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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깨친 연기이야기

제 20강 불교의 우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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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2,006회 작성일 21-07-09 1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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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물의 줄기를 따라가면 큰 바다에 다다릅니다. 부처님의 법도 무명, 무아, 무상, 연기로 출발했지만  가면 갈수록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불교의 인생관은 불법과 만난 이 인연이 세세생생 살아가면서 가장 큰 행운이 될 수 있는 것은 내가 살아가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목적을 세울 수 있을 때가 가장 큰 행운입니다. 이 생명이 살아가는 목적이 바로 견성성불인 것입니다.


불교의 진리관은 연기입니다. 연기는 불교의 진리관이고 우주관입니다. 이 연기는 12처와 16계를 구성하고 있는 모든 것을 체계적으로 설명할 때 12처와 16계입니다. 이것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떻게 작용는지를 12연기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이 부분이 불교의 사상관이며 진리관입니다. 이 부분을 잘 알면 불교를 잘 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불교의 진리관인 연기를 이해하기 위해서 일생생활과 이 연기가 어떻게 연결되어 있으며 터득할 수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불교의 교육관인 사성제, 고집멸도를 잘 실천하는 것이 연기를 이해하고 부처가 되는 방법입니다. 부처님이 처음 깨치신 것이 연기이며 첫 설법은 5비구에게  사성제를 설하셨습니다.

연기를 이해하는 방법, 연기를 실천하는 방법이 바로 사성제입니다. 사성제를 생활 속에 실천하는 것이 불교의 교육관입니다. 불교의 교육관은 곧 사성제를 잘 이해하는 것입니다. 


불교의 실천관은 부처님께서 사성제를 설하시면서 팔정도와 육바라밀과 계정혜 삼학을 실천방법으로 가르친 것입니다.  


불교의 윤리관은 5계와 10계입니다.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에게 가르친 가장 기본적인 덕목이 바로 5계와 10계입니다. 5계는 살아있는 모든 생명에 적용되는 부분입니다. 불교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출가 수행자와 신도가 기본적으로 실천하면서 살아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부처님 당시 출가 수행자, 제가 신도에게 5계를 가르치신 것입니다. 불교는 생명의 본질에 접근해 있으며 중요한 것은 모든 생명에 공통된 과제입니다. 내가 승복을 입었다고 다르고 세속의 옷을 입었다고 다른 것이 아니라 승복을 입고 있으면 좀 더 수월하게 공부 할 수 있고 세속의 옷을 입고 있으면 좀 더 어렵다는 이치입니다. 지켜야 할 윤리와 가치가 다른 것이 아닙니다. 이 5계와 10계는 불교의 윤리관인 것입니다.


부처님보다 약 200년 후에 태어난 아리스토텔레스는 서구사회의 과학을 체계화시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주장한 우주관은 지구가 이 우주의 중심에 있고 태양이 그 주위를 돌고 있는 구조입니다. 

1400년대에 코페르니쿠스에 의하여 태양이 중심에 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지구가 그 주위를 돌고 있다는 지동설을 주장하게 됩니다.

현대의 천체망원경은 우리가 살고 있는 태양계와 같은 것이 1000억 개 정도 모여 은하계를 이루고, 이런 은하계가 1000억 개 정도 모여 있는 것이 우주라는 것을 확인하였습니다. 이 우주의 크기는 빛이 1초에 30만 Km로 달려 1년 동안 가는 거리가 1광년 인데, 약 140억 광년 정도나 된다고 합니다. 

태양계가 속해 있는 은하계는 중절모자의 모양을 이루고 있는데 태양계는 모자의 테의 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삼천대천세계 (그림 있음)

불교의 우주관은 삼천대천세계를 말합니다. 이 삼천대천이 기본적으로 불교의 세계입니다

  이 세계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삼계, 소천, 중천, 대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소천은 하나의 세계인 삼계가 1000개 모여 있는 것이고 소천이 1000개 모여 있는 것이 중천세계이고 중천이 1000개 모여 있는 것이 대천세계입니다. 불교에서 이 우주는 삼천대천세계입니다. 삼천대천이란 흔히 천이 3개라서 삼천대천세계라 하는데  대천세계와 같은 것이며 불교에서 말하는 우주입니다. 

