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선불교의 탄생과 확립 43. 선의 본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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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과 교의 근원은 부처님이다. 선은 가섭에게 교는 아난에게로 그 갈래가 나누어졌다. 말 없음으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이 선이요, 말로써 말 없는데 이르는 것이 교이다.
법이라든가 도라든가 하는 궁극적인 깨달음의 세계에 도달하는데 있어서 행위라는 언어를 사용하느냐, 일상 사용하고 있는 말이라는 언어를 사용하느냐 하는 차이점인 것이다. 어떤 것을 매체로 하든지 간에 마지막 목적은 체험으로 이루어진다. 서울로 가는 방법을 가르치면서서울의 모습을 말로써 설명하여 이해시키는 것이 아니라 직접 서울에 도착하여 서울 하늘을 쳐다보고 서울 공기를 마시면서 서울을 체험하는 것이 법이나 도가 궁극적으로 도달해야 할목적지인 것이다.
부처님께서 45 년 동안 8만 4천 법문을 설하였지만 결국 마지막에 가서는 '나는 한 마디도 설하지 않았노라'고 한 그 말에서 우리는 교외별전의 원류를 찾을 수 있다.
붓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제자들과 둘러 앉아 설법을 하고 있다가 돌연 꽃 한송이를 들어 올렸다. 모든 제자들은 갑작스러운 석가의 태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몰라 그냥 묵묵히 쳐다보고 있는데 한쪽 옆에 앉아 있던 가섭만이 빙그레 미소를 짓는다.
이것을 석가가 가섭에게 마음법을 전한 것으로 <영산회상 염화미소(靈山會上 占花微笑)>라고 이름한다.
한 번은 붓다 석가가 제자들과 함께 수행하면서 전도하기 위하여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고 있었다. 저녁 노을이 아름답게 번지고 있을 때 비야리성에 있는 다자탑에 이르렀다. 붓다가 제자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벗들이여, 우리들은 먼 길을 걸어왔다. 여기서 잠깐 쉬어도 좋으리라. 모두 편안한 곳에 자유롭게 앉아 마음과 육신을 푹 쉬도록 하자.'
그러면서 붓다는 다자탑 앞에 놓여 있는 큰 돌 위에 걸터 앉았다. 다른 제자들도 끼리끼리편안한 곳을 찾아 앉았다. 제일 마지막까지 서 있던 가섭이 붓다 앞으로 걸어 갔다. 그러자붓다가 앉아 있던 자리를 한쪽으로 옮기면서 반 쪽을 가섭에게 내 주었다. 가섭이 거기에 앉자 붓다는 빙그레 미소를 지었다.
이것을 붓다가 가섭에게 마음법을 전한 것으로 우리는 <다자탑전 반분좌(多子塔前 半分座)>라고 이름한다.
붓다 석가는 80이 넘는 고령임에도 불구하고 제자들과 유행(수행을 목적으로 전도도하면서 여러 지방을 돌아다니는 것)을 계속하고 있었다. 왕사성에서 마지막 전도의 길을 떠난 붓다는 갠지즈강 건너 북쪽에 있는 베사리 마을 근처에 있는 죽림촌에서 우안거(비가 많이 오는 장마철에는 돌아다니면서 수행하는 것을 멈추고 일정 기간 동안 한 곳에 머물면서 수행하는 것)를 맞았다. 무서운 장마와 습기 때문에 노쇠한 육신은 혹독한 고통을 맞보아야 했다. 우안거가 끝나고 다시 북상하면서 유행을 시작하였다.
며칠 후 춘다가 올린 공양을 받고 병이 심해져서 마지막 유행을 구시나가라성 밖 발제하언덕에 있는 사라쌍수 숲에서 멈추었다. 이 세상에 머물 인연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아시고 제자들에게 조그마한 의문이라도 있으면 지금 물으라고 하였다. 조용하면서도 엄숙한 분위기에 아무도 말이 없자 붓다가 말했다.
'벗들이여, 모든 현상은 끊임없이 변한다.
게으름 없이 정진하여라.'
하시면서 조용히 열반(모든 애욕과 일체의 번뇌에서 벗어난 깨달은 사람의 죽음)에 드시었다.
인도 전역에 포교전도를 떠나 있던 제자들이 부처님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사라쌍수 숲으로 모여 들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지 일주일 후에 가섭이 도착하였다. 가섭이 관 앞에 꿇어앉자 부처님께서 관 밖으로 한 발을 내 놓으셨다.
