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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강 지관을 자세히 밝히다, 사마타를 닦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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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3,924회 작성일 21-07-12 1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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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강


(4-3-5-2) 지관을 자세히 밝히다 

(4-3-5-20) 지관의 별수를 설하다 

(4-3-5-2-1) 사마타를 닦다

(4-3-5-2-1-1) 사마타를 닦는 방법을 밝히다 

(4-3-5-2-1-11) 잘 닦는 사람 

[진제77] 만약 지(止)를 닦는 사람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서 뜻을 바르게 하여 기식(氣息)에 의지하지 않으며, 형색( 形色)에 의지하지 않으며, 공(空)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地), 수( 水), 화(火), 풍(風)에 의지하지 않으며, 내지 견문(見聞), 각지(覺 知)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 

일체의 모든 상념을 생각마다 없애고 또한 없앤다는 생각마저 도 없어야 한다. 

일체법이 본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마다 생각이 일어나 지 않으면 생각이 멸하지 않는다고 한다. 

또한 마음 밖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은 뒤에 마음으로 마음을 제 멸(除滅)하는 것이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달아나면 곧 거두어 바른 마음(正念)에 머물 게 해야 하며, 

바른 마음이란 오직 마음뿐이요 바깥 경계가 없음을 알아야 한 다. 

또한 이 마음도 스스로의 모양(自相)이 없어서 생각마다 가히 얻 을 수가 없다. 만일 앉은 곳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더라도 그치며 베풀어 짓는 것이 있더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여 수순 하고 관찰하여 오래도록 닦아서 순박하게 되면 그 마음이 편안 함을 얻는다. 

마음이 편안하여 점점 용맹하고 날카로워[猛利: 매우 예리함] 진 여삼매에 수순하여 들어가게 되며 번뇌를 깊이 조복(調伏)하고 신심(信心)이 증장하여 속히 불퇴전(不退轉)의 경지를 이룬다. 若修止者,住於靜處端坐正意,不依氣息、不依形色、不依於 空、不依地水火風,乃至不依見聞覺知。一切諸想隨念皆除, 亦遣除想,以一切法本來無相,念念不生、念念不滅,亦不得 隨心外念境界,後以心除心。心若馳散,即當攝來住於正念。 是正念者,當知唯心,無外境界。即復此心亦無自相,念念不 可得,若從坐起去來進止有所施作,於一切時常念方便隨順觀 察,久習淳熟其心得住。以心住故漸漸猛利,隨順得入真如三 昧,深伏煩惱信心增長,速成不退。

(4-3-5-2-1-12)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오직 의혹하고 불신하고 비방하고 중죄업장을 짓고 아만(我慢) 과 게으른(懈怠) 사람은 제외하니, 이러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다.

唯除疑惑、不信、誹謗、重罪、業障、我慢、懈怠,如是等人 所不能入。

(4-3-5-2-1-2) 사마타의 수행공덕을 밝히다

[진제78] 또한 이 삼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곧 법계가 한 모양[一相]인 것을 알아 모든 부처의 법신이 중생신(衆生身)과 더불어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안다. 이것을 일행삼매(一行三昧)라고 말 한다. 진여가 이 삼매의 근본임을 알아야 하며, 만일 어떤 사람이 수행하면 점점 한량없는 삼매에 들게 된다. 

復次,依如是三昧故,則知法界一相。謂一切諸佛法身與眾生 身平等無二,即名一行三昧。當知真如是三昧根本,若人修 行,漸漸能生無量三昧。

(4-3-5-2-1-3) 마사를 밝히다

(4-3-5-2-1-31) 마소와 대치를 간략히 밝히다 

(4-3-5-2-1-311) 마가 혹란하다

[진제79] 어떤 중생이 선근의 힘이 없으면 모든 마구니와 외도와 귀신에게 어지러움을 당하게 되니, 만약 앉아 있을 때[坐中] 모 습을 나타내어 공포를 일으키게 하거나  단정한 남녀의 모습을 나타낼 경우, 

或有眾生無善根力,則為諸魔外道鬼神之所惑亂,若於坐中現 形恐怖,或現端正男女等相,

(4-3-5-2-1-312) 마를 대치하다

오직 마음뿐임을 생각하면  경계가 없어지고 마침내 뇌란(惱亂) 스럽지 않게 된다. 

