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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불각의를 세가지로 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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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349회 작성일 21-07-12 0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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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강


(3-1-1-3-3-5) 불각의를 세 가지로 설하다 

(3-1-1-3-3-51) 근본불각을 설하다

[진제26] 불각(不覺)의 뜻은 진여법이 하나임을 여실히 알지 못 하는 것으로 불각의 마음이 일어나서 그 망념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망념은 자상(自相)이 없어서 본각을 여의지 않지만, 방향 을 잃은 사람은 혼미하게 된다. 만약 방향을 여읜다면 혼미함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각(覺)에 의지하기 때문에 혼미하게 되지만, 만약 각의 성질을 여의면 불각은 없어지게 된다. 

불각의 망상심이 있기 때문에 명칭과 의의[名義]를 알아서 진각( 眞覺)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만약 불각의 마음을 여읜다면 진각 의 자상(自相)도 없게 된다. 

所言不覺義者,謂不如實知真如法一故,不覺心起而有其念, 念無自相不離本覺,猶如迷人依方故迷,若離於方則無有迷。 眾生亦爾,依覺故迷,若離覺性則無不覺,以有不覺妄想心 故,能知名義為說真覺。若離不覺之心,則無真覺自相可說。 

(3-1-1-3-3-52) 지말불각을 설하다

(3-1-1-3-3-521) 삼세를 밝히다 

[진제27] 다시 불각(不覺)에 의지하기 때문에 세 가지의 모양이 생겨서 불각과 더불어 상응하여 여의지 않는다. 

復次,依不覺故生三種相,與彼不覺相應不離。云何為三? 

(3-1-1-3-3-5211) 무명업상을 밝히다 

첫째는 무명업상(無明業相)이니,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음 이 움직이므로 업상이라고 한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고 움직이면 괴로움이 있게 되니, 결과가 원인을 여의지 않는 까닭이다. 

一者、無明業相。以依不覺故心動,說名為業;覺則不動。動 則有苦,果不離因故。

(3-1-1-3-3-5212) 능견상을 밝히다 

둘째는 능견상(能見相)이니, 움직임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볼 수 있게 되며, 움직이지 않으면 보이는 것이 없다. 

二者、能見相。以依動故能見;不動則無見。 

(3-1-1-3-3-5213) 경계상을 밝히다 

셋째는 경계상(境界相)이니, 능견상(能見相))에 의지하기 때문 에 경계가 허망하게 나타나므로 능견(能見)을 여의면 경계가 없 어지게 된다. 

三者、境界相。以依能見故境界妄現;離見則無境界。 

(3-1-1-3-3-522) 육추를 밝히다 

[진제28] 경계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모양 을 낸다. 

以有境界緣故,復生六種相。云何為六? 

(3-1-1-3-3-5221)  지상를 밝히다 

첫째는 지상(智相)이니, 경계상에 의지하여 마음이 좋아하고 좋 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一者、智相。依於境界,心起分別愛與不愛故。 

(3-1-1-3-3-5222) 상속상를 밝히다 

둘째는 상속상(相續相)이니, 지상(智相)에 의지하기 때문에 고 락(苦樂)을 느끼는 마음을 내어 생각을 일으켜 상응하여 끊어지 지 않기 때문이다. 

二者相續相。依於智故生其苦樂,覺心起念相應不斷故。 

(3-1-1-3-3-5223) 집취상를 밝히다 

셋째는 집취상(執取相)이니, 상속상에 의지하여 경계를 반연 하여 생각하고 고락에 머물러서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 이다. 

三者、執取相。依於相續緣念境界,住持苦樂,心起著故。 

(3-1-1-3-3-5224)  계명자상을 밝히다 

넷째는 계명자상(計名字相)이니, 허망한 집착에 의지하여 가짜 명칭과 언설의 모양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四者、計名字相。依於妄執,分別假名言相故。 

(3-1-1-3-3-5225) 기업상을 밝히다 

다섯째는 기업상(起業相)이니 계명자상에 의지하여 이름을 따라 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의 업을 짓기 때문이다. 

