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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강 지계문의 수행을 밝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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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6,402회 작성일 21-07-12 1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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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7강


(4-3-2) 지계문의 수행을 밝히다

어떻게 지계문(戒門)을 수행하는가? 云何修行戒門?

(4-3-2-1) 십악을 멀리하다

(4-3-2-1-1) 몸으로 짓는 업을 삼가다

이른 바 살생하지 않고, 도적질 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는다. 所謂不殺、不盜、不婬、

(4-3-2-1-2) 입으로 짓는 업을 삼가다

두 말(兩舌)을 하지 않으며, 악한 말[惡口]을 하지 않으며, 거짓말 하지 않으며, 기어(綺語)를 하지 않는다.

不兩舌、不惡口、不妄言、不綺語, 

(4-3-2-1-3) 뜻으로 짓는 업을 삼가다

탐욕과 질투[貪嫉]와 속임[欺詐]과 간사함[諂曲]과 성냄[瞋恚]과 삿된 견해[邪見]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遠離貪嫉、欺詐、諂曲、瞋恚、邪見。 

(4-3-2-2) 두타행과 참괴를 닦다 

만약 출가한 사람이라면 번뇌를 끊어 굴복시키기 위하여 응당 시끄러운 곳을 멀리 여의고 항상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소욕 (少慾)과 지족(知足)의 두타(頭陀)행을 닦으며 작은 죄라도 마 음으로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여래께서 만든 계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땅히 다른 사람을 헐뜯고 혐오하지 않 으며 비난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망령되이 허물을 짓지 않도록 하기 때문이다. 

若出家者為折伏煩惱故,亦應遠離憒閙、常處寂靜,修習少欲 知足頭陀等行。乃至小罪心生怖畏,慚愧改悔,不得輕於如來 所制禁戒。當護譏嫌,不令眾生妄起過罪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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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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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수경을 보면 몸으로 짓는 죄, 입으로 짓는 죄, 뜻으로 짓는 죄가 나옵니다. 눈, 코, 귀는 받아들이기만 하기 때문에 죄를 짓 지 않습니다. 몸이 짓는 죄는 살생, 투도(도둑질), 사음(음란한 행동)이 있습니다. 입으로 짓는 죄로는 망어(거짓말), 기어(속 임), 악구(악담), 양설(여기저기에 다른 말)이 있습니다. 뜻으로 짓는 죄로는 탐애(탐욕), 진에(성냄), 치암(어리석음)이 있습니 다. 6근 중에 안, 이, 비는 죄를 안 짓고 설, 신, 의는 죄를 짓습 니다. 이렇게 죄를 짓는 근본 원인은 감각의 수용에 있습니다. 이 가운데 눈이 상당 부분을 차지합니다. 하지만 행동이나 생각 으로 옮겨 죄를 짓는 것은 몸, 입, 뜻입니다. 여기서 나온 죄악을 경계하고 참회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죄를 나타나게 하는 뿌리에는 업식(업상), 전식(능견상), 현식 (경계상), 아만, 아치, 아집, 아애, 탐진치만의견이 있습니다. 업 식(업상), 전식(능견상), 현식(경계상)은 제8식 아뢰야식의 영역 에 속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거짓말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일으 키는 출발점은 업식에서 형성된 미세한 흐름입니다. 그것이 전 식을 통해 구체화되고 현식에서 만들어집니다. 이것이 거울에 비치듯이 제7식에 반영됩니다. 그렇게 반영된 것은 6식을 통해 외부로 표출됩니다. 탐진치만의견은 삶을 부정적으로 만듭니 다. 이것들은 누구에게도 다 들어 있습니다. 하지만 사람마다 들 어있는 양은 다릅니다. 세세생생 올바르게 산 사람은 이것들이 적게 들어있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많이 들어있습니다. 내 속에 든 생각들이 그대로 투영되는 것입니다. 세상을 보는 눈도 그렇 습니다. 이 세상이 얼마나 좋게 보이는 것은 내 생각만큼 보입니 다. 나의 업과 지혜만큼 세상이 다르게 보이는 것입니다. 그래서 똑같은 사건을 두고도 반응이 다른 것입니다. 

  “십악을 멀리하다. 몸으로 짓는 업을 삼가다. 살생하지 않고, 도둑질 하지 않고, 음행하지 않는다. 입으로 짓는 업을 삼가다. 두 말[兩舌]을 하지 않으며, 악한 말[惡口]을 하지 않으며, 거짓 말을 하지 않으며, 기어(綺語)를 하지 않는다.” 우리가 계율을 지 키는 이유는 십악을 멀리하기 위해서입니다. 기어는 상대방에 게 잘 보이려고 말을 꾸미는 행위입니다. 

