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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강 발심의 공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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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6,609회 작성일 21-07-12 1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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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2강


(3-3-2-1-3) 발심의 공덕을 밝히다 

(3-3-2-1-3-1)  수승한 덕을 밝히다

[진제66] 보살은 이 마음을 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법신을 보게 되며, 법신을 보기 때문에 그 원력(願力)에 따라서 여덟 가지를 나타내어 중생을 이익되게 한다. 이른바 도솔천(兜率天)으로부 터 모태(母胎)에 들어가고 모태에 머물고 태어나서 출가하여 성 도(成道)하고 법륜을 굴리며 열반에 듦을 말하는 것이다. 菩薩發是心故,則得少分見於法身。以見法身故,隨其願力 能現八種利益眾生。所謂從兜率天退,入胎,住胎,出胎,出 家,成道,轉法輪,入於涅槃。

(3-3-2-1-3-2) 미세한 허물을 밝히다

그러나 이 보살을 아직 법신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과거 한량 없는 세월동안 유루(有漏)의 업을 능히 끊어버리지 못하고 일어 나는 바에 따라서 미세한 고뇌와 상응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업 에 매이지 않는 것은 대원력(大願)과 자재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然是菩薩未名法身,以其過去無量世來有漏之業未能決斷,隨 其所生與微苦相應,亦非業繫,以有大願自在力故。
(3-3-2-1-3-3) 권교의 말씀을 회통하다

경전에서 '혹 악취(惡趣)에 떨어지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은 실 제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만 처음 배우는 보살[初學菩薩]에게 아직 정위(正位)에 들지 못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를 위하여 두려워하게 하여 그로 하여금 용맹케 하기 위한 것이다. 如修多羅中,或說有退墮惡趣者,非其實退,但為初學菩薩未 入正位而懈怠者,恐怖令使勇猛故。

(3-3-2-1-3-4) 실행을 찬탄하다

또 보살이 한 번 발심한 후에는 겁 내고 나약한 마음을 멀리 여 의어 이승지(二乘地)에 떨어짐을 두려워 하지 않으며, 가령 한량 없는 아승기겁에 부지런히 고난의 수행을 하여 열반을 얻는다는 것을 듣더라도 겁 내어 죄절하지 않는 것이니, 일체법이 본래부 터 스스로 열반임을 믿어 알기 때문이다.

又是菩薩一發心後,遠離怯弱,畢竟不畏墮二乘地。若聞無量 無邊阿僧祇劫勤苦難行乃得涅槃,亦不怯弱,以信知一切法從 本已來自涅槃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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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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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시간에 직심, 심심, 대비심과 네 가지 방편에 대해 자세 히 살펴보았습니다. 네 가지 방편이 행근본방편, 능지방편, 선 근증장방편, 대원평등방편이었습니다. 이 네 가지를 통해 선행 을 닦아 진여로 나아갑니다. 

  불교공부를 하는 목적이 부처가 되기 위해서입니다. 부처 속 에 보살, 성문, 연각이 다 포함되어 있습니다. 부처가 초기 불교 에서는 아라한, 대승 불교에서는 보살, 밀교에서는 금강승, 선 불교에서는 선사라고 표현되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불교공부 의 내용은 어떤 것일까요. 어떠한 내용을 갖고 부처가 될 수 있 을까요. 그것은 바로 위빠사나와 사마타입니다. 관조하는 지혜 와 집중입니다. 일어나는 모든 번뇌망상을 끊고 하나로 들어가 집중하는 것입니다. 사물을 관찰하고 자기 자신을 관조하여 세 상의 원리와 이치를 알아 지혜가 생기는 것입니다. 불교공부를 하는 방법에는 경전을 읽거나 염불을 하고 기도를 하거나 참선, 봉사 등이 있습니다.

