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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강 부처님의 10대 제자(가섭, 사리불, 목련, 수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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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326회 작성일 21-07-22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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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0강 부처님의 10대 제자 

(가섭, 사리불, 목련, 수보리)



 반갑습니다, 한 주 잘 계셨어요? 

눈뜨자마자 내가 부처라는 생각을 하셨습니까? 대답이 시원찮습니다. 

내가 부처라는 생각을 하시고 30분 정도 참선도 하시고 108배 참회도 하면서 하루를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에 있어서 10대 제자들을 남겨놓고 다 배웠습니다. 오늘과 다음 주면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에 대한 대단원을 마치게 됩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깨치고 나서 전도를 하셨는데 그 전도 과정에서 가장 큰 역할을 했던 10대 제자들이 있습니다. 부처님과 더불어 지극하게 살아가신 이 10대 제자가 있어서 불교가 오늘 날까지 전해져 내려올 수 있었던 것입니다. 


두타제일 가섭

 10대 제자 앞에는 ‘제일’이 붙어 있습니다.  

 먼저 두타 제일 가섭, 가섭은 부처님의 맏제자로 부처님이 돌아가시고 난 뒤 법이 가섭에게로 이어집니다. 가섭 다음에는 아난한테로 이어집니다. 가섭은 바라문 출신으로 대부호의 외동아들로 태어나 부모님의 청에 못 이겨 결혼을 하게 됩니다. 어려서부터 철학적이고 사색을 좋아해서 바라문의 경전 베다도 정통했고 많은 공부를 합니다. 그래서 평생 수행자로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인도 사회에서는 자식이 없으면 재산이 모두 나라에 귀속되니까 부모님 청에 못 이겨 20세에 결혼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36살에 가섭을 만나는데 그때 가섭의 나이가 32살입니다. 20세에 결혼해서 부처님을 만나는 32살이 될 때까지 12년 동안 부부생활을 하지 않고 살아요. 결혼하는 첫날 가섭은 부인에게 말합니다. 나는 평생 수행자로서 살고 싶다. 부모님의 권고에 의해 결혼은 하지만 형식적인 결혼을 허락한다면 결혼해서 같이 살고 허락하지 않으면 같이 살 수 없다고 하니까 부인이 허락을 하여 같이 살게 됩니다. 부인도 가섭과 비슷했어요. 그래서 가섭은 결혼하고 12년 후에 부처님을 만나 출가할 때 부인도 같이 출가합니다. 가섭은 많은 수행자 중에서 가장 귀감이 되는 사람입니다. 가섭은 평생 다른 사람이 입다 버린 옷을 기워 입었어요. 즉 분소의만 입고 살았습니다.

 부처님께서 80세가 가까워질 때 말년의 가섭에게 말합니다. 

 “가섭아, 이제는 분소의를 입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또 가섭은 무덤가에서 앉아서 평생 눕지 않고 수행을 했습니다. 

 “그 노구를 이제는 편안하게 해 주어도 되지 않느냐? 하고 가섭에게 권합니다. 가섭이 부처님께 

 “부처님이시여, 제가 죽을 때까지 이렇게 수행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저는   평생 부처님을 모시고 한생을 잘 살았는데 죽을 때가지 이렇게 살아서 후대의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고 싶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가섭은 부처님의 법을 평생을 실천하는데 가장 빛나게 하는 제자 중의 한 사람입니다. 세세생생 살아가면서 가섭과 같은 수행자는 두 번 다시 없을 만큼 철저한 수행자입니다. 부처님과 같이 모든 것을 다 갖추는 분도 귀하겠지만 가섭과 같이 뛰어난 수행자도 어느 생에 만날 수 있겠습니까? 부처님 경전에 보면 가섭이 매우 뛰어났어요. 가섭이 부처님께서 오랫동안 살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한 말로 

 “저에게는 두타 행을 닦는 것이 즐거움입니다.” 

 무덤가에서 소박하게 평생 살아가며 수행을 하는 것이 즐거움이라고 합니다.

