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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강 유전연기와 환멸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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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4,660회 작성일 21-07-22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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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론07


 중론의 제26품은 십이인연품(十二因緣品)으로 12연기에 대한 고찰(dv da gapar k n ma a vi atitama prakara am)이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입니다. 총 12게로 1게에서 10게까지는 유전연기에 대한 내용을 다루고 있고 11게와 12게는 환멸연기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것은 환멸연기입니다. 무명을 없애고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야 합니다.

 보통 중론은 우리의 개념을 깨트리며 우리를 무자성의 공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26품은 좀 성격이 다릅니다. 기존의 불교와 맥락을 비슷하게 하고 있습니다. 바로 연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연기는 부처님 이후 부파불교 시대에도 크게 바뀌지 않았습니다. 연기를 가장 간단하게 표현한다면 인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떤 행위를 하면 그 과보를 받는 것입니다. 내가 좋은 행위를 하면 좋게 돌아올 것이고 나쁜 행위를 하면 나쁘게 돌아올 것입니다. 이것이 인과응보입니다. 어떤 것도 인연을 거치지 않고 오는 것은 없습니다. 

 연기의 내용으로 보면 분단연기와 찰나연기가 있습니다. 분단 연기란 12지분으로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를 가리킵니다. 찰나연기는 찰나의 행위에도 일어나는 연기로 그 안에 12지분이 모두 들어 있습니다. 순간에 12지분이 함께 작용하는 것입니다. 찰나의 순간에도 온 우주가 다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26품의 1게를 봅시다. “무명에 덮힌 자는 다시 태어나도록 이끄는 세 가지 행(行)을 행한다. 그 업들에 의해 취(趣)로 간다./ (해석2) 무명에 덮힌 자는 나중의 생존을 위해 세 가지 형성작용(行)을 지어낸다. 그런 행위(業)에 의해 취(趣)로 간다.(punarbhav ya sa sk r navidy niv tastridh adhisa skurute y stairgati gacchati karmabhi//” "무명에 덮인 자는 나중을 위해 세 가지 행(行)을 지어낸다. 그런 행(行)을 짓기에 그 행에 따라 육취에 떨어진다.(衆生癡所覆 爲後起三行 以起是行故 隨行墮六趣)" 무명에 덮인 자는 일반 중생을 가리킵니다. 세 가지 행이란 선업, 악업, 무기업을 가리킵니다. 취(趣)란 육도윤회를 하며 가는 여섯 가지를 말합니다.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을 말합니다. 악업 가운데 가장 큰 것이 살생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많은 생명을 죽이거나 먹으며 살아갑니다. 이것이 살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측면도 사실 있습니다. 단 즐거움을 위해 생명을 죽여서는 안됩니다. 

 분단연기에 대한 설명을 봅시다. “지금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는 세상이 존재하는 본질적인 내용을 모르는 어리석음(무명) 때문에 무수한 전생 동안 갖가지 행을 하게 된다. 이 행의 결과가 업이 되어 업의 상태에 따라 태어날 곳을 취(천상, 인간, 아수라, 축생, 아귀, 지옥)하게 된다.” 본질적인 내용이란 보이지 않는 세계, 진리의 세계, 본래 성품의 세계를 말합니다. 본질적인 내용을 모르는 것은 무아와 무상을 모르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무명입니다. “무명이란 자아가 있다고 착각하는 것이다. 중생은 무아를 모른다. 무아이기 때문에 무자성이며 공성이다.”

