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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깨친 연기이야기

제1강 불교란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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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411회 작성일 21-07-09 1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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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45년 당 무종에 의해 불교탄압의 칙령으로 중국 불교 최대의 수난기를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이때 전국적으로 4천6백개의 사찰이 폐쇄되었으며 4만이 넘는 불당이 파괴되었습니다. 그리고 26만 명의 승려가 강제 환속을 당하였으며 16만 명이나 되는 절 소속의 머슴들이 국가에 강제로 귀속 당했습니다.

우리는 지금 당 무종의 불교탄압보다 더 심각한 위기를 맞이하고 있습니다.

불교를 제대로 아는 것만이 불교를 지킬 수 있는 힘이 될 뿐입니다.

나는 지옥에서 빛을 찾는 심정으로 이 강의를 합니다. 



거룩한 인연 

반갑습니다. 이생에서 이렇게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이 되어 정말 감사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그 일이 생기게 된 이유는 다 있기 마련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인연으로 이몸 받아 이렇게 살아갑니다. 불교방송에서 이런 불교강의를 할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아마 현생의 인연과 전생의 인연으로 인하여 꼭 한 번은 일어나야 할 일이 대구불교방송을 통하여 이루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우리가 전생의 인연은 잘 알 수 없지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절대 무관하지가 않습니다. 불교방송관계자와 청취자 여러분의 인연이 지중한 것입니다. 이렇게 불교방송을 통하여 불교공부를 하게 된 인연은 필연이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여러분 중에 몇 분은 전생에 강의를 들어야 될 필연적인 어떤 사건이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인연이 되어서 여기에 오게 된 것입니다.



금강경 이야기 

제가 90년 초에 우리말로 번역된 금강경을 보면서 이렇게 되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말로 잘못 번역 된 부분이 많았습니다. 그리고 불자들에게 부처님께서 금강경을 설하신 그 뜻을 쉽게 전달할 수 있는 번역이 이루어져야만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금강경 번역을 했던 90년 초에는 하루에 2시간씩 자면서 6개월 정도 금강경에 빠져있었습니다. 그러나 10년이나 지나도록 책을 세상에 내놓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미흡한 부분도 있고 또 지금 다시 보니까 잘못된 부분이 있었던 것입니다.  내 생각의 깊이가 달라짐에 따라 번역 부분이 달라질 수 있다는 생각을 하고 오랫동안 망설였습니다. 긴 망설임 끝에 ‘마음은 보석’이라는 이름으로 신구문화사에서 출판하였는데 제가 그때 생각한 것은 이 책으로 말미암아 한 명이라도 진실한 마음을 낼 수 있다면 이 책은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 불교방송을 통하여 불교 강의를 시작하면서 불법을 한 명이라도 제대로 안다면 불교강의는 성공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은 행복한 사람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합니다. 세상이 행복한 것은 진정으로 행복한 한 사람만 있어도 행복한 것입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불법을 제대로 안다면 모든 것은 다 이루어집니다. 



불교란 무엇인가?

부처님은 제자들이 ‘불교가 무엇이냐?’고 물으면 “12처가 불교니라”고 했습니다. 존재의 인식 구조를 아주 명료하게 설명한 것입니다. 우리가 평생을 절에 다녀도 불자냐 불자가 아니냐 하는 것은 절에 다닌다고 해서 불자일까 하는 문제입니다. 결국 우리는 부처님의 법을 제대로 알 때 진정한 불자가 됩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한테 직접 이해를 시켰던 6근과 6경, 12처와 18계, 육육법연기, 오온연기, 12연기 등 불교의 가장 기본적인 체제를 이루고 있는 부분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강의를 할 작정입니다. 이 부분을 이해하고 나면 불교를 아는 것입니다. 이 법당에 골격만 세워놓으면 아름답게 칠도 할 수 있고 부처님을 모셔놓을 수도 있고, 모든 조형물을 설치 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골격만 짜여 지면 나머지 부분들은 장식하기가 수월합니다. 우리는 이 골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를 알고 있으면 어느 생에 어떻게 태어나든지 불법에서 멀어질 수가 없습니다. 불법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체면상 형식상 억지로 하는 것은 한두 번 이지만 진정으로 좋아서 하는 것은 시간이 흐르더라도 수백 번을 그대로 할 수 밖에 없습니다. 내가 진정으로 불법을 알고 있다면 그것으로 말미암아 불교가 아닌 다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오늘 이 공부를 시작하면서 부처님께서 가르친 진리를 아는 것이 삶에 대해서 이익이 안 된다면 목숨 걸고 할 필요가 없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이몸 받아 이렇게 사는 것에 큰 이득이 있기 때문에 불법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불법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깨치신 것이 무엇인지 알아보도록 합시다. 