 “비록 늙은 몸으로 부처님을 뵈었지만 이 무거운 옷을 입고 하루 한 끼를 먹으며 밤새도록 무덤가에서 선정에 든 지도 30년이 넘었습니다. 부처님을 처음 뵈었을 때 젊고 당당했는데 이제 부처님께서도 많이 늙으셨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무거운 분소의를 입고 무덤가에서 수행하다가 죽는 것이 저의 소원입니다. 저는 도를 닦아 탐욕을 줄이고 또 만족함을 알고 또 조용히 걸으면서 생각에 잠기기도 하고 선정에 들기도 하며 쓸데없는 이야기를 피하여 홀로 수행하는 것이 저의 기쁨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비록 제가 나이가 들었지만 이 같이 도를 닦는 것은 저의 즐거움이며 또한 후세의 사람들에게 도를 닦는 즐거움과 도를 닦는 기준을 알리고 싶은 까닭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가섭의 뜻을 받아들여 원하는 대로 하라고 허락을 합니다. 

 “가섭이여! 너야말로 후세 사람들의 등불이로다. 많은 사람들이 너로 인하여 도를   이루어 안락을 얻을 것이다. 가섭이여, 너의 뜻대로 두타행을 계속해도 좋겠구나.”

  부처님께서 늙은 가섭한테 허락을 합니다. 구체적으로 가섭이 어떻게 살았는지 교재 1번에서 12번에 있지요. 이렇게 산 것이 평생 가섭의 모습입니다.

 과연 수행자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어느 종교든 종교가 풍요로워지면 결국 타락하게 마련입니다. 평생 가섭이 갖고 있었던 것은 옷 세벌입니다. 수행자의 삶이라는 것은 철저하게 살 수 있을 때 수행자로서의 능력을 십분 발휘할 수 있을 것입니다.


 첫째, 재아란약처 ‘마을과 떨어진 산림 속에서 산다.’

 둘째, 상행걸식 ‘언제나 탁발 걸식한 음식을 먹는다.‘

 셋째, 차제걸식 ‘걸식하는데 빈부의 집을 가리지 않는다.’ 유마경에 보면 유마가 병이 나서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모두 유마의 병문안을 가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모두 유마에게 한번씩 당한 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차제걸식하면 아난과 가섭이 걸식에 대한 일화가 있습니다. 금강경에 보면 부처님께서 아침에 일어나셔서 발우를 들고 걸식하러 가시는데 차례대로 일곱 집을 빕니다. 가섭은 가난한 집을 찾아서 일곱 집을 가고 아난은 부잣집만 찾아가서 걸식을 합니다. 

 “가섭아, 왜 너는 가난한 집만 찾아가서 걸식을 하느냐?” 하니까 가섭은 “가난한 사람에게 다음 생에는 좀 더 잘 살수 있도록 복 지을 기회를 주기 위해 가난한 집만 간다.”고 합니다.

 “아난아, 왜 너는 부잣집만 찾아가서 걸식을 하느냐?” 하니까 가난한 집은 이 생에서 먹을 것이 없어 힘 드는데 내가 가서 빌면 더 배가 고프기 때문에 먹을 것이 넉넉한 부잣집에 가서 빌면 낫지 않겠느냐 합니다. 

우리가 걸식한다는 것은 부잣집이나 가난한 집하고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순서대로 걸식을 하면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같이 공감할 수 있고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같이 공감할 수 있는 상황인데 나름대로 각자의 생각대로 걸식하다가 유마한테 혼이 난 것입니다. 여기서 차제걸식이란 걸식함에 있어 빈부를 가리지 않고 순서대로 합니다. 


 넷째, 수일식법 ‘하루 한 끼만 먹는다.’ 수행자가 지켜야 가장 중요한 덕목인 수일식법은 하루 한 끼만 먹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아침에 걸식을 하셔서 약 열시쯤에 한 끼를 드시면 오후불식입니다. 음료수는 드셔도 오후는 아무것도 먹지 않습니다. 

 다섯째, 적량식 ‘수행하기에 적당한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 양의 음식만 먹는다.’ 음식을 맛있게 배불리 먹는 것이 아니라 몸을 지탱하기 위한 최소 양의 음식만 먹는 것입니다. 

 여섯째, 정후부덕음장 ‘중식 이후에는 음료수를 마시지 않는다.’

 일곱째, 착폐납입 ‘세속에서 버린 옷들을 기워 입는다.’ 이것이 분소의입니다.

 여덟째, 단삼의 ‘옷은 세벌 이상 가지지 않는다.’ 수행자가 갖고 있는 최고의 재산은 발우 하나, 옷 세벌 뿐입니다. 평생 옷 세벌 이상 가지지 않은 사람이 가섭입니다. 다른 제자들은 보시 들어오는 좋은 옷과 음식을 얻는 것에 비해 가섭은 보시 들어오는 모든 것을 거부했습니다.