지구가 있는 태양계가 수천 개 모여 있는 것이 은하계이고 은하계가 수천억개 모여 있는 것이 우주입니다. 현대과학이 풀어낸 우주와 부처님이 말한 대천세계하고 동일한 것입니다. 보통 한 세계를 이야기 할 때 불교에서는 수미산을 말하는데 이 수미산은 상징적인 의미입니다.  수미산을 중심으로 동서남북 4개로 큰 세계를 이루고 있는데 이것이 불교에서 말하는 일반적인 세계입니다. 


스님이 축원할 때 부처님께서 도를 이룬 곳으로부터 시작해서 주소를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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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가모니 부처님께서는 우리가 살고 있는 남섬부주에서 도를 이룬 것입니다. 남섬부주란 남쪽에 있는 섬이며 북쪽은 북구로주, 동쪽은 동승신주, 서쪽은 서우화주로 세계를 설명한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속해 있는 곳은 남섬부주로, 우리의 주소는 남섬부주 태양계 지구촌 아시아지역 대한민국 대구시 남구 대구불교방송이 됩니다. 

 
삼계의 구조  
삼계란 불교에서 말하는 세계로 욕계, 색계, 무색계가 있습니다. 욕계의 제일 밑에는 지옥, 아귀, 축생, 인간, 사천왕천, 도리천, 야마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이 있습니다. 탐욕과 음욕과 치심이 가득찬 곳입니다. 절의 일주문을 통해 들어가면 제일 먼저 통과하는 문이 사천왕문입니다. 절이란 그 자체가 일주문을 통해 인간세상과 하늘나라를 구별짓는데 그 문이 일주문입니다. 일주문을 따라 들어가면 첫째로 나오는 문이 사천왕문입니다. 바로 하늘 세계의 처음 나라가 사천왕천입니다. 그 사천왕천에는 우락부락한 사람들이 많이 서 있습니다. 사천왕천을 지키는 사왕천과 팔부신중들이 우주에 존재하는 삿된 무리를 벌하고  감독하면서 불법을 수호합니다. 사천왕문에 있는 팔부신중은 천, 용신, 야차, 건달바입니다. 건달은 빈둥빈둥 노는 사람을 일컫는 말인데 그 건달이 부처님의 불법을 수호하는 팔부신중 중에  한사람인 것입니다. 많이 떠들고 시끄럽게 구는 것을 보고 아수라와 같다고 하는 그 아수라이며 가루나, 긴나라, 마루라 입니다. 팔부신장에서 나오는 이름이 지금 일반적으로 쓰고 있는 용어 그대로 입니다. 다시 말해서 사천왕이란 일주문을 지나 처음 들어가는 하늘나라로 부처님의 세계로 들어가는 첫 관문입니다. 

다음이 도리천입니다. 부처님을 낳아주신 마야부인은 도리천에 태어났습니다. 부처님은 성도하시고 7년 째 되는 해에 도리천에 계신 어머니를 천도한 것입니다. 도리천에서 더 올라가면 야마천이고 그 다음은 도솔천입니다.  33천이란 말이 나오는데 이 33천이 도리천입니다. 33천은 동서남북으로 동쪽으로 8천 서쪽으로 8천 남쪽으로 8천 북쪽으로 8천 중앙에는 제석천인 제석천왕이 있습니다. 바로 33천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도리천을 삼십천이라고 부릅니다. 

