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4강 오온연기 > 부처님이 깨친 연기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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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깨친 연기이야기

제14강 오온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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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112회 작성일 21-07-09 17: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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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오온으로부터 불교의 교리들이 다 나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오온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제가 가장 오랫 동안 고민했던 부분이 이 오온입니다.  그만큼 이해하기도 힘들고 체계화시키기도 어렵습니다. 오온만 이해 되면 불교가 다 이해된 것입니다. 

 우리가 공부한 6근, 6경, 6식, 육육법 연기는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일체법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설명했습니다. 오온에 들어오니까, 이제까지 있었던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이 없어지고, 색수상행식으로 출발합니다. 여기에는 6근도 없고 6경도 없고 6식도 없습니다. 이것은 생명체가 출발하는 가장 근본적인 출발점입니다. 몸뚱이가 어떻게 생기는지, 인간이라는 생명체가 만들어지는 근본적인 개념이 오온으로부터 출발한다는 것입니다. 불교를 이해하는데 있어서, 기본적인 두 가지 속성은 무상과 무아입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는 것이 무상입니다. 


변화의 인식으로 존재를 알 수 있다 (그림)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의 근본적인 인식은 변화한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는 변화로 이루어졌고, 이 변화하는 것들을 관찰하고 변화의 인식을 통해서, 존재하고 있는 것들의 본질에 도달하게 됩니다.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한다고 했고, 이 변하는 것을 관찰해봄으로써, 존재하고 있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술을 발효시키면 식초로 변하고, 우유를 발효시키면 요구르트나 치즈로 변하게 됩니다. 먼저 변화라는 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술을 생각해 봅시다. 여기서 술이 발효하면 식초가 됩니다. 술이 식초로 변한 것을 생각해 볼 때 술이 변하기 전의 법을 A법이라고 하고 변하고 난 다음 식초가 된 상태를 B법이라고 생각합시다. 지금 강의하고 있는 오후 5시를 기준으로 생각합시다. 오후 5시를 기해서 만약 이 술이 식초로 변한다고 하면 5시 전에 술이 있었고, 5시 이후에는 식초밖에 없습니다. 그러니까 5시를 기점으로 A법이 B법으로 바뀌었습니다. 무상을 설명할 때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했습니다. A법이 B법으로 바뀐 상태가 이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무상에 대한 좀 더 본질적인 설명을 해보기로 합시다.



오온에 대한 인식 


1) 특징 --- 존재와 변화 --- 변화의 관찰을 통하여 ---- 존재에 도달 


2) A법 ------------------------> B법

     (술)              5시            (식초)


3) B법은 7시 이전에는 없다가 5시 이후에 존재 ====> 생(生)

   A법은 7시 이전에는 존재하다가 5시 이후에는 없어짐 ===> 멸(滅) 


4) ‘모든 존재는 생멸한다.’

B법이 생하는 데는 반드시 A법이 전제되어야 한다. :

(식초가)                    (술이)

                                                      연고관계 

5) B법은(식초는) A법에(술에) 의존하여 생한다. 


6) A법은 멸하고, B법은 생했다. : 이 둘 사이에는 ‘반드시 연고관계가 있다’

7) A와 B가 서로 의존하면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도 의존할 수 있느냐? 


8) 위대한 발상의 전환 : 시간적인 문제를 공간적인 문제로 치환

  7시라는 시간을 기점으로 하여


 A법(술)            드러난 세상             B법 (식초)

            (5시) ================ 

 B법 (식초)         잠재된 공간             A법(술) 


 원래 A법인 술이 있다가 5시를 기해서 술은 멸하고 B법인 식초가 생한다.

5시를 기해서 내려갔다 올라왔다 할 뿐이다. 드러난 세상으로 올라오면 생한 

것이고, 잠재된 공간으로 내려가면 멸한 것이다. 


