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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12강 집단의 귀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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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1,207회 작성일 21-07-22 08: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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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2강 집단의 귀의 



 안녕하십니까? 아침에 눈 뜨면 내가 부처다 생각하십니까? 108배도 하시고 30분 참선도 하십니까? 하루도 빼먹지 말고 매일 하시기 바랍니다. 

 이번 시간에는 카사파 형제의 귀의, 집단의 출가에 대해 공부하겠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재가자로서 부처님의 제자가 된 야사에 대해 알아보았고 오늘은 출가수행가로서 부처님께 귀의한 집단 출가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야사와 그의 친구 50명의 출가로 말미암아 부처님의 교단은 약 60명이 되며 모든 제자들에게 전도를 떠나라고 합니다. 전도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하도록 하겠습니다.

 카사파 형제가 부처님께 귀의한 것은 인도 사상계를 완전히 뒤바꿔놓은 사건이 됩니다. 그 당시 인도에서 가장 큰 나라인 마가다국의 수도 왕사성과 그 다음 큰 나라인 코살라국의 수도 사위성 중간에 바이샤리가 있습니다. 이곳이 인도의 가장 큰 중심가였습니다. 마가다국은 많은 신흥 사상가가 모여 있었으며, 부처니께서 도를 이룬 곳도 마가다국입니다. 마가다국에서 출가수행자의 집단으로써 가장 큰 집단이 카사파 형제의 집단이었습니다. 바라문 계급인 카사파 형제 중 첫째 형인 우루벨라의 500명의 제자, 둘째 나디가 300명, 셋째 가야 카사파에게는 200명의 재자가 있어서 모두 1,000명으로 그 누구도 넘볼 수 없는 집단이었습니다. 부처님 당시 뛰어난 사상가인 육사외도 중 가장 사상적으로 큰 영향을 미친 사람이 산자야였으며 회의론을 주장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면 그 당시 부처님과 더불어 살았던 육사외도 중에서 먼저 아지타가 있습니다. 유물론적인 단견외도로써 세상을 지수화풍의 결합일뿐 이라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우리의 정신과 영혼을 부정하고 단지 물질로만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인과와 과보를 일체 인정하지 않는 유물론입니다. 이것을 주장한 사상가가 바로 아지타입니다. 과보도 없고 다음 생도 없는 모든 인연과를 부정한 사상가가 아지타입니다. 


그 다음 사상가에는 파쿠다라가 있지요. 육사외도의 이름은 다 외우지 못해도 여섯명은 알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상은 다른 것이 아니라 이 육사외도의 사상을 깨뜨리면서 불교가 이루어집니다.

파쿠다라의 사상은 지수화풍에다가 고락명입니다. 아지타는 생각자체가 없다는 단견외도이고 파쿠다라는 무인외도입니다. 여기도 인과가 없다고 주장한 것입니다. 신이 없다는 것에는 동의하지만 지수화풍 고락명의 고는 괴로움의 덩어리, 락은 즐거움의 덩어리, 명은 생명의 덩어리, 이것들이 함께 일곱 개로 이루어졌다고 생각한 것이 파쿠다라이며 무인외도로써 인과를 인정하지 않는 사상가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끌려다니면서 그 생명을 느끼는 수용자의 영혼이 있다고 주장하면서 괴로우면 괴로운대로 즐거우면 즐거운대로 주어지는 대로 살자는 평등이론을 주장한 것이 파쿠다라입니다. 


그 다음은 막칼리입니다. 막칼리는 지수화풍고락명에 생사득실을 더한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태어나고 죽고 내게 득이 되고 내가 잃고 하는 득실을 더한 외도가 막칼리입니다. 이 막칼 리가 사명외도입니다. 혹시 사명외도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이 있습니까?  부처님께서 열반에 들기 전에 그 마지막 안거를 끝내시고 쌍라상수나무 아래서 열반에 듭니다. 그 열반에 들 때 부처님과 더불어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이  다 다른 길로 포교를 다 떠납니다.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가 가섭이지요. 가섭도 나름데로 포교를 위해서길을 떠납니다. 길을 가다가 바로 사명외도인 막칼리를 만나고 막칼리는 가섭에게 너의 스승인 부처님께서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가섭은 사명외도의 말을 듣고 포교의 길을 접고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셨다는 쌍라쌍수로 달려갑니다.  

