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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깨친 연기이야기

제10강 12처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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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0,956회 작성일 21-07-09 1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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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강의부터는 실질적으로 연기의 구체적인 내용에 들어갑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고 하는 연기의 거시적 이야기는 어느 경전에서든지 나옵니다.


연기의 구체적인 내용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의 일각처럼 우리가 알고 있는 연기는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는 것이 10분의 1의 내용입니다. 6근, 6경의 12처 18계, 육육법연기, 오온연기, 12연기의 골격은 물속에 들어있는 10분의 9에 해당되는 불교의 가장 중요한 부분입니다. 

물속에 가라앉아 있는 이 부분을 이해하고 나면 세상 어디에 있어도 두려움이 없이 나는 불자라고 큰소리 칠 수 있을 만큼 떳떳합니다. 중요한 것은 확신이 없고 자신이 없기 때문에 귀하게 키워놓은 자식들을 교인들에게 주기도 하고  문제에 부딪치면 다 양보하고 말아요. 불교는 삶의 악세사리이지 소중한 보물이 못 되고 있습니다. 오늘부터 공부하는 불교의 구체적인 이 부분을 이해하고 나면 세세생생 동안 불교와 떨어질 수 없는 인연을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과연 이 법을 이해할 수 있을까?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이루고 나서 이 법을 설해야 하느냐 말 것인가를 고민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권청에 의해서 법을 설하게 됩니다. 세상에 이 법이 존재할 수 있게 한 오비구를 찾아가서 비로소 연기와 사성제를 설하십니다. 부처님께서 이 법을 설할 것인지, 그만둘 것인지 망설인 것처럼 지금 우리가 공부하려고 하는 이 부분을 제대로 알기가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이부분을 이해하고 나면 피상적으로 알고 있는 오온이라든지, 연기에 대해서 확신이 생기게 됩니다. 저는 고등학교 때부터 불교를 접했고 오온연기, 12연기에 대해서 어느 정도 확신이 생기고 부터는 불교에 대한 확고한 신념이 생겼습니다. 대학 시절부터 평생동안 고민했던 부분중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한 것이 오온연기, 12연기입니다. 그냥 말로 이해하고 알아지는 것이 아닙니다. 

부처님은 10살 때부터 왜 죽어야만 하는가? 이 문제를 고민했습니다. 젊은 시절부터 그 문제를 고민했고 또 출가를 해서 도를 이루었을 때가 35살입니다. 그 긴 시간 동안 고민을 한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물음이 경전에서 알고 있는 그 정도의 내용이라면  다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전부가 아닐 것이다. 하는 생각이 저의 가장 큰 고민거리였습니다. 긴긴 시간의 고민 끝에 오온연기에 대해서, 12연기에 대한 개념들이 인식된 것입니다. 


부처님의 은혜 

부처님의 은혜가 얼마나 크고 깊은지 모릅니다. 느끼는 만큼 느끼듯이 부처님의 은혜는 세세생생 갚아도 다 못 갚습니다. 이렇게 엄청난 가르침을 오늘 우리는 배우려고 합니다. 저도 이 부분에 대해서 나름대로 깨달음이 오는 데는 오랜 시간이 걸렸고 그리고 이 부분에 대한 인식을 쉽게 이야기하기에는 망설여지는 부분입니다. 무엇보다 난해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불교를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거시적인 부분은 이해하기가 쉬운데 세밀하게 들어있는 원리의 설명 부분은 이해가 어려운 것입니다.  그래서 12처 18계를 이해하고 나면 육육법연기와 오온연기를 이해해야 합니다. 육육법연기는 시간에 대한 연기이고 오온연기는 공간에 대한 연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꺼번에 어려운 부분을 다 이해시키고 가르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하나 이해할 수 있도록 시간에 대한 연기를 가르치시고 공간에 대한 연기를 가르치시고 그 다음 시간과 공간이 통합된 12연기를 가르치십니다. 

부처님 당시 뛰어난 사상가인 회의론자 산자야의 회의론을 어떻게 깨트릴까? 궁극적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모든 것을 다 부정해도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가 있습니다. 서로 보고 이야기 하고 있는 ‘나는 있다’ 는 것은 눈으로 인식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은 ‘나는 있다’를 인식할 수 있는 것에서  출발합니다. 우리가 불교를 이해할 때 모든 것은 존재에 대한 인식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부처님은 산자야의 회의론을 극복하는 과정에서 존재에 대한 인식론인 연기의 가르침이 나왔습니다.