9) 층의 구조로 파악 

   (시간적 관점) 생멸의 세계 ---> (공간적 관점) 불생불멸의 세계, 

                                              열반적정의 세계 





술과 식초

5시를 기준으로 해서 5시 전에는 술이 있었고, 5시 이후에는 식초가 있습니다. 5시를 기준으로 없던 식초가 생겼습니다. 식초는 생을 했고, 술은 없어져 버렸습니다.  원래 있던 술은 5시를 기준으로 해서 멸했습니다. 5시를 기준으로 해서 없던 식초는 생했습니다. 여기에서 무상이란 모든 존재는 끊임없이 변화한다고 설명을 했는데, 무상에 대한 본질적인 설명은 모든 존재는 생멸한다는 것입니다. 개념 자체가 본질적으로 확실해 집니다. 끊임없이 변한다는 자체가 무상이었는데, 끊임없이 변하는 것들의 출발은 생입니다. 모든 것은 생겼다가 마지막에는 없어집니다.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생멸한다는 것입니다.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들의 출발은 생이며 끝은 멸입니다. 생(生)에서 멸(滅) 까지 생각한다면 모든 존재하는 것은 생멸(生滅)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A법에서 B법으로, 술에서 식초로 변하는 것을 우리는 없다가 생기는 것을 보고 생했다고 하며, 있다가 없어지는 술은 멸했다고 합니다.

좀 더 본질적으로 표현한다면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생멸한다고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분명 5시를 기준으로 식초가 생겼고, 그 전에는 술이 있었습니다. 

술이 없는데 식초가 생길 수 있습니까? 식초가 생기려면 술이 있어야 하며  술에 의해서 그 다음 식초가 생기게 됩니다. 식초를 생각해 볼 때 어쨌든 술이 있어야만 식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이 생멸 법에서 생각해야 될 것은 5시를 기해서 분명히 A법인 술은 멸했고, B법인 식초는 생했습니다. 그래서 A와 B에는 서로 연고의 관계가 있습니다. 


연고관계 

부처님께서는 볏단 두 개를 가지고 이 연고의 관계를 설명했습니다. 연고관계는 육육법 연기를 설명할 때 앞의 것이 전제 되어야만 뒤에 것이 생긴다고했습니다. 이것을 연생연고관계라고 설명했습니다. 식초가 생기기 위해서는 반드시 연고관계가 존재해야 합니다. 즉 식초가 생기기 위해서는 술이 있어야 합니다. 술이 없이 식초는 생길 수 없습니다. 이 술과 식초는 연고관계가 성립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연고관계가 성립하려면 술과 식초가 동시에 있어야 됩니다. 두 개가 동시에 있어야만 가능 합니다.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는 연고관계가 성립할 수 없습니다. 술이 있어야 식초가 생길 수 있습니다. 여기에서 A와 B가 서로 의존한다는 연고관계를 생각했을 때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도 연고관계가 가능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도 연고관계가 가능합니까? 연고관계라는 것 자체는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 즉 의지하지 않고는 연고관계가 안됩니다. 볏집 두 단이 서 있을려면 볏집 한 단에 의해서 다른 한 단이 서 있듯이 A에 의해서 B가 존재할려면 동시에 있어야만이 연고관계가 성립할 수 있습니다. 앞의 것과 뒤의 것이 동시에 있어야만 가능한데 A에서 B로 변해버렸으므로 A는 없어지고 B가 생겨버립니다. 여기서는 동시에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가 멸 해버리고 하나가 생합니다. 육육법연기에서는 연고관계를 설명할 때 6식 6촉 6수 6애는 앞의 것에 연하여 뒤의 것이 생겼습니다.  앞의 것이 전제되어 뒤의 것이 생겼는데, 여기에서  술과 식초와의 관계 속에서 술이 있다가 없어지고 식초가 생겼는데,  술과 식초가 동시에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술이 있을 때는 식초가 없었고, 식초가 있을 때는 술이 없습니다. 즉 술과 식초 두 개가 동시에 존재하지 않고도 연고관계가 성립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생기게 됩니다.


A와 B가 어떤 한 시점에서 동시에 존재해야만 연고관계가 성립합니다. 술이 있을 때는 식초가 없고, 식초가 있을 때는 술이 없으니까 동시에 존재하는 시점이 없습니다. A법과 B법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위대한 사고의 일대 전환을 시도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시간적인 상황에서 공간적인 상황으로 존재의 상황을 바꾸어 버립니다. 시간적인 흐름을 생각할 때 항상 변화하는 과정에서 앞의 것이 있어야 만 뒤의 것이 생깁니다. 이 우주를 구성하고 있는 두 가지 속성인 시간과 공간에서 시간은 앞의 것이 있어야 만 뒤의 것이 나타날 수 있지만 공간은 그냥 있는 것 뿐입니다. 공간의 개념으로 넘어오면 연고관계가 성립되지 않아도 변화가 가능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무상에서 무아를 이끌어냅니다. 즉 시간의 문제에서 공간의 문제로 넘어오게 됩니다.


