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사에 계시는 부처님_3. 주경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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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만나 뵙고 싶었던 스님
주경스님 (서산 부석사 주지)
차를 타고 집을 나서면 낯선 풍경들과 마주치게 되는데 특히 고속도로의 사정은 화들짝 놀랄 지경이다. 좁은 국도의 동맥들이 자꾸만 생겨난다. 온 국토의 심장박동은 강하고 튼튼해지지만 눈과 머릿속은 복잡하고 너무나 편리함 때문에 가끔씩 슬퍼질 때가 있는데 오늘이 그런 날이다.
오월은 예나 지금이나 아름답고 부드럽다. 내가 어릴 때 뛰놀던 산천은 겸재의 산수화 그대로였다. 상록수인 소나무가 언제나 짙은 녹색으로 남성적인 기상 그대로 였다면 오십이 넘어서 내 눈앞에 펼쳐지는 산천경개는 밥로스의 풍경화였다. 녹색과 쑥색을 잘 조합해 놓은 연한 파스텔 색소의 잡목 숲은 부드럽고 아름다웠다.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벌써 느끼고 있는 것이다. 기온의 상승으로 우리나라 산천에 자생하던 수목의 종류가 변해가고 그 분포지역도 변해가는 것이다. 수십 년을 길을 따라 풍경을 보아왔지만 오늘처럼 파스텔 오월은 본적이 없다. 에메날드 녹색의 나무와 노란 털갈이를 한 병아리에서 중닭의 꼬리부분의 색깔을 띤 키가 작은 나무, 어린 인도 소녀가 수풀에서 그린 그림처럼 사실적인 충남 서산지역의 풍경은 충분히 이색적이었다. 서해 간척지 개발은 지구의 그림을 달리하여 그 넓은 간척지에 모내기를 서두르고 있고 방조제 바깥에는 어부의 물질과 뻘밭의 풍경이 내륙에서 살아온 내게는 이색적으로 보였다. 참으로 다양한 삶이 아주 천천히 진행되고 있음을 느끼게 했다.
오늘 우리가 가고자 하는 부석사는 영주에 있는 부석사와 한자 표기까지 똑같다. 건물의 양식마져 특히 안양루의 아름다운 모습은 영주에서는 장엄한 소백산이 바다처럼 보이지만 서산 부석사의 안양루의 모습은 갯벌이 마치 보리가 누렇게 익은 들판처럼 지극했다. 절의 모습은 항상 그 집의 주인의 성향을 그대로 빼닮았다. 훨칠한 키에 거무스럼한 피부와 조금은 잘 나보이는 얼굴생김새와 말뽐새처럼 그 옛날 만공선사와 경허선사의 빛나는 활구참선 하던 기상들이 절 뒤편으로 들어 앉은듯이 지어져있는 법당과 요사채에서 충분히 느끼게 했다. 산의 한면이 깎아놓은 절벽 같은데 그 산의 중간쯤에 동굴을 만들어 놓고 본래면목을 찾았던 전설같은 옛선사의 발자취가 그대로 남아있었고 한편에서는 황토로 지은 건물이 있는데 건물 속에는 수세식 변기가 낯설게 자리잡고 있었다. 어쩐지 그 화장실이 눈에 제일 먼저 띠어 이절 주인의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또 새 건물에는 충청도 사람들의 방언으로 잘익은 탕(곰팡이) 냄새가 나고 겨울에는 한나절 불을 지피면 이틀은 뜨근하다고 자랑하시는 주경스님의 안목과 배려가 있은 탓인지 서산 부석사에는 보살님들이 많다고 하신다. 스님은 결혼을 해보지 않았는데 점쟁이처럼 보살들의 마음을 용하게 아신다. 그래서 보살들이 좋아한다고 느스레를 떤다. 그래서 스님이 더 좋다. 아직 불사의 끝트머리가 그대로 있어서 조금은 어수선하지만 밉지가 않다.
도비산 절 자락은 마치 과거와 현재가 잘 공존하도록 스님이 만들어 놓은 것이다. 시맨트로 뱀의 허리를 공룡처럼 살찌게 만들어 놓은 한편 곳곳에 지름길을 만들어서 변덕스러운 여인이나 잘 삐치는 여인들, 부끄러운 생각에 홍조를 띤 수줍은 여인이 몰래 걸어갈 수 있는 나무 터널 속의 오솔길과 돌로 쌓은 계단 길이 있어서 더욱 아름답다. 경내에는 곳곳에 꽃이 만발해 있었다. 왕벗꽃나무의 꽃잎이 내려앉은 길 양편으로는 철쭉과 목단 꽃과 서양 패랭이 꽃이 있고, 이름 없는 작은 들꽃들이 피어 있어서 오월의 영화가 화려했었다.
잘 생긴 스님께서 맑고 향기 가득한 차를 세잔을 주셨다. 첫째 잔은 향으로 마시고, 둘째잔은 맛으로 마시고 셋째 잔은 각자의 마음으로 마신다고 하셨다.
바쁜 스님이 자주 오라고 했지만 언제 다시 기약을 할 수 있으랴. 실천하지 못하는 약속을 자꾸하면서 간월도로 향했다. 달을 보고 깨달았다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 였던 무학대사가 창건한 간월암은 물때에 따라 섬으로써 육지와 연결되므로 사람들의 시선을 끈다. 갈 길이 먼 우리는 서해의 아름다운 낙조를 볼 수가 없어서 아쉽지만 고색 창연한 작은 암자 앞으로 펼쳐진 서해 바다를 바라보고 있노라니 문득 나도 아무도 없는 외로운 달밤에 암자의 마당에 서 있노라면 문득 본래면목을 볼 수 있을 것 같다. 암자 밑으로 꼭 손바닥 만한 터에 해풍에 온몸을 주체 못하는 상추 몇 포기는 벌써 한 소식을 얻은 것 같다. 보잘 것 없는 것이 크 고 위대한 것을 볼 때 주눅이 들기 싶상이다. 그 주눅의 실체를 알고 나면 크고 작은 것은 분별심에 불과하다. 그래서 상추는 벌써 오도송을 내뱉은 것이다.
(2010년 5월 서산 부석사 성지순례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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