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루나 -- 칼로 나를 해치려거든
신록이 짙어지는 계절의 여왕 5월은 히말라야의 천년 빙하도 녹여 내린다. 부처님의 대자대비도 억겁의 업장을 용광로의 주물처럼 녹여 내린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조그마한 것이라도 처음 만들어질 때, 거기에는 깊은 생각과 집요한 애정과 끊임없는 노력이 보석처럼 빛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지금 우리가 교과서에서 배우는 평범한 사실 하나 - 수백 번 백두산을 오르내리면서 한반도의 지도를 완성한 김정호의 대동여지도, 지리산 기슭에서 태어나 스승의 몸을 해부하면서까지 불후의 의술을 터득하여 한의학의 금자탑을 세운 허준의 동의보감, 20세의 젊은 나이에 세상의 진리를 꿰뚫어 보고 수 년을 무인도로 고도로 항해하면서 식물들의 생태를 기록한 다윈의 종의 기원 등등 - 도 결국은 한 인간의 평생을 건 아름답고 감동적인 삶의 결과들이다. 더군다나 황하강과 같은 종교가 성립되고 전파되고 확립되는 과정에는 지금도 우리의 가슴을 저미게 하는 확고하고 감동적인 삶의 편린들이 역사 속에 감추어져 혜성처럼 반짝거린다.
세상이 혼란할 수록, 부처님의 법이 희미해질수록, 수행자의 흔적들이 엷어질수록 우리의 가슴에 샛별처럼 파고드는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 설법제일 부루나가 있다. 그는 불법을 만나기 전에는 국제적인 해양무역에 종사하였다. 그의 억세고 거친 기질은 부처님에게 귀의하고 나서도 변방 포교의 선두주자가 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노년에 이른 부루나는 젊은 시절에 뛰쳐나온 자기 고향 (인도의 서해안에 위치한 수나아파란타국의 수퍼라카 지방)이 그리워 죽기 전에 꼭 한번 들러 형제 자매와 마을 사람들에게 진리의 복음을 전하고 싶었다. 하루는 부처님을 찾아 뵙고 자신의 뜻을 말씀드렸다.
“스승이시여, 저는 이제 늙고 기력이 다했습니다. 이제는 저를 낳아준 고향 수나아파란타국으로 돌아가 거기에 불법을 전하고 진리의 씨를 뿌렸으면 합니다. 원하옵건대 저의 청을 들어주시고 그곳에서 제가 어떻게 행동하면 스승님의 가르침에 어긋나지 않는 진리를 전할 수 있겠습니까?”
“부루나여, 그 지방 사람들은 성질이 사납고 흉악한데, 만일 그 사람들이 그대를 사람들의 면전에서 비난하고 비방한다면 그 때는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때는 그들이 지팡이나 돌멩이로 저를 때리지 않는 것만으로도, 혹은 발길로 저를 차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이 좋은 성품을 가졌다고 생각하겠습니다.”
“그러면, 그들이 돌이나 지팡이를 가지고 그대를 때린다면 어떻게 생각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때에는 칼을 가지고 나를 해치지 않는 것만으로도 그들은 훌륭한 성품을 가지고 있어 부처님의 법을 배울만하다고 생각하며 참고 견디며 법을 전하겠습니다.”
“부루나여, 만일 그들이 칼을 가지고 그대를 죽인다면 어떻게 하겠는가?”
“부처님이시여, 그 때는 저는 이렇게 생각하겠습니다. 불제자들 가운데는 인생에서 일어나는 고통과 고뇌를 빨리 끝내고 극락세계로 가려고 스스로 목숨 끊는 번거러움을 덜어주는 고맙고 친절한 사람들이구나 하며 부처님의 법을 전하다가 기쁜 마음으로 기꺼이 목숨을 바치겠습니다.”
“정말 장하다. 부루나여! 그렇게 확신에 차 있다면 어떤 흉악한 세상이라도 그대를 어떻게 하지 못할 것이다. 즐거운 마음으로 그대 고향으로 전도를 떠나라. 그대의 확고한 믿음과 뜨거운 정열로 말미암아 그곳은 틀림없이 불국토가 될 것이다.”