五者、起業相。依於名字,尋名取著,造種種業故。 

(3-1-1-3-3-5226)  업계고상를 밝히다 

여섯째는 업계고상(業繫苦相)으로 업에 의한 괴로움에 얽매이 는 상이니, 기업상에 의지하여 과보를 받아 자재하지 못하기 때 문이다.

六者、業繫苦相。以依業受果不自在故。

(3-1-1-3-3-53)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을 총결하다

[진제29] 무명이 모든 염법을 내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 냐하면 모든 염법은 불각(不覺)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當知無明能生一切染法,以一切染法皆是不覺相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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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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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심 속에는 깨달음의 진여의 세계와 깨닫지 못한 생멸의 세 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세상은 버릴 것이 하나도 없고 있는 그대로가 부처입니다. 대승기신론에서는 우리가 추구하는 부처 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존재하는 형태 그대로가 부처임을 보 여주고 있습니다. 만약 선한 마음 70 악한 마음 30을 내면 70 만큼의 부처가 됩니다.

  깨달음의 세계도 있지만 깨닫지 못한 세계도 있습니다. 깨닫 지 못한 이 세계(불각의)는 어떻게 이루어져 있을까요. 근본불 각이 있습니다. 모든 것의 첫 출발점은 바로 무명입니다. 무명 이 중생들의 삶에 스며들어 모든 중생은 지말불각의 삼세와 육 추의 형태를 가지고 살아갑니다.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을 총결 해서 말하면 진여가 무명에 오염되면 생멸심이라는 것입니다.

  학문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주어진 내용을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으면 공부하기 수월합니다. 세상은 나와 나 이외의 대상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주관이면 대상은 객관이 되고, 내가 주체면 대상은 객체가 되고, 내가 견분이면 대상은 상분이 되고, 내가 능견이면 대상은 소견이 되고, 내가 능변이 되면 대 상은 소변이 되고, 내가 능의가 되면 대상은 소의가 되고, 내가 능취가 되면 대상은 소취가 되고, 내가 능연이 되면 대상은 소 연이 됩니다. 나를 주체로 할 때는 주, 견, 능이고 대상을 주체 로 할 때는 객, 상, 소가 됩니다. 어느 학문을 하건 주체와 객체 의 개념은 다 같습니다.

  앞서 불각에는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이 있다고 했습니다. 지 말불각에는 3세(細) 6추(麤)가 있으며 3세에는 업상(業相, 主客 未分), 능견상(能見相, 주관), 경계상(境界相, 객관)이 있고 6추에 는 지상(智相), 상속상(相續相), 집취상(執取相), 계명자상(計名 字相), 기업상(起業相), 업계고상(業繫苦相)이 있습니다. 3세 부 분은 제8식 아뢰야식의 내용입니다. 6추, 거친 것에는 지상(智 相)이 있는데, 이 지상은 아뢰야식을 바탕으로 내 생각, 분별심 의 뿌리인 제7식 말라식에 해당합니다. 나머지 5개의 거친 것은 전오식, 생기식(生起識), 제6식 의식에 해당합니다. 상속상은 현 재 의식을 가리킵니다. 집취상은 수, 계명자상은 상, 기업상은 행, 업계고상은 색에 해당합니다. 이것이 오온(五蘊)입니다. 유 식에서는 색수상행식이었는데 여기서는 순서가 약간 다릅니다. 이것은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와 같은 문제입니다.

  불교에서 시간적인 관점에서 존재에 대한 속성은 무상이었 고, 공간에 대한 존재에 대한 속성은 무아였습니다. 공간에서 모 양이 생기는 것들은 전부 다 오온을 근거로 해서 만들어집니다. 

그래서 불각에 대한 내용이 다른 것이 아니라 유식의 오온, 제6 식, 제7식, 제8식에 대한 설명들입니다.


