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1강 18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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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18계를 공부할 차례입니다. 나가 존재한다 했을 때 나란 것을 이루고 있는 것은 6근이고, 6근의 대상이 되는 6경과 6근이 만나서 6식을 만들어 냅니다. 12처에 6식을 더하여 18계가 됩니다.
18계는 12처와 연계되기 때문에 지난 시간에 공부한 6식으로 다시 들어가겠습니다. 존재에 대한 기본적인 개념의 이해는 나로부터 출발했습니다. 이 세상을 다 부정해도 나는 있다 했을 때 따지고 보니 나란 것을 인식할 수 있고 인식하는 능력체인 6근이 있습니다.
인식 능력체 육근
안이비설신의 여섯 개입니다. 우리 몸뚱이에는 대상의 형상을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다.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코는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혀는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으로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의로써 생각을 일으킬 수 있고 판단할 수 있습니다. 여섯 가지 능력체가 바로 6근, 즉 안이비설신의 입니다.
눈이 있으므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눈은 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보는 능력, 형상화 하는 능력밖에 없습니다. 그 외 소리도 있고 맛도 있지만, 눈은 색, 형상을 볼 수 있고 모양을 볼 수 있습니다. 색성향미촉법의 6경은 6근이 인식할 수 있는 필연적인 반응의 대상입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대상이 있고 귀로써 들을 수 있는 소리가 있고 코로 냄새를 맛을 수 있는 향기가 있고, 혀로써 맛을 느낄 수 있는 맛이 있고, 몸으로써 느낄 수 있는 촉감이 있었고 뜻으로 느낄 수 있는 법이 있었습니다.
필연적 반응의 대상 6경
6근과 6경의 기본적인 속성을 따져보니, 6근은 의지적 속성이 있고 6경은 필연적인 반응의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육식 (그림)
안이비설신의의 안, 즉 눈으로 보는 식이 발생합니다. 봄으로써 형상화 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것을 안식이라 합니다. 안과 색이 부딪쳐서 보이는 내용을 안식이라 합니다. 눈을 통하여 보는 정신적인 작용이 바로 안식이고 눈에서 말할 때 보는 작용이라 합니다. 몸뚱이와 대상이 부딪칠 때 식이 비로소 발생합니다. 눈을 통해서 대상을 봄으로써 보는 작용에 의해서 생기는 인식이 바로 안식입니다.
귀는 소리를 들을 수 있으므로써 들리는 작용을 이식이라 합니다. 들리는 작용은 바로 귀를 통해서 듣는 정식적인 작용으로 소리가 귀에 부딪쳐서 들을 수 있습니다. 귀로써 소리를 듣는 작용을 이식이라 합니다. 귀머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코로써 냄새를 맡는 작용을 비식이라 하고 이 비식은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는 정신적인 작용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보고 형상화된 대상을 봅니다. 귀로써 소리를 듣습니다. 코로써 냄새를 맡는 작용을 합니다. 혀를 통해서 맛을 느끼는 작용은 설식이라 합니다. 몸을 통해서 촉감을 느끼는 정신적인 작용은 신식입니다. 내가 눈을 통해서 대상을 볼 뿐 분별하고 판단하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래서 눈을 통해서 보는 작용이며 귀로 소리를 듣는 작용입니다. 코를 통해서 냄새를 맡는 작용입니다. 혀를 통해서 맛을 느끼는 작용이며 몸을 통해서 느끼는 작용입니다. 그런데 이 ‘의’에 의한 의식으로 모든 것이 다 통섭됩니다. 예를 들어 눈을 통해서 대상을 봄으로써 아 저것이 아름답구나, 예쁘구나, 그림을 보고 잘 그렸구나, 판단하는 능력이 생깁니다. 눈은 대상을 볼 뿐 의와 결합할 때만 의식에서 판단합니다. 그러니까 눈으로 보는 작용, 귀로는 소리를 듣는 작용, 코로 냄새 맡는 작용, 혀로 맛을 느끼는 작용, 몸은 촉감으로 느끼는 작용은 의식으로 통섭이 됩니다. 의식에 의해서 모든 것이 판단됩니다. 그래서 6근과 6경이 부딪쳐 분별 판단작용의 인식작용인 6식이 생깁니다. 불교 공부의 모든 것은 의식에 대한 연구입니다.
