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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15강 초기의 사원들 - 죽림정사, 기원정사, 대림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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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0,184회 작성일 21-07-22 08: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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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5강 초기의 사원들 - 죽림정사, 기원정사, 대림정사


 반갑습니다. 

한주 잘 계셨어요? 이제는 나는 부처다. 아침에 일어나서 참선  30분씩 당연히 하시겠고 조금 더 탄력이 붙으면 하루 1시간, 공부할 수 있으면 정말 부처될 수 있습니다. 30분은 이제까지 공부할 수 있도록 유도한 것이고 제대로 공부할려면 한 시간은 해봐야 합니다. 하루 1시간씩 공부 한번 해 보세요. 수업시간을 50분하고 10분 쉴 때는 쉬운데 50분을 넘어서 1시간을 앉아 있기는 정말 어려워요. 30분, 50분하는 것하고 1시간 하는 것은 차이가 납니다. 2시간, 3시간, 4시간 앉아 있어 보세요. 4시간 이상 앉아 있을 수 있다면 인생 대성공입니다. 4시간 앉아 있는 것은 절 삼천 배하는 것만큼 어렵지만 한번 하고 나면 공부하는 것에 힘이 됩니다. 청소년들이 극기 훈련하는 것처럼 한번 정도 어려운 것 하고나면 그 다음은 쉽습니다. 수학 문제 어려운 것 풀고 나면 그 다음부터는 식은 죽 먹기입니다. 어려운 것을 하고 나면 쉬워집니다.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하신 것도 깨달음에 이르기 위한 것입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극기를 한번 하고 나면 살아가는 동안 어려움이 닥치더라도 쉽게 극복할 수 있습니다. 자기한테 주어진 높은 산도 쉽게 극복하고 갈 수 있습니다.


 오늘은 부처님께서 수행하신 공간, 사원, 정사, 절이 어떻게 만들어졌으며 최초의 사원은 어떤 것이 있었는지 알아보겠습니다. 불교 공부한지 벌써 6개월이 지났습니다. 이제 절에 가면 나름대로 자신감이 있어야 됩니다. 교리만 알아서는 절에 가서 큰소리칠 수 없습니다. 절에 가서 모르는 것만 있으면 주눅이 들어 자신감을 잃어버립니다.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고 가면 절에 가기도 편안하고 수월해 집니다. 먼저 최초의 사원을 이야기 해보겠습니다. 


 최초의 사원은 죽림정사입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 오랫동안 머무르셨던 곳이 마가다국과 코살라, 그리고 그 중간지역인 밧지국입니다. 마가다국의 수도는 왕사성이었고 코살라국의 수도는 사위성, 그리고 밧지국의 수도는 베이샬리입니다. 최초의 사원인 죽림정사는 왕사성에 세워집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했듯이 바라문이 협조적이었고 부처님의 법을 쉽게 따라주었던 곳은 마가다국이었고 그에 비해 대륙에 있었던 코살라국은 바라문의 저항이 만만치 않았고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교화하신 동안에 거세게 저항한 곳이 코살라국의 사위성입니다. 인도에서 교통의 요지는 밧지국이었는데 결국 세월이 흐르면서 불교 중심지역으로 부상되는 곳은 밧지국의 베이샬리로 불교의 가장 중심지역으로 대두됩니다. 


 최초의 절이 세워진 왕사성 죽림정사는 부처님께서 출가하여 제일 먼저 마가다국으로 옵니다. 마가다국은 많은 신흥사상가들이 모여서 수행했던 곳입니다. 중국의 제자백가처럼 인도에서 가장 많은 사상가가 모여서 새로운 사상에 대해 꽃을 피웠던 곳이 이 마가다국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출가해서 스승을 찾아 헤매다가 이 마가다국에 오게 됩니다. 마가다국에서 빔비사라왕을 만나게 되고 빔비사라왕은 부처님의 모습과 부처님의 생각에 반해 부처님께 내 나라의 반을 줄 테니 나라를 다스려 달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도 나라를 버리고 떠난 몸으로 출가수행자가 되어 도를 이루고 왜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한 의문을 풀어야만 한다고 거절합니다. 그 말을 들은 빔비사라왕은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나면 나를 가장 먼저 제도해 달라고 말합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난 후 빔비사라 왕은 평생 부처님의 든든한 후원자가 됩니다.


