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대승불교의 흥기와 확립 34. 동서양의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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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난드로스왕이 나가세나존사에게 물었다.
“존사여, 나는 젊어서 출가하여 수행 정진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하겠습니다. 하고 싶은 것이 많은 젊은 시절에는 마음껏 즐기고 놀다가 나이가 들어 늙어서 수행하면 되지 않겠습니까? 여기 모여 있는 많은 출가 사문들을 저는 이해할 수가 없습니다. 납득할 수 있도록 설명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대왕이시여, 대왕께서는 많은 나라를 정복한 뛰어난 대왕이십니다. 아마 많은 나라와 전쟁을 치루었을 것입니다. 전쟁을 치룬 적이 있습니까?”
“있습니다.”
“대왕께서는 전쟁을 할 때 보루를 쌓고 군사를 훈련시킵니까?”
“아닙니다. 전쟁을 하기 전에 미리 보루를 쌓고, 군량을 비축하며, 군사들을 훈련시켜 전쟁에 대비합니다.”
“어떤 목적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입니까?”
“미래의 위험을 막기 위해서입니다.”
“대왕이시여, 미래의 위험이 지금 존재합니까?”
“존재하지 않습니다.”
“현명하신 대왕께서는 존재하지도 않는 미래의 위험을 대비하기 위하여 그런 일을 하였습니다. 출가 사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래에 닥칠 늙음과 죽음에 대비해 젊어서 수행정진하는 것입니다. 전쟁과 마찬가지입니다. 미리 대비하는 것은 성과가 있지만 닥친 다음에 하는 것은 아무런 성과가 없는 것입니다.”
“존사여, 알겠습니다. 그대는 나의 물음에 납득이 가도록 잘 대답하였습니다.”
메난드로스는 기원전 2세기경 카불 부근의 그리이스인 도시 알랙산더의 그리이스계 왕가에서 태어났다. 그는 나이가 들어 한 때 데메트리오스의 보좌관으로 수도를 정하고 수라스트라 지방에 이르기까지 국토를 넓혔다. 그는 불교의 비구 니가세나 장로와 불교 교리에 관하여 문답을 주고받은 후에 불교에 귀의하게 되었는데 귀의한 이유가 기록된 것이 붓다의 사리호가 바자푸르의 신코트에서 발견되었다. 서북인도를 지배하던 그리스인 왕 메난드로스(밀린다)와 불교 승려인 니가세나(나선) 비구의 대화를 책으로 엮은 것이 “밀린다왕문경” 혹은 “나선 비구경”으로 전해지고 있다. 인도사상과 헬레니즘 문화가 각자의 세계관과 인간관에 입각하여 매우 명쾌한 토론을 전개시키고 있다. 대화의 주제는 지혜와 번뇌, 윤회, 업, 붓다의 실재, 시간론 교단, 비구의 자격, 출가생활과 재가생활, 열반 등 불교 전반에 걸쳐 다루고 있다. 메란드로스왕과 나가세나 비구가 만나 인사를 나누고 처음 던진 질문과 답변을 한 번 살펴보기로 하자. “어찌하여 당신은 존사로서 세상에 알려지셨습니까? 존사여, 당신의 이름은 무엇이라 하십니까?” “저는 나가세나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읍니다. 대왕이시여, 저와 수도를 함께 하고 있는 비구들은 저를 두고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또 제 부모도 나가세나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대왕이시여 이 나가세나라는 것은 사실에 있어서는 명칭이요 속칭이요 가짜 이름이요 통칭이어서 단순한 이름에 그칩니다. 이 이름에서 실체적 개아는 발견되지 않습니다.” “오백명의 희랍인과 8만에 달하는 출가 수도자 여러분, 내 말을 들어 달라. 이 나가세나는 이렇게 말했소. ‘이름에는 실체적 개아는 발견되지 않는다’고 이를 승인할 수 있겠는가?” “앞서 ‘대왕이여! 저와 수도를 함께 하고 있는 비구들은 저를 두고 나가세나라 부릅니다.’라고 했거니와, 이 경우 무엇을 나가세나라고 하는 것인가요. 존사여! 두발이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몸에 난 털이 나가세나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존사여 물질적인 형태가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럼 감수작용이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지각작용이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습관의 축적이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의식이 나가세나 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존사여! 물질적인 형태와 감수작용과 지각작용과 습관의 축적과 의식 따위의 전부를 일러 나가세나라 하는 것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존사여, 그렇다면 물질적 형태, 감수작용, 지각작용, 습관의 축적, 의식 같은 것 외에 따로 나가세나가 있는 것인가요?”