當念唯心,境界則滅,終不為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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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승기신론 강설_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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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대승기신론의 내용에 따라 지관을 자세히 살펴보도 록 하겠습니다.

  “지관을 자세히 밝히다. 지관의 별수를 설하다. 사마타를 닦 다. 사마타를 닦는 방법을 밝히다. 사마타를 잘 닦는 사람.” 사 마타를 잘 닦는 사람이란 지(止)를 잘 닦는 사람입니다. 공부하 는 목적 중에 지를 어떻게 하면 잘 닦을 것인가도 있습니다. 모 든 공부가 지와 관으로 끝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살아온 삶을 생 각해 봅시다. 일어났던 모든 일에 대해서 인과 관계를 잘 생각해 봅시다. ‘왜 그 일이 일어났는가?’, ‘앞으로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지관을 잘하는 사람은 인 과관계를 나름대로 충분히 삶 속에서 되돌아보는 것입니다. 지 혜로운 삶이 됩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인과관계를 잘 파악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지혜롭지 않은 사람보다는 나은 삶을 삽니다. 나은 삶을 살아야 남에게 베풀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집중을 잘 못합니다. 삶에서 얼마만큼 긴 시간동안 집중을 해보았는지 생각해봅시다. 오랜 시간동안 집중을 한 적 이  없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삶은 변함  없이 그대로인 것 입니다.

  “지(止)를 닦는 사람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 단정히 앉아서 뜻 을 바르게 하여 기식(氣息)에 의지하지 않으며, 형색(形色)에 의 지하지 않으며, 공(空)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 의지하지 않으며, 견문(見聞), 각지(覺知)에 의지하 지 않아야 한다. 일체의 모든 상념을 없애고 또한 없앤다는 생 각마저도 없어야 한다. 왜냐하면 일체법이 본래 모양이 없기 때 문이다. 생각마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생각이 멸하지 않는 다고 한다. 또한 마음 밖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은 뒤에 마음으 로 마음을 제멸(除滅)하는 것이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달아나 면 곧 거두어 바른 마음[正念]에 머물게 해야 하며, 바른 마음이 란 오직 마음뿐이요, 바깥 경계가 없음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 마음도 스스로의 모양[自相]이 없어서 생각마다 가히 얻을 수 가 없다. 만일 앉은 곳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더라도 그 치며 베풀어 짓는 것이 있더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여 수순하 고 관찰하여 오래도록 닦아서 순박하게 되면 그 마음이 편안함 을 얻는다. 마음이 편안하여 점점 용맹하고 날카로워[猛利: 매 우 예리함] 진여삼매에 수순하여 들어가게 되며 번뇌를 깊이 조 복(調伏)하고 신심(信心)이 증장하여 속히 불퇴전(不退轉)의 경 지를 이룬다.” 이 설명은 앞서 말했던 아홉 가지 심주에 대해 구 체적인 설명입니다. 이런 설명을 보면 무슨 말인지 모를 사람이 많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을 직접 겪어보면 무슨 말인지 알게 됩니다. 여기서 ‘고요한 곳에 머물러’란 말을 봅시다. 산림과 같 은 고요한 곳에 머물러야 일단 고요해집니다. 그리고 지계를 깨 끗이 해야 업장이 소멸하고 고요해집니다. 지계를 깨끗이 한다 는 것은 오계를 지키며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마음이 고요하려면 의식이 구족해야 합니다. 먹고 사는 것에 집착하다 보면 마음이 고요해질 수 없습니다. 수행자들은 왜 돈버는 행위를 하지 않는가 하면 집착하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돈을 벌게 되면 집착을 하여 모으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있으면 의식이 없어도 집착하지 않게 됩니 다. 그리고 고요한 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선지식을 만나야 합 니다. 제대로 된 스승을 만나지 못하면 아무리 돌아다녀도 제대 로 된 공부를 할 수 없습니다. 내 마음이 고요한 곳에 머무르기 위해서는 모든 반연을 쉬어야 합니다. 오고가는 인연, 인과관계 를 쉬게 해야 합니다. 이런 과정이 되면 내 마음이 고요한 곳에 머무르게 됩니다.