두리뭉실 불교 
오늘은 계략적으로 연기와 무상과 무아등을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는 불교가 무엇인지 물으면 한마디로 대답을 못합니다. 평생을 절에 다녀도 불교의 기본적인 용어의 뜻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불교를 제대로 이해할 수가 없고 전달할 수도 없고 내 삶을 불교적으로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국솥의 국자같이 살지 말아야 합니다. 절에 천 년을 다녀도 부처님의 가르침에 대해서 정확한 이해를 하지 못하면 국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절에 행사 있을 때마다 열심히 다니고 기도하는 궁극적인 이유가 무엇입니까? 나한테 손해가 되면 하겠습니까? 내가 부처님한테 돈 천 원 갖다 드릴 때는 만 원 십만 원 요구하지요? 내가 보시하는 것 보다 더 많은 것을 요구합니다. 그 많은 것을 요구하더라도 들어주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시주도 하고 보시도 합니다. 그런 생각을 하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이 이루어졌던, 이루어지지 않았던 간에 다양한 방법으로 실행되고 있습니다. 실제로 그것 때문에 이루어졌는지 혹은 이루어지지 않았는지 모르지만 자신이 생각 할 때는 그것 때문에 이루어졌다고 마음 편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어떤 상황이든 우리는 손해 보는 짓은 절대로 안 합니다. 다 내게 이익이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열심히 보시를 합니다. 십 원 갖다 주면 십 원 보다 훨씬 큰 이득이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합니다. 그 부분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좀 더 본질적으로 알면 내가 갖다 주더라도 기분 좋게 즐겁게 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근본 원리인 진리를 알아야 하는 중요한 이유입니다. 적은 액수의 돈은 매일 쉽게 갖다 주지만 큰 액수의 돈이면 줄 것인가 말 것인가, 주면 더 큰 이득이 있을까? 하고 우리는 망설이게 됩니다. 그렇지만 내가 근본 진리를 이해하면 삶 자체에 망설임이 없어요. 확신이 생기면 해야 될 때는 무조건 하고 하지 말아야 할 때는 안합니다. 바로 이것이 진리에 대한 확신입니다. 부처님께서 이생에서 몸을 받아 그렇게 멋지게 살다 가셨듯이 우리도 부처님께서 깨치신 그 진리를 앎으로써 얼마든지 멋지게 살 수 있다는 겁니다. 부처님께서 깨우치신 근본을 한 부분씩 이해하고 배워보자는 것입니다. 이제까지 절에 열심히 다녔지만 내가 알고 있었던 불교는 두리 뭉실 불교입니다.


