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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문화의 만남_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심성(최영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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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480회 작성일 22-08-18 1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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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國 傳統寺刹 木造建築의 心性


大木 崔 英 植 大木 崔 英 植, 本貫 : 慶州(司成公派), 本鄕 : 慶州 校洞(내남), 雅號 :大木, 法名 : 淳碩, 1952년4월9일(陰) 경북 포항에서 출생, 영남대학교 건축공학과 졸업(공학사), 同 대학원 건축공학과 졸업(공학석사), 일본 국립나고야공대 대학원 건축과 졸업(공학박사), 해군본부 시설감실 시설장교(예비역 해병대중위), 前 영남이공대학교 교수(1980.9 ~ 2017.8), 現 영남이공대학교 명예교수, 대구한의대학교 한문화건축연구소 교수, 前 (사)한국산업융합학회 회장, 前 (사)대한설비공학회 대구ㆍ경북지회 회장, 現 문화재청 설계심사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경상북도 문화재위원, 조달청 기술평가위원, 대한민국명장 선발위원, 경상북도 건축심의위원, 대구광역시 건축심의위원, SBSㆍTBC 생방송투데이 패널, 매일신문 칼럼니스트, 대구불교방송국 칼럼니스트, 법륜불자교수회 부회장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에 대한 개념은 건축의 美的 感覺과 構造的 安定感의 선택이 어디에 있느냐로 부터 ‘한국전통 사찰건축의 心性’ 출발이 시작되어야 할 것 같다. 왜냐하면 1,700여 년 전에 시작된 우리나라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산사(山寺)가 대부분이었고 불심(佛心)하나로 사찰(寺刹)을 짓기 시작한 도대목(都大木)은 사찰이 완성되기 전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하산(下山)을 하지 않았었다. 그래서 옛 도대목(都大木)이 사찰건축에 임할 때는 자연의 지세(地勢)를 존중하였고, 자연에 순응(順應)하려는 특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그만이 지닌 애환(哀歡)과 심성(心性)을 사찰건축에 심어놓은 것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1. 序 言


  예부터 한국 전통사찰건축은 목조(木造)로 건축해야 제 맛이 난다고 말해왔다. 한국전통 사찰건축은 목재(木材)가 주로 사용된 가구식(架構式, 조립식) 구조였고, 사용된 재료는 우리나라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육송(陸松 이엽송)이었다. 하지만 우리나라 토종 육송은 장대(長大)한 부재를 얻기가 어려웠고 수액(水液)이 많아 치목(治木)하기가 쉽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대목(都大木)들은 제약(制約 constraint)이 많은 육송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많은 창안(創案)을 슬기롭게 발휘해왔음을 전통사찰 목조건축을 통해 엿볼 수 있다.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친근감을 주는 척도(尺度) 즉, 인간적 척도개념(human scale)을 나타내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인위적인 기교(技巧)를 사용하지 아니하였으며, 시공(施工) 방법 또한 자연미를 나타내려고 노력하였음을 알 수 있다.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건축 재료의 치목(治木)과 사용에 있어서도 목재가 가지고 있는 자연본래의 특성을 잘 살려서 사용하였다. 또한 사찰건축에 임했던 한국의 도대목(都大木)들은 형식에 얽매이지 않았고, 어수룩하고 순박한 면이 있어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우리에게 더욱 친근감을 주며, 외관은 간소(簡素)하고 꾸민 데가 없이 순수(純粹)하며, 촌스럽기도 하지만 인내심을 가지고 차분히 들여다보면 그 곳에는 겸허(謙虛)한 깊은 맛을 풍기고 있음을 알게 된다.  

2.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구성


2-1 기단(基壇)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기단을 중요시 하였으며, 기단위에 주초(柱礎)를 놓는 방법 중 한국 고유의 특수한 덤벙주초 방식이 있다. 기단의 갓 둘레에 쌓은 돌을 지대석(地臺石) 또는 기단석(基壇石)이라 하고 길고 네모진 석재를 장대석(長臺石)이라 한다. 기단의 높이는 사찰건축에서는 3∼4자(尺) 정도가 보통이다.