  ‘단정히 앉아서’라는 말은 몸을 고르게 하는 것으로 올바른 좌선 자세를 말합니다. ‘뜻을 바르게 하여’라는 말은 마음을 고 르게 하는 것입니다. 탐진치나 욕망, 희노애락에 의해 산란한 마 음을 고르게 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명리에 뜻을 두지 않고 무상 도를 구하는 참선할 때의 마음가짐입니다. 중생들은 세속의 명 리를 완전히 끊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을 인생의 목적으 로 삼을 것이 아니라, 그것을 뛰어넘은 진리를 목적으로 하면서 명리 활동을 하는 것이 좋은 절충안이 될 것입니다. 세속의 명 리는 도구이지 목적이 아닙니다. 

  ‘기식(氣息)에 의지하지 않으며, 형색(形色)에 의지하지 않으 며, 공(空)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地), 수(水), 화(火), 풍(風)에 의 지하지 않으며, 내지 견문(見聞), 각지(覺知)에 의지하지 않아야 한다.’는 말을 살펴봅시다. ‘기식에 의지하지 않으며’ 호흡을 통 한 수행 방법으로 수식관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랫동안 깊은 선 정에 들다보면 이런 호흡에도 의지하지 않게 됩니다. ‘형색에 의지하지 않으며’란 말은 백골관과 연결할 수 있습니다. 죽은 뒤 백골만 앙상하게 남은 모습만 생각해도 얼굴이나 몸매에 의지 하는 마음이 사라질 수 있습니다. ‘공에 의지하지 않으며 지수 화풍에 의지하지 않으며’ 형상과 형상을 떠난 것에 모두 의지하 지 않는 것입니다. 세상의 형상을 이루는 것이 지수화풍이고 형 상을 떠난 것이 공입니다. 형상에 의지한 색계에 드는 선정은 색 정이고 형상에 의지하지 않은 무색계, 공에 의해 든 선정이 무색 정입니다. 이러한 것에도 의지하지 않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내주의 단계를 말한 것입니다.

  내지 견문, 각지란 흩어진 마음에서 취하는 욕진입니다. 어디 서 보고 들어서 아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에서 취해진 것이 아 니라 흩어진 마음에서 취해진 것들입니다. 바른 것이 아닌 바르 지 않은 것에서 취해진 것들입니다. 인터넷을 보면 좋은 정보들 도 많지만 출처를 알 수 없거나 맞지 않는 정보, 유언비어들이 많습니다. 이런 것들이 견문, 각지입니다.

  내 마음에 자비를 채우는 방법을 모를 때는 연습이라도 해야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런 연습을 한다면 이기와 탐욕에 덜 물 든 상태에서 자비를 채워갈 수 있습니다. 어렸을 때 배운 것은 평생을 갑니다. 만약 자비와 보시의 마음을 어렸을 때 가르친다 면 나중에 당연히 보시를 해야 한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태어나서 한번도 보시를 해본 적이 없는 아이들은 커서도 자기 밖에 모르게 됩니다. 

  “일체의 모든 상념을 생각마다 없애고” 이것은 등주의 단계를 말한 것입니다. 참선하다 보면 온갖 잡생각이 일어 납니다. 가장 좋은 방법이 내 생각을 한 군데로 모으는 화두입니다.

  “또한 없앤다는 생각마저도 없어야 한다.” 어느 정도 화두에 머무는 단계로 안주의 단계를 말한 것입니다. 