기도 왜 성취될까? 뿌리를 알아보자 
 내가 열심히 기도하고 정진을 하면 복도 주고 집안도 편안하게 해준다는 생각을 하는데, 그렇게 될 수 밖에 없는 원리를 공부하자는 것입니다. 원리를 알면 지금 얻고 있는 복보다도 더 큰 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제 그 원리를 제대로 알아보자는 것이 불교교리 공부의 기본적인 취지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불교에 대해서 좀 더 분명한 개념을 갖고 구체적으로 알아야 되겠다는 것입니다. 
오늘의 주제인 “불교란 무엇인가?”를 강의하기 전에 우바사비구의 인연 이야기를 먼저 해야겠습니다. 우리가 살아온 평생에는 즐거운 것, 기쁜 것, 슬픈 것, 원망하는 것들로 쌓여있습니다. 그렇습니까? 기뻤던 일은 지나고 나면 잘 기억납니까? 기억이 안 납니다. 그러나 슬펐던 기억과 원망했던 일은 기억에 많이 남습니다. 우리가 일생을 살아가면서 품었던 마음 중에서 가장 많이 남아 있는 것은 원망하는 마음입니다. 죽고 나면 49재 천도재를 지내줍니다. 이 몸이 죽고 다음 몸을 받을 때까지 염라대왕의 심판을 받는 기간이 49일입니다. 그 49일 동안 심판을 받을 때 옆에서 요즈음의 표현을 빌면 촌지를 집어주는 것입니다. 좀 잘 봐달라고 촌지를 주는 것이 49재입니다. 궁극적으로 과보는 그 사람이 살았는 대로 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옆에서 응원을 잘 해주면 조금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눈에 보이는 물질적인 육신은 전부 다 떨어져 있지만 정신적인 세계는 연결되어 있습니다. 내가 조상님이 잘 되도록 지극하게 기도를 하면 결국은 그 은덕이 조상님께 영향을 끼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염라대왕은 심판할 때 조금은 마음이 좋아지겠지요.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하는 것은 염라대왕의 마음을 움직여서 이왕이면 좀 더 좋은 집에 돈 많은 부자 집에 태어나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여유있는 집에 태어나면 출발이 얼마나 수월합니까? 그런데 자식을 낳아보면 빵틀이지요? 아주 조금씩 이득을 줄 수는 있지만 아예 엉뚱한 데는 보내지 않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갖고 있는 업의 문제입니다. 앞으로 연기 무아 무상을 공부하면 구체적으로 이렇게 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우바사비구의 인과이야기 
부처님은 거의 평생 동안 마가다국의 수도인 왕사성과 코살라국의 수도인 사위성에서 불법을 펼쳤습니다. 두 젊은이가 있었습니다. 혼기가 꽉 찬 두 형제는 잘 생겼고 성실하며 열심히 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마을에 돈 많은 부자가 딸을 형과 결혼을 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약혼을 시켰습니다. 형은 약혼을 하고 한 번만 더 장사를 하고 돌아와서 가을에 결혼을 하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형은 그해 봄에 마을사람들과 무역을 떠났는데 풍랑을 만나서 돌아오지를 못했어요. 풍랑을 만나서 돌아오지 못하니까 도적들에게 살해를 당했다 등 소문만 무성하고 형은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장자는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고, 3년이 지나도 형이 돌아오지 않으니까 동생을 찾아가서 “야, 네가 책임져라. 너의 형이 죽었으니까. 온 마을에 소문이 나서 내 딸을 다른데 시집보낼 수 없다.”라 하면서 동생한테 책임을 지라고 계속 닦달을 합니다. 동생은 그래도 형하고 약혼을 한 형수인데 어떻게 내가 책임을 질 수 있느냐고 하면서 계속 기다립니다. 해가 또 가서 1년을 기다리고 그렇게 기다리다 보니 8년이 지나갔습니다. 8년 동안 기다려도 형이 돌아오지 않자 풍랑을 만나 도적들한테 살해를 당했다고 생각하고, 동생은 장자의 압력에 못 이겨 결국 결혼을 합니다. 형수 될 사람과 결혼을 해서 1년 동안 재미있게 잘 살았어요. 그런데 형은 풍랑을 만나 배가 난파당하여 표류하다가 무인도에서 천신만고 끝에 9년 만에 왕사성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동생은 형이 돌아왔다는 소식을 듣고 죄책감 때문에 출가해버립니다. 출가한 동생의 법명이 바로 우바사입니다. 우바사라는 법명으로 출가해서 이생에서는 형을 위해서 그리고 형수 될 사람이자 자신의 아내였던 여인을 위해 기도하고 열심히 정진하고 또 수행자 생활을 잘 합니다. 형이 돌아와서 보니까 동생은 출가해버렸고,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던 여인은 동생의 아내가 되어버린 상황입니다. 형은 9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있었던 상황을 생각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자기 나름대로 9년이라는 힘든 역경을 견뎌내고 마을로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그대로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모든 상황이 바뀌어버린 것입니다. 
 형은 죽을 고생을 하고 돌아왔는데 상황이 이렇게 바뀌어 버리니까 원망하는 마음밖에 없었어요. 원망하는 마음으로 가득찬 형은 수행자 길을 떠난 동생을 죽여야 되겠다는 생각밖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소문해서 동생을 찾아가보니 숲에서 열심히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형은 은자 500냥을 주고 사냥꾼 한 명을 매수해서 동생을 쏴 죽이라고 합니다. 사냥꾼은 은자 500냥을 받고 수행하고 있는 동생을 향해 활을 쏘았습니다. 그런데 사냥꾼의 화살이 엉뚱하게 바위에 맞아 튕겨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형이 맞고 죽습니다. 원망하는 마음을 품고 죽은 형은 뱀의 몸을 받습니다. 뱀의 몸을 받아서는 전생의 기억들은 전혀 없고 죽어도 우바사 비구를 죽여야 되겠다는 그 생각 하나만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뱀이 되어서도 다른 곳으로 안 가고 우바사가 수행하고 있는 담 밑에서 맴돕니다. 어떻게 하면 기회가 올까? 마침 우바사가 수행하고 있는 집의 방문이 열려 있는 틈으로 기어 들어갑니다. 기어들어 가는데 그 순간 바람이 거세게 불어서 문이 닫히는 바람에 뱀은 치여 그 자리에서 죽습니다. 그런데 또 원망하는 마음을 간직한 채 독벌레의 몸을 받게 됩니다. 독벌레가 되어서 또 우바사 주위를 맴돌게 됩니다. 독벌레는 덩치가 작아서 쉽게 방에 들어갈 수 있게 됩니다. 그래서 천장에 붙어서 기회를 노리다가 우바사 비구가 참선하고 있는 모습 위로 떨어져서 독벌레 자신도 죽고 우바사비구도 죽이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설하신 현우경에 나오는 얘기인데 원망하는 마음 때문에 결국은 이런 결과를 갖게 됩니다. 