번뇌의 뿌리 108번뇌
불교에서는 108번뇌 혹은 팔만사천 번뇌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합니다. 부처님의 법문을 팔만사천 가지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로 이것에서 연유됩니다. 우리의 번뇌가 팔만사천 가지이기 때문에 팔만대장경이 만들어집니다. 기본적으로 6근과 6경이 부딪쳐서 6식이 만들어지고 18계가 생깁니다. 그래서 108번뇌가 무엇인지를 알게 됩니다. 우리가 절 할 때 염주 108알을 돌리지요. 기본이 되는 108번뇌는 어디에서 근본이 되는지를 알게 됩니다. 6근과 6경이 부딪치는 작용에서 좋다 혹은 나쁘다의 느낌이 일어납니다. 6근과 6경이 부딪치는 이 경계에서는 좋구나 나쁘구나 하는 호오好惡가 생깁니다. 6근과 6경에 부딪치면 6식이 생긴다고 했습니다. 이 6식을 판단할 때 고통이다, 이것은 즐거움이다, 고통도 아니고 즐거움도 아니다, 하는 3가지 의식이 생깁니다. 판단능력이 생깁니다.
그러면 이것이 부딪쳐 느낌이 2개, 이것이 부딪쳐 식이 3개가 곱해져서 6개가 생깁니다. 안이비설신의의 6식이 여섯 가지로 작용하니까 6 곱하기 6을 하여 36개의 식이 나타납니다. 이 36개의 식이 과거 현재, 미래를 곱하여 총 108번뇌가 생깁니다. 6근과 6경과 6식이 작용해서 일으킬 수 있는 가장 기본적인 번뇌가 108번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108염주를 만들고 108참회를 하고 108배를 합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나누어져서 팔만사천 가지가 됩니다. 팔만사천 가지 번뇌로 팔만사천 법문이 됩니다.
불교의 세계관에서 보면 우주의 중심에는 수미산이 있습니다. 그 수미산의 높이가 팔만사천입니다. 실질적으로 기본인 108번뇌가 가지가지 나누어져서 팔만사천 번뇌가 됩니다.
심의식에 대한 정의
불교는 마음의 종교라고 합니다. 여기서 마음은 심이고 6근에서 나오는 의하고 6식에서 식이 있습니다. 이제 18계를 배웠기 때문에 심과 의와 식을 공부할 수 있습니다. 경전을 볼 때마다 나오는 심이 무엇인지 의가 무엇인지 식이 무엇인지 식별하기가 어렵습니다. 내용들이 비슷비슷해서 경전에서도 심과 의와 식의 구분이 명확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생각하므로 일으키는 일체법이 다 마음입니다. 방향성이 없이 일어나는 현상을 일반적으로 내 마음이라 합니다. 예를 들어 법당에 있는 부처님을 보고 우리들이 똑같이 느낍니까? 전부 다 다르게 느낍니다. 식이라는 것은 어떠한 상황이든지 똑같게 느끼는 것은 없습니다. 똑같은 상황, 똑같은 말을 들어도 내 머릿속에 들어와서 판단하는 것은 다 다릅니다. 길을 가다가 무궁화꽃을 보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어릴 때의 일을 기억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어떤 사건을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람은 무궁화꽃은 냄새가 있는가 없는가 아니면, 아! 참으로 아름답구나 하는 생각을 하듯이 보는 사람 모두가 다르게 인식합니다. 이것이 식의 가장 기본적인 속성입니다. 식은 어떤 것이든지 똑같이 인식하는 법이 없습니다. 일어나는 사건들이 항상 다르게 인식되는 것이 식의 속성이고 본질입니다. 식을 마음과 생각해 볼 때 일어나는 모든 의식이 바로 식입니다. 마음은 우리가 일으킬 수 있는 일체의 법이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물이 흘러 모여드는 바다와 같고, 식은 물이 흘러 바다에 이르는 물줄기와 같은 것입니다.
우리 마음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는 것이 인식이며 바로 의입니다. 참선할 때 이 마음을 한군데로 끌어모으지요. 바로 의의 작용이고 의에 의해서 공부가 성숙되고 집중되는 것입니다.
18계의 체계
모든 것을 한 군데로 끌어모으는 작용자체는 수만 가지 입니다. 번뇌를 한곳으로 끌어모으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처되게 만드는 것이 바로 ‘의’의 작용에서 제대로 인식하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공부하겠다고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는 것도 일상생활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에 적용됩니다. 생각을 정하고 한쪽 방향으로 나아가면 의가 제대로 되며 마음과 식을 모두 알게 됩니다. 내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산란한 일체법이라도 모든 식은 어느 누구에게나 그대로 존재할 뿐입니다. 이것을 조절하는 것이 결국 의의 작용입니다.
육육법연기와 오온연기
18계는 불교공부의 기초가 됩니다. 6근과 6경이 부딪쳐서 6식이 생기고 6식이 작용하여 6촉이 생기고 6촉은 부딪쳐서 6수를 낳고 6수에서 6애가 생기게 됩니다. 이것이 곧 육육법연기입니다.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일어나는 우리의 인식작용입니다.
