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6강 사성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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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성제는 이 우주의 진리를 불교 교리로 체계화 되는 과정을 밝히는 것입니다. 삶과 더불어 수행정진 속에서 실천해야 할 가장 중요한 가르침이 사성제입니다.
지난 시간에 설명한 삼법인까지는 진리의 내용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 시간에는 그 진리를 어떻게 터득할 것인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이생에 몸 받아서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되는가에 대한 설명입니다.
매일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부처다’ ‘내가 부처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시작해 보세요. 그렇다면 내가 부처될 수 있다는 것을 뒷받침 해줄 수 있는 생활이 따라야 합니다. 어떻게 하면 부처가 될 수 있는가? 여기서 부처님이 가르치신 실천방법이 고집멸도 사성제四聖帝입니다. 생활 속에서 어떻게 불교를 실천하고 이해하고 체득하느냐 하는 문제가 바로 이 고집멸도를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고집멸도를 통해서 생활하고 수행하다 보면 무아다 무상이다 연기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사성제란 무엇인가?
부처님께서 깨치신 것은 연기라 했습니다. 분명히 사성제나 연기는 밀접한 관계가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부처님께서 깨치신 것이 연기인데 최초의 가르침은 사성제로 가르친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연기와 사성제는 밀접한 관계가 있습니다.
먼저 사성제의 가르침이 어떻게 체계화 되는지 알아보겠습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 갑니다. 일단 허리가 아프면 병원을 찾든지 혹은 민간요법을 써서 허리를 낫게 해야겠지요.
그러면 허리가 아프다는 상태는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고’가 됩니다. 병원에 가면 X선 사진을 찍고 또 허리를 만져보고 해서 왜 허리가 아픈지 원인을 분명히 밝혀야 합니다.
허리가 왜 아픈가? 뼈와 뼈를 지탱하는 물렁뼈가 다 닳아서, 뼈가 어긋나서 아픈지, 디스크라서 아픈지 아픈 원인을 찾아내야 합니다. 그 찾아내는 것이 바로 ‘집’입니다. X레이를 찍어보니 디스크로 판명이 났습니다.
허리가 아픈 원인이 디스크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서 허리가 아픈 것은 ‘고’이며, 원인은 디스크 때문입니다. 집, 즉 발생의 이유는 디스크인 것입니다.
수술을 하든지 교정을 해서 디스크를 낫게 하기 위해 어떤 처방을 내려야 합니다. 마침내 수술을 하든지 교정을 해서 허리가 다 나았습니다. 아픈 허리가 나은 것이 바로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태인 ‘멸’입니다.
아픈 허리를 수술해서 낫게 했다면 수술한 것이 바로 실천방법인 ‘도’입니다. 또 허리를 교정했다면 교정한 것이 실천방법인 ‘도’입니다.
아픈 허리를 가지고 고집멸도를 설명해 보니 허리가 아프다는 자체가 ‘고’ 이기 때문에 ‘고’는 과제의 제시입니다. 어떤 문제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집’ 은 X레이를 찍어 아픈 상태, 원인을 찾습니다. 왜 허리가 아픈지 원인을 찾았습니다. 바로 ‘집’이란 발생의 이유입니다. 허리 아픈 것이 해결되고 극복되어 정상적인 상태는 ‘멸’입니다. 현실적인 문제가 극복된 상태, 해결된 상태가 바로 ‘멸’이 됩니다. 그러면 이 ‘도’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허리를 낫게한 것이 수술과 교정이라면 교정하는 것이 실천방법인 도입니다.
고집별도를 따져보니 부처님께서 2500년 전에 말씀하신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평생을 살아가면서 부처가 되기 위해서, 행복하기 위해서, 바르게 살기 위해서, 끊임없이 생각하고 되새기면서 해결해야 할 것이 바로 고집멸도 사성제입니다. 과제의 제시, 발생의 이유, 현실의 극복, 실천방법이 고집멸도입니다.