왜 죽어야만 하는가?  
우리가 이생에서 살아가면서 원망하는 마음을 품게 되면 다음 생에서도 똑같이 원망하는 마음을 가슴에 품고 살아야 됩니다. 이것이 현재 우리 삶의 모습입니다. 특히 원망하는 마음이 가장 지독한 것이고 또 강하게 남는 것입니다. 보살님들도 거사님들을 원망하는 마음이 있습니까? 그 원망하는 마음이 무엇 때문에 생겼는지 따지고 보면 다 본인 중심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고부간의 문제, 자식간의 문제, 부부간의 문제 등 모든 것은 본인 중심의 생각에서 이루어집니다. 강의하면서 이런 부분들은 풀어가고 부처님께서 무엇을 깨쳤느냐하는 문제에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합시다. 
부처님은 왜 출가를 하셨고 수행자가 되셨습니까?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 때문입니다.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부처님께서는 평생을 몰두한 것입니다. 바로 부처님께서 깨친 법이, 도리가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로부터 얻은 답인 연기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연기를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연기였습니다. 


연기 
예를 들어서 내가 내일 죽습니다. 내일 우리가 죽는데 오늘 여기에 공부하러 나올 수 있겠어요? 내일 죽는다면 무엇을 하시겠어요? 그러나 우리는 분명 내일 죽는데 죽는다는 생각이 없습니다. 내일이 언제 내일일지 모르겠지만 내일이 까마득한 미래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자신한테는 그 내일이 절대로 안 온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내일은 항상 내 곁에 와 있습니다. 우리는 그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항상 내 몸을 건강하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로 내일 죽는다하면 오늘 무엇을 할 것인가 하는 이 문제를 생각해 보아야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를 가지고 출가를 하셨습니다. 부처님께서 깨치신 연기가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에 대한 답인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존재한다.’ 라는 것입니다. 바로 여기에서 연기라는 말이 나옵니다. 깨치고 보니까 존재하는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존재한 것입니다. 또 부처님께서 어떻게 깨달았는가? 결국은 왜 죽어야만 하는가? 이 문제가 무엇 때문에 일어났는가? 하는 발생의 원인을 6년 고행을 하면서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어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원인을 밝혔습니다. 원인을 밝히고 보니까 결국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으로 공부를 하면서 알아야 하는 것은 연기적인 관계와 연기법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연기를 평생 동안 가르쳤고, 세세생생 인간 몸 받으며 우리는 이 연기를 제대로 알아야합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연기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어떻게 이루어져 있습니까? 우리도 존재입니다. 이 책상도 존재입니다. 존재를 좀 더 나누어 보면 크게 생명이 없는 무생물과 생명이 있는 생명체로 나눌 수 있습니다. 무생물체는 우리가 이해하기 쉽습니다. 생명이 없는 물체인 책상이라든가 지구라든가 혹은 태양이라든가 이런 물체들이 어떻게 운동하고 있는지 이런 관계들은 어떻게 존재하고 있는지 이해를 하면 이 부분들을 생명체에 적용할 수 있는지 없는지도 살필 수가 있습니다. 먼저 이해하기 쉬운 부분부터 이해를 하고 좀 더 지적인 인간에게까지 적용을 해보면 되겠지요.


