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9강 삼세윤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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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세윤회설에 대한 확률적 이해
부처님께서 깨친 눈으로 보니 인과가 성립되는 것은 삼세윤회설이었습니다.
삼세윤회설이기 때문에 성립하는 인과를 현대과학으로 정리해보니 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은 확률로 존재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예를 들어 주사위는 1부터 6까지로 되어 있습니다.
1부터 6까지의 숫자가 있는 주사위를 여러 명이 돌아가면서 던집니다.
그런데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고 2가 나올 확률도 6분의 1, 3이 나올 확률도 6분의 1이고 4, 5, 6의 확률도 다 6분의 1입니다. 실제로 돌아가면서 주사기를 던졌을 때 1이 나올 확률도 6의 1이고 2가 나올 확률도 6분의 1이지만 만약 600명이 던진다고 합시다. 600명이 던져서 1이 100개 나오고 2가 100개 나오고 3이 100개 나오겠습니까? 분명히 들쑥날쑥 입니다. 1이 90개 나올 수도 있고 110개 나올 수도 있는 것처럼 숫자는 어느 정도 비슷하게 가겠지만 6분의 1이 되지는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확률론으로 6분의 1이라고 단정해서 이야기합니다.
이론적으로는 6분의 1이지만 실제로도 6분의 1이 되는 방법이 있습니다. 600개 정도를 600명 정도가 던지니까 변화가 일어납니다. 6천 명, 6만 명, 6십만 명 6백만 명 6억만 명 식으로 어마어마한 숫자로 던진다고 가정해 봅시다. 이 우주에 있는 모래 수만큼 많은 숫자가 주사위를 던진다고 상상해 봅시다. 그러면 최소한 6곱하기 약 10에 20승이나 되는 어마어마한 숫자가 던진다고 상상해 보는 것입니다. 부처님 경전을 보면 겐지스 강에 모래
수만큼 많은 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그러니까 겐지스 강의 모래 수만큼 많은 사람이 던진다고 생각해 보세요.
정확하게 1이 나올 확률은 6분의 1이고 2가 나올 확률도 6분의 1이고 6이 나올 확률도 6분의 1이 됩니다. 각 숫자가 나올 확률 정확하게 6분의 1이 됩니다.
시간과 공간의 확대 (그림)
여기서 중요한 것은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지면 확률이 거의 정확하게 6분의 1이 된다는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숫자를 많게 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 이 순간에 많은 숫자를 한꺼번에 다 던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 하나의 방법입니다.
또 다른 방법은 시간적으로 엄청나게 길게 하니까 숫자가 많아집니다. 예를 들어 이생에서 숫자가 600만 이라 하면 이것을 수억 겁의 숫자로 늘려 보면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아집니다.
부처님이 위대한 천재임을 다시 한 번 인식 시키는 것이 삼세윤회설입니다.
내가 분명 선한 일을 했는데도 어떤 경우에는 악한 과보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또 나쁜 일을 하면서 사는 데도 복을 받고 잘 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이치가 맞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데 한생만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삼세 수억 겁의 시간을 보는 것입니다. 수억 겁 동안에 일어나는 일을 생각해 보면 당연히 착한 일 하면 착한 과보 받고 나쁜 일 하면 나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한생만 생각할 때는 들쑥날쑥하여 잘못될 수도 있습니다. 확률적으로 보면 숫자가 적을 때 던지면 분명히 고르게 안 나옵니다. 그러니까 어떤 경우에는 복 터지게 좋은 행운도 올 수 있다는 말입니다.
또 죽어라고 착한 일만 했는데도 그에 대한 과보는 못 받고 힘들게 한생을 살 수도 있는데 이것은 긴긴 세월을 합산하여 평균을 내보니까 행한 만큼 결과가 일어나더라는 것입니다.
바로 숫자가 어마어마하게 많다는 것, 긴 시간 동안 생각한다는 것은 결국 항상 일어날 일만 일어나기 때문에 착한 일 하면 착한 과보 받고 나쁜 일 하면 나쁜 과보를 받는다는 것을 확률적으로 충분히 증명 된 것입니다. 이것을 증명한 것이 부처님의 인과법칙의 삼세윤회설입니다.