그 다음에 색수성향식이라 하는 오온이 있습니다. 이 오온은 바로 공간적연기입니다. 시간적연기와 공간적연기를 알면 연기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됩니다. 부처님께서 불교를 12처다 라고 했을 때 12처의 기본적인 속성은 삼법인입니다. 무아와 무상과 고입니다. 삼법인이 근본인 6근과 6경이 12처가 되고 무상이고 무아이기 때문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무상이고 무아일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6식이 생겼습니다. 식의 기본적인 특징은 판단력이고 분별력입니다. 예를 들어 어떤 물건을 잡을까 말까, 아니면 밖으로 나갈까 말까, 어떤 냄새를 맡으면 그대로 있을까 아니면 나가야 되나를 판단하는 이 모든 것을 통섭하는 의식이 이루어집니다. 이 의식이 곧 불교의 내용입니다. 거시적으로 일어나는 현상들인 무아, 무상, 사성제, 팔정도 등은 나를 이루고 나와 대상을 이루고 있는 것의 기본적인 내용입니다. 거시적인 대상은 잊어버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기본적인 것을 알고 있으면 언제든지 이용할 수 있고 응용할 수도 있습니다.
식에 대한 이해
초기 불교를 보면 부처님께서는 제자들과 둘러앉아 가르치신 내용은 6근과 6경과 6식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모든 것을 가르쳤던 것입니다. 6근과 6경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에 나라는 실체가 없습니다. 그래서 무아입니다. 6근과 6경과 6식을 인식함으로써 스스로 이해할 수도 있고 설명할 수도 있습니다.
부처님의 경전에 나오는 식에 대한 일반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식은 일반적으로 분별능력이나 판단능력이나 인식능력을 말한다. 상의 작용에 의하여 형상화되어 저장되는 식의 작용에 의하여 분별되고 판단되어 행위로 나타나게 된다.” 행위에 의해서 나타난 것이 6식입니다. 6근과 6경과 6식이 바탕이 되어 6촉이 이루어지는 것이 바로 행위입니다.
6식이 부딪칠 때 느낌이 생깁니다. 눈이 부딪치면 아! 아름답구나 라는 느낌이 생기고 몸이 부딪치면 아! 좋구나 하는 느낌이 생기는 6촉에 의해서 6수가 생기고 6수가 바로 애욕을 만듭니다. 애가 생기므로 끊임없이 윤회하는 무명의 굴레 속으로 빠져듭니다.
우리가 책을 통해서 참선이라는 내용을 읽었을 때 상의작용에 의하여 다리는 결가부좌하고 손은 단전에 가볍게 대고 있는 모습이 형상화되어 떠오릅니다. 바로 이것이 상의작용입니다. 예를 들어 부모의 죽음을 접하게 되었을 때 나도 이렇게 죽을 수밖에 없구나. 안되겠다. 참선을 해야 되겠구나 하는 결심을 하게 되는 분별과 판단의 결정작용을 식이라 하며 식의 작용에 의해서 생각이 결정되면 행위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식은 분별작용입니다.
바로 식이 행위를 하는 결정권을 가집니다. 만질까 말까 부딪칠까 말까 나갈까 말까 하는 것이 식에 의해서 결정됩니다. 그 다음은 행으로 이어집니다. 식이 맑을 때 무명에서 벗어나고 식이 탁하면 무명이 되어 일으키는 행은 윤회를 하는 바탕이 됩니다. 이 다섯 가지 요소들이 순간적으로 결합되어 이루어지는 집합체가 인간이라는 것이 오온설입니다.
오온설
잡아함경에서는 “마치 여러 가지 재목을 한데 모아 수레라 이름하는 것처럼 이 오온이 모인 것을 중생이라 한다”라고 비유를 합니다. 식에 의해서 행위가 일어나는 육육법연기와 기본적으로 이 몸을 이루고 있는 오온에 대한 연기를 설명한 것입니다. 바퀴, 자체, 굴대 등 여러 요소가 모여 수레가 되는 것처럼 오온이 모여 느끼고 판단하고 행동하는 인간이 되는 것입니다. 이 요소들이 각자 독립적으로 있을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지만 서로 관계지어질 때 비로소 의미를 가지는 것입니다. 색수상행식의 다섯 요소가 모일 때 비로소 인간으로 존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감각기관과 이것에 상응하는 대상과의 만남에서 의식이 형성됩니다. 눈은 형상을 만남으로써, 몸은 접촉을 만남으로써, 뜻은 법을 만남으로써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 등의 여러 가지 정신현상이 발생하게 됩니다.
