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3강 심생멸의 모양
페이지 정보
본문
제13강
(3-1-1-3-4) 심생멸의 모양을 해석하다
(3-1-1-3-4-1) 추세생멸의 모양을 설하다
[진제2] 또한 생멸상(生滅相)을 분별하여 두 가지가 있다.
첫째 추(麤)는 거친 번뇌이니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며, 둘째는 세 (細)로서 미세한 번뇌이니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는다. 또 거친 중에 거친 번뇌는 범부의 경계이며, 거친 가운데 미세한 번뇌와 미세한 가운데 거친 번뇌는 보살의 경계이며, 미세한 가 운데 미세한 번뇌는 부처의 경계이다.
復次,分別生滅相者,有二種。云何為二?一者、麁,與心相 應故。二者、細,與心不相應故。又麁中之麁,凡夫境界;麁 中之細及細中之麁,菩薩境界;細中之細,是佛境界。
(3-1-1-3-4-2) 추세생멸의 뜻을 설하다
[진제43] 이 두 가지 생멸(生滅)이 무명의 훈습에 의지하니, 이 른바 인(因)에 의지하고 연(緣)에 의지한다. 인에 의지한다는 것 은 불각의 뜻이고, 연에 의지한다는 것은 망령되이 경계를 짓는 뜻이다.
만약 인이 멸하면 연도 멸하는 것이며, 인이 멸하기 때문에 불상 응심(不相應心)이 멸하고 연이 멸하기 때문에 상응심(相應心)이 멸하는 것이다.
묻기를, "만약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속하며, 상속한다면 어떻게 멸하는지 말할 수 있겠는가?"
답하기를, "멸한다는 것은 오직 심상(心相)만 멸하는 것이며 심 체(心體)가 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람이 바닷물에 의지하여 움직이는 모양인 파도를 만드는 것처럼, 만약 바닷물이 없어지면 바람의 모양이 끊어져서 의지 할 바가 없어서 그치겠지만(파도는 없어지지만) 바닷물이 없어 지지 않으므로 바람의 모양은 상속하는 것이다.
오직 바람이 멸하기 때문에 물의 움직임인 파도도 따라서 멸하지 만 바닷물이 멸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다.
무명도 또한 그러하여 심체에 의지하여 움직이지만, 만약 심체 가 멸하면 중생이 끊어져서 의지할 바가 없지만 심체가 멸하지 않으므로 마음이 상속하는 것이며, 오직 무명만 멸하기 때문에 심상이 따라서 멸하지만 심지(心智)가 멸하는 것은 아니다." 此二種生滅,依於無明熏習而有,所謂依因、依緣。依因者, 不覺義故;依緣者,妄作境界義故。若因滅則緣滅,因滅故不 相應心滅,緣滅故相應心滅。
問曰:「若心滅者,云何相續?若相續者,云何說究竟滅?」 答曰:「所言滅者,唯心相滅,非心體滅。如風依水而有動 相。若水滅者,則風相斷絕無所依止。以水不滅,風相相續, 唯風滅故動相隨滅,非是水滅。無明亦爾,依心體而動,若心 體滅,則眾生斷絕無所依止。以體不滅,心得相續,唯癡滅故 心相隨滅,非心智滅。」
(3-1-1-3-5) 제법의 발생을 재차 해석하다
(3-1-1-3-5-1) 염정훈습을 함께 설하다
大乘起信論 講說 _ 235
[진제44] 네 가지 법의 훈습하는 뜻이 있기 때문에 염법(染法)과 정법(淨法)이 일어나 끊어지지 않는 것이다.
