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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13강 전도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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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4,991회 작성일 21-07-22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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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3강 전도선언


반갑습니다. 한 주 잘 계셨어요? 이제 해도 바뀌었는데 기도 열심히 하시죠? 눈 뜨자마자 나는 부처다가 됩니까? 이제는 되야 합니다. 나는 부처다 라는 것이 되면 얼마나 좋겠어요. 이생에서 더 행복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도 이렇게 공부함으로써 부처다 라는 생각을 꼭 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지금까지 부처님이 깨치신 연기를 공부했고 부처님의 일대기를 배우고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전도선언에 대해 공부해 보겠습니다. 전도선언을 보면 부처님께서 깨달음에 대해서, 바른 삶에 대해서 얼마나 확신에 차 있는지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이 깨치시고 난 다음 깨친 것에 대해 설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 망설였다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망설인 이유는 깨친 이 연기를 설명을 했을 때 과연 일반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을까?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알아들을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이 연기를 어떻게 설할 것인가 고민을 합니다. 여기에서 최초 설법은 오비구에게 4성제법을 설하십니다. 연기를 사성제 고집멸도로써 법을 설하셨습니다. 고집멸도는 부처님께서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선물입니다. 지금 우리가 공부하고 있는 이 뿌리도 어디에서 나왔느냐 하면 고집멸도에서 나왔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풍요로운 삶을 누릴 수 있는 것도 21세기에 첨단과학을 누릴 수 있는 모든 것이 고집멸도에 근간을 두고 있습니다. 고란 일어나는 현상 즉 주어진 문제가 고였습니다. 고라는 것이 주어졌을 때 과제의 제시, 나 자신에게 혹은 상대방에게 일어난 어떤 사건, 어떤 문제 이것이 고입니다. 집제는 원인, 발생의 이유,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바로 집제입니다. 이 집제야 말로 인류에게 준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것으로 말미암아 우리 몸둥이는 안이비설신의의 의지가 있다고 했습니다. 이 의지가 결국은 집제를 발생케하는 이유로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끊임없이 향상시키고 키워주는 가장 좋은 것이 바로 의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되겠다고 마음을 모으는 이 ‘의’로 말미암아 집제로써 해결할 수 있습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만 생각할 수 있다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우리는 매일 24시간 생활하고 있지만 내 자신에게 일어나는 일들 중에서 한 가지 사건만이라도 집제로 해결해 보라고 했습니다. 만약 어제 친구와 싸움을 했다. 왜 그 싸움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둘이 싸움을 할 때는 서로가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부부가 싸움을 하든 자식이 싸움을 하든 누구와 싸움을 하든지 상관없이 싸움을 할 때는 서로가 자기주장, 생각이 맞다고 하기 때문에 싸우는 것입니다. 화를 내면서 싸움을 합니다. 그런데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해보면 내가 잘한 것도 있지만 나도 잘못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처음에는 내가 70%정도 잘했다고 생각했는데 이틀이 지난 후에 그 일을 생각해보세요. 내가 50% 잘 했고 상대방도 50%정도 잘 했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그러면 상대방도 똑같이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좀 더 깊이 생각해보면 내가 잘한 것 보다 못한 것이 훨씬 많습니다. 