 아홉째, 총간주 ‘잠을 잘 때는 무덤 사이에서 잔다.’ 가섭이 평생 수행하면서 지킨 상황입니다. 

 열번째, 수하지 ‘수행할 때는 나무 아래에서 잔다.’ 여기 나오는 내용을 우리가 과연 수행하면서 얼마나 지킬 수 있을까? 공부하는데 비해 견성하기 어렵다는 것은 교리를 제대로 알아야 견성할 수 있는 길이 쉽게 열리는 부분도 있겠지만 수행하는 방법에 있어서도 본질적인 문제를 한 번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것입니다. 수행을 나무 아래에서 하는 것과 방에서 하는 것을 생각해 보세요. 나무 아래에서 한다면 이 자연과 더불어 호흡을 같이 할 수 있어요. 아마 이런 방법들이 수행함에 있어 새롭게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아닌가 싶어요.

 열 한 번째, 노지자 ‘여러 곳으로 옮겨 다니지 않고 한 곳에 앉아 지낸다.’ 결국 돌아다닌다는 것은 정신적으로 산만해지기 때문입니다. 공부하려고 마음을 먹는다면 한 곳을 정하여 거기서 평행 지낸다면 공부도 되고 수행도 되어 다 이루어질 것인데 그러지 못하니까 돌아다닙니다. 


 20세기 최고의 성자라고 일컫는 마하리쉬도 17살인 고등학교 때 영감이 와서 그 길로 집을 나가 마을에서 약 50리쯤 떨어진 마루차루타 산에서 평생을 삽니다. 평생을 수행하다가 열반에 드는데 20세기 성자 중의 한 명으로 꼽습니다. 이 분이 수행할 때 4년 동안 선정에 들어 쥐들이 다리를 갉아먹어도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수행은 우리가 지금 갖고 있는 분별망상을 뛰어넘고 오로지 수행을 하겠다는 순수하고 지극한 마음만 있으면 어떤 상황에서도 수행할 수 있는 것입니다. 수행이라는 것은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리를 깨치는 데는 시대도 상관없고 때와 장소도 상관이 없습니다. 내가 얼마만큼 그 문제에 심각하게 빠져들 수 있을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것입니다. 진리를 추구하는 문제에 대해 내 자신을 내던질 수 만 있다면 시대와 장소에 관계없이 언제든지 수행할 수 있습니다. 지극하고 끝없는 마음이 중요한 것입니다.

 

  열 두 번째, 반좌불와 ‘잘 때도 누워서 자지 않고 좌선하는 자세로 그대로 잔다.’ 가섭이 평생 누워 자지 않았다는 것이 이것입니다. 무덤가에서 잔다는 것은 한 두 시간 정도 자도 참선하는 자세로 그대로 앉아서 자는 것입니다. 눈이 떠지면 그대로 참선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평생 가섭의 모습입니다. 

 

  이와 같이 12가지를 평생을 살아가면서 지킨다면 수행자로서의 좋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 이 몸 받아 사는 동안에 하루라고 흉내를 낼 수 있다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지 않겠습니까? 지금도 깊은 산 속 절에 가면 달 밝은 밤에 나무 밑에서 몇 시간 앉아서 참선할 수 있는 조건이 되는 절이 많습니다. 마음을 내 본다면 언젠가는 기회가 주어지지 않겠어요? 우리가 앞에서 불교 공부할 때 인연성불이라고 했습니다. 공부할 수 있는 인연만 지어 놓으면 언젠가는 성불할 수 있습니다. 인연이라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그래서 연기공부를 앞부분에서 21시간을 공부했습니다. 불교가 갖고 있는 구조를 총망라한 것이 연기로 이것들이 다 인연성불입니다. 공부할 수 있는 인연만 지어 놓으면 언젠가는 성불하지 말라고 해도 좋은 도반을 만나 공부할 수 있는 기회가 오는 것입니다. 

저는 가섭의 12가지 수행방법을 읽으면 눈물이 납니다. 정말 이렇게만 살 수 있다면 무엇을 더 바라겠어요. 그래서 제자들이 

  “부처님이시여, 가섭은 어떻게 수행을 저렇게 잘 합니까? 가섭이 수행을 잘 할 수 있는 것은 어떤 인연으로 전생에 어떻게 살았기에 수행을 잘 합니까?”하고 묻습니다.