관점의 변화 

시간적인 문제에서는 연고관계가 성립해야만 가능했던 것이 공간의 문제에서는 연고관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가능하게 됩니다. 술과 식초와 같은 변화의 존재에서 시간의 관점에서 공간의 관점으로 넘어가면서 사고의 일대 전환이 이루어집니다. 부처님 당시 대중들에게 연기를 설명하고 이해시키는데 있어 최고의 묘수를 던진 것입니다.

시간을 공간으로 치환해놓고 보니까 연고관계가 성립하지 않아도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공간은 그냥 있기 때문에 시간의 연속성과 흐름에 의해서 연고관계가 성립하지 않더라도 공간적인 문제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결국 시간적인 관점에서 시간적인 문제가 공간적인 문제로 치환되다보니까 5시를 기점으로  술이 있다가 식초가 생겼습니다. 그래서 술은 5시를 기점으로 멸했고, 식초는 5시를 기점으로 생했습니다. 


시간차원에서 공간차원으로 치환 

인식의 대전환은 시간적인 문제를 공간적인 문제로 치환합니다. 불교에서 가장 중요한 사고의 대혁명은 시간적인 문제를 공간적인 문제로 치환하는데서 부터 이루어진 것입니다. 5시를 기점으로 공간에서 생각하니까 공간은 층을 나누어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불교방송국이 8층에 있으니까 1층, 2층을 생각하는 것과 같습니다. 위로 들어나는 세상과 아래로 내려가 보이지 않는 세상으로 나누어 보는 것입니다. 5시를 기점으로 위로 드러나는 세상과 아래로 내려가는 잠재된 세상으로 나누어 보니까 일반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드러난 세상과 보이지 않는 잠재된 세상으로 나누어지게 됩니다.

 5시를 기점으로 식초가 생겼습니다. 술은 잠재된 세상 밑으로 내려가 버리게 됩니다. 그러면 연고관계가 성립하지 않는 상태에서 식초가 생겼고, 술은 잠재된 세상으로 내려가 멸했습니다. 우리가 인식할 때 잠재된 세상으로 내려가면 멸한 것이고, 눈으로 귀로 육근으로 인식할 수 있는 드러난 세상으로 올라오면 존재하고 있는 것이 됩니다. 존재라는 것은 인식하는 것입니다. 


드러난 세상과 잠재된 세상 

드러난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은 인식할 수 있어 존재하는 것입니다. 드러난 세상에 올라오면 존재가 되는 것이고, 이것이 잠재된 세상으로 내려가 버리면 멸하는 것입니다. 드러난 세상과 잠재된 세상이 서로 올라갔다 내려갔다만 하니까 없어진 것도 아니고 생긴 것도 아닌 단지 존재하고 있던 것이 내려가면 멸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잠재된 세상으로 내려가 버리면  멸한 것이고 드러난 세상으로 올라오면 생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생멸로 인식하고 있지만, 그것은 생멸이 아니고 불생불멸입니다. 잠재된 세상에서 드러난 세상으로 올라오면 생했다고 하고 드러난 세상에 있던 것이 잠재된 세상으로 내려가 버리면 멸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전체 구조를 놓고 보니까 불생불멸일 뿐입니다.