삼계
삼계는 욕계, 색계, 무색계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욕계는 우리들이 태어나서 죽고 다시 태어나고 하는 육도윤회하는 곳입니다. 하늘나라를 통틀어서  사천왕천 이상이 욕계에 속합니다. 바로 타화자재천까지는 욕계로서 욕(欲)과 물(物)과 심(心)을 가지고 있어 탐욕과 음욕과 치심의 세계입니다. 인간이 가지고 있는 것을 다 가지고 있는 것이 욕계이며 이것을 벗어난 수승한 세계가 색계입니다. 
색계는 물과 심 밖에 없는 욕심은 없지만 음욕은 남아있는 세계입니다. 
제1선천은 범천, 제2선천은 광천, 제3선천은 정천, 제4선천은 복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그것마저 없고 마음밖에 없는 하늘나라가 무색계입니다. 공무변천, 식무변천, 무소유천, 비상비비상천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부처되기 전의 세계로 끝없이 선정의 단계입니다. 색계에서 무색계의 단계까지 올라가는 마지막 단계로 부처되는 단계입니다. 비상비비상단계 다음이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기 전에 그 당시의 사상가들을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터득한 가장 높은 경지가 비상비비상처입니다. 여기까지 터득하는데 일주일이 걸립니다. 일주일만에 터득하고 보니 결국 왜 죽어야만 하는 문제가 여기에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으시고 바로 혼자 출가의 길을 떠납니다.

육도윤회 (그림2)
우리는 인간의 몸을 받기도 하고 지옥을 받기도 하고 한 세상 잘 살고 나면 극락을 받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우리는 지옥에서 시작하여 하늘나라 천상까지 육도윤회를 합니다. 육도는 지옥,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입니다. 기본적으로 육도 윤회에는 6가지 세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옥에 태어나기도 하고 선업을 지으면 천상에 살고 열심히 기도하고 한 세상 잘 살면 극락에 왕생합니다. 인간 몸 받아서 본전치기도 못하는 삶이 되면 지옥에서 아수라 세계로 떨어지는 것이며. 지옥으로 떨어지는 삶은 지금 몸 받아 사는 것 보다 더 못한 삶입니다. 기도하거나 한 세상 잘 살고 나면 극락에 갑니다. 즉 천상에 태어납니다. 칠월 백중에 하는 백중기도가 있는데 여기서 영가를 천도한 것이 유례가 됩니다. 부처님이 도를 이루고 난 후 7년 째 되는 해에 선정에 들어서 보니 부처님을 낳고 칠일 만에 돌아가신 마야부인이 도리천에 태어나 있었던 것입니다.

부처님의 어머니, 마야부인의 천도 
부처님께서 선정에 들어 도리천에 있는 천신들을 상대로 설법을 하며 어머니인 마야부인을 천도하게 됩니다. 진정한 법을 가르친 것입니다. 또 천도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 부처님 제자 중에 신통제일이었던 목건련이 떠오르지요. 부처님의 불법을 이끌어 온 10대 제자에는 신통제일 목련존자, 지혜제일 사리불, 설법제일 부루나, 혜공제일 수보리, 두타제일 가섭존자 등이 있습니다. 인도 사회에는 비가 많이 오는 우기가 있는데 수행자들이 비가 많이 오면 밖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한곳에 모여서 3개월씩 공부를 하던 것이 오늘날 결제, 해제의 형태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도  3개월 동안 제자들이 모여서 공부를 했습니다. 부처님한테 법문을 듣기도 하고 수행을 하기도 했습니다. 3개월의 수행을 마치는 날이 바로 우리 나라의 음력 칠 월 보름 해제날입니다. 칠 월 십오 일 해제날에 목련이 선정에 들어서 보니 어머니가 지옥에서 지옥고를 받고 있는 것입니다. 목련은 어떻게 하면 어머니를 좋은 세상에 태어나게 할 수 있을까? 어머니를 천도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목련의 어머니는 살아있을 때  지켜야 할 것을 지키지 않고 먹고 싶은 것은 무엇이든지 먹고 멋대로 행동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한 것입니다. 탐심, 진심, 치심을 내면서 지옥행의 모델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 과보로 지옥에서 지옥고를 받고 있었는 것을 목련이 신통으로 선정에 들어서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목련존자 어머니의 천도 
자자를 행하는 중에 목련이 부처님께 청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지금 저의 어머니가 지옥에서 고통을 받고 있는데 어떻게 하면 지옥의 고를 벗어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께서 천도를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자리에서 청을 들어주십니다. “목련이여 그러면 오늘 이 자자가 끝나면 유행을 떠나는 모든 수행자에게 공양을 올려라. 그리고 선정에 들어 너의 어머니를 천도하여라. 그러면 너의 어머니가 천도 되리라.” 목련은 자자에 참석한 모든 대중에게 공양을 올리고  대중들과 선정에 들어서 지옥에 있는 목련의 어머니를 천도시킵니다. 이것은 지옥에 있는 중생들을 천도하는 제1 공식으로 항상 지옥에 있는 중생 영가들을 천도하는 의식으로 보편화 된 것입니다.

