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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조단경강설

제 3강 식심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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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759회 작성일 21-07-22 0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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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3강 식심견성


이번 시간에는 견성이 주제가 되겠습니다. 

견성이란 식심견성으로 식심으로 성품을 본다는 것입니다.  육조단경에 “모든 법이 모두 자신의 마음 가운데 있거늘, 어찌 자기의 마음을 따라서 진여의 본성을 단박에 나타내지 못하는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망상에 둘러싸여 내 본래의 성품을 보지 못합니다. 보살계경에서는 나의 본래 근원인 자성이란 맑고 깨끗하다고 하였으며, 식심견성하면 스스로 부처님 도를 성취하는 것이고 곧 활연히 깨쳐서 본래 마음을 도로 찾는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견성이란 우리가 추구해야 될, 우리가 도달해야 될 목적지입니다. 견성을 해탈이라고도 하는데 자신의 무거운 장애를 해결하면 해탈이라고 하고 그 경지에 다다른 사람을 아라한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번뇌를 끊으면 해탈의 경지에 도달하고 아라한을 터득하는 것입니다. 대상이 가지고 있는 번뇌를 소지장이라고 합니다. 내가 갖고 있는 번뇌를 번뇌장이라 합니다. 해탈했다고 했을 때는 나 자신의 번뇌를 끊음으로써 이 번뇌 망상에서 벗어나면 해탈했다고 합니다. 보리를 성취했다고 할 때는 소지장을 끊었을 때의 상태입니다. 견성이라고 할 때에는 나 자신의 성품인 자성을 보는 것입니다.  견성성불은 법신의 성품인 법성을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일반적으로 견성을 한다고 할 때에는 자성을 봄으로써 견성을 합니다. 결국 이 자성과 법성은 하나지만 우리가 견성이라고 했을 때 바로 자성을 보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이 견성을 하지만 부처를 이루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불이라고 할 때에는 지혜와 복덕이 원만하게 갖추어진 그 상태를 말합니다. 모든 것을 전부 두루 갖추었을 때 성불이라고 이야기해요. 우리는 누구나 다 공부를 하면 쉽게 견성을 할 수 있어요. 그렇지만 누구나 다 쉽게 부처가 되지는 않습니다. 석가모니와 같은 완벽한 상태여야 부처를 이루었다고 하지만 우리의 목적은 견성입니다. 견성을 하고 난 다음에는 시간이 흐르면 언젠가는 부처가 되지요. 부처가 안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본래의 성품을 보고 나면 이세상의 어떤 번뇌도 전부 다 해결했고 대상에서 오는 번뇌도 전부다 해결되기 때문에 갈 수 있는 길은 이 세상의 모든 생명들에게 자비심을 주고 자애심을 주는 그런 마음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본래 성품이라는 것은 무엇인가?  전생 전생을 살아오면서 업에 의해 물들기 전의 본래성품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원래 무색인 것을 업에 의해 청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청색으로 쓰고, 빨간색으로 물들어 있는 것은 빨간색으로 쓰고 있는 것입니다. 견성이라는 것은 그 물들기 전의 것을 한번 보자는 겁니다. 

표충사에는 진불암이라는 암자가 있습니다. 입니다. 그 암자에는 참선바위가 있는데 참선한다고 바위에 앉아서 졸면 낭떠러지로 떨어져 죽습니다.  

깨달음의 과정이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는 스님으로 해산스님이 있습니다. 

해산스님은 매전면 신촌리에서 1910년 9월 16일에 태어납니다. 1926년 표충사 내원암 박담월스님 문하로 출가를 합니다. 1934년 가을에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가 그냥 그대로 삼매에 들어서 바지를 다 태웠습니다. 해산스님은 은사스님에게 진불암에 올라가서 한철 공부하고 오겠다고했습니다. 스님은 늦가을에 진불암에 올라가 참선을 하게 됩니다. 참선하던 어느 날 저녁 공양을 먹고 다음 날 아침밥을 한 그릇 남겨놨습니다. 저녁 먹고 참선한다고 바위에 앉아 있었는데 선정에 들었습니다. 어느 순간 회오리바람이 한 자락 일어나 억새풀잎을 밭고랑을 타듯이 가르며 지나갔고 불현듯 머리 위에 무엇이 얹어져 있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깨어보니 온 세상이 눈 천지인 것입니다. 선정에 들어 20일이 지나간 것입니다. 시장기가 들어 남겨 놓았던 밥을 먹으러 공양간에 가보니 밥이 다 상해 있었습니다. 약 20일 이상  선정에 들어 무념상태에 있었고 깨어보니 이 상태였습니다. 큰절에서는 해산스님이 견성했다고 야단이 났어요. 은사스님이 해산스님에게 견성했는 것을 스스로 증명해라 하면서 법석을 마련해 줍니다. 해산스님이 법단에 올라 “산은 산 물은 물, 옛사람은 옛 사람이여, 옛 산은 옛 산이라. 옛 그대로더라.” 하였습니다. 해산스님은 청정한 본래의 마음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그리고 하는 말이 “일체만상에 의심이 없더라. 어떤 무엇을 보더라도 의심이 생기지 않더라.” 하면서 상당 법문을 하고 한 계송을 읊었습니다. 