復次,有四種法熏習義故,染法、淨法起不斷絕。云何為四? (3-1-1-3-5-11) 진여훈습을 밝히다
첫째 청정한 법이니 진여훈습이라 말한다. 一者、淨法,名為真如。
(3-1-1-3-5-12) 무명훈습을 밝히다
둘째 일체 오염의 원인이니 무명훈습이라 말한다. 二者、一切染因,名為無明。
(3-1-1-3-5-13) 업식훈습을 밝히다
셋째 허망한 마음이니 업식훈습이라 말한다. 三者、妄心,名為業識。
(3-1-1-3-5-14) 육진훈습을 밝히다
넷째 망경계(妄境界)니 육진(六塵)훈습이라 말한다. 四者、妄境界、所謂六塵。
(3-1-1-3-5-2) 훈습의 뜻을 설하다
[진제45] 훈습의 뜻이란 마치 세간의 의복이 실제는 향기가 없 지만 만약 사람이 향기로 훈습하면 그로 인해 향기가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진여의 청정한 법은 실제로 오염(染)이 없지만 다만 무명으로 훈습하기 때문에 곧 오염된 모양이 있고, 무명염법(無 明染法)은 실제로 청정한 업이 없지만 다만 진여로 훈습하기 때 문에 청정한 작용이 있다.
熏習義者,如世間衣服實無於香,若人以香而熏習故則有香氣。此亦如是,真如淨法實無於染,但以無明而熏習故則有染 相。無明染法實無淨業,但以真如而熏習故則有淨用。
----------------------
대승기신론 강설_13
----------------------
훈습에 대해서 공부해보겠습니다. “심생멸의 모양을 해석하 다. 추생멸, 심생멸이 있다.” 추는 거칠고 드러나는 것입니다. 심 은 깊은 것입니다. 이것을 구체적으로 봅시다.
“추세생멸상이다. 추(麤)는 거친 번뇌이니 마음과 더불어 상 응하며, 세(細)는 미세한 번뇌이니 마음과 더불어 상응하지 않 는다. 또 거친 중에 거친 번뇌는 범부의 경계이며, 거친 가운데 미세한 번뇌와 미세한 가운데 거친 번뇌는 보살의 경계이며, 미 세한 가운데 미세한 번뇌는 부처의 경계이다.” 여기서 거친 번 뇌라는 것은 우리가 느끼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쉽 게 이야기하면 제7식까지는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삶,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생각과 직접 관계되어 있는 것입니다. 내가 일으 키는 생각의 뿌리는 제7식입니다. 내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내 유전자, 저장창고에 저장된 흔적들이 ‘나’라고 생각하게 만들고 판단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러한 것들이 거친 것 추(麤)입니다. 마음과 더불어 상응한다는 말은 지금 내가 일으키는 생각과 같 은 것을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내가 지금 일으키는 생각은 본성이 오염되어 일으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본성에 오염된 색 깔이 입혀진다면 그 색깔이 입혀진 본성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 는 것입니다. 만약 깨우치고 견성하면 본성 그대로를 내놓을 것 입니다. 우리 중생은 평생 제7식과 똑같은 생각을 내놓듯이 자 식도 내 자신의 업에 의해 비슷한 자식을 낳습니다. 인연에 의 해 가장 가까운 사람에게 찾아옵니다. 부모 자식 인연은 뗄 수 가 없습니다.
세(細)는 제8식 아뢰야식의 영역으로 오염된 업과 상응하지 않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거친 중에 거친 번뇌’는 일반적으로 일으키는 모든 생각입니다. ‘거친 가운데 미세한 번뇌’, ‘미세한 가운데 거친 번뇌’는 보살의 경계로 제8식 아뢰야식을 본 사람, 견성한 사람입니다. 처음 시작하는 본질은 미세한 가운데 미세 한 것입니다. 그 거대한 황하강의 근원을 살펴보면 히말라야산 중턱에서 솟는 작은 샘에서 흘러나온 물로 시작됩니다. 무명을 일으키는 그 하나의 점 그것이 미세하고 미세한 것입니다. 그것 을 알려면 부처의 경계에 가야 합니다.