이것이 부처님과의 마지막 만남이라는 것을 부루나는 알고 있었다. 지금 가면 다시는 부처님이 계시는 사위성으로 돌아오지 못할 것을 부처님도 부루나도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그러나 사람이 살고 있는 곳이라면 어떤 곳이라도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의 문을 열어야 하는 것을 부루나는 깊이 감지하고 있었다.
별은 하늘에 있어야 아름다운 것이고, 꽃은 땅에서 피어날 때 아름답다. 원래 모든 것은 제 자리에 있을때 아름다운 법.
먹물 옷 입고 제 자리만 지키고 있으면 그것보다 더 큰 포교는 없다. 수행으로 얼룩졌을 때 먹물 옷은 진정 아름다운 것이다.
지심귀명례.
수보리 -- 지극함에는 하늘도 감동한다.
티 하나 없이 높고 맑은 가을 하늘을 쳐다보기만 하여도 가슴이 서늘해진다. 온 산은 울긋불긋 고운 옷으로 갈아입고 우주의 질서 앞에 경건하게 서 있는데.
아름다운 이 땅에 천재지변은 왜 일어나는가? 천재지변에 버금가는 사건들은 왜 일어나야만 하는가? 지옥과 같은 아수라장이 왜 펼쳐지는가?
부처님의 10대 제자중 해공제일인 수보리는 코살라국의 사위성에서 태어났는데 아버지 수마나는 대부호 수닷타의 동생이었다 유복한 가정에서 자라난 그는 성격도 어디 한 군데 모난 곳 없이 원만하였으며 얼굴과 몸매도 부처님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났다. 수닷타가 기원정사를 지어놓고 부처님이 오시기로 약속한 날, 어린 수보리는 삼촌과 함께 설레이는 가슴으로 부처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부처님을 만나 뵙게 되자 부처님의 맑고 고요한 모습이며, 진리를 꿰뚫고 있는 투명한 눈동자와 가슴에 스며드는 자비로운 눈매에 어린 수보리는 홀딱 반하고 말았다. 더군다나 부처님으로부터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 진정한 삶의 법문을 듣고 자신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그 자리에서 결심하게 된다.
비록 어린 수보리였지만 그 날 밤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얼마 후 수보리는 출가를 하였다. 밤에만 홀로 피었다가 말없이 지는 달맞이꽃처럼 그는 평생 동안을 부처님 곁에서 조용히 수행하면서 지내게 된다. 스승인 부처님을 따라 유행을 하면서 교화도 받고 수행을 하였던 수보리가 한번은 혼자 마가다국의 왕사성을 찾게 되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은 수보리가 조용히 홀로 수행 할 수 있도록 오두막집을 지어 공양을 올렸다. 왕은 깜빡 잊고서 그 오두막집의 지붕을 씌우지 않았다. 수보리는 왕의 정성을 고맙게 생각하면서 열심히 수행하였다. 낮도 밤도 없이 오로지 선정에 들어 있었다. 간혹 삼촌 수닷타가 처음 부처님을 만났던 장소가 이곳 왕사성이라는 생각이 날 때마다 삼촌과 자신에게 얽혀 있는 묘한 인연을 생각하면서 혼자 빙긋 웃곤하였다.
그런 수보리가 지붕이 없는 오두막집에서 살고부터 비가 내리지 않았다. 하늘도 수보리의 수행에 감동하였는지 수보리의 수행처에 지붕이 없음을 알고 비를 내리지 않았다. 수보리는 지붕이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고 그냥 수행만 하였다 그렇게 비가 많이 내리던 곳에 몇 달 동안 비가 내리지 않았던 것이다. 조정에서 비가 내리지 않은 이유를 조사하다가 수보리가 수행하고 있는 오두막집에 지붕이 없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말을 전해 들은 왕은 그 다음날 바로 지붕을 올려 주었다. 며칠 후, 다시 비가 내리는 기적이 일어났다. 왕사성의 사람들은 좋아서 야단인데도 수보리는 지붕 위에 떨어지는 빗소리를 들으며 묵묵히 수행만 하고 있었다.