음력 7월 15일 백중날은 우주의 기운이 가장 맑고 깨끗한 날입니다. 이 날은 많은 수행자가 3개월 동안 수행하고 마지막 회향을 하는 날이기 때문에 우주의 기운이 가장 밝고 깨끗합니다. 깨끗한 날이기 때문에 지옥에 있는 중생들의 천도가 가장 잘 됩니다. 

예를 들어 몸뚱이가 있는 우리는 이야기를 하면 서로 들을 수 있는데 몸뚱이가 없는 귀신은 이야기를 들을 수 없습니다. 우리처럼 몸뚱이를 가진 동업중생들도  미국에 태어난 사람들은 우리 말을 알아들을 수가 없습니다. 지옥에 있는 귀신들이 이 말을 알아들을 수는 더더욱 없습니다. 귀신들에게 감응을 주고 법문을 할 수 있는 것은 선정에 들어서 그들과 대화하는 정신능력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선정의 힘으로만 지옥에 있는 혹은 이 세상에 있는 귀신들을 천도할 수 있습니다.

탐진치의 과보 
인간의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가장 고질적인 것은 탐, 진, 치입니다. 자신밖에 모르는 데서 탐심이 생기고 진심이 생기고 치심이 생기게 됩니다. 이것은 무아를 인식하지 못한데서 생겨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탐심, 진심, 치심이 매우 무거울 때 받는 과보는 지옥과보, 아귀과보, 축생과보입니다. 탐심이 지나친 사람은 지옥에 떨어집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은 다음 생에 뱀의 몸을 받는다는 이야기가 있으며 진심이 무거울 때는 아귀의 몸을,  치심이 무거울때 축생의 몸을 받습니다. 탐진치가 조금 덜 하면 아수라, 인간, 천상의 몸을 받습니다. 우리는 여섯 단계 중에서 다섯 단계에서 몸을 받았기 때문에 인간 몸 받은 사람은 그래도 조금 잘 산 것입니다.
공부를 어느 정도 했을 때 지금보다 못하는 것도 어렵지만 좀 더 잘 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어지간해서 잊어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인간 몸을 한 번 받은 상태에서는 어지간해서 인간이하로 떨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 몸 받은 것 보다 더 아래로 떨어진다는 것은 지옥에 간다는 것인데 이 생에 정말 엄청난 탐심(탐욕)을 냈다든지 진심을 냈다든지 했을 때 지옥에 떨어집니다. 

포살과 자자 
불교에서 행하는 중요한 행사 중에 포살과 자자가 있습니다. 포살은 정월 초하룻날 행하는 법회이고 지자는 15일, 보름에 행해지는 법회입니다. 자자 날에는 모두 모여서 한 달 혹은 석 달 동안 공부하면서 일어났던 생각, 행동을 사람들에게 고백합니다. 나는 공부하면서 어떤 생각을 했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했으며 또 어떤 생각을 낸 것은 공부하는데 방해가 되어 참회하여 앞으로는 그런 생각을 일으키지 않겠다고 고백을 합니다. 대중들 앞에서 공개적으로 마음에서 일어났던 죄, 실질적으로 행했던 죄를 고백하는 것이 바로 자자입니다.  불교 행사중에 종교적인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낸 것이 자자입니다. 그래서 이 자자에 모든 수행자는 3개월 동안의  공부를 끝내고 나름대로 유행을 떠나는 날입니다. 자자가 끝나면 다시 공부할 곳으로 떠나는데 떠나기 전에 모든 제자가 둘러앉아 부처님부터 시작해서 수행과정을 고백 합니다. 