“추세생멸의 뜻을 설하다. 두 가지 생멸(生滅)이 무명의 훈습 에 의지하니, 이른바 인(因)에 의지하고 연(緣)에 의지한다. 인 에 의지한다는 것은 불각의 뜻이고, 연에 의지한다는 것은 망령 되이 경계를 짓는 뜻이다.”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생멸합 니다. 내 생각도 생했다가 멸하고 이 우주도 생했다가 멸합니다. 이것은 무명의 훈습에 의해 생멸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인 연과 연기가 있습니다. 바로 부처님이 깨우치신 내용이 연기입니다. 연기를 거시적으로 표현하면 다른 것이 아니라 인과법칙 입니다. 이것을 풀어쓰면 인연과법칙입니다. 인은 주체적인 원 인이라면 연은 비교적 부수적인 것입니다. 이 인연이 합해져서 과(果)를 일으킵니다. 만약 땅에 수박씨를 심는다고 했을때 수 박씨는 인이고 땅은 연에 해당합니다. 수박이 열리는데 이것이 과입니다. 하지만 땅이 비옥하면 수박이 잘 열릴 것이고 척박하 면 잘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씨앗이 상태가 안 좋으면 아무리 땅이 비옥해도 잘 열리지 않을 것입니다. 인이 직접적으로 크게 작용하고 연은 부수적으로 적게 작용합니다. 중생은 어리석게 도 남 탓을 많이 합니다. 문제의 본질은 자신에게 있습니다. 자 신이 바뀌면 문제해결은 쉽습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본인은 맞 다고 생각하여 죽어도 자신을 바꾸지 않습니다. 자꾸 상대방을 바꾸려고 합니다. 내가 바뀌면 세상은 그냥 바뀌어 버립니다. 여 기서 본인은 인이고 남은 연인 것입니다. 우리는 상대방이 마음 에 들지 않으면 상대방을 바꾸려고 합니다. 하지만 자신의 관점 을 바꾸어서 상대방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문제는 해결됩 니다. 불편한 점이 사라집니다. 이렇게 되면 상대방이 바뀌기 시 작합니다. 묘한 이치입니다. 집착, 탐욕, 무지를 멈추면 상대방 의 진가가 나름 드러날 것입니다. 그래서 내가 부처가 되면 이 세상은 전부 다 부처인 것입니다. 이 세상에 마음에 안 드는 것 이 하나도 없습니다. 그렇게 되면 모든 생명에게 끝없는 자비를 베풀 수 있습니다. 이것은 7지보살 이상의 단계입니다. 내가 인 이라면 내 주변의 모든 것은 연입니다. 우리는 남에게 책임을 미 루고 핑계를 대지만 결국 그것은 본인의 의지가 없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입니다. 죽지 않는 한 의지가 있으면 할 수 있 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인은 가만히 놔두고 연만 핑계대고 있는 것입니다. 무명에 물들어 불각의 상태에 있습니다. 불각의 상태 에 있으면 끝없이 경계를 일으킵니다. 무명 때문에 불각의 상태 에 있는 것은 인이고 불각의 상태에서 끝없이 경계를 일으키는 것은 연입니다. 인이 주체, 나, 뿌리라면 연은 주체에 의해 일어 나는 작용들, 대상, 가지 줄기입니다.