  유식에서는 안혜 논사, 난타 논사, 진나 논사, 호법 논사의 견 해를 통해 아뢰야식을 어떻게 분석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안혜 논사는 아뢰야식을 일분(견분) 하나 밖에 없다고 주장했습니다. 난타 논사는 아뢰야식을 견분, 상분이라고 주장했고, 진나 논사 는 아뢰야식을 견분, 상분, 자증분이라고 설명했고, 호법 논사 는 견분, 상분, 자증분, 증자증분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 가운 데 안혜 논사와 호법 논사의 견해가 많이 받아들여지고 있습니 다. 3세 가운데 능견상, 경계상은 업상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에 안혜 논사는 일분 즉, 하나라고 주장했습니다. 빅뱅 이후 우주 가 생겨났다고 이야기하듯이 처음 분리되기 이전의 점을 업상 이라고 합니다. 여기서는 주관과 객관이 나누어지기 전입니다. 난타 논사는 객관과 주관이 분리되기 시작하는 상태에 주목했 기 때문에 견분, 상분으로 나누었습니다. 진나 논사는 여기서 더 나아가 견분과 상분 사이에서 둘을 조정, 관리하는 자증분이 있 다고 주장했습니다. 

  어떤 병에 걸렸을 때 무언가를 먹어도 낫지 않는 경우가 있습 니다. 여기서 먹는 것을 중지하면 스스로 치유되기 시작합니다. 이런 작용을 하는 것이 자증분입니다. 호법 논사는 이 세 가지 를 총괄적으로 관리하는 시스템적인 무언가가 있을 것이라 생 각해서 증자증분의 개념을 추가합니다. 자증분의 자가 치유 능 력이 한 부분에 해당한다면 증자증분은 전체 시스템에서 모든 

것을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것입니다. 낙동강의 원천을 알 아 보니 태백시 매동산 너덜샘에서 발원하여 황지연못에서 솟 아오르는 샘물이었습니다. 이와 같이 아뢰야식이 흘러 흘러 제 7식을 만들고 우리의 삶을 만들어냅니다. 우리에게는 큰 강과 같이 수많은 업들이 흐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 업들의 출발점이 아뢰야식입니다.


  “근본불각을 설하다. 불각(不覺)의 뜻은 진여법(일심)이 하나 임을 여실히 알지 못해 불각의 마음이 일어나서 망념이 있게 된 것이다. 그러나 망념은 자상(自相)이 없어서 본각을 여의지 않 지만, 방향을 잃은 사람은 혼미하게 된다. 만약 방향을 여읜다면 혼미함이 없어지는 것과 같다. 중생도 그와 같아서 각(覺)에 의 지하기 때문에 혼미하게 되지만, 만약 각의 성질을 여의면 불각 은 없어지게 된다.” 무명에 물들면 불각의 마음이 일어납니다. 망념이란 이 무명에 의해 일어나는 생각들입니다. 이것들이 진 여의 세계에서 불각의 세계로 넘어오게 만듭니다. 망념은 자상( 自相)이 없다는 뜻으로 주체적인 모양이 없다는 말입니다. 망념 은 기생해서 사는 그런 형태입니다. 본각(일심)이 물들면 불각이 되지만 본각 자체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래서 본각을 여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망념 자체는 주체적인 모양이 없기 때문에 본각과 같은 주체적인 하나의 모양이 없습니다. 원래 본각 하나 밖에 없습니다. 무명이 무엇인지 알고 깨우쳐버리면 본각이고 이것을 모르고 무명에 물들어 있으면 불각인 것입니다. 대승기 신론에서는 알든 모르든 중생도 부처의 세계에 있는 것을 말하

