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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문화의 만남_동사섭과 사회복지(성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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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7,725회 작성일 23-02-20 1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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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섭과 사회복지




                                                성희자(경북대 사회복지)



동사섭을 접하게 된 계기 


동사섭은 행복한 삶을 지향하는 불교문화운동이다. 사회복지도 사람다운 삶을 지향하며, 그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들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  나는 불교동아리에 가입한 것을 계기로 불자가 되었다.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사회복지분야에 일하면서 나는 불교와 복지를 접목시키는 그 어떤 것을 지향하고 있었다. 불교가 주축이 되는 사회복지법인을 만들기 위해 고심하고 참여했던 적도 있었다. 스님이 중심이 되어 만들어진 사회복지법인은 사회복지사업을 수행하는데 초점을 둘 수 밖에 없어 이 두 가지의 접목에 대한 목적은 달성되지 못했다.  

내가 동사섭을 만나게 된 것은 사회복지실천가로서 일하면서 집단상담에 참여하게 되었고, 엔카운터(encounter, 참만남집단)를 경험하면서 한국적 상담프로그램으로 동사섭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동사섭은 한국적 토착화를 이룬 프로그램이라는 것이다. 많은 이론들이 한국상황에 적용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비판을 받을 수 있는데, 동사섭은 오랜 시간 한국적 정서와 상황을 고려하였다는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동사섭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내가 가지고 있는 종교인 불교와 직업으로 하고 있는 사회복지가 맞닿아 있는 프로그램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찾아왔던 수행공동체을 찾은 느낌이었다. 이제 멀리 가지 않아도 여기서 훈련만 하면 깨달음도 실천가로서의 경지도 도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동사섭은 불교 수련프로그램이자, 문화운동이라 할만하다. 



동사섭프로그램의 발달과정 


동사섭(同事攝)은 용타스님 용타스님은 전남대 철학과 3학년 재학중이던 1964년 청화스님을 은사로 출가했고, 스님의 신분으로 1966-1974고등학교 독일어 교사로 재직한 경험이 있고 1974-1983년까지 20안거를 성만했으며, 1980년부터 동사섭프로그램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300여회 이상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현재 재단법인 행복마을 이사장을 역임하고 있다.

이 개발하여 보급하고 있는 일종의 집단상담프로그램이며 수련프로그램이다. 동사섭은 스님이 경험한 로저스의 엔카운터를 불교상담의 원리와 서양 상담 기법을 절묘하게 조화시켜 대표적인 한국적 상담프로그램이다(박성희, 2007). 일본에 엔카운터를 보급한 히토리로시의 영향을 받은 강요한 선생이 1971년 전남지역의 교사들에게 소개하였고, 여기에 참여한 용타스님이 오랜 시간 불교적 개념을 적용하고 참여한 수련생들에게 접목할 수 있는 내용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프로그램이 동사섭이다.

동사섭수련회는 1980년 전남 강진군 성전면에 있는 무위사에서 수련생 17명을 대상으로 시작하였다. 10회의 모임이 될 때까지 이 모임은 T 그룹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불렸는데, 그 이후 정조스님의 제안으로 동사섭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현재까지 39년 총 300회 이상 만 명이 넘는 수련생을 배출하였다. 동사섭은 일반과정, 중급과정, 고급과정으로 세 단계로 구분되는데, 현재 일반과정은 5박6일, 중급과 고급과정은 3박 4일의 과정으로 짜여진다. 뿐만 아니라 청소년동사섭, 엔카운터집단, 화합장, 수심장과 같은 미니동사섭 프로그램도 진행되고 있다. 

동사섭 프로그램의 내용은 30년 이상의 세월을 거치면서 발전해왔는데, 크게 네 단계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초기에는 순수한 엔카운터링을 중심으로 이론강의가 거의 없이 비구조적으로 마음을 나누던 단계, 둘째, 이론과 형식을 더하여 구조적인 마음 나눔의 장으로 변화발전한 단계, 셋째, 마음의 나눔에 더해 마음관리를 추가한 단계, 넷째, 마음을 벗어나기 위한 초월명상의 장이 더해진 단계 등이 그것이다. 현재는 마음알기, 다루기, 마음 나누기, 마음 해탈하기를 중심주제로 프로그램이 짜여 있다.