이제는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합니다. 내가 한 행동에 대해서 미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바로 반성이 되고 참회가 됩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내가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바로 뉘우치게 됩니다. 뉘우치지도 않고 참회하지 않으면서 평생을 살아보세요. 내 삶이 변하는지. 내 자신을 변화 시킬 수 있는 것은 끊임없는 참회 밖에 없습니다. 참회라는 것은 나도 잘했지만 상대방을 더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모든 사건들을 잘 살펴보는 데서 내 자신이 미안하고 부끄러운 생각들이 끊임없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자비입니다. 무상과 무아를 인식함으로써 내 자신에게 채워지는 것이 자비입니다. 무상과 무아를 인식하고 이해하는 만큼 내 속은 자비로 채워집니다. 광명으로 채워집니다. 참회하는 만큼 내 속엔 자비로 채워지는 겁니다. 우리가 세상을 바르게 산다는 것은 바로 내 속에서 지혜와 자비가 넘쳐 바르게 살지 말라 해도 바르게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이것들이 바로 집제로 부터 출발하는 것입니다. 왜 그 일이 일어났는지를 생각함으로써 부처님이 가르치신 팔정도가 됩니다. 더 나은 삶으로 더 발전된 삶으로 이끌어 가는 것은 바로 정념이고 정정입니다. 정념은 위빠사나이며 정정은 사마타입니다. 지금 선불교가 사마타 쪽에 너무 치우쳐 있어 지혜가 없습니다. 지혜는 정념으로부터 생깁니다. 위빠사나는 관찰하고 관조하는 것입니다. 세상의 사물들을 관조하고 관찰하지 않는 한 원인을 알 수가 없습니다. 제대로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관조와 관찰을 해야만이 바로 지혜가 생깁니다. 내가 바로 알아야 베풀 수 있고 자비가 행으로 일어납니다. 중세에 흑사병으로 유럽전체 인구의 3분의 1이 죽었습니다. 이 지구상에 상상도 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난 것입니다. 흑사병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버린 것이 바로 지혜가 없는 사랑만 일방적으로 베풀었기 때문입니다. 흑사병이 왜 생겼는지 원인을 찾아 제거해야만 했습니다. 흑사병은 한 사람 걸렸다 하면 집단적으로 전부 전염이 됩니다. 그러니 많은 사람이 죽을 수 밖에 없습니다. 결국 떨어져 있는 사람만 살아남고 모여 있던 사람은 전부 죽었습니다. 지구 역사상 가장 큰 재앙인 흑사병이 발생한 것은 약 1300여년 전의 사건이었습니다. 이 흑사병의 사건으로 볼 때 우리는 지혜도 있어야 되고 사랑도 있어야 됩니다. 하나만 있을 때는 어느 것도 쓸 수 가 없습니다. 이 두 개는 바로 정념과 정정으로부터 생깁니다. 이것은 부처님께서 고집멸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고 가르치신 것입니다. 고집멸도를 가르치고 이해만 시키면 그 다음엔 본인이 이해하고 행동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어떻게 하라 하는 것은 없습니다. 본인이 이해하고 알고 난 다음 행동을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전도선언을 할 수 있게 된 것은 부처님께서 깨치신 이 연기에 대해서 연기를 이해시키기 위한 방법인 고집멸도로 설명을 하면 일반 사람들이 알아 들을 수 있다고 확신이 생겼기 때문에 부처님께서는 법을 설하셨습니다. 오비구를 찾아가 법을 설했고 한달만에 오비구가 드디어 부처님께서 깨친 연기를 이해합니다. 그래서 최초의 제자가 탄생하게 되고 그들은 부처님께서 깨치신 바른 진리를 이해하게 되고 그 진리대로 살겠다고 맹세를 합니다.  그래서 야사가 출가를 하고 야사의 친구들이 출가를 해서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약 60여명에 이르게 됩니다. 이때 부처님께서는 이 사람들 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바른 진리를 이해할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하고 전도선언을 하게 됩니다. 약 60여명이 제자가 생겼을 때 부처님께서는 전도선언을 합니다. 전도선언을 하실 때 부처님께서는 ‘비구들아 전도를 떠나라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결국 부처님 법을 배우면 이 생에서 우리는 이익과 행복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하기 위해서입니다. 행복하기 위해서 열심히 공부를 하고 돈도 벌게 됩니다. 우리가 하는 모든 행동의 궁극적인 목적은 행복입니다. 그리고 자신의 이익입니다. 앞부분에서 부처님이 ‘있는가’를 설명할 때 부처님의 진리 즉 연기를 깨치면 세속에서 얻을 수 있는 이익과 행복보다 훨씬 큰 이익과 행복을 얻는다고 설명했습니다. 