불교의 인생관, 견성성불 
어떤 종교를 믿을 때, 가장 먼저 생각해야 하는 것은 그 종교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살 것인가? 의 목표가 정해지면 그 목표를 향하여 열심히 살아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불교가 지향하는 목표는 부처입니다. 경전에 “일체중생실유불성”이라고 했듯이 불교의 목표는 부처인 것입니다. 우리가 절에 다니는 목표도 결국은 부처되는 것입니다. 먼저 이 목표가 분명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이해해야 할 것은 세속적인 가치가 진리 가치에 어긋나는 부분이 아니라 진리 가치에 포함되는 부분집합이라는 것입니다. 결국 중생이라는 것은 부처에 포함되어 있는 부분집합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고 부처될 수 있는 존재이며 불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목적은 부처되는 것이지 다른 것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절에 열심히 나오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부처되는 것입니다. 불교에서 지향하는 삶의 궁극적인 목표는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지금 이 순간부터는 우리들의 삶의 목표는 부처되는 것입니다. 목표가 있는 사람하고 없는 사람의 차이는 엄청납니다. 일류대학에 가겠다고 목표를 세워놓고 공부하는 학생과 성적 나오는대로 맞춰서 가겠다는 학생을 1년 동안 공부를 시키면 목표가 분명한 학생은 밤잠을 안 자고 원하는 일류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합니다. 목표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목표가 없는 학생은 성적에 맞추어 가기 때문에 그렇게 열심히 할 필요가 없습니다. 애를 쓸 필요가 없이 되는대로 가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처음부터 다 나름대로 인생의 목표가 있습니다. 세속의 법을 능가하는 가장 중요한 삶의 가치의 기준은 바로 부처입니다. 세세 생생 살아가면서 불법 만난 최고의 행운인 부처 되는 목표를 세우는 것입니다. 

주부로서 한 생을 사는 사람, 또 직장 생활을 하면서 한 생을 살 수도 있지만 부처되는 목적을 향해 나아가야 합니다. 삶의 목표인 부처되기 위해서 어떤 경우에는 승복을 입고 어떤 경우에는 세속의 옷을 입기도 하고 다양한 모습으로 세세생생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처되는 목적을 망각하지 않고 항상 기억하고 있으면 부처 될 수 있지만,  목적이 없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돈은 얼마나 벌고 어떤 집에서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 목적에 맞추어서 살아가게 됩니다. 나는 이 생에서 대구 시내에서 가장 큰 빌딩을 세우겠다고 원을 세웠다면 그 원이 씨앗이 되어서 빌딩을 세우게 될 인연들이 생기게 되고 결국 건물이 세워지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부처다 하는 것을 인식하는 문제입니다. 중생의 속성을 갖고 있지만 내 속에는 부처의 속성도 있어서 언젠가는 부처가 될 것입니다. 이생에서 나의 목표는 바로 부처인 것입니다. 

예를 들어 내가 차선위반을 하거나 주차위반을 했을 때 불안합니다. 세속에서 정해 놓은 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불안합니다. 그것은 벌금을 내야하는 것과 또 내가 차선 위반하면 다른 사람의 차선을 방해해 소통이 원활하지 못하게 하는 죄도 짓게 됩니다. 다른 사람한테 피해를 입히고 나 자신도 물질적으로 정신적으로 피해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법은 안 지키는 것보다 지키는 것이 훨씬 더 좋습니다.  근본적으로 법을 어길 때 불안한 마음이 되기 때문에 세속적인  법을 정해 놓으면 그냥 알아서 지키는 것입니다. 달나라에서 태어난 누군가가 지구에 온다면 주차위반이고 뭐고 아무것도 모릅니다. 자기 멋대로 차를 몰고 다니면서 무엇이 주차위반인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자동차를 운전을 하기 위해서 교육을 받기 때문에 위반인지 아닌지 잘 알고 있습니다. 모를 때는 불안하지 않지만 알게 되면 제대로 하려고 노력을 합니다. 진리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무아와 무상을 모르면 실천하지 않더라도 불안하지 않지만, 알게 되면 불안하게 됩니다. 

