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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불교의 역사

5. 부처님 열반 후의 불교 전개 28. 제 2 결집과 대합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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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6,833회 작성일 21-07-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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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은 불교 2,500년 역사에서 가장 큰 사건이다. 

“대반열반경”은 붓다의 마지막 전도에 대해 말하고 위대한 죽음에 대해서 언급하면서 감개무량한 서술을 하고 있다. 그중 이런 구절이 있다. “아난아, 혹은 너희들 중에 이러한 생각을 하는 비구들이 있을는지도 모르겠다. ‘스승의 말씀은 끝났다. 우리들의 스승은 이미 계시지 않는다.’라고. 그러나 아난아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내가 설하고 가르친 교법과 계율은 내가 죽은 다음, 너희들의 스승으로서 존재할 것이다.” 붓다가 계시지 않는 교단에 있어서 붓다를 대신하여 올바른 삶과 그 실천의 중심이 되어온 것은 붓다가 남기고 가신 가르침인 경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래서 불교의 역사적 대전환에 있어서도 가장 큰 구실을 한 것은 경이다. 붓다가 돌아가신 후 백년쯤 되었을 무렵, 베사리에 거주하고 있는 밧지족 출신의 비구들이 열 가지 항목의 계율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주장하였다. 

1. 비구들에게 있어서 어떠한 음식이라도 발우에 보관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던 것을 소금만은 보관할 수 있다는 해석.

2. 비구들의 식사는 정오까지로 정해져 있던 것을 오후 2시 정도까지는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

3. 다른 촌락에 가서 걸식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

4. 일정한 지역의 범위내에서 하나의 사찰에서만 포살회를 베풀던 것을 여러 사찰에서 포살회를 행하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

5. 곧 도착할 비구들의 동의를 예상하여 정족수가 부족하더라도 의결행위를 할 수 있다는 해석.

6. 이전 비구가 하던 행위를 따라하면 율에 어긋나더라도 죄를 받지 않는다는 해석.

7. 식사 후에도 응고하지 않은 우유를 마실 수 있도록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

8. 치병을 목적으로 발효한 음식을 마실 수 있다는 해석.

9. 몸의 크기에 따라 좌구의 크기를 정할 수 있다는 해석.

10. 금, 은, 돈 따위의 보시를 받는 것이 허용되어야 한다는 해석.


이와 같은 10조목의 주장에 대하여 장로회의를 소집하여 베살리에 700비구가 모여 검토한 결과 밧지 비구들이 주장한 10사를 비법으로 결정하였는데 이것을 역사는 “제2결집”이라 이름하였다. 장로회의의 결과에 불만을 품은 밧지 비구들은 다시 집회를 열어 “10조목에 대한 해석”을 정법이라고 주장함으로써 교단은 정통을 고수하는 보수주의적인 상좌부와 시대의 흐름을 반영하여 율을 해석하려고 하는 진보주의적인 대중부로 분열이 생기게 되었다. 역사적인 필연성에 의해 대중부는 점차 교권을 확대해 나가 결국 대승불교의 주류를 이루게 되었다. 그래서 밧지 비구들의 “10조목 사항에 대한 해석”은 불교사의 갈림길에서 엄청난 역할을 하게 되므로 역사는 이것이 결집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하여 “대합송”이라고 이름하였다. 역사적 상황을 잠깐 돌이켜 보면 불멸 후 100년경이면 인도사회에서 화폐경제가 유통되기 시작했으며, 고대국가의 통일기로 접어드는 길목이므로 전쟁으로 황폐해진 경제가 어느 정도 회복되어 물량의 풍족함을 누리고 있을 때이며 불교도 붓다시대부터 시작된 전도에 힘 입어 어느 정도 인도의 중부와 북부 전역에 걸쳐 포교가 이루어졌으므로 지역적인 팽창과 더불어 숫적으로의 팽창은 불교에 귀의한 제자와 신도들의 지식 정도의 차를 심하게 하였다. 이에 붓다 시대의 대부분 제자들은 최고의 지식층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교리적 측면에 있어서도 분석적인 방법이 주류를 이루었는데 비하여 이제는 지식의 차이를 넘어서 많은 불자들에게 불교가 이해되어야 하는 역사적 필연성을 갖게 된다. 그래서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분석적 방법보다는 직관적 방법으로 기울어지게 되었다. 또한 빈부의 차와 카스트제도를 뛰어넘을 수 있는 대중구제가 선행되어야 한다는 이념에서 새로운 이상적인 불교인의 모습으로 “보살”이 대두하게 되었다. 비로소 붓다로부터 출발한 “인식론”에 바탕을 둔 불교는 역사의 수레바퀴와 더불어 종교의 틀을 갖추게 되며, 이 시점에 이르러 세계적인 종교로 발돋움할 수 있는 기틀이 마련된 것이다. 결국 보수주의와 진보주의의 격돌은 불교의 새로운 향방의 나침반이 되었으며 붓다가 열반하시기 전에 아난에게 하신 말씀인 “내가 멸도한 후에 대중이 만약 희망하거든 소소계는 버려도 좋다.”고 한 유언을 역사적인 관점에서 재음미해 보아야할 중요한 구절이라고 생각한다. 역사의 흐름에 의하여 의미 없는 사소한 계율을 소소계라고 해석한다면 지금의 한국불교에서도 정법과 정율을 새롭게 다지면서 수행 승단으로서의 면모를 다시 갖추고 붓다의 모습으로 탈바꿈해야 하리라. 역사는 항상 획득한 부와 권력을 유지, 확대 시킬려는 보수주의와 기본의 틀을 무시하고 더 크고 더 높은 이상을 향하여 발돋움하는 진보주의의 격돌에 의하여 새로운 조화를 찾으며 또 다른 새로운 문화를 창출하면서 흘러가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보와 보수는 필수적인 것이며 우리 인간에게 내재하고 있는 양면성의 표출일 것이다. 큰 부패는 세월이 흘러 큰 거름이 되어 더 큰 진보의 싹을 틔울 것이기에 현실의 아픔과 고뇌를 우리의 깨어있는 생각과 수행으로 극복한다면 우리의 삶 자체가 역사에 있어서 더 큰 진보의 싹이 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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