그와 같이 진리를 터득하고 나면 우리가 세속에서 추구하고 있는 부귀와 명예보다 훨씬 큰 행복과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확신을 갖고 설하신 것입니다. 법을 설하는 목적이 부처님께서는 많은 사람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라고 했습니다. 또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행복과 안락을 위한 것이 없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부처님께서 전도를 떠나 보낼 때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해서인데 교재의 내용을 보면 ‘세상을 불쌍히 여기고 인천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하여..’ 인천! 사람들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육도윤회하고 있는 이 세상의 산천초목 전부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서 전도를 떠나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 살고 있는 사람뿐만 아니라 하늘 나라, 육도윤회하고 있는 짐승들.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전도를 떠나 보냅니다. 그리고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  두 사람이 한 길을 가지 마라하는 것은 부처님께서 전도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두 사람이 한길을 가지마라고 합니다.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추도록 하라. 또 원만무결하고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 결국 법이 아무리 좋더라도 그 법을 설하는 사람의 행위가 나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그래서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입니다. 본인도 청정한 범행을 하면서 그 법을 설하라 하는 것입니다. ‘사람들 중에는 마음에 더러움이 덜한 자도 있을 것이고 ...’ 그러니까 탐욕이 많은 사람도 있을 것이고 탐욕이 적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 탐욕이 적은 사람은 너희들이 설하는 그 법만 듣고도 진리에 가까운 삶을 살 수 있으니까 그사람들은 그대들이 설하는 법만 듣고도 깨달을 것이 아닌가?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해 우루벨라의 작은 촌으로 간다’ 이것이 전도선언을 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밝히신 전문입니다. 이 내용에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부처님께서 제일 처음 많은 사람들의 이익과 행복을 위하여 전도를 결심합니다. 바로 부처님의 전도선언 정신은 본인.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 전부의 이익과 행복과 안락을 위한 것으로 우리가 살아가면서 추구하는 궁극적인 목적은 이익을 얻어야 하고 이익을 바탕으로 행복해야 되고 안락해야 된다. 이것이 우리가 살아가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인간들만 잘 사는 세상이 아니라 살아있는 모든 생명체 전부가 잘 사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전도정신입니다. 그 다음 구절을 살펴보면 ‘비구들아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또 원만 무결한 청정한 범행을 설하라’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전도를 떠난 사람들 즉 부처님 제자들이 다른 사람에게 법을 설하면서 어떻게 설득할 것인가 하는 설법의 방법, 양상입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으며 조리와 표현을 갖춘 법을 설하라. 즉 상대방에게 설명해서 이해되고 납득이 되고 그 말에 공감을 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어디가서 불교를 설명한다고 생각해 봅시다. 처음 만났을 때 인상도 좋아야 하고 공손해야 할 것이며 ‘저 사람이 이야기하는 것을 들어보고 싶다’ 하는 생각이 들게끔 해야 되겠습니다. 법을 설할 때도 내용이 상대방이 이해하고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또 끝도 좋고 하는 것은 법을 들고 상대방이 기분좋게 헤어 질 수 있는 것을 말합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는 것은 법을 설할 때 들어가는 내용이 좋아야 하고 중간 내용도 좋아야 되겠고 끝 부분의 내용도 좋아야 된다는 의미도 있지만 어떤 사람을 만나서 처음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 까지 상대방에게 기분좋게 해서 마음의 문을 열어야 법이 이해됩니다. 