“뜻으로 짓는 업을 삼가다. 탐욕과 질투[貪嫉], 속임[欺詐]과 간사함[諂曲], 성냄[瞋恚], 삿된 견해[邪見]를 멀리 여의는 것이다.” 악을 떠나 선이 따로 있지 않습니다. 선과 악은 같이 있습 니다. 악한 마음만 일으키지 않으면 선은 그냥 일어납니다. 선 한 마음을 일으키면 악한 마음이 사라집니다. 어두운 방에 불을 키면 어둠이 없어지듯이 똑같은 것입니다. 이를 위해 지계, 규 칙적인 생활이 필요합니다. 규칙적인 생활은 따분해 보이지만 긍정적이고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신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보시라 하며 눈의 도적을 버 리면 모든 빛의 경계를 떠나서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저 절로 보시가 이루어집니다. 자기자신을 잘 지키는 것을 지계라 이름하며 귀의 도적을 막으면 소리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므 로 스스로 구속 속에 있으나 구속에서 자유로운 지계가 이루어 진다. 자기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을 인욕이라 이름하며 코의 도 적을 항복시키면 향기로운 좋은 냄새와 악취가 나는 나쁜 냄새 에 균등하여 자유롭게 길들여지므로 저절로 인욕이 이루어집니 다. ‘눈의 도적을 버리면 모든 빛의 경계를 떠나서’라는 말은 대 상을 분별하지 않게 된다는 말입니다. ‘구속에서 자유로운 지계 가 이루어진다.’라는 말은 억지로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냥 지 켜지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큰 일을 하려면 참을성, 인욕이 되어 야 합니다. 참을 줄 알아야 합니다. 참을성이 없는 사람은 성공 하지 못합니다. 1960대 미국의 어떤 대학원생이 학위 논문으로 아이들을 상대로 실험을 합니다. 마시멜로를 아이들에게 주면 서 5분을 참으면 하나를 더 준다고 했습니다. 그 때 참고 안 먹 은 아이들은 모두 좋은 대학에 들어갔고 성공하는 인생을 살았 습니다. 그 때 못 참은 아이들은 성공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을 참으며 살 때 좋은 것과 균등하게 받아들이면 억지로 참을 필요가 없어집니다. 세 가지 도적을 항복시키면 보 시, 지계, 인욕이 저절로 이루어집니다. 

  자기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을 정진이라 하며 혀의 도적을 제 어하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않으며, 옳고 강설하되 싫어하는 마음 이 없으므로 저절로 정진 속에 머물게 됩니다.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것을 선정이라 이름하며 몸의 도적을 항복시키면 모든 애 욕에 초연하여 요동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므로 항상 선정 속에 머물게 됩니다. 생명의 본래 면목을 깨닫는 것을 지혜라 이름하 며 뜻의 도적을 조복하면 무명을 따르지 않고 항상 생각이 깨어 있어 행하는 모든 행위가 법에 맞으며, 모든 공덕을 즐겨 닦으 므로 지혜의 빛이 항상 밝게 빛나게 됩니다.

  “두타행과 참괴를 닦다. 고요한 곳에 있으면서 소욕(少慾)과 지족(知足)의 두타(頭陀)행을 닦으며 작은 죄라도 마음으로 두 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여래께서 만든 계율을 가벼이 여기지 않고 마땅히 다른 사람을 헐뜯고 혐오하지 않으며 비난 하는 중생으로 하여금 망령되이 허물을 짓지 않도록 하기 때문 이다.” 고요한 곳에 있으며 소욕과 지족의 두타행을 닦는 것이 지계입니다. 내 마음이 고요하면 밖이 아무리 시끄러워도 고요 할 수 있습니다. 소욕, 욕심을 적게 내는 것이 중요합니다. 인간 의 욕심은 끝도 없습니다. 내가 만족할 줄 알면 좋은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큰 돈을 벌어도 만족하지 못하면 삶은 황폐해집니다. 그러므로 욕심을 적게 하여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작은 죄라도 마음으로 두려워하고 부끄러워하고 뉘우치며’ 속담에 ‘바늘 도둑 소도둑 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렸을 때 친 구들을 보면 부정행위를 해도 아무렇지 않게 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이런 친구들은 나이가 들어서도 똑같습니다. 오히려 규 모가 커져 있을 것입니다. 아무리 사소한 죄라도 우리는 두려워 하고 참회해야 합니다. 참회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습니다. 하 루가 끝날 때 자리에 누워서 오늘은 무엇을 잘못했는지 되돌아 볼 필요가 있습니다. 잘못했다고 생각하면 앞으로 계속하지 않 게 됩니다.