원래 동사섭(同事攝)이란 말은 불교의 사섭법(四攝法: 보시섭(布施攝), 애어섭(愛語攝), 이행섭(移行攝), 동사섭(同事攝) 중의 하나이다. 사섭법이란 보살이 중생에게 필요하면 베풀고(보시섭), 또 때에 따라서 자애어린 말로 위로하고(애어섭), 또 어떤 때는 이로운 일로 도와주고(이행섭), 나아가 그들과 희로애락을 함께 하여(동사섭)  중생을 제도한다는 것이다. 사섭법이란 보살의 삶의 방법, 삶의 태도를 말한다. 동사섭 수련회는 사섭법 중 동사섭을 기본으로 하되, 보시, 애어, 이행을 함께 아우르는 삶의 태도를 지향하고 있다(www.dongsasub,org)



동사섭의 기본 이론과 원리


동사섭 수련회는 ‘행복’을 목적으로 삼는다. 다시 말하면 사람들이 행복의 정체를 분명히 알고 행복해지기 위한 방편을 잘 활용함으로써 지고한 행복을 누리도록 이끌어주는데 목적이 있다. 그렇다면 행복이란 무얼까? 여러 철학자들이 행복에 대해 정의내리고 있지만 아리스토텔레스는 ‘지족성’과 ‘완전성’이라는 가장 좋은 것이라 생각하고 가장 좋은 것은 완전한 것으로 생각한다. 가장 완전한 것은 항상 그 자체로 선택될만한 것이며 결코 다른 어떤 것 때문이 아니다. 그런 차원에서 아리스토텔레스는 바로 행복(eudaimonia)이라 말한다. 우리는 행복을 그 자체로 선택하지 그 외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선택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다음으로 가장 좋은 것은 지족적인 것이다. 이것도 역시 행복이라 말할 수 있다. 모든 좋은 것들 중에서 행복이야말로 가장 선택할만한 것이며 다른 것과 함께 열거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아리스토텔레스는 가장 좋은 것으로서 행복의 개념을 제시했다(장영란, 2011). 

동사섭에서 행복은 좋은 느낌, 기분 좋음으로 정의한다. 기분이 좋으면 행복한 것이고, 기분이 좋지 않으면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다. 아무리 고상하고 심오한 체험이라도 좋은 느낌이 따르지 않는다면 행복이라고 부르기 어렵다. 행복은 행복을 맛보는 바로 그 순간의 상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한 개인이 누리는 행복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따라 좌우된다. ‘나’가 행복하다고 하더라도 가까운 사람(부모, 형제, 친구, 직장 동료 등)이 행복하지 못하다면 나 또한 행복하기 어렵다. 따라서 개인 ‘나’의 행복은 더불어 있는 ‘우리’의 행복과 연결될 때 지속성과 안정성을 보장받을 수 있게 된다. 이런 점에서 행복을 누리는 주체는 나에게서 나아가 우리 모두의 행복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말하는 ‘우리’의 범위는 가족에서 시작하여 우주 전체가 이 범위에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이 모든 존재가 중중연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행복, 즉 좋은 느낌을 유지하며 살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동사섭은 삶의 5대원리를 제시하고 있다. 삶의 5대원리에는 정체(正體)의 원리, 대원(大願)의 원리, 수심(修心)의 원리, 화합(和合)의 원리, 작선(作善)의 원리가 포함된다. 이 삶의 5대원리는 이상공동체 형성을 위하여 필요한 5가지 요소라고 지칭되기도 하고, 수심, 화합, 작선은 이상공동체 3요라고 부르기도 한다.

삶의 5대 원리를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면, 먼저 정체성의 원리는 내가 누구인지에 대하여 분명한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을 말한다. ‘나’를 어떻게 규정하는가에 따라 삶의 태도는 달라진다. 동사섭에는 궁극적으로 ‘나’란 없다. 즉 고정된 실체로서의 ‘나’는 없다. 허공같은 자아 내지 비아, 무아를 이상적인 모델로 보고 무한한 에너지로서의 ‘나’를 이해하도록 권한다.

둘째, 대원의 원리는 정체와 연결된다. 고정된 ‘나’란 없고 무한한 에너지로서의 ‘나’를 바탕으로 모든 존재가 중중연기로 연결되어 있으므로 ‘나’를 넘어선 ‘우리’, 나아가서는 우주로 범위를 넓혀가며 그들의 행복을 위하여 기도하고 에너지를 보낸다는 것이다. 

셋째, 수심의 원리에는 말 그대로 마음을 닦는 일을 말한다. 마음을 닦는 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자면. 나에게 이로운 것은 시설(施設)하고 이롭지 않은 것은 제거하는 것을 이른다. 우리가 보고 있고 생각하고 있는 사실이 사실인가? 깊게 명상해보면 사실이 아니다. 우리가 바라보는 사실은 안(眼), 이(耳), 비(鼻), 설(舌), 신(身)이라는 감각기관을 통하여 들어온 그 무언가(자극)가 의(意)와 상호작용하면서 형성되는 것이 생각이고 감각이지 않겠는가? 이러한 감각은 탐내는 마음(탐, 貪))과 화내는 마음(진, 瞋)으로 원하는 것은 끌어당기고 꺼리는 것은 밀쳐내는 것이 사고의 틀이라고 본다. 탐내는 마음에서부터 화내는 마음으로 연결되는 작용이 모두 고정된 실체의 나가 있다고 전제하기 때문에 일어난다고 보고, 이러한 마음작용자체가 어리석음(치, 痴))라는 것이다. 불교에서는 탐, 진, 치를 삼독(三毒)이라고 부르고 이를 경계하기를 권하고 있다. 우리의 의식세계가 기왕에 개념화한다면 불만족사고를 만족사고로 바꾸는 것이 우리 모두 행복해지는 지금길인 것이다. 불만족사고를 척결하는 방법으로 동사섭에서는 op100의 원리와 긍정점쓰기를 권하고 있다. 