 부처님께서 그 많은 제자들을 모아 놓고 가섭이 수행을 잘 하는 전생인연을 설명합니다.


  옛날 과거세에 한 벽지불이 있었는데 그 벽지불의 이름이 다가라식이라고 합니다. 다가라식이라는 벽지불은 항상 파라나성에 머물면서 수행을 하고 있었습니다. 어느 해 흉년이 들어 파라나성에 먹을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수행자는 예나 지금이나 일곱 집을 돌며 걸식을 하는데 발우는 텅텅 비어있고 아무 것도 먹을 것이 없으니까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습니다. 그래서 다가라식이 텅 빈 발우를 들고 돌아서는데 그 마을의 제일 가난한 집의 사람이 벽지불이 측은하여 불러 피밥을 벽지불과 같이 나누어 먹습니다. 벽지불과 같이 피밥을 먹으면서 가난한 사람은 원을 세우는데, 원하옵건데 앞으로 이런 뛰어난 벽지불을 만나 진리의 말씀을 듣고 받들어 나도 벽지불과 같이 깨달음을 얻기를 원하옵니다. 또한 세세생생 지옥이나 악도에 떨어지지 않기를 원하옵니다. 그 때 벽지불인 다가라식은 부처님의 전생이고 벽지불에게 공양을 올린 가난한 농부는 가섭의 전생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가섭은 전생의 이런 인연으로 저렇게 수행을 잘 한다 하시면서 가섭의 전생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경전에 보면 자카다, 부처님과 제자들의 전생 이야기가 나오는데 참 재미있고 솔직합니다. 누구든 알고 싶은 것이 우리의 전생 문제인데 열심히 공부하고 수행하고 있는 제자들에게 부처님께서 이렇게 한 마디씩 전생에 어떤 인연으로 그 사람은 복 덕을 받고 수행을 잘 하는지 말씀해 주십니다. 바로 가섭이 이렇게 수행을 잘 하는 것이 부처님이 벽지불 시절에 수행하고 있을 때 그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깨달은 성자가 걸식을 못하고 돌아서는 그 모습에 측은한 마음을 내어서 피밥을 나누어 먹었고 벽지불의 단아하고 청아한 모습을 보고 원을 세웠습니다. 그 원으로 그 나라에서 가장 부유한 바라문의 집안에 태어나 세세생생 수행을 잘 하는 수행자가 됩니다. 

 원이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아십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세요.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은 업과 인과에 의해 만들어지지만 업과 인과를 움직이는 가장 큰 동력은 자신이 갖고 있는 것입니다. 왜 눈 뜨자마자 ‘내가 부처다, 이 생에서 꼭 부처 이루어야겠다.’ 는 생각을 꼭 하라고 하겠어요. 그 원 때문에 부처되지 말라고 해도 되는 것입니다. 그만큼 원이 중요합니다. 가섭의 이 원이 결국 세세생생 최고의 수행자의 귀감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눈물나는 이 가섭의 일생은 세세생생 시대를 초월하여 수행자의 가장 좋은 귀감이 될 겁니다.

 부처님의 교단은 참 재미있습니다. 결국 가섭이 부처님의 법을 이어받고 그 다음은 아난이 법을 이어 받습니다. 아난으로부터 시작된 맥이 계속 이어집니다. 석가족으로 많은 친족도 있는 아난은 따르는 무리도 엄청 많습니다. 부처님 교단을 이끌어가는 가장 큰 세력을 이루게 됩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들의 삶을 보면 한결같이 순수하고 지극합니다. 10대 제자들은 모두 어떤 부분에서는 제일입니다.  


지혜제일 사리불

 지혜 제일 사리불, 사리불과 목련은 연기를 공부하면서 이미 배웠습니다. 그 당시 회의론자인 산자야의 뛰어난 제자였는데 결국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에서 부처님 보다 먼저 열반에 드는 제자가 두 사람 있는데 먼저 목련이 순교를 합니다. 이교도의 돌에 맞아 죽습니다. 우리 입장에서는 가슴 아픈 일이지만 부처님께서 목련의 전생의 인과 때문에 일어난 사건으로 뒷부분에서 다시 나옵니다. 그 다음 사리불도 부처님이 열반에 드시는 것을 도저히 못 보겠다면서 부처님께 청을 합니다.