“제왕이 그물을 쳐서 코 없는 짐승을 잡고, 능히 달팽이 뿔로 우는 아이를 달랬는데, 금털 달린 사자가 웅크리고 앉았으니, 기세가 당당하여 모두가 오르기 어렵도다.” 로 법문을 마쳤습니다. 이 코 없는 짐승이 상징하는 것이 바로 물들기 전 본래의 성품에 비유한 것입니다. 또한 해산스님은 신통이 뛰어났습니다. 견성과 신통은 별개지만 해산스님한테 무엇을 물었을 때 스님은 다 알아요. 스님은 24세에 견성해서 정견이 생겼고, 묘법연화경을 10만 독을 하고 나니까 신통이 그냥 터져버리더라고 하였습니다.


제조회사에서 물건을 만들면 마지막 공정이 제품의 완성도를 확인하여 ok하는 과정입니다. 누가 견성을 했을 때도 견성한 사람의 인가를 받음으로 견성이 되는 것입니다. 

취암 강정진이라는 사람입니다. 1934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어요. 13세 때 할아버지 49제 때문에 산성사에 따라갑니다. 그 당시 이 절에 계셨던 지산스님이 꼬마에게 오늘부터 관세음보살 해라. 하니까 아이는 하루에 5천번씩 관세음보살을 염했다고 합니다. 7년동안을 계속 염합니다. 20세에 통도사 경봉스님의 사형인 구하스님을 만나 매일 “옴마니반메훔”을 염송하라고 해서 30대 때 초반에는 하루에 3만번 정도를 걸어다닐 때나 누울 때나 말할 때나 마음속으로 항상 ‘옴마니반메훔’을 놓치는 일이 없었다고 합니다. 33세 때는 잠을 자면서도 깨어 있을 때와 똑같이 염송되었다고 합니다. 이때 육계가 솟아오르기 시작을 하더랍니다. 이시기에 선문촬요를 보게 됩니다. 소개받습니다. 30대 중반에 경봉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1968년 10월 삼소굴에 계시는 겸봉스님을 뵈러 방에 들어서는 순간 스님께서 전생의 중이 들어오는구나 했답니다. 스님이 너는 어떻게 공부 하는가하고 물었을 때 옴마니반메훔을 염한다고 하니까 스님께서 오늘부터  ‘반메훔하는 이 물건이 무엇인가?’ 하라고 했습니다. 

이때부터 반메훔하는 이 물건 뭔고? 하는 화두에 몰두하게 됩니다. 1977년 6월 7일 선산 도리사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발견되어 친견법회가 있었는데 경봉스님을 모시고 함께 진신사리를 친견하러 갔다가 부처님 사리를 보는 순간 ‘부처님이 그 사리 속에서 움직이면서  웃으시는데 입이 커지면서 입가의 보조개가 들어가는 것도 볼 수 있었고 사리 부처님의 육계는 계란형 타원이었고 피부는 다이어몬드의 집합으로 각을 이루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1974년 12월 27일 성철스님을 만나러 가게 됐어요. 3천배를 하라고 그래서 오후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2시 50분까지 8시간 50분 동안에 3천배를 하여 성철스님을 만났는데 성철스님이 다른 말 안하고 출가해라. 하더라는 겁니다. 그래서 자기는 50넘어 출가하겠다는 한마디 하고 나왔답니다.