아인슈타인의 상대론 (그림)
 무생물 즉 물체들 사이에 어떻게 작용을 하느냐하는 이 문제를 가지고 지구의 역사와 풍요로움에 대해서 생각해봅시다. 물체들의 작용이라든가 생명체들이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에 대해서 많은 사람이 연구한 결과로 우리는 풍요로움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이 바로 아인슈타인입니다. 아마도 지구가 낳은 뛰어난 천재 몇 명 중에 한 사람은 아인슈타인이 분명합니다. 그만큼 아인슈타인의 역할이 큽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이야기하자면 지금 우리가 누리고 있는 과학적인 물질문명의 풍요로움의 대부분을 이룩한 원동력이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원리입니다. 아인슈타인이 풀어놓은 해답이 바로 상대론이고 상대성원리입니다. 예전에는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지동설이 주장 되면서 이 지구는 우주의 중심이 아니었습니다. 태양이 중심이고 지구는 단지 태양주위를 돌고 있었습니다. 여기서부터 인간의 사고는 바뀌기 시작합니다. 
 상대론이라는 개념을 쉽게 이해하기 위해서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지금 A보살님이 북쪽으로 약 10미터씩 달려가고 있어요. 옆에 있는 B보살님은 남쪽으로 10미터씩 달려갑니다. 그럼 어떻게 됩니까? 북쪽으로 가는 A보살님이 B보살님을 보면 20미터로 가는 것 같이 보이죠? 서로 반대방향으로 A보살님은 북쪽으로 10미터를 달려가고 있고 B보살님은 남쪽으로 10미터를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럼 A보살님이 B보살님을 볼 때 B보살님이 20미터씩 달리고 있는 것 같이 보입니다. 이것이 상대 속도입니다. 상대 속도에서 A보살님이 10미터를 북쪽으로 가고 있고 B보살님은 10미터를 남쪽으로 가고 있었을 때 A보살님이 B보살님을 보면 20미터 가는 것 같이 보입니다. 그럼 좀 더 빨리 달려보자. A보살님이 30만 킬로미터로 가고 있어요. 빛이 1초에 가는 거리가 30만 킬로미터입니다. 이 우주에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 속도가 30만 킬로미터입니다. A보살님이 B보살님을 보면 60만 킬로미터 달리는 것 같이 보여야 되지요? 그런데 아닙니다. 여기서 생각할 수 있는 최대속도가 30만 킬로미터라 했습니다. 앞에서 분명히 10미터로 가면서 10미터를 봤을 때는 계산해 보면 정확하게 20미터 나옵니다. 그런데 30만 킬로미터로 가면서 30만 킬로미터를 보니까 30만 킬로미터로밖에 안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아인슈타인으로 하여금 상대론을 낳게 하는 배경입니다. 결국은 상대론을 생각할 수 있는 상대속도라는 개념입니다. 또 예를 들어서 지금 보살님이 회장보살님 앞쪽에 있습니다. 바로 제 앞에 있어요. 따지면 저보다는 뒤쪽에 있습니다. 위치를 결정할 때 어떻게 합니까? 기준을 정하여 그것을 중심으로 어디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우주에 절대적인 것은 없습니다. 모든 것은 상대적으로 존재합니다. 기준을 정하여 어디에 있다 무엇에 비해서 존재한다고 여깁니다. 우리의 사고에 일대 혁명을 일으킨 것입니다. 지금까지 이 우주에는 절대적인 위치가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절대적인 위치가 없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어떤 한 지점을 기준으로 했을 때 어디에 있다는 생각으로 바뀌어갑니다. 결국 이것이 상대론을 낳게 했습니다. 