넷째, 화합의 원리는 사이좋게 지내기 위한 방편들을 일컫는다, 화합이 왜 중요한가는 설명하지 않아도 될 만큼 이미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영향을 받는 존재이므로 분리된 개인의 행복은 오래가지 못한다. 이러한 인간사회의 특성으로 인하여 관계는 행복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된다. 화합을 잘 하려면 ①밖으로 보는 눈을 책임지고 ②보이는 내 모습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하고 ③마음을 잘 주고 받는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 

밖으로 보는 눈을 책임진다는 것은 남을 볼 때 있는 그대로 수용하기를 의미한다. 있는 그대로 수용하지 못하고 나의 생각으로, 나의 고정관념으로 바라보는 것은 결국 심리적인 투사과정이지 상대를 바라보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러한 보는 눈을 책임지는 것은 수심과도 연관이 되는 부분이다. 보이는 모습에 책임지기는 남이 나를 볼 때 불편한 마음이 생기지 않도록 나의 행동에 대하여 책임진다는 것이다. 오비이락과 같이 오해를 살만한 행동과 말은 남에게 지옥을 제공하는 원인이 되기 때문에 조심하는 것이 관계의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교류를 잘하기 위해서는 마음알기와 나누기가 있다. 교류를 잘하기 위해서는  우선 상대방에게 관심이 있어야 한다. 관심은 다른 말로 남을 이해하는 것, 사랑하는 것이다. 관심을 가지고 관계를 이루어가며, 나의 속마음(정서)를 감지하여 표현하고, 상대방의 표현에 공감과 반응을 하는 것이다. 이러한 교류가 잘 이루어지면 관계천국이 만들어진다. 

다섯째, 작선의 원리는 말 그대로 선을 짓는다는 것인데,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선한 일, 좋은 일을 행함을 뜻한다. 두 가지 영역에서 작선이 이루어져야 한다. 소임과 비소임에서 어떤 적절한 역할을 수행하면 세상이 천국으로 된다는 것이다. 소임은 내가 역할을 맡아서 꼭 해야 하는 일이고, 나에게 주어진 역할은 딱히 없지만 그 일들을 하면 서로에게 좋은 일들은 비소임이라고 한다. 자신이 맡은 소임에 최선을 다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비소임이라고 하더라도 적절히 수행하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천국과 같아질 것이라고 본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나는 일은 관계속에서 +를 주고 받기가 전부이다. 너무 간단히 요약한 감은 있지만 이것이 전부이다. +를 주고 받는 것에는 내가 상대방에게 무언가를 주고(하고)-보시, 상대방이 나에게 무언가를 주고(보시), 이에 대한 감사이다. -를 주고 받기는 내가 남에게 -꺼리를 준 것은 사과할 일이요, 남이 나에게 -꺼리를 주었을 때는 용서할 일이다. 이런 것을 잘 표현한다면 세상은 살만한 곳, 낙원이 될 것이다.

동사섭은 삶의 5대원리를 개괄적으로 볼 때는 대원과 정체에 대한 이론정립, 즉 토대가 되는 내용이 불교적 색채를 많이 가진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생로병사의 현장을 바라보고 자신은 그 생로병사를 겪고 싶지 않고, 생로병사를 비켜갈 수 있는 방법을 찾다가 화살표의 방향을 바꾸어 생로병사를 겪을 존재 자체가 없다. 즉 ‘실체시할만한, 고정된 나란 없다’를 깨닫게 되어 무한 해탈감을 가지게 되었다. 

용타스님은 초기불교의 아라한이란 ‘본래 죽을 나란 없다’를 이해하고 해탈감을 느낀 사람들을 지칭한다고 본다. 이 해탈감은 누구나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자신이 실체라는 오해 하나가 풀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원효는 ‘오해 하나 풀리는 것이 곧 깨달음’이라 했고 그 깨달음의 있고 없고의 차이를  말하며 解悟로 자유롭게 된 사람이 곧 영예로운 지위인  아라한이다. 먼저 깨닫고 닦는다는 선오후수(先悟後修), 돈오점수(頓悟漸修)를 강조한다. 돈망 즉 진공적 자아관, 묘유적 자아관으로 나아가기 위해 긍정적 자아관은 중요한 연결지점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깨달음 뿐 아니라 깨달음을 지원하는 비아명상, 나지사명상, 죽음명상을 제안하고 있다.  