이야기의 출발점은 존재입니다. 존재에 대한 인식이 무상이고 무아입니다. 이 존재를 근본적으로 회의하고 있는 상황에서 존재하고 있다고 인식하는 것은 무엇인가? 부처님이시여! 불교가 무엇입니까? 하고 제자들이 물었을 때 부처님께서 “12처가 불교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육경과 육근이 바로 12처입니다. 12처의 내용은 6근과 6경입니다. 우리 몸을 관찰해 보니 어떤 사물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를 한문으로  ‘근根’이라고 합니다. 여섯 개의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가 6근입니다.  


안眼

나가 있다는 것을 따져보니 먼저 눈을 통해서 외부적인 사물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나는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가 했을 때 안이비설신의입니다. 불교방송국이 어떻게 생겼는가?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눈이 있어서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눈이란 바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중 하나입니다. 나를 이루는 것을 분석해보니  바로 볼 수 있는 눈이 있습니다.


이耳

그 다음에는 귀가 있습니다. 서로 이야기를 하면 들을 수 있지요. 귀가 있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인식 능력체가 바로 귀입니다. 만약 달나라에 갔을 때는 귀가 있어도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공기가 소리를 전달하는 매개체인데 달나라는  진공입니다. 공기가 없습니다. 그래서  매개체가 없어서 소리를 들을 수가 없습니다. 귀가 있음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가 있어서 다른 사람과 이야기를 할 수 있고, 소리도 들을 수가 있습니다.


비鼻

그 다음 코가 있어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는 향기로운 냄새가 나고 때로는 안 좋은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은 코가 있기 때문입니다. 코는 냄새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입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체가 있어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설舌

그 다음에 혀가 있습니다. 혀는 말도 하지만 맛도 봅니다. 된장찌개를 먹으면서 맛이 있다, 없다할 때 혀에서 맛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이 없다면 맛이 있는지 없는지를 알 수 없습니다. 일단 혀를 지나 식도를 통과하면 영양가 있는 것이 최고인데 혀에 딱 걸려서 맛도 있어야 하며 영양가도 있어야 통과를 합니다. 이와같이 혀라는 것은 맛을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입니다. 


신身

눈.귀,코,혀 외에도 또 있습니다.  ‘신’ 우리 몸입니다.  몸에 의해서 촉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 누가 옆에 있어서 만질 때 아! 촉감이 좋고 기분이 좋습니다. 이와같이 누가 옆에서 만질 때 이 몸뚱이는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체입니다. 그래서 ‘나는 있다’ 했을 때 나는 무엇인가? 바로 눈이고 코이고 귀이고 혀이고 몸이고 이것으로부터 인식되는 것이 나가 됩니다. 안이비설신의까지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위대성은 ‘근’이 5근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하나 더하여 6근이 되는 ‘의’ 때문입니다.


의意

무엇인가를 하려는 의지,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식하려고 하고 능력인 ‘의’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눈은 보는 능력만 있지 보는 것에 대해서 판단하고 보는 것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것은 없습니다. 귀도 똑같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능력만 있지 그 소리를 듣고 내가 어떻게 해야겠다고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코도 똑같습니다. 냄새를 맡을 수 있는 능력은 있지만 그 냄새를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은 코에는 없습니다. 혀도 똑같습니다. 맛은 느낄 수 있지만 그 맛을 인식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체는 없습니다. 몸뚱이도 똑같습니다. 좋다고 촉감을 느끼는 것은 실질적으로 이 피부에 닿는 그 촉감을 어떻게 인식하고 어떻게 판단하느냐 하는 총괄적인 능력체인 “의”가 있는 것입니다. 


6경에 대한 이해 

실제로 외부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것은 안이비설신의까지입니다. ‘의’가 6근에 들어갑니다. 불교는 의로부터 출발합니다. 이 몸뚱이는 위대한 업적을 남기기도 하고 어떤 경우에는 탐욕에 빠지기도 하는 것이 모두 ‘의’에서 나오는 결과입니다. 몸뚱이를 이루고 있는 5근에 하나 더 붙여서 ‘의’를 생각해 내고 ‘의’는 바로 불교를 태동시키는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내용이 됩니다. 