 

2-2 주초(柱礎)

  기둥 밑을 받치는 돌을 주춧돌이라 하고, 크기는 규모가 큰 건물이라도 그 지름이나 한 변의 길이가 1.5m 이내이며 보통은 90cm각 이내로 하였다. 자연석 주춧돌은 산야(山野)나 천변(川邊)에 있는 편평한 돌로 요철(凹凸)이 심하지 아니한 적당한 크기의 돌이면 사용할 수 있었다. 주춧돌로 사용한 석재는 화강암(花崗巖)이 대부분이고 응회암, 석회암, 대리석 등도 간혹 사용되었다. 

  자연석 주춧돌 위의 기둥높이는 그 중심부에서의 높이를 기둥높이로 하며, 자연석 주춧돌은 기둥 바깥으로 5∼9cm정도 큰 것이라야 한다. 자연석 그대로의 주춧돌을 덤벙주초라 하며 이는 자연석을 털썩 놓았다는 뜻에서 나온 속어(俗語)이다. 반면 잘 다듬은 주춧돌은 정평주초(定平柱礎)라 한다.

  석재(石材)를 가공하여 주춧돌로 쓸 때는 가공법이나 모양도 더러는 내보이는 부분만 다듬은 것과 고막이 고막이   : 온돌구조에서 하인방 또는 토대 밑을 막은 벽.

까지 돋친 것도 있다. 주춧돌은 경미한 것은 지정다짐 지정다짐 : 집터를 다져서 단단하게 하는 일.

한 땅 위에 바로 놓기도 하지만 판축기초 판축기초 : 터파기를 하고 넓적한 돌을 두께 20~30cm정도로 깔고 그 위에 토사를 넣어 다지기를 반복한 기초.

, 입사지정 입사지정 : 연약한 진흙 등을 파내고 막돌을 넣고 모래를 채워 다진 모래기초.

 또는 적심석 적심석   : 주초 밑에 넣어 다진 돌.

을 넣고 다진 위에 설치하기도 하였다.


2-3 기둥(柱)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덮으면 벽을 치는 것이 보통이지만 종각(鐘閣)처럼 기둥만 세우고 벽은 치지 않은 건물도 있다. 기둥은 목재가 지니는 재료상의 제약이 있어 크고 넓은 간격으로 배치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었다. 기둥감으로는 우리나라 재래 소나무(陸松 이엽송)를 제일로 쳤고, 좋은 기둥감으로는 굵기와 길이가 알맞고 직선재라야 했다. 기둥의 단면은 원형인 두리기둥(圓柱)과 각주(角柱)인 방주(方柱)를 주로 사용하였다. 자연목을 다듬지 않고 생긴 그대로 사용한 경우도 있는데, 실제 지리산 화엄사 구층암 요사채의 기둥은 굵은 모과나무 고목을 잘라 다듬지 않고 자연 그대로 사용하였다. 

  한편, 대규모 사찰에는 주로 배흘림기둥이 사용되었고, 이 때 건물 바깥쪽에 둘러선 기둥을 변두리기둥 또는 외진주(外陣柱)라 하고 내부에 줄 바르게 둘러선 기둥을 안두리기둥 또는 내진주(內陣柱)라 하며, 건물 모서리에 세운 기둥을 귓기둥 또는 우주(隅柱)라 한다. 

  기둥이 한층(단층) 높이로 된 것을 평기둥이라 하고, 중층건물의 경우에는 아래층 기둥을 하층기둥 윗층 기둥을 상층기둥이라 하며 상하층 기둥이 한 재로 된 것을 통재기둥이라 하고, 네 지붕 끝 추녀의 무거운 하중을 받치고 서있는 기둥을 활주(活柱)라 한다. 

  또한 기둥이 밑동에서 위로 올라가면서 점차 가늘어지는 것을 흘림기둥이라 하고, 직선적으로 위가 가늘게 된 것을 민흘림기둥, 아래 3/1부분이 가장 굵고 위는 가늘게 된 것을 배흘림기둥이라 한다. 

  건물 정면의 가운데칸(御間) 좌우 기둥을 기준으로 측면으로 갈수록 기둥을 조금씩 높게 하여 건물의 좌우 끝이 처져 보이는 것을 시각적으로 교정하고자 의도한 것을 귀솟음이라 하고, 기둥 위가 건물 안쪽으로 기울어지게 한 것을 안쏠림이라 한다. 이것도 건물의 상부가 벌어져 보이는 착시(錯視)현상을 교정하고 건물의 안정을 도모한 것이라 할 수 있다.