진정 지극함에는 하늘도 감동하는 법이다. 우리들이 생각하는 것은 항상 상대적이다. 나와 남의 구별이 있는 분별심으로는 진정 지극함에 이를 수가 없다. 자신만을 생각하는 이기적이고 동물적인 생각이 조금이라도 남아 있다면 진정 지극함의 나라에는 다다를 수가 없는 것이다. 자신의 이익만을 먼저 생각하는 욕심스러운 마음에서 벗어나라.
자신의 편안만을 생각하고 상대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는데서 생겨나는 화내는 마음에서 벗어나라.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라. 말로써 벗어나지 말고 행위로써 벗어나라. 진정한 것은 말과 행위가 하나 된 자기 봉사이며, 이것만이 죽음 앞에서도 의미가 있는 진정한 삶이다. 진정으로 지극한 것은 꼭 이루어질 수 밖에 없다. 진정 지극함만이 모든 것을 변화 시킬 수 있다. 수천억 년이 가도 이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 진실함에 자신을 던져버려라. 자신이 변해 버리면 이미 세상은 달라져 있는 것이다.
사리불 -- 진정한 구도자
사리불과 여러 제자들은 신도의 공양 초대를 받았다. 사미가 된 라후라도 끼어 있었다. 대중 공양을 마치고 돌아온 라후라에게 붓다는 물었다.
“오늘의 대중 공양에는 모두 만족하였느냐?”
그러자 어린 라후라의 대답은 천만 뜻밖이었다.
“만족한 사람도 있으나 만족하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무슨 뜻이냐?”
“비구들에게는 맛있는 음식이 나왔으나 사미들에게는 거친 음식이 나왔습니다.”
“라후라야, 그렇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수행을 할 때는 한줌의 곡식을 먹고 지냈느니라. 그것과 비교한다면 거친 음식도 수행하는데는 훌륭한 것이다.”
붓다는 사리불에게도 물었다.
“오늘 대중 공양은 모두 만족스러웠느냐?”
붓다의 의도를 알아차린 사리불은 몸둘 바를 몰랐다. 그러나 침착하게 사리불은 말했다.
“앞으로는 어떤 공양 초청에도 응하지 않겠습니다. 걸식만 하겠습니다.”
그후 사리불은 평생 동안 공양 초청에 응하지 않고 걸식만 하였다. 다음은 사리불 만년의 이야기이다.
사리불은 여름 석달 안거를 끝내고 유행을 떠났다. 얼마후 한 비구가 붓다에게 다가와
“부처님이시여, 사리불은 저를 모욕한 후에 길을 떠났습니다.”라고 하였다.
붓다는 사리불을 불러오도록 비구를 보냈다. 그리고 아난에게는 정사 안에 있는 전 대중을 한 곳에 모이게 했다. 무슨 영문인지도 모르고 사리불은 붓다에게로 불려온 것이다. 붓다는 사리불이 오자 엄숙하게 말했다.
“사리불이여, 네가 떠나자 얼마 후 한 비구가 찾아왔다. 그 비구는 네가 자기를 모욕했다고 하는데 그것이 참말인가?”
사리불은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세존이시여, 저는 올해 팔십이 됩니다. 그러나 저는 아직 살생한 기억도 없으며 거짓말도 한 적이 없습니다. 남과 다툰 일도 없습니다. 만일 제가 그런 일을 하였다면 평생을 부처님 곁에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안거가 끝나는 참회의 날입니다. 저의 마음은 호수와 같이 투명합니다. 이러한 때에 제가 남을 가벼이 희롱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세존이시여, 땅은 능히 모든 것을 참고 더러운 것도 받아들입니다. 땅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오늘의 제 마음은 마치 이 땅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산과 들을 태우는 불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먼지를 쓸어내는 비 또한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 저의 마음 또한 이 불과 같습니다. 세존이시여, 뿔을 잘린 소가 거리를 걸어도 온순하고 선량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음과 같이 오늘의 제 마음도 온순하고 선량하여 풀 한포기라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바른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 제가 어찌 다른 사람을 모욕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거짓말을 하였다면 세존께서도 아실 것이며 저 비구도 알 것입니다. 만약 저에게 잘못이 있다면 저는 그 비구에게 참회하겠습니다.”
