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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00년 불교의 역사

3. 부처님의 교화와 승단 18. 전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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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26,686회 작성일 21-07-09 1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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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직 녹야원에 머물고 있었을 무렵 소문을 듣고 찾아와 가르침을 받아 출가하여 제자가 된 이가 60여명에 이르게 되었다. 이때 비로소 붓다는 그들에게 전도의 길을 떠나 보냄으로써 새로운 진리를 널리 세상에 펴고자 결심하였으며 “전도선언”이 이루어진 것이다. 

“비구들아, 자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말라.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적은 자도 있을 것이니 그들도 법을 듣지 못한다면 악에 떨어지고 말리라. 그대들의 설명을 들으면 법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비구들아,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장군촌으로 가리라.”

이 “전도의 선언”은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첫째 부분은 “전도정신”을 이야기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대목이다. 붓다의 출가 동기는 “중생구제”를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자신의 가장 절실한 인생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다. 최초의 설법에서도 중생구제의 문제는 언급되지 않고 있으며, 전도선언에서 비로소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라는 중생구제의 문제가 대두되었던 것이다. 일체의 제한을 넘어선 전도정신은 모든 생명에게까지 미치고 있으며, “둘이 한 길을 가지 말라”고 한 대목에서 볼 수 있듯이 전도에 대한 확신에 넘쳐 있었다. 둘째 부분은 “설법의 양상”을 제시한 대목으로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고” 또 “조리와 표현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라” “원만 무결하고 청정한 수행”을 설하라고 제자들에게 이르고 있다. 그것은 노호하고 절규하는 예언자의 고함소리도 아니었으며, 신령에 충만하여 권위 있는 듯이 말하는 종교가의 음성도 아니었다. 붓다의 음성은 고요히 이성에 호소하고 있으며 거기서 우리는 붓다의 사람됨과 성격을 다시 한번 접할 수 있는 것이다.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이 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라.”고한 예수의 전도 양상과 비교해 봄은 두 종교의 특징을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셋째 부분은 “붓다의 향후 태도”를 말씀하신 대목으로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베라의 장군촌으로 가리라.” 장군촌은 붓다가 진리를 깨친 보리수 근처의 마을이다. 우루베라로부터 바라나시까지 찾아왔던 붓다는 다시 보리수 근처 마을로 돌아가려고 하는 것이다. 생각해 보면 우루베라에는 유미죽을 바친 소녀로부터 깨닫기까지 가장 강열한 추억을 간직하고 있는 고장이다. 그런데도 그 곳에는 이 새로운 가르침의 씨가 아직 뿌려지지 않았던 것이다. 다시 그 마을로 돌아가려는 생각을 굳힌 붓다의 가장 인간다운 소박한 바램이 가슴에 와 닿는 듯하다. 이렇게 시작한 전도는 붓다의 전 생애를 통하여 계속되며, 동으로는 안가(Ainga)의 캄파(Campa), 북으로는 붓다의 고국인 카필라밧투(Kapilavatthu, 카필라성)와 코살라의 사밧티(Savatthi), 서로는 쿠루(Kuru)의 캄마사다르마(Kammassadharma), 남으로는 마가다의 가야와 밤사의 코삼비(Kosambi)에 이르고 있다. 붓다가 가장 오래 머물면서 교화한 지역은 사밧티(舍衛城, 사위성), 라자가하(王舍城, 왕사성), 베살리(바이샬리), 카필라밧투 등지였다. 마가다는 신흥종교가 많이 태동한 종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교화에 있어 가장 크게 성공을 한 곳이며, 수도 왕사성에서 붓다께 귀의한 제자들로는 우루벨라(Uruvela), 

나디(Nadi), 가섭(Kassapa), 사리불(Sariputta), 목건련(Moggallana) 및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Bimbisara)를 들 수 있다. 또 빔비사라왕이 희사한 불교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가 세워



그 당시 인도 지도 



졌다. 그외에도 의사 지바카가 희사한 지바카동산, 베살리의 암바팔리가 희사한 암바팔리동산, 코삼비의 고시라동산이 유명하다. 코살라와 카필라에서 붓다의 교화는 바라문의 강한 반대에 부딪쳐 많은 어려움을 겪었으나 급고독장자(본명 Sudatta)가 귀의하여 사밧티에 기수급고독원(기원정사)을 희사함으로써 이곳이 교화활동의 거점이 되었다. 또한 붓다의 고국인 사캬국에서도 아버지인 정반이 귀의하고, 아들 라후라, 사촌동생 난다가 귀의하였다. 양모 마하파자파티고타미의 소원이 이루어져 비구니 승가가 최초로 성립되었다. 

기원정사가 세워지기까지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오고 있다. 

불교 최초의 수행처는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이다. 그 다음 세워진 수행처가 금강경의 무대가 되고 있는 사위성의 기수급고독원(양 끝자를 따서 기원정사라고 함)이며, 부처님께서도 이 곳이 마음에 들어 45년의 교화생활 중에서 21번의 우안거를 여기서 보내셨다. 대부분의 경전들은 우안거 중에 설해졌으므로 현존하고 있는 대부분의 경전이 설해진 무대가 <기원정사>인 것이다. 지금까지도 기원정사가 만들어지기 까지의 감동적인 이야기는 널리 회자되고 있다. 수닷타는 중인도의 여러 도시를 상대로 대상을 조직하여 무역에 종사하고 있던 대 부호였다. 그는 무역 관계로 왕사성에 왔다가 죽림정사에 계시는 부처님의 소문을 듣게 되었다. 부처님을 찾아가 뵙고는 그 빛나는 모습과 거룩한 기운에 감동을 받았다. 그래서 다음 해 우안거는 사위성에서 머물러 주시기를 청하였더니 부처님께서 허락하셨다. 고향으로 돌아온 수닷타는 부처님께서 머무실 곳을 찾아 보았더니 제타 숲이 적당하였다. 제타 숲의 주인인 왕자에게 찾아가 수닷타가 아무리 사정하여도 팔려고 하지 않았다. ‘왕자님, 부디 저에게 그 숲을 양보해 주십시오. 저는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실 정사를 짓고자 합니다.’

‘장자여, 그대가 그 숲 전체를 황금으로 깔아 놓는다면 몰라도 그 숲은 넘겨 줄 수가 없소.’

이렇게 되어 수닷타는 자신의 전 재산을 털어 황금 숲을 만들었고, 지켜보고 있던 왕자도 그의 정성에 감복하여 제타 숲을 사용하는 것을 허락하였고, 수닷타는 기쁜 마음으로 정사를 지었던 것이다. 


찰나의 시간이 모여 세월을 이루고 역사가 되듯이.

붓다의 빛나는 삶은 소박하고 순수하였으며 붓다를 추종하는 제자가 모여 승가를 이루고 한 종교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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