법을 설해 상대방이 흡족해 해야 하고 끝나고 나서도 상대방이 기분좋게 그 법을 받아들일 수 있게끔 해야 합니다.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다는 것이 설법의 양상입니다. 부처님이 탄생해서 살아가신 시대는 BC 약 500~ 600년 전입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신 시기는 AD 원년 즉 부처님보다 500~600년 후에 태어나신 분입니다. 두 분이 태어나신 태생을 살펴보면 한분은 복행하게 태어났고 한분은 불행하게 태어났습니다. 또 부처님의 전도 정신에서 보면 법을 전도하는데 대한 눈꼽만큼의 의심도 의혹도 없습니다. 100% 확신에 차서 보냅니다. 설법의 양상에서도 보면 처음도 좋고 중간도 좋고 끝도 좋고 또 조리와 표현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라고 했습니다. 상대방을 충분히 이해시키고 납득 시킬만큼 조리와 표현을 갖추어서 법을 설하라.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그 내용을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도록 전달시키지 못하면 그것은 모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어떠한 상황이든 어떠한 내용이든지 간에 상대방이 알아들을 수 있게끔 조리와 표현을 갖추어라는 것입니다. 보살이 오면 보살에게 맞는 법을 설해야 하고 중생에겐 중생에게 맞는 법을 찾아야 하는 것입니다. 거지가 오면 거지에게 맞는 법을 설해야 하고 어린아이가 오면 어린아이에 맞는 법을 설해야 합니다. 화엄경을 아이에게 설명하면 이해할 수 없지만 어린아이에게 맞도록 설명하면 알아들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이 표현과 조리에 맞는 법을 설하라. 원만무결하고 청정한 수행을 설하라고 제자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이렇게 해서 전도를 떠나 보냅니다. 그에 비해 예수님께서는 처음 전도하시면서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웠다고 하고 병든 자를 고치고 죽은 자를 살리며 문둥이를 깨끗이 하며 귀신을 쫓는다’ 이것이 성경에 나오는 전도선언의 내용입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전도선언과 예수께서 하신 전도선언을 비교해 보면 그 당시 역사적인 상황도 이해할 수 있을 것이고 부처님께서 살다 가신 그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두 전도선언의 양상을 살펴보면 차이를 느낄 수가 있을 것입니다. 


다음의 짤막한 구절을 살펴보면 전도선언과 설법의 양상과 향후 부처님의 태도입니다. ‘나도 또한 법을 설하기 위하여 우루벨라의 장군촌으로 갑니다.’ 우루벨라의 장군촌은 어떤 곳입니까?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후에 수자타한테 우유죽을 얻어 먹은 곳입니다. 부처님께서 전도선언을 하시면서 처음 도를 이룬 그 지역에 내가 깨친 법을 전해야 겠다고 생각하시고 우루벨라의 장군촌에 가겠다고 하신 것입니다. 법에 대한 확신이 생기고 제자들에게 전도를 떠나 보낼 때 태어나신 고향과 처음 도를 깨친 지역이 생각날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우루벨라의 장군촌으로 가겠다고 하시면서 부처님의 향후 태도를 이야기합니다. 바로 저기는 부처님께서 수자타에게 우유죽을 얻어먹고 기력을 회복하여 깨닫기 위해 새롭게 결심하여 정진한 곳이 우루벨라의 장군촌입니다. 부처님께서 전도선언을 하신 후로 부처님의 법은 인도 전역으로 퍼져나갑니다. 이렇게 시작한 전도선언은 부처님의 생애 동안 지속됩니다. 그래서 동으로는 안가의 칸파까지, 북으로는 붓다의 고향인 키필라 성과 코살라의 사바티까지 서로는 쿠로의 칸마사다르 마을 까지 남으로는 마가다의 가야와 빈사의 쿠샨비에까지 부처님의 법이 전파됩니다. 그 당시의 마가다 국은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약 BC 318년 경에 전 인도를 통일합니다. 비로소 고대국가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중국은 진시황이 전국을 통일한 것이 221년경 입니다. 중국보다 100여년 빨리 인도가 고대국가를 이루게 됩니다. 이것은 로마와 인도, 중국 등 세계 4대 문명지에서는 거의 비슷한 시기에 고대국가가 이루어집니다. 우리는 고대국가가 언제 이루어집니까? 한반도에서 삼국통일이 이루어진 것이 667년입니다. 천년 후에 고대국가가 이루어집니다. 문명의 흐름으로 보아 천년정도 뒤떨어진 것입니다. 교재의 지도를 보면 여기서 갠지스 강이 흐르고 인디스강이 흐르며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신 곳이 이 지역입니다. 부처님께서는 동으로는 안가의 칸파, 서로는 쿠르의 칸마사다르마, 북으로는 부처님이 태어나신 카필라성과 코살라의 사바티, 남으로는 마가다의 가야와 코사미까지로 부처님께서 실제로 평생 동안 전파한 지역은 인도 북부지역 전부입니다. 