묘법스님의 인과이야기
묘법 노스님은 중국에서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신 스님입니다. 묘법 노스님이 지은 ‘인과이야기’는 전생의 인과와 현생의 인과문제를 풀어 놓은 책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주물공장에 다니는 어떤 성실한 사람이 있었는데 10년 전부터 무단히 허리가 아프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X레이 사진도 찍고 온갖 방법을 다 해보았지만 허리가 낫지 않았습니다. 병원에서는 당신은 어떤 방법으로도 허리를 낫게 할 수 없으니 복대나 사용하는 수 밖에 없다고 했습니다. 또 가급적이면 허리를 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늘 복대를 차고 다녔습니다. 어느 날 우연히 묘법 노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스님을 찾아갑니다. ‘스님께서는 전생의 인과를 잘 보신다고 해서 이렇게 찾아 왔습니다. 허리가 아파서 병원에도 가고 여러 가지 방법을 써 봐도 낫지 않아요. 어떻게 하면 나을 수 있을까요?’ 하니까 스님께서 “자네, 주물공장에 다니고 있지” 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그 사람은 깜짝 놀라면서 자신이 주물공장에서 평생 성실히 일하고 노력해서 높은 지위에도 올랐고 돈도 제법 벌어서 잘 산다고 했습니다. 노스님께서 “자네 집에는 공장에 있는 것은 다 있구만” 하니 그 사람은 “스님께서 어떻게 잘 아십니까” 하면서 공장에 있는 물건들은 자신이 열심히 만들었기 때문에 한두 개 정도는 가져와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집에서 쓸 수 있는 못과 여러 가지 물건을 아무런 죄의식도 없이 당연하다고 생각하고 가져왔던 것입니다. 노스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자네는 아무 생각없이 공장의 물건들을 평생 가지고 왔는데 그것은 엄밀히 말해서 도둑질이며 남을 속이는 것으로 죄가 되는 것이다. 자네가 그 회사에 성실히 다니기 때문에 물건들을 가지고 와도 괜찮다고 하지만 자네가 평생 갖다 나른 못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생각해 보면 자네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오히려 이상하지 않는가?” 아무런 죄의식 없이 가지고 온 못과 나사의 무게 때문에 허리를 펼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노스님의 이야기를 듣고 보니 그남자는 한 번도 자신이 죄를 지었다고 생각해 본 적 없고 또 그것이 도둑질이라는 생각도 해본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정말 내가 죄를 지었구나, 도둑질을 했구나’ 하면서 그 남자는 바로 그 자리에서 참회를 합니다.
보름 후에 다시 스님을 찾아뵈었을 때 그 남자는 허리가 말짱하게 나았습니다. 허리가 아프다고 했을 때 X레이 사진을 찍고 수술을 하고 교정을 하는 등 온갖 방법을 다 했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일시적으로는 낫는 것 같지만 근본적인 치료가 되지 않는 한 항상 재발하게 됩니다.
육체에 생기는 병도 단순히 육체의 병으로 여기면 병은 영원히 낫지 않습니다. 이 생에서 병을 가지고 가면 다음 생에도 그 병을 그대로 가지게 됩니다. 근본적으로 그 병을 치료할 수 있는 것은 스스로 참회하고 원인을 없애야 합니다. 바로 그 원인을 제거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고집멸도, 사성제입니다.
