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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1강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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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986회 작성일 21-07-22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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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강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아침에 일어나서 108배 열심히 하십니까? 업을 없애는 제일 좋은 방법이 108배입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연기를 배웠고 연기가 인과라는 결론을 지었습니다. 오늘 배우는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은 어쩌면 이 지구에서 살아가는데 있어서 정말 행복하게 해 주는 분이 부처님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삶을 사신 분이 부처님입니다. 부처님은  연기를 깨쳤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게 사셨고, 또 가장 거룩한 삶, 바른 삶을 위해서 평생 동안 깨치신 이 연기를 전도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장 위대한 삶을 사셨고 가장 거룩한 삶을 사셨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삶을 사셨고 평생 절대적인 삶을 유지하신 분이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이렇게 위대하고 거룩하고 아름다운 부처님의 생애를 한 번 돌아봄으로써 우리도 부처 되려는 생각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부처 되는 길은 석가모니 부처님처럼 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어떻게 살았는지를 알면 그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오늘부터는 부처님의 삶을 되짚어 보면서 부처님께서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가 보면 이렇게 살 수 있구나,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이 이 생에 몸 받아서 거룩하게 사셨는데 우리라고 그렇게 못 살라는 법은 없습니다. 부처님의 법은 모두가 인연성불입니다. 내가 원을 한번 세워 놓으면 언젠가는 그 원대로 되어 갑니다. 이 원이라는 것은 중요하고 묘한 법칙입니다. 내가 생각한대로 인과가 따라갑니다. 인과가 다른 것에서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내 생각대로 인과는 따라갈 뿐입니다. 그래서 아침에 일어나서 ‘내가 부처다’ ‘이생에서 꼭 부처되겠다’는 생각을 하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생애를 공부하는데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분이 누구냐 하면 아마 부처님 아니시겠습니까? 어느 누구도 석가모니부처님과 같이 도를 이루시고 난 후에도 평생 동안 부처님같이 복과 덕을 그렇게 원만 구족하게 갖추신 분이 없습니다. 역사상 어떤 위대한 스승, 위대한 사상가, 전륜성왕들도 부처님 같이 그렇게 완벽하게 살아간 분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의 가장 중요한 목표가 석가모니와 같이 부처가 되는 것입니다.

저도 약 40년 가까이 부처님께서 어떻게 살아셨는지 무엇을 깨쳐셨는지 이 문제에 대해서 고민을 많이 했습니다. 왜 부처님께서는 35세때에 깨달음을 이루었을까? 20세, 25세, 30세, 40세, 50세, 언제든지 깨달을수 있는데 왜 35세에 깨달았을까? 그리고 왜 히말리아 산인가? 그 많은 장소를 두고 왜 보리수 나무 아래서 깨쳤을까? 지금 우리는 대부분 참선을 방에서 하는데 그런 상황을 보면서 방에서 해도 부처님 같이 깨칠 수 있을까?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한 의문으로 나도 깨달을 수 있을까? 그래서 열심히 돌아다니면서 스님들과 얘기를 나누어 보기도 했고 부딪쳐 보기도 했었던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35세이면 모든 기운이 원만하게 성취되는 나이라 이 완벽한 깨달음이 올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이 살아가면서 그 삶이 가장 성숙되는 때에 완전한 깨달음이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깨달음에 대해서 한번 공부 해보면서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에 대해 공부하기 위해서 우리는 부처님 족보를 한 번 봐야 합니다.

