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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강 권수이익분, 회향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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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7,892회 작성일 21-07-12 1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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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강


[진제83]  (4-3-5-21) 지관의 쌍수를 설하다

행할 때와 머무를 때와 누울 때와 일어날 때에 모두 마땅히 지관 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비록 모든 법의 자성이 생기지 않음을 생각하지만, 또한 곧 인연 으로 화합한 선악의 업과 고락의 과보가 빠뜨려지지도 않고 무 너지지도 않음을 생각하며, 비록 인연의 선악의 업보를 생각하 지만, 본성은 얻는 것이 아니다. 

만약 지(止)를 닦으면 범부는 세간에 주착(住着)함을 대치하고 이승의 겁약(怯弱)한 견해를 버리게 된다. 만일 관(觀)를 닦으면 이승(二乘)이 대비심을 일으키지 않는 용렬한 마음(狹劣心)의 허 물을 대치하고, 선근을 닦지 않음을 멀리 여읜다. 

이러한 뜻에 의하므로 지관(止觀)의 이문(二門)은 서로 도움이 되고 서로 버리고 여의지 못하니, 만약 지관(止觀)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곧 보리에 들어갈 방도가 없다.

若行若住、若臥若起,皆應止觀俱行。所謂雖念諸法自性不 生,而復即念因緣和合善惡之業,苦樂等報不失不壞。雖念因 緣善惡業報,而亦即念性不可得。若修止者,對治凡夫住著世 間,能捨二乘怯弱之見。若修觀者,對治二乘不起大悲狹劣心 過,遠離凡夫不修善根。以此義故,是止觀二門,共相助成, 不相捨離。若止觀不具,則無能入菩提之道。

(4-4) 불퇴전의 염불방편을 설하다

[진제84] 중생이 처음 이 법을 배워서 바른 믿음을 구하고자 하 지만 그 마음이 겁약하여, 사바세계에 머무름에 항상 부처를 만 나 친히 공양을 올리지 못할까 스스로 두려워한다. 

그가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신심(信心)은 성취하기가 어렵다'라고 하니, 뜻이 퇴전하는 사 람에게는 여래는 수승한 방편이 있어 신심을 북도우며 보호[攝 護]함을 알아야 한다. 

이는 오로지 부처를 생각한 인연으로 원력[願]에 따라 다른 불토 [他方佛土]에 태어나게 되어 항상 부처님을 친히 보아서 영원히 악도(惡道)를 여의는 것을 말한다. 

이는 경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오로지 서방 극락세계의 아미타 불을 생각하여 그가 닦은 선근으로 회향하여 저 세계에 나기를 원[願求]하면 곧 왕생(往生)하게 되어 늘 부처를 친히 보기 때문 에 끝내 퇴전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만약 부처님의 진여법신을 관(觀)하여 항상 부지런히 수습하면 마침내 극락에 왕생하게 되어 정정취(正定)에 머물게 된다. 復次,眾生初學是法欲求正信,其心怯弱。以住於此娑婆世 界,自畏不能常值諸佛、親承供養。懼謂信心難可成就,意欲 退者,當知如來有勝方便攝護信心。謂以專意念佛因緣,隨願 得生他方佛土,常見於佛永離惡道。如修多羅說,若人專念西 方極樂世界阿彌陀佛,所修善根,迴向願求生彼世界,即得往 生,常見佛故,終無有退。若觀彼佛真如法身,常勤修習畢竟 得生,住正定故。

(5) 권수이익분 

(5-1) 앞의 말을 통틀어 맺다

[진제85] 이미 수행신심분(修行信心分)을 말하였으니, 다음에는 권수이익분(勸修利益分)을 말한다. 

이와 같이 대승의 제불(諸佛)의 비밀장(秘藏)을 내가 이미 모두 설하였으니,

已說修行信心分。次說勸修利益分。如是摩訶衍諸佛祕藏,我 已總說。

(5-2) 이익을 들어 닦기를 권하다 

[진제86] 어떤 중생이 여래의 매우 깊은 경계에 대하여 바른 믿 음을 내어 비방을 멀리 여의고 대승도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논을 깊이 생각하고[思量], 수습(修習)하면 마침내 무상도(無 上道)에 이를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 나서 겁약한 마음을 내지 않으면 마땅히 알 것이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부처의 종자를 이어서 반 드시 부처에게 수기(授記)를 받을 것이다. 