공업과 개인업
인과에는 두 가지가 있는데 개별적으로 받는 인과가 있고 공통적으로 받는 공업이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받는 인과라는 것은 거의 선인 락(樂)과 악인 고(苦) 과에 준해서 받고 공업은 공통적으로 더불어 그 집단이 같이 받는 과보입니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 같은 곳에서는 사람들이 굶어 죽습니다. 북한에도 많은 사람이 굶어 죽습니다. 공업이라는 것은 내가 거기에 태어났다면 굶어 죽어야 될 확률이 매우 커집니다.
우리는 한국에 태어났기 때문에 이 모습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
만약 미국이나 유럽에 태어났다면 어떻겠습니까?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공업이라는 것은 내가 그 시대에 태어남으로써 시대와 더불어 같이 받는 업입니다. 공업이 중요한 이유는 예를 들어 비행기를 타고 가다가 비행기 안에 꼭 죽어야 될 한 사람 있습니다. 그러면 엉뚱한 수백 명이 같이 죽게 됩니다. 그런데 죽어야 할 팔자고 운명인데도 꼭 살아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그 사람 때문에 더불어 같이 살아갈 수도 있습니다. 더불어 살아갈 때는 무리 속에 있는 한사람의 업이 영양을 미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분명히 착한 일 했는데도 공업 속에서는 나쁜 과보를 받을 수도 있고 나쁜 일 했는데도 좋은 과보를 받을 수 있는 그런 여지가 생깁니다. 개인적인 어떤 업에서는 확률이 훨씬 더 작은데 비해서 공업에서는 이 시대와 더불어 같이 받는 업이기 때문에 그런 경우가 훨씬 더 많이 생길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대학 다닐 때 공부 잘 해서 좋은 직장에 취직이 되었습니다.
그 직장에 들어가면 월급도 많이 주고 다 좋을 줄 알았는데 만약 그 직장이 국가적 상황이나 여러 가지 상황에 의해서 허물어지고 안 좋은 쪽으로 흘러간다면 전부 다 나쁜 과보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학교 다닐 때 공부 열심히 하지 않아서 대기업이 아닌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에 겨우 들어갔는데 그곳에서 기발한 아이디어를 가진 사람이 있어서 새로운 제품을 만들고 그 제품이 잘 팔려서 굴지의 회사를 만들어 버리면 이 사람은 가만히 있어도 큰 영광을 누릴 수 있습니다. 이 공업도 따지고 보면 자기가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지었던 업과 전혀 관계가 없는 것이 아닙니다.
착한 일 하면 착한 과보 받고 나쁜 일 하면 나쁜 과보를 받는 폭이 훨씬 더 크지만 지나고 나면 다 준해서 받게 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인과를 확률로 보니 결국 무한대의 억겁의 시간을 통해 인과의 법칙은 정확하게 맞습니다.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아 떨어집니다.
전생 사례
전생에 어떤 고행을 했고 수행을 했고 어떻게 살았느냐에 의해서 이생에서 이런 과보를 받는다 하면 훨씬 더 이해가 쉽습니다. 나도 이생에서 착한 일하고 수행을 하면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생각 할 수 있습니다.
21세기에 살면서 전생의 기억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1975년까지 미국 버지니아대학의 스티븐슨 박사는 약 1300개 이상의 사례를 수집했습니다.
인식하지 못한다고 없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스티븐슨 박사가 증명을 한 것입니다.
전생을 기억하고 있는 그 상황을 찾아 확인을 해보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어린 아이가 전혀 가 본 적도 없고 누구한태 들은 적도 없는 마을에서 일어났던 일을 자세히 알고 자신이 전생에 누구였다고 확실하게 말하는 상황은 실질적으로 전생을 증명하는 것입니다.
그 중에 이스마일의 전생이야기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마일은 1950년 경 터키 남부의 아나다라는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세 살이 되자 이 곳은 내집이 아니다. 내집으로 데려다 달라고 조름니다.
1962년 조사 결과 이스마일은 건너 마을 과수원집 주인이었는데 50살에 죽었음이 밝혀졌습니다. 네 살된 이스마일은 전생의 마을에 가서 돈을 빌려가서 갚지 않은 전생의 빚을 받았다고 합니다.
