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귀의 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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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변방에 사는 사람들은 나귀를 알지 못하였습니다.
다만 다른 사람이 ‘나귀의 젖은 매우 맛이 좋다.’ 라고 하는 말만 들어 알고 있을 뿐이었습니다.
하루는 마을 촌장이 먼 지방에 갔다가 숫나귀 한 마리를 얻어왔습니다. 마을에 나귀가 생겼다는 소문이 퍼져 나귀젖을 맛보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사람들은 함께 나귀젖을 짜서 잔치를 벌이기로 하였습니다. 젖을 짜려고 어떤 사람은 머리를 붙잡고 어떤 사람은 귀를 붙잡고 어떤 사람은 꼬리를 붙잡고 어떤 이는 다리를 붙잡았습니다.
그때 어떤 이가 나귀의 생식기를 붙잡고 소리쳤습니다.
“야! 이것이 젖이다.”
“어디?”
“야! 맞다. 젖이다.”
“자! 빨리빨리 짜라구.”
그들은 매우 좋아하면서 생식기를 짰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짜도 젖은 한 방울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지쳤습니다.
이를 본 어떤 슬기로운 사람이 말했습니다.
“어리석은 사람아! 숫나귀를 가지고 어떻게 젖을 짜나? 생식기를 짠다고 젖이 나올 리가 있겠나.”
♧♧♧
마조 도일(709-788)은 한주 시방현 출신으로 스님이 된 후 남악산 전법원에서 홀로 참선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젊은 승려가 밤낮을 가리지 않고 정진하다는 소문이 남악 회양의 귀에 까지 들어갔습니다.
하루는 회양이 젊은 승려가 수행하고 있는 그 암자에 들렀습니다. 회양이 암자에 도착하여 몇 시간 동안 지켜보고 있었지만 좌선을 하고 있었습니다. 저녁때가 되어서야 변소에 가려고 일어났습니다.
회양이 먼저 물었습니다.
“젊은 수좌여! 무엇이 되려고 그렇게 열심히 좌선을 하는가?”
“오직 한 가지, 부처가 되기 위해서 좌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회양은 벽돌 하나를 집어다가 바위에 갈기 시작했습니다. 한참 지켜본 마조는 궁금하여 벽돌을 갈고 있는 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 벽돌을 갈아서 무엇에 쓰려고 하십니까?”
“거울을 만들려고 하네.”
그러자 마조가 웃으면서 말했습니다.
“스님 벽돌을 아무리 잘 간다고 하여도 거울이 되겠습니까?”
그러자 회양은 정색하면서 말했습니다.
“벽돌을 갈아서 거울을 만들지 못하듯이 좌선만 한다고 해서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유마경>에 보면 유마거사와 부처님의 제자 사리불이 대화하는 장면이 있습니다.
‘아! 사리불, 앉아 있는 것만이 좌선이 아니다. 대체 좌선이란 생사를 거듭하는 미혹의 세계에 있으면서도 몸이나 마음의 작용을 나타내지 않을 때 이것을 좌선이라 하는 것이다. 또 깨달음의 길을 걸으면서도 세속적인 일상생활을 보내는 것이 좌선이며, 마음이 안에 갇히어 정적에 잠기는 것도 아니고 밖을 향해 어지러워지지도 않는 것이 좌선이며, 많은 그릇된 생각을 그대로 지닌 채 수도를 행하는 것이 좌선이며, 번뇌를 끊지 않은 채 궁극적인 깨달음에 들어가는 것이 좌선이다.’
우리주위에는 너무나도 많은 일들이 형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근본정신을 잊어버리고 형식의 노예가 되어 있지 않나 한번 돌이켜 봅시다.
우리의 삶은 새 생명이 탄생하듯이 나날이 새롭게 태어나야 할 과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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