싯다르타, 도를 이루어 부처 되다
부처님도 처음 도를 이루고 전파하였을 당시에는 인도의 많은 사상가와 다를 바가 없는 한 사람입니다. 자기가 깨친 바를 설득시키고 이해시키고 믿고 따르도록 해야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약 300km 떨어진 바라나까지 전도를 떠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친 바를 누구한테 전 할 것인가를 생각합니다. 부처님이 처음 출가했을 때 도를 가르쳐 주신 분들은 이미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신과 같이 6년 동안 고행한 5비구를 찾아갑니다. 수소문하여 5비구가 있는 녹야원까지 300km나 되는 거리를 보름이상 걸어서 찾아갑니다. 많은 사상가도 뛰어난 수행자이며 도를 이룬 사람이기 때문에 쉽게 받아들이지는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듯이 부처님도 처음에는 퇴짜를 맞게 됩니다. 5비구들은 부처님께 냉정합니다. ‘당신은 고행을 하다가 포기하고 간 것이 아닌가. 당신하고 이야기 할 것이 없다.’ 고 하면서 거절합니다.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벗들이여, 내 얼굴을 보아라. 내 얼굴이 지금처럼 이렇게 빛난 적이 있느냐, 나는 도를 이루었다. 자네들이 내 말을 들어보고난 연후에 그때 나를 내쳐도 좋다’고 합니다. 5비구가 부처님의 얼굴을 쳐다보니 광채가 나면서 이제까지 자신들이 본 적이 없었던 거룩한 얼굴이었습니다. 그래서 5비구들은 부처님과 둘러앉아 공부를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분명하게 깨치신 것은 연기인데 이 연기를 사성제로 가르칩니다. 5비구와 부처님은 한 달 동안 설명하고 질문하고 이해를 합니다. 그냥 사성제를 설명하여 바로 알아듣는 것이 아니라 두 명이 나가서 탁발해 오면 여섯 명이 나누어 먹고 세 명이 탁발해 오면 여섯 명이 나눠먹습니다. 이렇게 탁발해서 공양을 하고 또 설명을 하고 또 질문을 하면서 하루를 보냅니다. 그 다음 날도 똑같은 행동을 되풀이 합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계속하여 비로소 5비구 중에 한 명인 콘다냐가 처음으로 부처님이 설명하신 사성제와 연기의 인식 체계를 이해하고 깨닫습니다. 콘다야가 이해하고 깨친 것을 보고 부처님께서는 너무도 좋아하셨습니다. ‘콘다냐가 깨달았다. 콘다냐가 깨달았다’고 부처님께서는 자신이 깨치신 것보다 더 좋아합니다. 이와같이 최초의 법문이 사성제법으로 이루어집니다.
사성제에 대한 이해
저는 고등학교에 다닐 때부터 열심히 절에 다녔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시절에는 두뇌회전이 빠르기 때문에 반야심경이라든지 천수경은 그날 들어면 다 외웠어요. 아주 쉽게 잘 했었어요. 그때 부처님의 존재는 저에게 절대적이며 신격화 되어서 부처님을 다르게 바라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불교를 새로운 각도에서 볼 수 있는 계기가 된 것은 대학 다닐 때 현암사에서 번역한 일본판 불교전서가 있었는데 이 책에서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부처님이 참으로 진실되고 솔직한 인간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던 것입니다. 그 책을 보면서 불교를 바라보는 인식이 180도 바뀌어 버렸습니다. 아마 전생에 열심히 공부한 인연으로 불교경전을 보는 눈이 쉽게 열렸던 것 같습니다. 대학 1학년이었을 때 이 사성제를 고등학생들에게 어떻게 하면 쉽게 가르칠 수 있을까 생각하다가 그림을 그렸어요. 어느 정도 알면 그림으로 충분히 그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불교방송국을 말로 설명한다고 해보세요. 설명을 아무리 잘 해도 듣는 사람은 쉽지 않겠지요. 그렇지만 그림으로 보여준다면 구조를 훨씬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몸에 붙어있는 안이비설신의 6근 중에 귀로 듣는 것보다 눈으로 보는 것이 훨씬 이해가 빠릅니다. 귀로 한 시간 듣는 것보다 그림으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그림에는 지옥이라든지 염라대왕이라든지 죄를 지으면 어떻게 된다든지 하는 이야기를 쉽게 드러낼 수 있어요. 평생을 살면서 눈이 하는 역할보다 더 큰 것이 없습니다. 불교교리 체계도 그림으로 나타낼 수만 있으면 훨씬 쉬워집니다.