1975년 12월에 박월봉거사를 만나 표충사에 계시는 해산스님을 만나게 됩니다. 스님께서 법문하면서, 오늘 이 절에 아주 귀한 분이 한사람 왔구나하면서 법문하시드랍니다. 법문 끝나고 갈려고 하는데 해산스님께서 강정진거사를 보고 부산 초량에서 왔지 한마디를 하더래요. 해산스님께 받은 화두가 “아난이 가섭에게 묻기를 경에 이르기를 부처님께서 가섭에게 법을 전할 때 증표로서 부처님께서 입으시던 금란가사와 발우 외에 따로 전하신 법이 있다는데 그것이 무엇입니까?” 하고 아난이 가섭에게 묻습니다. 그때 가섭이 아난에게  “법당 앞에 있는 찰간을 쓰러뜨려라.”였습니다. 해산스님이 이 화두를 강정진에게 주었습니다. 1977년 7월에 진불암에서 10일간 용맨정진을 했고, 그 후 10월에는 코피가 터지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화두가 들리기 시작하더랍니다.  11월 초부터 벽시계의 종소리가 들리지 않기 시작하더랍니다. 무념상태로 들어가는 상황을 설명하고 있는거라요. 미망의 경계가 물러가니 또렷또렷한 심광 속에서 화두 의심만 남았다고 했습니다. 견성하기 바로 직전의 단계를 표현한 것입니다. 화두를 든다는 것이 다른 것이 아니라 결국은 모든 번뇌망상을 전부 다  소멸시키고 또렷또렷한 심광 속에 의심 하나만 남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견성하기 가장 좋은 방법이 화두라고 하느냐 하면 우리는 어떠한 방법으로도 우리의 생각을 한군데 모으기가 쉽지 않습니다. 우리는 끝없는 번뇌망상을 일으키고 그 번뇌망상 속에서 그냥 평생 살아가요. 뇌 활동에서 보면 뇌는 잘 때나 활동 할 때나 에너지 소모량이 거의 비슷합니다. 오로지 또렷또렷한 심광 속에서 의심만이 있는 상태가 성성적적입니다. 성성하게 깨어있으면서도 적멸, 적적해야되요.  이렇게 석달이 지났을 때 1978년 2월 초에 선정에서 바로 이놈이구나하고 보니 여기에서 도각문전찰간척이 나왔구나.하는 순간 본래성품을 본 순간이라요. 바로 견성하는 순간입니다. 날이 밝자 해산스님을 찾아간 겁니다. 견성했으니 인가를 받아야겠지요. 스님하고 부르니 스님께서 얼굴을 들고 쳐다 보시기에 견성을 했다고 이것을 알았습니다. 하면서 손바닥으로 방바닥을 때렸습니다. 그 때 마침 풍경이 울려 소리가 나니까 스님께서 저 풍경소리를 내놓겠는가, 내놔라 하고 물으니까 그때 나는 즉시 손뼉을 딱 치면서 이 소리가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하고 대답을 하였습니다. 두 번째, 세 번째 질문을 해서 잘 넘어갔어요. 네 번째 질문에 서강수를 마셔보았느냐? 이 유명한 화두, 마조도일의 화두입니다. ‘서강수를 마셔 보았느냐?’ 하고 스님이 물었을 때 ‘이미 몇 년 전에 마셨습니다.’ 라고 대답을 했고, 대답이 떨어지기 무섭게 스님께서 너 이놈 어디서 들은 소리를 하는구나 하고 한마디 하는 순간 아 대답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았다는 겁니다. 견성을 했지만 견성한 마음을 쓸 줄을 모르는거라요. 스승의 인가가 필요하냐하면 견성을 해도 견성했는 그 마음은 갖고있지만 그것을 쓸 줄을 몰라요. 인가를 받고 하여 그 마음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념의 상태에 오랫동안  들어있으면서 깨우침이 이루어진예로 경허스님이 있습니다. 경허스님 밑에서 공부하러 온 그 스님들이 겨울양식을 탁발하러 갑니다. 경허스님은 ‘잘 갔다 오라고’ 해놓고 앉아서 그대로 선정에 들어버려요. 보름 후에 스님들이 양식을 한말씩 짊어들고 오니까, 보낼 때 모습 그대로 경허스님이 앉아계시는 겁니다. 손은 문지방이 열리고 닫히고 하여 피투성이 되어 있었는 데도 그대로 앉아 계셨습니다. 견성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게 아닙니다. 바로 항상 우리 곁에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가 마음먹고 공부 해보겠다 하면 견성이 순간순간 옵니다. 우리는 그런 연습부터 시작해서 얼마든지 견성을 체험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부처나 견성이라는 것이 이상이고 허무맹랭한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구체적으로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공부가 되는 것입니다. 봄으로서 나도 조금만 공부하면 되겠구나하는 생각이 들 것입니다. 행주좌와일여, 어묵동정일여, 몽중일여, 숙면일여 하게 됩니다. 