불생불멸의 세계에서는 생하는 것도 멸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것은 불교의 가장 위대한 구조중의 하나가 됩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은 연기적인 관점에서도 이해 할 수 있어야 하고, 실상론적인 관점에서도 이해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연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생멸의 세계이고 실상의 관점에서 볼 때는 불생불멸이 되어 열반적정의 세계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죽고 살고 합니다.  끊임없이 죽고 사는 이 생멸의 세계를 법안으로 보니까 열반의 세계로 불생불멸의 세계가 전개되는 것입니다. 실상론은 영원히 존재하는 것으로 불생불멸의 세계를 말합니다. 불생불멸의 실상으로 이해하게 되면 상주불멸의 세계가 됩니다. 열반경이나 묘법연화경 계통은 실상론을 바탕으로 진리의 세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어떤 관점에서 불교를 이해하느냐에 따라 생멸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으며 불생불멸한다고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생했다 멸했다하는 이것이 결국 불생불멸과 다른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연기를 드러난 세상과 잠재된 세상의 관점에서 이해하니까 불생불멸의 세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무아와 무상을 연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연기적인 세계가 이루어지고, 또 실상적인 관점에서는 생멸의 세계가 결국 불생불멸의 세계가 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연기론이라 하는 것은 존재하는 이 세계, 현실세계를 이해할 때 생멸의 세계는  허망하다 혹은 허상이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공이라고 말합니다. 금강경, 반야경 계통은 모두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존재하고 있는 세계,  연기로 이해하는 것은 무아와 무상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생멸이 이어지는 세계입니다. 이러한 세계를 무상하다고 이야기하고 허망하다고 이야기 하고, 결국 공이라고 합니다. 


이 구조에서 A법과 B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변화에 의해 5시를 기점으로 술이 식초로 변했습니다. 실상론적 구조 속에서 A법과 B법은 존재한다고 설명할 수 있습니다. 식초도 존재하고 술도 존재합니다. 술과 식초를 서로 떼어놓고 한번 생각해봅시다. 식초도 있고 술도 있는 것입니다. 떼어놓고 있다 없다 관계 속에서 인식할 때는 ‘존재한다’ 라고 합니다.


무아에 대한 설명 

앞의 내용은 무아의 개념과 연관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물이라는 것은 H2O로 수소 분자 두 개와 산소 분자 한 개가 붙어 있을 때 물이 됩니다. 그런데  H와 O가 끊어지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H는 H로 있게 되고 O는 O로 있게 됩니다. 관계하고 있을 때는 물이 되었는데 관계를 끊어 버리면 물은 없어지고 H와 O만 있게 됩니다.  H2O가 관계하고 있었을 때는 물이 되었다가 관계를 끊어버리면 H는 H, O는 O일 뿐입니다. 관계하고 있을 때는 존재로 인식할 수 있는데, 관계가 끊어질 때는 있다 없다 로 인식합니다. 그래서 A법과 B법은 이런 관계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A법과 B법은 잠재된 세상을 기준으로 볼 때 밑의 부분은 잠재된 세상이고, 위로 올라온 것은 드러난 세상입니다.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 속에는 A법과 B법 밖에 없습니까? 옆에도 똑같은 법들이 계속 연관되어 존재합니다. 무아는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서로 연관되어 있어 나라고 주장할 만한 실체는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A가 B로 변하고 나니까 B는 스스로 자신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은 영원히 존재한다고 생각을 하고  자기 자신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집착합니다. 즉 위에 올라왔으니까 다시는 내려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살아있는 것은 언젠가는 죽는데, 죽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옆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면서도 본인은 안 죽는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생각을 이루고 있는 근본적인 바탕은 자기는 항상 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육신이 만들어지는 원리  

자신의 현재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안 바뀌려고 하는 것은 본성이고 그것에 집착이 생기고 자신을 중심으로 한 아집이 생깁니다. 

잘못된 자신을 끊임없이 자기라고 인식하는 아집에서 모든 것이 전도되어 번뇌망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아집이 생기고 난 뒤 A법에서 B법으로 바뀌고, 끊임없이 변화하는 상황 속에서 생하고 나면 나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나는 변하고 있습니다. 변하지만 본인은 변하지 않는다고 고집하는 아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변화 하는 것의 기본적인 속성은 불안입니다. 끊임없이 변한다는 자체에서 기본적으로 생기는 사고의 인식은 불안입니다, A법에서 B법으로 변하고, B법에서 A법으로 변화하는 그 자체의 속성은 바로 불안입니다. 내가 인식하든 못하든 간에 내 속에는 끊임없이 불안이 존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몸뚱이가 만들어지고 나면 무아이고 무상에 따라 변해갑니다. 끊임없이 변해가는 것에 대해서 불안이라는 것이 내 속에 자연적으로 생기는 것입니다. 불안하기 때문에 집착하고, 불안하기 때문에 아집이 생기는 것입니다.  나라하는 것을 자꾸 내세우게 됩니다. 이것이 생겨나는 근본적인 이유는 불안 때문입니다. 불안하지 않으려고 참선을 합니다. 마음을 안정시켜 한곳에 모으는 것입니다. 불안하지 않고 안정된 상황으로 내자신을 인식하고 이해하고 이끌어가려는 작업인 참선에는 위빠사나와 사마타가 있습니다. 사마타를 잘하기 위해서는 위빠사나를 해야하고, 위빠사나를 잘 하기 위해서는 사마타를 해야합니다.