 “부처님이시여,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저는 차마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먼저 열반에 드는 것을 허락해 주십시오.” 해서 부처님께서 허락을 해 주십니다. 사리불은 허락을 받아 고향에 돌아가 열반에 듭니다. 사리불의 마지막 열반에 드는 모습은 한 인간으로서 평생 수행 정진하면서 얼마나 순수하고 소박하게 열반에 드는지 보여 줍니다. 자기가 태어난 고향집 방에서 열반합니다. 노모가 살아계시는 고향으로 돌아가 어머니를 하루 즐겁게 해 드리고 열반에 듭니다.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인 사리불이 아무도 데리고 오지 않고 13살 난 사미 한 명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옵니다. 티 없이 순수한 마음으로 고향에서 자기가 태어난 방에서 열반에 듭니다. 이 사리불이 평생 수행한 것은 지금 공부 열심히 하는 우리에게도 힘이 생길 것입니다. 


 그 많은 자카타에 보면 여자가 남자 몸 받고 남자가 여자 몸 받는 경우는 잘 없는데 사리불의 전생은 여자입니다. 부처님께 어떻게 사리불이 수행을 잘 하는지 제자가 물을 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의 전생 이야기를 해 줍니다. 


 모든 비구들이여, 지난 과거세에 파라나성에 소필리아(선애)라는 사람과 그 여동생이 살았습니다. 돈독하게 수행하는 집안이라서 선애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벽지불이 되었습니다. 선애의 여동생도 외도로 출가하여 선을 닦습니다. 한번은 여동생이 오빠를 찾아가니까 오빠가 도를 이루어 벽지불이 되어 있습니다. 여동생은 많은 음식을 장만하여 손수 공양을 대접을 합니다. 그 때 칼 하나와 바늘 하나를 오빠에게 보시를 합니다. 그 벽지불은 공양을 끝내고 여동생이 준 칼 하나와 바늘 하나를 가지고 신통을 보이며 날아갑니다. 이 신통을 보  고 여동생은 크게 기뻐하며 좋아서 어쩔 줄 모릅니다. 여동생은 다음 같이 원을 세웁니다.  

 “원하옵건데, 나는 미래세의 이런 스승이나 더 나은 분을 만나 그가 설하는 법을 빨리 깨닫고 악도에 나지 않게 하고 내가 보시한 날카로운 칼이 무엇이든지 베듯이 끊고 베는 인연법으로 나는 미래세의 모든 번뇌를 끊고 도를 이루겠다.”


 오빠에게 보시한 칼이라는 것은 모든 번뇌 망상을 끊고 도를 이루겠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이렇게 지극한 원을 세운 그 벽지불의 여동생이 사리불의 전생이라고 합니다. 경전에 나오는 극히 드문 예입니다. 전생에 여자의 몸으로 있다가 남자 몸을 받아 부처님의 10대 제자가 된 지혜제일인 사리불입니다. 


 부처님의 아들 라훌라의 스승이 누구신지 아십니까? 출가하면 지도할 스숭이 있어야겠지요. 부처님 교단도 똑같습니다. 라훌라의 스승이 사리불입니다. 부처님이 그 많은 제자 중에서 얼마나 사리불을 믿고 총애했는지 아실 것입니다.


 사리불이 라훌라를 데리고 어느 부잣집에 공양 초대를 받아 갑니다. 사리불은 부처님의 대 제자니까 대접을 잘 받고 라훌라는 어린 사미니까 같이 앉아 대접을 받지 못합니다. 라훌라는 방에도 못 들어가고 바깥에서 음식 대접도 제대로 받지 못합니다. 절에 돌아왔을 때 부처님께서 묻습니다.

 “사리불이여, 오늘 공양 초대는 어떠했느냐?” 사리불이 

 “좋았습니다. 만족합니다.” 하고 이야기 합니다. 그 다음 라훌라에게도 묻습니다.

 “라훌라여, 오늘 공양 초대가 어떠하였느냐. 만족하느냐?”하고 묻습니다. 라훌라가 있는 그대로 이야기 합니다. 아직 어려서 있는 그대로 이야기합니다.