고 있습니다. 비록 내가 물들어 있지만 본각을 여의지 않았다는 부분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내 안에 그냥 본각이 있는 것 입니다. 우리가 중생마음을 일으키지만 그것의 원래 모양은 본 각이며 진여가 바탕에 깔려 있는 것입니다. ‘방향을 잃은 사람 은 혼미하게 된다. 만약 방향을 여읜다면 혼미함이 없어지는 것 과 같다.’ 이 말을 비유해서 설명하면 여러 가지 음식들이 있어 이 음식도 먹고 싶고 저 음식도 먹고 싶어 방향을 잃고 혼미해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음식 자체가 없어지면 혼미함도 없어집니 다. 방향이 있으면 방향을 잃을 수 있지만 방향이 없으면 방향을 잃을 것도 없습니다. 우리의 망념이 이러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각을 생각할 때 그 대상이 되는 불각이 있습니다. 하지만 각과 불각 자체를 생각하지 않으면 불각도 없어집니다. 우리는 견성 이나 진여와 같은 각을 생각하지만 사실은 있는 자체가 각이며 불각인 것입니다. 각과 불각은 원래 일심으로 하나다라는 생각 을 하면 불각에 의해 혼미해지는 일이 없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불각의 망상심이 있기 때문에 명칭과 의의[名義]를 알아서 진각(眞覺)이라고 말하는 것이니, 만약 불각의 마음을 여읜다면 진각의 자상(自相)도 없게 된다.” 우리는 불각이라는 망상심이 있기 때문에 명칭과 의의에 의해 진각이라고 말합니다. 불각이 있기 때문에 불각에 대응하는 진각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만 약 불각이 없어지면 우리가 진각이라고 설정하는 형태도 같이 없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이분법의 논리가 아니라 똑같이 하나 라는 말입니다. 만약 내가 견성한다는 다른 하나를 설정하면 견 성과 불각이 두 개로 나누어집니다. 하지만 원래 존재하는 것은 일심 하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분리된 이원의 세계가 아니라 오직 하나로써 모든 것이 회통하고 있음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지말불각을 설하다. 삼세를 밝히다. 아뢰야식은 다시 불각( 不覺)에 의지하기 때문에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의 세 가지 의 모양이 생겨서 불각과 더불어 상응하여 여의지 않는다. 육추 를 밝히다. 말라식과 의식은 경계의 연(緣)이 있기 때문에 다시 여섯 가지의 모양을 낸다. 지상, 상속상, 집취상, 계명자상, 기 업상, 업계고상이다.”

  처음 일으키는 그 마음, 그 상태를 아뢰야식으로 말할 수 있 습니다. 아뢰야식이 처음 생기는 것이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 상입니다. 근본불각에 어떤 불순한 오염된 망념이 일어나면 불 각과 상응하여 무명업상, 능견상, 경계상 이런 것들이 생겨납니 다. 이것들을 바탕으로 또 육추가 생겨나게 됩니다. 그것이 지 상, 상속상, 집취상, 계명자상, 기업상, 업계고상입니다. 이것들 이 제8식 아뢰야식, 말라식, 의식, 오온에 대한 설명이 됩니다.


  “무명업상(無明業相)을 밝히다. 불각에 의지하기 때문에 마 음이 움직이므로 업상이라고 한다. 깨달으면 움직이지 않고 움 직이면 괴로움이 있게 되니, 결과가 원인을 여의지 않는 까닭이 다.” 제8식 아뢰야식의 첫째 단계이며 유식에서 무부무기로 설 명하고 있습니다.