 부처님께서 처음 도를 이루고 난 뒤 야사가 출가했고 야사의 친구 50명도 함께 출가했으며 카사파 형제와 그의 제자 1,000명이 출가하여 부처님의 교단이 갑자기 거대해졌습니다. 조그마한 공간에서는 함께 생활할 수가 없게 된 것입니다. 부처님을 따르는 무리들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곳이 없을까? 하고 빔비사라 왕이 생각합니다. 마가다국에서 찾아보니 왕사성 근처의 죽림정사가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하여 마침내 그 곳에 부처님이 계실 절을 지어 드립니다. 이 당시 절은 공원이라 생각하시면 됩니다. 어느 누구든 나무 밑에서 수행하고 비를 피할 수 있는 집이 있어 안거할 수 있는 공간으로 숲에서 수행할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최초의 절인 죽림정사를 지을 때 어떤 조건이 되면 부처님이 계시기에 가장 좋을까? 하고 고민을 하다가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께서 계시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 죽림정사라고 생각하여 그 곳에 절을 짓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9시에서 11시 사이에 걸식을 합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선정에 드셨다가 아침공양을 위해 9시쯤 걸식을 하는데 부처님께서 1시간 정도 걸어서 올 수 있는 곳으로 그 정도 거리면 부처님께서 걷기도 적당히 좋고 왕사성과 가까워서 급한 일이 생기더라도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거리로 시내와도 멀지 않는 곳입니다. 처음 죽림정사가 세워진 곳에서 왕사성까지는 1.5㎞ 떨어진 곳으로 1시간 정도면 다닐 수 있는 편한 곳 입니다. 만약 높은 산 중에 있다면 부처님께 쉽게 법을 청하러 올 수 있겠습니까? 어느 누구라도 부처님께 법을 쉽게 물을 수 있는 곳으로 다니기가 편한 곳으로 빔비사라 왕이 생각한 조건이었습니다. 그 다음 낮에는 대부분 부처님을 찾아 법을 묻기도 서로의 생각을 논하기도 하지만 저녁시간에는 참선하고 선정에 들어 진정한 깨달음을 위해 수행을 하기 때문에 시내와 적당히 떨어져 있어서 시끄럽지 않은 곳이어야 합니다. 너무 멀지도 않고 밤에는 시끄럽지 않아서 명상을 하기 좋은 곳이어야 합니다. 이 세 가지 조건이 맞는 곳이 왕사성에서 1.5㎞ 떨어진 숲 속에 있는 죽림정사가 가장 적당하여 빔비사라왕은 이곳에 부처님을 위해 최초의 절을 지어 드립니다.


 수행하기 좋은 절로 이 정도의 조건을 갖추면 좋겠는데 지금은 교통이 편리하니까 지역적인 위치는 크게 문제되지 않고 또 걸식을 하지 않기 때문에 사찰이 있는 장소는 어디든 크게 상관이 없습니다. 단지 수행할 수 있는 공간은 시내와 떨어져 있어서 어느 정도 밤 시간이 되면 고요하고 한적하면 공부하기가 좋을 것입니다. 수행하기에 좋은 적당한 조건만 맞으면 됩니다. 지금은 시내에서 떨어져 있어도 얼마든지 차로 움직일 수 있으니까 좋은 위치를 선정할 수 있습니다.


 그 당시 부처님을 위해 지어드린 최초의 절 죽림정사가 이렇게 해서 만들어집니다. 또 죽림정사와 더불어 이 마가다국은 부처님께서 불법을 가장 성공한 나라입니다. 빔비사라 왕의 후원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불법에 귀의할 정도로 마가다국에서는 대성공을 했습니다. 마가다국과 더불어 큰 나라가 코살라국입니다. 마가다국의 빔비사라왕의 부인이 코살라국의 공주입니다. 혼인을 해서 서로 불가침 조약을 맺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코살라 국에도 불법이 전해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코살라 국의 수도 사위성에는 큰 부자인 수다타 장자가 살고 있어요. 수다타 장자가 왕사성에 있는 친한 장자의 집에서 머물면서 보니 아침부터 온 집안이 온통 축제 분위기로 음식도 장만하고 하루 종일 분주합니다. 수다타가 주인에게