만유인력 
 뉴턴은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입니다. 이 존재가 무상하고 무아임을 알기 위해서는 아인슈타인과 뉴턴을 이해해야 합니다. 우리는 과학에서 풀어놓은 부분들을 어떻게 적용시키느냐 하는 것입니다. 뉴턴은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고 했습니다. 보살님이 여기 앉아 계시고 제가 탁자 앞에 서 있다면 두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힘을 느낍니까? 힘은 분명 계산해보면 얼마라는 값이 나옵니다. 우리가 끌려가지 않고 제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은 서로 당기는 힘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금 만약 이 힘이 커져서 서로 끌려간다면 이렇게 공부할 수가 없지요? 다 제자리에 앉아 있을 수 있는 것은 힘이 존재하기 때문이지만 그 힘은 느낄 수 없을 만큼 미약하기 때문에 그냥 그대로 있는 것입니다. 물체와 물체 사이에 있는 이 힘을 다 풀어냅니다. 뉴턴이 힌트를 얻은 것은 모든 물체는 밑으로 떨어지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옆으로도 안 가고 위로도 안 가고 밑으로만 떨어지는가? 뉴턴이 갖고 있는 화두가 ‘왜 모든 물체는 밑으로만 떨어지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 화두의 해답이 바로 만유인력입니다.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합니다. 
 이것은 무아를 인식하는데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즉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물체와 물체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뉴턴이 풀어냈습니다. 아인슈타인은 어떤 화두를 갖고 있었습니까? 지금 제 앞의 보살님의 모습은 동그랗게 보입니다. 30만 킬로미터로 달려가면서 물체를 볼 것 같으면 어떻게 보일까요? 빛을 타고 가면서 존재하고 있는 3차원의 모습을 보면 그대로 3차원으로 보일 것인가하는 이 문제가 아인슈타인의 16살 때의 화두였습니다. 그것을 풀은 것이 상대론입니다. 20살에 런던왕립대학교의 교수가 된 뉴턴의 화두는 왜 모든 물체는 밑으로 떨어지는가 하는 문제였습니다. 누구나 의문을 가질 수 있는 평범한 문제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물체와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종합적으로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것입니다. 근본적으로 모든 물체 사이에는 힘이 작용한다는 것을 풀었습니다. 또 하나의 이론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 이론은 20세기까지 세상을 지배한 가장 강력한 사상입니다. 


프랙탈이론 
이 세상을 지배하고 세상의 흐름을 주도한 가장 중심적인 사상이 뉴턴적인 생각이었지만 지금은 아인슈타인의 생각에서 넘어온 것입니다. 여기에서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은 인과의 문제입니다. 인과를 100%로 믿는다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부처님같이 살아야겠지요. 문제는 믿기는 믿는데 자신한테 유리한 쪽으로만 믿습니다. 믿음에 대한 확신이 생겨야 합니다. 인과문제에 대한 가장 중요한 이론이 프랙탈 이론입니다. 21세기를 이끌어갈 가장 중요한 사상은 프랙탈 이론입니다. 프랙탈 이론에 의하면 이 세상에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일어날 일만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오늘 통섭불교원 법당에 왔습니다. 보살님은 오실 때 버스 타고 오셨어요? 걸어 오셨어요? 택시 타고 오셨어요? 자가용을 타고 올 수도 있습니다. 오늘은 자가용을 타고 왔다면 그 자가용을 타고 올 수 밖에 없는 인연 때문입니다. 자가용을 타고 올 때도 앞산으로 올라오는 큰 길로 안 오시고 만약 골목길로 왔다면 그렇게 밖에 올 수 없는 인과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 향을 켜놓으면 향이 타올라가지요? 향 연기가 올라가지요? 그러면 그 향 연기가 어떻게 올라갑니까? 지금까지는 아무런 의미도 생각도 없었습니다. 이제까지 무의미하다고 생각했던 향연기에 조건을 결부시켜 생각해 보니까 향을 피우면 그 향 연기는 그렇게 밖에 올라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또 저녁에 향을 피우면 지금 보는 것과 다른 방향으로 올라갑니다. 모든 조건을 대입해 주면 향 연기는 그렇게 올라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프랙탈 이론으로 이 세상에 일어나는 모든 일은 일어날 일만 일어난다는 중요한 결론을 만들어냅니다. 좀 더 깊게 생각해보면 바로 인과 문제가 됩니다. 현대과학이 풀어낸 인과입니다. 