그 다음으로 새로운 사상가인 푸라나입니다. 이 푸라나는 숙명론을 주장합니다. 이 푸라나를 따라다니는 무리들을 우리는 숙명외도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래서 이 푸라나는 사람의 빈부귀천, 선악부정등 인간행위는 숙명적으로 결정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 바로 숙명론입니다. 숙명론은 받아들이기가 쉽습니다. 엄밀히 말해서 인과를 받는 것은 숙명론이 절대 아닙니다. 잘못하면 숙명론과 운명론에 빠지게 되는 데 절대로 거기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그 숙명론을 주장한 사람이 바로 푸라나며 그것을 따르는 무리가 바로 숙명외도입니다. 숙명론은 바로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빈부귀천이 정해져 몸을 받는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 나오는 사람은 그 당시 큰 세력을 얻었던 가장 중요한 사람입니다. 니간타는 지금도 인도에서 존재하고 있는 조아스트교의 창시자입니다. 부처님 당시에 두 개의 종교가 탄생합니다. 아직도 인도사회에서 불교에 버금가는 조아스터교를 믿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나칸타는 물질과 정신이 능동적으로 활동한다고 주장합니다. 이 주장은 불교에서 이야기하고 인과라든지 이런 류에 상당히 접근하고 있습니다. 니칸타는 인간은 정신과 물질이 이루어져 있으며 이 물질과 정신이 능동적으로 활동한다고 주장해요. 그러니까  어느 정도 연기에 접근해가고 있는 이론이 나칸타의 주장입니다. 니칸타를 따르는 무리를 나형외도라고 합니다.  

나형외도들은 태초부터 정신과 물질은 활발하게 활동하면서 대립하고 있는 관계로 이해하고 사람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지은 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자 이렇게 볼 때 불교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그 당시 부처님 처럼 깨달았다고 주장하는 사람중에 한사람이 니간타입니다. 이렇게 볼때 니간타가 주장하는 것은 사람이 잘 살고 못사는 것이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지은 업에 의해서 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즉 여기서도 바로 인과에 대한 부분을 주장합니다.

니간타는 나름대로 존재의 본질에 대해 깨쳐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해서 이루어진다고 생각합니다. 니간타를 따르는 무리를 나형외도라고 합니다, 혹시 나형외도하면 기억나는 것이 있습니까?  지금도 종교전쟁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 지구상에 종교전쟁이 일어나지 않은때가 없었어요. 종교는 인간이 나름대로 집단을 이루어서 삶의 목표를 제시하는데 종교만큼 분명하게 제시하는 것이 없습니다. 분명한 그 목표가 부딪치니까 전쟁이 일어나겠지요.  전쟁이 일어날 수 밖에 없어요. 그래서 종교가 탄생하고부터 종교전쟁이 일어납니다. 이 지구상 어디에서도 종교전쟁을 일으키지 않은 유일한 종교가 불교입니다. 이 부분은 다음에 불교의 역사이야기를 하면서 구체적으로 나오는데 그 당시 부처님과 니간타도 나름대로 깨친 성자로써 따르는 무리가 많았습니다.  