  “오늘 이 집에 축제가 있느냐? 아니면 임금님을 모시느냐?” 고 물으니

 “부처님과 부처님의 많은 제자들이 내일 우리 집에 오시기 때문에 음식을 장만하고 즐거워하고 있다”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래서 수다타는 왕사성의 장자 집에서 그 장자가 부처님을 모시는 것을 봅니다. 부처님을 친견하고 부처님께서 어떻게 살면 바르게 사는가에 대한 설명으로 사성제법을 설하는 것을 듣고 반해버립니다. 수다타 장자는 부처님을 자신이 살고 있는 사위성에 한번 모시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수다타 장자는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부처님, 저는 사위성에 살고 있는 수다타 장자로 내년에 제가 부처님을 사위성으로 초대하고 싶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내년에 사위성으로 가겠다고 허락을 합니다. 수다타는 허락을 받고 뛸 듯이 기뻐서 부처님과 많은 제자들이 사위성에 오면 머무를 수 있는 절을 마련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수다타는 사위성으로 돌아가 부처님께서 머무르기에 적당한 곳을 찾아 돌아다닙니다. 사위성을 다 돌아봐도 적당한 곳이 없습니다. 죽림정사를 보고 왔기 때문에 수다타는 부처님을 죽림정사보다 좋은 곳에 모시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날을 찾아다니다가 왕자 소유로 되어있는 제타 숲을 발견하게 됩니다. 코살라국 왕자의 소유로 된 제타 숲을 보고 부처님을 모시기에 가장 적당한 곳이라 생각합니다. 어떠한 일이 있더라도 제타 숲에 부처님을 모실 수 있는 절을 지어야겠다고 마음을 먹습니다. 수다타는 제타 숲을 사기 위해서 몇 번이나 흥정을 해 봤지만 마음대로 되지 않아 할 수 없이 왕자를 찾아 갑니다. 왕자는 평생 거닐 수 있고 즐길 수 있는 가장 좋은 곳인데 왜 팔겠습니까? 갖출 것 다 갖추고 곧 임금님이 되는데 무엇 때문에 팔겠습니까?

 제타 숲을 팔아라고 수다타가 하도 사정을 하니까 팔고 싶은 마음이 전혀 없는 왕자는 저 숲을 황금으로 깔든지 라고 말합니다. 수다타는 자기가 갖고 있는 전 재산을 털어 제타 숲을 황금으로 깔기 시작합니다. 처음에 왕자는 팔기 싫어서 황금으로 숲을 깔아라고 했는데 수다타가 정말 황금으로 깔고 있어 수다타를 부릅니다.

 “장자여, 왜 숲을 황금으로 깔고 있느냐?”

 “왕자시여, 제가 이 숲을 꼭 구해야 하는 까닭이 있습니다”

수다타는 왕사성의 친구 집에 갔다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불법을 들었던 이야기를 하면서 내년에 부처님을 사위성에 초대를 했는데 부처님께서 머무를 수 있는 곳을 찾던 중 가장 적당한 곳으로 제타 숲 밖에 없기에 지금 황금을 깔고 있다고 설명을 합니다. 

 왕자는 그런 일이라면 나도 협조하겠다고 하면서 무상으로 땅을 수다타에게 줍니다. 이런 기막힌 사연으로 사위성의 기원정사가 지어 집니다. 

 최초로 지어진 절이 죽림정사이고 두 번째가 기원정사입니다. 수급고독원이 바로 기원정사입니다.


 이듬해 부처님께는 이 사위성에 머무시면서 법을 설하시고 불음을 전합니다. 금강경의 주인공 수보리의 조카가 수다타입니다. 수보리의 아버지는 수만나 장자입니다. 수만나 하고 수다타는 형제입니다. 부처님을 모시기로 한 그 날, 수보리는 삼촌을 따라 부처님을 친견하게 됩니다. 수보리는 결국 출가하게 되고 평생 부처님을 모시면서 최고의 수행자가 됩니다. 그 금강경이 설해지는 무대가 기원정사이고 그 때의 주인공이 수보리인 역사적인 상황을 갖고 있는 기원정사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세 번째 절은 베샬리 지역에서 만들어 집니다. 인도의 3대 사찰은 죽림정사, 기원정사, 대림정사입니다. 앞부분을 공부할 때 암나팔리라는 창녀 이야기 했습니다. 대림정사는 암나팔리와 관계가 있습니다. 암나팔리라는 창녀가 평생 모은 자신의 전 재산으로 땅을 삽니다. 베샬리 주변의 암나팔리 숲을 전부 자기 땅으로 만듭니다. 평생 자신이 소유했던 암나팔리 동산을 부처님께 기증합니다. 이것이 암나팔리 동산이 되고 거기에 대림정사라는 절을 짓습니다. 즉 대림정사 중각강당인 것입니다. 창녀 암나팔리가 자신의 동산인 암나수원 동산을 부처님께 희사하여 그 동산에 대림정사 중각강당을 지어 교화의 중심지가 되었던 것입니다. 