어떻게 하면 이 사성제를 쉽게 이해시킬 수 있을까 해서 그 때 그린 그림을 평생 써 먹고 있습니다. 그림만큼 불교를 쉽고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는 방법이 없어요. 사성제를 그리다 보니 불교 2600년의 교리의 흐름을 하나의 그림으로 다 그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전체 그림을 다 알고 있을 때 부분을 이야기 하는 것은 쉽습니다. 예를 들어 코끼리 등을 만져 본 사람은 코끼리가 평평하구나, 코를 만져본 사람은 코끼리는 길쭉하구나, 만져보는 부위에 따라 통일된 코끼리를 말하기가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학교 다닐 때 공부가 쉽습니까? 공부 잘 하는 사람에게는 쉽고 못하는 사람은 공부가 어렵습니다. 공부 잘 하는 학생에게는 공부가 신나고 못하는 학생에게는 짜증이 납니다. 모든 것은 똑같습니다. 우리는 공부를 열심히 해야하고 또 잘 해야 합니다. 그래서 고집멸도를 평생 써 먹어야 하고 삶 속에서 실천해 나가야 합니다. 고집멸도를 과제의 제시, 발생의 이유, 현실의 극복, 실천 방법으로 설명했을 때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지 상상해 보세요. 알고나면 불교가 재미있기 시작합니다. 그냥 고집멸도 하다가 이 고집멸도가 나의 생각과 생활에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알 때 얼마나 신기하겠어요?
지난 시간에 설명한 무아와 무상과 연기는 이 세상 어느 누가 깨쳐도 똑같습니다. 불교를 믿는 사람이 깨치든 기독교를 믿는 사람이 깨치든 천상에 있는 사람이 깨치든 누구든지 깨치고 나면 무아고 무상이고 연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연기를 알게 하기 위해서 고민한 결과의 가르침이 고집멸도입니다. 고집멸도만 잘 알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됩니다.
유일한 대기 설법 (그림)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설법하면서 유일한 대기설법이 사성제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처음으로 가르칠 내용을 결정해 놓고 5비구에게 설법을 하십니다. 이것이 45년 설법중 유일한 대기설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느 누가 법을 물어오면 법을 설명하고 실천방법을 설명합니다. 그렇지만 45년 설법하면서 유일하게 내가 무엇을 가르칠 것인가? 결정해 놓고 설명하고 이해시킨 것이 사성제법입니다.
연기의 인식방법으로 사성제의 체계화가 가장 원시적 방법이며 최초의 설법입니다. 유일한 대기 설법인 고집멸도에서 이것이 있으므로 ‘고’의 원인인 ‘집’이 생기고, ‘집’이 있으므로 말미암아 저것이 있고 고가 발생합니다. ‘실천방법인 도가 생김으로 말미암아 저것이 생긴다. 고가 해결된 상태인 멸이 생긴다.’입니다. 가장 원시적인 방법으로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생기므로 저것이 생기는 것이 진리입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원인과 결과를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로 풀은 것입니다. ‘이것이 있음으로 저것이 있고 이것 생기므로 저것이 생긴다’는 원인과 결과입니다. 원인과 결과에 대한 내용을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로 설명했습니다. 고집멸도의 고가 생기는 것은 집이 있기 때문에 생기고 멸은 도를 실천하므로 멸이 됩니다. 여기서 중요한 근본적인 가르침은 6근으로 설명이 됩니다. 지금 설명하는 것은 사성제를 거시적으로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은 근본적으로 6근과 6경과 6식의 12처 18계로 설명합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할 때, 고가 생기는 근본적인 이유는 무명 때문입니다. 모든 것의 ‘고’는 무명 때문에 발생합니다. 무명이란 무엇입니까? 무아와 무상을 모르는 것이 무명입니다. 무아와 무상을 모르는 것이 무명이고 그래서 고가 생깁니다, ‘고’가 생긴 이유가 바로 무아와 무상을 모르기 때문에 그 원인이 됩니다. ‘멸’은 무엇입니까? 무아와 무상을 아는 것이 ‘멸’입니다. 곧 연기입니다. 연기는 ‘명 ’이 된 상태이며 멸인 것입니다. 고가 멸한 상태입니다. 현실적으로 모든 것이 해결되고 극복된 상태입니다. 이것이 되기 위해서는 실천방법인 도가 필요합니다. 근본적인 무아와 무상, 무명, 연기 이것의 관계가 바로 고집멸도입니다. 고부터 공부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과제의 제시, 고
고는 근본적으로 무아와 무상입니다. 부처님께서 5비구에게 설명했습니다.