“만약 인이 멸하면 연도 멸하는 것이며, 인이 멸하기 때문에 불상응심(不相應心)이 멸하고 연이 멸하기 때문에 상응심(相應 心)이 멸하는 것이다. 묻기를, ‘만약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 속하며, 상속한다면 어떻게 멸하는지 말할 수 있겠는가?’” 인이 멸하면 연도 멸하기 때문에 중요한 것은 나이지 대상이 아닙니 다. 하지만 중생들은 생각이 평생 연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괜찮은데 대상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결국 원인은 본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주어진 것 중에서 잘못된 것이 있으면 불평합니다. 잘된 것이 있으면 불평하지 않습니다. 끝없는 긍정 이란 원인을 자신에게 찾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렇게 되면 상 대방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존중해줍니다. 다시 인이 멸하면 연도 멸한다는 말로 돌아가서 뿌리가 죽으면 다 죽습니다. 주체 가 소멸하면 주위의 대상은 없습니다. 인이 멸하면 제8식 불상 응심이 없어집니다. 무명의 뿌리가 없어지면 나의 본성을 볼 수 있습니다. 연이 멸하면, 일어나는 경계, 작용들을 세세히 알면 상응심 제7식, 제6식 이것들이 없어집니다. 멸한다는것은 결국 아는것과 같은 말입니다. 만약 누가 부처가 무엇인가 묻는다면 “누군가 내 앞에 있네.”도 되고 “이 스크린 화면이 누구 앞에 있 네.”도 될 것입니다. 7 곱하기 7은 49도 맞고 6 곱하기 6은 36 도 맞는 것입니다. 우리가 뿌리를 보면 즉 견성을 하면 뿌리를 알게 됩니다. 알면 다 맞지만 모르면 다 틀린 답입니다. 그래서 불상응심이 멸한다고 하는 것은 제8식 아뢰야식을 알아서 견성 하는 것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일으키는 모든 번뇌와 망상, 집착을 멸하면 깨달음의 세계로 나아갈 수도 있습니다. ‘마음이 멸한다면 어떻게 상속하며, 상속한다면 어떻게 멸하는지 말할 수 있겠는가?’에서 마음이 멸해도 마음의 뿌리까지 멸한 상태는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답하기를 ‘멸한다는 것은 오직 심상(心相)만 멸하는 것이며 심체(心體)가 멸하는 것이 아니다. 이는 바람이 바닷물에 의지 하여 움직이는 모양인 파도를 만드는 것처럼, 만약 바닷물이 없 어지면 바람의 모양이 끊어져서 의지할 바가 없어서 그치겠지 만(파도는 없어지지만) 바닷물이 없어지지 않으므로 바람의 모 양은 상속하는 것이다. 오직 바람이 멸하기 때문에 물의 움직임 인 파도도 따라서 멸하지만 바닷물이 멸하는 것이 아닌 것과 같 다.’” 심상은 마음이 갖고 있는 모양입니다. 심체는 마음의 체로 뿌리에 해당합니다. 멸한다고 했을 때 내가 일으키는 모든 생각 들의 모양들만 없어지는 것이지 뿌리가 멸하는 것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바람은 일반적으로 고기압과 저기압 때문에 일어나 는 공기의 움직임을 말합니다.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흘 러가듯이 공기도 기압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움직이게 되 고 이것이 바람입니다. 만약 어떤 곳에 바람이 분다고 한다면 고기압과 저기압이 형성되어서 부는 것입니다. 이 바람 때문에 바 닷물이 파도를 일으켜 철썩철썩 바위를 칩니다. 바람이 없다면 물결이 일렁여 파도를 일으켜 물결을 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바람이 안 불면 바닷물만 있고 파도가 없는 것처럼 느껴질 것입 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바닷물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바로 심상만 없어지는 것이지 심체가 없어지지 않는다 는 것을 비유해서 나타낸 것입니다. 이 우주에 충만해있는 일심 은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무명도 또한 그러하여 심체에 의지하여 움직이지만, 만약 심 체가 멸하면 중생이 끊어져서 의지할 바가 없지만 심체가 멸하 지 않으므로 마음이 상속하는 것이며, 오직 무명만 멸하기 때문 에 심상이 따라서 멸하지만 심지(心智)가 멸하는 것은 아니다.” 마음이 멸한다는 것은 심상만 없어지는 것이지 심체가 멸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람이 없으니 파도만 없는 것처럼 보이지 바다 가 없어진 것은 아닙니다. 바람이 비유하는 무명이 없어지면 심 상은 멸하지만 심체, 일심은 그대로 있다는 말입니다. 일심은 없 어지고 생기는 것도 아니고 그냥 있을 뿐입니다.
결국 바닷물은 본체, 자성청정심을 의미하고 파도는 지성을 의미하고 바람은 무명을 의미합니다. 바람이 불면 파도가 칩니 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으면 파도가 치지 않습니다만 바닷물 이 있는 한 바람이 불면 또 파도가 칩니다. 무명풍에 의해 우리 몸이 생기고 여러 가지가 생겨나지만 본체, 청정한 본래 마음은 그냥 그대로 있을 뿐입니다. 우리 각자는 물들어 있는 모습입니 다. 무명에 의해 물들어 있지만 본체, 일심은 없어지지 않고 우주에 충만해 있을 뿐입니다.
