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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불자교수회4집(불교와 문화의 만남)

신행_남도 성지 순례기(이상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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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7,202회 작성일 23-02-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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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도 성지 순례기 

     --- 쌍봉사 보림사 미황사 대흥사 무위사 도갑사 성지순례(2012. 5.19~5.20)


                                                          이상숙 


명랑한 5월 주말 아침 남도의 산천에는 눈부신 햇살이 춤추고 금방이라도 바람이 날 것 같은 공기가 순례를 떠나는 순례자의 발걸음을 들뜨게 했다. 20명의 순례자를 태운 버스가 이산저산을 넘기도 하고 가로질러서 목적지를 향해 달린다. 캔터베리로 순례를 떠나는 순례자들처럼 재미있는 이야기를 함께 나누지는 못해도 끼리 앉은 좌석에는 기대에 벅찬 모습이었다. 

유난히 이번 순례에 기대되는 것은 이제까지는 누군가가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보여주기 위하여 애를 썼고 또 쉽게 우리의 눈을 유머와 재치와 또 위엄과 웅장함이 숨어있는 건물과 학과 석등과 축대에까지 시선이 머물 수 있도록 도와주었는데 이번에는 순전히 보는 사람이 노력하는 만큼 볼 수 있는 순례가 된 것이다. 그래서 긴장하면서도 자유로움에 대한 열망을 숨길 수가 없었다. 

첫 순례지는 화순의 쌍봉사였다. 경상도에 있는 사찰만 보다가 남도지방의 사찰을 오랜만에 보니 그 남다름에 놀라움이 컸다. 요란스럽지도 않고 또 벅찬 규모가 아니다. 그저 잘 사는 부잣집 정원에 놀러온 기분이었다. 소박하면서도 예술적인 사천왕문은 들어서니 곧바로 시야에 들어오는 3층 목탑식 대웅전은 찬란한 아름다움이었다. 국내 유일의 3층 목탑이라서 두 눈이 휘둥그레졌는지도 모르지만 그 아름다운 대웅전의 소박한 문을 열고 들어서니 곧바로 내 이마 위에서 내려다보시는 검소한 부처님의 모습에는 가벼운 존재감마저 느꼈지만 오래오래 기억 속에 남아있을 것 같다. 참으로 인자한 부처님이며 서역 땅의 부처님이 아니라 이웃집에서 금방 놀러 오신 할아버지 같았다. 내 눈에는 3층 목탑 대웅전이 국보 같았는데 이 절의 국보는 대웅전 건물 왼편으로는 작은 길을 따라 조금만 올라가면 만나는 적인회철선사의 부도탑이었다. 그 옛날 백제 조상님의 화려함과 섬세함과 조각의 완벽한 비례를 다 갖춘 탑이라고 극찬을 하는 것에 하등의 이유를 달 수 없는 그런 완벽한 아름다움이었다. 전남 지역 3대 사찰 중의 하나라고 할 만큼 아름답고 섬세하고 아늑했다. 마치 모태 이전의 고향에 온 기분이랄까. 순례자들의 놀란 입은 연신 비명에 가까운 감탄사를 날렸다. 

두 번째의 순례지는 장흥의 보림사이다. 선종이 들어와 정착한 9산 선문 중에 가지산문의 종찰로서 조계종이 시작된 곳이라고 하는 이유에 보답이라도 하듯이 국보와 보물이 득실거렸다. 철로 주조된 비로자나불 좌상과 그 앞마당에 서있는 3층 석탑이 국보로써 마치 불국사의 석가탑을 모셔다놓은 것처럼 닮아있었다. 거리상으로 봐도 경주와 장흥은 그리 가까운 거리가 아닌데도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또 법당에 모셔진 철불의 주조과정에 관한 의문은 이번 순례동안의 화두로 삼기로 했다. 정말이지 그 옛날에 철을 다루었던 조상님들의 탁월한 기술과 예술적 감각은 후손들에게 얼마나 큰 정신적 물질적 유산인지 모르겠다. 자랑스럽고 감탄스러울 따름이다. 

보림사 순례를 마치고 해남 땅끝마을로 가기 전에 잠시 우리는 캔터베리 순례자들처럼 장흥 5일 장터에서 장터국밥을 먹었다. 오늘의 순례의 정신적인 상황과 배고픔을 해결해야겠다는 물질적인 관계에서 매우 자유롭게 즐겼다. 송송 썬 파를 듬뿍 넣고 큼직하게 썬 고기가 가득 담긴 뚝배기 가득한 국밥을 먹으면서 어느 누구도 우리가 한 시간 전에 무엇을 했는지에 대한 의문을 품지 않고 희희낙락했다. 법륜불자교수회의 특별한 점심이었다. 