  마가다국이 인도를 통일한 BC 300년경에 북부 지역 전부를 통일합니다. 남부 인도는 통일했을 때도 포함되지 않습니다. 아래쪽까지 내려갈 때는 상당히 많은 시간이 지난 후 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인도 북부 지역을 평생 동안 전도하셨고 이 많은 지역 중에 가장 오랫 동안 사위성 사바티에서 머무셨고 또한 왕사성에서도 오랫동안 머무셨고 바이샬리 혹은 카파를마티에서도 오랫동안 머무셨습니다. 경전에 많이 나오는 지명은 기수원 고도원이 있는 곳인 사위성입니다. 그리고 빔비사라왕이 기증한 죽림정사가 있는 곳은 왕사성입니다. 바이샬리는 갠지즈강을 끼고 인도에서 가장 교역이 활발한 상업도시입니다. 이 바이샬리를 중심으로 대승불교가 일어납니다. 마가다국은 신흥종교가 많이 태동한 종교의 중심지역이기 때문에 교화에 있어 가장 크게 성공한 곳입니다. 마가다 국을 중심으로 대승불교가 일어난 것은 필연적입니다. 가장 큰 나라가 마가다 국 이었고 전 인도를 통일합니다. 중국도 고대 통일 국가가 일어나기 전에는 제자백가가 일어나서 나름대로 자기의 뜻을 왕들에게 전해 정치를 하도록 권합니다. 이와 같이 많은 사상가들이 모여 있다는 것은 새로운 기운이 새로운 나라로 이끌어 가는 기운임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인도의 마가다국에는 많은 신흥종교 , 태어나는 종교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가다국에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는 사람이 카샤파 3형제 였습니다. 마가다국에서 사상가으로서 가장 존경을 받고 있든 카샤파 3형제를 부처님의 제자로 만들어 버립니다. 천명의 제자가 생깁니다. 이것이 인도 전역의 사상계를 하루아침에 바꾸어버린 일대 사건이 됩니다. 왕사성에서 부처님께 귀의한 제자로는 카샤파 3형제(우루벨라, 나디, 가섭)가 있고 또 사리불, 목건련이 부처님께 귀의하였습니다. 마가다의 왕 빔비사라왕이 그 당시 가장 중요한 부처님의 제자였습니다. 이 외에도 부처님의 제자로서 평생 의술을 베풀면서 활동한 지바카, 지바카의 동생 지바, 베살리의 암바파알리, 그녀가 희사한 암바파알리 동산이 있습니다. 그 당시 최고의 기녀가 둘이 있었습니다. 그중에 한명이 암바파알리였습니다. 자신의 전재산을 틀어 암바파알리 동산을 쌓고 절을 지어 부처님께 희사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코삼비에는 포살리 동산. 부처님이 평생 중요하게 교화한 거점이었습니다. 부처님의 고국인 샤카. 아버지 정반왕이 귀의하고 아들 라후라와 사촌동생 난다가 출가하였습니다. 난다는 부처님 이복동생으로 이모가 낳은 아들이 난다입니다. 라후라와 난다가 출가함으로써 석가족 집안의 54명이 출가합니다. 역사 기록상 한 집안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출가한 것이 이 석가족입니다.  