“제법의 발생을 재차 해석하다. 정법(淨法)은 깨끗한 법으로 진여훈습이 있다. 염법(染法)은 물든 법으로 무명훈습, 업식훈 습, 육진훈습이 있다.” 제법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법입니 다. 부처님께서 깨우친 것은 연기입니다. 연기를 이루고 있는 내용은 무상과 무아입니다. 부처님 뿐만 아니라 이 세상 그 누 구도 깨우치면 무상과 무아입니다. 그래서 진리는 누가 깨우쳐 도 똑같은 것입니다. 부처님은 이 진리를 불교라는 종교로 만들 어냅니다. 불교의 첫 출발점은 연기입니다. 바로 무상과 무아입 니다. 무상은 불교가 되면서 제행무상이 됩니다. 이 세상에 형 상을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무상합니다. 일정한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모두 언젠가는 변하고 허물어집 니다. 생멸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존재하는 모든 것은 고(苦)라 고 하셨습니다. 깨달음의 목적은 고(苦)에서 벗어나서 락(樂)으 로 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는 목적입니다. 무아는 불교가 되면 제법무아가 됩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에는 ‘나’라고 하는 독립적인 성품은 없습니다. 전부 다 일심이라 분 리된 것이 아니라 하나인 것입니다. 진리를 깨치고 나니 모두 일 심인 것입니다. 모를 때는 다 각자입니다. 깨우치고 나니 모두의 본래 성품은 하나라는 것입니다.
정법이란 물들기 전의 청정한 본래 성품과 같은 깨끗한 법입 니다. 이것은 깨달음의 세계인 진여입니다. 깨우친 상태에서는 그 어떤 행위도 진여를 따르기 때문에 진여가 훈습되지 무명은
훈습되지 않습니다. 염법은 물든 법입니다. 여기에는 근본 무지 인 무명이 훈습되는 무명훈습과 제8식 아뢰야식에 물드는 업식 훈습과 안이비설신의 육근의 대상인 육진[색성향미촉법]이 훈 습되는 육진훈습이 있습니다. 육진훈습은 대상에 의해 물드는 것입니다. 내 눈을 통해 무언가를 보면 물들고, 귀를 통해 무언 가를 들으면 물듭니다. 제6식, 제7식 훈습이 육진훈습이 되고 제8식 훈습이 업식훈습이 되어 그 뿌리가 무명훈습입니다.
“훈습의 뜻을 설하다. 훈습의 뜻이란 마치 세간의 의복이 실제 는 향기가 없지만 만약 사람이 향기로 훈습하면 그로 인해 향기 가 있는 것과 같다. 이와 같아서 진여의 청정한 법은 실제로 오염 [染]이 없지만 다만 무명으로 훈습하기 때문에 곧 오염된 모양이 있고, 무명염법(無明染法)은 실제로 청정한 업이 없지만 다만 진 여로 훈습하기 때문에 청정한 작용이 있다.” 원래 옷은 아무런 향 기가 없는데 입는 사람에 따라 향기가 달라집니다. 이것이 훈습 입니다. 이와 연관된 부처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길 을 가시다가 길에 떨어진 종이를 보시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주워 보라고 했습니다. 주워보니 비린내가 나는 고기를 쌌던 종이였습 니다. 좀 더 걸어가다 보니 다른 종이가 떨어져 있어 그것도 주워 보라고 합니다. 주워보니 향기가 나는 향을 싼 종이였습니다. 우 리의 삶도 그렇게 훈습되는 것입니다. 내가 공부하고 수행하면 그 것이 훈습되어 맑고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악한 행동을 하고 남에 게 피해를 주면 그것이 훈습되어 탁하고 비린내가 나는 것입니다. 내가 살아가는대로 향기가 날 뿐입니다. 원래 우리는 청정법신인 데 무명에 의해 훈습되기 때문에 오염된 모양이 있습니다. 우리는 진여로 훈습하기도 하고 무명으로 훈습하기도 합니다.