 “사리불 스승은 대접을 잘 받았는지 모르겠지만 저는 바깥에서 음식도 시원찮고 대접도 시원찮았습니다.”하고 말합니다. 미처 사리불은 생각도 못한 이야기 입니다. 라훌라가 사미라서 비록 방에는 못 들어오지만 음식 대접은 자기와 똑같이 받았으리라고 생각했는데 라훌라가 그렇게 말하니까 얼마나 미안했겠습니까?

 “부처님이시여, 저는 앞으로 절대로 누구의 집이든 공양에 응하지 않겠습니다.”사리불은 이 후로 죽을 때까지 어느 누구의 집에도 초대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가섭이나 사리불도 우리와 똑같은 의식을 갖고 있는 인간인데 이들의 수행의 기준을 보세요. 얼마나 순수하고 철저했는지 눈물이 날 지경입니다. 

3개월의 마지막 안거를 끝내고 칠월 백중 때 해제를 하고 유행을 떠납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제자들이 3개월간의 수행을 잘했는지 포살과 자자를 열고 길을 떠나게 됩니다. 그 때 갑자기 젊은 비구가 부처님께 말하기를 사리불이 자기를 비방한다고 큰소리칩니다. 부처님께서 그 이야기를 듣고 떠나는 제자를 다시 불러 모아 놓고 말합니다.

  “사리불이여, 네가 떠나자마자 얼마 안 있어 한 비구가 찾아왔다. 그 비구는 사리불이 자기를 모욕하고 비방했다고 하는데 그게 사실이냐?”하고 묻습니다. 

 부처님 당시 모든 사람에게 존경을 받은 사리불인데 그 자리에서 사리불이

 “부처님이시여, 저는 올해 나이가 팔십이 됩니다. 지금까지 살생을 한 기억도 없으며 거짓말한 적도 없습니다. 남과 다툰 일도 없습니다. 만약 제가 그런 말을 했다면 평생을 부처님 곁에서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지내지 못했을 것입니다. 오늘은 안거가 끝나는 참회의 날입니다. 저의 마음은 호수와 같이 투명합니다. 이러한 때에 제가 남을 가벼이 희롱한다는 것은 생각할 수도 없는 일입니다. 부처님이시여, 땅은 능히 모든 것을 참고 더러운 것을 받아들입니다. 땅은 즐거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받아들입니다. 오늘 저의 마음은 마치 이 땅과 같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산과 들을 태우는 불은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먼지를 쓸어내는 비 또한 좋고 나쁨을 가리지 않습니다. 오늘 저의 마음은 또한 이 비와 같습니다. 부처님이시여, 뿔을 잘린 소가 거리를 걸어서 온순하고 선량하여 다른 사람을 해치지 않는 것과 같이 오늘의 제 마음도 온순하고 선량하여 풀 한 포기도 해칠 마음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바른 생각 속에서 살고 있는 제가 어찌 다른 사람을 모욕하고 비방하겠습니까? 만일 제가 거짓말 하였다면 그 비구에게 참회하겠습니다.”


 그 때의 상황을 한 번 상상해 보세요. 많은 제자들이 사리불이 이야기하는 것을 듣고 얼마나 감동을 받았겠어요. 부처님께서 그 비구에게 묻습니다. 정말 사리불이 너를 비방하였느냐? 그 비구가 부처님께 무릎을 꿇으면서 

 “잘못했습니다. 아닙니다.” 하면서 너무나 거룩하고 순수하게 수행하는 사리불이 미워서 질투를 한 것이라고 고백합니다. 부처님께서 참회하는 것을 허락하느냐고 사리불에게 묻습니다. 사리불은 그 비구의 머리를 쓰다듬으면서

 “비구여, 참회는 불법 가운데 공덕이 가장 큰 것 중의 하나다. 잘못을 뉘우치는 것은 가장 아름다운 마음이다. 나는 그대의 참회를 기쁘게 받아들이니 다시는 그런 잘못을 범하지 마라.” 이렇게 사리불은 풀 한 포기도 다치지 않게 평생을 산 것입니다. 사리불이 부처님을 찾아가 무릎을 꿇고 

 “부처님이시여, 저는 열반에 들려고 합니다. 부디 허락해 주십시오,”

 어찌하여 그렇게 서두르는가 하고 사리불에게 부처님이 물으니

 “부처님이시여, 저는 부처님께서 가까운 장래에 열반에 드신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저는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는 것을 지켜볼 수 없습니다. 또 부처님께서 자주 말씀하셨듯이 과거의 부처님의 높은 제자는 반드시 부처님 앞에서 열반에 들었습니다. 저도 열반에 들 때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거두어 주십시오.”