산자야를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뛰어난 사상가들이 많았습니다. 실질적으로 능력있는 사람들을 제일 많이 거느린 사람으로 약 200명이나 됩니다. 산자야의 200명의 제자중에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부처님의 가장 뛰어난 제자 사라불과 목련존자가 있습니다. 이 사라불과 목련이 누구의 제자였느냐 하면 산자야의 제자였습니다. 하루는 부처님의 제자인 마성이 길을 가는데 마성의 거룩한 모습에 사라불과 목련이 반해 버립니다. 그리고 마성에게 묻습니다. “너를 가르친 스승이 누구냐, 너의 스승은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고 묻자 마성이 말하기를 나의 스승은 부처님이고 나의 스승은 연기를 가르친다고 하면서 그 연기를 사라불과 목련에게 설명을 해 줍니다. 사리불과 목련은 그 자리에서 연기를 인식하고 터득합니다. 그리고 사리불과 목련이 “우리는 산자야를 스승으로 모실수 없다고 하면서 더 뛰어난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부처님한테로 갑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고 난 후 인도의 사상계를 평정하게 됩니다. 아마 초유의 일입니다. 인도에서도 중국에서도 그리는 로마에서도 이 세상 어디에서도 일어나지 않는 일이 부처님 한테서 일어난 것입니다. 부처님이 도를 이룬 당시에 가장 큰 사상가로써 많은 무리를 이루었던 사람은 누구냐 하면 가섭삼형제 였습니다. 불의 신을 믿는 가섭형제가 여기서 말하는 가섭하고는 다른 사람으로 동명이인입니다. 부처님 제자 중에 가섭삼형제는 나이도 많습니다. 이 가섭삼형제가 가장 많은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큰형은 5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고, 둘째형은 300명의 제자들을 거느리고 있었고 막내는 200명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일 먼저 가섭삼형제를 굴복시킵니다. 이 가섭삼형제를 굴복시키니까 부처님의 제자가 순식간에 천명으로 불어납니다. 그 당시 인도사회에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초유의 그룹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은 불교를 이해하는데 상당히 중요한 부분이 됩니다. 


부처님께서 12처를 중심으로 이 회의론을 깨게 됩니다. 산자야에게는 약 200명의 제자가 있었습니다. 카사파 형제의 집단 출가는 계획적이고 의도된 것이었습니다. 부처님께서 한명씩 출가를 시켜 인도 사상을 바꾸려면 평생이 걸려도 어렵습니다. 이 카사파 형제를 귀의시킴으로써 인도 사상계의 흐름을 뒤바꿀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신통력을 부리게 됩니다. 개인적인 귀의가 아닌 집단의 귀의는 일대 일 설명으로는 불가능하기 때문에 기적이나 신통을 보임으로써 감동과 탄복을 시켜 불교에 귀의하게 하기 위해서는 절대적인 힘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신통력을 쓰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룬 다음 해에 야사와 카사파 형제의 귀의함으로써 인도의 전 사상계를 휩쓸어버리게 됩니다. 만약 카사파 형제의 귀의가 없었더라면 오늘날의 불교의 모습은 없었을 것입니다. 

카사파 형제의 귀의는 그 당시 인도 사상의 흐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많은 사람들을 부처님께 귀의하도록 만든 큰 사건이었습니다. 많은 외도들은 끊임없이 부처님을 음해하지만 결국 큰 흐름에 휩쓸려 흘러가게 됩니다. 이 때 부처님께서 사용하신 몸의 신통과 입의 신통, 뜻의 신통을 보임으로써 카사파 형제와 제자 1,000명을 귀의하도록 만듭니다.

  ‘이 바라나에는 카사파 형제가 살고 있었다. 그들은 높은 교육을 받고 엄한 종교생활을 하고 있었다.’ 

이들은 모두 브라만 출신들입니다. 부처님의 불법을 펴는데 가장 강력한 적은 바라문들이었습니다. 맏형인 우루벨라 카사파는 편력행자가 되기 위해 집을 나가 우루벨라에 수행처를 만들어 두 동생인 나디와 가야도 형을 쫓아 우루벨라 곁에서 편력행자가 되었습니다. 이들 모두는 화신을 섬겼습니다. 그 당시 인본주의 사상이 확립되기 전이어서 자연의 절대적인 신을 믿었는데 이들은 불의 신을 믿었으며 머리는 소라 고동처럼 틀어 올린 상투 모양을 하고 있었습니다. 이 카사파 형제를 편력행자라고 이야기하며 육사외도를 모두 행자라고 합니다.