6식에서 몸뚱이를 이해할 수 있는 것은 5근입니다. 5근에 하나를 더한 6근에서 6식이 나오고 6식에서 7식과 8식으로 나누어집니다. 

8식은 아뢰야식입니다. 장식에 의해서 죽고 난 다음 생에 나를 결정하는 유전자가 아뢰야식 8식입니다. 나의 업이 바로 8식 아뢰야식에 저장됩니다. 그래서  6식에서 8식으로 넘어가는 7식은 우리 내부에 존재하는 잠재의식입니다. 꿈을 꾼다든지 내가 가지고 있는 잠재의식의 세계가 바로 7식이 됩니다. 

나라는 것을 인식할 수 있는 여섯 가지 능력체가 6근입니다. 눈으로 대상을 볼 때 대상을 인식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부처님은 저렇게 누렇게 생겼구나 할 때 이것을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눈에 대상이 보이기 때문에 우리 눈은 인식 할 수 있습니다. 이 6근에 대해서 대응하고 경계하고 인식할 수 있는 색성향미촉법의 6경이 있습니다. 


색성향미촉법

눈을 통해서 모든 사물을 볼 수 있습니다.  눈으로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을 색이라고 합니다.  6근은 필연적으로 인식할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고 6경은 보여지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6경을 색성향미촉법色聲香味觸法이라 합니다. 색은 우리 눈을 통해서 보이는 대상입니다. 눈을 통해서 보이는 대상이 색이 됩니다. 

귀는 소리가 있어서 들을 수 있습니다. 눈에는 보이는 대상을 색이라 하고 귀에는 들리는 대상을 성이라 하며 소리가 있기 때문에 들을 수 있습니다. 코는 향기를 맡는다 했는데 즉 코의 대상이 되는 향이 있습니다. 그 다음 혀는 “미” 맛이 있다 혹은 맛이 없다 하는 혀로써 맛을 느낄 수 있는 대상이 있습니다. 몸은 부딪치므로  촉각을 느낍니다. 5근의 대상 색성향미촉은 바로 5경입니다. 이 의지 “뜻”에 대상이 되는 것을 부처님께서 법이라고 정의합니다. 이 우주에 존재하는 대상들이 결국 법이 됩니다. 


12처가 불교다 (그림)

부처님께서는 불교란 무엇인가를 물었을 때 ‘연기다’ 즉 ‘12처가 불교다’입니다. 12처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바로 나입니다. ‘의’와 ‘법’을 무아다, 무상이다, 연기다 했을 때 이 모든 것은 연기이고 사성제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이 부처님 당시입니다. 불교가 무엇인지를 모를 때 근본적으로 부처님께서 인식시킨 것은 “나가 있다” 입니다. 나라는 존재는 6근으로 이루어졌으며 6근이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바로 색성향미촉법입니다.

나를 중심으로 안이비설신의가 있고 내가 인식할 수 있는 대상이 6경입니다. 우리는 눈으로 볼 수 있고 귀로 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코로 냄새를 맡을 수 있습니다. 혀로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몸으로 감촉을 느낄 수 있습니다. 법은 의지로써 ‘의’에 의해서 존재하는 원칙들을 인식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적으로 ‘12처가 존재한다’에서 출발합니다. 

나가 있다는 것은 바로 인식을 통해서 아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대상을 통해서 귀로 들리는 소리를 통해서 나가 있다 를 인식합니다. 나로부터 출발했을 때 모든 것은 6근과 6경을 통해서 인식이 되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출발점은 인식으로부터 시작해 보라는 것입니다.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죄를 지었다 착한 일을 했다하는 이런 행위를 두고 만약 인간을 신이 만들었다면 모든 책임은 신에게 있습니다. 신을 접어두고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인식은 부처님께서 설명한 가장 위대한 ‘의’입니다. 


출발의 시작점은 “나”

인식으로부터 출발했을 때 죄악이라든지 죄악에 대한 책임은 신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에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의 출발은 자신의 의지인 ‘의’로부터 출발했기 때문에 자기 자신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이것은 상당히 중요한 내용 입니다. 모든 죄의 근원은 내게 있기 때문에 누가 내 죄를 사해 주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의 의지, 뜻에서 출발합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입니다. 