 하면서 이야기합니다.

 “고향에는 아직 어머니가 살아 계십니다. 고향에 돌아가 어머니를 뵙고 제가 태어난 그 방에서 열반에 들겠습니다.”라고 청을 하니 부처님께서 허락을 하십니다. 그리고 떠나면서 벗들에게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저는 오래 전부터 어떻게 하면 부처님을 만나서 그와 함께 살 수 있을까 생각했습니다. 이제 저의 염원이 이루어져 이생에서 부처님을 만나게 된 것은 위없는 기쁨입니다. 지금 저에게는 이승을 떠나야 할 때가 다가왔습니다. 저는 머지않아 사바세계의 속박에서 벗어나 자재한 경지에 들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무거운 짐을 버린 사람과 같이 오체의 속박에서 벗어날 것입니다. 하늘과 땅 위에서 가장 높으신 부처님이시여, 이것이 부처님께 올리는 마지막 인사입니다.” 

 이렇게 인사를 하고 쿤티 사미 한명만 데리고 길을 떠납니다. 많은 동료들이 사리불에게 같이 따라 가겠다고 청을 합니다. 그 때 사리불은 말합니다.

 “형제들이여, 마음 아파하지 마시오. 이승이 무상한 것을 여러분들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수미산도 언젠가는 깎이고 허물어질 것입니다. 항차 한 알의 겨자씨 같은 사리불의 육체가 없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열심히 도를 닦고 고뇌를 벗어나야 합니다.” 

 이렇게 동료들을 위로 하면서 쿤티 사미 한 명만 데리고 고향으로 돌아가 자기가 태어난 방에서 열반에 듭니다. 이것이 사리불의 모습입니다. 

 

신통제일 목련

셋째 신통 제일 목련, 목련에 대한 이야기는 너무나 잘 알고 있지요? 목련은 나형외도의 돌에 맞아 순교합니다. 부처님의 제자들은 분노하여 종교 전생이 일어날 상황입니다. 부처님은 제자들을 말리면서 목련이 왜 그렇게 죽어야만 했는지 전생 이야기를 해 줍니다. 백중기도의 근원이 목련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목련이 신통으로 선정에 들어보니 자기를 낳아주신 어머니가 지옥 악도에 떨어져 있어요. 그래서 지옥 악도에 떨어진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부처님께 청해 백중기도의 시발점이 원인이 됩니다. 신통제일인 목련이 이교도의 돌에 맞아 죽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할 수 없으니 부처님께 청을 하여 전생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목련은 바라문의 아들로 태어납니다. 목련은 아름다운 부인을 얻어 여색에 빠져 어머니를 무시했습니다. 어머니는 어른 대접도 못 받고 아들을 여자에게 빼앗깁니다. 지금 고부간의 갈등을 생각해 보세요. 어머니가 평생 키운 아들을 생전 보지도 못한 여자와 산다고 했을 때 어머니 입장에서는 아들이 엄마인 자기에게 훨씬 더 잘해 줄 거라고 생각하고 며느리는 남편이 자기에게 더 잘해 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인간이 갖고 있는 탐진치의 탐욕, 소유욕의 관계, 연기를 이해하지 못한 아집이 집착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어머니는 아들이 부인에게 빠져있는 것이 원통해서 어떤 힘센 장사가 저놈을 쳐 죽였으면 좋겠다는 악한 생각이 듭니다. 결국 목련은 어머니께 불효한 과보로 500세 동안 계속 타살되게 되는데 이생에서 부처님을 만나 나형외도의 돌에 맞아 죽는 것이 마지막 자기의 인과를 끝내게 되는 것이어서 순교하게 되었다고 신통제일인 목련의 전생 이야기를 해 주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그 이야기를 듣고 목련의 순교에 대해 인정하고 분노를 가라앉히고 다시 수행에 정진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아라한의 도를 깨달으면 삼명을 터득한다고 하셨는데 삼명은 신통력, 숙명통, 누진통입니다. 아라한 도를 얻게 되면 멋대로 날아다니거나 내 모습을 바꾸는 신족통, 다른 사람의 전생뿐 아니라 자신의 전생도 알 수 있는 숙명통, 번뇌가 다 하는 누진통, 이러한 경지를 터득하면 아라한 도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그런 능력을 지닌 목련이 이교도의 돌에 맞아 순교를 했다는 것은 인과, 전생의 업을 설명해 줌으로써 모든 제자들이 수긍하게 되고 부처님의 뜻을 따르게 됩니다.