먼저 부처님 이름을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 이름은 고타마 싯다르타입니다 .우리가 불자라면 기본적으로 알아야 할 것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족보에 대해서는 어느 누가 어떻게 묻더라도 얘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부처님의 본명은 '고타마 싯다르타' 싯다르타라 하는 것은 우리말로 번역하면 "좋은 소"라는 뜻인데 이 좋은 소라는 것이 얼마나 큰 보배입니까? 그리고 '성취자' '깨달음을 이룬자' '목적을 이룬자' 이것이 바로 싯다르타입니다. 싯다르타라는 이름은 부처님께서 태어났을 때 정반왕이 지어준 이름입니다. 부처님의 생일이 4월8일이라는 것은 아시죠? 정확하게 BC 623년 4월8일입니다. 기본적으로 부처님의 탄신일은 BC 623년 음력으로 4월8일입니다. 그리고 내가 몇 년생인지 알듯이 부처님도 몇 년에 태어나신 지 알아야  합니다. 부처님의 제자 가섭이라던지 다른 10대 제자들의 생년월일은 몰라도 부처님의 생년월일 정도는 알아야겠습니다. 다음 부처님께서는 어디서 태어났습니까? 카필라성에서 태어나셔서 29세 때인 2월8일에 출가 하셨습니다. 어디서 출가했습니까? 태어난 집 카필라 성에서 출가하셨지요. 출가하시고 난 다음에 도를 이룬 성도일은 부처님께서 새벽에 샛별을 보고 깨쳤다고 합니다. 그때가 35세 되던 해 12월 8일날 깨쳤습니다. 부처님께서 깨치신 장소는 어딘지 기억이 납니까? 바루 공양할 때 제일 먼저 불생카필라 성도마갈타 설법바라나 입멸구시라라고 하지요. 그러니까 성도 마갈타에서 깨치신 것입니다. 마갈타에서 12월8일 새벽에 별을 보고 깨쳤다 하는 것이 바로 성도일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하신 날은 언제 입니까? 부처님께서 평생 잘 사시고 80세때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습니다. 우리는 부처님 탄신일, 성도일, 열반일 정도는 알고 있어야 겠습니다. 부처님의 출가부터 열반까지 날짜로 보면 일주일이 됩니다. 2월8일부터 2월15일까지 절에서 기도들 많이 합니다. 일주일만 기도하면 출가부터 열반까지 다 됩니다. 날짜가 2월8일, 4월8일, 2월15일로 기억하기가 좋습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은 집이 아니고 어머니이신 마야 부인이 그 당시 인도의 관습에 따라 애를 낳으려고 친정으로 가는 도중에 태기가 있어서 부처님을 낳게 됩니다. 그래서 태어난 탄생지는 룸비니 동산이 됩니다. 룸비니 동산은 인도와 네팔의 국경에 위치한 곳입니다. 부처님의 출신 성분은 카필라성의 왕자였고 석가는 샤카족의 한자 발음입니다. 그러니까 카필라 성을 다스리고 있었던 샤카족이였습니다. 석가는 부처님의 성씨로 석가족이고 카필라성의 왕자였습니다. 그때가 BC 약 600년경입니다. 부처님이 태어난 시기가 BC 약 600년경이니까 고대 국가가 이루어지기 전입니다. 인도 사회에서도 고대 국가가 이루어진 것은 부처님이 태어 나시고 약 300년이 지나서 체계적으로 통일 국가가 이루어지는 것은 BC 200년부터 400년경 무렵에 통일 국가가 이루어집니다. 통일 국가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큰 부족이 다스리는 나라가 바로 부족국가입니다. 우리가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어마어마하게 큰나라가 아니고 아주 작은 부족국가입니다. 부처님의 태생이 왕자라 해서 지금처럼 대단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어마어마하게 많은 부족중에 조그마한 부족국가의 왕자입니다. 평민으로 태어난 것이 아니라 부족국가를 다스리는 왕의 아들로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인도를 통일한 큰 부족국가로 경전에 가장 많이 나오는 지명은 마가다국 왕사성입니다. 부처님께서 제일 먼저 지은 절은 죽림정사입니다. 죽림정사는 왕사성에 있습니다. 마가다국의 수도가 왕사성입니다. 그 수도에 최초로 지어진 절이 죽림정사입니다. 그 다음 또 사위성에 지어진 절이 기원정사입니다. 사위성은 코살라국의 수도입니다. 코살라국의 수도가 사위성이고 마가다국의 수도가 왕사성입니다. 그 당시 인도에 큰 부족 국가가 약 16개 정도 있었습니다. 16개 중에서도 가장 큰 것이 미가다국이고 그 다음 코살라국입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난 카필라 성은 16개 국가에도 속하지 못하는 작은 부족 국가입니다. 어쩌면 마가다나 코살라 같이 큰 나라에서 태어났다면 부처님께서 출가를 못하셨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부처님께서는 내팔 국적인 오지의 작은 부족국가의 왕자이기에 출가가 가능하였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겐지스강 유역을 따라 가면 매우 번성한 곳이 바로 이 지역입니다. 부처님께서 평생 법을 펴신 지역입니다. 코살라국 사위성을 중심으로 조금 올라가면 밧지족의 밧지국이 있습니다. 유마경의 배경이 된 곳입니다. 인도의 불교역사를 보면 부파 불교에서 대승 불교가 일어납니다. 대승 불교가 일어나면서 이 밧지국의 비구들이 대모를 일으킵니다. 부처님의 정법에 대해서 새로운 해석을 하는 사람들이 밧지족들입니다. 그러니까 이 지역이 부처님의 법이 전파되는 가장 중요한 지역이 됩니다. 다음은 부처님의 가족관계를 알아보겠습니다. 부처님의 아버지는 카필라성의 왕이였던 정반왕이고 마흔이 넘어서 싯타르타를 얻게 됩니다. 지금도 마흔이 넘어서 애를 낳는 것은 늦은편인데 2500년전 인간의 수명이 50이 될까말까 하는 그 시절에 마흔이 넘어 아들을 얻으니 얼마나 귀했겠습니까? 그리고 부처님의 어머니인 마야부인은 콜리 성주 성곽왕의 큰딸입니다. 콜리성도 조그마한 부족 국가인데 마야부인은 싯다르타가 태어난지 7일만에 죽습니다. 마야 부인이 7일만에 돌아가시고 이모에 의해 부처님은 양육됩니다. 그리고 마야부인이 태몽으로 흰코끼리 꿈을 꾸었다고 합니다. 부처님의 부인은 천비성 성곽성의 딸인 야소다라입니다. 콜리성인 아닌 천비성도 주변에 있는 조그마한 부족국가로 그곳의 공주입니다. 그리고 부처님의 아들은 라흘라입니다. 라훌라라는 뜻은 ‘굴레’ ‘속박’이라는 뜻입니다. 부처님께서 나훌라를 굴레, 속박이라 했지만 부처님의 일대기를 잘 보시면 라훌라는 굴레, 속박이 아니라 굴레,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이 라훌라입니다. 부처님께서 만약 라훌라를 낳지 않으셨다면 출가하겠다고 결심한 때가 훨씬 늦어졌을 것입니다. 그래서 은밀하게 라훌라라는 것은 원래 굴레, 속박이라는 뜻이지만 부처님을 굴레,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준 것이 바로 라훌라입니다. 