이것을 이름하여 <사라쌍수 유관족출(沙羅雙樹 遺官足出)>이라 이름한다.
이것을 기리켜 붓다가 말없는 마음법을 가섭에게 전한 삼처전심이라 하고 선불교 마음법의 기원이 된다.
인도에서 중국으로 건너가 중국에 선불교의 불꽃을 피운 이는 달마이다. 달마가 전한 마음법이 후대 많은 선사들에 의하여 다음 네 귀절의 시로 부처되는 길을 집약시켰다.
경전 밖에서 따로 전하여 敎外別傳
말이나 문자에 의존하지 않고 不立文字
사람의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直指人心
본성을 꿰뚫고 부처를 이룬다. 見性成佛
이 사구게는 달마 이후 혜능을 거치면서 깨달음에 이르는 보편적인 방법으로 확립되었다.
부처님 당시에는 마음이 일으키는 구체적인 상태를 표현하였으며, 여덟 가지의 바른 실천도를 행함으로써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를 직시하여 욕심내는 마음, 화내는 마음, 어리석은 마음으로부터 벗어나 맑고, 깨끗하고 자유로운 진리의 세계인 열반적정(涅槃寂靜)의 세계로 유도하였다.
그러던 것이 지역성과 시대성을 거치면서 선불교에서는 사람의 마음을 똑바로 가리켜 본성을 꿰뚫고 부처가 된다는 마음의 본래 성품인 본성을 본다는 것이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시대에 따라 다르게 표현되지만 진리 자체는 변할 수 없는 것이다. 석가시절의 부처와 선불교 시대의 부처가 다르지 않으며 앞으로 몇 천년이 흐른다 할지라도 부처는 변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시대에 따라 부처를 표현하는 방법은 다를 수 있으며, 부처를 이루는 방법도 다양하게 달라질 수는 있는 것이다.
선이란 산스크리트의 dhyana를 음사하여 “선나”라 하고 다시 생략하여 “선”이라고 한 것으로 의역하면 “정” 또는 “정려”가 된다. 그것은 대개 않아서 하는 수행인 까닭에 “좌선”이라고 이른다. 거슬러 올라가 보면 붓다가 보리수 아래서 단좌명산한 것도 이 선이라 할 수 있고 또 요가 수트라에 설해진 요가의 수행법에도 그 좌법과 정려의 방식이 나타나 있다. 좌선이란 수행방법을 인도 여러 상상에서의 공통된 실천론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좌선 자체는 결코 선종 특유의 것이 아니며 중국불교에 있어서도 전래 초기부터 좌선이 행해지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면 선종이 홀로 좌선을 표방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그들의 생활 전체가 “지관타좌”로 일관된 철두철미한 “앉아 있을 뿐이다”는 명제로 이어지기 때문이며 그들에 이르러 좌선이 단순한 방법론으로부터 벗어나 완전히 하나의 독립된 종교로서의 지위를 확보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선종에서의 좌선은 일찍이 볼 수 없었던 수행의 방법으로써 달마의 면벽 9년과 그 후 많은 선사들의 평생 동안 두문불출하고 참선 수행한 데서 근거를 찾아 볼 수 있다.
봄에는 온갖 꽃들, 가을엔 달이 좋고
여름이라 시원한 바람, 겨울엔 눈이 있네.
세사에 마음 안쓰면 어느 때나 호시절!
이렇게 표현된 이면에는 그들 자신의 자질에 깊이 뿌리박은 사고 방식이 도사리고 있어서 새로운 불교를 열었던 것이다. “언어도단”“불립문자”로 표현되는 선종의 특징은 구상적 직관주의다. 중국인들의 강력한 직관적 경향은 그들의 불교 수용의 전 역사를 통하여 역력히 나타나 있으며 그들은 일찍부터 공 사상에 큰 관심을 보인 것이다.
중국인들의 구상적인 직관주의가 선불교에 끼친 최대의 업적은 “공”을 구체화시킨 “공안(화두)의 탄생”에 있다. 대승불교에서의 “공 사상”을 구체적인 관조에 의해서 “공의 세계”를 직접 체험하게 하였으며, “평상심이 도”라는 선의 보편성과 생활화를 동시에 이루었으며, 일상생활을 선으로 승화시켰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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