 이 당시 카사파 형제는 1,000명의 제자가 있었으며 우루벨라 카사파는 해탈을 얻었습니다. 아라한을 얻었다고 소문이 나 있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은 우루벨라를 불교에 귀의시키기 위해 의도적으로 찾아갑니다. 부처님께서 하룻밤을 재워달라고 하자 부처님에 관한 이야기를 들은 우루벨라가 거절을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화신을 섬기고 있는 사당인 화단에 가서 하룻밤 자기를 청합니다. 이 화단에는 독룡이 살고 있어서 감히 누구도 접근을 못했는데 부처님께서 하룻밤을 자겠다고 하니까 걱정도 되지만 마지못해 허락합니다. 카사파 형제와 제자들은 부처님께서 독룡에게 죽임을 당할까봐 걱정하면서 시를 읊고 있었습니다.


  ‘아, 슬프다. 제일가는 왕가에 태어나고 감자 종성 가운데서 가장 높은 분, 세간의 태어나신 곳 그보다 나은 이 없는데 지금 독룡에게 그 몸을 태우시다니.’

 이렇게 부처님의 안위를 걱정하면서 시를 읊는데 부처님의 선정의 힘에 의해 독룡이 항복하게 됩니다. 그 다음 날 우루벨라 카사파는 감히 화단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망설이다 들어가니 부처님께서 선정에 들어 앉아 계시는 것을 보고

  ‘부처님이시여,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까?’

 부처님께서는 바리때에 독룡이 들어 있는 것을 보여 줍니다. 이렇게 1차 신통을 보였지만 그때까지 인정하지 못합니다.

 며칠 후 마가다국에 큰 제사가 있어서 인근 나라의 많은 사람들이 최고 존경의 대상자인 우루벨라에게 공양을 올리게 됩니다. 카사파가 생각하길 만약 부처님이 또 다시 신통을 부린다면 자신의 처지가 난처하게 될 것을 생각합니다. 부처님께서 선정에 들어 카사파가 제사에 참여하시지 않기를 바라는 것을 보시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걸식을 하시어 제사 지내는 곳과 멀리 떨어진 아뇩달 못가에 앉아 선정을 즐기고 계십니다. 행사가 끝나자 우루벨라를 찾아간 부처님께 

 ‘부처님이시여, 왜 제사에 참석하지 않으셨습니까?’ 여쭙자 부처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카사파여, 당신이 제사에 참석하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아뇩달에 앉아 선정에 들어있    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타심통을 보여 주십니다. 카사파 우루벨라는 부처님의 신통력을 보고 느끼면서도 아직 부처님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신통은 부리지만 마음속으로 부처님이 자신 보다 한 수 아래라고 생각합니다. 


또 한번의 신통을 부처님께서는 카사파에게 보여줍니다. 추운 겨울 밤 니련선하강 가에서 일주일 동안 편력행자들의 기도가 연례행사로 있습니다. 수신에게 기도를 올리며 심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즘 수련대회 같은 것입니다. 이 때 먹구름이 몰려와 홍수가 납니다. 홍수가 모든 것을 휩쓸어버립니다. 다음 날 카사파는 부처님이 어떻게 하고 계시는 지 궁금하여 찾아가 봅니다. 그런데 그 홍수 난리 속에서도 부처님의 사방 1m 근처에는 물이 침범하지 못하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차츰 부처님을 받아드리고 있었지만 이 사건으로 카사파는 부처님께 완전 귀의하게 됩니다. 부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제자가 될 것을 맹세합니다.      


 카사파 자신은 아라한 도를 얻지도 못했는데 도를 얻은 사람으로 소문이 나서 부처님께 여쭈어 봅니다.

  ‘대사문이시여, 아라한이란 도대체 무엇입니까?’ 부처님께서 말씀하시길

  ‘아라한이란 여덟 가지의 바른 도를 실천하는 자이며 마음의 장애가 되는 일체의 욕망을 이길 수 있는 자를 말합니다. 화신을 섬긴다고 해서 인간의 행위와 지은 죄업이 깨끗해질 수는 없습니다.’