2-4 공포(拱包) 

  공포는 주두(柱頭)위에 첨차(檐遮)와 소로(小累)를 교차시켜 거듭 짜 올린 것을 말한다. 이를 두공(枓拱)이라고도 하며 이와 같이 공포를 짜서 꾸미는 일을 포작(包作)이라 한다. 공포는 그 위치에 따라 주심포(柱心包), 주간포(柱間包)로 구분되고, 기둥과 보를 결구(結構)하여 지붕을 받치는 공포 공포(栱包) : 네모 토막나무로 된 주두ㆍ소로 위에 첨차ㆍ살미 등을 교차시켜 거듭 짜 올린 것을 말한다. 공포는 포(包)라고도 하며 살미는 그 모양에 따라 쇠서라고도 한다. 공포는 처마서까래를 길게 내밀어 거는 출목도리를 지지하는 구조재로서 건물의 상부를 수식하는 부분이기도 하고 내부의 출목도리를 지지하여 내부 수장으로서 쓰이기도 한다. 

는 고려초기에는 주로 주심포식(柱心包式)이 많이 사용되었으나 고려 후기부터는 점차 다포식(多包式)이 많이 사용되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유구(遺構)로는 고려 때 창건된 안동 봉정사 극락전(고려중기 후반, 국보 제15호), 고려 중기의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중수, 국보 제18호)과 영주 부석사 조사당(1377년, 국보 제19호), 충남 예산 수덕사 대웅전(1308년, 국보 제49호),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고려 우왕원년 1389년, 국보 제14호) 등이 있다. 이들은 모두 주심포식 건축이다.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조선시대에 들어와 태평에 젖은 양반들이 안일 속에 정쟁(政爭)에만 관심을 기울이고 있을 때에 일본의 도요도미 히데요시(豊臣秀吉)를 중심으로 조선 제14대 선조(宣祖) 25년(1592) 7년간에 걸친 임진왜란으로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대부분 소실되었고, 1636년부터 1637년 조선과 청나라 사이에 일어난 병자호란(丙子胡亂) 때 그나마 조금 남은 전통사찰 목조건축까지 소실되고 말았다. 

 

2-5 지붕(屋蓋)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지붕은 팔작지붕(합각지붕), 박공지붕(맞배지붕), 모임지붕(우진각지붕) 등 세 가지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합각(合閣)이란 측면에서 보았을 때 보이는 삼각형의 벽을 말하며, 대규모 사찰의 금당(金堂)은 팔작지붕을 제일로 쳤다. 박공지붕은 원래 뱃집 뱃집 : 배 위에 간단히 지은 집. 대개 지붕 모양을 박공집 형식으로 하였다.

에서 온 말이며 비교적 소규모 건물에 많이 쓰였고, 모임(우진각)지붕은 추녀마루가 지붕마루에 합쳐지게 된 것으로 건물의 사면에 처마를 두고자 할 때에 쓰였다. 

 

2-6 반자(盤子)

  반자는 천장(天障) 또는 천정(天井)이라고도 하며 치받이 흙(앙토) 치받이 흙(앙토) : 서까래 위에 엮은 산자 밑에 바르는 흙.

을 바른 천장은 연등천장 연등천장 : 서까래 사이(연등)의 개판 또는 앙토 밑이 그대로 치장이 되게 한 천장.

과 고미반자 고미반자 : 고미받이에 고미서까래를 걸고 산자를 엮고 흙칠한 반자.

이며, 우물정자형으로 반자틀을 짜서 꾸민 천장을 우물반자 또는 소란반자라고 한다. 


2-7 바닥(床)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바닥은 마루나 온돌로 마감하였고, 구들을 놓은 바닥을 방바닥, 널을 깐 바닥을 마룻바닥이라 한다. 온돌방에는 난방과 취사를 겸하는 부뚜막 아궁이가 설치되어 있고, 부엌에 면하지 않은 온돌방의 난방은 함실아궁이(군불아궁이)를 설치하여 난방 전용으로 사용하였다.

  마루 바닥은 긴 마루 널을 깐 장마루와 장귀틀과 동귀틀로 짜서 동귀틀 사이에 청판(廳板)을 끼운 우물마루가 있는데 법당에는 주로 우물마루를 설치하였으며, 요사채 방 앞의 기둥 사이에 설치된 마루는 툇마루, 기둥 없이 놓인 마루는 쪽마루라 한다.