결국 부처님께서도 이생에서 몸받아 살아가는 우리와 똑같은 평범한 가족 관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태어나면서 바로 무엇이라 했습니까? ‘천상천하 유아독존 삼계계고 야당안지’라고 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서 제일 먼저 일곱 걸음을 걸어가시며 “천상 천하 유아 독존”이라 했는데 그 뜻은 맑은 하늘 위와 하늘 아래 내가 가장 존귀하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일대 선언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삼계계고 야당인지”의 뜻은 내가 이 세상에 온것은 삼계의 모든 중생들이 괴로움에서 마땅히 편하게 하리라는 뜻으로 이세상 전부가 고통으로 있는데 이 고통으로부터 내가 마땅히 구하겠다고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 탄생하시면서 모든 생명있는 것들에게 편안을 약속하는 일대 선언을 합니다. 그것이 결국은 연기를 깨치시고 평생 실천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부분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어떻게 태어나자 말자 그런 말을 했느냐 하는 것은 불가능하지만 좀더 실질적으로 우리가 생각하고 있는 이 세계라는 것은 조금만 벗어나도 불가능하다고 하지만 불가능이 가능하게 되면 기적이라고 합니다. 세상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기적 같은 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습니다. 이 우주에 있는 모든 생명들에게 자유와 평등을 선언한 이것이 바로 모든 생명의 존엄성에 대한 일대 선언입니다. 부처님의 이 선언은 결국 연기와 결부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깨치고 난 다음에 평생 그 길을 걸으신 부처님의 발자취가 이것을 증명해 줍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는 태어난지 7일만에 어머니 마야부인이 돌아가시고 이모인 마하파자파티에 의해서 양육되었으며 문무에 능통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색적인 부분에만 뛰어나신게 아니라 무술과 학문적인 세계에서도 뛰어나서 경쟁자가 없을 정도 였습니다. 그리고 부처님과 더불어 사촌들도 많이 출가했습니다. 당시 석가족 약 60명이 출가를 했습니다. 아직까지 한 집안에서 이렇게 많이 출가한 것은 석가족뿐일 것입니다. 약 60명 출가자 중에서 부처님과 평생 경쟁자였던 사람이 있습니다. 혹시 “조달이 심뽀”라는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이 조달이가 누구냐 하면 부처님의 4촌 동생인 제바달다입니다. 제바달다를 한문으로 번역하니까 조달이가 됩니다. 조달이는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인데 평생 부처님을 시기하고 경쟁합니다. 부처님을 따라 출가해서도 부처님이 그렇게 위대하고 존경 받는 것을 못 마땅하게 생각했습니다. 자기도 부처님처럼 그렇게 존경 받을 수 있는데 왜 부처님만 존경하고 자기는 존경하지 않느냐하면서 평생을 부처님을 시기하고 질투한 사람이 제바달다입니다. 어떻게 보면 제바달다가 옥에 티가 되겠지만 반대로 제바달다로 인해서 교단이 훨씬 더 결속될 수 있었고 좋은 쪽으로 영향을 미치는 것이었습니다. 부처님 당시에 이 제바달다가 없었다면 얼마나 건조하게 교단을 이끌어 갔을까? 제바달다 같은 사람이 있어서 폭풍도 한번 일으키고 교단 분열도 시키고 많은 사건을 일으킵니다. 항상 제바달다가 강력한 경쟁자였습니다. 부처님의 성격은 사색적이고 논리적입니다. 또한 탐구적 사고를 했다는 것이 결국은 부처님께서 이 연기의 구조를 통해서 모든 일들이 왜 일어나는지 그 근원을 생각하게 하는 것으로 충분히 알 수 있습니다. 제바달다와 같은 경쟁자가 없었다면 불가능했겠지요.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부처님을 정반왕이 카필라성으로 데리고 왔을 때 그 나라의 많은 예언자들이 와서 부처님에 대해 예언을 합니다. 그중에서 가장 뛰어났던 예언자인 100세가 넘은 아시타 선인이 싯타르타의 32가지의 뛰어난 상호와 80가지의 미묘한 모습을 보시고 세속에서는 천하를 통일하는 전륜성왕이 되고 출가해서는 부처가 된다고 예언했습니다. 우리는 부처님의 상호를 이야기 할 때 32상 80종호를 말합니다. 결국은 부처되기 위해서는 32상과 80종호를 다 갖추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남자상이기 때문에 32상을 따르면 여자는 부처가 될 수 없습니다. 이 형상은 소승 불교인 근본불교에는 있지만 대승 불교에서는 없어집니다. 결국 32상 80종호는 가장 원만하고 완벽한 상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32상 80종호 때문에 보살님들이 열심히 공부하셔서 다음 생에는 남자의 몸을 받아서 태어나라는 말이 있는데 공부에는 남자 여자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는 32가지의 뛰어난 모습과 80가지의 미묘한 모습으로 세상에 있으면 온 천하를 통일하는 인도의 역사가 약 200년 당겨질수도 있었을것 같습니다. 하지만 출가하셔서 부처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이렇게 큰 복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때 만약 부처님께서 출가하시지 않았다면 이 연기법을 깨치지 못했을 것이며 어느 생을 또 기약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이 아시타 선인이 어린 왕자를 쳐다보면서 눈물을 흘립니다. 정반왕은 아시타 선인이 눈물 흘리는 것을 보고 불안해서 묻습니다. 왜 왕자를 보고 눈물을 흘리십니까? 그때 아시타 선인은 눈물 흘리는 이유는 부처님께서 깨치신 그 진리를 저는 듣지 못하고 죽습니다. 그것이 한스러워 눈물을 흘립니다라고 합니다. 아시타 선인은 왕자가 전륜성왕으로 있는 것이 아니라 부처가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단지 세속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위로하기 위한 말이지 당연하게 출가하셔서 도를 이룬다는 것을 아시타 선인이 선언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아시타 선인은 부처님이 깨치신 진리를 듣지 못하고 죽게되는 것이 안타까워 울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부처님의 어린 시절을 보면 왕궁의 4대 문을 돌아보면서 생노병사에 대해서 인식하게 됩니다. 그때가 9살에서 12살 정도의 나이입니다. 부처님께서 9살 때 이런 생각이 일어난 것입니다. 어린시절 4대 성문에서 늙은 이를 보고 병자를 보고 죽은 자의 상여를 보고 출가 수행자를 보고 삶의 허망함과 고통을 인식하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길을 찾습니다.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를 고뇌하기 시작한 것이 겨우 12살 때입니다. 12살때부터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로 고민하신 부처님께서