지금 우리가 전생을 기억하지 못한다고 해서 전생이 없다고 하지 못합니다.
티벳의 활불사상, 린포체 신앙
티벳에는 린포체 신앙이 있습니다.
린포체 신앙은 공부를 열심히 한 수행자는 자기가 태어날 상황을 예언합니다. 현제 티벳에는 달라이 라마가 있습니다.
달라이 라마 다음 법왕이 될 라마는 예시니 보체로서 1980년대에 열반에 듭니다. 이 사람은 열반에 들면서 자신은 프랑스 어디에서 태어난다고 예언을 했고 그렇게 환생한 아이의 어릴 때 사진을 보면 예시니 보체가 돌아가셨을 때 그 모습과 거의 비슷합니다. 티벳에서는 그 아이가 2살이 되는 해에 데리고 와서 계속 키웠습니다. 그 라마가 6살쯤에 한국에 한 번 다녀갔습니다.
그 린포체들을 실험하는 방법은 그 사람 혼자만 아는 어떤 물건을 어딘가에 숨겨놓습니다. 그러면 이생에 다시 몸을 받았을 때 그것을 찾아냅니다.
티벳에서 린포체 신앙은 뛰어난 수행자들은 스스로 열몇 번의 환생을 다 알고 있습니다. 성철 스님도 전생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우매한 중생에게 인식시키기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전생 이야기입니다.
어떻게 하면 현생에 적응해서 좀 더 잘 살 것인가? 잘 살기 위해서 전생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티벳 린포체 신앙에서 환생을 이야기 하는 것은 분명히 내생이 있다는 것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삶이 내생입니다.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는 미래의 삶인 것입니다. 린포체 신앙과 스티븐슨 박사의 과학적인 정의에서 볼 때 분명히 전생이 있음을 알 수 있고 이 몸도 다시 태어나서 죽을 수 있는 내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삼세인 과거 현재 미래, 과거생 현생 내생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도 있고 현재도 있고 미래도 있다는 것은 시간적으로 생각했을 때 수억겁의 긴 시간이 됩니다. 삼세를 인정하므로 이 시간이라는 것이 무한대의 시간으로 확장 됩니다.
이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우리의 삶은 끊임없이 나타났다가 죽습니다. 끊임없이 되풀이 되는 우리 삶을 무한대의 시간 속에서 보니까 업이 받는 것이 바로 과보입니다.
업보라고 할 때 업이라는 것은 바로 행위이며 그 행위에 대한 결과를 받는 것을 보라고 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업보 혹은 과보라고 합니다.
무한 한 시간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정확하게 선과 악이 분명하고 선일 때는 선한 과보, 악일 때는 악한 과보를 받습니다. 그런데 잘못하면 숙명론 쪽으로 흘러가기 쉽지만 절대 숙명론이 아닙니다. 우리가 악한 행위를 했을 때 악한 과보를 받는 것은 이 몸뚱이 속에는 수억 겁의 모든 업이 축척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나에게는 부처되는 업도 한 10% 있을 것이고 보살의 업도 한 10% 있을 것이고 중생의 업은 한 60% 있을 것이고 축생의 업도 한 10% 있을 것이고 지옥의 업도 한 10% 가지고 있습니다. 이것 중에서 전생에 내가 했던 어떤 행위의 업이 지금 이생에서 나타나는 것입니다.
최면으로 전생을 가다
블록샴은 1890년에 태어난 최면술사인데 최면으로 전생을 기억하게 하며,
20년 동안 400명의 전생을 기록으로 남겼습니다.
그 중에 1939년에 태어난 제인 에반스 부인은 최면으로 7번의 전생의 삶에
대하여 증언하였습니다.