훈습에 관련된 이야기를 살펴봅시다. 잡아함경 제5권 처마경 을 보면 케마 비구의 이야기가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코삼비의 고시타 정사에 있을 때 케마 비구는 큰 병으로 엄청난 고통을 겪 고 있었습니다. 케마 비구가 자신의 통증에 대해 비유하기를 ‘ 힘 센 역사가 잔약한 사람을 붙잡아 노끈으로 머리를 동여매어 두 손으로 세게 조이면 그 고통이 심하지마는 내가 지금 겪은 고 통은 그보다 더하다.’고 했습니다. 케마 비구가 이렇게 고통 속 에 있으니까 장로들이 병문안을 옵니다. 장로들이 말합니다. “부 처님께서 무아라고 했는데 왜 이렇게 아프십니까?” 케마 비구는 “아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케마 비구 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나도 또한 그와 같습니다. 물질이 곧 나가 아니요, 그렇다고 나는 물질을 떠난 것도 아니며 느낌, 생 각, 행, 의식이 곧 나가 아니요 그렇다고 나는 그것들을 떠난 것 도 아닙니다. 그런데 나는 다섯 가지 쌓임(오온)에서 그것은 나 도 아니요 내 것도 아니라고 보지마는 아직 나라는 교만과 나라 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끊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 도 못하고 뱉어버리지도 못합니다. 여러 장로님은 내 말을 들으 십시오. 무릇 지혜로운 사람은 비유로 말미암아 이해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유모(乳母)의 옷을 빨래 방에 주면 여러 가지 재물로 때를 빼지만 남은 냄새가 있을 때에는 여러 가지 향 기를 써서 그 냄새를 없애는 것과 같습니다. 이와 같이 많이 아는 거룩한 제자들은 다섯 가지 쌓임(오온)을 떠나 그것은 나가 아니 요 내 것도 아니라고 바르게 관찰하지만 그 다섯 가지 쌓임에서 아직 나라는 교만과 나라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를 끊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며 떠나지도 못하고 뱉어버리지도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시 다섯 가지 쌓임(오온)에 대해서 생각을 더욱 더해서 그것들의 나고 멸하는 것을 관찰해 보는 것입니다. 즉 ‘이것은 물 질이요 이것은 물질의 모임이며 이것은 물질의 멸함이다. 이것 은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요, 이것은 그것들의 모임이며 이 것은 그것들의 멸함이다.’라고. 그래서 그 다섯 가지 쌓임(오온) 에 대해서 나고 멸하는 것을 관찰한 뒤에는 나라는 교만과 나라 는 욕심과 나라는 번뇌가 모두 없어집니다. 이것을 진실한 바른 관찰이라 합니다.” 이 말을 듣고 장로들이 납득을 하게 됩니다.
여기서 나오는 나, 느낌, 생각, 지어감, 의식이 색수상행식입 니다. 유모의 옷은 빨아도 냄새가 남아 있듯이 우리가 열심히 수 행해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러도 때를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 합니다. 완전히 때를 벗어버리지 못하면 내가 고통을 느낄 수 있 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훈습의 모양은 크게 염훈습과 정훈습이 있습니다. 염훈습은 오염된 훈습이고 정훈습은 깨끗한 훈습입니다. 염훈습에는 망 경계훈습, 망심훈습, 무명훈습이 있습니다. 망경계훈습에는 증 장념훈습, 증장취훈습이 있습니다. 증장념훈습은 생각을 자꾸 증장시키는 훈습이고 증장취훈습은 집착을 자꾸 증장시키는 훈 습입니다. 망심훈습에는 업식근본훈습, 증장분별사식훈습이 있 습니다. 업식근본훈습은 제8식 아뢰야식에 훈습하는 것이고, 증장분별사식훈습은 제7식 말라식을 증장시키는 훈습입니다. 무명훈습에는 근본훈습, 소기견애훈습이 있습니다. 근본훈습은
뿌리가 되는 훈습이고, 소기견애훈습은 생각, 애욕을 증장시키 는 훈습입니다. 정훈습은 망심훈습과 진여훈습이 있습니다. 망 심훈습에는 분별사식훈습과 의훈습이 있습니다. 진여훈습은 자 체상훈습과 용훈습이 있습니다. 여기도 체상용이 있습니다. 존 재하는 모든 것은 체상용의 구조입니다. 뿌리(본체), 모양, 작용 이 있습니다. 본체, 본질(체)과 모양(상), 살아가는 방법, 생각( 용)입니다. 여기에 망심훈습이 두 개가 나옵니다. 오염된 망심 훈습은 점점 더 우리를 집착하게 하고 아집에 빠지게 합니다. 하 지만 깨끗한 망심훈습은 오염된 것으로부터 우리를 떠나게 하 는 것입니다.