若有眾生,欲於如來甚深境界得生正信,遠離誹謗入大乘道, 當持此論思量修習,究竟能至無上之道。若人聞是法已不生怯 弱,當知此人定紹佛種,必為諸佛之所授記。

(5-3) 수지하는 복이 수승하다

[진제87]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한 중생을 교화하여 십선(十善)을 행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이 잠깐 동안에 이 법 을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며, 공덕도 앞의 것보다 우월하여 그것 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기신론>을 받아가져서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하 루 낮 하룻 밤 동안 한다면 그 공덕이 한량없어서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시방의 일체의 부처가 각기 무량무변한 아승기겁에 그 공덕을 찬 탄하더라도 다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는 법성의 공덕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의 공 덕도 또한 끝이 없는 것이다. 

假使有人能化三千大千世界滿中眾生令行十善,不如有人於一 食頃正思此法,過前功德不可為喻。復次,若人受持此論觀察 修行,若一日一夜,所有功德無量無邊不可得說。假令十方一 切諸佛,各於無量無邊阿僧祇劫,歎其功德,亦不能盡。何以 故?謂法性功德無有盡故。此人功德亦復如是,無有邊際。 

(5-4) 훼방하는 죄가 중하다

[진제88] 어떤 중생이 이 <기신론>에 대하여 훼방하고 믿지 않 는다면 그가 받는 죄의 과보는 무량겁이 지나도록 큰 고통을 받 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우러러 믿고 비방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깊이 스스로를 해치고 다른 사람까지 해쳐 일체의 삼보(三寶)의 종자 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일체의 여래가 다 이 법에 의하여 열반을 얻기 때문이며, 일체의 보살이 이로 인하여 수행하여 부처의 지혜(佛智)에 들어가기 때 문이다.

其有眾生,於此論中毀謗不信,所獲罪報,經無量劫受大苦 惱。是故眾生但應仰信,不應誹謗,以深自害亦害他人,斷絕一切三寶之種,以一切如來皆依此法得涅槃故,一切菩薩因之 修行入佛智故。

(5-5) 증거를 들어 보이다

[진제89] 과거의 보살도 이미 이 법에 의하여 청정한 믿음[淨信] 을 이루었고, 현재의 보살도 이제 이 법에 의하여 청정한 믿음[淨 信]을 이루며, 미래의 보살도 마땅히 이 법에 의하여 청정한 믿음 [淨信]을 이루게 될 것이니, 

當知過去菩薩已依此法得成淨信,現在菩薩今依此法得成淨 信,未來菩薩當依此法得成淨信,

(5-6) 닦아 배우기를 권하다

[진제90] 이러므로 중생은 부지런히 배우고 닦아야 한다. 是故眾生應勤修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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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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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지관을 함께 닦아라고 하십니다. 그러게 할 수 없을 때는 관을 먼저 닦고 지를 닦아라 하셨으며, 경우에 따라 지를 먼저 닦고 관을 닦아라고 하셨습니다. 

  “지관의 쌍수를 설하다. 행할 때와 머무를 때와 누울 때와 일 어날 때에 모두 마땅히 지관을 함께 수행해야 한다. 비록 모든 법의 자성이 생기지 않음을 생각하지만, 또한 인연으로 화합한 선악의 업과 고락의 과보가 빠뜨려지지도 않고 무너지지도 않 음을 생각하며, 비록 인연의 선악의 업보를 생각하지만, 본성은 얻는 것이 아니다.” 능력이 되면 지관은 함께 수행하면 좋다는 말입니다. 지를 하며 관을 하고 관을 하고 지를 합니다. 다름 아 니라 자기 삶을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어려서는 일기를 썼지만 나이를 먹고서는 일기를 쓰지 않습니다. 나이를 먹고서도 일기 를 쓰는 것처럼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다면 성공할 확률은 높아 질 것입니다. 본성은 얻는 것이 아니라 원래 내게 있는데, 지관 을 하다보면 그냥 드러납니다. 열심히 지관을 해서 얻어오는 것 이 아니라 열심히 지관을 하다보면 드러나는 것입니다. 묻혀있 던 보배가 드러나게 됩니다. 지관으로 드러납니다.