수심과 더불어 화합과 작선도 중요한 덕목으로 권해진다. 화합이 되기 위해서는 관계에서 보는 눈을 수심으로 잘 관리하고, 보여지는 모습을 위해서 행동적 차원에서 노력하며, 관계를 위하여 소통을 잘해야 한다는 것이다. 교류를 위해서는 의사소통, 작선에서 일어나는 교류사덕(보시, 감사, 사과, 관용), 양장력을 만들어내는 행동이 필요하다. 동사섭에서 특별히 어떤 덕목이 기준이 되어야 한다거나 더 중요하게 여기는 것을 따로 없다. 상호상관하는 특성을 가지고 있어 어떤 덕목이던지 충실하다보면 연결되는 관점이다. 



사회복지의 목표 : 인간다운 삶


사회복지가 궁극적으로 도달하고자 하는 바는 사람들의 웰빙(well-being)이다. 웰빙은 행복한 상태라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복지는 인류가 공통적으로 바라고 있는 행복추구, 행복유지라는 목적을 달성하는데 방해가 될 요소들을 사회적으로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사회복지의 목표는 인간다운 삶의 실현이다. 우리나라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가 있다”(1항)고 규정하고 있다. 또 이러한 인간다운 생활을 보장하기 위하여 국민기초생활보장법은 “이 법에 의한 급여의 기준은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제 4조 1항)”. 고 정하고 있다. 

 ‘인간다운 삶’, ‘건강하고 문화적인 최저생활’은 추상적이며, 시대성과 역사성을 가진 개념이다. 박석돈(2012)은 인간의 삶은 전제하는 조건으로, 첫째, 인간의 삶에는 희로애락(喜怒哀樂)이 있어야 하며, 둘째, 인간의 그 희로애락을 느껴야 하고, 셋째, 그 희로애락을 서로 나눌 수 있는 것이 인간다운 삶으로 해석하고 있다. 


사회복지의 지식과 기술


사회복지는 현장이 먼저이고 이론은 나중에 나타나는 형식으로 발전해왔다. 신념에서, 혹은 사회적 책무에서 빈곤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서 가정방문을 하고 성실한 삶을 위한 도덕교육을 시키고, 사회적응을 위해 기술을 가르치는 일이 우선이었다. 도움을 주려고 시작했던 일들이 조직화되고, 기관이 만들어져서 운영되면서 간단한 규범과 지침이 생기게 되었다. 그러다가 법적 근거가 생기고 체계를 갖추면서 인접학문분야에서 만들어진 이론을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사회복지실천을 위해 과업모델과 같은 이론적인 틀이 제시되기 시작했다. 

사회복지실천의 기본 지식중에 많은 부분은 다른 사회과학과 행동과학 분야에서 차용해 왔지만 그러한 지식은 독특한 방식으로 조합되어 실천과정에서 절충적으로 활용되고 있다. 사회복지실천에서 사용되는 지식은 ‘사정에 필요한 지식(assessment knowledge)’과 ‘개입에 필요한 지식(intervention knowledge)’으로 구분되기도 한다(Siporin, 1975). 사정에 필요한 지식은 개인의 욕구와 문제, 상황 등을 이해하기 위한 지식으로 사회복지사가 개입 이전에 클라이언트의 심리적, 사회적 문화적 특징을 이해하고 클라이언트의 문제가 발생하는 상황적 맥락을 분석하는데 필요하다. ‘개입에 필요한 지식’은 사회복지사가 개인이나 집단, 지역사회를 돕기 위한 실천과정에서 활용하는 실천이론과 개입방법에 관한 지식을 포함한다. 

전문적 지식의 차원은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 원조과정에서 실천에 영향을 주는 범위에 따라 패러다임, 관점, 이론 모델, 실천지혜, 기술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사회복지는 의료적 패러다임에 영향을 받아 클라이언트가 가지는 문제, 어려움에 초점을 두게 되었다. 병리적 관점에서 병리는 원인이 있을 것이며, 원인을 해결하게 되면 현재의 문제가 해결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었다. 최근에 와서는 문제 보다는 강점을 중심으로 클라이언트에게 접근하는 강점관점이 대두되고, 해결중심모델로 전개되어 가고 있는 추세이다.