  불교공부를 하는 방법들은 네 가지 방편과도 연결시킬 수 있 습니다. 행근본방편은 염불, 기도와 연결시킬 수 있고, 능지방편 은 경전을 읽는 것과 연결지을 수 있고, 선근증장방편은 봉사와 연결지을 수 있고, 대원평등방편은 참선과 연결시킬 수 있습니 다. 염불 및 기도를 열심히 하고 집중하여 진여의 세계로 나아가 는 것은 행근본방편과 연결됩니다. 대표적인 예로 남호 영기가 있습니다. 이 사람은 어렸을 때 나병을 앓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의지할 곳도 없어 이리저리 떠돌다 절에 들어갑니다. 절의 사미 승이 그의 불쌍한 몰골을 보고 음식을 주며 하룻밤을 여기서 자 고 떠나라고 합니다. 그런데 그날 밤 절의 노스님이 꿈을 꾸는 데 큰 청룡 한 마리가 절에 내려와 앉는 것이었습니다. 꿈이 이 상해서 노스님은 모두 다 잠든 새벽에 몰래 일어나 절을 한 바퀴 돕니다. 그리고 부엌문을 열어보니 나병을 앓고있는 꼬마가 잠 을 자고 있었습니다. 노스님은 그 꼬마를 데리고 와서 공부를 시 킵니다. 하루는 지장보살 염불을 시켰는데 염불삼매에 들어 계 속 염불을 했습니다. 영기 스님이 삼매에 들자 어렸을 때 헤어졌 던 누나가 나타나서 불쌍하다며 몸을 깨끗이 닦아주었습니다. 삼매에서 깨어나 보니 부스럼이 다 사라져 있었습니다. 병이 나 았던 것입니다. 이런 기적같은 신통은 본인이 겪어보지 않으면 긴가민가하여 잘 믿지 못하는데 그 이유는 진리가 진리가 아니 라서가 아니라 아집 때문입니다. 자기가 믿으려는 것만 믿습니 다. 즉 자기 업만큼 믿습니다. 이것을 깨트려야 공부가 됩니다. 

  경전을 보고 진여의 세계로 나아가는 것이 능지방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유명한 보조 지눌이 있습니다. 지눌 스님은 경전의 내용을 보고 깨치게 됩니다. 선근증장반편 은 착한 일,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것입니다. 봉사 활동도 이런 것 입니다. 착한 일을 하면 선근이 자라서 언젠가는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주리반특을 들 수 있겠습니다. 주리반 특은 일자무식이었습니다. 그런데 동네 형들이 부처님께 출가 를 하니까 같이 따라 출가를 했습니다. 주리반특은 부처님의 말씀을 아무리 들어도 한 구절도 외우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리반 특은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아무리 공부 를 해도 모르겠습니다. 마을로 돌아가서 지금까지 살던대로 살 겠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부처님은 주리반특에게 지금까지 무 엇을 하며 살았느냐고 묻습니다. 주리반특은 마을을 청소하는 일을 했습니다. 청소를 했다고 말하자 부처님은 한 달 동안 절 을 청소하고 마을로 내려가라고 합니다. 주리반특은 그 후 한 달 동안 절을 청소합니다. 주리반특은 자신이 잘하는 것을 하니 까 신이 났고 도량은 매우 깨끗해졌습니다. 주리반특은 생각합 니다. “부처님께서 나에게 이 일을 시킨 것은 절을 깨끗하게 하 라고 한 것이 아니라 내 마음을 깨끗하게 하라는 것이 아닐까?” 이 생각을 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깨닫게 됩니다. 대원평등방편 은 이 세상 모든 중생을 구하겠다는 원력으로 견성성불에서 나 옵니다. 견성성불의 가장 빠른 지름길은 참선입니다. 남양 혜충 의 일화가 있습니다. 남양 혜충은 육조 혜능의 뛰어난 다섯 제 자 중 한 사람입니다. 남양 혜충의 명성을 듣고 왕이 여러 번 불 러 국사를 보아달라고 부탁합니다. 아무리 부탁해도 남양 혜충 은 말을 듣지 않습니다. 마지막에는 왕이 오지 않으면 죽이겠다 고 그를 협박해도 그는 굴하지 않고 참선하다 죽으면 그만이라 고 거절합니다. 그리고 박애산에서 40년 동안 참선만 하다 생 을 마감합니다. 