  “일체법이 본래 모양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마다 생각이 일어 나지 않으면 생각이 멸하지 않는다.” 이것은 근주의 단계를 말 한 것입니다. 금강경에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이란 말이 나옵 니다. 꿈, 헛것, 물거품, 그림자와 같다는 것입니다. 일체법이란 그런 것입니다. 단지 인연에 의한 것을 모양이라고 생각하는 것 뿐입니다. 하지만 인연이 다 하면 모양이 흩어집니다. 우리의 생 각도 일어났다가 소멸합니다. 이 생각은 일어나지 않으면 멸할 것도 없습니다. 생각이 일어나지 않으면 근주라고 합니다. 호흡 을 통해 마음이 안정되어 생각이 집중되고 그 생각 속에 머물고 그 생각마저 없어집니다.

  “또한 마음 밖의 경계를 생각하지 않은 뒤에” 이것은 조순의 단계를 말한 것입니다. 

  “마음으로 마음을 제멸(除滅)하는 것이다.” 이것은 적정을 말 한 것입니다. 탐진치와 같은 번뇌망상들이 전부 소멸하여 모든 것이 고요해지는 단계에 들어갑니다. 불교를 배울 때 무상, 무아 를 이야기합니다. 불교에서는 세상의 모든 것을 시간적으로 무 상하다고 봅니다. 끊임없이 변하고 생멸을 끊임없이 반복한다 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무상의 상태를 고(苦)라고 말씀하셨 고 이 무상에서 벗어나면 락(樂)이라고 하셨습니다. 불교에서 추 구하는 목적은 극락입니다. 극락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진 리를 알면 갈 수 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공간적으로 무아라고 봅니다. 나라고 하는 독립된 실체가 없는데 내가 있다 고 고집합니다. 이 육체가 생기는 순간 육체를 중심으로 나라는 것이 만들어져 버립니다. 육체 밖의 것은 ‘나’가 아닌 것입니다. 원래 나와 너 없이 일체가 하나입니다. 일심입니다. ‘나’라는 것 에서 벗어나면 뿌리에 모두 연결되어 있음을 압니다. 하나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것을 모르면 아치, 아집, 아만, 아애 속에서 평생 자기만을 위해 살다가 갑니다. 일체가 하나라는 것을 아는 것에서 자비가 나옵니다. 그래서 부처가 하는 행동은 모두 자비 밖에 없습니다. 분리되어 있으면 죽다 깨어나도 자비가 안 생깁 니다. 그래서 깨닫지 않는 상태에서도 보시를 하여 내 속에 있 는 부처를 일깨워주어야 합니다. 무상, 무아, 고(삼법인-세상에 존재하는 진리, 변하지 않는 진리)를 알면 열반적정이 됩니다.

  마음이 만약 흩어져 달아나면 곧 거두어 바른 마음[正念]에 머물게 해야 하며, 바른 마음이란 오직 마음뿐이요, 바깥 경계 가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또한 이 마음도 스스로의 모양[自相] 이 없어서 생각마다 가히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적정이 계 속 이루어지다 보면 최극적정에 이르게 됩니다. 화두 일념이 되 어 화두만 남아 있는 상태입니다.

“만일 앉은 곳에서 일어나 가고 오고 나아가더라도 그치며 베 풀어 짓는 것이 있더라도 항상 방편을 생각하여 수순하고 관찰 하여 오래도록 닦아서 순박하게 되면 그 마음이 편안함을 얻는 다.” 이것은 전주일취의 상태를 말한 것입니다. 하나만 순박하 게 닦아서 마음이 편안하게 된 상태입니다. 여기서는 그 하나 의 화두마저 사라집니다. 적정의 상태부터 마음은 끝없이 편안해집니다. 

  “마음이 편안하여 점점 용맹하고 날카로워[猛利: 매우 예리 함] 진여삼매에 수순하여 들어가게 되며” 이것은 등지의 상태 입니다. 이 단계에 들어가면 삼매에 들어 부처가 됩니다. 내 속 에  깊이 숨어있는 제8아뢰야식을 볼 수 있는 상태가 됩니다. 평 소에 생각할 때 쓰는 것은 제7식에서 나옵니다. 제7식의 통로 를 통해 나를 표출하지만 제8식 아뢰야식을 보면 제8식 아뢰야 식을 통해 모든 것이 일어나게 됩니다. 본래 내 성품을 보는 단 계입니다.