1996년 단세포생물의 게놈지도를 풀다 
 1996년에 단세포 생물의 전생이 기록된 게놈을 다 풀어보니까 40억년 역사가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죽고 죽는 단세포들의 유전 인자를 풀어보니 40억년 역사가 들어있었다는 것입니다. 바로 우리도 똑같습니다. 이것이 과학적 인과 문제를 풀어나가는 것입니다. 인간관계 게놈지도가 다 풀리면 우리가 전생에 어떻게 살았고 무엇을 했는지 전부 알 수가 있습니다. 그런데도 나쁜 짓 할 수 있겠어요? 지금까지는 생물체가 없는 무생물들에게 일어나는 이런 부분들을 이야기한 것입니다. 
 그러면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고민했습니까?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를 고민했지요. 왜 죽어야만 하는가하는 문제를 고민했고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이 연기입니다. 즉 존재하고 있는 것들은 무상이고 무아입니다. 아인슈타인이 풀었던 상대론은 무엇에 대한 이야기입니까? 시간적인 문제입니다. 뉴턴이 풀었던 문제는 공간적인 문제입니다. 프랙탈이론은 시공간에서 일어나는 것들의 인과에 대한 문제입니다. 무생물 사이에서는 이런 것들이 일어나는데 생명을 갖고 있는 인간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가 없는가? 이것이 적용된다면 불교를 이해하는데 훨씬 수월해집니다. 연기를 이해하기 쉽습니다. 


무상에 대한 이해 
 무상은,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합니다. 항상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상이라 했을 때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항상 끊임없이 변한다고 했습니다. 일정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이 바로 무상입니다. 무상은 이해가 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서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살아오면서 대부분 쉽게 감지하고 느껴온 부분입니다. 내가 이러이러하기에 어떻게 해야되겠다는 생각은 못했지만 현재 몸을 받아서 지금까지 흘러오면서 느낀 부분이 무상입니다. 


무아에 대한 이해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나라고 하는 실제가 없이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 무아의  중요한 개념입니다. 무아는 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독립적으로 존재하고 있는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공동으로 연관되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가장 궁극적인 문제는 바로 무아에 대한 인식입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인 무아를 내가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느냐에 따라서 엄청나게 달라집니다. 
 예를 들어 앞에서 뉴턴은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서로 힘이 작용한다고 했지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서로가 다 연관되어 있고 영향을 미치고 공동으로 존재합니다.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어떤 것들도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은 말로써 이해 할 수 있는 부분이 아닙니다. 내가 얼마만큼 알고 이해하고 체득하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입니다. 무아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에 따라 불교를 이해하고 세상을 살아가는 부분들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지금 손가락이 아픕니다. 손가락이 아프다 했을 때 이 손가락만 아파요? 손가락 때문에 전신이 다 아프지요. 왜냐하면 이 손가락은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몸 전체와 더불어 존재하여 내 몸뚱이에 붙어 있으니까 내가 느끼고 알 수 있습니다. 이 손가락을 끊어버리면 손가락이 아프지 내가 아픈 것은 아닙니다. 내 몸하고 같이 붙어있기 때문에 아프다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자식이 아프면 내가 아픕니다. 그런데 인도에서 지진이 일어났다하면 안 아픕니다. 바로 무아에 대한 인식에 따라 세상을 보는 내 눈이 달라지고 세상을 인식하는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무아만 잘 인식하면 이 세상을 행복하게 인식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앞에서 자식이 아프면 아프다고 했지요? 아직까지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범주에 들어있기 때문입니다. 내 것이라고 생각하는 범주에는 자식이 들어가고 남편이 들어가고 부모가 들어갑니다. 그러니까 자식이 아프면 아프고 부모가 편찮으시면 신경이 쓰입니다. 