 26품 2게를 봅시다. “행을 조건으로 식(識)이 다음에 태어나는 행선지[趣]에 들어가 정착한다. 식(識)이 정착하면 명색(名色)이 습기를 머금고 활성화한다. (해석2) 형성작용들을 연(緣)으로 하는 식(識)이 취(趣)에 들어간다. 그래서 들어간 식(識)에서 명색이 나타난다.(vij na sa nivi ate sa sk rapratyaya gatau/ sa nivi e 'tha vij ne n mar pa ni icyate//)” "제행을 인연으로 식(識)이 육도의 몸을 받는다. 식(識)의 집착이 있기에 명색(名色)을 키운다.(以諸行因緣 識受六道身 以有識著故 增長於名色)" 다음에 태어나는 행선지란 다음에 태어날 곳을 말합니다. 이 때 전생의 행이 축적된 식(識)이 정착됩니다. 이것에 정착되면 정신(名)과 육체(色)가 습기 즉 물을 머금고 활성화됩니다. 처음 생명체가 만들어질 때 습기가 99%입니다. 하지만 우리 몸에 습기가 64%로 떨어지면 죽습니다. 이 습기를 머금고 우리의 정신과 육체가 점점 커지는 것입니다. 여기서 육근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의 해설을 봅시다. “그리고 이런 업들은 업을 나타내는 모양을 만들어 이 모양 하나하나가 씨앗처럼(DNA) 얽히고 얽혀 마음(식)에 저장되는데, 전생에 명이 다하여 죽었다가 인연에 의해 현생에 다시 태어날 때 그런 업의 씨앗들을 가진 식이 태어날 곳에서 어머니의 자궁(대표적 표현) 속의 수정란과 결합되어 새로운 생명체[명색]로 활성화된다.” 내 속에 저장되어 있는 모든 것들은 모양으로 형상화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이해하고 있는 모든 개념들은 형상화되어 저장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끄집어내어 씁니다. 이런 것들이 업입니다. 업들이 결합하여 새로운 생명체로 태어나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죽음과 탄생의 중간에 있는 이 식을 중음신이라 한다.” 앞에서 식이란 전생의 행이 축적된 것이라고 했습니다.(=업) 이것은 육신이 죽어도 소멸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의 탄생에 간여합니다. 그래서 여기서 삶과 죽음의 중간에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귀신, 영가도 이런 것에 속합니다. 죽은 사람의 남은 사념체입니다. 보통 일반적인 영가는 49제를 지내면 환생할 곳을 찾아갑니다. 하지만 중죄를 지었을 경우 구천을 떠돌게 됩니다. 중음신은 이런 형태의 것을 가리킵니다. 이런 존재는 자기의 몸이 없으니까 다른 곳에 가서 붙는 것입니다. 착한 중음신은 일반적으로 49제 때 모두 환생을 합니다. 하지만 긴 시간 동안 중음신의 상태로 있는 것이라면 선보다 악에 가까울 것입니다. 

 26품 3게를 봅시다. “명색(名色)이 활성화하면 여섯 가지 감각 영역[육처]이 일어난다. 육처에 이르러 촉이 일어난다. (해석2) 명색이 나타날 때 여섯 가지 감각영역이 발생한다. 여섯 가지 감각 영역에 의존하여 접촉이 출현한다.(ni ikte n mar pe tu a yatanasa bhava/ a yatanam gamya sa spar a sa pravartate//)” "명색(名色)이 자라나기에 그것을 인(因)하여 육입(六入)이 생긴다. 육정(六情)(=육근)과 육진(六塵)(=육경)과 육식(六識)이 화합하여 육촉(六觸)을 생(生)한다.(名色增長故 因而生六入 情塵識和合 而生於六觸)" 몸과 정신이 활성화되면 우리의 감각 영역이 일어납니다. 안이비설신 다섯 가지로 분화됩니다. 그리고 다섯 감각 기관을 총괄하는 정신 영역의 기관 의가 형성됩니다. 이것까지 포함하여 촉이 일어납니다.

 해설을 봅시다. “명색이 시간이 지나면서 활성화되면(자라나면) 색(육신)에서 다섯 가지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이 형성되고, 명(정신)에서 다섯 가지 감각 기관을 총괄하는 다스리는 정신영역인 기관(의)이 형성되어 발달하고 합하여 여섯 가지 감각기관(안이비설신의)이 형성된다. 이 여섯 가지 감각기관은 대상과 관계[촉]를 가지기 시작한다.” 여섯 가지 감각 기관이 대상과 관계를 가지는 것이란, 바로 눈으로 대상을 보고 귀로 대상을 듣고 혀로 대상을 맛보고 코로 대상의 냄새를 맡고 몸으로 대상의 감촉을 느끼고 의식으로 대상을 의식, 판단하는 것을 말합니다. “촉=근+경+식” 근은 내 안의 감각이고 경은 감각을 통해 받아들이는 대상을 말하고 식은 근과 경의 작용에 의해 일어나는 정신적인 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가 눈을 통해 꽃을 봅니다. 내 눈은 근이고 대상인 꽃은 경입니다. 그 꽃을 보고 ‘예쁘다’, ‘별로다’고 느끼고 판단하는 것은 식입니다. 감각을 받아들여 총괄하는 것은 의(식)가 다 합니다. 

