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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계시는 부처님_9. 자현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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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748회 작성일 22-08-12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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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아름다움 


                                            자현스님 / 봉정사 주지   


자현스님의 강의 주제는 불교의 아름다움이었다. 스님의 인상은 귀가 참 크다. 더욱이 그냥 큰 귀가 아니라 제대로 생긴 모습이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일 수 있으며 또 그 소리에 올바른 가르침을 충분히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그 생각은 기대를 훨씬 넘었다. 스님의 말씀은 21세기 불교가 가고 있는 모습과 함께 문제점에 대해서도 정확하게 꼬집어냈다. 일반 불자들이 알고 있는 불교 일반적인 문제를 비불교도의 생활 속에서도 충분히 알아차릴 수 있는 것에 대비시켜서 잘 말씀하셨다. 


불교계의 비화같은 성철스님의 열반송에 대한 법정스님의 잘못된 해석에 대해서는 스님 스스로 비분강개 수준이었다. 알거나 모르거나가 아니라 조목조목 따졌다. 먼저 성철스님의 열반송을 보면 

1.일생동안 남녀의 무리를 속였다: 자현스님 曰 부처님은 모든 것에 불성이 있다고 했다. 그것에 온갖 소리를 한 것을 속인 것으로 표현했다. 

2.그 죄가 수미산 같더라: 자현스님 曰 수미는 매우 크다는 것이다. 

3.죽어 마땅히 지옥에 가더라도 여한이 없다: 자현스님 曰 즉 나를 필요로 하는 곳에 가겠다는 뜻으로 지장보살도 갈만큼 끝이 없는 곳으로 성철스님도 지옥에 가서 중생교화를 하겠다는 뜻이다. 

4.수레바퀴는 붉음을 토하고 벽송에 걸렸다: 자현스님 曰 근일스님의 말씀인 ‘성철스님이시여 벽송마저 놓아버리소서’를 인용했다. 

이렇게 설명하시면서 법정스님의 성철스님 임종게 설명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성철스님도 말년에 참회를 했다는 식으로 설명해서 기독교인의 비방의 빌미를 주었으며 또 성철스님 생전에 3000배를 굴절운동으로 비하한 사건등 실제로 성철스님은 자비로운 분으로 삼천배는 자기정화일 뿐으로 불교의 위상을 나타내고 지킨 것이다. 

또 성철스님의 돈오돈수에 대한 비판(송광사 보조선사문도에서)은 법정스님과 대적한 것이 아니라 법정스님 혼자서 한 것으로 말씀하였다. 불자라면 민감한 이야기를 구산스님의 임종게에 대한 성철스님의 게송 마지막 구절로 마무리했다. <미소가 국보급인 국산스님의 임종게: 巳口入地獄> : 아무나 지옥가나 식으로 당신(구산)이 지옥 가서 어리석은 중생을 위해 좋은 일 하소서의 뜻으로 말씀하였다. 

21세기 불교의 아름다움이란 바로 불교는 박물관 속의 국보, 보물 같아서는 안되며 실천하는 불교가 되어야 한다. 또 불교 학생회 활동은 실제 직업문제에 까지 결부되어야 하는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하여 불교학생회의 미래가 어두운데 그 이유는 첫째 경제적인 문제가 심각하고 둘째 사찰 기관에 직접적인 연관성이 희박함이다. 셋째는 외부세계에서 가장 문제 삼는 것은 돈오돈수와 돈오점수이다. 돈오돈수는 이치로는 부처님의 깨친 내용으로 신심명 끝부분에 나오는 내용인 信心이다. 부처님이 깨친 후 설한 것은 화엄경이다. 범천의 간청으로 최초로 설한 경의 내용은 돈오돈수이다. 아라한의 경지(불퇴지의 경지)는 굉장한 것으로 모든 것은 부처님의 기준으로 해야 한다. 그러므로 계율과 법이 시대에 맞게 한다는 것은 잘못이다. 그것은 변명에 불과하다. 즉 돈오돈수의 근본위치에서는 맞지가 않다. 현실에서 볼 때는 돈오점수가 될 수는 있지만 실제(법대로)는 돈오돈수다.(몰록깨치다) 실제로 깨쳤다면 돈오돈수, 돈오점수의 분별은 잘못이다. 두 가지를 말하는 것은 학자의 말에 불과할 수 있다. 일전에 대만 대학교수(화엄학의 일인자)의 질문에 스님이 답한 내용은 돈오돈수도 돈오점수도 다 맞을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얼마나 믿고 수행 실천하는 것이 중요할 뿐 시비는 잘못이다. 예를 들어서 병아리가 21일만에 부화를 하는 순간 생명이 되는 것으로 어미가 껍질을 깨어주면 나오는 것이다. 이미 갖추어졌을 때 가능한 것이다.

줄탁통시가 되어야 한다. 공부는 반드시 익어야만 한다. 

스님은 시대에 따라 계율과 법이 바뀌는 것에 반대했다. 그 외에도 불자들의 기도 방법에 대해서도 말씀하셨다. 모든 기도는 기간을 정해놓고 해야하며 화두를 들 때 들고 있는 것이 되지 않는다고 화두를 바꾸기 전에 들던 것이 오히려 잘 되는 경우가 있다. 화두와 염불이 동시에 다 되면 더욱 좋다. 염불은 불보살을 따라 하는 것으로 중국은 염불선의 나라다. 허운화상, 인선화상이 중국 염불선의 대표이며 한국에는 진제스님, 송담스님, 근일스님을 들 수 있다. 중국은 문화혁명 후 사실상 선이 단절된 상태다. 중국 무이산에 있는 성음사에 기행할 때 그 곳 방장 추대 이야기를 보니 문화대혁명 후 속가로 쫓겨갔던 방장이 돌아온 후 젊은이를 방장으로 추대한 이야기 속에서 중국불교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끝으로 불자들에게 일침을 놓았다. 먼저 우리 불자들은 자신의 떳떳함을 밝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반대로 개신교도들은 너무 나댄다. 불자들은 너무 점잖아서 솔선수범의 실천이 없고 또 한 사람의 소중함을 너무 모른다고 했다. 걱정스러운 것은 승가대학의 존폐위기다. 출가숫자가 줄고 있다. 여성 출가가 50% 이상 줄었다. 다행인 것은 밥출가가 줄었다는 것이다. 625 당시 먹고 살기가 어려워 밥을 먹기 위해서 출가한 자가 많았다. 현재 조계종에서는 50세 이상은 출가가 불가함을 종법으로 묶었지만 자현스님의 생각은 40세로 출가 나이를 줄이는 대신 60세까지 특별관리를 하자는 것이다. 즉 받아주되 주지 같은 직책은 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 외에도 20세 이상 중졸은 불가하며 대신 20세 이하 중졸은 인정하되 15세 이하 출가의 불가는 반대하였다. 아이가 어른보다 못하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나이가 들면 힘들어지면서 속세의 습에 빠져 선심을 잃게 된다. 즉 속세 연민에 빠진다는 것이다. 또 호적상 가족이 있으면 출가하는 것은 불가이다. 출가는 간절한 마음과 습이 매우 중요하다. 집착의 무서움 때문이다. 발심하고 재발심이 매우 중요하다. 불교는 극락 가는 종교가 아니다. 과거에 얽매이고 미래의 볼모가 아니라 현재의 문제일 뿐이다. 현재의 중요성이 불교의 장점이다. 진리를 알면 아는 순간 진선미는 그대로 되는 것이다.  

 

 (2013년 7월 봉정사 하계수련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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