부부싸움 
 부부가 싸움하는 것을 생각해보세요. 왜 싸움해요? 자신이 맞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남편은 남편대로 자신이 잘났다고 하고 부인은 부인대로 자기가 잘했다고 우기는 것입니다. 부부싸움하면 누가 손해봅니까? 자식이 옆에서 싸움하는 것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자식이 그 영향을 받겠지요. 그릇이 하나 깨져도 그 집 그릇이 깨지고 자식이 잘못되도 자기 자식이 잘못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부인은 자신이 맞기 때문에 이겨야 하고 남편도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겨야 합니다. 이해관계가 없을 때는 조금만 내 범주안에 들어보면 내 것이라고 생각되는데 이해관계가 상충되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지장보살님은 지옥에 있는 중생이 한 명이라도 남아있으면 성불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왜? 지옥에 있는 중생이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자신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무아라 하는 것은 인식하는 만큼 내 것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우주는 무아 속에서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진리의 법을 진정으로 안 가르쳐줄 수가 없지요. 우리에게 바른 가르침을 가르쳐줌으로써 부처님은 마음이 편안한 것입니다. 지옥에 가 있는 중생이 한 명이라도 있으면 누가 마음이 불편한가요? 지장보살의 마음이 불편한 것입니다. 누구나 무아를 인식하고 나면 그렇게 될 수밖에 없습니다. 즉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불교라는 범주를 벗어나는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도둑질하는 도둑을 보면 벌 주고 싶은 것이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하고 싶습니다. 그 사람도 도둑질을 하지 않으면 부처입니다. 바로 부처의 한 부분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제자리에 있고 제대로 되는 것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추구하는 가장 중요한 목적입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내가 알아야 되고 내가 부처가 되어야 되고 내가 행복해야 합니다. 내가 행복하지 않고서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할 수 있겠어요? 내가 행복함으로써 나에게서 발산되는 에너지가 주위를 빛으로 만듭니다. 앞에서 이야기한 뉴턴이 발견한 힘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 미친다고 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무아를 인식하는 힘으로 하나의 무생물에게 까지 미치는 힘입니다. 


연기, 무상, 무아, 적정  
 12연기에서 무명이 처음 나옵니다. 연기, 무상, 무아, 무명, 열반, 적정 등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용어들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아와 무상이기 때문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이 고다는 것입니다. 무아와 무상을 인식하는 그 순간 나한테서 일어나는 그 상태가 바로 적정입니다. 또 무아와 무상을 모르는 것을 무명이라 합니다. 무아와 무상을 아는 것을 연기고 모르는 것이 무명입니다. 내가 아는 만큼 내 것이 되고 내가 행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인과를 믿지 않습니다. 100% 확신할 수 있다면 믿는데 100% 확신을 못하니까 믿지 않습니다. 내가 착한 일을 하면 착한 과보가 온다고 100% 확신하는데 착한 일 안 할 사람이 있어요? 보시를 할 때 백 원 갔다 주면 천 원 줄 것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보시를 합니다. 예를 들어 내가 어떤 착한 일을 했을 때 그 착한 과보가 100% 나한테 온다고 확신이 생기면 착한 일을 하는데 우리는 확신을 못합니다. 내가 생각하고 있고 상대방도 생각하고 있는데 이 생각하는 생명체끼리 부딪치면 인과관계들이 성립합니다. 생각이 없는 것이면 시키는 대로 하겠지만 생각이 있는 것은 시키는 대로 안 합니다. 앞으로 우리가 공부할 때 인과법칙이 성립한다면 100% 부처님이 가르치신 진리를 믿을 수 있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는 51%믿고 있습니다. 49%는 못 믿고 51% 믿기 때문에 아직까지 우리 모습대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전생에 내가 살아왔던 모습대로 지금 살고 있는 것은 51%믿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불교하고 인연이 되어 좀 더 바른쪽으로 진리를 알고 싶어하는 그 마음에서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제 우리는 공부함으로써 이것을 100%로 내 것으로 하자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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