 다음은 26품 4게와 5게를 봅시다. “시각기관[눈]과 시각대상[형상, 색 色]과 주의(注意) 집중을 조건으로, 즉 명색(名色)을 조건으로 안식[시각인식]이 일어난다. (해석2) 눈이 형상(色)들과 주의력을 연(緣)하여, 그렇게 명색을 연(緣)하여 인식(認識)이 출현한다.(cak u prat tya r pa ca samanv h rameva ca/n mar pa prat tyaiva vij na sa pravartate//)” 내 눈이 대상과 부딪히면 안식(眼識)이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다음은 5게입니다. “시각기관, 시각대상, 시각인식 이 세 가지의 만남이 촉이다. 그리고 촉으로부터 수가 일어난다. (해석2) 형상(色)과 인식과 눈의 세 가지가 화합하는 것, 그것이 접촉이다. 그 접촉으로부터 감수(感受) 작용이 출현한다.(sa nip tastray yo r pavij nacak u m/ spar a sa tasm tspar cca vedan sa pravartate//)” 시각기관은 육근 가운데 안(眼), 시각대상은 육경 가운데 색(色)이고, 시각인식은 안식을 말합니다. 이 세 가지가 만나면 촉이 일어나고 수가 일어난다는 말입니다. 

 이 두 게의 해설을 봅시다. “시각기관[안, 눈]은 대상[색, 나 이외의 모든 것]으로 나아가는 의지적 작용 능력이 있어 대상과 부딪히면 식(안식)을 일으킨다. 대상은 대상기관에 대해 필연적 반응 작용을 한다. 그래서 안과 색이 부딪히면 안식이 일어나고 안과 색과 안식의 화합[촉]으로 의식이 일어나게 된다. 이 의식은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나와 연하여 기쁨과 슬픔, 좋은과 싫음을 느끼면서[수] 살아가는 것이다.” ‘기관은 대상으로 나아가는 의지적 작용 능력이 있어’ 라는 말은 내가 대상에게 의지를 갖고 나아갔다는 말입니다. 여기서 나와 대상이 부딪히면 해당기관에서 반드시 대상에 대한 반응 작용이 일어납니다. 이후 기관의 작용을 정신과 마음에서 총괄적으로 분별하는데 이것이 바로 의식의 작용입니다. 여기서 기쁨, 슬픔, 좋음, 싫음과 같은 느끼는 감정이 일어나는데 이것이 우리에게 받아들여진 것, 수(受)입니다. 

 우리의 의식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작용이 ‘촉, 작의, 수, 상, 사’입니다. 작의는 어떤 방향으로 나아가려는 의지입니다. 육근은 육경으로 나아가려는 ‘작의’가 있습니다. 작의로 인해 근과 경이 부딪히면 촉이 발생합니다. 이것에 의해 느낌 즉, 수가 생기고 그 느낌이 형상으로 되고 생각으로 일어나게 됩니다. “시각기관[안]과 대상[색]과의 작용이 일어나듯이 이비설신과 성향미촉의 작용이 일어나 이식, 비식, 설식, 신식이 일어난다. 이것 또한 이와 성과 이식의 삼사 화합을 통하여 의식이 일어나며 촉이 이루어진다. 육근과 육경은 자신의 영역에서만 활동을 한다.” 눈은 대상을 보기만 하고 귀는 대상을 듣기만 하고 혀는 대상을 맛보기만 하고 코는 대상의 냄새를 맡기만 하고 감각은 대상의 감촉을 느끼기만 합니다. 의식은 대상을 분별하기만 합니다. “여기서 무명, 행은 전생에 행한 원인에 해당하고 식, 명색, 육입, 촉, 수는 현생에 받는 결과에 해당한다. 전생에 지었던 원인대로 몸을 받아 고락을 통한 행, 불행이라는 결과를 체험하면서 살아가는 것이다.” 무명, 행, 식은 전생의 영역이라면 이 생에 새로 만들어진 명색, 육입, 촉, 수는 현생의 영역입니다. 여기서 결과를 바꾸기 위해서는 나중에도 나올 환멸연기를 통해 무명을 깨트려야 합니다. 