해공제일 수보리

 해공제일 수보리, 경전에 나오는 주인공으로 반야심경에 나오는 사리불, 금강경은 수보리가 나옵니다. 해공제일이라는 칭호를 받게 되는 것은 부처님의 제자 중에는 뛰어난 비구니도 상당히 많았습니다. 그 중 연화색이라는 제자는 항상 부처님이 어디를 가신다고 하면 항상 먼저 부처님을 맞이한 비구니입니다. 그날도 부처님께서 현장 법사의 대당서역기 4권에 나오는, 33천에 올라가 어머니 마야부인을 위해 설법을 하시고 보궤를 타시고 지상으로 내려오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돌아가신 마야부인을 도리천에 올라가 천도하시고 지상으로 내려오실 때 누가 제일 먼저 부처님을 맞이하느냐 하면 연화색이 가장 먼저 앞에 서 있습니다. 그래서 연화색 비구니는 자신이 제일 먼저 부처님을 맞이했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연화색이여, 나를 제일 먼저 맞이해 주는 사람은 그대가 아니라 수보리다. 그는 하늘에서 법신으로 제일 먼저 맞이해 주었다.” 

 부처님의 육신을 제일 먼저 본 것은 연화색이지만 가장 중요한 법신을 먼저 하늘에서 맞이해 준 사람은 수보리하고 합니다. 이 후로 승단에서는 수보리를 보고 해공제일이라고 부르게 됩니다. 해공제일이라는 칭호가 붙은 연유가 여기서 나옵니다. 수보리가 누구였어요? 마가다국에는 죽림정사가 있었고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에 기원정사가 만들어질 때 제타 숲을 황금으로 깔아 기원정사를 기증하게 되는 수다타 장자의 조카가 수보리입니다. 수다타의 동생 수만나가 수보리의 아버지이고 수다타는 그 당시 가장 큰 부자입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은 전부 바라문 집안입니다. 정치를 하고 전쟁을 하는 것은 크샤트리아 계급이지만 돈을 가지고 있고 신을 찬양하는 계급은 바라문 계급이었어요. 수보리는 기원정사를 지은 수다타 장자의 조카입니다. 

 평생 수보리는 부처님을 따라다니며 부처님의 그림자로 살았던 사람으로 부처님 곁을 한시도 떠난 적이 없었습니다. 한 번은 왕사성의 빔비사라 왕이 수보리를 초청합니다. 왕사성에 와서 그 해 안거 동안 수행해 달라고 청합니다. 수보리가 부처님께 허락을 받고 왕사성에서 한 철 수행하게 됩니다. 빔비사라 왕은 수보리가 한 철 안거할 수 있는 수행처를 지어주었고 수보리는 왕사성에서 수행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인도라는 지역은 특히 안거 철에는 비가 억수같이 옵니다. 그런데 수보리가 안거를 하는 왕사성에는 비가 오지 않습니다. 비가 많이 오는 지역에 비가 안 오니까 먹을 물조차 없게 되어 가뭄이 심했습니다. 나라에서는 기우제도 지냈지만 비가 오지 않습니다. 그런데 빔비사라 왕은 수보리를 초청해 놓고 급하게 집을 짓다보니 천장을 못 한 것입니다. 수보리는 천장이 있는지도 모르고 앉아서 선정에 들어 열심히 수행을 할 따름입니다. 비가 안 오고 가뭄이 심해져 원인을 조사를 하는 과정에서 수보리가 수행하는 수행처에 지붕이 없는 것을 발견합니다. 빔비사라 왕은 신하를 시켜 수행처에 뒤늦게 지붕을 올립니다. 그러자 그 다음날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나 수보리는 비가 오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수행만 열심히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수보리의 평생 수행으로 일관된 모습을 보여주는 일화입니다. 수보리는 금강경에 나오는 유명한 부처님의 10대 제자 중의 한 분으로 다른 곳에서도 많이 나옵니다. 수보리에 대한 이야기는 마무리 짓고 다음 시간에는 못 다 설명한 부처님의 10대 제자를 소개하면서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을 끝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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