오취온 

다이어트를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적게만 먹는다고 다이어트가 되는 것이 아니고 생각자체가 아집에서 벗어나면 다이어트가 되겠지요. 이 몸뚱이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니라, 내 업에 의해서 끊임없이 갖다 붙인 결과입니다. 내 업만큼 갖다 붙인 것이 몸뚱이입니다.

날씬한 몸매를 만들려면 업을 바르게 가져야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날씬하지 않으려해도 날씬해지고, 자연히 오래 살게 됩니다. 


인간의 몸뚱이를 오취온이라고 합니다. 오온을 축적시켜 만든 것이 이 몸뚱이입니다. 오온의 색수상행식을 다시 한번 살펴봅시다. 이제까지는  6경, 6근, 6식으로 설명했습니다. 6경과 6근과 6식은 몸뚱이에 의해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가 생기고 난 후의 문제입니다.  그런데 색수상행식이라는 것은 인식할 수 있는 뿌리가 하나도 없습니다. 오온은 좀 더 본질적인 문제입니다. 회양선사가 육조 혜능을 찾아 갔을 때 회양에게 어떤 물건이 왔는냐? 하고 묻습니다. 어떤 한 물건이 왔느냐 했을 때, 어떤 한 물건은 부모미생전 , 부모에게 이 몸 받기 전에 나는 누구였던가, 이것은 생명의 본질적인 문제와 연관 됩니다. 6근, 6경, 6식을 이야기 할 때는 몸뚱이가 생기고 난 후가 됩니다. 몸뚱이가 생기고 난 후에 오온에 대한 인식이 고의 존재입니다.  


이 몸뚱이가 생긴 이유는 불안에 의해 자꾸 자기 것으로 갖다 붙인 것입니다. 자기의 업만큼 갖다 붙여 몸뚱이가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오온이 이해되면 불교를 다 이해한 것입니다. 

색수상행식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은 다음 시간에 할 것 입니다. 무상과 무아의 두 개의 큰 흐름속에서 존재의 본질적인 문제가 인식 되었습니다.


근본 불안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것은 불안입니다. A법에서 B법으로 변했기 때문에 A는 멸했고, B가 존재하게 됩니다. 그런데 여기에는 C법도 있고, D법도 있습니다. 또 E법도 있고 F법도 있습니다. A법과 B법이 변화했듯이 C법 D법 E법 F법도 끊임없이 변합니다. 변하니까 C법이 멸했다가 생하고 D법이 생했다가 멸하고, 또 E법도 멸했던 것이 생하게 되고 F법도 생하다가 멸하게 되고, 이와같이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생하고 멸함을 되풀이 합니다.

B법의 주위에 있는 C, D, E, F도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B법이 보니까 자신은 변하지 않아야 한다고 집착하지만 자기 옆에서 일어나는 상황을 보니까 끊임없이 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변하는 것은 볼 수 있고 인식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자신은 변하지 않는다고 고집하지만 옆에서 변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C법과 D법을 보니까 바뀌고 변합니다. E법과 F법도 변하고 바뀝니다. 생하고 멸하고 바뀝니다. 결국 B법은 옆의 것이 변하니까 자신이 더 불안해집니다.

불안을 극복하는 방법이 자기화하는 것입니다. 주위를 자신에게 붙여 자신과 하나로 만듬으로써 변화를 극복해 갑니다.


아집과 집착에 의해서 자기자신을 자꾸 더 불안하게 합니다.