“비구들이여, 이것이 고의 성제이다. 마땅히 들어라 생은 고다, 노는 고다, 병은 고다, 죽음은 고다,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다,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다,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함은 고다, 뭉뚱그려 말한다면 인생의 양상은 ‘고’ 아닌 것이 없느니라”
이것이 부처님께서 5비구에게 구체적으로 설명한 내용입니다. 결국 생노병사의 인생은 바로 무상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이 무상입니다. 생노병사가 바로 무상을 설명하는 것입니다.
그다음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다. 부처님께서 우리 인간은 근본적으로 8고를 가지고 있다고 했습니다.
8고는 앞에서 설명한 생노병사가 4고이며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은 고다. 했을 때 증오하고 원망하는 원증회고가 고입니다. 시름, 근심, 슬픔, 불행, 번민이 고로서 부처님께서 설명한 다섯 번째 고가 바로 원증회고입니다.
여섯 번째 고는 미워하는 사람을 만나는 것은 고다. 미워하는 사람 만나는 것도 ‘고’이고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바로 ‘고’입니다. 미워하는 사람 만나고 좋아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똑같은 것입니다. 이것이 여섯 번째 고인 애별리고입니다.
일곱 번째 고는 욕심나는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은 고다. 욕심이 나서 내것으로 만들고 싶은 욕심이 고이며 얻지 못하는 것이 고다. 얻고 싶은데 얻지 못하는 부불득고 이것이 일곱 번째 고입니다.
그 다음 인생의 양상은 고 아닌 것이 없다. 바로 인생의 양상, 우리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것은 다 고다. 오음성고의 오음이 무엇입니까? 색수상행식 오음이 바로 우리 몸뚱이입니다.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모든 것은 고다. 몸뚱이는 바로 무엇으로 이루어졌습니까? 탐진치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몸뚱이는 끝없이 탐심과 진심과 치심을 일으킵니다. 그래서 욕망이 치성해서 오음성고입니다. 앞에서 설명한 생노병사는 무상의 설명이고 뒤에서 4개의 고는 무아를 설명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사성제를 설명할 때 고라고 이야기한 근본적인 이유는 고는 무아고 무상이기 때문입니다.
고의 원인이 무엇인지를 한 달 동안 스스로 찾게 하였으며, 해결방법과 해결된 상태가 수행하는 목적임을 설명한 것입니다. 연기를 인식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으로 사성제법을 설하신 것입니다.
발생의 이유, 집
집은 고집성제, 발생의 원인으로 왜 고가 생겼느냐 살펴보는 것이 집성제의 성립입니다. 발생의 원인, 어떻게 해서 그것이 일어나느냐 하는 원인입니다. 우리는 불교공부를 하면서 불교적인 방법을 알아야 하고 불교적인 방법으로 살아야합니다. 그래야 불자가 되는 것입니다. 평생 절에 다니지만 불자일 수도 있고, 불자 아닐 수도 있습니다. 절에 열심히 나오면 불자이고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기독교일까요? 예수께서 좋아하는 천국으로 데려갈 사람, 영생할 사람, 예수께서 가르친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 그렇게 살아가는 사람이 교인입니다. 교회에 일요일마다 빠지지 않고 간다고 해서 교인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절에 열심히 다닌다고 절대 불자가 아닙니다. 그러면 누가 불자일까요?
부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를 추구하는 사람입니다. 이 진리적인 삶을 추구하면서 진리적인 삶을 살아갈 때 불자입니다. 왜 절에 열심히 돈을 갖다 줍니까? 만 원 갖다 주고 십만 원 달라고 합니다. 만 원 넣어서 나중에 십만 원의 효과가 있다면 돈을 넣습니다. 누구나 다 똑같습니다. 그래서 보시함에 돈 열심히 갖다 넣는 사람이 불자냐? 절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이 불자냐? 결국 불자가 되기 위해서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이 우주에는 언제나 진리는 있게 마련입니다.