  “지관의 쌍수를 설하다. 만약 지(止)를 닦으면 범부는 세간에 주착(住着)함을 대치하고 이승의 겁약(怯弱)한 견해를 버리게 된 다. 만일 관(觀)을 닦으면 이승(二乘)이 대비심을 일으키지 않는 용렬한 마음[狹劣心]의 허물을 대치하고, 선근을 닦지 않음을 멀 리 여읜다. 이러한 뜻에 의하므로 지관(止觀)의 이문(二門)은 서 로 도움이 되고 서로 버리고 여의지 못하니, 만약 지관(止觀)이 갖추어지지 못하면 곧 보리에 들어갈 방도가 없다.” 지를 하게 되면 열심히 하는 힘과 용기가 생깁니다. 관을 하게 되면 모든 것을 평등하게 받아들이는 마음이 일어나 대비심이 생기고 선 근을 닦게 됩니다. 생각을 잘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생각 을 잘하려면 아집에 부딪힙니다. 그것을 깨뜨려야 이 평등한 일 심을 알게 됩니다. 이것을 위해 관조하고(관) 집중하는(지) 것이 필요합니다. 지관을 떠나서는 도를 이룰 방도가 없습니다. 지와 관을 하다보면 불교 이외의 모든 것도 잘하게 됩니다. 자기 하 는 일을 잘하다 보면 부처되는 길이 열립니다.

  “점차지관은 처음은 알지만 나중은 깊어서 그 사다리와 같다. 부정지관은 앞과 뒤가 서로 바뀌고 금강석이 햇빛 속에 있는 것 과 같다. 원돈지관이란 처음과 나중이 두 가지가 아니며 신통력 을 지닌 자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다.” 공부를 하자마자 부처가 되지는 않습니다. 처음부터 공부가 잘 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바탕이 있어야 공부가 쉽게 잘 됩니다. 땅이 비옥하면 잘 자랍 니다. 하지만 자갈밭이나 황무에는 식물이 잘 자라지 못합니다. 비옥한 땅으로 만들어야 해결됩니다. 점차지관은 공부를 계속 하다보면 쉽게 잘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첫술에 배부르지 않습 니다. 사다리도 처음에는 낮지만 점차 올라가다 보면 높은 곳에 갈 수 있습니다. 

  점차지관은 순차적으로 공부가 되어가는 것을 말한다면 부정 지관은 앞과 뒤가 없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좋을 때도 있고 나 쁠 때도 있고 그런 것입니다. 공부를 체계적으로 하면 성적이 크 게 떨어지지 않습니다. 하지만 체계가 없으면 잘하다가도 성적 이 떨어집니다. 이런 것이 부정지관입니다. 금강석이 햇빛 속에 있으면 다양한 빛을 냅니다. 이렇듯이 다양한 모습을 보이는 것 이 부정지관입니다.

  궁극적으로 가야하는 지관은 원돈지관입니다. 처음과 끝이 하나입니다. 원만하게 모든 것이 이루어진 상태의 지관이 원돈 지관입니다. 신통력을 지닌 자가 하늘을 나는 것과 같이 모든 것이 보이고 모든 것이 갖춰진 상태입니다. 지를 잘하면 신통력이 생기고 관을 잘하면 지혜가 생깁니다. 지를 열심히 하는 수행자 들은 어떤 형태로든 신통이 생기게 되어 있습니다. 

  수행을 통하여 일행삼매와 상좌삼매에 들어가는 방법입니다. 몸을 개차하고 입은 설묵하고 마음은 지관하여 닦는 것입니다.