여기서 인연과의 법칙이 나오게 됩니다. 결국 존재는 인식입니다. 인식으로부터 모든 것이 출발합니다. ‘있다’ 했을 때 무엇이 있는가 눈을 통해서 보이기 때문에 있는 것입니다.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 보이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대상이 있어 보이는 것이 내용이 됩니다. 그러니까 눈을 통해서 무엇인가 보이기 때문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눈을 통해서 나의 존재를 인식하는 것입니다. 

소리가 들리니까 내가 존재하고 냄새를 맡을 수 있는 것입니다. 신체의 접촉을 통해 나의 존재를 인식하고 촉감을 느낄 수 있으므로 나는 존재합니다. 그러면 나는 누구냐 무엇이 존재하느냐 했을 때 인식이 존재하기 때문에 인식을 통해서 내가 있는 것입니다. 


심의식

여기서 불교가 쉬우면서도 어려운 것은 인식으로부터 출발하기 때문에 우리는 생각하지 않고서는 불교를 이해 할 수 없습니다. 기본적으로 ‘의’를 설정했습니다. 또 불교는 마음의 종교다. 마음심(心)을 말합니다. 

불교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이 마음과 의지 식입니다. 


12처에는 법칙이 있는가

나는 보니까 있고 들으니까 있고 냄새를 맡으니까 있고 혀를 통한 맛을 느끼니까 있고 몸을 통해서 촉감이 있어서 느낍니다. 이것이 바로 나입니다. 그래서 12처설은 나를 이루고 있는 여섯 가지를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인 안이비설신의 6근과 대상이 되는 6경의 경계인 색성향미촉법을 합하여 12처가 됩니다. 

 예를 들어 동물들 중에 네 발 달린 동물도 있고 눈이 없는 동물도 있을 것이고 소리를 듣지 못하는 동물도 있을 것이고 또 촉감만 느낄수 있는 동물도 있을 것입니다. 인간은 5근으로 세분화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세분화가 덜 된 생명체 중에는 다섯 가지 중에 어느 하나만 있는 것, 두세 가지가 있는 것, 인간과 같이 최고로 세분화하는 동물은 다섯 가지 ‘근’을 가지고 있습니다. 식물도 그 자체로 볼 때는 있을지 몰라도 우리가 인식할 때는 몸만 가지고 있습니다. 결국은 식물도 근 중에 하나만 발달된 것입니다. 동물로 진화되면 대부분 이 다섯 가지를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불교는 12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의식할 수 있는 능력체 여섯 개와 인식할 수 있는 능력체에 보이는 대상인 여섯 개는 6경으로 합해서 12처니라. 이 12처의 존재 법칙이 연기법칙입니다. 이것을 바탕으로 인식이 나옵니다.  


부지런히 애써고 노력하라

오늘은 부처가 되는 가장 소중한 12처를 구체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한번 생각해 보세요. 공부가 재미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누구도 공부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공부가 하기 싫지만 조금씩 조금씩 해야겠다고 생각하는 것이 정진이라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돌아가실 때 제자들에게 한 말씀이 끊임없이 애쓰고 노력하라고 부탁합니다. 노력하는 만큼 빛나고 아름다운 삶이 됩니다. 그 결과가 좋을 수도 있고 나쁠 수도 있습니다. 백 년으로 볼 때 조금은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고 더 벗어날 수 있지만 수십억 겁의 눈으로 볼 때는 아무것도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끊임없이 노력하고 애쓰는 것이 결국 이 세상을 아름답게 하는 것입니다. 우주를 아름답게 하는 광명입니다. 끊임없이 애써고 노력하는 것 만큼 아름다운 것은 없습니다.


6근과 6경의 활동영역 

부처님께서 중부 니까야 경전과 잡아함 334경에서는 12처를 6근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6근을 설명하기까지는 상당히 시간이 걸립니다. 제일 먼저 인식시키려고 한 것은 5근입니다. 

기본적으로 안근, 이근, 비근, 설근, 신근은 서로 다른 다양한 경계와 행처行處가 있어서 다른 것의 활동 영역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즉 눈을 통해서 보기만 하지 눈을 통해서 듣지는 못합니다. 냄새를 맡을 수가 없습니다. 자기 나름대로 경계가 있어서 자기가 인식할 수 있는 부분만 인식합니다. 눈은 보이는 작용을 하고 귀는 들리는 작용을 합니다. 눈으로 소리를 못 듣습니다. 다른 영역은 인지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설명입니다. 바로 눈으로 소리를 듣지 못한다는 이야기입니다. 