 26품 6게를 봅시다. “수(受)를 조건으로 애가 일어난다. 왜냐하면 사람은 수라는 대상을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듯 간절히 원하기[渴愛] 때문이다. 간절하게 원할 때 사람은(욕취, 견취, 계금취, 아어취라는) 네 종류의 취에 집착한다. (해석2) 감수(感受) 작용에 연(緣)하여 욕망(=갈애)이 있다. 왜냐하면 감수된 대상을 욕구하기 때문이다. 욕구하는 중인 것이 네 가지 종류의 취함을 취득한다.(vedan pratyay t vedan rtha hi t yate/ t yam a up d namup datte caturnidham//)” “유(有)로부터 생(生)이 존재한다. 생(生)으로부터 노사(老死)가 존재한다. 노사(老死)로부터 우(憂)와 비(悲) 및 모든 고뇌가 존재한다.(從有而有生 從生有老死 從老死故有 憂悲諸苦惱)” 느낌에 따라 애욕이 일어납니다. 이 애에 의해 취(取)가 일어납니다. 애는 사랑 애(愛)를 쓰기 때문에 좋아한다만 포함하는 것 같지만, 싫어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좋아하면 끝도 없이 가지려 하고 싫어하면 끝도 없이 멀리하려 합니다. 이것은 모두 집착입니다. 이 집착이 바로 애(愛)로 여기서 취가 나옵니다. 

 해설을 봅시다. “수를 통하여 애가 일어난다. 우리는 평생을 살면서 어떤 상황이든 누구를 만나든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러한 마음이 욕망이며 애욕이다. 생명체가 성장하면서 주(住)하는 단계가 되면 급격하게 강해지며 구체화된다. 재물욕, 색욕, 권력욕, 명예욕 등이다. 이러한 욕망을 성취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들의 삶이다.” 이런 과정을 거쳐 생긴 욕망으로 인해 우리의 삶은 이끌려갑니다. “한번 좋아하는 마음과 싫어하는 마음이 생기면 그 마음을 지속하려고 한다. 우빠다나(Upadana)는 강렬하다는 뜻의 우빠와 움켜쥐다는 뜻의 아다나의 합성어이다. 강렬하게 움켜쥐고 놓아주지 않는 것이 집착이며, 애욕이 생기면 그것을 곁에 두고 지속적으로 하려고 하는 강렬한 마음이 생기고 그렇게 행하는 것이 취이다.” 우리는 무언가 마음에 들면 계속 잘해주려 하고 무언가 마음에 안 들면 끝없이 못살게 굴려고 합니다. 이런 마음이 들면 계속 지속하려고 합니다. 우빠다나는 바로 취(取)를 말합니다. 우리는 취 때문에 결혼합니다. 내가 마음에 드는 사람을 내 곁에 계속 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사람뿐만 아니라 돈이나 권력 같은 것도 마음에 들어하며 계속 곁에 두려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 집착(취)입니다. “취에는 욕취, 견취, 계금취, 아어취가 있다. 욕취란 욕망에 의한 집착을 말하고, 견취는 잘못된 견해가 맞다고 집착하는 것을 말한다. 계금취는 삿된 계율을 맞다고 믿는 집착이며 아어취는 자아가 있다는 이론이 맞다고 고집하는 것을 말한다.” 우리 중생은 이런 그릇된 집착들 사이에서 살아갑니다. 

 26품 7게를 봅시다. “취(取)가 있으면 집착하는 자에게 유(윤회를 통한 생존)가 일어난다. 실제로 만일 어떤 사람이 집착을 갖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해탈해버려 새로운 유가 일어나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해석2) 취(取)함이 존재할 때 취(取)하는 자에게서 생존(有)이 발생한다. 왜냐하면 만일 취함이 없다면 해탈할 것이며 생존이 존재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up d na sati bhava up d tu pravartate/ sy ddhi yadyanup d no mucyeta na bhavedbhava//)” “이런 모든 일들은 다 생(生)으로부터 존재한다. 단지 이런 까닭으로 막대한 고(苦)의 온(蘊)이 모인다.(如是等諸事 皆從生而有 但以是因緣 而集大苦陰)” 집착하면 존재가 발생합니다. 불교에서 집착하지 말라고 하는 이유는 해탈하여 새로운 존재를 발생시키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하지만 중생들은 끊임없이 집착을 합니다. 무명에서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해설을 봅시다. “이러한 욕망을 성취하기 위하여 자신의 삶의 목적으로 삼아 욕망을 성취하면서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간다. 유에는 생유, 본유, 사유, 중유가 있다. 바와(Bhava)는 팔리어로 바와는 존재, 유의 뜻이다. 이 존재가 지속되면서 업이 형성되고 다음 생에 다시 태어나게 되어 윤회를 하게 된다. 윤회로부터 벗어나는 것이 해탈이며 연기의 성품을 아는 것은 열반적정이다.” 우리가 욕망을 향해 죽을 때까지 열심히 살아가는 상태가 바로 유의 상태입니다. 바로 집착의 상태입니다. 생유는 태어난 것을 말하고, 본유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를 말합니다. 사유는 죽는 순간을 말하고 중유는 죽은 후 내생의 몸을 받아 태어날 때까지를 말합니다. 