  사부대중이라고 하는 것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이렇게 네 개입니다. 비구는 남자 출가 수행자, 비구니는 여자 출가 수행자, 우바새는 남자 재가 수행자, 우바이는 여자 재가 수행자입니다. 부처님 초기에는 전부 수행자입니다. 출가한 수행자, 집에 있는 수행자로 세상생활을 하면서 도를 이루겠다고, 부처가 되겠다고 결심을 하고 공부를 하는 수행자입니다. 엄밀히 말하면 불교 교단은 수행자 집단입니다. 진지한 삶을 추구하는 수행자의 집단으로 여기에는 누구든지 스스로 진지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불교의 교단입니다.  최초의 비구는 누구였습니까?  5비구와 야사가 처음 출가했습니다. 그 다음 야사의 아버지가 최초의 우바새였고, 우바이는 야사의 어머니가 첫 우바이였습니다. 비구니는 부처님을 길러주신 마하파자파티가 최초의 비구니가 되었습니다. 이것은 교단이 성립하고 5년 후의 일입니다. 5년후에 부처님이 마아파자파티의 출가를 승인함으로써 비구니가 처음으로 생겼습니다. 부처님 경전에 많이 나오는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를 살펴보면 비구하면 부처님의 10대 제자, 비구니는 마아파자파티, 고타미, 창녀로서 출가한 암바파알리, 그 다음 우바새로서는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 평생 가장 중요한 후원자였던 죽림정사를 지어 기증한 빔비사라왕, 금강경의 주인공인 수보리의 삼촌인 급고독장자, 부처님 교단이 처음 분쟁을 일으켰든 지역인 코산비의 고시타 장자가 고시타 정사를 지어서 부처님께 희사합니다. 우바이로서 기억나는 사람이 있습니까? 잘 기억나는 사람이 없습니다. 급고독장자에 버금가는 우바이로는 베사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베사카는 사바티에 녹자모강당을 지어 희사했습니다. 어느 나라든 새로운 기운들이 새로운 나라를 만들어 갑니다. 마가다 국이 인도를 통일할 수 있었던 것도 새로운 신흥사상가들이 가장 많이 모여들었기 때문이며 그것은 마가다 국의 위치로 해변가였습니다. 사바티가 중부내륙에 치우쳐 있어서 전통이 강했던 곳입니다. 그 당시 인도는 사성제 계급인 바라문, 크샤트리아, 바이샤, 수드라를 살펴볼 때 바라문이 가장 강력했던 곳이 코살라 국입니다. 부처님께서 전도하는 데 있어서 가장 힘들었던 곳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전도를 하고도 귀의하고서는 오랫동안 머물렀던 곳이 코살라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마가다는 생각보다 부처님 법이 쉽게 전파된 곳입니다. 하루 아침에 부처님의 세상이 되어버립니다. 카사퍄 형제가 부처님 법에 귀의함으로써 마가다는 하루 아침에 새로운 세상으로 바뀌어 버립니다. 그만큼 신흥사상이 성했던 곳이 마가다였습니다. 그래서 부처님 법이 쉽게 먹여 들어갔습니다. 그에 비해 코살라는 전통 바라문이 가장 강했던 곳으로 부처님 법이 전파되는데 힘들었습니다. 부처님이 푸대접을 가장 많이 받은 곳이 코살라입니다. 바라문들이 반기를 들어 부처님에게 애를 먹인 대부분의 지역이 바로 코살라입니다. 삶의 중요한 표본이 될 수 있는 분이 바로 베사카로 원래 마가다국에서 태어났습니다. 부처님도 카필라성에서 태어나셔서 마가다 국의 공주를 왕비로 맞이합니다. 부족국가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혈연으로 맺어지는 것이 보통입니다. 부인을 맞이할 때 다른 부족의 공주를 데려오거나 부족끼리 혈연으로 맺어지기 때문에 전쟁이 일어나지 않고 잘 지냅니다. 힘이 서로 비슷비슷한 나라끼리는 서로 주고 받고 합니다. 빔비사라왕도 코살라국의 공주를 데려옵니다. 빔비사라왕의 딸도 코살라국에 왕비가 됩니다. 이렇듯 주고 받기 때문에 불가침조약이 성립되는 겁니다. 서로 힘이 비등한 나라끼리는 그런 일이 자주 일어납니다. 임금 뿐만 아니라 돈이 많은 장자들도 딸과 아들을 주고 받고 했습니다. 이 베사카는 마가다국의 큰 장자 부호의 딸로 태어났습니다. 자라면서 부처님법에 귀의해 있는 상태였습니다. 