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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불교의 역사

9. 진리의 바다, 진지한 삶을 위하여 47.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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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102회 작성일 21-07-09 1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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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깨달음이란 것은 스님의 개인 소유가 아니라 삶을 영위하는  모든 생명체의 공동 소유라는 인식이 앞서야 한다.

서울에 가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듯이, 어떤 삶을 살아 가든지간에  모두  다 깨달음을 이룰수 있는 것이다. 열반경에 이르기를 {一切衆生悉有佛性} 이라 하여  생명 있는 모든 것은 모두 부처의 성품을 갖고 있어 성불할 수 있다 고 선언하고 있다.

이것은 생명에 대한 대전제이다.

깨달음에 이르는데 있어서는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가능하다.

첫째, 자신의 생명을 내던질 만큼 지극하고 절실해야 한다. 이 지극하고 절심함은 계, 정, 혜를 동시에 충족시킬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계는 분심을 일으켜 절실하게 화두를 들게하며, 정은 정진력을 증장시켜 공부를 계속하게 하며, 혜는 의심하는 마음을 일으켜 화두를 타파하여 확철대오하여 깨달음에 이르게 한다. 

절실함에 대한 예를 붓다 석가의 수행시절에서 살펴볼 수 있다.

석가는 숲 속에 고요히 앉아 선정을 닦으며 하루 쌀 한  숟가락과 참깨 한 숟가락을 먹거나 또 어떤 날은 그냥 굶고 명상에 잠겨 있었다. 바람이  불거나 비가 오거나 여름이 지나고 겨울이 와도 한 자리를 뜨지 않고  계속 고행을 하였다. 그렇게 한 해 두 해가 지나자  살과 피는 다말라 버리고 몸은  종잇장 같이 되었다.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가기를 다섯 번이나 하였고, 마침 육 년째 되는 봄 날 석가는  몸이 마르고 기력이 다하여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땅에 쓰러진채 다시 일어날 수 없었다.  쓰러wu 있을 때 찾아온 우다인에게 한 말은 용수철처럼 끊임없이 튀어 오를려고 하는 인간의 영원한 귀감이다.

'우다인이여, 내  몸이 부서져 가루가 될지라도  내가 맹세한 마음은 부서지지  않을 것이오.

만일 내가 도를 이루지  못하고 죽거든 그대는 내 시체를 매고 가비라성으로 돌아가서  이 사람은 처음 먹었던 마음을  버리지 않고 끝까지 정진하던 사람이며 큰 서원을 세웠고  바른 마음 바른 뜻을 지닌 이의 시체라고 전해주오.' 하여 주위에 몰려든 마을 사람들의 눈시울을 뜨겁게 하였다.

또 지극함의 본보기로  부처님 당시 사위성에 살고 있는 가난한  여인의 빈녀일등의 얘기에서 찾아 볼 수 있다.

가난한 여인이 어느 날 성에  나갔더니 온 성이 떠들썩하여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었더니 부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석 달 동안 왕의 공양을 받고 있으며  오늘 밤에는  수 만개의 등불을 켜 연등회를 연다고 하였다. 여인도 작은 등불을 하나 만들어 수  많은 등불이 휘황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부처님 처소로 가서 부처님이 다니시는 길목에 등불을 걸어 두고 '보잘것없는 등불이지만 이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부처가 되어지이다. '하면서  지극한 마음으로 기도하였다. 밤이 깊어 모든 등불은 다 꺼졌지만  이 등불만은 밝게 빛나고 있어 아난이 아무리 껄려고 애를 써도 꺼지지 않았다. 이를 보고 부처님께서 '아난아, 부질없이 애쓰지 말아라.  그것은 비록 작은 등불이지만 마음 착한  여인의 넓고 큰서원과 정성으로 켜진 것이다.  그 여인은 이 등불의 공덕으로 다음  생에는 반드시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다.'

아난에게 이 이야기를 전해 들은 왕은 부처님께 나아가 석달  동안 공양 올리고 수 많은 보시를 했으니까 자기에게도 수기를 달라고 하였다.

'대왕이여, 깨달음에 이르는 길은 쉽고도 어려운 것이오.  그것은 하나의 보시로도 얻을 수도 있는 것이지만  수천의 보시로도 얻지 못하는  경우가 있소. 깨달음을 얻기  위해서는 백성들에게 선정을 베푸시오. 많은 사람에게 보시하고 선행을 쌓으며, 스스로 겸손하여 남을 존경해야 하오. 그러나 절대로 자기가 쌓은 공덕을 내세우거나  자랑해서는 안되오. 이와 같이 오랜세월을 닦으면 뒷날 언젠가는 부처가 될 것이오.'