  “번뇌를 깊이 조복(調伏)하고 신심(信心)이 증장하여 속히 불 퇴전(不退轉)의 경지를 이룬다.” 이것은 진여삼매 성취의 내용 입니다. 불퇴전이란 어떤 상황도 절대로 물러나지 않는 경지를 말합니다. 조그마한 도랑은 낙엽이 쌓이거나 날씨가 가물면 없 어져버립니다. 하지만 큰 강은 낙엽이 쌓여도 날씨가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내가 확실하게 견성하면 그 큰 강이 내 게 생깁니다.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 오직 의혹하고 불신하고 비방하고 중 죄업장을 지은 사람과 아만(我慢)이 강한 사람과 게으른[懈怠] 사람은 제외하니, 이러한 사람들은 들어갈 수 없다.” 여기서는 진리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진리를 의심 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 누군가를 비방하고 부정하는 사람 그리 고 중죄를 지은 사람, 아만이 강한 사람, 게으른 사람은 견성을 못한다는 말입니다. 의혹, 불신, 부정, 비방, 중죄, 아만, 게으름 등은 공부하고 수행하는데 방해되는 것들입니다. 아만이 강하면 자기가 최고고 다른 사람 말은 잘 듣지 않습니다. 내것은 맞 고 상대방은 틀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다툼이 끊이질 않습니 다. 자신은 무엇에 해당하는지 살펴보고 빨리 없애야 합니다.

  “사마타의 수행공덕을 밝히다. 삼매에 의지하기 때문에 곧 법 계가 한 모양[一相]인 것을 알아 모든 부처의 법신이 중생신(衆 生身)과 더불어 평등하여 둘이 아님을 안다. 이것을 일행삼매( 一行三昧)라고 말한다. 진여가 이 삼매의 근본임을 알아야 하며, 만일 어떤 사람이 수행하면 점점 한량 없는 삼매에 들게 된다.” 우리는 나와 너가 분리되어 나만 위하는 생각 때문에 자비가 일 어나지 않습니다. 하나라면 자비를 억지로 일으킬 필요가 없습 니다. 나에게 하듯이 똑같은 마음으로 이 세상을 대하는 것이 하 나입니다. 이것이 자비입니다.

  문수반야경에서 법계는 일상인데 이 법계를 반연함을 일행삼매 라 합니다. 일행삼매에 들어간 이는 항하사처럼 많은 제불의 모든 법 계가 차별이 없음을 압니다. 진여가 이 삼매의 근본임을 알아야 합니 다. 진여가 이러한 무량한 삼매를 내기 때문입니다. 하나임을 알면 모든 것이 평등해지고 같아집니다. 삼매에 들면 이런 평등한 진여의 세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진여에서 무량한 삼매가 나오기도 합니 다. 어떤 방법이든 나름 특색과 장점이 있으며 진여에 갈 수 있지만, 지관을 위해서는 화두를 들고 참선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 니다. 경전을 보는 것은 관은 될지 몰라도 지를 하는 것이 쉽지 않고, 염불을 외우는 것은 지는 되지만 관하기가 어렵습니다. 이런 좋은 방 법들을 믿고 과감히 실천하면 수행하기가 쉽습니다.

  “마사를 밝히다. 어떤 중생이 선근의 힘이 없으면 모든 마구니 와 외도와 귀신에게 어지러움을 당하게 된다. 이때 오직 마음 뿐임 을 생각하면 경계가 없어지고 마침내 뇌란스럽지 않게 된다.” 마음 이 안정되고 편안해지고 당당해지면 번뇌 망상으로 일어나는 경계 가 사라지게 됩니다. 마구니와 귀신도 경계가 사라지면 그냥 없어 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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