  “발심의 공덕을 밝히다. 수승한 덕을 밝히다. 보살은 이 마음 을 내기 때문에 조금이나마 법신을 보게 되며, 법신을 보기 때문에 그 원력(願力)에 따라서 여덟 가지를 나타내어 중생을 이 익되게 한다.” 공부한 공덕에 대해 설명합니다. 보살은 직심, 심 심, 대비심을 내기 때문에 완전하지는 않지만 조금이나마 법신 (진여)을 보게 됩니다. 보살이라면 나름대로 부처 되겠다고 원 을 세운 사람입니다. 금강경을 보면 어떤 사람이란 말이 나오는 데 이것은 진리의 문에 들어오지 않은 사람을 말합니다.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우지 않는 사람, 삶의 목적이 없는 사람을 가리 킵니다. 선남자, 선녀인은 부처가 되겠다고 원을 세운 사람입니 다. 보살은 그 세운 원에 따라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발심의 공덕. 이른바 도솔천(兜率天)으로부터 모태(母胎)에 들어가고 모태에 머물고 태어나서 출가하여 성도(成道)하고 법 륜을 굴리며 열반에 듦을 말하는 것이다.” 이 내용은 바로 부처 님의 삶입니다. 석가모니 부처님은 도솔천에 계시다가 마야 부 인의 모태로 들어갑니다. 태어나서 출가하고 도를 이루어 법을 펴시고 열반에 드셨습니다. 우리는 발심의 공덕으로 부처님과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나타낸 팔상성도를 살펴봅시다. “도솔내의 상(兜率來儀相)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사문유관상(四門遊觀 相) 유성출가상(逾城出家相)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 수하항마 상(樹下降魔相)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 相)” 이것은 부처님의 인생을 크게 여덟 부분으로 나눈 것입니 다. 특히 사문유관상을 주의 깊게 볼 필요가 있습니다. 석가모 니 부처님은 동서남북 네 문을 다니면서 생노병사를 보게 됩니 다. 그 후 땅을 파 쟁기질을 하는데 땅 속에서 벌레들이 나옵니다. 나오자마자 바로 어디선가 새가 날아와서 벌레를 물고 날아 갑니다. 그것을 보고 석가모니 부처님은 왜 서로 죽여야 하는가 에 대해 의문이 들었습니다. 그 생각을 하다 잠시 선정에 듭니 다. 그 후 부처님께서 고행으로는 진리에 다다를 수 없다고 생 각하던 찰나 어렸을 때 있었던 일을 떠올립니다. 그리고 석가모 니 부처님은 자리를 깔고 선정에 들었다가 부처를 이루십니다. 어렸을 때의 그 일이 부처님을 깨치게 한 인연이 된 것입니다.  

  죽어서 천상에 태어난다고 했을 때 우리의 법력으로 태어나 는 곳이 사천왕천 아니면 도리천입니다. 그 위로 올라가려면 훨 씬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법력이 필요합니다. 도리천에서 좀 더 수승하면 야마천이나 도솔천에서도 태어납니다. 석가모 니 부처님이 태어나시기 전에 계시던 곳이 도솔천입니다. 미륵 보살이 있는 곳도 도솔천입니다. 도솔천은 부처 만드는 공장이 라고도 할 수 있겠습니다. 불교를 접하다 보면 8부신장이나 사 천왕, 33천은 친숙한 말들입니다. 예불할 때 아침 종을 33번 칩 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를 다스리는 제석천왕이 살고 있 는 곳이 33천입니다. 종을 33번 치는 이유는 이 세상의 모든 것 을 깨우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저녁 종은 28번을 치는데 이 것은 28천 즉 욕계, 색계, 무색계를 잠들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미세한 허물을 밝히다. 이 보살을 아직 법신이라 하지 않는 것은 그가 과거 한량없는 세월 동안 유루(有漏)의 업을 능히 끊 어버리지 못하고 일어나는 바에 따라서 미세한 고뇌와 상응하 기 때문이다. 그래도 업에 매이지 않는 것은 대원력[大願]과 자재한 힘이 있기 때문이다.” 법신은 부처를 말합니다. 유루의 업 을 끊지 못한다는 말은 견성을 하더라도 전생의 습이 남아 있 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제8지 보살까지 가야 없어집니다. 아무 리 업이 남아 있어도 부처가 되겠다는 대원력과 그 수행력 때 문에 그 길을 꿋꿋하게 가는 것입니다. 보살이 부처는 아니지 만 부처의 길을 꿋꿋이 가면 언젠가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 다. 중요한 것은 ‘내가 부처다’라는 생각입니다. 보살은 그 생각 이 마음 속에 꽉 찬 상태입니다. 그래서 세세생생 그 길을 가는 것입니다. 