사회복지사가 현장에서 지식을 적용할 때 그것을 ‘기술(skill)’이라고 부른다. 기술이란 사회복지 이외에도 사람을 돕는 전문직에서 널리 쓰여 온 말로서, ‘행동하는 지식’ 혹은 ‘실천지혜’ 라고 표현되기도 한다. 이 기술은 모든 문제와 모든 상황에 똑같은 방식으로 수행되는 기법적(technical) 활동과 다르며, 사회복지사가 개별 클라이언트의 문제상황, 욕구에 맞추어 가장 적합한 기술을 선택하여 적용할 수 있어야 한다.

미국사회복지사협회(NASW)는 사회복지실천을 하는데 필요한 기술을 10가지 제시하고 있다. 경청하는 기술, 정보수집기술, 관찰 및 해석기술, 신뢰관계형성기술, 면담기술, 종결기술, 문헌해석기술, 협상기술, 조직연계기술, 사회적 욕구전달기술이다. 경청하는 기술은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와의 관계 형성 뿐 아니라 의사소통과 문제해결에 기본적인 기술이다. 정보수집기술은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이해하고 사정하는데 매우 필요한 기술이다. 관찰 및 해석기술은 클라이언트가 표현하는 언어적 내용 뿐 아니라 비언어적인 행동을 파악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다. 신뢰관계형성은 사람과의 관계에서 기본적이며, 어려움을 가지고 있는 클라이언트에게 개입하는데 필요한 기술이다. 면담기술은 의사소통 분 아니라 정보수집과 사정, 정서적 지지와 같은 상담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는 기술이다. 종결기술은 클라이언트의 문제를 해결하고 종결할 시점과 방법을 결정할 수 있는 능력이다. 문헌해석기술은 다양한 이론들을 클라이언트에게 적용할 이론적 취사선택에 필요한 기술이다. 협상기술은 클라이언트 체계가 다양하고 갈등상황일 때 중재할 수 있는 기술이다. 조직연계기술은 사회복지기관의 설립목적이 다 다르기 때문에 필요한 욕구를 해결하는데 적합한 기관을 연계하는 기술이다. 사회적 욕구 전달기술은 클라이언트에게 필요한 재정적인 지원이나 요구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일반인들에게 홍보하여 후원금을 조성하거나 지지자를 연결하는 기술을 말한다. 

이혜숙(2008):389-390)은 사회복지사의 실천기술을 네 가지로 개괄하였다. 첫째,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와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기술이 필요하다. 칼로저스에 의하면, 성공적인 상담을 위해서 필수요소인 ‘좋은 관계는 클라이언트에 대한 사회복지사의 온화함과 감정적인 허용과 계획된 통제, 클라이언트의 성장을 위한 자유와 해방이 보장되는 아주 특별한 사회적 유대관계라고 한다. 흔히 사회복지실천에서는 라포형성하기라고 불리워진다. 신뢰관계를 형성하는 것이 문제해결의 기본이라고 본다.

둘째, 공감의 기술이다. 사회복지사가 클라이언트와 일치되는 느낌을 가지고 의식적으로 동참하는 기술이다. 공감은 앞에서 말한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데도 매우 필요한 기술이고, 상대를 이해하는데 중요한 기술이다.

셋째, 언어적·비언어적 의소통의 기술이다. 말로 의사를 전달하는 기술과 주의를 기울여 경청하는 기술, 필요할 때 적절하게 질문하는 기술, 메시지에 명확하게 반응하는 기술, 언어 이외의 표현에서 나타나는 감정을 읽거나 소통하는 기술 등이 포함된다.

넷째, 사회복지사의 자기이해와 자기통제에 관한 기술이다. 사회복지사는 직업적 전문가이면서 동시에 한 인간이다. 자신이 본래 가지고 있던 가치관과 주관적 경험을 먼저 통찰하고 그것들이 서비스 과정에서 장애가 되지 않고 오히려 잘 활용될 수 있는 자산이 되도록 관리해야 한다. 클라이언트의 생활문제에 개입하여 원조하는 전문가이기 때문에 사회복지사 개인의 삶과 중첩되거나 투사되는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 그러므로 사회복지사 자신의 경험을 인식하고 있으면 그 다양한 경험들은 훌륭한 치료적 도구로 활용될 수 있다. 



사회복지실천과 동사섭


패러다임 : 대원

사실 사회복지에서의 패러다임은 크게 인식되기 어려운 점이 있다. 오히려 관점과 혼용될 소지가 높다. 그동안 사회복지는 패러다임의 근원은 불교와 맥을 같이 한다고 볼 수 있다. 인과론을 채택하고 있다는 점에서. 개인에게나 사회적인 현상은 분명히 원인이 있고, 그 원인을 해결하면 그 현상이 해결될 수 있다는 인과론과 맥락을 같이 한다. 