  무엇이든지 부정적으로 보면 계율을 가벼이 여기고 다른 사 람을 마구 헐뜯게 됩니다.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고 측은하게 여기는 것의 바탕에는 지계가 있습니다. 살생을 하지 말라는 계 율은 일심이라는 진리를 바탕으로 두어야 가능합니다. 사람아 닌 다른 생명은 죽여도 괜찮다는 생각을 합니다. 하지만 불교에 서는 모든 생명이라고 합니다. 이것을 지키려면 인간은 굶어죽 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을 최소화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운데 두타제일 가섭 존자가 있습니다. 가섭 존자에게는 평생동안 지킨 사항들이 있었습니다. 첫째는 마을 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사는 것입니다.(在阿蘭若處) 둘째는 언제 나 탁발걸식한 음식을 먹는 것입니다.(常行乞食) 셋째는 걸식하 는데 있어서 빈부의 집을 가리지 않는 것입니다.(次第乞食) 넷째 는 하루 한끼만 먹는 것입니다.(受一食法) 다섯째는 수행에 적당 한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량만 먹는 것입니다.(節量食) 여섯째 는 중식 이후에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 것입니다.(中後不得飮 漿) 일곱째는 세속에서 버린 옷들을 모아 기워 만든 옷을 입는 것입니다.(着弊納衣) 여덟째는 옷을 세 벌 이상 가지지 않는 것 입니다.(但三衣) 아홉째 잠을 잘 때는 무덤 사이에서 자는 것입 니다.(塚間住) 열 번째는 수행을 할 때는 나무 아래에서 하는 것 입니다.(樹下止) 열 한번째는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앉아 지내는 것입니다.(露地坐) 열 두 번째는 잘 때도 누워 자지 않고 좌선하는 자세로 그대로 자는 것입니다.(但坐不臥) 가 섭의 삶을 되돌아보면 절제된 수행자의 삶을 철저하게 살아왔 음을 알 수 있습니다.

  선불교에서 가섭과 아난에 대한 화두가 있습니다. 가섭은 당 대에 부처님께 법을 이어받은 수제자로 인정받고 있었습니다. 아난은 가섭에게 “부처님께서 따로 전한 법이 있었습니까?” 그 러자 가섭은 대답합니다. “아난아!” “예.” “절 앞의 찰간을 무너 뜨려라.” 절의 입구나 대웅전에 절을 상징하는 깃발을 꽂는 기 둥이 있습니다. 이것을 찰간이라 합니다. ‘찰간을 무너뜨려라’ 는 것은 이미 설법이 끝났음을 의미합니다. 가섭이 아난을 불렀 을 때 이미 부처님께서 따로 전한 법은 전해진 것입니다. 


  앞의 내용들을 정리해봅시다. “지계바라밀. 살생, 투도, 사음, 망어, 기어, 양설, 악구를 범하지 않고 탐욕, 성냄, 어리석음 등 을 멀리 여의는 일이다.” 조그마한 죄라도 몹시 두렵게 생각하 여 뉘우치고 참회해야 하며, 여래께서 제정하신 모든 계율을 조 금이라도 가벼이 여기지 말며, 남의 비난을 받지 않도록 하여 중 생들로 하여금 허물을 짓지 않도록 하며 국가의 법률, 사회의 윤 리, 도덕 등을 지키는 것입니다. 

  “지계에는 3가지가 있으니 섭율의계, 섭선법계, 섭중생계가 있다. 계율을 지킬 때도 ‘계율을 지킨다. 마음을 억제한다.’는 생 각이 없어야 한다.” 섭율의계는 계율을 지킴으로써 내 몸을 지 키는 것입니다. 섭선법계는 계율을 지키며 선을 행하는 것입니 다. 섭중생계는 이 세상 모든 생명에게 계를 베푸는 것입니다. 나부터 선을 행하고 모든 중생으로 퍼져나가는 것입니다. 계율 을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워야 합니다. 마음을 억제한다는 생각 이 없어야 합니다. 처음에 시도할 때는 억제한다는 마음이 듭니 다. 하지만 어느 정도의 단계가 되면 억제한다는 생각이 없어진 다는 것입니다. 

  “청정계(淸淨戒). 계에 의지해야만 온갖 선정과 고(苦)를 제거 하는 지혜가 생긴다. 청정한 계를 지키면 선법을 얻게 되고 지 키지 못하면 좋은 공덕이 무너진다. 계율이야말로 가장 편안한 공덕이 깃드는 곳이다.<유교경>” 여기서 규칙적인 생활의 중요 성을 알 수 있습니다. 삶은 총체적인 것으로만 모든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매일 매일 축적된 것이 삶입니다. 하루 잘 살면 하루 부처입니다. 하루 나태하고 계율을 어기고 살면 하루 지옥입니 다. 나의 삶을 삶답게 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계율을 지키 지 않으면 내가 아무리 잘 살려고 해도 공덕이 무너집니다. 지계 만큼 공덕을 쌓는데 좋은 것은 없습니다. 모두가 지계만 잘 지켜 도 원하는 데로 돌아갑니다. 그것이 바로 천국, 극락입니다. 하 지만 중생들은 자신의 욕심, 탐욕으로 지계를 지키지 않습니다.

