여 괴로움을 받는 까닭이다.” 그래서 우리 범부, 중생이 받는 것은 증장분별 사식훈습입니다. 분별사식은 바로 제7 말라식입니다. 제7 말라 식에 끝없이 훈습되는 것이 우리 범부들입니다. 업식근본훈습 의 업식은 제8 아뢰야식 안에 있는 그 업식입니다. 그러므로 업 식근본훈습은 제8 아뢰야식의 작용입니다. 우리보다 한 단계 뛰 어난 아라한, 벽지불, 일체보살이 받습니다. 나름 견성한 사람 들이 받는 것입니다. 업식근본훈습은 제8식에 훈습하는 것이고 증장분별사식훈습은 제7식에 훈습하는 것입니다. 그래도 아직 여기에는 생멸의 괴로움은 받습니다. 견성은 했지만 생멸의 괴 로움은 아직 있는 것입니다. 완벽한 부처의 경지에 다다르지 못 했다는 것입니다.

  “업식근본훈습은 업식으로 무명을 훈습하여 상이 없는 것을 모르고 전상과 현상을 일으켜 상속하는 것이니, 삼승인이 삼계 를 벗어날 때 사식의 분단추고(분단 생사에서 받는 거친 고통)는 여의었으나 번역생사(삼계의 상사는 여의었으나 성불하기 까지 받는 삼계 밖의 생사)의 아뢰야 행고는 받기 때문에 삼승의 생멸 고를 받는다고 한다. 증장분별사식훈습은 범부의 지위에서 받 는 분단고를 말한다.” 분단추고의 추는 거친 것으로 제7식 이전 의 것 전5식, 6식, 제7식에 작용합니다. 번역생사는 적어도 추를 넘어선 세의 영역입니다. 삼승인은 보살, 성문, 연각입니다. 나름 공부에서 어느 단계 이상 간 수행자들입니다. 이 수행자들 이 삼계를 벗어날 때 거친 고통은 여읩니다. 하지만 번역생사, 미세한 고통은 받습니다. 때문에 삼승의 생멸고를 받는다고 합 니다. 완전한 부처가 못되기 때문에 삼승도 생멸의 괴로움을 받 습니다. 증장분별사식훈습은 우리 범부들이 받는, 제7 말라식 에 끝도 없이 훈습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해서 부처의 단계 까지 못가면 업식근본훈습을 하게 됩니다. 미세한 고통까지 소 멸되어야 비로소 부처의 단계까지 갈 수 있습니다. 처음에 아뢰 야식을 볼 때 보일까말까 합니다. 하지만 제7 말라식이 소멸되 고 제8식이 덩그렇게 남겨져 소멸되어야 부처가 됩니다. 미세 한 길이 남겨지면 초지보살의 단계입니다. 그 미세한 길이 점점 커져 부처의 단계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무명훈습을 밝히다. 무명훈습의 뜻에 두 가지가 있으니, 첫 째는 근본훈습이니, 능히 업식을 성취하는 뜻이며, 둘째는 소기 견애훈습(所起見愛熏習)이니, 능히 분별사식을 성취하는 뜻이 다.” 업식은 제8 아뢰야식입니다. 분별사식은 제7 말라식을 말 합니다. 말라식에 작용하는 것이 소기견애훈습인 것입니다. 근 본무명훈습이 안으로 들어오면 근본 업식을 훈습하고 밖으로 나가면 제7 말라식을 훈습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망심훈 습, 망경계훈습으로 다 설명할 수 있습니다. 아니면 망경계훈습 과 무명훈습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무명훈습과 망심훈습은 중복되는데, 망심훈습을 근본무명에서 파생되는 것으로 이해하 면 됩니다. 근본무명을 둘로 나눈 것입니다.

  “근본훈습은 근본불각이다. 소기견애훈습은 무명에서 일어 난 의식의 견해이며, 지말불각이다.” 근본불각이 깨트려져야 부 처가 됩니다. 그래서 ‘이뭣꼬’ 즉 이 몸 받기 전에는 무엇이었는 가라는 화두를 들고 본질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무명을 깨트리 면 본래 성품이 보이는 것입니다. 소기견애훈습은 근본훈습에 서 파생된 지말불각입니다. 여기까지가 염훈습의 내용입니다.



  *머리 식히면서 한번 보기


  오늘은 108번뇌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절을 할 때도 108 배를 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108번뇌를 정확하게는 모릅니다. 불교사전에는 이렇게 나와있습니다. “첫번째 경우는 6근(안이 비설신의)이 6경(색성향미촉법)을 대상으로 각각 호(好), 오(惡), 평(平-좋지도 않고 나쁘지도 않고)에다 과거, 현재, 미래가 더해 진 것이다.(12x3x3=108) 두 번째 경우는 6근에 고(苦), 락(樂), 사(舍)를 더한 것(18개)과 6근에 호, 오, 평(18개)을 더한 것에 과거, 현재, 미래를 덧붙인 것이다.(18+18=36, 36x3(과거, 현 재, 미래)=108)”

  색수상행식을 봅시다. 수는 느낌입니다. 식은 분별하는 인식 입니다. 상은 느낌, 분별에 대한 형상입니다. 어떤 느낌이든지 간에 모양으로 다 저장됩니다. 우리가 느끼는 감정(수)들을 6근 으로 봅시다. 눈으로 보면 아름답고 추하고, 귀로 들으면 듣기 좋거나 듣기 싫고, 코로 냄새를 맡으면 향기롭거나 역하고, 입 으로 맛을 보면 맛있거나 맛없고, 몸으로 느끼면 쾌감이 느껴지거나 불쾌감이 느껴지고, 의식으로 분별하면 좋고 나쁩니다. 식 은 분별에서 느끼는 인식으로 고(苦), 락(樂), 사(舍)가 있습니다. 그래서 수에서 보면 6근이 전부 호오(好惡)가 있습니다. 그래서 호오 두 개에 고, 락, 사를 곱하고 여기에다 6근(안이비설신의) 를 곱하고 과거, 현재, 미래를 곱하는 것입니다.(2x3x6x3) 이 렇게 108번뇌가 됩니다.

  수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수는 알아차림이 되기도 합니다. 눈 이 형상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눈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귀가 소리와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귀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코가 냄새와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코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혀가 맛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혀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몸이 감 촉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몸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 납니다. 마음이 마음의 대상과 접촉하여 아는 마음이 일어날 때 마음에 의지한 느낌이 일어납니다. 이렇게 수(느낌)가 일어납니 다. 수에는 경계가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만 있습니다. 그래서 108번뇌를 계산할 때 호오평에서 평을 뺀 것입니다.

  108배를 하는 이유는 내가 일으킬 수 있는 모든 번뇌를 소 멸시켜 청정법신, 열반적정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그렇기 때 문에 절은 많이 할 수록 좋습니다. 절을 하면서 내 업이 닦이고 식이 맑아지면 불가능할 것 같은 일들이 보이거나 일어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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