  끝없는 허공에 한 생각이 일어납니다. 이것이 제8식 아뢰야 식의 첫 출발점입니다. 끝없는 허공 속에 하나의 망념이 일어

나는 것이 바로 무명업상입니다. 깨닫고 알면 성성적적하지만 모르면 움직이고 요동합니다. 마음이 끝없이 요동하는 것은 무 명, 무지 때문입니다. 모르기 때문에 끝없는 번뇌망상을 일으킵 니다. 움직임으로부터 생노병사가 일어납니다. 깨닫고 움직이 지 않으면 생노병사를 아는 것이고 모르고 움직이면 끝없는 생 노병사 속에서 고통받으며 헤매는 것입니다. 이것이 불각으로 부터 출발해서 벌어지는 일들입니다. 무명이라는 점을 찍었기 때문에 괴롭고 생노병사를 끝없이 되풀이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공에 첫 망념이 일어나는 것이 무명업상입니다. 처음에 무 엇인가 움직임이 있기 시작하는 그 무명이며 제8식 아뢰야식의 첫째 단계로 일어나는 것입니다. 유식에서 제8식을 무부무기라 고도 합니다. 제8식 아뢰야식을 감지하는 것이 견성입니다. 마 음의 미세한 움직임을 아는 것입니다. 그래서 견성은 공부의 끝 이 아니라 시작입니다. 

  “능견상(能見相)을 밝히다. 움직임에 의지하기 때문에 능히 볼 수 있게 되며, 움직이지 않으면 보이는 것이 없다.” 제8식 아 뢰야식의 두 번째 단계입니다. 무명업상은 나와 대상, 주관과 객 관이 나누어지기 전의 상태입니다. 그 다음 주체적으로 생각을 일으키게끔 주체적인 형상을 만들게 하는 것이 능견상입니다. 움직이지 않고 적적하면 눈에 안띄이는데 움직이면 보입니다. 이 능견상은 움직임에 의지하기 때문에 보입니다. 모든 것은 움 직여야 보이는데 성성적적한 삼매에 들면 그 무엇이라도 볼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이 조금이라도 움직인다면 귀신이나 저승사 자같은 초자연적 존재들이 그것을 감지할 지도 모릅니다. 삼매에 들면 마음이 움직이지 않기 때문에 보이지 않게 되고 이러한 상태가 견성입니다.

  “경계상(境界相)을 밝히다. 능견상(能見相)에 의지하기 때문 에 경계가 허망하게 나타나므로 능견(能見)을 여의면 경계가 없 어지게 된다.” 제8식 아뢰야식의 세 번째 단계입니다. 여기서는 주관에 의해 대상이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하지만 주체가 삼매 에 들면 대상은 없어지게 됩니다. 나의 마음이 움직이면 세상도 따라 존재하지만 내가 삼매에 들어 능견을 여의게 되면 보이는 모든 대상, 경계가 없어지게 됩니다. 이것들은 근본의 마음에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근본의 마음에서도 이 세상에 보이는 세 계와 똑같은 상황이 벌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상(智相)을 밝히다. 첫째는 지상이니 경계상에 의지하여 마음이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음을 분별하기 때문이다.” 제7식 말라식이며 유부무기 입니다. 하나의 점이 점점 진해져서 형상 을 이루고 완벽한 형상을 이루게 됩니다. 이런 완벽한 형상을 이 루게 된 상태가 경계상입니다. 그것이 투영되는 것이 제7식입니 다. 여기서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는 분별하는 마음이 생깁니다. 물들어 있는 상태가 됩니다. 우리가 내는 분별심은 모두 물든 유 부의 상태에서 나오는 것들입니다. 내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쌓았던 업이 좋아하면 좋아한대로 물들어 저장되고, 싫어하면 싫어한대로 물들어 저장됩니다. 그래서 이 생에 좋아하는 쪽으 로 부딪히면 좋아하는 마음을 일으키고 싫어하는 쪽으로 부딪 히면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킵니다. 우리가 똑같은 사람을 보고 다른 마음을 일으키는 것도 이러한 것입니다. 이것은 상대방 때 문이 아니라 자기 속의 업 때문에 일어납니다. 자신의 업의 작용 에 의해 다른 사람을 보고 마음에 들거나 이야기를 해보고 마음 에 들기도 합니다. 부처님 공부를 하고 수행을 하자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을 내는 것은 그에 대한 요소가 있는 것입니다. 전생에 공부했던 흔적이 있기 때문에 그런 마음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말라식을 넘으면 색수상행식 오온이 나옵니다. 오온은 불교 에서 중요한 내용입니다. 색(色)은 루파이며, 변할 가능성이 있 는 것을 보고 변하지 못하도록 집착하는 것입니다. 무지, 아집입 니다. 근본적인 집착입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지 만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여기서 변하지 못하도록 집착 하게 하는 것이 아집이며 색입니다. 수(受)는 뒤바뀌려는 느낌, 감수작용입니다. 세상은 변하고 있는데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 해서 변하면 불안해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집에서 일어나는 생각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변화를 못 보기 때문에 죽지 않는다 고, 늙지 않는다고 착각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죽을 날이 멀었다고 생각하고 공부를 하지 않습니다. 내가 내일 죽는다고 가정해보십시오. 그러면 생각이 달라질 것입니다. 오온에서 불 안과 공포는 근본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이것은 견성해서 진 여를 본 순간 없어집니다. 진여를 보면 우리는 변화 속에 있음을 압니다. 하지만 아집에 휘둘리면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그런데 대상을 보면 변하고 있기 때문에 근본 적으로 불안한 마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그 불안을 극복하기 위해서 주변에 있는 것들을 갖다 붙힙니다.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하는 자신과 주변을 하나로 만들어버 려 대상도 변하지 않는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이 자기화입니다. 모든 세포가 자기복 제이듯이 우리 생각도 자기복제를 끝없이 합니다. 생각하고 분 별하고 판단하면서 정신적으로 복제를 합니다. 자기화 하는 과 정에서 내가 갖고 있는 업만큼 육신을 만들어 냅니다. 나의 형 상이 바로 내 업의 형상입니다. 만약 다음 생애에 잘 생겨지려 면 선업을 쌓아야 하고 악업을 줄여야 합니다.