  “청정계행자. 해탈의 바다를 건네준다. 온갖 번뇌를 씻어낸 다. 삿된 재앙의 독을 제거한다. 험악한 길을 통과하게 한다. 성자들이 머물 곳이다.<승기율>” 청정계행자는 청정하게 계율을 지키는 사람으로 진리의 세계로 가게 해줍니다. 여기서는 해탈 의 바다를 건네준다로 표현했습니다. 청정계행자가 되면 번뇌 가 씻겨집니다. 거짓말을 하면 거짓말을 정당화하기 위해 또 거 짓말을 합니다. 이런 것들이 번뇌입니다. 청정계행자가 되면 나 에게 일어날 많은 재앙들이 소멸됩니다. 좋은 일도 일어나지만 그만큼 재앙도 일어납니다. 흐름과 기운에 따라 자연스럽게 일 어납니다. 이런 자연스러운 재앙도 안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청 정계행자가 되면 험악한 길을 통과하게 됩니다. 인생만큼 험악 한 길도 없지만 이 길을 끝가지 잘 가게 해주는 것이 지계입니 다. 성자들이 머물 곳이라는 말은 지계를 잘 지키면 성자가 된 다는 말입니다.

  불교 구성의 대부분은 출가수행자들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하지만 간혹 출가하지 않는 뛰어난 거사들도 있습니다. 인도에 는 유마경의 주인공 유마 거사가 있습니다. 중국에는 ‘방거사’ 방온 거사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부설 거사가 있습니다. 부 설은 원래 불국사에서 출가한 스님이었습니다. 부설은 같은 승 려였던 영희, 영조와 유행을 떠났습니다. 유행은 여기저기를 떠 돌며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전라도를 지나다가 무구원이란 거사의 집에서 묵게 됩니다. 무구원 거사에게는 묘 화라는 딸이 있었는데 그녀는 벙어리였습니다. 그런데 그녀가 부설을 보더니 말문이 터져버렸습니다. 세 승려가 떠나려고 하 는데 묘화가 부설을 붙잡고 자신이랑 결혼하지 않으면 죽겠다 고 엄포를 놓습니다. 며칠 고민한 후 부설은 환속하고 묘화와 결혼하여 살게 됩니다. 그리고 같이 온 두 승려는 10년 후에 다시 만날 것을 기약하고 떠납니다. 10년 후 영희, 영조가 찾아와서 수행의 성과를 물어봅니다. 물병에 물을 넣고 물병을 깨어 물이 나오는지 안 나오는지 보고 수행의 정도를 판단하기로 합니다. 영희, 영조는 물병을 깨니 물이 다 흘러나왔는데 부설은 병만 깨 지고 물이 하나도 흐르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부설이 말합니다. “이것이 무엇인고? 이 몸은 병이고 이 마음은 물이로다. 눈으로 보아도 본 바가 없고 귀로 들어도 들은 바가 없으면 분별시비 다 없어져 마음에는 오로지 부처뿐이라네.” 자신의 마음은 병(몸) 이 깨지더라도 그대로 있다는 것을 말한 겁니다. 훗날 부설은 묘 화와 사이에 아들과 딸을 한 명씩 낳게 되는데 아들은 이름이 등 운이고 딸은 월명입니다. 이들은 모두 출가해 그들의 이름을 딴 ‘등운암’과 ‘월명암’이 지금도 남아 있습니다.

“팔청정(八淸淨)은 지계를 청정히 하는 8가지이다. 첫째 몸으 로 행하는 행위가 곧으며, 둘째 업(業)이 청정하고, 셋째 마음 가 운데 허물과 더러움이 없으며, 넷째 뜻을 높게 가져 굳고 바르 며, 다섯째 바른 생활방법에 의해 살아가며, 여섯째 탐욕을 버 리고 수행에 전념하며, 일곱째 온갖 거짓과 진실치 않은 모습을 떠나며, 여덟째 언제나 보리심을 잃지 않는다.” 이것이 청정지 계입니다. 왜 수행자는 복을 받을까요? 그것은 지계의 삶을 살 기 때문입니다. 출가를 했건 안했건 청정지계를 지키고 사는 사 람이 바로 수행자인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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