 천당에 태어나게 기도한다고 천당에 태어날 수 있느냐는 문제와 같습니다. 그 당시 화신을 믿는다고 지은 죄가 소멸되지도 않고 그 죄가 깨끗해지지도 않는다고 설명하여 차츰 진리 쪽으로 돌아서게 합니다. 부처님의 바른 힘을 믿는 마음이 생겨 부처님의 지혜가 자신의 지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음을 알고 부처님께 귀의하게 됩니다. 

 제일 큰 형인 우루벨라가 먼저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보이신 신통 즉 화단에서 독룡을 제압하는 것과 제사 때의 그 모든 과정을 보게 되어 카사파는 제자들에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수행하면서 도를 닦겠다고 선언합니다.

  ‘너희들도 스스로 갈 길을 찾아라,’ 

 스승의 말을 들은 제자 500명도 부처님께 귀의하게 됩니다.

 우루벨라 근처에서 수행하던 카사파의 두 동생들은 맏형이 화신을 섬겼던 제단과 여러 가지 물건들을 강에 던진 것을 보고 형을 찾아옵니다. 그 당시 있었던 일을 상세하게 이야기하자 두 동생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습니다. 두 동생을 따르던 500명의 제자도 함께 귀의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카사파 형제와 1,000명의 제자들이 집단으로 귀의하게 됩니다.

 마가다국은 부처님께서 불법을 펴시기에 수월했습니다. 브라만도 귀의하여 쉽게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는데 코살라국의 바라문들은 부처님께 끝까지 저항을 하게 됩니다. 

 우루벨라 카사파는 

  ‘우리들은 옛날 헛되이 화신에게 제사를 지냈고 헛된 고생을 하였네. 우리들은 이제    이 법을 버리네. 참으로 뱀이 허물을 벗음과 같네.’ 

 하며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그 당시 인도의 사상계를 뒤바꿔버린 엄청난 대사건이었습니다. 마가다국의 임금과 백성들은 카사파의 입을 통해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는 사실을 직접 듣고 믿게 됩니다. 

 산자야의 제자 200명 중에 사리불과 목건련은 가장 뛰어난 제자였습니다. 하루는 목건련이 왕사성을 지나다가 깨끗하고 맑은 기운의 마성을 보게 되는데 처음 본 순간 반하게 됩니다. 

  ‘네 스승은 누구냐?’

  ‘제 스승님은 부처님이십니다.’

  ‘무엇을 가르치시느냐?’

  ‘연기를 가르치십니다.’

 그 자리에서 마성이 설명하는 연기를 듣고 목건련이 깨닫게 됩니다. 목건련이 사리불에게 연기를 설명하자 그 자리에서 사리불도 깨치게 됩니다. 산자야를 찾아간 사리불과 목건련은 스승께 부처님의 가르침을 받을 수 있도록 간청합니다. 산자야가 거절하자 떠나겠다고 하면서 산자야의 제자 200명에게 부처님 법을 말하자 그들도 부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들은 산자야는 피를 토하게 됩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은 1,200명의 제자가 한꺼번에 생기게 됩니다. 

하루는 모든 비구들이 둘러앉아 부처님께 여쭈었습니다. 

"부처님이시여, 장로 사리불은 지난 과거세에 어떤 선근을 심었기에 그 인연을 타고 이제 출가하여 구족계를 이루었고 아라한과를 증득하였으며 부처님께서는 또 수기하시되 '큰 지혜 성문 제자들 가운데는 사리불이 제일이요'하시는 것입니까?"

 부처님은 말씀하시기를 

"모든 비구들이여, 지난 옛날 과거세에 저 파라나성에 소필리야 善愛(선애)라는 사람과 또 선애의 여동생이 살았느니라. 

 그 때 선애는 집을 버리고 출가하여 곧 벽지불을 이루었고 그 여동생 소필리야는 파리바사가 외도 가운데 출가하여 도를 배웠다. 

 어느 날 선애 벽지불은 외도 여동생 소필리야를 찾아갔다. 거기에 가서 자리를 깔고 앉았는데 동생 소필리야는 백 가지 맛을 음식을 장만하여 손수 공양을 베풀어 배불리 먹게 한 뒤에 다시 칼 하나와 바늘 하나를 그 오빠 벽지불에게 받들어 올렸다. 