이와같이 5근의 의지체는 무엇이며 활동영역을 인지하는 자는 누구인가? 이렇게 부처님께서 묻습니다. 분명히 5근은 인식 할 수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5근은 누구든지 인식할 수 있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5근인 눈은 볼 수만 있고 귀는 들을 수 있는 능력만 있고 코는 냄새 맡을 수 있는 능력만 있고 몸은 촉감을 느낄 수 있는 능력만 있다고 설명한 후 5근의 의지처는 무엇인가? 그들의 활동영역을 인지하는 자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분명히 눈을 통해서 봅니다. 모든 것을 인식합니다. 이 눈을 통해서 인지하는 자 누구인가? 6경에 대한 이해를 제자들에게 인식시키는 것이고 5근은 무엇에 의지하는지 5근의 뿌리를 설명하였습니다. 존자여 5근의 의지처는 의이며 이 의로 돌아갑니다. 그래서 5근의 의지처는 의이며 의가 그들의 활동 영역인 것입니다. 눈만 있어서 대상을 보면 아무런 인식을 못합니다. 눈은 보는 작용만 갖고 있지 보는 작용에 대한 인식능력은 없습니다. 그러면 누가 인식하느냐 바로 의가 합니다. 불교의 가장 위대한 탄생이 이루어집니다. 5근을 통습하고 있는 것은 바로 의입니다. 이 5근을 통습하고  5근의 활동영역을 인지하는 5근의 의지처를 부처님은 ‘의’라고 설명합니다. 5근을 넘어서 6근이 인식됩니다. 5근은 그들의 활동영역을 인지합니다. 

‘존자들이여, 5근인 안근, 비근, 이근, 설근, 신근은 무엇에 의지하여 머무는가?’ 하고 부처님께서 묻습니다. 5근은 수명에 의지해서 머뭅니다. 즉 내가 죽으면 5근도 없지요. 바로 5근은 살아있는 것에 의지하여 머뭅니다. 결국은 살아있기 때문에 5근이 있고 5근이 뿌리가 되어 6근에 의해서 인식 할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안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잡아함경 334경의 내용들은 미시적 내용이고 거시적 내용으로 우리의 이해를 돕고 있습니다. ‘안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여기서 안, 눈이란 무엇인가? 인연과를 생각하면 됩니다. 어떤 것이 안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바로 안은 업이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됩니다. 나의 전생에 생긴 업에 의해서 눈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업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업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업은 애가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결국 우리가 살아가는 뿌리는 애욕입니다. 이것은 손으로 만져지는 것을 통틀어 애욕이라 합니다. 이 몸뚱이를 이루는 근간은 애를 짓기 때문에 업을 짖게 됩니다. 

애는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애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애는 무명이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바로 무명 때문에 애가 생긴다. 애욕이 생기는 것입니다. 무아와 무상을 인식하지 못하는 것이 무명이므로 바로 애욕이 생깁니다. 

무명은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무명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무명은 부정사유가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된다. 8정도에서 바르게 보아라 하는 ‘정견’, 정견을 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이 정사 바르게 생각하라입니다. 무명이 왜 생기는가? 정사유를 못하는 부정사유 때문에 무명이 생깁니다. 바르게 생각하면 무명을 깨칠 수가 있습니다. 바르게 생각하지 못하면 무명이 됩니다. 여기서 무명을 깨트리는 것은 정사입니다. 

부정사유는 인이 있고 연이 있고 속박이 있다. 어떤 것이 부정사유의 인이 되고 연이 되고 속박이 되는가? 색을 연하여 생긴 부정사유는 어리석음 치,를 낳는다. 바로 색성미향촉법에서 우리 눈에 보이는 모든 대상은 색이라 합니다. 이 색에 의해서 보이는 대상들이 사는 것입니다. 나로 하여금 치가 생기게 됩니다. 색을 연하여 생긴 부정사유가 치를 낳는다. 이 치가 무명이다 치심으로 추구하는 욕을 애라고 한다. 애가 짓는 행위를 업이라 한다. 거꾸로 다시 우리가 이해하기 쉽도록 설명해 놓은 것입니다. 