  “권교의 말씀을 회통하다. 경전에서 ‘혹 악취(惡趣)에 떨어 지는 것이 있다’고 말한 것은 실제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다 만 처음 배우는 보살[初學菩薩]에게 아직 정위(正位)에 들지 못 하고 게으름을 피우는 자를 위하여 두려워하게 하여 용맹케 하 기 위한 것이다.” 육도 윤회 가운데 지옥, 아귀, 축생이 악취입 니다. 우리가 잘못 살면 악취에 빠질 수 있습니다. 문제는 여기 에 빠지면 악취에서 맴돌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우리는 악취에 빠지면 안됩니다. 처음 배우는 보살들이 악취에 떨어질 수 있다 고 말한 것은 두려워하여 게으름을 피우지 않고 용맹정진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부처가 되려면 한눈 팔지 않고 가야하는데 그 렇지 못할까봐 권교의 말을 하는 것입니다. 노파심에서 한 마디 더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말씀이 담긴 경전을 보고 그 말씀을 통해 수행하는 과정과 결과가 나와 있어야 체계가 생깁니다. 화엄경의 보살 10 지는 수행의 결과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함경의 수행4과는 수행의 출발점,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수행4과 에는 수다원과, 사다함과, 아나함과, 아라한과가 있습니다. 수 다원과는 역류라고도 하는데 영원한 평안에의 흐름을 탄 사람 을 가리킵니다. 영원한 평안이란 다름 아닌 열반적정의 상태로 부처가 된 것입니다. 부처가 되는 길에 들어간 것입니다. 100% 발심해서 진리의 세계로 들어간 것입니다. 이것은 악취(惡趣)로 떨어지지 않고 정취(正趣)로 가는 커트라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 다. 수다원과에 들면 죽다 깨어나도 악취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사다함과는 일왕래라고도 하는데 한 번만 다시 태어나서 깨닫 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바로 다음 생에 부처가 되는 사람을 말 합니다. 수행을 매우 많이 한 사람입니다. 아나함과는 불환이 라고 말하는데 이제는 결코 태어나 오지 않는 사람을 가리킵니 다. 이 생에 깨쳐서 윤회를 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아라한 과는 무쟁이라고 하는데 집착에서 벗어난 존경받을 만한 사람 을 말합니다. 아나함과가 성숙해서 100% 이루어진 상태로 다 툼이 없다는 뜻입니다. 다른 존재와도 다툼이 없는 것이지만 내 속에서도 다툼이 없는 것입니다. 탐진치가 일어나지 않아 다툼 이 없어진 것입니다. 

  수능을 보면 각 대학마다 커트라인이 있습니다. 커트라인을 보고 학생들은 그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합니다. 불교 수행 도 비슷합니다. 각 단계, 커트라인을 만들어놓고 수행자들이 그 것을 목표삼아 열심히 수행하게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들이 ‘이 생에서 부처가 되어야 되겠다’고 발심하고 그 길을 걸어갑니다. 이것은 어렸을 때부터 하는 것이 유리합니다. 어렸을 때는 순수하고, 잡다한 계산이 없고 흡수하는 힘이 빠릅니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온갖 것에 물들어 있기 때문에 어렸을 때보다 발심을 하 고 수행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계산을 하고 의심을 하기 때문에 발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발심을 하면 덕력이 올라옵니다. 발 심을 한 후 공부를 하다보면 잘 안될 때도 있고 악수를 둘 때도 있습니다. 그렇게 실수를 거듭하다 보면 어느 순간 자기 확신이 생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 때부터 공부가 되어 덕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불교 공부하다 보면 ‘아 이렇게 하면 부처가 되겠구 나.’라고 하는 단계인 덕력이 생긴 단계인 것입니다.