사리불의 이 말을 듣고 대중들은 모두 감동하였다. 붓다는 사리불을 비방한 비구에게 말했다.
“너는 지금 너의 잘못을 참회하여야 한다. 만약 참회하지 않으면 너의 머리는 산산히 깨어질 것이다.”
그 비구는 앞으로 나아가 붓다 앞에 무릎을 꿇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너는 사리불에게도 전 대중에게도 참회하여야 한다.”
비구는 사리불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저의 참회를 받아 주십시오. 다시는 다른 사람을 비방하지 않겠습니다.”
사리불은 그 비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비구여, 참회는 불법 가운데 공덕이 가장 큰 것 중의 하나이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나는 그대의 참회를 기쁘게 받아들이나니 다시는 잘못을 범하지 말아라.” 대중들은 사리불의 태도에 다시 한 번 감동하였다.
우리들은 백년도 되지 않은 우리들의 일생을 마치 영원한 것처럼 착각하며 살아가고 있다. 40억년 동안 살아온 지구의 나이를 한 번 생각해 보라. 우리의 일생이란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백년만 있으면 허물어질 이 몸을 마치 절대적인 것처럼 착각하고 있다. 한 번 역사 책을 펼쳐 보라. 한때는 영웅이었던 수많은 사람들도 어김없이 사라져 간다.
삼국을 통일한 김유신, 조국을 지키다가 장열하게 전사한 계백, 중국의 수십 만 대군을 물리친 을지문덕, 삼천궁녀를 거느린 의자왕 등, 그들은 지금 어떻게 되어 있는가?
그리고 또 자신의 마음을 태우며 불멸의 삶을 찾아 헤맨 수많은 구도자들은 어떻게 되어 있는가?
일체의 인연따라 이루어졌다 없어지는 현상은 꿈이며 환상이며 물거품이며 그림자이며 이슬과 같고 번개불 같나니.
가섭 -- 최고의 수행자
무성했던 잎들이 다 떨어져버리고 앙상하게 남아있는 나무가지 사이로 겨울이 다가서고 있다. 바람마져도 쉴 곳이 없는 빈산에는 바람도 숨이 차서 헉헉거리고 있다. 계절의 진실 앞에 자연은 그대로 경건하게 서 있을 뿐이다. 세월만큼 잔인한 것도 없지만 세월만큼 진실한 것도 없다.
부처님의 십대제자 중에 제일 큰 제자인 가섭은 부처님보다 나이가 많았으면서도 수행에 대해서는 부처님의 제자 중 어느 누구보다도 철저하였다. 가섭이 팔십이 넘는 노구를 이끌고 수행하고 있는 모습이 너무 안쓰러워 부처님께서는 가섭에게 좀 편안하게 쉬면 어떻겠느냐?고 조용하게 권했다.
“가섭이여, 너의 육신도 이제는 늙을만큼 늙었구나. 너가 평생 입고 있었던 분소의(세속 사람들이 버린 옷을 주워다가 여러 개를 모아 기워 만든 옷)가 무거워 행동하기에 불편하면 재가 신도들이 공양 올리는 가벼운 옷을 입어도 좋으리라. 그리고 이제는 두타행을 그만 두고 너의 육신을 편안하게 쉬는 것도 좋을 것 같구나.”
그러자 가섭이 말했다.
“부처님이시여, 오랫 동안 여러 가지를 보살펴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두타행을 닦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비록 늙은 몸으로 부처님을 뵈었지만 이 무거운 옷을 입고 하루 한끼를 먹으며 밤새도록 무덤가에 앉아 선정에 들기도 2,30 년이 흘렀습니다. 세존을 처음 뵈었을 때 젊고 당당했는데 이제는 부처님께서도 많이 늙었셨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무거운 분소의를 입고 무덤 사이에서 수행하다가 죽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저는 도를 닦아 탐욕을 줄이고 또 만족함을 알고, 혹은 조용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정에 들기도 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들을 피하여 홀로 수행하는 것은 저의 기쁨입니다. 부처님이시여, 제가 비록 나이가 들었지만 이같이 도를 닦는 것은 저의 즐거움이며, 또한 후세의 사람들에게 도를 닦는 즐거움과 도를 닦는 기준을 알리고 싶은 까닭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기뻐하면서 가섭에게 말했다.