 유명한 유마경이 설해진 곳이 바로 베샬리입니다. 그 많은 경전의 주인공은 누구입니까? 출가 수행자입니다. 유일하게 재가수행자가 주인공이 된 경전이 유마경입니다. 재가수행자로서 주인공이 되어있는 것이 유마경이며 여자 재가수행자가 주인공인 승만경이 있습니다. 남자 재가수행자가 주인공인 것이 유마경이고 여자 재가수행자가 주인공인 것은 승만경입니다. 인도 불교에서 유일하게 남자 재가수행자가 주인공인 유마경은 극히 희유한 경으로 인도 불교의 흐름을 새롭게 바꾼 역사적인 상황을 갖고 있는 것이 유마경입니다. 유마경의 내용을 볼 것 같으면 부처님의 십대 제자들이 모두 유마한테 야단을 맞습니다. 유마가 병이 들어 누워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제자들에게 유마가 병들어 누워 있느니 병문안을 다녀오라고 합니다.  

 “가섭아, 너가 병문안을 다녀오너라“ 하니 가섭이

 “부처님이시여 저는 못갑니다” 

 하면서 옛날 유마한테 꾸중을 들었던 이야기를 합니다.

 옛날 제가 탁발을 하고 있을 때 유마가 제가 탁발을 하고 있는 데서 깨끗하고 더러운 예를 들면서 어떤 집이 부유하고 가난하냐? 저는 가난한 집을 골라가며 탁발을 했는데 그것은 분별심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유마한테 꾸중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유마의 병문안을 가지 못합니다. 이렇게 부르나와 그 외 여러 제자들도 한결같이 유마에게 뼈아픈 질책을 받은 기억 때문에 유마한테 병문안을 갈 수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역사적인 상황으로 볼 때 대승경전이 만들어진 시기는 부처님 불멸 후 500년 정도 지난 후입니다. AD 원년부터 대승경전이 생산됩니다. 이 정도 상황이라면 부처님이 법을 펼치시고 500년 정도 지났기 때문에 부패하고 타락한 부분이 많습니다. 여기서 새로운 불교 운동을 일으키는 새로운 힘을 생각하고 불교의 새로운 흐름에 큰 영향을 미친 것이 유마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허구와 허상에 빠져 부패된 부분들을 유마경은 지적하면서 새로운 불교의 흐름을 창출해 갑니다. 대승경전 중에서 출가승려 중심의 불교 교단이 재가자와 더불어 불교의 흐름을 새롭게 창출해 가는 것이 유마경의 내용입니다. 경전의 내용을 볼 것 같으면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생각한다면 역사적인 상황도 이해할 수 있고 경전도 더 잘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런 유마경과 법화경의 가장 중요한 부분인 법화삼부경의 결정판인 간보현경이 설해진 곳이 대림정사입니다.


 삼대 사찰은 나름대로 사연을 갖고 있습니다. 대승불교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한 곳이 베샬리입니다. 코살라를 중심으로 불교가 전파되면서 멀리 떨어진 곳은 교통의 오지로 불편합니다. 오지로 한번 불교가 들어가면 다시 나오기 어렵습니다. 베샬리는 교통의 요지로 교통의 흐름이 좋기 때문에 변화도 많고 사람의 왕래가 빈번한 곳으로 새로운 사상이 일어나서 가장 번창하는 곳이 베샬리입니다.

 불교가 베샬리 중심으로 변하기 시작합니다. 부처님 당시의 근본 불교인 원시불교가 시간이 지나면서 인도 전역으로 퍼져 나가면서 지역별로 부파불교로 변화됩니다. 부파불교가 만들어지고 난 다음 시간이 흘러 새로운 불교의 흐름인 대승불교가 베샬리를 중심으로 이루어집니다. 오늘날 우리가 불교라고 알고 있는 가장 중요한 흐름인 대승불교가 이렇게 만들어 집니다. 대승불교에 대해서는 뒷부분에서 다시 설명이 나옵니다. 베샬리는 역사적인 상황을 갖고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최초로 지어진 3대 사찰인 죽림정사, 기원정사, 대림정사가 이렇게 해서 지어지게 됩니다.

 절에 다니는 불자로서 기본적인 규칙을 알고 있으면 편하고 수월합니다. 법당에 들어갈 때도 오른발부터 들어가야 할지 왼발부터 들어가야 할지 모를 때 기본적인 것을 알면 편안하게 법당에 들어갔다 나올 수가 있습니다. 불자인 우리가 불편하다고 하면 불교를 잘 모르는 사람이라면 얼마나 불편하겠어요. 가장 기본적인 것에 대한 공부를 이만큼 했으니까 누군가가 질문을 해도 기본적인 것은 설명할 수 있어 마음이 편하겠지요. 