장흥 장에서 나와 곧바로 땅끝마을로 향했다. 국토 끝부분이라고 해서 땅끝이라고 하지만 내가 서 이곳이 땅끝이라고 믿어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모노레일을 타고 동산 같은 작은 산 위로 올라 내려다보니 조금은 실감이 났다. 다도해인 남해의 풍광의 그림처럼 펼쳐져 있고 푸른 물결 사이로 잘 가꾸어진 바다 농장의 미역과 다시마가 토해놓은 것 같은 뿌연 부유물로 가득찬 바닷물 냄새가 사람의 삶의 터전이 얼마나 다양한가를 느끼게 해주었다. 땅끝 마을을 나와서 세 번째 순례지인 달마산 미황사로 향했다. 

미황사에는 금강스님이 계셔서 더욱 유명하다. 미황사를 잘 알게 되고 관심을 가지게 된 것은 순전히 월간 불광에 실린 금강스님 때문이다. 1년 이상 잡지에 실린 금강스님과 미황사의 이야기는 유난했다. 불교가 발전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절 주변의 지역주민과 화합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사실을 가르쳐준 것이다. 도회지 근교에 있는 사찰과는 확연히 다른 미황사 근처의 마을의 관계는 마치 한 동네에 사는 지체 높은 어른과 마을 사람처럼 그렇게 아웅다웅 거리면서 상부상조하는 모습을 책에서 읽으면서 금강스님에 대한 매력에 푹 빠졌던 기억이 있다. 내가 처음 미황사에 갔을 때는 미황사와 금강스님의 인연이 없었던 시절이다. 절집이 무척 퇴락하여 그저 절 주변의 동백나무만 할 일없이 붉게 피고 지곤 했었다. 그런데 오늘 내 눈에 보이는 미황사는 전설도 많고 창건 유래도 여러 가지인 달마산 품에 안긴 여유롭고 안정된 모습이었다. 때마침 템플스테이에 참석 중인 단기 선 수행자들이 조용히 묵언정진하고 있어서 더욱 미황사가 대황사처럼 보였다. 하룻밤을 묵으면서 밥과 잠자리를 푸근하게 대접받았다. 우리가 수련회를 할 때는 조금은 강압적인 행사를 하기 때문에 상당히 부담감을 받았는데 오늘은 그야말로 일탈의 방목이었다. 그래서 순례자들은 이제 순례자의 모습이 아니라 여행자로서 미황사에서 하룻밤을 보낸 것이다. 

네 번째 순례지는 두륜산 대흥사이다. 대흥사로 출발하기 전에는 순례자들끼리 의견차를 보이기도 했다. 그야말로 여행자로서 케이블카를 타고 두륜산 정상으로 가자는 의견과 그래도 무늬만이라도 순례자가 되자는 의견이 나왔는데 명색이 법륜불자교수회인데 하면서 켄터베리 순례자가 되기로 했다. 대흥사도 알려진 대로 매우 유명한 사찰이었다. 마찬가지로 어느 시절에 왔었던 추억들은 다 사라져버렸다. 새로운 건물이 들어선 가람은 수려하기 보다는 산만하고 낮설었지만 대흥사를 받들어주는 13명의 종사와 13명의 대강사와 유명한 사명대사의 의발이 전해진 곳으로 유명한 곳이다. 특히 성보 박물관에 전시된 많은 유물은 어느 민간 박물관에 뒤지지 않는 유물로서 사찰 순례의 특별한 매력이 되었다. 그 외에도 우리나라 차하면 항상 기억해야할 초의 의순스님이 기거하셨다는 초당이 유명하다. 지금은 보수에 보수를 더하고 중창하여 새로운 관광지로 바뀌어 특별 탐방 코스가 되어있었다. 대흥사까지 와서 초당을 아니 볼 수는 없다고 하면서 순례의 고단함을 마다하는 팀에는 끼지 못하고 대흥사 마당을 어슬렁거리면서 커피 한 잔에 대한 갈망을 달랬다. 차 문화의 보급 탓일까. 그 흔한 우리나라 명물인 커피 자판기를 구경할 수 없다는 것이 남도 순례의 특별함이기도 하다. 