12처와 18계 

이것이 구체적으로 6근과 6경 12처를 이해하는 것이며 거시적으로 배웠던 존재, 무아, 무상, 무명은 육근과 육경에서 나오게 됩니다. 그 다음 12처설 중에서 안이비설신의에 대한 색성향미촉법이 있습니다. 보이는 내용이 색이지만 성은 들리는 작용이고 향은 냄새를 맡는 작용이고 미는 맛을 느끼는 작용이고 촉은 촉감을 느끼는 작용입니다. 색은 눈을 통해서 보는 정신적인 작용, 보는 작용이 안색으로 작용하고 이 작용에 대한 인식이 안식, 이식, 비식, 설식, 신식, 의식이 됩니다. 거기에서 12처가 18계로 가는 것입니다. 안과 색이 결합하여 인식작용인 식이 생깁니다. 우리가 의식이 있다 없다 했을 때 의식이 없으면 죽는 것이지요. 여기까지 식을 통틀어 18계라 합니다. 12처의 마지막 ‘의’ 또는 의지, 이것의 대상이 되는 것이 법으로 바로 생각입니다. 의는 생각으로부터 의지가 생깁니다. 생각하는 작용, 의지를 통해여 정신적인 작용을 법이라 하고 생각하는 작용이 의와 법입니다. 이것을 통합하는 작용이 인식작용입니다. 12처를 통해서 종합하고 인식하는 작용이 생깁니다. 우리는 6근을 통해서 의지적인 행동을 하고 존재를 합니다. 6근의 대상인 6경은 필연적인 반응을 일으킵니다. 인식내용으로 존재하는 것이 바로 6경입니다. 6근과 6근에 대한 인식하는 내용으로 존재하는 6경, 안이비설신의, 색성향미촉법 이것이 12처입니다. 


의지적 작용과 필연적 반응 

모든 것을 12처라 했을 때 12처에 6근은 의지적 작용의 속성을 갖고 6경은 필연적 반응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의지적 작용이란 우리는 볼려고 하고 들을려고 하고 촉감을 느끼려고 하는 의지적 반응의 속성을 갖는 것은 6근이며 6경에 대하여 필연적 반응의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인연과를 이야기할 때 나는 인이고 연은 나를 둘러싼 대상입니다. 결국 내가 원하는 쪽으로 이끌어갈려고 하는 의지적인 작용을 하고 의지적 작용에 의해서 주위에 있는 대상은 필연적으로 반응하는 속성을 갖고 있습니다. 내가 깨끗하고 맑은 생각을 갖고 있으면 주위가 맑게 따라오고 내가 탁하고 악한 생각을 갖고 있으면 주위는 탁하고 악하게 됩니다. 이것이 인이고 연이고 그것들이 합당한 과를 낳게 됩니다. 12처인 6근과 6경이 합해서 연기를 태동시키고 기본내용이 나옵니다. 여기서 재미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6근 6경, 삼법인의 속성을 말씀하십니다. 삼법인이 무엇입니까? 6근과 6경이 가지고 있는 기본적인 속성은 무아이고 무상이고 고입니다. 12처가 무엇인가? 이것은 끊임없이 변하여 나라고 하는 것이 하나도 없느니라. 삼법인의 속성이 6근과 6경을 갖고 있더라. 그래서 모든 것은 12처니라. 이것을 바탕으로 18계를 공부하고 육육법연기, 오온연기인 12연기를 배운다고 했습니다. 


천안, 혜안, 법안 

금강경에는 불안이 있느냐 천안이 있느냐 혜안이 있느냐고 부처님이 제자들에게 묻고 제자들은 불안이 있고 천안이 있고 혜안이 있습니다. 라고 합니다. 초기 경전에서는 무엇을 불안이며 천안이며 혜안이라 했습니까. 일반적으로 6근과 6경에 대한 인식으로 우리 눈으로 보는 것은 육안, 삼법인의 속성으로 인식하는 것은 천안이라 합니다. 육육법 연기를 인식하고 나면 혜안이 열렸다고 하고 오온연기를 이해하고 나면 법안이 열렸다고 합니다. 12연기를 이해하면 부처님께 불안이 열렸다고 합니다. 바로 부처가 됩니다. 

색성향미촉법은 12처입니다. 

세세생생 살아가면서 내가 지었던 모든 업의 덩어리가 몸뚱이임을 알게 된 것입니다. 어째서 요만큼의 몸뚱이 밖에 되지 못했을까? 좀더 클 수도 있고 작아질 수도 있었는데 왜 이렇게 밖에 되지 못했는가 하는 것은 오온연기에서 그 원인이 밝혀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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