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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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에 아들 일곱 명을 둔 사람이 있었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큰 아들이 병을 앓다가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그는 죽은 아들을 집에 그대로 둔 채 장사 지내려 하지 않았습니다.
곁에 있던 사람이 그에게 물었습니다.
“살고 죽는 길이 다른 법이라네. 빨리 상여를 꾸며 먼 곳에 보내어 장사 지내는 것이 마땅하거늘 어째서 두고만 있는가?”
이 말을 들은 그는 혼자 가만히 생각했습니다.
‘만약 집에 두지 않고 꼭 장례를 치루어야 한다면 아들 하나를 더 죽여 두 머리를 메고 가는 것이 보다 운치 있는 일일 것이다.’
그리고는 곧 아들 하나를 더 죽여 두 아들의 머리를 메고 먼 숲속에 가서 장사를 지냈습니다.
그러자 이웃사람들은 이제까지 없었던 괴이한 일이라 수군거리며 그를 비웃었습니다.
어떤 공부하는 비구가 남몰래 한 가지 계율을 범하고도 잠자코 덮어둔 채 스스로 자기는 청정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다른 사람이 그것을 알고 그에게 말했습니다.
“출가한 사람은 계율을 지키되 진주를 보호하듯이 어긋남이 없게 해야 하거늘, 그대는 왜 계율을 범하고도 뉘우치려 하지 않는가?”
그러자 그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어차피 저지른 일이니 참회할 바에야 여러 번 더 범한 뒤에 하리라.”
그리고는 거리낌 없이 계율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
‘바늘 도둑이 소도둑 된다.’ 는 속담이 있습니다.
조그마한 잘못을 저질렀을 때 뉘우치고 손을 뗀다면 문제될 것이 없지만, 조그마한 잘못을 저질러 놓고 뉘우침 없이 계속 잘못을 저지른다면 조그마한 눈덩이가 굴러 큰 눈덩이가 되듯이 죄는 엄청나게 커져 다음 생에까지 그 과보를 받게 됩니다.
우리 몸에 베어있는 습이라는 것은 큰 암적 존재입니다. 이 습에서 자유롭기 위하여 어려움을 참고 견디면서 수행의 길을 걷고 있는 것입니다.
촛불에 초가 녹아내리듯 한 곳을 향한 지극한 마음은 우리가 갖고 있는 잘못된 습들을 녹여내어 바른 삶의 모습으로 우리를 빚어냅니다.
병아리가 껍질을 깨고 세상에 나오듯이 갖추어져 있는 기존의 틀을 깨고 뛰어넘는다는 것은 쉬운 것 같지만 어려운 작업입니다.
갖고 있는 모든 기득권을 포기하고 수행의 길을 걷는 신부나 승려는 그 길을 걷겠다는 발심만으로도 자신의 삶을 위대하게 하는 것입니다.
지혜로운 자는 세상의 온갖 굴레, 부, 명예를 깨뜨리고 진리의 길을 당당하게 찾아가는 것을 즐거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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