다섯 번째 순례지는 무위사인데 벌써 여독에 지친 순례자들은 눈꺼풀이 아래로 내려앉고 앉은 자세로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이럴 때는 켄터베리 순례자 중에 가장 이야기를 재미있게 한 방앗간 주인의 이야기도 별 도움이 되지 않을 것 같았다. 그렇게 지쳐있었던 것이다. 얼마를 졸다가 문득 눈을 떠보니 무위사 앞마당인데 일행들이 버스에서 내려 맞이한 첫 광경은 따가운 햇살 세례였다. 모두의 찡그린 얼굴에는 ‘무위사가 뭐 이래?’ 였다. 하지만 무위사에는 유머스러운 괘불이 있어서 사람을 불러 모으는 것 같았다. 이곳도 불사가 한창이었다. 마치 대거 이주를 하기 위한 기반 시설 공사를 막 끝낸 것 같은 주변개발이 낮설고 언짢지만 이곳에서는 그것이 대세라 하는데 경상도 지방에서는 이미 10수년전에 다 겪었던 광경이었다. 이번 순례에서 가장 밋밋하고 재미없는 곳이 되어버린 무위사를 빠른 번개처럼 순례하고 월출산 품에 안긴 도갑사로 향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도갑사 입구에 있는 산장식당에서 남도 정식으로 점심밥을 먹었다. 옛날부터 남도의 음식문화는 특별하다. 총무 교수님께서 넉넉하지 못한 예산 때문일까. 국적을 알 수 없는 대가리가 몸통보다 큰 생선 한 마리가 야단스럽게 굽혀서 나왔다. 남도의 정식에 대한 기대가 무너지는 순간이었다. 그래도 우리는 지금 음식순례를 온 것이 아님을 퍼뜩 깨닫는 순간 그 가엾은 물고기가 더 없이 고맙게 보였다. 게걸스러운 포식자가 되어 밥그릇을 비우고 1박 2일 동안 그토록 갈망했던 커피 한 잔을 들이키고 나니 도갑사 순례에 대한 마지막 에너지가 넘쳤다. 10수년 전에 처음 이 곳에 왔을 때 도갑사의 남다름에 놀라워했던 기억 때문에 가끔씩 도갑사를 추억했었다. 특히 해탈문은 국보인만큼 빛바랜 모습과 나지막한 천장과 조금은 뒤틀림 불안정한 기둥 때문에 안쓰러움에 가까운 걱정을 했었던 기억이 생생한데 배부른 점심을 먹은 내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한 것은 보수된 해탈문의 해괴한 모습이었다. 현대 속에 콱 처박힌 과거의 한숨이 그대로 느껴지는 안목은 누구의 탓일까. 전문가의 안목이라면 절망을 해야만 할 것 같은 심정이었다. 힘없는 자의 탄식은 개구리의 하품만도 못하다 하니 어찌하랴. 해탈문을 들어서니 눈 앞에 나타난 뜬금없는 회랑의 가로 질주와 위풍당당한 2충 대웅전은 내 기억 속의 아름답던 대롱나무들을 지워버렸다. 그 많던 싱아풀을 누가 다 먹었나가 아니라 그 아름다던 대롱나무들은 어디로 사라져갔는가. 대웅전 뒷 산으로 숨어버렸는가? 열심히 해우소를 찾아서 이곳저곳을 헤매면서 너무나 변해버린 도갑사의 현재를 그만 잊기로 했다. 시절을 잘 만난 것인지 그렇지 못한 것인지는 후대 사람들이 판단하겠지만 그래도 난 지난 시절에 보았던 도갑사가 좋고 그립다. 일주문을 나설 때 내 그림자는 서쪽을 향해 길어져있었다. 

이제 길고도 짧은 1박 2일의 순례가 끝나고 다시 온 곳으로 되돌아오는 동안 쌍봉사와 보림사는 가까운 시일에 꼭 다시 찾아와야겠다고 생각했다. 오겠다는 마음은 미루다보면 어제 보았던 아름다운 풍광을 두 번다시 볼 수 없다는 것을 이번 순례에서 알아차렸다. 기대와 실망이 번갈아 생하고 멸하였지만 색다른 순레임에는 분명했다. 사람들은 부자유스러움 보다는 자유스러움을 좋아하고 먹여주는 것 보다는 스스로 먹는 것이 훨씬 이롭고 의미가 깊다는 것을 알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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