  궁극적 목적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는 삼매 속에서 삽 니다. 문수설반야경과 문수문반아경에서는 삼매에 드는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개차(開遮)란 열고 막음을 말합니다. 계를 지 킬 때 계를 지켜서 지키는 경우도 있고 파계하여 계를 지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설묵(說默)은 말하기도 하고 침묵하기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일행삼매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몸은 개 차해야 하고 입은 설묵해야 하고 마음은 지관을 해야 합니다.

  “몸의 개차. 몸은 항상 앉는 것을 허용하지만 걸어가거나, 머 물거나, 눕는 것은 금한다. 대중들과 처하는 것도 좋으나, 홀로 있으면 더욱 좋다. 조용한 곳에 있되, 여분의 다른 자리는 없도 록 한다. 90일을 일 기간으로 하여 결가부좌로 정좌한다.” 공부 할 때 몸을 어떤 자세로 하는 것이 좋은지 말한 것입니다. 틱낫 한 스님의 걸으면서 명상하는 것은 어떻게 봐야할까요? 이것은 사람들을 입문시키기 위한 임시방편이라 보면 될겁니다. 결가 부좌는 사람들이 하기 어려워 하니까 반가부좌를 합니다. 90일 을 한 기간으로 정해두는 것은 목표를 두기 위한 것입니다. 90 일이란 이 시간은 우리가 습을 익히기 위한 1차적인 기간입니 다. 우리의 몸 전체를 바꾸기 위해서는 6개월이란 시간이 걸립 니다. 여기서 1차적인 기간이 90일입니다.

  “입의 설묵. 좌선하다가 피로가 극하여 질병으로 괴로움을 받 거나, 졸음의 뚜껑이 덮여져서 안팎으로 장애가 침범하여 정념 의 마음을 빼앗겨, 그것을 버릴 수 없다면 오로지 부처님의 명 호를 부르고 참괴하며, 참회하고 목숨을 걸고 스스로 돌아가야 한다. 이렇게 하면 풍이 칠저(머리, 잇몸, 이, 입술, 혀, 목구멍, 가슴)에 닿아서 신업을 이루고, 소리의 울림은 입술을 닿아서 구 업을 이루어, 능히 마음을 도와 부처님의 내려오심을 느낀다.” 수행을 하면서 입으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말한 것입니다. 공부는 마음을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지속하는 것도 중요합니 다. 공부를 하다가 보면 육체가 피로해져서 잠이 올 때가 있습 니다. 그럴 때 입으로 부처님의 이름을 부르고 부끄러워하고 참 회하여 다시 공부하는 마음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 기서 자기합리화를 하면 안 됩니다. 스스로의 유혹을 극복하면 내 안에서 자생하는 힘이 생깁니다. 이것이 부처의 씨앗이 되 어 우리를 부처되게 해줍니다. 풍은 바람이고 칠처는 일곱 곳 을 말합니다.

  “마음의 지관. 단정히 앉아서 정념하는 것인데, 악각을 제거 하고, 모든 산란한 상념을 버리고, 잡스런 사유를 하지 않으며, 사물의 모습을 집착하지 말고, 다만 오로지 연을 법계에만 걸 고 한결같이 법계를 염한다. 일체법이 모두 다 불법임을 믿으 면, 앞이 없고 뒤가 없으며(시간적으로), 끝과 가장자리가 없다( 무한대의 진공).” 악각은 생각이 나쁜 쪽으로 흘러가는 것을 말 합니다. 일심으로 법계를 염하면 정념에 들어가 삿된 모든 것들 이 소멸합니다. 앞이 없고 뒤가 없으며 끝과 가장자리가 없다는것은 시간적으로나 공간적으로나 한계가 없는 것을 말합니다. 삼매에 들면 이런 현상들이 내 앞에 펼쳐집니다. 지관의 종착역 이 삼매입니다.