세속에 살면서 무엇이 재미있고 관심이 있었겠습니까?

본질적인 진리에 대한 열정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12살때부터 이런 생각들이 지속됩니다. 부처님께서 29세 때 출가 하셨다고 하지만 출가하기 전인 12살때 부터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부분에 고민하시다가 결국 29세 때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오로지 그 문제에만 매달리면서 6년후에는 도를 이루게 됩니다. 우리는 인과에 대해서 공부를 했습니다. 결과가 나오기까지는 얼마난 많은 전생의 인연이 있었기에 이것이 가능했겠습니까? 그냥 부처가 되겠습니까? 부처가 되기 위해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중에서 몇가지는 우리가 알아야겠습니다. 먼저 부처님 전생에서 선혜보살 시절의 이야기를 보면 선혜보살은 그 당시 무마성에서 최고 부자였습니다. 그런데 6살이 되었을때 어머니가 먼저 돌아가시고 아버지 마저 돌아가셨습니다. 어린 6살된 선혜가 생각해 볼 때 자기 나라에서 가장 부자인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 그 많은 재산중에 아무것도 못 가져가는 겁니다. 그것을 보고 어린 선혜가 생각을 합니다. 나도 죽을 때 이 많은 재산을 가져 갈 수 없는데 어떻게 살아야 될 것인가를 생각하고 아버지 장례를 치르고 난 다음 그 길로 임금님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임금님께 말합니다. 우리 나라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다 불러 주십시오. 지금 제가 가지고 있는 전 재산을 모두 나누어 주겠습니다. 임금은 종을 쳐서 가난한 사람들은 모두 모이게 해서 선혜가 가지고 있던 전 재산을 나누어 줍니다. 선혜는 입고 있던 그대로 산에 들어 갑니다. 이것이 바로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입니다.