그러나 사회가 복잡해지면서 단순인과론으로 설명하기 어렵게 되었다. 하나의 현상은 여러 가지 원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하고, 그 결과를 예측하기 어렵게 되었다. 따라서 사회복지에서는 가족이나 지역사회, 국가, 세계와 같은 다층체계가 개인에게 영향을 미쳐서 개인의 문제를 해결하는데도 다양한 측면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생태체계이론을 적용하고 있다. 동사섭에서는 불교적 관점으로 중중연기로 설명한다. 개인의 안녕을 위해서는 가족과 지역사회, 국가, 세계, 우주가 평안해야 한다는 식으로 접근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비롯한 여러 체계들을 위한 행복을 추구하고, 감사를 전하는 구체적인 명상과 행동을 권장한다.


인간에 대한 관점 : 정체

정체란 곧 나에 대한 관점이고, 인간에 대한 관점이다. 나란 이기적인 존재로 부정적으로 사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사실 ‘나’란 우주의 중심이다. 이런 나에 대한 관점이 긍정적일수록 좋다. 우주의 주인으로 어느 장(場)에 처하든 주인정신을 가지도록 권장한다. 주인정신을 가진 사람은 바로 주변을 살피게 되고, 자기 주변이 보다 행복하고, 보다 평화롭게 되도록 노력할 것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기에 대한 기대수준을 높인 나머지 부정적 자아관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부정적 자아관을 지양하고 긍정적 자아관을 가지도록 권장한다. 긍정적 자아관은 자신감을 가지고 자신을 살리게 하고 자존감을 높이며 본래의 목적에 몰입하게 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칭찬은 고래도 춤추게 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사회복지 대상자들을 볼 때 자신에 대해 형편없는 사람,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 도움이 필요한 사람 등 부정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이 많은데 이들에게 긍정적 자아관은 매우 필요한 관점이다. 

동사섭에서는 긍정적 자아관에서 더 나아가 초월적(超越的) 자아관을 권하고 있다. 신체를 중심으로 하는 몸뚱이를 ‘나’라고 여기고 있는 한, 그 사람은 석가모니가 나의 죽음을 벗어나고자 했던 그 해탈은 도달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초월적 자아, 자아를 초월하게 되면 내가 나 아닌 경지가 열려 허공의 자유, 대자유를 경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초월적 자아관에서 자아가 사라지고 난 자리에 역할을 하는 그 무엇이 묘유적 자아관이다. 초월적 자아가 되어야 천수천안(千手千眼)이 현전될 수 있다. 천수천안(千手千眼)이란 관세음보살을 의미하는데, 초월적 자아가 되어야 세상 모든 중생들의 고통을 해결해주는 관세음보살만큼 세상에 존재하는 중생들의 고통을 벗겨낼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사가 많은 클라이언트, 그들의 다양한 일들을 위해 일하는 것이 천수천안 관세음보살처럼 역할을 하게 될 터인데, 자신의 자아에 걸려 있다면, 그들의 고통을 줄이는 일들이 부담으로, 오히려 도움이 되지 않는 행으로 연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걸림없는 마음이 전제되는 사회복지실천이야말로 관세음보살행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나’에 대한 관점이 긍정적 자아관이라면 인간에 대해서도 긍정적 관점, 즉 강점관점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아무것도 강점이 없는 사람은 없다. 사람으로 태어났다는 점, 글을 읽고 쓸 수 있다 에서부터 다양한 기능까지 올라가면 사람이 가진 강점은 무수히 많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몇 가지 부족한 점으로, 혹은 나와 관점이 맞지 않다고 해서 상대방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점이 바람직하다고 볼 수는 없다. 동사섭에서는 사물명상을 통해 하물며 사람이랴 하는 것을 이끌어낸다. 찌글어진 주전자조차 감사할 점을 30여개 이상 찾을 수 있는데, 사람은 3000개 이상 자신의 긍정점을 찾아보기를 권유한다. 이런 긍정점 찾기를 통해 ‘나’도 귀한 존재이지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그런 귀한 존재임을 깨닫게 해주는 중요한 행동명상의 한 가지이다.  

사회복지실천에서 클라이언트의 자존감을 높이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자신을 모자라고 쓸모없다고 생각해서 위축되어 지내거나 나쁜 물질을 남용하고 심지어는 자살을 시도하는 경우도 많은데, 이들이 스스로 귀한 존재라는 인식을 가지게 될 때 진정한 사회복지실천의 개입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다.


수심 : 자기이해와 자기관리

사회복지실천에서 사회복지사는 중요한 도구이다. 사람의 삶에 개입하는 일이다보니, 그들에게 모델이 되어야 할 때가 많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험이 부족하거나 다양한 경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그 경험이 오히려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가 될 때도 많다. 그래서 사회복지사들은 자기이해와 자기관리가 필수적인 덕목이다. 

