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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륜불자교수회4집(불교와 문화의 만남)

법향을 피우다_명성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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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316회 작성일 22-08-12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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僧伽敎育의 理念的 考察


명성스님(운문사 승가대학원 원장)



1.머리말

 僧伽敎育의 일선에서 학인들과 직접 經學을 연구하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평소 경험을 통해서 느끼고 생각하던 바를 기탄없이 이야기해 보고자 한다. 승려 자질 향상의 근본이 되는 승가교육의 중요성은 실로 막중한 것이 아닐 수 없다. 10년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나무를 심고 백년을 기약하기 위해서는 사람을 교육한다는 속담이 지금 우리의 현실에서는 가장 절실하게 느껴진다.

 1955년 불교정화를 한지도 어언간 3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간 지금 그동안 僧團이 많은 시련을 겪는 동안에도 불교정화 이후 포교, 譯經, 도제양성을 3대지표로 하여 현재 이 세 가지 佛事가 과감히 진행중이기는 하나 그 중 가장 시급한 문제가 도제양성에 있다고 본다. 왜냐하면 보다 나은 역경과 포교를 하기 위해서는 교육을 받은 손색이 없는 인재라야 역경과 포교에 만전을 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불교의 3대사업의 관계를 자세히 고찰해 본다면, 교육 즉 도제양성은 포교와 역경을 가능케 해주는 원동력이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세 가지는 예전 솥의 세 다리와 같이 불가분의 연관성을 가지고 있다. 다시 말하면 도제양성을 떠나서 역경과 포교를 생각할 수 없고 역경과 포교를 떠나서 도제양성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도제양성이 제대로 되지 않고서는 3대과업의 원만한 성과를 거두기가 불가능하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사실이다.

 앞으로 불교가 부흥하느냐 아니면 쇠퇴하느냐의 갈림길은 실로 도제양성이 향상되느냐 아니면 저하되느냐에 따라서 좌우된다.


2.현 승가교육의 문제점

 1)승려들의 교육실태

 현 시점에서 우리 종단의 승려들의 교육실태는 어떠한가. 불교정화 이후 종래의 노인 불교, 여성 불교와 기복 불교로부터 벗어나 대학생 불교 연합회를 비롯한 거사림, 달마회, 불교 청년회, 중고등 학생회, 불교 어린이회, 승만 부인회, 법우회, 관음 선행회, 젊은 부루나의 모임, 연꽃 모임, 보문회, 정각회 및 불자교수회 등 수많은 불교모임이 조직되어 현재 포교의 원활한 활동이 전개되고 있다. 그러나 현시대에 적응하는 승려들의 교육이 부족하므로 현대인이 알아 들을 수 있는 용어와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표현이 가능한 현대교육이 절실히 요청된다. 

 승려교육에서 가장 문제되는 점은 절름발이식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동진출가한 스님은 어릴 때부터 사원에서 잔뼈가 굵어 자라는 동안 승려 내면의 수행에 있어서는 별 손색이 없으나 현 시대 사조에 적응할 수 있는 면이 결핍되어 있고 이와 반대로 세속의 교육을 받고 늦게 출가한 사람은 사회에 대한 경험은 어느 정도 있으나 승려로서 갖추어야 할 內典을 수학하지 않으므로 해서 전반적인 승려 자질향상에 크나 큰 장애가 되고 있다.

 이러한 승려들에게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는 교육방법을 강구하지 않을 수 없다. 재래식 강원교육만을 받은 학인들의 역량으로써 능히 현 20세기의 지성인들을 상대로 포교하기란 실로 깊은 샘물에 비하여 길러올리는 두레박줄이 너무나 짧음을 통감하지 않을 수 없다.

 禪과 敎를 겸학하는 시대에 각 사찰에 설치된 교육기관은 전통적인 선원과 강원을 비롯하여 이밖에 염불원(염불당), 율원 등 각 전문도량이 있었다. 이러한 교육기관이 다 갖추어진 대사찰을 총림, 즉 종합수도원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선원에는 선주(선덕), 강원에는 강주(강사), 율원에는 율주(율사)가 있어 각기 교화에 이바지하였다.

