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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선의 불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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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6,974회 작성일 21-07-09 18: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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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의 현주소


                                                  김 성규(영남대)



지난 해 가뭄 때문에 온 나라가 절수를 하면서 비가 오기를 기원을 하면서 물의 귀중함을 우리들로 하여금 뼈저리게 느끼게 하였다. 

지구도 나름대로 살아남기 위해 폭설과 홍수, 지진과 화산 폭발등 이상 기후와 자연재해로 자신의 아픈 부분을 치유하기 위하여 몸부림을 쳤다. 해가 바뀌고 새봄이 오니 그래도 메마른 대지 위에서는 예년과 다름없이 새싹이 돋아나고 벗꽃, 진달래꽃이 만발한 화사한 봄기운을 보면 우주  존재의 신비로움에 저절로 숙연해진다. 


유교와 도교는 중국에서 싹을 틔워 중국 땅에 깊이 뿌리를 내린 2대 사상이다.

유교는 중국인들의  정치철학의 근거를 제공하였으며, 도교는  삶의 근본문제와 깊이 연관을 가지면서 종교적인 근거를 제공하였다. A.D. 64년에 처음으로 중국에 전래된 불교는 500여년이 지난 수나라 때에는 민간에서부터 궁중에 까지 깊이 침투하여 들어갔으며, 당나라 때에는 현장(600 - 664)이  불법을 구하고자 17년 동안  서역을 순례하였으며, 구법기록이 <대당서역기>로 전하고 있다. 돌아와 중국어로 번역한 불경이 1340권이나 되며 대표적인 것으로는 <유가사지론>, <성유식론>, <대반야경>등이 있다. 이러한 활약에 힘 입어 교종의 최전성기를 맞으면서 도교의 견제 세력이 되었다.

고조 무덕 4년 621년 도교의 도사 부혁은 <사탑승니사태 11조>를 지어 승려들이 나라의 발전을 위하여 아무런 쓸모가 없다고 주장하며 나라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서는 도교를 믿어야 한다고 상소하였다.  이것에 대하여 법림은 622년에  <파사론>을, 명개는 <결대론>을 저술하여 부혁의 주장에 반박하였다.

다시 도교에서는 이 충경이 <십이구미론>을, 유 진희가 <현정론>를 지어 불교를 공격하였다.

제 1종교의 위치  다툼을 위한 당나라 초기부터 시작된 수십  년에 걸친 불교와 도교의 열띤 토론은 불교의 단순한 신앙에 의한 중국화를 극복하는 계기가 되었다.

불교는 신앙적으로 도교에 큰 영향을 미쳐 도교를 종교로 정립되게 하였으며, 도교는 불교를 철저하게 중국화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당나라 중기로 접어들면서 이러한 복합적이며  중국화 된 불교의 흐름을 중국 전역으로 확산시키는 활화산 역할을 선불교가 하게 된다.

달마에 의한 선불교가 태동하게 되는 500년 - 600년 경의 역사적 상황을 살펴보면 우리는 또 한번 역사적 필연성과 회귀의 원리와 만나게 된다.

불교가 중국에 전래된 후 약  500년이 지난 500년 경에는 교종의 전성시대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무렵 사원경제는 제왕과 귀족에 버금가는 엄청난 부를 누리고 있었다.

남북조시대 북위에서 477년 경에  발표한 사찰의 수는 6,478개, 승려의 수는 77,258명이었는데 30년 후 선 무제시대에는 사찰의 수가 13,727개, 승려와 대중의 수는 2백만으로 기록되어 있다.

일체의 생산 활동에 종사하지 않았던 이 많은 승려와 대중들의 생활에는 많은 비용이 들었으며, 사찰의 수리라든가 새로운 사찰을 건립하는데는 국가의 지출이 막대하였다. 결국 이러한 사원경제의 확대에 의한 사찰의  호화스러움과 승려들의 사치는 국가경제의 파탄을 초래하게 되고 845년 당  무종에 의한 불교탄압의 칙령으로  중국불교의 최대의 수난기를 맞이하게 된다.

이때 전국적으로 4,600개의 사찰이  패쇄되었으며 4만이 넘는 불당이 파괴되었다. 그리고 26만 명의 승려가  강제 환속을 당하였으며 16만 명의  절의 머슴들이 국가에 강제로 귀속당했다. 불교탄압에 항거한 정영사 혜원은 평생을 수행으로 일관하면서 폐불 다음에 반드시 올 불교의 부흥에 대비하고 있었다.   

이러한 역사적 상황은 새로운 불교의 출현을 필연적으로 유도하게 하였으며, 처음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었을 당시의 그 순수함으로  되돌아 갈려고 하는 회귀의 본능이 중국화된 선불교라는 이름으로 달마로부터 철저하게 물질적인 면을 부정하면서 출발하게 된다.


권력에 의한 폐불은 세월이 지나 권력이 바뀌면 언젠가는 새롭게 태어날 수 있지만 인간의 마음 속에서 폐불이 행해지고 나면 세세생생을 흐른다 해도 새로운 불씨를 틔우지 못한다. 

수행자들이여! 불자들이여!

우리들의 생각과 행위들이 폐불을 행하고 있는지 어떤지 부처님이 태어나신 4월을 맞이하여 한번 되돌아보자. 

이 땅에 불교가 다시 태어나는 유일한 길은 혜원과 같은 수행에 의해서만이 가능한 것임을 깊이 인식하자. 




인도의 왕자로 태어나 불세출의 재능을  가졌으며 세속의 어느 것에도 만족하지 못하고 출가하여 승려가 된 달마는 527년 중국 남쪽 지방에 도착하였다. 곧 바로 양 무제의 초청을 받아 수도인 남경으로 들어갔다.