중국에서 불교의 탄압이 여러 번 일어납니다. 그 탄압 속에서도 불교가 살아남습니다. 결국 탄압 속에서도 한 두 사람이 불교의 불씨를 다시 일으킵니다. 앞으로 십 년, 백 년, 천 년을 지나면 이 불교를 누가 지킬 것인가? 불교를 제대로 아는 한 사람이라도 있을 때 불교를 지키고 불교를 일으킵니다. 절에 평생 나오는 사람이 불교를 일으키고 지키는 것이 아니라 불교를 아는 불자가 불교를 지키고 불교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하는 것은 이 우주에 진리를 펼쳐야 하고 진리는 남아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천 년 후나 만년 후에도 불교의 진리가 이 땅에 살아있기 위해서 우리는 불교를 알아야 하며 불교의 씨앗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생활속에서 끊임없이 사건에 부딪칩니다. 어느 하루도 일 없는 날이 없습니다. 부부가 싸움을 하든, 자식이 싸움을 하든 직장에서 동료와 갈등을 일으키든지 어떤 사건이 생겼을 때 우리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먼저 무엇부터 일어납니까? 감정, 자기중심, 자기밖에 없지요.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모든 문제가 빗나가게 됩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발생의 이유를 생각하라고 했습니다. 왜 일어났는지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라고 했지요.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이 일어나게 되는 분명한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일어난 이유를 깊이 생각하여 정확하게 원인을 밝히라고 했습니다. 원인을 알 것 같으면 문제가 쉽게 해결되지요. 문제는 원인을 밝히지 않고 무조건 본인이 맞다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빗나가고 커집니다. 그렇지만 냉정히 생각해보면 내가 60% 잘했다고 하지만 40%는 잘못했지요. 40% 잘못했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잘못을 했는데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고 하면 화해가 되고 문제가 해결됩니다. 바로 ‘멸’의 상태가 이루어집니다.
부모미생전이라는 화두가 있습니다. 인인 내가 태어나기 전 ‘나는 누구인가’ 하고 계속 생각을 합니다. 결국 그것이 화두가 되어 도를 이루게 됩니다. 바로 이런 문제들이 왜 일어났느냐는 근본적인 원인을 알게 되면 바르고 행복한 삶의 진리를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바로 발생의 이유를 알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안되는 것이 무엇입니까? 세세생생 그렇게 안 살아왔기 때문에 또 이생에서도 그렇게 안 살았기 때문에 안되는 것입니다. 이 몸을 받아서 한 생 잘 살아갈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 불교를 제대로 알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불교를 알았다면 공부를 한 번 해보아야 합니다. 공부를 하지 않으면서 ‘발생의 이유’를 찾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를 해야합니다.
주리반특 이야기
이 지구상의 특수교육의 선구자가 바로 부처님입니다. 주리반특 이야기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돌아서면 잊어버리고 아무것도 생각하지 못하는 정신적인 장애아가 바로 주리반특입니다. 주리반특은 친구들과 함께 출가를 합니다. 수행생활을 6개월 해보니까 도무지 잘 되지가 않습니다. 동료들에게 비난 받기가 일쑤고 돌아서면 잊어버려 동료들에게 방해가 되어 다 싫어합니다. 더 이상 견딜 수가 없어서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부처님! 저는 마음을 먹고 출가를 했는데 도저히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여기에 있으면 다른 동료들에게 방해가 됩니다. 그래서 짐을 싸 고향으로 돌아가야겠습니다. 부처님께서 주리반특에게 하신 말씀이 “반특아 너는 출가하기 전에 무엇을 하였느냐?” “부처님, 저는 청소부였고, 청소를 잘 합니다.” 그러면 “너는 앞으로 자고나서 밥 먹고 청소만 해라”하십니다. 그 후에 반특은 잠 자고 밥 먹고 청소만 합니다. 그러던 어느날 부처님께서 왜 내게 청소만 시켰는가?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청소밖에 없다고 해서 청소만 했는데 문득 아! 부처님께서 자신에게 청소를 시킨 이유를 스스로 깨친 것입니다. 내 마음을 닦고 깨끗하게 하라는 부처님의 뜻을 깨친 것입니다. 결국 빗자루로 쓸어내는 것은 마당만 깨끗이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속에 있는 탐진치를 쓸어내라는 것을 깨친 것입니다. 한 가지 일을 지속적으로 하는 것 보다 이생에 더 좋은 것이 없습니다. 공부하고 수행하는 것은 쉬우면서도 어렵습니다.