  “불퇴전의 염불방편을 설하다. 중생이 처음 이 법을 배워서 바른 믿음을 구하고자 하지만 그 마음이 겁약하여, 사바세계에 머무름에 항상 부처를 만나 친히 공양을 올리지 못할까 스스로 두려워한다.” 지관이 잘 안될 때 염불을 방편으로 쓸 수 있습니 다. 우리는 유혹이 오거나 조금만 힘들어도 공부를 안 하거나 포 기합니다. 이것은 마음이 겁약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염불로 극복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염불. 입으로 부처님을 염하는 염불, 마음에 부처님을 새기 는 염불, 마음이 자비로운 상태-염불.” 염불은 시작할 때 입으 로 하지만 결국 마음으로 갑니다. 진정한 염불이란 내 마음 속 에 부처가 들어앉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내 마음 속에 부처가 들어앉아 있으면 자비로 가득해집니다. 부처가 끝없는 자비심 을 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염불로 불퇴전의 염불을 의 미합니다.

  “부처의 수승한 방편. 그가 두려워하면서 말하기를 ‘신심(信 心)은 성취하기가 어렵다’라고 하니, 뜻이 퇴전하는 사람에게 여 래는 수승한 방편이 있어 신심을 북돋우며 보호[攝護]함을 알아 야 한다. 이는 오로지 부처를 생각한 인연으로 원력[願]에 따라 다른 불토[他方佛土]에 태어나게 되어 항상 부처님을 친히 보아 서 영원히 악도(惡道)를 여의는 것을 말한다.” 뜻이 퇴전한다는 말은 포기하려는 생각을 말합니다. 이럴 때 염불이 지관의 세계로 다시 이끌어주는 묘약이 됩니다. 부처님의 수승한 방편은 다 른 것이 아니라 신심(信心)이 미약해질 때 염불을 통해 신심을 다시 북돋아 진리의 세계로 나아가는 힘을 얻는 것입니다. 아니 면 원력으로 다른 불토에 태어나 부처님을 친히 보고 악도를 없 애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순간적으로 흔들리지만 부처님의 수승한 방편에 의해 끝까지 진리의 세계에 갈 수 있습니다. 결 국 부처님을 믿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경에서 설함. 이는 경에서 ‘만일 어떤 사람이 오로지 서방 극 락세계의 아미타불을 생각하여 그가 닦는 선근으로 회향하여 저 세계에 나기를 원[願求]하면 곧 왕생(往生)하게 되어 늘 부처 를 친히 보기 때문에 끝내 퇴전함이 없다’라고 하였다.” 내가 아 미타불을 생각하며 서방 극락세계에 나기를 원하면 그곳에 태 어나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왜 서방 극락정토에 왕생을 못할 까요? 바로 믿지 않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통해 흔들리지 않는 부동의 마음이 내 속에 자리 잡아야 죽음이 와도 흔들리지 않습 니다. 시험칠 때 마지막 순간에 불안해져서 맞는 답을 틀린 답으 로 바꾸기도 합니다. 하지만 완전하게 아는 사람은 답을 바꾸지 않습니다. 정확하게 모르면 바꾸게 되어있습니다. 우리는 그러 한 확고한 마음을 갖지 못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흔들려 근본적 으로 갖고 있던 모든 것이 없어져버립니다. 진리에 대한 믿음이 확고하게 자리 잡으면 흔들리는 마음이 없어집니다. 

  살면서 스스로 극락을 이루지 못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극락 이 없습니다. 내 마음이 극락이 되었을 때 이 세상 어디든 극락 이 되는 것이고 극락을 이루지 못하면 이 세상 어디에도 극락이없습니다. 불교에서는 이 세상이 무상하여 끝없이 생멸하기 때 문에 고다고 합니다. 이 고가 해결되면 낙입니다. 이 세상이 무 상하다는 것을 알고 내 자신이라 할만한 것이 없으면(무아) 나만 을 위하는 이기심이 사라집니다. 이 세상 모든 생명과 내가 하나 임을 알고 끝없는 자비심이 나옵니다. 거기서 고가 해결되고 락 이 나옵니다. 이것을 모르면 삶은 끝없는 고일뿐입니다. 내 마 음이 고면 세상 어디를 가도 지옥일 뿐입니다. 

