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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사에 계시는 부처님_6. 적명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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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457회 작성일 22-08-12 1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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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기와 깨달음 


                                                  적명스님 (봉암사 선원장) 


봉암사는 우리 교수불자회와 깊은 인연을 맺고 있습니다. 1989년 창립 수련회를 봉암사에서 하도록 기획을 했고 그 후 서암스님 계실 때부터 3차례나 성지순례법회를 다녀왔습니다. 그래도 봉암사 성지순례는 항상 회원들이 한차 만원을 이룹니다. 짙은 단풍이 깔린 한적한 봉암사는 누가 뭐래도 선적 일미를 느끼게 합니다. 

깨달음의 문제로 연기를 말씀하시면서 삼각형을 예를 들어 설명해 주셨는데 들을 때는 비유 참 하신다고 생각했는데 지나고 나니 설명할 수가 없네요. 

그렇다면 선 체험이란 무엇일까요. 

선은 상당히 넓은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깊은 선 체험을 말한다면 바로 깨달음이 되겠지요. 

선이라는 것이 때로는 깨달음과 같은 의미로 쓰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그러나 선은 경중의 차이는 있지만 짧은 노력으로도 체험할 수 있기는 합니다. 

노력만 따른다면 짧게는 일주일이나 열흘, 

길게는 한두 달 정도면 기본적인 선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선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약간의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선을 쉽게 명상이라는 넓은 범주로 말하기도 하는데,

 형태 또한 여러 가지입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듯이 화두를 잡고 하는 화두 참선도 있고,

 염불(念佛)도 있고, 관(觀)도 있습니다.

 어떤 것을 선택하든지 마음을 하나로 집중하는 것이 중요하겠지요.

선을 통해 우리의 의식이 하나로 모아지는 것을 선정상태(禪定狀態)라고 말합니다.

 흔히들 말하는 삼매(三昧)입니다. 

그러나 저는 쉽게 풀어 순수의식(純粹意識)이라 말합니다. 

선을 하면 결국 이런 순수의식 상태에 도달하게 되는데,

 노력만 한다면 짧게는 일주일,

 길게는 한두 달 정도면 순수의식에 도달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순수의식은 어떤 상태일까요. 

먼저 희열(喜悅)을 느끼게 됩니다.

 순수의식 상태에서는 희열이 넘쳐 황홀감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계속 유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수행의 깊이가 낮으니, 오래 지속되기가 힘들겠지요. 

그렇지만 잠깐이라도 이런 느낌을 체험하고 나면 그 상태를 계속 유지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 조금 더 노력해서 30분, 1시간 이렇게 순수하게 집중된 상태가 늘어나게 되면 

그때부터 느낌을 넘어 삶이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특히 행복이란 밖에 있는 게 아니라 안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절에 와서 누누이 법문으로 들었지만 결코 알지 못하고 체득하지 못했습니다. 

좋은 차, 많은 돈, 비싼 아파트, 승진. 좋은 것은 전부 외부에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도 외부에 있는 것으로 착각하고 살게 됩니다.

그러나 선을 하게 되면 외부로 향한 눈이 점차 안으로 향해 자기 자신을 

관조(觀照)하게 됩니다. 그리고 조금 더 깊어지면 한 생각에 집중하게 되고 

그렇게 되면 오로지 자기의식만이 남게 됩니다. 

그리고 그 때 바로 기쁨과 희열이 찾아오게 됩니다.

깨달음의 문제를 보여주는 선가의 이야기를 하나 들려드리겠습니다.

몽산 스님이라고 하는 분의 법문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무(無)자 화두를 들고 참구하다가 깨닫고 나서 터진 게송(偈頌)인데, 

홀연히 갈길 다 하였네

발길을 돌이키니 물결이 곧 물이로다(沒興路頭窮 踏飜波是水).

천하를 뛰어넘는 늙은 조주여

그대 면목 다만 이것뿐이던가(超群光趙州 面目只如此).

무자 화두는 조주 스님의 대표적인 화두입니다. 

그런데 몽산 스님은 몰록 깨닫고 나서 조주 스님을 향해 방망이를 날리고 있습니다. 

조주 스님은 천하를 뛰어넘었다고 칭송이 자자했는데 깨닫고 보니 별 것 없더라는 

그런 말입니다.

 조주 당신의 진면목이 고작 이것뿐이었던가 하고 묻고 있습니다.

깨달음을 위해 극한까지 걸어왔는데,;;

 발길을 돌이키니 물결이 곧 물이더라는 뜻입니다.

 이 한마디가 게송의 핵심입니다. 

물결이 물이다. 

일체가 이것 아님이 없다. 

이런 뜻입니다. 몽산 스님은 게송을 짓고 나서 완산 스님을 찾아뵈었습니다. 

그때 완산 스님이 광명이 고요히 비추어 온 법계를 두루했네(光明寂照遍河沙)라는

 게송은 장졸수재(張拙秀才)가 지은 것이 아닌가 하고 묻습니다. 

장졸수재는 당시 오도했다는 사람인 것 같은데, 

당시 사람들이 그 오도송을 다 알고 있었나봅니다.

몽산 스님이 이 오도송을 몰랐을 리 없지요. 

그리고 이제 조주 스님도 우습게 생각하는 처지에 왜 대답을 못하겠습니까. 

그래서 몽산 스님이 바로 입을 떼려는 순간;;

 완산 스님이 문을 닫고 그냥 들어가 버립니다. 

그 순간 몽산 스님은 딱 막혀버립니다. 

아직 공부가 끝나지 않은 것이지요.

 그때부터 몽산 스님은 앉으나 서나 음식을 먹으나 오로지 화두 참구에 전념을 합니다. 그리고 마침내 큰 깨달음을 얻게 됩니다.

 제가 이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깨달음의 세계는 쉽게 맛볼 수 있지만 또한 그 깊이가 한이 없다는 말씀을 드리고자 

하는 것입니다.

화두를 들던지 염불을 하던지 무엇이든지 들고서 정말 열심히 정진을 하다 보면 

큰 깨달음은 아니더라도 이 세계가 둘이 아니라는 초보적인 깨달음은 쉽게

 체득할 수 있습니다.

 적어도 이런 깨달음을 체험했을 때 남을 위한 헌신이 바로 나를 위한 것임을 알게 됩니다. 참된 보살의 삶이 가능해진다는 말입니다. 

우리 모두 부처님의 가르침을 등불 삼아 용맹정진 합시다.


(2010년 10월 봉암사 성지순례법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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