  상(想)은 뒤 바뀌어서는 안된다고 하는 것으로 표상작용입 니다. B는 B, A는 A인데 ‘하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상은 samjna(상즌냐)로 이 말은 합쳐서 판단하다, 하나로 판단하다 는 뜻입니다. sam이 ‘하나로’ jna가 ‘판단하다’는 뜻입니다. 나 와 대상이 분리되어 있던 것을 하나로 합쳐서 판단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 행, 식 이런 것들의 끝없는 작용이 우리의 분별, 생각을 만들어냅니다.

  행(行)은 상스카라로 이것은 ‘하나로 만들어진’이란 뜻입니 다. 상은 ‘하나로’, 스카라는 ‘만들다’는 뜻입니다. 행은 하나로 만들어야겠다고 생각을 일으킨 뒤에 실제로 행동을 일으켜 하 나로 만드는 것입니다. 행위작용입니다. 결합생성작용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존재를 유위법(有爲法)이라고 하셨습니다. 위(爲)는 서로 다른 B와 A를 하나로 만들려고 하는 것입니다. 상(想)은 하나로 만들려고 생각하는 것이고 행(行)은 움직여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것입니다. 하나로 만들어진 것이 우리의 의식으로 나타납니다.

  식(識)은  뷔즌야나(Vijnana)로  Vi는  ‘다르게’라는  뜻이고 jnana는 ‘알다’는 뜻입니다. 식은 변화의 전후법을 다르게 인식 하는 것으로 분별작용입니다. A법과 B법이 한몸이 됨으로써 이 전의 구조와 차이를 보이게 되는데 B를 중심으로 A를 끌어붙입 니다. 이것이 ‘떠올라버림’이 되고 ‘나’가 됩니다. ‘나’를 중심으 로 끌어모으는 것을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취는 끌어모으려는 힘입니다. 그래서 이 몸이 업만큼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색수상 행식의 덩어리를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식이 분화되어 6식, 7 식, 8식으로 나눈 것입니다.