  “경에서 설한 뜻을 풀이. 만약 부처님의 진여법신을 관(觀)하 여 항상 부지런히 수습하면 마침내 극락에 왕생하게 되어 정정 취(正定)에 머물게 된다.” 정정취에 머물게 된다는 말은 지관에 머물게 된다는 말입니다. 내 마음이 극락의 상태면 49재를 안 지내줘도 극락에 갑니다. 하지만 내 마음이 극락의 상태가 아니 면 아무리 잘 이끌어줘도 극락에 못 갑니다.

  “극락왕생. 마침내 극락에 왕생하게 되어 ⇒ 신성취발심 ‘조 금이라도 법신을 보게 되기 때문’ ⇒ 능가경에서 용수보살을 찬 탄하여 ‘환희지를 증득하고 안락국에 왕생하기 때문이다.’” 여 기서 법신은 일심, 진리를 가리킵니다. 신성취발심의 단계에 이 르러 조금이라도 진리를 보게 되면 극락에 왕생할 수 있게 됩니 다. 환희지는 보살 10지 가운데 첫 번째입니다. 안락국은 바로 극락을 말합니다. 그래서 보살 10지의 첫 번째에만 들어도 극락 에 왕생할 수 있게 된다는 말입니다.

  “정정(正定). 정정에 머문다. 견도 이상을 정정이라 하니 무루 도에 의거하여 정정을 삼기 때문이며(삼현, 사선근, 견도, 수도, 무학도) 십해 이상을 정정이라 하니 불퇴위에 머무르는 것을 정정으로 삼기 때문이며 구품 왕생을 정정이라 하니 수승한 연의 힘에 의하여 퇴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정은 지관을 통해 마 지막 삼매에 든 단계입니다. 정정이 되면 정견이 나옵니다. 부 처님은 100% 순수 정견입니다. 중생은 정견이 있지만 순수한 정견은 아닙니다. 구사론에서 수행의 단계를 말할 때 삼현, 사 선근, 견도, 수도, 무학도를 말했습니다. 여기서 견도가 나오는 데 진리가 보이기 시작한 단계를 말합니다. 법신의 발자취 이상 을 볼 수 있는 단계가 정정입니다. 유루란 다음 생의 업을 만들 어내는 것입니다. 하지만 진리를 깨쳐 부처가 되면 무루가 됩니 다. 행위는 하지만 업은 생기지 않습니다. 무루도는 무악도, 출 세간도라고도 합니다. 공부해서 부처가 되면 무루도에 의거하 게 됩니다. 십해 이상이 되면 정정에 머무를 수 있는 능력이 되 어 수행해서 불퇴위까지 이를 수 있습니다. 구품 왕생은 묘법연 화경에 나오는 말입니다. 이런 정정의 힘이 생기면 죽다 깨어나 도 더 낮은 단계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퇴전하지 않 는다는 뜻입니다. 시험에서 일정 이상 커트라인을 넘지 못하면 끊임없이 다시 도전해야 합니다. 삶도 같습니다. 일정 수준 이 상의 삶에 도달하지 못하면 같은 삶이 반복됩니다. 한 생 받쳐 열심히 공부하면 세세생생 좋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정정이 내 속에 꽉 차 득력하게 되면 죽다 깨어나도 그 아래로 떨어지지 않습니다. 가만히 있어도 극락왕생하게 됩니다.