“가섭이여, 너야 말로 후세 사람들의 등불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도를 이루어 안락을 얻을 것이다. 가섭이여, 너의 뜻대로 두타행을 계속해도 좋겠구나.”
가섭의 노안에는 미소가 번졌다.
“부처님이시여, 허락하여 주심에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가섭은 평생을 다음과 같은 12 가지 두타행을 하면서 수행하였다.
1. 재아란약처(在阿蘭若處) -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2. 상행걸식(常行乞食) - 언제나 탁발걸식한 음식을 먹는다.
3. 차제걸식(次第乞食) - 걸식하는데 있어서 빈부의 집을 가리지 않는다.
4. 수일식법(受一食法) - 하루 한끼만 먹는다.
5. 절량식(節量食) - 수행에 적당한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량만 먹는다.
6. 중후부득음장(中後不得飮漿) - 중식 이후에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7. 착폐납의(着弊納依) - 세속에서 버린 옷들을 모아 기워서 만든 옷을 입는다.
8. 단삼의(但三衣) - 옷은 세벌 이상 가지지 않는다.
9. 총간주(塚間住) - 잠을 잘 때는 무덤 사이에서 잔다.
10. 수하지(樹下止) - 수행을 할 떄에는 나무 아래에서 한다.
11. 노지좌(露地坐) -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앉아 지낸다.
12. 단좌불와(但坐不臥) - 잘 때도 누워 자지 않고 좌선하는 자세로 그대로 잔다.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은 시대와 지역을 초월하여 지극하여야 한다. 생활은 청빈해야 한다. 바른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이나 진지한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은 세상을 초월하여 절실해야 한다.
우리의 삶은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시험의 연속이다. 우리가 치루는 시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대학 입학시험과 같이 합격자 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 정원 안에 들면 합격하는 상대평가와 또 다른 하나는 의사 전문의 자격시험과 같이 합격선 점수가 정해져 있어서 그 점수 이상을 받아야만 합격하는 절대평가 이다. 자신의 삶의 문제에 대해서 부처님만큼 절실하고, 가섭만큼 확고하다면 도는 이루어지는 것이다. 부처님과 같이 목숨을 건 6 년 고행이나 가섭과 같은 철저한 수행만이 도를 이루는데 있어서 카트라인인 것이다. 피나는 노력을 하지도 않고 좋은 결과을 바라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머리를 깎고 출가하여 승려가 되는 것은 도를 이루기 위한 좋은 조건에 불과한 것인데 출가하면 도가 다 이루어진 것같이 착각하는 수가 있다. 출가 자체에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수행하는데 진정한 의미가 있음을 깊이 인식하지 않으면 종교의 허상에 빠져 종교의 노예가 되어 평생을 헛되이 보낼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들이 가장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고 종종 착각을 한다. 지금부터 천 년 전에도 이 천년 전에도 지금처럼 타락한 인간의 모습에서 말세라고 개탄한 사람도 있었으며, 도를 이루기 위하여 가섭처럼 진지하게 수행한 사람도 있었던 것이다. 누구에게나 삶은 자기자신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므로 육신의 쾌락을 채우기 위하여 온갖 행위를 스스럼 없이 행하여 지옥에 사는 것도 자신의 문제이며, 더욱이 진리라는 것도 진리를 인식하고 진리를 체득하기 위하여 몸부림치는 사람의 문제일 뿐이다. 자신이 행한 행위에 대한 인과는 나이가 들면 들수록 분명해진다. 자기 의식의 성숙에 따라 세상이 달라 보일 뿐이지 이 세상은 부처님 당시나 지금이나 있는 그대로 있을 뿐이다.
수행자들이여!
앙상한 겨울 나무들처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모든 것을 훌훌 벗어버리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