독실한 불교신자였던 왕은 달마를 만나자마자 대뜸 물었다.

'왕이 된 이래 나는 많은 절을 지었고 숱한 경전을 펴냈으며 수많은 승려를 먹여 살렸다. 이모든 일이 얼마나 큰 공덕이 되겠는가?'

달마는 주저함없이 대답했다.

'전혀 공덕이 안된다.'

황제는 이 인도 승려의 뜻하지 않은 대답에 놀라 다시 물었다.

'어째서 공덕이 안 된다는 것인가?'

'그러한 것들은 모두 속세의 인과응보에 불과할 뿐 진정한 공덕이 아니다. 마치 물건의 그림자나 마찬가지여서 있는 것 같으나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정한 공덕이란 말인가?'

'진정한 공덕이란 밝고  맑은 지혜를 깨쳐 아는 것인데 이러한  지혜는 본래 말로 표현할 수없는 것이며 말 없는 가운데 있는 것이다.'

황제는 계속 물었다.

'불교의 성스러운 교리 가운데 첫째 가는 것이 무엇인가?'

'전혀 성스러운 것이 없다.'

화가 난 황제는 언성을 높여 말했다.

'내 앞에 있는 당신은 대체 누구요?'

'나도 내가 누군지 모른다.'

달마는 이와같이 대답하고는 떠나 버렸다.

가장 어두운 새벽은 밝고 새로운 세계의 태동을 예고하고 있다.

선불교 초조 달마로부터 2조 혜가, 3조 승찬, 4조 도신, 5조 홍인에 이르는 100년 동안은 선불교의 확립을 위한 준비작업이 이루어졌으며, 6조 혜능으로부터 약 200년 동안은 선의 황금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유럽에서는  교권에 대립하여 서서히 왕권이 강화되어 절대왕조의 기틀을 잡았던 시기였고, 중국에서는 당, 송 교체기로서 최대의 불교탄압을 맞았던 시기이기도하였다. 이러한  사상의 암흑기로 접어드는 길목에서  유일하게 사상의 황금시대를 선불교는 창출하고 있었다.

혜능은 청원 행사와 남악 회양등 뛰어난 선승들을 배출하였으며, 청원 밑에서는 석두 희천이 나오고 남악 밑에서는 마조 도일이  나옴으로서 중국 불교의 흐름을 교종에서 선종 중심으로 바꾸어 놓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백장 회해에 이르러 <백장청규>가 제정되어 선종 자체의 규범이 제정되어 떠돌이 수행생활에서 정착된 수행생활로 전환시킴으로서 수행에 대한 일대 혁명을 이룩하였다.

이 규범의 공포는 중국불교를 선종 중심의 불교로 바꾸는 역사적 필연성의 중추적 역할을 하게 된다.

그후 남전 보원에서  조주 종심이 나와 선의 꽃을  피웠으며, 이와 함께 위산 영우(위앙종), 동산 양개(조동종), 임제 의현(임제종), 운문 문언(운문종), 법안 문익(법안종)에 의한 선종 5종이 탄생하여 선의 숲을 이루게 되었다.

위앙종과 임제종과 조동종의 성립시기는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국운이 기울어지기 시작하여 안록산과 사사명의 난을 불러켰던 정치, 사회, 경제적인 격동기 무렵이었다.

이 시대의 선불교는 무인과 절도사 세력의 대두등으로 균전제가 붕괴되고 신흥귀족계급의 지지를 받으며 남중국의 여러 지방에 침투하여 엄청난 발전을 이룩하였다.

이 당시 선불교의 영향으로 중국이  낳은 최대의 자연시인 왕유와 이백등이 활약한 때이기도하다.

875년에 황소의 난이 일어나 나라는  대혼란에 빠져들고 마침내 907년 주전충에 의하여 당은 멸망하고 5호16국의 새로운 춘주전국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이러한 정치적인 혼란기에 운문종과 법안종이  태어나 다시 한번 선의 불꽃을 더욱 활발하게 타오르게 하였다.


우리가 떠날려고 하는 마음여행은 쉬운것 같으면서도 도무지 분명한 것이 없다. 이러한 마음을 찾아 떠나는 여행은 항상 예기치 못한 사건들이 복병처럼 우리들을 기다리고 있다. 또 마음을 표현해야될 때  어떻게 해야될지몰라 당황하게 된다.  그러나 이 마음을 바로 표현하지않고서는 선이라는 바다로 나아갈 수가 없다. 바로 마음이 선을 여는 열쇠이기 때문이다. 선의 궁극적인 목적은 참본성을 보고  부처가 되는 것이다. 마음에서 일어나는 작용을 통해 마음이라는 것을 표현하는데, 이 마음의  작용을 거치지 않고 바로 마음이 머물고 있는 고향을보아야 한다. 철석거리는 파도에 얽매이지  않고 깊숙한 곳에 조용히 있는 바다의 본래 모습을 꿰뚫어 보는 것과 같은 것이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갖고 있는 고정관념이나 생각에서 자유로워야 한다.

어떤 대학자가 선사를 찾아가 선의  진수인 화두에 대하여 물었다. 그러자 선사는 아무 말없이 차를 내왔다. 그는 차잔에  차가 가득 찼는데도 따르기를 계속했다. 옆에서 보고 있던 학자가 말했다.

'스님, 차가 넘칩니다. 그만 따르시지요.'

그러자 선사가 말했다.

'그대가 바로 이 잔처럼 안에는  자신의 생각으로 꽉 채워져 있소. 우선 자신의 생각을 비우지 않는한 내 어떻게 그대와 함께 화두여행을 떠날 수 있겠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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