선혜는 그 어린 나이에 히말라야 산속에서 수행 정진을 열심히 합니다.

어느 날 깊은 산중에까지 연등 부처님이 출연하셨다는 소식이 들립니다. 

석가모니 앞에 부처가 연등불이지요 부처님을 접견하는 일만큼 급하고 중요한 일이 없다며

선혜는 공부하던 것을 접고 부처님을 접견하러 내려옵니다. 내려와서 보니까 장마로 폭우가 쏟아져서 마을 사람들이 모두 한 곳에 운집해 있는데 부처님께서 멀리서 걸어오고 계십니다. 부처님께서 마침 흙탕물을 지나가는 그 순간에 선혜는 ‘부처님이시여 제가 부처님의 발이 젖지 않도록 엎드릴테니 저를 밟고 지나가십시요’라고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수행자여 그렇지 않다 아무리 작은 미물이라도 밟지 않는데 너의 등을 발고 지나가겠느냐’고 하십니다. 그때 선혜는 ‘아닙니다’ 부처님 저를 밟고 지나가시면 이생에서 그보다 큰 복이 없습니다. 부처님의 발이 흙탕물에 젖지 않도록 저를 밟고 지나가십시오 하면서 엎드립니다. 엎드리니까 한 10cm 정도 모자라 머리까지 풀어서 부처님이 지나가도록 만들어 줍니다.