베사카는 코살라국의 사바티성의 부호의 장자에게 시집을 갑니다.  부처님법에 귀의한 상태에서 시집을 오니 이 나라는 부처님 법이 잘 전파되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지역으로도 전도를 떠나 보낸 상태이지만 처음부터 전도가 잘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쳐야 했습니다.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중에서 경전에도 많이 나오는 코살라와 코산비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이 코산비에는 분쟁과 싸움이 일어난 곳이며 코살라는 법을 전파하는 데 있어서 부처님께서 평생 가장 많은 신경을 썼던 곳입니다. 이 베사카가 부호집에 시집을 왔는데 시아버지가 자이나교 즉 조아라스트교를 믿고 있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는 조아라스트교가 있습니다. 이 자이나교가 부처님 당시에도 있었습니다. 그때까지 신흥종교인 불교가 코살라 국까지 잘 전파되지 못했던 것입니다. 부처님은 크샤트리아 출신의 왕족출신이었습니다. 자이나교의 교주는 바라문출신입니다. 그래서 이곳에는 바라문의 세력이 강했고 시아버지는 바라문교를 믿고 있는 상태였습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시집을 와서 부처님 불법을 아무리 이야기해도 믿지도 않고 듣지도 않는 상황이었습니다. 하루는 시아버지가 황금그릇에 맛있는 음식을 먹고 있습니다. 그 당시 부처님께서는 아침이 되면 제자들과 공양 걸식하러 갑니다. 차례대로 일곱집을 돕니다. 일곱집을 들어가서 만약 일곱집에서 공양을 못 얻으면 그 날은 굶습니다. 불교가 전파된 코살라 국에도 아침이면 스님들이 걸식을 하러 옵니다. 마침 베사카 집에도 스님이 걸식을 왔는데 시아버지가 맛있는 것을 먹고 있다가 뒤로 돌아앉았습니다. 즉 주기 싫다는 것입니다. 시아버지가 돌아앉으니 베사카는 무안하여 스님을 보고 ‘지금 우리 시아버지께서는 식은 밥을 먹고 계셔서 스님에게 차마 드릴 수 없습니다.’ 하고 스님을 보냅니다. 스님을 보내고 나니 시아버지가 ‘왜 너는 거짓말 하느냐? 내가 황금 그릇에 이렇게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데 나보고 식은 밥을 먹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느냐’며 따져 묻습니다. 그래서 시아버지는 거짓말 한 너를 우리 집에 데리고 있을 수 없다며 너희 집으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합니다. 베사카가 아무리 생각해봐도 쫒겨나는 것이 억울해서 시아버지에게 따집니다. ‘아버님이시여! 왜 저를 쫓아내려 합니까?’ 하니 ‘내가 어찌 식은 밥을 먹고 있다고 모욕했느냐?’고 합니다. 베사카가 ‘아버님께서 돌아앉은 것은 걸식하러 온 스님에게 보시하고자 하는 마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님도 덜 미안하고 걸식하러 온 스님도 무안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거짓으로 말을 했다.’고 당당하게 이야기합니다. ‘저는 언제 날을 받아 부처님과 제자들을 공양에 초대하겠습니다’ 하니 시아버지는 거절 못하고 허락을 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과 제자들이 베사카의 공양 초대를 받아서 그 집으로 옵니다. 부처님은 베사카를 대상으로 법을 설합니다. 어마어마한 부호집이 다른 종교로 개종을 하면 타격이 얼마나 커겠습니까? 또 자이나교를 믿는 사람들이 이 부호집에 상주해 있었으므로 시아버지는 행동하기가 어렵습니다. 그 날도 베사카가 부처님을 초청하여 법문을 듣고 있습니다. 시아버지는 그 자리에 나오지도 못하고 방에 갇혀 법문소리를 들으면서 발심을 하고 부처님법에 귀의하게 됩니다. 부처님법에 귀의하고 보니 며느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알게 된 것입니다. ‘너는 내 며느리지만 어머니 같은 며느리이니라’해서 녹자모가 됩니다. 