 선원은 원칙적으로 강원 수료자가 비구, 비구니계를 받고 들어가 평생 수행을 하게 됨으로써 근대 사찰교육은 강원제로써 특징짓게 되었다. 지금도 대부분 강원 졸업자들이 선원에 입방하는 것이 통례이며, 선원은 평생 수도기관으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 한국불교의 실정이다.


 2)재래의 교과목

 지금까지 제방 강원에서 수학하고 있는 교과목은 어느때부터 비롯한 것인가. 이 학제는 조선초 碧松 智嚴(벽송 지엄, 1464~1534) 때 먼저 사집과가 생기고 제13대 명종(1545~1567) 때를 전후하여 芙蓉 靈觀(부용 영관, 1485~1571) 때 4교과와 대교과가 조직되었다고 한다. 고려 중엽 때 보조국사가 돈오점수의 학설을 주장한 후부터 절요와 都序, 초발심자경문 등의 과목을 학습하게 되었으며 그 후 벽송을 거쳐 西山 淸虛(서산 청허)의 4세법손이 되는 月潭 雪霽(월담 설제, 1632~1704)에 이르러 4집과, 4교과, 대교과 등 이력의 학과가 제정되어 금일에까지 우리 강원의 필수학과로 된 것이다.

 사미과에서 초발심자경문, 緇門(치문)을 수학하여 율신의 법을 익히고 선학과 교학의 준비과정으로 書狀, 禪要, 절요, 都序의 4집과를 수료한 후에 楞嚴(능엄), 법화, 금강, 원각의 4교를 연구하고 다시 대교과인 화엄과 격외의 拈頌(념송)을 수학하는 것이 순서였었다. 그러나 후에는 다시 4교중법화의 문의가 평이하다 하여 기신론으로 이를 대신하게 되었다고 한다. 이와 같이 근 500년 전에 제정된 교과목이 반세기 동안 별 다른 개정없이 오늘에까지 전수되어 왔으나 현 시점에는 교과목의 개선이 절실히 요청되고 있다.


3.승가교육의 개선방안

 1)교재의 개선

 근래에 와서는 각 승가대학마다 나름대로 교재가 다소 개선되기는 하였으나 아직도 내전에만 치중하고 외전을 도외시하는 경향이 없지 않다. 현시대 사조에 적응하는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보수적인 재래식 교육방법을 탈피하고 학문의 폭을 넓혀 현 사회와 호흡을 같이 할 수 있는 교과목을 재편성하여 내외전을 겸학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방침이 세워저야 할 것이다.

 시대와 변천과 문화의 발전에 따라 문교 당국에서도 수차 교과서의 재편성이 있었고 불교 종립학교에서도 교재가 부실하다 하여 새로 편찬한 일이 있거니와 우리 승가대학에서 수학하는 교재에 대해서도 다시 한번 검토해 볼 여지가 있다. 이에 대하여 몇 차례 강원 교재 편찬을 위한 모임이 있기는 하였으나 탁상공론에 그칠 뿐 뚜렷한 성과를 거두지 못한 상태이다.

 늦은 감이 있으나 지금이라도 다시 한번 유능하고 학덕이 있는 강사 스님과 교수들이 자리를 같이 하여 교과목 재편성의 기회가 만들어졌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필자가 개편하고자 하는 교과를 예를 들자면 치문 같은 것은 너무나 분량이 많아서 사미니과를 수료하는데 많은 시간을 소비하게 된다. 생각 같아서는 치문중 신입승들에게 불교사상을 전달하고 신심을 불어넣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부분만을 발췌해서 학습하도록 하고, 4집중에 선요와 서장은 중요한 부분만 선택하고 대신 우리나라 서산 스님이 지은 선가귀감이나 보조법어(수심결)을 외전(동양철학, 인도철학, 서양철학, 심리학, 비교종교, 불교미술)을 겸학하는 것이 보다 폭넓은 교육이라고 생각된다. 그리고 경, 율, 론 3藏 가운데 법장이 교재에서 결여되어 있는데 비구, 비구니계본은 차치하고(사미, 사미니율의, 비구, 비구니계는 수계시에 戒壇에서 수학하므로 이에 생략함) 범망경만이라도 필수과목으로 정하여 수학하도록 해야만 문란하여진 승단의 기강이 바로 잡혀지리라 확신한다. 그밖에 원시경전인 아함경과 소승불교의 기초학인 구사론과 대승불교의 기초학인 유식론을 필수과목으로 할 것을 제안한다.