 26품 8게를 봅시다. “그리고 이 유(有)란 오온(五蘊)을 말한다. 유로부터 새로운 생이 일어난다. (해석2) 그리고 생존(有)은 오온이다. 생존에서 生(태어남)이 발생한다.(pa ca skandh sa ca bhavo bhav jj ti pravartate/ jar mara aduhkh di ok saparidevan//)” "이 생사를 제행의 근본이라고 하는 것은 무명한 사람이 지어낸 것이지, 지혜로운 자가 한 것이 아니다.(是謂爲生死 諸行之根本 無明者所造 智者所不爲)"

 26품 9게를 봅시다. “노사의 괴로움을 시작으로 비탄, 슬픔, 근심, 고뇌 이 모든 것들이 생으로부터 일어난다. 이와 같이 하여 이 순수한 괴로움의 집합이 일어나는 것이다. (해석2)노사(老死)와 고(苦) 등 비애와 비탄을 가진 것이 발생한다. 낙담(落膽)과 초조, 이것들은 生(태어남)에서 나타난다. 이처럼 오직 고(苦)뿐인 집합체(蘊)가 발생한다.(daurmanasyamup y s j teretatpravartate/ kevalasyaivametasya du khaskandhasya sa bhava//)” “이것이 사라지므로 이것이 생하지 않는다. 오직 고(苦) 뿐인 이 음(陰)의 덩어리가 그렇게 하여 제대로 사라진다.(以是事滅故 是事則不生 但是苦陰聚 如是而正滅)”

 해설을 봅시다. “유가 오온이며 오취온이다. 중생의 삶은 존재하면서 행한 모든 행위들이 업이 되어 내생에 다시 태어나게 된다.(생) 그리고 또 그 업에 따라 온갖 괴로움과 즐거움, 기쁨과 슬픔을 겪으면서 살다가 늙고 병들고 죽는다.(노사)” 여기까지가 무명(無明)·행(行)·식(識)·명색(名色)·육처(六處)·촉(觸)·수(受)·애(愛)·취(取)·유(有)·생(生)·노사(老死), 12연기의 내용을 다룬 것입니다.

 26품 10게를 봅시다. “그렇기 때문에 어리석은 자는 윤회의 근본원인인 모든 행을 행한다. 그러므로 업을 행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고 현자는 업을 행하는 자가 아니다. 현자는 진실을 보기 때문이다. (해석2) 그래서 무지(無知)한 자는 윤회의 뿌리인 형성작용들(諸行)을 짓는다. 그러므로 무지한 자는 (그런 것들을) 짓는 자이다. 지자(知者)는 진실을 관(觀)하기 때문에 그렇지 않다.(sa s ram I n sa sk r navidv n sa skarotyata/ avidv n k rakastasm nna vidv stattvadar an t//)” 여기서 말하는 어리석은 것이란 바로 무명 속에 사는 것을 말합니다. 무명 속에 살며 업이 되는 행을 끊임없이 행하는 일반 중생들이 이에 속합니다. 현자는 진리를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26품 11게를 봅시다. “무명이 소멸하면 모든 행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그런데 무명의 소멸은 바로 이 (연기에 대한) 인식의 수행에 의한다. (해석2) 무명이 사라질 때에 형성작용들(諸行)은 발생하지 않는다. 무명의 소멸은 이 (12연기의) 지혜를 수습(修習)(念想)함에 의한다.(avidy y niruddh y sa sk r masa bhava/ avidy y nirodhastu j nen syaiva bh van t//)” 무명을 없애는 것이 바로 환멸연기입니다. 무명이 소멸하면 행이 일어나지 않아 덩달아 12연기도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무명을 소멸시키는 방법은 연기에 대한 인식의 수행입니다. 바로 팔정도의 마지막 정념과 정정을 말합니다.  