주차위반을 하거나 신호위반을 하는 사람들은 법을 지키지 않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인식하지 않기 때문에 계속 위반을 하게 되지만,  아는 사람은 위반하더라도 다음에는 위반할 가능성도 낮아지고 또 본인이 위반했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불안해집니다. 우리의 모든 인식, 감정의 기본적인 속성은 불안입니다. 생명체의 근본적인 감정은 불안과 두려움이며, 결국 불안과 두려움이 이 몸뚱이를 만듭니다. 지금 우리는 부처님 법을 모르기 때문에 지키는지 안 지키는지도 모르고 있습니다. 모르는 만큼 위험한 것은 없습니다. 우리가 인식하든지 못하든지 간에 내일 죽는다고 생각하면 오늘 어떻게 살 것입니까?  

이 세상에서 몸을 받았다는 것은 출생했다는 것입니다. 태어나기 위해서는 부모에 의해서 임신이 되어야 하고, 임신이 되기까지 어떤 과정이 있습니까?  육육법에서 6근이 있습니다. 6근은 안, 이, 비, 설, 신, 의입니다.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안이비설신의의 안은 눈, 이는 귀, 비는 코, 설은 혀, 신은 몸, 뜻은 의지인 것입니다. 6근에 대한 대상이 6경이고 6경과 6근이 부딪쳐 6식을 만들어 냅니다. 내가 눈으로 대상을 보면 안식이 생기고 귀로 소리를 들으면 이식이 생기고 이와같이 6경과 6근이 부딪쳐 6식을 만들고 6식에 의해서 6촉이 이루어지고 6촉에 의해서 6수가 이루어지고 6수에서 6애가 생깁니다. 즉 6식에 의해서 6촉, 몸뚱이가 부딪치고  부딪친 것에 대한 수, 느낌이 생기고 느낌에 의해서  애욕이 생깁니다. 우리는 애욕 속에서 한 생을 살다 갑니다.  

부처님 법을 모른다고 온 종일 TV 시청해도 괜찮고 친구를 만나서 수다를 떨어도 괜찮다고 생각하는 것은 착각인 것입니다. 오늘 한 시간 노력하는 것은 십 년 노력하는 것 보다 낫습니다. 은행에 돈 넣어 놓으면 이자 붙듯이 공부도 똑같은 것입니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없는 것은 무아와 무상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부처가 되면 어떤 이득이 있는지 한 번 살펴봅시다. 지금 부처된다고 하면 명(明)의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밝게 아는 이 상태가 바로 부처 되는 것입니다. 명(明)이라는 것은 밝음이고 광명입니다. 불교를 말할 때 ‘자비 충만 하시고’ 라고 합니다. 바로 안다는 자체가 끝없는 광명입니다. 무아와 무상을 알면 내 속에서는 끊임없는 자비가 흘러나게 됩니다. 그것이 바로 부처의 속성입니다.

순치황제는 자신의 전생을 돌아보고 세속의 한 평생이 수행자의 하루 삶보다 못하다고 하면서 왕위를 버리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이내 몸 중원천하 임금 노릇 하건만은 
나라와 백성 걱정 마음 더욱 시끄러워 
인간의 백 년 살이 삼만육천 날이란 것
풍진 떠난 수행생활 한나절에 미칠손가

이 몸이 나기 전에 그 무엇이 내 몸이며 
세상에 태어난 뒤 내가 과연 누구던가? 
자라나 사람 노릇 잠간 동안 나라더니 
눈 한번 감은 뒤에 내가 또한 뉘기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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