 그리고 교학에만 치중하지 말고 사학인 인도불교사, 중국불교사, 한국불교사, 불교문화사, 선학사상사, 교리발달사 등을 교재에 포함함과 동시에 일반 교양과목으로는 서예, 원예, 불교음악, 범패, 의식 및 불교를 연구하기 위한 한도 내에 외국어(영어, 일어, 중국어, 범어) 등을 선택과목으로 하도록 배려해야 할 것이다.

 덧붙여서 말하고 싶은 것은 교과목을 전부 중국 스님 것으로만 할 것이 아니라, 우리나라 스님인 서산대사의 선가귀감, 원효대사의 기신론해동소, 함허대사의 원각경소, 보조어록 등을 택한 것은 오랫동안 뿌리박힌 사대사상을 지양하고 자주정신을 고취하기 위해서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개선하고자 하는 교과목의 내용과 년한을 명시하면 다음과 같다. (표 생략)



 2)비구니의 특수교육

 한국불교 신도의 대다수가 여성불자이며 비구니수가 또한 막중함에도 불구하고 고래로 비구니는 뒷전에 물러나 있는 것이 미덕으로 여겨졌고 비구니들 스스로가 그럴 뿐만 아니라 종단에서도 그것이 당연한 것처럼 간주되었던 시절은 이제 지났다고 생각된다. 그러므로 여성지도자로서의 비구니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유포하는 일익을 담당하겠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여성적 특색인 섬세하고 자비스러우며 정직하고 착한 기질을 충분히 발휘하여 불타의 자비사상을 현실생활에 올바르게 전달할 의무와 책임감을 가져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비구니 승가교육을 하는 데는 다도, 정진 요리, 상담, 유아교육 등 여성특유의 교양과 생활 속에서 포교할 수 있는 특수교육이 베풀어져야 할 것이다. 욕심 같아서는 졸업한 후에 자라나는 어린이들에게 불심을 심어주며 봉사할 수 있는 자질을 기르기 위하여 유아교육과를 설치하는 것도 바람직한 일일 것이다. 그리하여 유치원, 어린이 포교, 고아원, 양로원 또는 환자들의 교화를 담당할 수 있도록 비구니들의 교양을 높이며 나아가서는 여성들을 지도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이와 같은 교육이 꼭 이루어진다면 비구니의 이상적인 교육상이 되리라 생각된다.

 특히 우리 비구니들은 여성불교의 선규자로서 앞장 서 나아가야 한다. 왜냐하면 비구니들은 여성들의 내면적인 생활 상황까지 파고 들 수 있기 때문이다. 부처님 在世時에 대애도비구니의 전통을 이어 받아 나아 가서는 末山 了然 비구니나 신라시대의 禪和子 비구니, 최근의 金光(金龍) 비구니나 華山(守玉) 비구니와 같이 우리 스스로의 덕행을 쌓아 한창 발전하고 있는 불법의 동량이 됨은 물론 인류사회의 빛나는 횃불이 되어야 할 것이다.


 3)일원화된 교육과 교수진의 전문화

 현재 여러 곳에 분포된 승가대학이 사미과로부터 大敎科에 이르기까지 각기 기량에 따라 통일성 없는 교육을 하고 있기는 하나 보다 조직적이고 체계적인 일원화된 교육을 시행해야 할 것이다. 최근에 교수회의를 통하여 승가대학의 교육년한을 4년으로 정해서 시행하고 있거니와 교재의 내용도 앞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좀 더 현시대사조에 부합되는 교과목으로 개편되어야 할 것이다. 시대에 부합되지 않는 구태의연한 교재를 가지고 현대를 외면한 내실없는 교육으로 일관한다면 그로 인하여 현실과의 단절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시대에 적응할 수 있는 일원화된 교육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낀다.