3. 맺음말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에 녹아있는 심성(心性)을 살펴보았다.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은 자연재료를 이용하여 자연과 조화가 되게 무기교(無技巧)의 자연미를 잘 나타내어 단아(端雅, 아담)한 아름다움과 순박(淳朴, 꾸밈없는)한 큰 멋을 겸하고 있으며,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외관은 간소(簡素, 소박)하고 질박(質朴, 수수)하며 조야(粗野, 촌스러움)하여 복잡한 면이 적고, 담백(淡白)하고 유연(柔軟)하면서 현세(現世)에 집착하지 않고 적료(寂廖, 고요)하고 겸허(謙虛)한 맛을 풍기는 아름다운 심성(心性)을 간직하고 있다. 

  금후, 조상이 물려준 소중한 전통사찰 목조건축을 후손들에게 고이 물려주기 위하여 ‘한국 전통사찰 목조건축의 心性’에 대해서 각 분야에서 재조명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지나온 30년 앞으로 30년’ 요즘 유행어처럼 잘 쓰는 말이다. 저자에게 어느 날 인연이 되어 30년 동안 함께해온 법륜불자교수회. 대학교수 임용 후 정년까지 37년, 그 중 30년을 법륜불자교수회와 함께 해왔다. 돌이켜보니 기림사 연수 때 큰 스님 법문 중 인연이란 ‘앗’ 하는 찰나와 같다고 하신 말씀이 문득 떠오른다. 

  여느 선배교수님들처럼 어디에선가 오고 있을 새로운 이에게 내 의자를 비워드리고 선배교수님들을 따라 지난해 저자도 정년을 했다. 

  돌이켜보면 1974년 안동댐 수몰지구 지표조사를 시작으로 청도 운문댐 수몰지구 지표조사, 성주댐 수몰지구 지표조사, 영천 자양댐 수몰지구 지표조사, 안동 임하댐 수몰지구 지표조사, 영주 영주댐 수몰지구 지표조사, 월성 양동마을 지표조사, 안동 하회마을 지표조사, 성주 한계마을 지표조사, 영덕 괴시마을 지표조사, 군위 대율리 지표조사 등을 비롯하여 불국사 대웅전, 불국사 극락전, 불국사 자하문, 경주 남산일원,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 영주 부석사 조사당, 안동 봉정사 극락전, 안동 봉정사 대웅전, 팔공산 송림사 대웅전, 팔공산 동화사 대웅전, 김천 직지사 대웅전, 문경 김용사 대웅전, 군위 인각사 극락전, 문경 봉암사 극락전, 영천 은해사 대웅전, 영천 은해사 거조암 영산전, 청송 대전사 보광전, 의성 고운사 대웅전, 예천 용문사 대장전, 영덕 장육사 대웅전, 울진 불영사 대웅전, 경주 기림사 대적광전, 청도 적천사 대웅전, 청도 대적사 대웅전, 청도 운문사 대웅전 등 등.....” 

  헤아릴 수없이 수많은 전통건축 현장 일선에서 누비며 남긴 조사보고서는 수백 권이 넘는다. 이렇게 문화재 보고서 더미 속에 묻혀 보내다 정년을 앞두고 연구실정리를 걱정하던 중 2017년 12월 대구한의대학교 7호관 5층에 한문화건축연구소라는 작은 둥지를 털고 앉았다. 이렇게 대구한의대학교의 배려로 문화재청과 경상북도의 문화재 관련 일을 계속하고 있다.

  우리나라 문화재 반 이상이 불교문화재이고 보니 지난 30년 동안 법륜불자교수회와 함께한 사찰인연도 많았다. 법륜불자교수회가 맺어준 인연으로 동화사 승가대학, 대구불교대학, 마하야나 불교대학, 대구 불광사 불교대학, 봉화 축서사 불교대학, 대구 관오사 불교대학, 포항 해룡사 불교대학, 부산 석탑사 불교대학 등에서 특강 인연도 갖게 되었다. 

  보고 싶은 법륜불자교수회 선배 교수님들! 

  선배교수님들이 닦아놓으신 족적이 헛되지 않도록 하려고 

  그동안 영남대 의대 교수 김성규 회장을 중심으로 

  모두가 열심히 노력해왔습니다. 

  앞으로 30년! 

  법륜불자교수회의 새로운 웅비(雄飛)를 우리 모두 기대해 봅시다. 

  지금까지 大木 최영식 大木 최 영 식 연락처 : (우)38610 경북 경산시 한의대로 1번지 대구한의대학교 7호관 504호 한문화건축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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