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를 죽인 바라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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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떤 바라문이 스스로 많은 것을 안다고 잘난 체하였습니다.
별자리, 태양계 등 우주의 이치를 알 뿐만 아니라 온갖 재주와 예술까지도 통달했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예언할 수 있다고 떠벌리고 다녔습니다.
하루는 재주를 뽐내고 싶어서 이웃나라에 가서 한 아이를 끌어안고 울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자네는 왜 우는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이 아이는 앞으로 칠일 안에 죽을 것이오. 그래서 너무나 가여워 울고 있는 것이라오.”
이 말을 듣고 주위에 있는 사람들은 말했습니다.
“사람의 명이란 참으로 알기 어려운 일이라오. 칠일 안에 죽지 않을지도 모르는데 왜 미리 우는가?”
그는 대답했습니다.
“해와 달이 없어지고 별들이 떨어지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내 예언은 틀림이 없을 것이오.”
칠일 째 되는 날, 그는 자기의 명예와 이익을 지키기 위해 그 아이를 죽여 그의 예언을 실증시켰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칠일 뒤에 그 아이가 죽었다는 소문을 듣고
“참으로 슬기로운 사람이야. 그 예언이 딱 들어맞았는걸.”
하면서 모여 들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물을 바치고 옷과 음식도 올렸습니다.
이는 부처님의 제자들이 이익만을 위하여 세상 지식만을 가지고 도를 얻었다고 자칭하면서 거짓으로 자비의 덕을 드러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로 인하여 장래에 한량없는 괴로움을 받게 되니 마치 바라문이 자기 말을 입증시키기 위하여 아이를 죽여 세상 사람들의 눈을 속이는 것과 조금도 다름이 없다 하겠습니다.
♧♧♧
모르면서 아는 체하는 것도 큰 죄입니다.
순간적으로는 속일 수 있지만 영원하지는 못합니다. 거짓은 언젠가는 드러나기 마련입니다. 순간을 편안하고 잘 지내기 위해 영원을 버리는 어리석은 사람이 되지 맙시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혹은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심판은 그 사람이 이룩한 부, 명예, 권력으로 당장 평가 되는 것이 아니라, 이 생에서 지은 업만큼 다음 생에 그에 상응하는 육신을 받는 것으로 내려지는 것입니다.
우리 속담에 ‘열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 는 말이 있습니다.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심판은 자신의 생활과 직결되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을 속일 수 있어도 인과는 속일 수 없습니다. 세월이 흐르면 행한 대로 과보가 나타나게 됩니다.
모른다는 것과 없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것입니다.
옛날 우리가 서양을 몰랐다고 해서 서양이 없었던 것입니까? 아니지요. 전생이내 내생에 관한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를 때는 선각자의 이야기를 순순히 믿을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필요합니다.
이것은 자신을 풍요롭게 하는 마음의 여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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