 승가교육이 종단흥폐의 원동력임에도 불고하고 승가교육을 할 수 있는 교수진이 매우 빈약함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참으로 개탄할 일이다.

 교수의 자격은 적어도 大敎科와 대학을 졸업하고 5년 이상의 강의경험이 있는 신념과 원력이 확고한 자에 한해서 傳講토록 하고 형식 위주의 전강은 지양되어야 함을 역설한다.

 그리고 종래의 일인전담의 강의로부터 전문분담의 강의로 바꾸어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의 승가대학에서 한 사람이 전반적인 교과목의 강의를 전담하는 교육형태는 최근에 와서 지양되었거니와 앞으로는 각 승가대학에 보다 많은 교수진이 각기 전문분야를 맡아서 강의할 수 있도록 연구에 철저를 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연구과를 설치하여 교과목 외에 법화경, 유마경, 승만경, 열반경, 전등념송 등을 비롯하여 율장과 사서삼경 등 내외전을 수시로 선택하여 연구하도록 하는 한편 寺中에서는 교육에 지대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에 불편함이 없도록 최대의 편의를 도모해야 할 것이다.


 4)修學과 교수법의 개선

 수학하는 학인의 태도에 있어서는 뚜렷한 목적의식 없이 그저 막연하게 정해진 학과를 주마간산 격으로 책장만 넘기는 졸업 위주의 경향이 있는데 학과마다 가끔 시험이나 논문을 써서 그 실력을 향상시키는 한편 수학한 학과 중에서 원각경이면 원각경, 기신론이면 기신론, 어느 한 과목을 선택해서 전문분야로 철저하게 연구하는 것이 학구적 태도이며 나아가서는 敎學의 발전을 가져 오리라 믿는다.

 교수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구태의연한 서당식 교육, 즉 한문원서 강독에만 치중하는 교수방법으로부터 현대인과 호흡을 할 수 있는 새로운 교육방법으로 개선되어야 할 것이다. 무조건 암기를 하거나 교수 중심의 주입식 방법을 탈피하여 교수가 가르치기 앞서 자발적인 실력을 학인의 머리에서 창출해 낼 수 있도록 도와주는 교육, 다시 말하면 학인 중심의 창의적인 교육방법이 바람직한 민주주의 교육이라 할 수 있다.

 그런 점으로 수강하기에 앞서 자유로운 토론이나 論講 및 判釋 등의 학습방법은 실로 민주주의 교육의 한 본보기라 하겠다. 실제로 사원교육 즉 불교는 어디까지나 스스로 수행하여 스스로 깨닫는 自覺敎이므로 철저한 자력주의(學人중심)에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5)교육의 의무화

 승가교육은 철저히 의무교육화되어야 함은 물론이고 승가대학을 운영해 나가는 주지스님과 삼직스님은 당연히 大敎科를 졸업한 자라야 학인들을 돌보는데 적극성을 띠고 후원할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선원과 입방이나 具足戒를 수지하고자 하는 자도 반드시 정상적인 승가교육을 이수한 자만이 그 대상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승가대학을 운영하는 측에서는 도량수호나 사찰보수도 중요하지만 인재를 길러내는 도제양성에 온갖 정성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 현 종단의 공통된 바램이다. 또 한 가지는 은사스님들이 상좌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희박한 데 더욱 문제가 있다고 본다. 필자가 지난 1958년 이래로 전남 선암사를 비롯하여 근 30여년간 여러 강원에서 학인들과 경학을 연구하여 수없이 졸업식을 지켜보았지만 대부분의 은사스님이 졸업식에 참석하는 예가 드물었다. 최근에 와서는 많은 은사스님들이 상좌가 수학하고 있는 사찰에 대중공양차 방문하는 예를 볼 수 있어서 다소 교육에 관심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한편 종단에서는 도제양성을 구두선처럼 강조하고 있으나 과연 승가대학에 얼마만큼의 혜택을 주고 있는지 의심스럽다. 바라건대 도제양성을 하고 있는 빈곤한 승가대학에 한해서는 협조는 고사하고라도 분담금 납부의 면제라도 해주는 특혜를 베풀어 주었으면 하는 것이 절실한 요청이다.