그래서 이름이 녹자모입니다. 시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부처님법에 귀의하여 제대로 세상을 보니까 자기 집 며느리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알았던 것입니다. 이 세상에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하고 대단한 며느리입니다. 그래서 그 며느리에게 탄복해서 ‘너는 어머니같은 며느리이다’라 하여 녹자모라 이름 붙혀줍니다. 결국은 베사카가 시아버지를 불법에 귀의하게 함으로써 이 사바티도 급고독장자와 더불어 우바이 베사카의 역할에 힘입어 서서히 부처님의 법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 당시 가장 큰 부족국가인 마가다와 코살라가 부처님의 법에 귀의합니다. 전 인도가 부처님법에 귀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녹자모 강당이 만들어 지는 과정을 살펴보면 시아버지에게 며느리가 얼마나 고마웠겠습니까? 그 당시 어느 왕비도 가질 수 없는 값비싼 외투를 사줍니다. 가격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비싼 외투를 사 줍니다. 그런데 그 며느리는 그 외투를 입고 부처님 법을 들으러 갔다가 올 때는 잊어버리고 외투를 강당에 두고 그냥 옵니다. 집에 와서 알아보니 아난이 잘 챙겨두었다고 합니다. 베사카가 이왕 내 손을 떠났으니 그 외투를 절에 기증하겠다고 하니 아난이 거부합니다. 아난이 비싼 외투를 기증 받을 수 없다고 하자 베사카가 생각해 낸 것이 시아버지에게 황금 9백9십9만냥을 주고 베사카가 그 외투를 다시 삽니다. 그래서 그 황금 9백9십9만냥을 가지고 베사카가 녹자모 강당을 짓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현명하고 지혜로운 베사카를 칭찬합니다. 베사카가 불법이 좋아서 노래를 부르며 다니니 사바티 사람들이 베사카가 미쳤다고 이야기합니다. 그 때 부처님이 제자들과 사바티의 사람들을 불러놓고 하신 말씀이 ‘그렇지 않다. 그 여인은 전생에도 그랬지만 이 생에서도 보시를 기꺼이 하고 법을 듣고 이해하는 것도 깊다. 비록 재가의 몸이고 여자의 몸이지만 모든 집착과 번뇌를 여윈 사람이다. 그 여인이 부르는 노래는 할 일을 다 마쳤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다.’ 즉 아라한을 터득했기 때문에 부르는 노래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 외에도 베사카에 대한 이야기가 부처님 경전에 많이 나옵니다. 이교도들이 끊임없이 부처님을 비방하고 이간합니다. 예를 들어서 어느 여인이 임신을 했는데 부처님의 아이라고 합니다. 베사카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현명하게 분별해 줍니다. 이러한 많은 사건들로 인해 베사카는 부처님한테 총애를 받았지만 뛰어난 우바이로서 잘 지냅니다. 불교에서 사부대중인 비구,비구니, 우바새, 우바이 중에서 우리가 우바새 이야기는 많이 들어보았지만 우바이는 처음이어서 베사카 이야기를 덧붙혔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알아야 할 것은 부처님께서 깨친 바른 진리가 세상을 이익되게 하고 행복하게 합니다. 인간뿐만 아니라 이 세상의 전부를 이익되게 하고 행복하게 하고 안락하게 하는 것은 진리 밖에 없다는 것이 가장 중요한 결론입니다. 부처님께서 전도를 선언하신 목적인 것입니다. 우리가 불법을 제대로 잘 알아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습니다.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위해서도 제대로 불법을 알아야 합니다.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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