이와 같이 절실하고 지극함이 없이는 깨달음에 한 발자욱도 들여 놓을 수가 없다.

장사를 하더라도 생명을 걸고 성실하게 하여야 하며, 여자가  집안 일을 할 때도 지극한 마음으로 한다면 그 속에서 깨달음의 씨앗은 저절로 싹을 틔우는 것이다.


깨달음에 들어가는 두 번째 문은 자신도 잊을 만큼 무심해야 한다. 

6바라밀을 실천함으로써 우리는 무심의 강에 이를 수 있다.

보시, 지계, 인욕, 정진, 선정, 지혜의 여섯가지 실천의 도를 의미한다.

자신을 남에게 베풀어주는  것을 보시라 하며 눈의  도적을 버리면 모든 빛의  경계를 떠나서 마음에 인색함이 없어지므로 저절로 보시가 이루어진다.

자기자신을 잘 지키는 것을 지계라 이름하며 귀의 도적을  막으면 소리의 경계에 끄달리지 않으므로 스스로 구속 속에 있으나 구속에서 자유로운 지계가 이루어진다.

자기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을 인욕이라 이름하며 코의 도적을 항복시키면  향기로운 좋은 냄새와 악취가 나는 나쁜 냄새에 균등하여 자유롭게 길들여지므로 저절로 인욕이 이루어진다.

자기자신을 향상시키는 것을 정진이라 하며 혀의 도적을  제어하면 삿된 맛을 탐내지 않으며, 읊고 강설하되 싫어하는 마음이 없으므로 저절로 정진 속에 머물게 되는 것이다.

나와 남이 하나가 되는 것을 선정이라 이름하며 몸의  도적을 항복시키면 모든 애욕에 초연하여 요동하지 않고, 물들지 않으므로 항상 선정 속에 머물게 된다.

생명의 본래면목을 깨닫는  것을 지혜라 이름하며 뜻의 도적을 조복하면  무명을 따르지 않고 항상 생각이 깨어 있어 행하는 모든 행위가 법에  맞으며, 모든 공덕을 즐겨 닦으므로 지혜의 빛이 항상 밝게 빛날 뿐이다.

이 여섯가지 중에서 단 한가지의 실천이 부족하더라도  깨달음과는 십만리나 멀어짐을 알아야한다.


이러한 실천이 원만히 다 이루어지면 깨달음에 들어가는 세 번째 문이 열리게 된다.

이 문은 자신과 우주가 하나가 되는 있는 그대로의 상태인 것이다.

깨달음이란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공명현상이다.

정신과 육신이 일체가 되는 것이며, 나와 너가 합일하는  것이며, 자신과 우주가 계합하는 현상이다.

발음체가 외부  음파에 자극되어 이와 동일한  진동수의 소리를 내는 것을  공명이라 하는데, 공명은 주파수가  딱 들어맞을 때 일어나는 현상이다. 자기자신을  내세우는 일반적인 상태에서는 자신의  주파수와 상대방의 주파수는 틀리게 마련이다. 자신을  버리고 마음을 쉬게 할 때  세상의  모든 일과 우주의 모든 현상에서 일어나는 주파수와 자신의  주파수가 확실하게 일치하여 공명현상을 일으키는 것이다.

누구나 다 자신의 주파수를 갖고 있지만 깨달음의 상태에서는 자신의 주파수가 없다.

그래서 거지가  오면 거지와 계합하고, 장사꾼이 오면   장사꾼과 계합하고, 수행자가 오면 수행자와 계합하고, 자연과 더불어 있으면 자연과 계합하고,  홀로 있을 때는 가장 철저 하게 자신과 계합하는 것이다.

진묵대사가 읊은 깨달음의 노래를 한 번 살펴보자.


나는 이제 자유 얻어

천지간을 소요하네

생사란 웬 말이며

열반 또한 무슨 말인가

알고 나면 둘 아닌데

미혹하여 헤매누나.


한 번은 조주가 스승에게 도가 무엇이냐고 묻자 남전은 이렇게 대답했다.

'평상심이 곧 도다.'

'어떤 방법으로 거기에 도달할 수 있습니까?'

'도달 하겠다고 생각하는 순간 이미 빗나간 것이다.'


도, 깨달음이란 알고 모르고의 문제를 떠난 자리이다. 존재에  대한 온몸과 마음의 공명으로 흠뻑 젖는 체험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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