 이와 같이 교육기관에 대한 배려가 부실함으로써 비구 비구니를 막론하고 불타의 교법을 유포하는 숭고한 사명을 회피하게 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는지도 모른다.

 특히 비구니 승가대학은 경제적인 결핍으로 인하여 비구승가대학과 같이 학인들에게 학비조달을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그리하여 방학기간(동기방학 40일, 춘기방학 30일, 하기방학 30일간)을 통하여 은사스님이나 혹은 관련 있는 사찰에 가서 다소의 보시를 받음으로 해서 학비와 기타 잡비에 충당하고 있다. 종단에서는 이런 점을 감안하여 승가교육에 보다 관심을 기울여 주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무엇보다 요청되는 것은 승가대학을 졸업한 스님들의 처우문제이다. 졸업 후의 후속조치가 제도적으로 마련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수년간의 수학생활이 별 보람 없이 끝나는 수가 있다. 대부분의 졸업생들이 선원에 들어가거나 일반대학에 진학하거나 간혹 포교일선에 나가는 예가 있기는 하나 전폭적으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와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않음이 유감스러운 일이다.


4.맺는말

 종교는 그 시대의 흐름과 요청에 따라 발전하여야 한다. 지금은 인공위성이 우리의 머리 위를 돌고 있는 시대이다. 만약 부처님께서 이 시대에 태어났던들 중생을 교화하는 방법이 2500년전 인도에서 설하였던 것과는 판이했을 것이다. 그렇다고 불교의 근본원리가 달라진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러므로 불교승단에서 인재를 양성하는 방법도 재래식 방법을 벗어나 현 시대 사조에 순응하는 교육제도를 확립하고 개선된 교재를 가지고 새로운 교수법으로 많은 도제를 배양하는 것만이 한국불교가 중흥할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다시 한번 강조해서 말하고 싶은 것은 외적인 사찰정화보다는 내적인 정신정화가 우선적으로 베풀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가만히 살펴보면 사회질서가 잡히지 않고 문란함은 종교계가 문란하기 때문이요, 종교계가 문란함은 참다운 성직자가 적은 때문이요 참다운 성직자가 적은 원인은 그러한 성직자를 길러내는 교육기관이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현시대에 부응하는 교육제도를 확립하여 승려들의 자질을 향상하는 것이 급선무라 생각된다. 현재 千佛, 萬佛 혹은 大佛 등을 여러 곳에서 조성하고 있는데 부처님의 참뜻은 살아 있는 생불, 즉 부처님의 가르침을 널리 유포할 수 있는 유능한 제자를 양성하는데 있을 것이다.

 부처님 당시 기원정사나 죽림정사처럼 수행이란 숙식을 함께 하여 공동생활을 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 손으로 직접 일하고 수행하는 卽事而眞 즉 생활에 즉한 수행방법이 화합정신과 아울러 몸과 마음을 건전하게 단련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재의 승가대학도 그 옛날 인도에 있는 나란타 대학과 같이 숙식을 함께 하는 산중사찰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지금 전국적으로 대소 사암에서는 어린이 포교로부터 중고등학생회, 대학생연합회 나아가서는 불자교수회에 이르기까지 포교활동이 불꽃같이 일어나고 있음을 볼 때 우리나라 불교발전에 서광이 비치는 것 같아서 다행스럽고 기쁘게 생각한다. 앉아서 벽관만 하는 수행에서부터 “一日不作이면 一日不食한다.”는 百丈 스님의 사상을 신조로 하여 활동하면서 수행하고, 생산하면서 수행하는 참다운 구도자가 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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