*머리 식히면서 한번 보기
이번에는 천도재에 대해 알아봅시다. 천도재의 재(齋)는 깨끗 하게 한다는 뜻이지 제사의 제(祭)를 쓰지 않습니다. 천도재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사십구재는 죽음 직후 좋은 곳으로 인도하기 위하여 지내는 재이고 천도재는 백중이나 수 시로 죽은 자를 위하여 지내는 재입니다. 사십구재는 일생에 단 한 번을 지내고 나머지는 천도재라 보시면 됩니다. 사십구재는 도통한 도인이 지내주면 제일 좋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안된다 면 지극한 정성으로 지내주면 됩니다. 깨달은 마음이 아니면 지 극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지내주면 좋습니다. 재를 지내주는 승 려의 역할도 중요하지만 당사자들이 간절히 비는 것도 중요한 것입니다. 천도재는 조상이나 가까이는 부모, 조부모를 위해 좋 은 곳에 좋은 인연으로 태어나라고 지내는 재입니다. 이것은 보통 백중 때 지냅니다. 그 이유는 수행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가장 집결될 때이기 때문입니다. 백중의 천도재는 우주의 기운이 가 장 맑게 열릴 때 합니다. 재를 잘 지내면 안되던 일도 잘 풀릴 때 가 있습니다. 조상을 위해 지내는 것인데 본인에게 그 효과가 오 는 것이 이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을 기준으로 업의 상 관관계 속에서 나는 아버지를 닮아 나옵니다. 그리고 아버지는 할아버지를 닮아 나옵니다. 이렇게 위로 죽 올라갑니다. 그래서 조상 중에 나와 같은 조상이 있을 수 있고 내 후손 중에서 내 조 상과 같은 사람들이 나옵니다. 천도재는 결국 자기 자신에게 기 도를 올리는 것입니다. 나와 조상은 결국 하나입니다. 사람은 환 생을 해도 마음이나 기운 등은 남아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래 서 재를 올리면 그런 기운들이 해소가 됩니다. 이런 재를 올리면 조상신 뿐만이 아니라 세상에 떠도는 영가들도 구제할 수 있는 데 그렇게 되면 예상치도 못한 좋은 결과가 나올 때도 있습니다.
운칠기삼이란 말도 있습니다. 일이 성취될 때 본인 능력은 3 이고 운이 7이란 말입니다. 큰 사업은 보통 운칠기삼입니다. 기 도란 이 7이 차지하는 운을 좋게 하는 매개체가 됩니다. 조선시 대 농산 스님은 나라를 위한 기도를 맡은 것이 원인이 되어 기도 를 마친 후 영조 대왕으로 환생하여 52년간 임금으로 재위하였 습니다. 고구려의 추남이 장군이 될 것을 서원하고 일심 기도한 후에 신라 서원공의 아들인 김유신으로 환생하여 신라 대장군 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생업이 있기 때문에 매주 나와서 기도하 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백중과 같은 특별한 날에 시간 을 내서 기도를 올리면 좋은 결과가 나올 수 있습니다.
- 이전글제14강 훈습의 모양 21.07.12
- 다음글제12강 염심의 여섯 가지, 상응과 불상응, 지애와 번뇌애 21.07.12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