식심견성이란 식심으로 본래 성품을 본다는 것입니다. 선불교에서 교외별전, 불립문자, 직지인심, 견성성불을 말합니다. 교외별전이란 부처님께서 45년동안 법을 설하셨는데 법을 설한 경전 외에 따로 전한 것이 있다는 것입니다. 문자로서 한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을 바로 가리켜, 성품을 보고 성불한다는 내용을 구체화한 것이 선불교입니다. 선불교도 뿌리는 중국에서 시작한 것이 아니라 바로 부처님에서부터 시작한다는 겁니다. 부처님이 전한 법은 두 개인데 하나는 말없는 데서 우리의 본래의 마음으로 가는 법이고 하나는 말 있는데서 교리를 통해가지고 우리의 본래 마음을 찾아가는 법입니다. 영산회상 염화미소, 다자탑전 반분좌, 사라쌍수 유관족출의 세 가지가 바로 교외별전 선의 출발점입니다.  영산회상 염화미소는 부처님께서 영산회상에서 법을 설했을 때 부처님께서 꽃을 들자 모두 다 무슨 뜻인지 몰라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때 가섭만이 그 뜻을 알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자탑전 반분좌, 부처님이 많은 제자를 데리고 여기저기를 다니면서 유행을 하다가 휴식을 했습니다. 모두 다 군데군데 앉아 쉬고 있는데 부처님이 쉬고 있는 큰 바윗돌에 제일 뒤에 따라오던 가섭이 둘러보지도 않고 부처님 옆에 가서 탁 앉았습니다. 이것이 법을 나누어 가졌다는 다자탑전 반분좌입니다. 사라쌍수 유관족출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었을 때 이 가섭은 다른 곳을 유행하다가 부처님께서 열반 하신 것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가섭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던 이 사라 숲으로, 사라쌍수로 달려갑니다. 일주일 넘게 걸려요. 가섭이 올 때까지 제자들은 부처님을 그냥 관에 염해놓고 그대로 나둡니다. 가섭이 도착하여 삼배를 드리니까 열반에 드신 부처님께서 두 발을 관 밖으로 팍 내미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라쌍수 유관족출입니다. 선불교에서 직지인심, 우리의 마음을 바로 가리켜 견성성불한다고 합니다.  

이 직지인심을 하기 위해서 화두를 듭니다. 우리 마음을 바로 가르키는 구체적이고 확실하고 체계적인 방법이 화두입니다. 견성을 하기 위해서는 어떤 방법이든 다 가능하지만, 화두를 드는 것 만큼 확실한 방법이 없다는 겁니다. 결국 마지막 무명을 깨트리는 데에는 화두를 들지 않고는 이 무명을 깨트릴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 몸 나기 전에 나는 누구였던가?’ ‘모든 법이 전부다 하나로 돌아가는데 그 하나는 어디인가?’ 이 모든 것이 생각을 한 군데 모을 수 있는 의심덩어리입니다.  이것을 자꾸 들다 보면 내속에 의심덩어리가 생기게 되어 뭔가가 걸려버립니다. 우리 먹다 체하면 탁 여기 걸리는 것과 같습니다. 이 화두가 덩어리가 되어 항상 여기에 있습니다. 자꾸 생각하다 보면은 어때요? 처음에는 형태도 없다가 자꾸자꾸 커져서 형태를 갖게 됩니다. 그 형태를 가진 것이 목에 딱 걸려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될 때 비로소 화두를 든다고 이야기 하는 겁니다. 그럴 때는 밥을 먹어도 화두를 들고 있는 거고 누워도 화두를 들고 있는 거고 항상 화두를 들고 있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없던 것이 이렇게 모여 덩어리져요. 이제 그 정도가 되면 득력을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견성을 하기 전에도 공부에 깊이 심취하여 이정도 같으면 세세생생 불법에서 안 물러나겠다. 어떤 순간 어느 누가 어떻게 하든 간에 다음 생에 태어나도 불법의 인연속에서 내삶을 살겠구나. 하는 그런 힘이 생기게 됩니다. 화두가 확실하게 익어버리면 그런 힘이 생기는 것입니다. 득력이 생기는 순간부터는 혼자서 공부해도 공부할 수 있는 상황이 됩니다. 

견성이라는 것은 멀리 꿈을 잡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다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루에 10분도 좋고 1시간도 좋고 계속 한 생각을 집중적으로 할 수 있다면 언젠가는 엄청나게 커집니다. 우리가 한 달에 10만원씩 적금해서 세세세세 적금한다고 생각해보세요. 그 돈 수백억, 수천억 돼요. 사소한 것이라고 적은 것이라고 무시하지 말고 매일 한시간씩 공부합시다. 한 시간씩 공부하는 그것이 바로 견성하는 것이고 부처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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