 그 벽지불은 밥을 다 먹고나서 여동생이 준 칼과 바늘을 가지고 그 여동생 앞에서 허공으로 날아서 갔다. 그 여동생 소필리야는 그 오빠 벽지불이 허공으로 날아가는 것을 보고 코게 기뻐 뛰놀며 기쁨이 온몸에 넘쳐서 어쩔 줄을 몰랐다. 합장하고 멀리 그 벽지불을 경례하고 이런 원력을 세웠다. 

 "원하옵건대 나는 미래세에 이런 스승이나 더 나은 분을 만나 그가 설하는 법을 빨리 깨닫고 악도에 나지 않게 하고 내가 보시한 날카로운 칼이 베지 못함이 없는 것과 같이 이 끊고 베는 인연업으로써 나는 미래세에 일체 번뇌를 모두 끊지 못함이 없고 또 이 바늘이 두루 꿰뚫듯이 나는 미래세에 일체 번뇌를 모두 다 꿰뚫고 사무치리라."

여동생은 이렇게 지극한 마음으로 원을 세웠다. 

"비구들이여, 그때 소필리야 외도로 선애 벽지불에게 칼과 바늘을 보시한 사람이 바로 사리불 비구니라. 사리불은 이 생이나 다음 생에도 지혜가 제일이니라."

제자들은 부처님으로부터 사리불의 전생담을 듣고 이 유한한 생을 어떻게 하면 잘 보낼 수 있을지 더욱 수행에 박차를 가하게 됩니다. 그냥 우연하게 이루어진 것도 없으며, 노력하지 않고 좋은 결과가 생길 수도 없음을 깊이 느끼게 됩니다.  

 아침. 저녁 예불할 때 예불문을 보면

  ‘십대 제자, 십육성, 오백성, 독수성 내지 천이백제대 아라한이 나오지요?’

 ‘천이백제대 아라한’이라고 할 때는 일반적으로 부처님의 교단 전체를 상징하지만 카사파 형제를 따르던 1,000명의 제자와 산자야 제자 200명을 더하면 1,200명이 됩니다. 이것은 초기 부처님의 제자가 된 집단 출가자의 숫자가 되기도 하고 불교 교단 전체를 상징하기도 합니다. 

 십대 제자는 부처님을 따라 수행한 가장 뛰어난 10명의 제자를 가르킵니다.

 십육성은 오백아라한 중에 뛰어난 제자 중에서 비록 10대 제자에는 들어가지 못하지만 뛰어난 분을 말합니다. 운문사에 가면 독각성에 나한 모신 것 보았지요? ‘아라한’의 아를 빼면 ‘나한’인데 ‘나반존자’와 거조암의 오백나한 중에 ‘빈두르존자’, 이런 분이 십육성입니다. 

 오백성은 부처님 당시 아라한과을 얻은 500명을 말합니다. 부처님이 돌아가신 후 제 1결집에 모인 분들이 500아라한입니다.

 독수성은 독각성으로 혼자서 아라한도를 얻은 분으로 오비구가 그 대표적입니다. 

부처님 당시 불교의 교단을 이루고 있었던 일반적인 지침이 나오게 됩니다. 아라한도를 터득한 사람은 모두 신통이 있느냐? 외도들은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고집멸도 사성제와 연기를 터득하면 아라한과를 얻게 되는데 이 때 신통력을 갖게 되는 아라한의 수는 약 40% 정도이고 갖지 못한 아라한이 60%정도 됩니다.

 위빠사나인 정념으로 도를 이룬 아라한은 신통력이 없습니다. 사마타인 정정으로 도를 이룬 아라한은 신통력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오늘은 집단의 출가로 말미암아 인도사상을 순식간에 바꾸어버린 대변혁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태어남에 의해 존귀가 구분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모습에 따라 귀하고 천한 것이 구분된다는 인간중심 사상인 불교가 창출되게 됩니다. 불교가 우리의 삶에 영향을 미친 가장 중요한 내용이고 이것이 집단의 출가로 가능한 것이었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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