동사섭에서는 자기이해의 한 차원으로 비아명상을 권하고 있다. 비아명상이란 ‘과거의 나’는 지나갔으니 없고, ‘미래의 나’는 아직 오지 않았으니 없고, ‘현재의 나’는 찰나무상이니 없다. ‘나’에 대한 지나친 집착은 해탈의 자유를 가질 수 없다는 것이다. 사회복지에서의 자기자신에 대한 집착이나 몰이해는 서비스를 제공할 때 장애물이 된다고 하였다. 그런 차원에서 사회복지사는 수심명상 특히 비아명상을 자주 할 필요가 있겠다.

또 자기관리를 위해서 나지사명상을 소개한다. 나지사명상이란 어떤 사건에 처하게 될 때 ---그러하구나, 그렇겠지, 그만하니 감사하다를 줄여서 나지사명상이라고 한다. 이 나지사명상은 분노다스리기의 한 방편이다. 인생이 외부환경과 만나는 것일텐데, 좋은 경계와 만나게 되면 행복하고 기분이 좋겠지만, 그렇지 못한 경계와 맞닥뜨리게 될 때 우리는 화를 내게 된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세상의 모든 일은 그 인(因)에 그 과(果)라. 여여한 일들이 인과로 일어나는 것이니 모두 긍정적으로 수용하라는 것이다. 이미 일어난 일을 시시비비(是是非非)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없고 부정적인 정서만 많아지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고 보고 수용, 무조건적인 수용으로 굳이 보자면 일어날만한 일이 있어났으니 긍정적으로 인식하자는 것이다. 이런 관점을 가지게 되면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자기관리가 잘 될 것으로 보인다. 


화합 : 라포 형성하기 좋은 관계형성하기

좋은 관계를 형성하는 것은 인간관계에서 매우 필요하다. 동사섭에서는 화합의 3요소로 보는 눈을 바르게 하기,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하기, 교류하기를 들고 있다. 사람들과의 화합이 되려면 우호감이 높아져야 하는데, 우호감을 높이려면 내가 그 사람을 좋게 바라보면 된다는 것이다. 보는 자가 긍정적으로 바라보면 대체로 좋게 보인다는 말이다. 그런데 상대방이 나에게 문제제기를 하거나 밉게 바라보았을 때는 문제가 되더라는 것이다. 내가 상대방의 우호감을 높이기 위해서는 보이는 모습을 바르게 해야 한다. 이 두 가지만으로는 부족하다. 서로 우호감을 가지고 있지만 표현하지 않으면 우호감은 나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잘 교류한다는 것을 포함시키고 있다. 

잘 교류한다는 사회복지실천에서 의사소통하기, 경청, 면담기술 등이 포함된다. 의사소통에는 나-전달법 메시지 활용, 적극적 경청,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보는 공감, 수용, 명확한 표현 등의 기술들이 있다. 

동사섭에서는 생각보다는 느낌을 나누고, 느낌을 나눌 때에는 관심의 지평위에 자기 마음을 감지해서 표현하고 남의 마음을 받아주기의 공식을 권장하고 있다. 상대방이 어떤 느낌을 표현할 때, ‘응 그렇구나’ 하고 받아준 다음에 내 생각을 보태어서 ‘대단하다’ 혹은 ‘힘들었을텐데 잘 견뎌온 너가 대단하다’ 이런 식으로 받아준다. 받기 3박자로 정리하고 있는데 1박자는 화자(話者)가 하고자 하는 말을 잘 듣는다, 2박자는 “그렇군요, 당신의 마음이 그러하시겠군요”하고 공감한다. 그 다음에는 플러스 알파(+ ∝)로 “축하합니다. 거듭 그런 좋은 일이 생기기를 바랍니다” 등으로 덧붙인다. 상대방이 곤혹스럽고 부정적인 이야기를 한다고 하더라도 습관적으로 부정적으로 대하지 않고 받기 3박자에 맞춰 응대한다면 평화로움을 유지할 수 있다. 

이런 식으로 소통하다 보면 인간관계가 훨씬 원활하고 우호감이 높아진다. 교류를 할 때 생각 중심으로 나누다 보면 소통에는 크게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인간관계가 정보차원의 교류가중심이 되면 진정한 속마음을 나누지 못하여 소외감을 느끼고 관계가 연결되기 어렵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화합의 의미로 소통할 때에는 정서, 느낌을 나누는데 유념할 필요가 있다.

사회복지실천에서도 클라이언트의 생각 보다 정서에 초점을 맞추는 것이  라포를 형성하기 용이하다. 라포형성은 사회복지실천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요소이다.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회복지사에 대한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사회복지사는 욕구나 문제를 정확하게 평가하게 되고 필요로 하는 것들을 성취할 수 있게 도울 수 있다.  