  “실행을 찬탄하다. 보살이 한 번 발심한 후에는 겁내고 나약 한 마음을 멀리 여의어 이승지(二乘地)에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한량없는 아승기겁에 어렵고 힘든 수행을 부지런히 하 여 열반을 얻는다는 것을 듣더라도 겁내어 좌절하지 않는 것이 니, 일체법이 본래부터 스스로 열반임을 믿어 알기 때문이다.” 한번 100% 발심하면 ‘내가 어떻게 살아야겠다.’는 그 삶 하나만 생각합니다. 어떤 상황이든 그 삶 하나 밖에 없습니다. 만약 그 러한 생각이 흐트러진다면 그것은 100% 발심이 아닙니다. 그 생각이 흐트러지지 않고 끝까지 간다면 그것은 100% 발심입니 다. 이승지란 성문, 연각을 말합니다. 떨어질 이유도, 염려도 없 지만 떨어짐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초기 경전을 보면 부처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눈꼽만큼도 들 지 않습니다. 아승기겁이란 10의 56승 겁으로 수백억 이상의 무수한 시간을 말합니다. 이렇게 많은 세월을 수행해야 겨우 부처가 됩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그 어마어마한 세월 앞에 겁내고 좌절하고 포기하지 않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100% 발심을 하면 이런 아승기겁 앞에서도 포기하지 않습니다. 공부를 해보 면 시간과 공간에 대한 개념을 알게 됩니다. 모를 때는 주어진 시간과 공간 밖에 모르지만 수행을 해서 어느 정도 단계에 이르 게 되면 개념이 달라져 있습니다. 수도 없이 수행을 하지만 그 시간도 한 찰나에 불과하게 됩니다. 그러다 어느 한 순간에 견성 이 가능해집니다. 바로 선정에 드는 순간입니다. 한번 견성을 하 게 되면 그 후로는 쉽게 견성에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일체법이 본래부터 스스로 열반임을 믿어 알기 때문이다.’는 말은 원래 있는 그대로가 부처임을 믿어 아는 것입니다. 일심의 도리, 일체법 그대로가 부처이고 열반적정입니다. 아집을 부리 지만 부처가 되면 이 세상 그대로가 열반적정이 됩니다. 이성계 가 무학 대사에게 돼지같이 생겼다고 하니까 무학 대사는 이렇 게 맞받아칩니다. “폐하께서는 부처같이 보이십니다.” 이성계가 왜 그렇게 보이느냐고 묻자 무학 대사는 부처 눈에는 부처 밖에 안 보이고 돼지 눈에는 돼지 밖에 안보인다고 말합니다. 이러한 것입니다. 세상은 마음을 연 만큼 내 세상입니다. 내가 부처면 세상은 전부 부처가 됩니다. 내가 지옥이면 세상은 전부 지옥이 됩니다. 내 마음 속에 그려져 있는 그것이 바로 내 세상입니다. 이 세상을 불국토로, 진리의 세상으로 만드는 것은 내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의 6년 고행은 참 대단합니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 제 자들에게 법을 설하시면서 “이 전에도 이 후에도 나와 같이 고행하는 자는 없을 것이다.”고 하십니다. 부처님은 6년 고행을 이 와 같이 표현합니다. 수행하는 도중에 문제가 생겼습니다. 5년 째가 되자 부처님의 에너지가 고갈되어 죽음 직전까지 갑니다. 그 날 아버지 정반왕의 꿈에 아들이 죽는 장면이 나옵니다. 걱정 된 정반왕은 우다인을 시켜 석가모니 부처님을 찾게 합니다. 부 처님이 쓰러져 있는 것을 찾은 우다인은 부처님을 업고 본국으 로 돌아가려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거절하시며 “우다인이 여 나는 내 숨이 끊어질 때까지 여기서 수행을 할 것이다. 만약 내가 죽거든 시체를 메고 고향으로 돌아가라. 그리고 묘지에는 ‘처음 마음먹었던 것을 끝까지 지키려고 하다가 죽다’라고 적어 다오.”고 말씀하십니다. 그 후 6년째 되는 해에 다른 방법이 있 음을 알고 그만두고 실천으로 옮깁니다. 그리고 10일 만에 견성 을 하여 부처가 됩니다. 부처가 되기 위해서 선정에 한 번 들어 봐야 합니다. 선정에 들어야 그 다음에 열리는 다른 세상을 알 게 됩니다. 이론적으로 아무리 알아도 내가 선정에 들지 않으면 상상 속의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고행 사진을 걸어놓 고 어떻게 살 것인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머리 식히면서 한번 보기_과보 이야기