 해설을 봅시다. “무명을 깨트려 무명이 소멸하면 모든 행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독경, 염불, 기도 등의 수행에 의해 취가 소멸되면 애, 수가 소멸되고 무명을 소멸하여 모든 행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취를 소멸하지 못하면 계속하여 삼계에 몸을 받아[유] 살게 되고, 다시 태어나고[생], 늙고 죽는 일[노사]을 되풀이한다.[윤회] 알아차림에 의해 수가 소멸되면 이어서 무명을 소멸하여 모든 행이 일어나는 일은 없다.” 무명은 다른 것이 아니라 수없이 윤회하며 쌓인 업을 말합니다. 화두의 목적은 근본 무명을 타파하는 것입니다. 12연기의 출발점을 깨트리는 것입니다. 이것을 깨트리면 본래성품, 진리가 그대로 나타납니다. 취는 집착을 말합니다. 집착을 소멸시키면 애, 수가 소멸되고 무명까지 소멸되어 모든 행이 일어나지 않게 됩니다. 만약 집착을 깨트리지 못하면 몸을 받아 윤회하여 늙고 죽는 것을 되풀이 합니다. 본질을 알아 무상 무아를 알면 여기서 벗어나 해탈을 하게 됩니다. 알아차림을 통한 방법도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수가 소멸하게 되어 바로 무명이 소멸하게 됩니다. 이와 같이 무명을 타파하기 위해 몇 가지 방법이 있는데 결국은 무명타파란 목적은 같고 가는 속도만 다를 뿐입니다. 급행이냐 완행이냐의 차이입니다. 

 “전생에 죽은 오온은 중음신이 되어 49일간 떠돌아 다니다가 어머니가 될 생명체의 자궁에 부착하여 현생의 오온이 된다. 죽을 때의 오온을 사음, 귀신의 오온을 중음, 태어날 때 오온을 생음이라 한다. 티벳어로 중음의 삶을 바르도(Bar do)라 하는데, 이는 죽음과 태어남의 두(do) 영역의 중간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중음신이 된 기간 49일 동안 49제를 지냅니다. 하지만 티벳에서는 52일을 지냅니다. 티벳불교에 의하면 모든 생명은 머리 꼭대기의 백해혈을 통해 들어옵니다. 그리고 죽을 때는 발바닥을 통해 생명이 빠져나갑니다. 모든 생명이 빠져나가는데 걸리는 시간이 3일입니다. 그래서 중음신이 된 49일과 생명이 빠져나가는 3일을 더해 52일을 지내는 것입니다. 우리는 숨이 끊어진 순간을 죽었다고 말하고 티벳에서는 모든 생명이 육체에서 빠져나갔을 때를 죽었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3일이 차이가 납니다. 해설을 보면 바르도란 말이 나오는데, 유명한 티벳 ‘사자의 서’가 바로 삶과 죽음의 중간을 다룬 책입니다.

 26품 12게를 봅시다. “(12연기의)앞서 있는 지분이 각각 소멸함으로써 후속하는 지분은 일어나지 않는다. 이렇게 하여 이 순수한 괴로움의 집합이 바르게 소멸된다. (해석2) 이것 저것(=12지의 전지 前支)이 소멸함에 의해 이것 저것이(=후지 後支) 발생하지 않는다. 그렇게 하여 오직 고(苦) 뿐인 이 집합체(蘊)가 올바르게 사라진다.(tasya tasya nirohena tattann bhipravartate/ du khaskandha kevala yameva samyagnirudhyate//)” 앞의 것이 사라지면 뒤의 것도 사라집니다. 그래서 무명을 없애면 부처가 되어 진리의 세계로 들어가게 됩니다. 이것이 우리 중생의 목적입니다. 무명을 깨트리고 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환멸연기입니다. 이를 통해 무엇을 해야 할지 어떻게 살아야 할지 알 수 있습니다.


(12연기 원으로 된 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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