‘젊은 수행자여 자네의 뜻이 그렇게 가련하고 거룩한데 내가 어떻게 밟지 않고 지나가겠느냐?’ 하면서 부처님께서 그 자리에서 선혜에게 바로 수기를 줍니다. 너는 다음생에 석가 부처가 될 것이다라는 예언을 바로 합니다. 불교에는 예언 문화가 많습니다. 수기도 전부 예언입니다. 종교에서 가장 아름다운것 중 하나가 바로 수기입니다. 수기가 없으면 종교가 얼마나 삭막하겠습니까? 예언으로 말미암아 우리도 부처가 될 수 있는 겁니다. 어느 누구에게 다 수기를 주는 것은 특별한 사람만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생명있는 것은 모두가 부처 될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수기가 중요하고 위대한 것입니다. 특히 묘법연화경을 보면 부처님께서 모두에게 수기를 다 주십니다. 생명있는 모든 것들은 부처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연등 부처님 시절에 선혜 보살의 전생 이야기가 처음으로 나옵니다. 이것은 보시와 정진에 대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고 있습니다. 그 다음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 중에서 설산 동자 이야기가 있습니다. 열반경에 나오는 이야기가 바로 설산동자 이야기입니다. 설산동자 시절에 부처님께서 히말라야 산중에서 열심히 수행 정진 하고 있었습니다. 부처님의 전생이야기 중 수행 정진한 무대가 히말라야 산입니다. 도를 이룬 곳도 히말라야 산입니다. 히말라야 산에서 열심히 수행 정진하고 있었을때 제석천왕이 나찰로 변해가지고 얼마나 열심히 수행 전진하고 있는지 실험을 해 보기 위해서 부처님이 수행하는 반대편 나무에 앉아서 나찰이 한 구절을 읆습니다. ‘제행무상 시생멸법’ 제행무상은 부처님께서 깨치신 연기의 첫 구절의 내용입니다. 제행무상 시생멸법은 형상이 있는 모든 것은 끊임없이 변하며 생겼다가 없어지나니. 끝없이 되풀이한다는 이 말을 나찰이 합니다. 젊은 수행자가 그 말을 듣는 순간 환희에 차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그러데 아무리 둘러봐도 이 멋진 말을 하는 사람이 없습니다. 그런데 맞은 편 나무에 보니까 나찰이 앉아 있습니다.

그 나찰이 자신이 한 말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가 나찰에게 한 마디만 더 일러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나찰은 그냥은 일러 줄 수가 없다며 일러주는 댓가로 너의 생명을 달라고 합니다. 진리라는 말 한 마디를 듣기 위해 자신의 생명까지던져 줄 가치가 있는가를 생각지도 않고 수행자는 여기서 내가 몸을 던질테니 마지막 한 구절을 일러 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수행자는 몸을 던지고 나찰은 한 구절을 일러 줍니다. ‘생멸멸이生滅滅已 적멸위락寂滅爲樂’ 이 세상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끊임없이 생겨나고 죽는다고 합니다. 생겼다가 멸하기를 끊임없이 되풀이 하는데 생겨나고 없어지는 법을 깨닫고는 이 생멸법을 제대로 우리가 깨칠 것 같으면 진리의 바다가 끝없이 고요하며 즐거우리라. 한문보다는 한글로 번역한 것으로 시적이라 좀 더 실감이 날 것입니다.

그 말을 듣는 순간 수행자가 뛰어 내리면서 진리의 꽃이 바로 피어납니다. 제석천왕이 실험해 보니 정말 이 수행자는 어느 누구 보다도 곧고 확실한 목적을 가진 수행자구나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는 부처가 될 수 있는 뛰어난 수행자가 여기서 공부하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다음에는 부처님 전생 이야기 중에서 인욕선인의 전생 이야기가가 나옵니다. 진리를 깨치지 않고는 불가능 한 인욕선인 이야기가 가장 많이 읽고 보는 금강경에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먼 과거에 가리왕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을 때 대신들을 거느리고 깊은 산에 사냥을 나갑니다. 사냥을 갈 때도 왕의 시중을 드는 궁녀들이 따라갑니다. 점심을 먹고 난 후에 왕과 대신들이 낮잠을 즐기는 동안 궁녀들은 숲 속에서 즐겁게 놀고 있었습니다. 그때 수행자 한 명이 깊은 선정에 들어가 있는 것을 발견합니다. 깊은 선정에 들어가 있는 수행자의 모습에 궁녀들은 감동하여 반해 버립니다. 그래서 수행자 옆에서 법을 듣습니다. 그때 왕이 낮잠을 자다가 일어나보니 궁녀들이 보이지 않아서 찿아 보니까 수행자 주위에 궁녀들이 모여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왕이 노발대발해서 수행자를 추궁하고 손과 발을 자릅니다. 손과 발을 자를 때 원망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않는 것이 바로 인욕선인 이야기입니다. 우리가 궁극적으로 부처님의 전생뿐 아니라 이생에서도 똑같겠지만 전생의 이야기를 살펴보면 인욕과 정진과 보시를 어느 생이든지 거치지 않고는 부처가 될 수 없는 겁니다. 그 많은 인욕의 세월, 고통의 세월을 그쳤기 때문에 다 부처가 될 수 있습니다.