  이번에는 선로(宣老) 스님의 이야기를 해봅시다. ‘선로’란 태 어나자마자 노인이란 말입니다. 송나라 때 곽공보(郭功輔)라는 문장가가 있었습니다. 곽공보가 임제종의 귀종선(歸宗宣) 선사 를 스승으로 모시고 있었습니다. 어느 날 귀종선 선사가 곽공보 에게 “내가 너희 집에 6년만 있어도 되겠느냐?”라고 하자 곽공보는 흔쾌히 응낙합니다. 그런데 얼마 후 선사가 열반에 들었습 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곽공보의 집에 아이가 태어났는데 말을 하기 시작하면서 위아래가 없었습니다. 자기가 가장 어른인 듯 행동했습니다. 그런데 황당한 것은 알려준 적도 없는데 자기가 귀종선 선사라고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아이가 감당이 안되는 곽공보는 임제종의 백운단 선사에게 부탁하여 아이를 한번 봐 달라고 합니다. 백운단 선사가 곽공보의 집에 오니까 그를 본 아 이가 “어, 조카 잘 왔네!”라고 합니다. 어리둥절한 백운단 선사 는 자기가 귀종선 선사라고 하는 아이에게 여러 가지를 물어서 대조해봅니다. 놀랍게도 귀종선 선사와 자신만이 아는 이야기 도 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아이가 태어난지 6년이 지나자 어느 날 곽공보에게 말합니다. “내가 자네 집에 6년 있겠다고 했 는데 이제 6년이 되었으니 가겠네.” 그러자 평범한 아이로 돌아 왔습니다. 이렇게 태어나자마자 전생을 기억하는 것을 격생불 망(隔生不忘)이라고 합니다. 티베트의 활불사상(活佛思想)도 이 런 것입니다. 전생에 자신만이 아는 무언가를 해놓고 이생에 다 시 태어나면 그것을 찾아갑니다.

  조금만 더 들어가면 이런 신기한 세계가 무궁무진하게 있는 데 우리는 못 들어갑니다. 여기서는 시시비비가 없는 것이 아 니라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공부, 수행을 해야 합니다.

  “수다원과나 사다함과를 얻으면 악처(惡處)에 태어나게 만드 는 무기한으로 효과가 있는 모든 업이 소멸된다. 아나함과를 얻 으면 욕계의 세계에 태어나는 과보를 가져올 수 있는 무기한으 로 효과가 있는 모든 업이 소멸된다. 아라한이 되어 열반을 성취하면 어떠한 세계에 태어나게 만드는 무기한으로 효과가 있 는 모든 업이 완전히 소멸한다.” 우리 속에는 세세생생의 업들 이 쌓여 있습니다. 하지만 최소 수다원과를 얻으면 많은 업이 소 멸되어 악처에 태어나지 않게 됩니다. 악처는 지옥, 아귀, 축생 을 말합니다. 악처에 태어나지 않는 생명들은 악처보다는 편안 하고 좋습니다. 아나함과를 얻으면 욕계 이상의 세계에 태어날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적어도 색계, 무색계 이상에 태어난다는 말입니다. 아라한이란 열반적정의 상태를 이룬 사람을 말합니 다. 불교의 사법인은 제행무상, 일체개고, 제법무아, 열반적정 입니다. 앞의 세 개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속성입니 다. 이것의 본질, 즉 연기를 인식하고 터득하면 열반적정의 상 태가 됩니다. 선정에 들어서 보는 세계가 열반적정의 세계입니 다. 아라한이 되면 열반적정의 상태가 되어 어떠한 몸으로도 태 어나지 않게 됩니다.

  무기한이란 언젠가 인연이 부딪히면 업이 발동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이런 업들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악취에 태 어나지 않고, 욕계에 태어나지 않고, 다시는 태어나지 않게 됩 니다.

  “유익한 업의 금생 과보를 받을 조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 째 대상의 성취이다. 보시를 받는 사람은 멸진정에 들 수 있는 아라한이나 아나함이어야 한다. 둘째 생필품의 성취이다. 보시 할 물건은 법에 따라 얻어진 것이어야 한다. 셋째 의도의 성취 이다. 보시자의 의도는 순수해야 한다.” 보통은 현생에 과보를 지으면 내생에 받는데 현생에 과보를 지으면 현생에 과보를 받는 경우도 있는데 조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보시를 받는 사 람이 아라한이나 아나함 이상의 상태여야 합니다. 멸진정은 선 정에 드는 순간을 말합니다. 선정은 지속적으로 계속 드는 상태 를 말합니다. 둘째는 보시하는 물건이 합법적이어야 합니다. 지 나가다 주운 물건이나 남에게서 빼앗아서 준 물건은 효과가 없 습니다. 보시를 해도 바로 복을 받지 못합니다. 정당한 방법으 로 얻은 물건이어야 보시의 효과가 금생에 나타납니다. 셋째는 보시자의 의도가 순수해야 합니다. 대가를 바라고 보시하면 좋 은 결과를 얻기 힘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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