1. 로마제국 통치하의 영국에서 가정교사의 아내로서의 전생(서기 286년),
2. 영국 요크에서 유태인 여성으로서의 전생(서기 1190년 사망),
3. 프랑스 부르스의 대부호 작크 꿰르의 하녀로서의 전생(서기 1451년 사망),
4. 스페인 캐더린 공주 시대의 하녀로서의 전생,
5. 앤 여왕 재위시 런던에서 바느질 품팔이 소녀로서 산 전생,
6. 미국의 메릴랜드 주 수녀로서의 전생(약 1920년 사망),
7. 현생의 제인 에반스(1939년 탄생)
모든 전생에서의 기억이 역사적 사실과 매우 흡사한 부분이 많았고
역사적으로 고증이 안된 것도 사학자들이 충분히 그럴 수 있다고 인정을
했습니다.
업보가 나타나는 양상
전생에서 했던 행위로 이생에서 과보를 받아야 된다면
그 과보는 이생에서 살고 있는 삶의 모습에 따라 받는 과보의 모습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내가 전생에 길을 가다가 돌을 툭 찼는데 그 돌이 지나가던 소의 발에 맞아 소다리가 부러져서 넘어졌습니다. 이 행위가 전생에 있었던 행위 입니다.
그래서 내가 이생에서 몸 받아 살아가면서 전생에 소를 다치게 한 과보로 이생에서 내가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난다든지 하는 업이 축척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업이 축척되어 있는 동안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사고가 날 수도 있는 상황에서 내가 그 사고 때문에 치명적인 큰 손상을 입을 수도 있고 차만 조금 부수어질 수도 있고 혹은 차도 말짱하고 사람도 안 다칠 수도 있습니다.
분명 업에 대해서 받는 보는 다양합니다.
이생에서 어떻게 살아가느냐, 내 삶의 모습과 결부 되어 잘못 살고 있으면 소를 다치게 한 과보가 과중해져 치명적인 손상으로 죽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수행과 기도를 열심히 하는데 사고 당할 운이 되었을 때 살짝 부딪쳐서 차도 안 다치고 사람도 안 다치고 그냥 넘어 갈 수도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생에서 내가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업이 보를 받을 때 다양하게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과보를 받는 순서
과보를 받는 순서는 다음과 같습니다.
1. 무거운 업부터 받게 됩니다. 무거운 업으로는 살생의 과보가 가장 큽니다. 그리고 업의 작용을 부정하는 사견을 지닌 경우도 무거운 과보를 받게 됩니다. 수행집단의 화합을 깨는 업도 지중합니다.
2. 습관적으로 지은 업을 받게 됩니다.
부처님 당시, 담미까 거사는 습관적으로 부처님과 승가에 보시한 공덕으로
죽음에 임하여 천신들이 그를 데리러 와서 도솔천에 태어나게 됩니다.
3. 임종에 다다라 지은 업을 받게 됩니다.
무엇을 믿을까?
하느님을 믿기 쉬워요? 인과를 믿기 쉬워요? 하느님이 훨씬 믿기 싶습니다.
집 가까운 곳에는 교회도 많고 하느님을 믿으면 죄도 하느님이 대신 사해 준다고 하니까 솔깃해져 따라가기가 쉽습니다.
그런데 인과는 믿기가 어렵습니다. 묘한 이치입니다. 인과를 믿는다고 하는 순간 손해를 보는 것 같습니다. 내가 하는 행위에 대한 과보를 내가 다 받아야 된다고 하니까 이것은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모든 행동이 다 걸리는 것입니다. 말은 쉽지만 실질적으로 인과를 믿는다는 자체가 절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믿고 안 믿고를 떠나서 일어날 일들은 다 일어납니다.
내가 믿는 대로 될 것 같으면 일이 쉬운데 믿든 안 믿든 일어날 일들은 그대로 일어나기 마련입니다. 내가 인과를 믿어도 일어날 일은 일어나고 안 믿어도 일어날 일들은 일어납니다.
이왕 일어난다면 내가 알고 있으면 대응을 할 수도 있습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의 진실이 연기 법칙이고
연기 법칙은 인과응보이며 인과법칙이라면 우리는 당연히 인과를 믿어야 합니다. 인과를 믿음으로써 훨씬 더 행복하고 제대로 된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내가 인과를 받지 않는다면 안 믿어도 됩니다.
믿든 안 믿든 인과는 일어나고 인과법칙은 적용됩니다. 세세생생 살아오면서 내가 행한 만큼 일어날 뿐입니다. 그래서 안 믿는 것 보다는 믿는 것이 훨씬 더 삶에 덕이 되겠습니다. 죽어라고 공부하는 이유는 삶에 득이 되고 행복하고 아름답게 되기 위함입니다.