전생의 이야기를 보면 부처님께서 전생에 어마어마한 수행과 정진 인욕을 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전생에 대한 인욕선인의 이야기입니다. 현생의 부처님과 연결되는 이야기인 마지막 구리 선녀 이야기가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도 다바디 왕의 태자 보광이 출가 수행하여 부처가 되었을 때 선혜선인으로 깊은 산속에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부처님의 출연 소식을 듣고 선혜 선인도 마을로 내려 옵니다. 마을로 내려오다 보니까 바라문 5백명이 둘러 앉아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선혜가 설교를 듣고 있다가 몇가지 질문을 하는데 바라문이 대답을 못합니다. 대답을 못하니까 그 자리에서 선혜가 해답을 주니까 5백명의 바라문이 즐거워 하면서 은자 한냥씩 선혜에게 던져 줍니다. 그래서 선혜는 은자 5백냥을 들고 부처님이 계신 마을로 내려 옵니다. 인연이란 것이 인과라는 것이 이렇게 묘합니다. 산에서 수행하던 선혜 보살은 돈이 없습니다. 그런데 바라문들이 설교하는 옆을 지나다가 그 사람들에게 돈 5백냥을 얻어서 마을로 내려와 부처님께 공양 올리기 위해 꽃을 사러 갔지만 꽃은 이미 다 팔리고 살 수가 없습니다. 그때 마침 왠 예쁜 아가씨가 꽃을 들고 지나 갑니다. 그 아가씨가 구리 선녀입니다. 구리 선녀가 꽃을 들고 가는 것을 선혜보살이 보고 구리 선녀에게 꽃을 팔라고 사정을 합니다.

구리 선녀는 한냥이던 꽃을 백냥 주면 팔겠다고 얘기합니다. 5백냥을 주고 꽃 다섯송이를 사게 됩니다. 구리 선녀는 꽃을 팔면서 왜 비싼 값에 꽃을 사느냐고 묻습니다. 선혜 보살이 부처님께서 출연 하셨는데 이 꽃을 사서 부처님께 공양 올리려고 한다고 합니다. 그 이야기를 듣고 구리선녀가 꽃을 못 팔겠다고 합니다. 그리고 내가 당신에게 꽃을 파는 조건은 부처를 이루기 전까지 세세생생 자신과 부부의 인연을 허락한다면 꽃을 주겠다고 합니다. 선혜 보살은 꽃을 살 것인지 고민을 하지만 부처 되기전까지만 부부되겠다고 하면서 꽃을 사갑니다. 그 꽃을 부처님께 공양 올리면서 수기를 받습니다. 구리선녀가 바로 현생의 야수다라입니다. 전생의 이야기를 보면 결국은 한생의 삶들이 다 들어 있습니다. 마지막에 구리 선녀의 이야기를 넣은 것은 구리 선녀 이야기가 결국은 우리가 앞으로 전생에서 현생으로 넘어오면서 바로 전생에서의 약속이 현생에 까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를 공부했고 다음 시간에는 현생에서의 삶으로 부처님께서 부처를 이루기 까지 깊은 수행을 한 전생이 있었는지 보면서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느생의 삶이든지 내가 그 생의 삶을 정말 절실하게 잘 사는 게 중요합니다. 부처가 되는 것은  내가 한생을 잘 살고 나면 부처되지 말라해도 부처가 됩니다. 이것은 부처님 한사람에게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누구에게나 똑같이 공통으로 적용되는 이야기입니다. 부처님의 전생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주요한 메시지는 한 생을 절실하게 살았던 삶이 결국은 이어져서 현생에 석가라하는 부처를 탄생하게 만듭니다. 우리도 이 한 생을 그렇게 절실하게 살면 미륵이 될 수 있습니다. 따로 미륵이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절실하게 한 생을 살겠다고 마음 먹는 것 만큼 중요한것이 없습니다. 우리가 공부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가 위대한 삶, 거룩한 삶, 아름다운 삶, 행복한 삶 이라고 이야기 했듯이 우리도 의지를 굳히면 부처님 같이 그길을 걸어 갈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위대한 생에와 사상의 첫 번째 시간으로 부처님의 전생을 보면서 인과라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생각하게 합니다.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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