  “상속상(相續相)을 밝히다. 둘째는 상속상이니 지상(智相)에 의지하기 때문에 고락(苦樂)을 느끼는 마음을 내어 생각을 일으 켜 상응하여 끊어지지 않기 때문이다.(제6식, 의식)” 우리는 분 별, 생각을 끝없이 일으킵니다. 상속하지 않는 순간 우리의 육체 는 죽은 것입니다. 끝없이 일어나는 이것을 의식이라고 합니다. 

  “집취상(執取相)을 밝히다. 상속상에 의지하여 경계를 반연하 여 생각하고 고락에 머물러서 마음에 집착을 일으키기 때문이 다.(수)” 이것은 느낌에 대한 설명입니다. 집취상은 느낌(수)을 모으는 것입니다. 애욕을 일으키는 첫 출발이 느낌(수)입니다. 색수상행식은 마음 작용의 근본 바탕을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 는 느낌이 좋은 것은 계속 하려고 하고 느낌이 안 좋은 것은 밀 어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애욕입니다. 애욕은 느낌(수)로부터 출발하여 모으려고 합니다. 수 다음에 취가 옵니다. 취는 좋으 니까 모아서 내 곁에 두려고 하는 것입니다. 

  “계명자상(計名字相)을 밝히다. 허망한 집착에 의지하여 가짜 명칭과 언설의 모양을 분별하기 때문이다.(상)” 수에 의해 모양 을 만듭니다. 이름과 모양을 만드는 것이 계명자상입니다. 어떤 느낌이 생기면 느낌에 의해서 이름도 만들고 모양도 만드는데 이것이 상입니다.

  “기업상(起業相)을 밝히다. 계명자상에 의지하여 이름을 따라 가면서 집착하여 여러 가지의 업을 짓기 때문이다.(행)” 업을 일 으키는 것입니다. 내 속에 있는 것들이 움직이고 활동하기 시작 하는 것입니다.

  “업계고상(業繫苦相)을 밝히다. 업에 의한 괴로움에 얽매이는 상이니, 기업상에 의지하여 과보를 받아 자재하지 못하기 때문 이다.(색)” 각자의 모양이 만들어지는 것이 색입니다. 자기의 모 양을 끝도 없이 만들어냅니다.

이와 같은 3세와 6추의 설명은 아뢰야식과 말라식, 의식, 오 온에 대한 것입니다. 유식의 내용을 통해 자세하게 다룬 내용을 여기서는 비교적 간단하게 살펴보았습니다.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을 총결하다. 무명이 모든 염법을 내는 것을 마땅히 알아야 한다. 왜냐하면 모든 염법은 불각(不覺)의 모양이기 때문이다.” 12연기에서 무명이 일어나는 첫 움직임입 니다. 허공에 한 생각 일어나는 무명이 모든 것을 내는데 이것 이 12연기의 첫 회전입니다. 근본불각과 지말불각을 나누어서 설명했지만 근본적으로 무명으로 총결됩니다. 무지, 아집에 대 해 알면 부처고 이것을 모르면 중생입니다. 우리는 무지하기 때

문에 끝없는 아집 속에서 살아갑니다. 이것이 나(중생)입니다. 중생이나 부처가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이 바로 일심(一心)입니 다. 그래서 이 세상은 존재하는 그대로 부처 세상입니다. 어두 운 곳에 불을 켜면 밝아집니다. 밝음과 어두움이 따로 있는 것 이 아니라 그냥 같은 것입니다. 불이 있으면 밝았다가 불이 없 으면 어두운 것뿐입니다. 그래서 관점에 따라 이 세상은 부처세 계이기도 하고 지옥이기도 합니다. 있는 것은 그냥 그대로 존재 합니다. 이왕이면 부처세계에서 사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진 리를 알면 우리가 걷는 한 발자국이 그 의미가 달라집니다. 그 자체가 거룩해지고 어마어마해집니다. 무명을 깨트리고 거룩한 생각을 하는 순간 이 세상은 바뀌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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