윤회
불교는 본 것만 인정하고, 증명할 수 있는 것에 대해서만 인정합니다. 전생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는 윤회를 매개로 하여 죽고 다시 태어남입니다.
전생이 있다면 어제가 있어 어제를 기억하듯이 전생을 기억해야 되는데, 왜
기억이 안 되는지? 이것이 문제입니다.
이 몸을 받아서 살다가 멸하고 또 다시 몸 받아서 살다가 멸하는 것을 윤회 라고 합니다. 윤회 한다고 했을 때 업이 윤회하고 그 업에 대한 과보가 따르게 됩니다. 이생에서 살고 나면 이 몸은 멸하여 없어져 버립니다.
그러나 내가 행했던 업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그 업은 아뢰아식에 저장 되어 있다가 다시 부모를 만나 새로운 탄생을 하게 되면 그 때 업에 대한 과보가 따르는 것입니다.
업이 윤회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내가 지은 업에 대하여 어떻게 과보를 받는가? 이생에서 지은 업을 다음 생에서 받을 것인가?
업을 비파카라 했을 때 비는 ‘다르다’ 파카는 ‘음식이 익다, 익히다’ 즉 업은 다르게 익는 것 입니다.
다르게 익는다는 말은 실질적으로 업에 대하여 받는 보는 다르게 받는 것입니다.
선인락과 악인고과는 맞지만 내가 이생에서 지은 업에 대하여 다음 생에서 받는 과보는 똑같은 모습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받는다는 것입니다. 내가 만약 이생에서 보살님께 돈을 백만 원 빌려줬습니다. 그럼 다음 생에 몸 받아 태어났을 때 보살님한태 빌려준 돈 백만 원을 그대로 받는다는 것은 업을 똑같게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이생에서 착한 일 해서 분명히 백만 원을 보시하고 도와줬다면 다음 생에 과보로 받을 때에는 돈으로 100만원 받을 수도 있고 또 귀한 선물로 받을 수도 있는 것처럼 받는 보는 업과 똑같이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100만 원을 보시 한 것에 대한 보는 당연하게 받지만 단지 돈 백만 원으로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받는다는 것이 바로 업입니다.
에드가 케이시
1877년에 태어난 에드가 케이시는 예언가이며, 영적 능력자로 14,000명의 환자들의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투시능력을 소유한 사람으로 자기 최면으로 들어가 상대방의 몸과 전생을
볼 수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여러 가지 질병이 전생의 카르마에 의하여 나타난다고
하였습니다.
어떤 청년은 전생에 고대 페르시아 사람이었는데 폭력으로
통치권을 빼앗아 다른 사람의 피를 너무 많이 흘리게 한 대가로 빈혈증에 시달렸다고 했습니다.
뚱뚱한 몸 때문에 고민하던 사람은 전생에 뚱뚱한 사람을 비웃은 대가를
받은 것이었고, 전생에 마녀재판에 회부된 여자를 성폭행한 한 간수는
현생에 간질로 고생을 하고 있었습니다.
또 다음과 같은 사실들을 예언하였습니다.
1.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 사건
1986년 4월, 원전 사상 대재앙을 초래한 체르노빌 원자력 폭발사건을
1923년 예언했는데, 그의 예언은 63년 후 적중해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2. 1929년 증권시장 붕괴 예언,
3. 러시아 공산주의 붕괴,
4. 사해 히브리어 구약 성경 발견,
5. 2차대전 시작
윤회의 메카니즘
윤회라는 이 메카니즘을 제대로 알기 위해서는 결국 죽음이라는 것을 알아야 하고 또 무엇이 죽는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이 몸이 생했다가 멸하는 의식이 이 육식 속에 저장 되었다가 다시 업으로 다른 몸뚱이로 옮겨가는 것입니다. 이것에 대한 완벽한 설명이 12연기입니다.