수성유경에서는 “비유하면 두 손이 화합하여 서로 마주쳐 소리를 내는 것과 같나니 이와 같이 눈과 형상이 인연하여 안식이 생긴다”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로 18계의 인식에 대한 부처님의 가르침입니다. 두 손이 부딪쳐 12처가 되는 것처럼 6근과 6경이 부딪쳐 6식이 생기는 것입니다. 오늘 이야기하고 내일 다시 설명하면서 이렇게 반복한 것은 이 내용이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12연기
6근, 6경이 부딪쳐서 일어나는 6식을 바탕으로 해서 우리의 의식을 만들어 갑니다. 이것이 시간적으로 어떤 현상을 일으킬 것인가? 공간적으로 어떤 현상을 일으킬 것인가? 그러면 시간과 공간이 통합되어 있으면 어떤 인식을 일으킬 것인가? 여기서 부처님이 얼마나 뛰어난 분인지를 알게 됩니다. 아인슈타인의 상대론에 와서 시간과 공간이 분리될 수 없는 실체라는 것을 비로소 인식하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2600년 전에 시간과 공간이 통합된 인식능력을 12연기로 설명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에 대한 견해를 가진 것이 바로 상대론입니다. 이와 같이 인식체계에 대한 내용이 바로 연기입니다. 시간에 대한 연기, 공간에 대한 연기를 부분적으로 이해하고 난 뒤 시공간이 통합되어 나타나는 12연기를 이해하고 나면 법화경, 아함경, 금강경 같은 경전들의 이해가 쉽습니다. 이것만 잘 이해하고 나면 경전에서 나오는 모든 내용을 쉽게 이해할 수 있고 또한 부지런히 노력하고 애쓰면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이 왜 중요합니까? 진리에 합당한 실천이 따르고 행위가 따르기 때문입니다.
무명과 행
우리가 모르면 아무리 살아봐야 도움이 안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이 생에서 못하더라도 다음 생에 인연이 되면 할 수 있는 바탕이 됩니다. 아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이 일어날 때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지만 우선은 알아야겠다는 것입니다. 알고 있으면 언젠가는 인연이 성숙되어 실천으로 옮겨갈 수 있습니다. 지금 공부하고 있는 12연기는 불교경전의 가장 핵심되는 내용입니다. 죽고 태어남을 반복하는 것은 부처님 손바닥 안에서 맴도는 것과 같습니다. 18계가 이루어지고 비로소 행으로 이루어지는 촉이 생기는 것입니다.
명색
어리석고 배우지 못한 법부들은 무명에 가려 애욕에 묶입니다. ‘몸 안에 식이 있고, 몸밖에는 명색이 있다고 분별한다. 이 두 인연으로 촉이 생깁니다. 식과 명색의 접촉으로 촉이 생긴다. 두 가지 법이 있다 어떤 것이 둘인가? 안과 색이 둘이다. 안과 색을 연하여 안식이 발생한다. 삼사화합 (안,색, 안식의 화합)이 촉이다’ 라고 설하고 있습니다.
18계는 6식을 포함한 6근과 6경으로 이루어진 독립적인 내용이며 6근과 6경과 6식의 화합으로 이루어지는 모든 인식체계의 바탕이 됩니다.
친구따라 강남가듯
부처님께서는 아함경에서 끊임없이 되풀이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180권이 넘는 아함경의 내용을 우리는 몇시간 만에 공부한 셈입니다. 안다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아는 것을 지금 당장 실천하지 못하더라도 앞으로 얼마든지 실천할 수 있습니다. 불교는 인연입니다. 인연성불입니다. 아무리 공부하려고 노력하는데도 공부가 안됩니다. 인연이 안되면 하기 싫어서 못하게 됩니다. 그러나 인연이 되면 공부하게 되고 불교를 알게 되는 기회가 됩니다. 우리는 좋은 방향으로 좋은 인연을 지어야 합니다. 친구따라 강남가듯이 친구따라 극락세계에도 가게 됩니다. 다음 시간에는 18계를 이루고 있는 인식체계의 법칙을 구체적으로 공부하게 됩니다. 쉬운 것 같으면서 절대로 쉽지가 않기 때문에 한번 제대로 들을 수 있으면 세세생생 이보다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피상적으로 알고 있었던 불교의 모든 내용을 알게 됩니다. 이제까지 불교공부는 기본 바탕이 없는 상태에서 했기 때문에 사상누각입니다. 근본적인 부분을 알게 되면 스스로 주춧돌을 놓고 철근 콘크리트를 쳐서 집을 짓게 됩니다. 지금 우리는 그 중요한 기초공사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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