실천방법, 도
실천방법인 도는 원인인 집을 알면 해결 방법이 생기게 됩니다. 그 해결 방법이 바로 도인 것입니다.
어떤 비구가 천당에 태어나려고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불법을 모르는 대부분의 수행자들도 천당에 태어나는 것이 최고의 목표였습니다. 바라문교를 믿고 있는 수행자도 최고의 목표가 천당에 태어나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살아 생전에 온갖 짓을 다하고 죽고 난 다음 천당에 태어나려고 기도를 하면 천당에 태어난다고 가르칩니다. 이 사람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안 됩니다. 어떻게 나쁜 짓을 한 사람이 천당에 태어납니까? 기도를 해주면 천당에 태어날 수 있단 말인가? 왜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야 하는가 하는 이런 회의를 느끼고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부처님은 그 바라문을 데리고 뒤뜰 연못가로 갑니다. 연못가에서 돌을 던집니다. 돌이 가라앉습니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이여, 어떤 현상이 일어나느냐?” 하고 물으니 바라문이 “돌이 가라앉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 바라문이여 돌아 떠라! 돌아 떠라! 기도를 하면 돌이 뜨겠느냐?” 아닙니다. 떠오르지 않습니다. “바로 그렇다. 바라문이여” 돌아 떠라 돌아 떠라 아무리 기도해도 저 돌은 무거운 속성 때문에 가라앉습니다. 만약 그 사람이 이 세상에 살면서 나쁜 일을 했다면 나쁜 과보로 지옥의 불구덩이에 떨어질 것이며 만약 착한 선업을 쌓았다면 천당에 태어날 것입니다. 바라문이 어떤 종교를 믿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르게 생각하고 바르게 살아가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연못에 돌을 던져 바라문을 이해시킨 것이 실천방법인 도입니다.
아픈 허리의 원인을 알고 치료하여 낫는 것도 도이며, 이와같이 문제의 원인을 알아 고를 해결하는 방법이 실천방법인 도인 것입니다.
해결된 상태, 멸
과제의 제시인 고가 해결된 상태, 또는 현실적인 문제가 해결된 상태가 멸인 것입니다.
고집멸도 사성제는 부처님께서 인류에게 준 최대의 선물입니다.
고의 상태에서 집,
발생의 이유인 집을 정확하게 알아,
실천방법인 도를 통하여
고가 해결된 상태인 멸이 되는 것입니다.
무상, 무아인 고의 상태에서 이것이 연기적인 관계라는 것을 인식함으로써 고가 해결된 락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부처되기 위한 연습장입니다.
매일 일어나는 사건들을 사성제로 해결하면 어느덧 부처가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잘 하기 위하여
하루에 70분씩 수행을 해야합니다. 새벽에 일어나 108배를 하고 40분 참선을 하고 나면 몸에 아픈 곳이 없어지고 또한 일체 정신적인 장애가 없어집니다. 지금부터 실천하면 평생 건강한 몸으로 건전한 정신으로 살 수 있습니다. 6개월만 지나면 자연히 하게 됩니다. 공부해 보면 정말 묘합니다. 모든 습의 한계는 100일입니다. 불교의 이론과 교리체계를 알아 이 생을 살아가는 동안 삶에 적절히 적용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얼마나 더 살지는 알 수 없지만 불교를 제대로 알면 바르게 행복하게 살아가기 위한 방법이 생길 것입니다. 불교를 제대로 알아야 하고 또 실천도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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