  “권수이익분. 이익을 들어 닦기를 권하다. 어떤 중생이 여래 의 매우 깊은 경계에 대하여 바른 믿음을 내어 비방을 멀리 여의고 대승도에 들고자 한다면 마땅히 이 논을 깊이 생각하고[思 量], 수습(修習)하면 마침내 무상도(無上道)에 이를 수 있을 것 이다.” 지관을 통해 삼매에 들면 나오는 이득이 권수이익분입 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이 법을 듣고 나서 겁약한 마음을 내지 않 으면 마땅히 알 것이다. 이 사람은 틀림없이 부처의 종자를 이 어서 반드시 부처에게 수기(授記)를 받을 것이다.” 수기를 받는 것이란 부처님께 다음 생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계시를 받는 것 입니다. 그래서 수행자에게 있어서 수기를 받는 것보다 더 좋은 것은 없습니다. 수기에 관해 부처님과 한 여인의 일화가 있습니 다. 이 일화는 빈자일등(貧者一燈)이라고도 불립니다. 부처님께 서 사위국의 궁궐에서 설법하고 기원정사로 돌아갈 때 그 나라 국왕과 귀족들은 부처님 일행에게 성대한 공양을 하였습니다. 그 모습을 본 가난한 여인 난타는 부처님을 위해 공양을 하고 싶 어졌습니다. 하지만 난타는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었기에 머리 카락을 잘라 팔았고 구걸을 한 돈을 가지고 기름을 사 등을 하 나 만들어 부처님께 공양을 바쳤습니다. 다음날 취침시간에 부 처님의 제자들이 등 불을 끄는데 난타의 등불만은 아무리 꺼도 꺼지지 않았습니다. 그것을 본 부처님은 “너희들이 아무리 끄려 해도, 바닷물을 가져다 오고 태풍이 오더라도 그 불은 끌 수 없 다. 이 등불을 보시한 이는 자신의 재산과 마음을 다 바쳐 원을 세웠기 때문이다. 이 공덕으로 후에 반드시 성불하여 수미등광 여래가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시고 난타를 불러 그녀에게 수기 를 주었습니다.

  “수지하는 복이 수승하다. 어떤 사람이 삼천대천세계에 가득 한 중생을 교화하여 십선(十善)을 행한다 하더라도, 어떤 사람 이 잠깐 동안 이 법을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며, 공덕도 앞의 것 보다 우월하여 그것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어떤 사람이 이 <기신론>을 받아지녀 관찰하고 수행하기를 하루 낮 하룻 밤 동 안 한다면 그 공덕이 한량없어 이루 다 말할 수가 없다.” ‘이 법 을 생각하는 것보다 못하며’에서 말하는 이 법이란 대승기신론 을 가리킵니다. 대승기신론을 읽고 생각하는 것만으로 공덕이 한량없다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법성의 공덕. 시방의 일체의 부처가 각기 무량무변한 아승기 겁에 그 공덕을 찬탄하더라도 다할 수가 없다. 왜냐하면 이는 법 성의 공덕이 다함이 없기 때문에 이 사람의 공덕도 또한 끝이 없 는 것이다.” 이 우주법계에 가득한 법성의 공덕이 끝없기 때문 에 대승기신론을 공부한 사람의 공덕도 끝이 없습니다.

  “훼방하는 죄가 중하다. 어떤 중생이 이 <기신론>에 대하여 훼방하고 믿지 않는다면 그가 받는 죄의 과보는 무량겁이 지나 도록 큰 고통을 받을 것이다. 그러므로 중생은 우러러 믿고 비 방해서는 안 되는 것이며, 깊이 스스로를 해치고 다른 사람까지 해쳐 일체의 삼보(三寶)의 종자를 끊어지게 하기 때문이다. 일 체의 여래가 다 이 법에 의하여 열반을 얻기 때문이며, 일체의 보살이 이로 인하여 수행하여 부처의 지혜(佛智)에 들어가기 때 문이다.” 진리를 믿는 것을 방해하는 죄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 다. <기신론>을 훼방하고 믿지 않으면 그 업으로 무간지옥에 떨 어져 큰 고통을 받게 됩니다. 

  “닦아 배우기를 권하다. 그러므로 중생은 부지런히 배우고 닦 아야 한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며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 하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처음이자 끝입니다. 이것보 다 더 소중한 진리, 방법은 없습니다. 논어 맨 처음 문장이 바로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입니다. 이것은 부처님의 ‘부지런히 애 쓰고 노력하라’라는 말과 같은 것입니다. 배우고 때때로 익힌다 는 말은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는 것과 상통합니다.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는 것이 우리 삶의 기쁨이 아니겠는가?’라는 말이 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성인들이 말하는 진리는 멀리 있는 것 이 아닙니다. 부지런히 노력하는 것에 있습니다. 부처되려고 열 심히 애쓰고 노력하는 자체가 중요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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