“대왕이시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존사여, 나는 되풀이하여 당신에게 물어 보았건만 이 나가세나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존사여, 나가세나란 단순한 말에서 오는 인상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기 내 앞에 있는 이 나가세나는 누군가요? 존사여, 당신은 나가세나는 없다고 진실에 위배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이와 같은 대화 후 나가세나는 메난드로스왕에게 다음과 같이 물었다. “대왕이시여, 폐하께서는 고귀하고 품위가 있으시며 그야말로 포류지질이십니다. 대왕이시여, 만약에 폐하께서 타는 듯한 땅이나 모래사장을 걸으신다든지 울퉁불퉁한 돌멩이가 박힌 험한 길을 걸어 오셨다고 하면 발이 아프고 몸은 피곤하며 마음은 괴로워서 발이 땅에 닿는 것만 생각하셔도 고통스러우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폐하께서는 걸어 오셨습니까? 아니면 수레를 타고 오셨습니까?”
“존사여, 나는 걸어온 것이 아닙니다. 수레를 타고 왔습니다.”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대왕이시여 멍엣대가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속 바퀴가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퀴가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차체가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수렛대가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멍에가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바퀴살이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굴대 빗장이 수레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이시여, 멍엣대, 속바퀴, 바퀴, 차체, 수렛대, 멍에, 바퀴살, 굴대빗장이 모인 것을 수레라 하는 것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대왕이시여, 멍엣대, 속바퀴, 바퀴, 차체, 수렛대, 멍에, 바퀴살, 굴대빗장 외에 따로 수레라는 것이 있는 것입니까?”
“존사여, 그렇지는 않습니다.”
“대왕이시여, 저는 되풀이하여 폐하께 여쭈어 보았건만 수레를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수레란 단순한 말에서 오는 인상에 불과하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여기에 수레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은 부정해야 되겠습니까? 대왕이시여, 페하께서는 수레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진실 아닌 거짓말을 하고 계신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폐하께서는 온 인도 안에서 으뜸가는 임금님이십니다. 대체 폐하께서는 무엇이 두려워 거짓말을 하신 것입니까? 오백명의 희랍인과 8만에 달하는 출가 수도자 여러분, 내가 하는 말을 들어주십시오. 이 메난드로스 왕께서는 ‘수레를 타고 왔다.’고 분명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대왕이시여, 폐하께서 수레로 거동하셨다면, 수레에 대해 저에게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여쭈었더니 대왕께서는 ‘수레를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사실에 찬성하실 수 있습니까?”
“존사 나가세나여, 나는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멍엣대에 의해, 속바퀴에 의해, 차체에 의해, 그리고 수렛대에 의해서 수레라는 명칭, 속칭, 가짜이름, 통칭 같은 것이 생긴 것입니다.”
“대왕이시여, 폐하께서는 수레에 대해 분명히 이해하셨습니다. 대왕이시여, 그와 같이 저에게도 두발에 의해, 털에 의해, ...., 두뇌에 의해, 물질적인 형태에 의해, 감수작용에 의해, 지각작용에 의해, 습관의 축적에 의해, 의식에 의해, 나가세나라는 명칭, 속칭, 가짜이름, 통칭, 단순한 이름 따위가 생긴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한 뜻에서는 실체적 개아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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