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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불교의 역사

5. 부처님 열반 후의 불교 전개 30. 제 3 결집과 불교정화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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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786회 작성일 21-07-09 1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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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남전에 의하면 아쇼카왕(BC 250년경)은 불교에 귀의하여 승단에 크게 공양을 베풀었다고 전한다. 그 당시에는 승려를 빙자한 외도들이 6만이나 적주하였으며 아쇼카원에서는 7 년 동안이나 포살이 행해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아쇼카왕이 승단을 정화하기 위하여 아호 강가에서 목갈이 풋라 타사를 초청하여 “카타밧투(논사)”를 지었다고 한다. 역사는 이것을 제 3 결집이라 이름하였다. 부파 불교시대가 뜻하는 것은 불교의 대흥기를 나타내고 있으며 6 만이나 적주하였다 함은 거대해진 승단에 경제적으로 국가의 비호아래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경전의 거의 전부가 붓다와 출가제자들간의 대화나 가르침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렇지 않는 특이한 경전이 유마경, 승만경이다. 유마경이 성립된 지역은 베샬리이며, 상업이 발달한 매우 개방적인 이 도시에서 살고 있는 재가불자 유마가 주인공으로 등장하고 있다. 승단의 어러움을 염려한 수행이 깊은 뛰어난 재가불자 유마는 형식주의와 권위주의에 가득찬 승단의 정화와 개혁을 다루고 있다. 승단의 비대화에 따라 승단의 부패도 가속화하였으며 승단의 기강은 황페할대로 황폐해졌던 것이다. 이에 재가 불교 운동이 지역에 따라 지역적인 특성에 따라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물질적인 풍요로움과 사회의 안정은 인간을 나태하게 하며 제도를 부패하게 하였음을 역사는 잘 알고 있다. 고대국가가 확립된 로마가 그러했으며 중국의 진왕조가 그러했으며 인도의 마우리아 왕조 또한 그러하였다. 그 당시 사회의 이상이었던 종교 또한 같은 운명의 길을 걷고 있었던 것이다. 승만경에서도 재가신자인 승만을 등장시켜 “윤리관의 중요성”을 역설하고 있으며 고대인에게 있어서 종교는 그들 삶의 전부였기에 승단을 다시 일으키는 일은 사회윤리를 재조명하는 것과 같은 의미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재가 불교운동이 지역에 따라 강하게 일어났던 것이다. 유마경을 중심으로 살펴보면 아마 유마경을 저술한 사람은 문학적 재능이 매우 뛰어났다는 것을 경전의 전개과정에서 볼 수 있다. 제1막을 봐이샤리 교외의 암라수 우거진 정원에서 전개되며 제2막은  유마의 방으로 장소가 옮겨진다. 제3막은 다시 암라수 우거진 정원으로 무대를 옮겨 끝맺고 있다. 경전의 성립연도는 A.D. 150년경으로 상업도시인 베샬리를 배경으로 하고 있으며 대승불교의 중심사상인 “공”사상을 재가 불자의 입장에서 어떻게 실질적인 사상과 조화를 이룰 것인지 즉 재가불자의 생활 속에서 공의 실천을 제시하면서 대승불교운동의 새로운 지향점을 유마는 열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경전이 부처의 세계에 접근해 있는데 반해 유마는 중생의 입장에 서서 불교를 조명하고 있는 것이 큰 특징이다. 결국 유마라는 사람은 “공”의 정신을 체득하여 몸소 실천하고 있으며 그것이 여러 부처님에 대한 공양에 의하여 얻어진 것임을 알게 된다. 이 사실은 유마가 붓다의 가르침을 믿고 따르는 재가의 입장에 머물러 있음을 보여준다. 왜냐하면 공양이 음식이나 의복을 희사하는 행위를 뜻한다면 그것은 생산에 종사하여 재물의 축적이 가능한 재가신자가 아니고는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일반 대중을 중심으로 하여 일어난 이 종교운동은 재가신자들의 부처님에 대한 순수신앙과 깨끗한 마음에서 우러나온 공양을 보다 가치 있는 일이라고 파악하고 있으며 생동감 넘치게 부처님의 대제자 들을 등장시켜 권위주의와 형식주의로 오염된 승단을 비판 거부하고 있는 것 또한 큰 특징이다. 

“아! 사리불,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이 아니다. 대체 좌선이란 생사를 거듭하는 미혹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몸이나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지 않을 때 이것을 좌선이라 하는 것이다. 또 깨달음의 길을 걸으면서도 세속적인 일상생활을 보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에 갇히어 정적에 잠기는 그릇된 생각을 그대로 지닌 채 수도를 행하는 것이 좌선이며 많은 번뇌를 끊지 앉은 채 궁극적인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이 좌선이다.”

이어서 목련-설법에 관하여, 가섭-자비에 관하여, 라후라-출가의 공덕에 관하여, 수보리-공에 대한 깨달음에 관하여, 우바리-계율에 관하여 등을 내용으로 다루고 있으며 형식주의로 흘러버린 승단의 전반적인 부분을 지적 비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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