작선 : 개입하기

동사섭에서는 인간관계가 속마음을 표현하여 소통을 하도록 권장하기도 하고 다른 한편으로 인간관계를 유지하는 4가지 덕(德)으로 교류사덕을 제시하고 있다. 인간관계에서 일어날 수 있는 것은 네 가지, 플러스 정서를 주었을 때 보시, 받는 사람은 감사, 마이너스 정서를 주는 것은 사과할 일, 받은 사람은 관용을 베풀 일이라는 것이다.

플러스를 주고 받는 것은 보시와 감사이다. 내가 상대방을 기쁘게 하기 위하여 베풂, 즉 보시를 하고 베풂을 받았으면 당연히 기쁘고 감사한 일이니 그 마음을 표현하는 것이 감사이다. 마이너스가 인간관계에서 오고 갈 때도 있을 것이다. 만약에 내가 상대에게 마이너스를 주었다면 미안하다고 사과해야 할 것이고, 상대가 나에게 마이너스를 주었을 때 너그러운 마음으로 관용하는 것이 성숙한 인간관계를 맺을 수 있다. 어쩌면 깨달음보다 더 중요할 수 있는 덕목일 수 있다. 이러한 교류사덕은 너무나 평범한 것이어서 간과하기 쉬우나 몸에 익어 덕성화하기는 어려운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복지실천에서 개입부분은 별로 구체적이지 못하다. 왜냐하면 클라이언트의 속성이나 문제가 너무나 범위가 넓어 구체적으로 설명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클라이언트의 상황에 따라 적용하는 이론이 다르고, 그 이론에 따라 차용되는 방법이 달라진다. 사례관리 부분에서 구체적으로 적용하는 이론과 방법, 내용이 설명되는 정도이다. 이때 클라이언트에게 발생되는 대인관계의 문제에 동사섭의 교류사덕을 적용해 볼 수 있겠다. 물질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많기 때문에 보시에 대해 부정적인 생각이 들지 않도록, 부드러운 언어, 웃는 얼굴로, 자원봉사의 행동으로 보시할 수 있음을 안내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보시는 클라이언트 자신이나 사회에 도움을 주는 주인정신으로 살 수 있게 해서 자존감이 높아질 수 있는 행동치료의 한 행태이기도 하다. 

 


방향을 찾아서


사회복지사들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해결해 주기 위해,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안타까운 사연도 많고, 물질적 지원이 필요한 경우, 처음부터 끝까지 보살핌이 필요한 사람에까지 다양한 요구와 서비스가 제공되고 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의존이 생기고 해야 할 일이 늘어나 서비스를 제공하는 사람이 소진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잦다. 도움을 받는 사람도 만족감은커녕 점점 더 요구가 많고 본연의 삶에서 벗어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이쯤에서 방향을 전환해야 할 때이다. 

사람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 한다. 인간다운 삶을 살아가도록 하는 것이 사회복지의 궁극적 목표인데, 사람에 대한 정체가 더욱 중요하다. 사람이 자신에 대한 가치관을 정립하고 그 가치관대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돕는 일이 우선되어야 할 것이다. 각자에게 가장 소중한 삶을 결정하는 바른 가치관을 일깨우고, 그 가치관을 정립하는 일이 곧 수행이고 사람답게 살게 하는 사회복지의 길이다.

동사섭에서 말하는 대원, 정체, 수심, 화합, 작선, 이 다섯 가지의 원리를 바탕으로 세부적인 행동지침까지 실천하게 된다면 범사에 감사하고 행복해지며, 그것을 바탕으로 각자 제 몫의 삶을 살아갈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사회복지사도 클라이언트도 나머지 다른 것의 성취는 지향일 뿐이다. 지금 여기의 상태를 받아들이고 긍정해야한다. 사회복지사는 주변 사람을 행복하게 하려는 사람이니까 자기자신이 행복해야 한다. 그 행복을 나누어주어야 클라이언트도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부정적인 상황(경계)을 만나게 되더라도 <그러고 싶어서 그러겠나, 자기도 그래지니까 그러지>, <나의 부덕이다>이런 마음가짐을 하는 것이 존재 자체가 가지는 평화를 누리게 할 것이다.   




<참고문헌>

박성희, 2007, <동사섭 상담>, 서울 : 학지사

용타스님, 2016, <용타스님의 행복노트>, 행복마을

용타스님, 2008, <10분 해탈>, 서울:불광

이혜숙, 2008, “사섭법의 사회복지실천적 함의”, <불교학연구> 20권

장영란, 2011,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과 그 영향사”,(pp.57-69) <동서양의 행복론: 비교철학적 시각에서> 경북대 동서사상 연구소 2011년 하계학술대회

Siporin, M. 1975, Introduction to Social Work Practice, New York : Macmill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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