12연기에서 윤회하는 메카니즘을 정확하게 알 수 있습니다. 이론에 대한 체험은 선이나 혹은 관조를 통해서 체득 할 수 있습니다. 본인이 그것을 체험하는 방법은 선을 하거나 선정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불교를 공부하는 방법으로 위빠사나와 사마타가 있습니다. 위빠사나는 관조하고 관찰하는 것입니다.
현상을 지혜와 진리로 인식하고 체득하는 것이 위빠사나 입니다.
사마타는 아는 것을 내 속에서 익히는 과정이 사마타입니다. 예를 들어 처마 밑에서 한 방울 한 방울 떨어지는 물들이 결국은 바위를 뚫습니다. 한군데 집중해서 끊임없이 들어가다 보면 바위도 뚫습니다.
혼탁되어 있는 업 덩어리를 정화시키고 전생을 알려면 선정에 들어 내게 일어났던 모습을 알아보는 것입니다.
윤회한다. 혹은 전생이 있다 하는 이런 문제를 좀 더 명확하게 알려면 스스로 체험해 보는 것이 가장 좋습니다. 여기서 가장 큰 문제는 선악의 의지의 문제입니다. 불교의 출발은 의지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의지가 없는 물질이나 물체는 행위를 가하면 100% 행위에 대한 결과가 나타납니다.
지금 내가 어떤 물건을 던지면 이 물건은 분명하게 던져집니다.
그런데 내가 만약 의지를 가지고 있는 사람을 던지면 더 큰 힘으로 밀어 부쳐 던질 수가 없습니다. 의지가 없는 물체는 우리가 정한대로 정확하게 가지만 의지가 있는 의지체는 부딪칠 때 어떤 현상이 일어납니다. 그것을 삼세 윤회설에서 생각해 보면 의지가 있는 것들이 부딪치면 결국은 선인선과고 악인고과다 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삼세 양중인과 (그림2)
12연기를 살펴보면 무명, 행, 식, 명색, 육입, 촉, 수, 애, 취, 유, 생, 노사입니다. 무명과 행의 전생 업장의 인에 의해서 식, 명색, 육입, 촉, 수의 현생의 업장의 과가 생기게 되고, 이것은 인因으로 하여 애, 취, 유의 현생의 업장의 인이 생기게 되며, 이것을 인으로 하여 미래의 과果인 생, 노사가 생기게 됩니다.
애로 시작해서 유까지가 바로 현생의 세 가지 인이 됩니다. 현재의 3인, 현재 5과가 끝나고 현재 3개의 3인이 두 가지 원인이 되어 업장이 됩니다. 유 다음 생에서 다시 태어납니다.
다시 태어날 미래의 업장을 가지고 목숨을 새로 받게 됩니다. 생하게 되면 노사, 늙고 병들고 죽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12연기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게 됩니다. 12가지에서 11과 12과가 바로 미래 2과입니다 앞에서 1에서 2는 과거 두 가지 인이었고, 그다음 식부터 수까지는 현재 5과였고, 애부터 시작해서 유까지는 현재 3인이었고, 생부터 시작해서 노사까지가 미래의 2과입니다. 이렇게 과거 현재 미래가 다 있습니다.
처음에는 과거의 두 가지 인과 현재의 5과, 현재의 3인, 미래의 2과 전부가 나타나는 것입니다.
과거의 2인과 현재의 5과에서 과거 현재 일주기가 생기고 현재의 3인과 미래의 2과에서 현제 미래의 일주기가 생기고 이것이 다시 통합하면 삼세양중 인과가 생기는 것입니다.
바로 삼세양중인과가 삼세윤회설로 모든 인과는 삼세인 과거 현제 미래를 윤회하면서 끊임없이 되풀이하며 받는 그 인과에 대한 설명이 삼세윤회설입니다.
외모는 흉하지만 재산이 많고 또 성미 급하고 화를 잘내는 어떤 여인은,
보시를 한 과거생의 공덕으로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아름답지만 가난한 여인은 전생에 성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생활한 업으로
아름답게 태어났지만 인색함으로 가난하게 태어났습니다.
아름답고 부유하며 영향력이 있는 여인은 성내지 않고 참을성 있게 생활한
업으로 아름답게 태어났고, 관대함으로 부유하게 태어났고, 질투하지 않은
업으로 영향력 있게 태어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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