옆에서 일어나는 변하는 상황을 보니까 더 불안해 집니다. 결국은  자기자신이 편안해지려면 바뀌는 것을 보고, 자기도 바뀐다고 인식을 하면 되는데, 자기는 바뀌지 않는다고 집착하고 아집을 합니다. 그러니까 자기자신도 안 바뀌고 옆의 것도 안 바뀌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자기자신한테 붙이는 것입니다. 바뀌는 옆의 것을 자신한테로 붙여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면 자기는 안 바뀐다고 집착하고 있으니까 옆에 것도 변하지 않는 것이 됩니다. 옆에 것을 자기한테 붙여서 자기 것이 되는까 변하지 않고 영원하다고 집착합니다.


오온의 색수상행식에서 색이 바로 아집, 집착입니다. 오온의 작용에 의해서 끊임없이 자기한테 갖다 붙입니다. 자신의 업만큼 갖다 붙입니다. 우리 몸뚱이는 이렇게 만들어집니다. 이 오온의 작용을 끊임없이 되풀이 하여 내가 가진 업만큼 갖다 붙여 자기 자신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오온은 이 몸뚱이가 어떻게 해서 생겼는지에 대한 해답입니다.


색, 루파, 아집 

색은 산스크리트어로 루파Rupa인데 아집입니다. 아집이 생기는 근본 원인은 변화하는 것을 변화하지 않는 것으로 인식하려고 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생멸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그 생멸의 뿌리에는 불안이 있습니다. 인간이 본질적으로 갖고 있는 감정은 불안과 공포입니다. 멸 할 때 공포를 가장 크게 느낍니다. 생과 멸의 변화는 생명이 태어날 때 잘 나타납니다. 부모가 자식을 낳을 때 혹은 동물이 새끼를 낳을 때도 그 공포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낳게 됩니다. 죽을 때 즉 멸 할 때는 내가 평생 살았던 그 가치만큼, 그 능력만큼의 잠재능력을 가지고 죽게 됩니다. 

태어날 때의 불안과 공포는 부모가 어느 정도 최소화 해주지만, 생명이 주하다가 멸 할 때는 자신이 평생 살았던 그 댓가만큼 불안을 느끼고 공포를 느끼면서 그 불안을 가지고 갑니다. 다음 생에 몸 받았을 때 갖고 있던 불안을 그대로 갖고 태어나게 됩니다.

우리 몸의 형태는  끊임없이 바뀌는 것 같지만, 자신이 있는 기본적인 업의 덩어리는 계속 내 것일 뿐입니다. 오온을 제대로 이해하고 12연기를 이해하고, 어떤 것이 선이고 어떤 것이 악이고, 착한 일 했을 때 착한 과보를 받게 되고, 나쁜 일을 했을 때 나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은 삼세윤회설에서 모두 설명됩니다.

 악한 일을 했을 때는 악한 과보를 받고, 착한 일을 했을 때는 착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은  정확합니다. 윤회를 100% 믿게 되고 인과를 100% 믿게 되면 지금까지 살아왔던 것 보다 훨씬 더 진지하게 자신의 삶을 생각할 수 있게 됩니다. 우리가 한생을 살아가는 것은 별것이 아닙니다. 수억 겁의 삶속에서 100년이라는 것은 아무것도 아닐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나를 바꿀 수 있는 유일한 계기는 바로 이 몸 받아있는 100년 동안입니다. 이 몸뚱이가 없을 때는 아무것도 기약할 수 없습니다. 

인간의 몸 받아있을 때 1mm의 방향만 바꾸어 놓아도 그 1mm의 바뀐 방향이 결국 나로 하여금 성불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우리가 갖고 있는 이 삶의 덩어리는 수억 겁 동안 살면서 만든 내 업입니다. 한생 동안 바꿀려고 아무리 발버둥쳐봐야 무엇이 바뀌겠습니까? 그런데도 우리는 부처다라고 큰소리 칩니다. 죽었다 깨어나도 안 바뀔 것 같은 나를 아침에 일어나 내가 부처다라고 생각하고 참선하면 묘하게도 자신이 부처로 만들어집니다. 

100년도 안되는 삶에서 업의 덩어리의 방향을 1mm도 못바꾸는 것이 우리의 일반적인 삶입니다. 방향을 1mm만 바꾸어 놓아도 이것이 다음 생 다음 생으로 굴러가면서 자신의 삶을 바꾸는 터닝 포인터가 됩니다.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한 점의 위치에서 아주 조금 바뀌는 것이 혁명이고 변화이고 나아가 모든 것이 그것 때문에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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