 교재 4번을 보면 기본적인 사찰의 구조에 대한 설명입니다. 예를 들어서 동화사에 들어설 때 무엇부터 시작됩니까? 일주문부터 시작합니다. 일주문을 통과함으로써 부처님의 나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즉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일주문을 경계로 부처님의 나라, 중생의 세계가 분리됩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는 순간 부처님의 나라, 깨달음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마음가짐은 세속에 살면서 갖고 있던 모든 탐진치를 벗어놓고 부처와 같은 마음으로 통과해야 합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 그 다음 나오는 것이 사천왕입니다. 일주문을 통과하면서 부처님의 나라로 가는데 쉽게 일주문을 통과한다고 해서 금방 마음이 바뀝니까? 크게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사천왕문이 나옵니다. 사천왕문을 통과할 때 보면 팔부신중과 사천왕이 지키고 있습니다. 죄를 지으면 겁이 날만큼 우락부락한 모습을 하고 지키는 것이 사천왕문입니다. 사천왕문을 통과하면서 탐진치를 다 벗어 놓은 사람은 기분 좋게 마음 편하게 통과하지만 아직까지 탐진치가 남아 있고 세속적인 생각이 아직도 머릿속에 가득 차 있다면 통과하면서 확실하게 다 벗어 던지라는 것입니다. 사천왕이 어디에 살고 있습니까? 불교 세계관에서 육도 윤회한다고 했습니다. 육도 윤회할 때 죄를 가장 많이 지은 사람이 가는 곳이 지옥입니다. 이 생에 잘 살면 인간 몸 받겠지만 죄를 많이 지으면 지옥에 떨어지겠지요. 목련의 어머니는 어디에 떨어졌습니까? 지옥입니다. 지옥 다음에는 아귀, 축생, 아수라, 인간, 천상 여섯 세계입니다. 이 육도를 윤회합니다. 인간 세상 바로 위에 천상 세계로 하늘나라에 가면 제일 먼저 나오는 것이 사천왕입니다. 바로 이 사천왕문이 절에서 가장 먼저 나오는 이유가 여기서부터가 부처님의 나라라는 것을 확실하게 표시해 주는 것입니다. 사천왕문, 사천왕천 이것이 바로 하늘나라의 첫 하늘입니다. 그 다음 도리천, 도솔천, 야마천이 있습니다. 사천왕문에 들어서면 부처님의 나라에 확실히 들어가니까 탐진치를 말끔히 벗어 던지고 맑고 깨끗한 마음으로 부처님께 들어가라는 것입니다. 가다 보면 불이문, 불이교도 만납니다. 불이라는 것은 내게 탐진치가 없으면 계정혜도 없겠지요. 탐진치가 바뀌면 계정혜가 됩니다. 지난 시간에 공부할 때 사람은 욕심이 있다고 했습니다. 동물은 사람보다 욕심이 없습니다. 그러면 인간보다 동물이 낫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욕심을 잘 쓰면 계가 됩니다. 진심을 잘 쓰면 정이 됩니다. 치심을 잘 쓰면 혜가 됩니다. 잘만 쓰면 탐진치가 결국 계정혜로 바뀌니까 불이문은 진리와 세속은 둘이 아니며 부처와 중생도 둘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아 느끼라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중요한 일주문, 사천왕문, 불이문은 어떤 절에서나 다 만나는 곳입니다.  


 이것을 통과하면 사찰에서 제일 중요한 대웅전이 나옵니다. 대웅전이라는 곳은 석가모니 부처님을 모셔 놓은 집입니다. 즉 부처님이 사는 집이 전입니다. 예를 들어 친척집에 가면 제일 먼저 어른한테 가서 인사를 합니다. 밑에서부터 차례로 삼촌부터 거슬러 맨 나중에 할아버지한테 인사를 합니까? 제일 먼저 어른부터 인사하고 아랫사람으로 내려옵니다. 절에 가서 사천왕문을 통과하면 제일 먼저 부처님을 모셔 놓은 대웅전에 가야 합니다. 그 절에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대웅전이 자리 잡고 있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보다 더 높은 사람이 있습니다. 비로자나, 바로 비로자나불입니다. 비로자나라고 하는 것은 진리 자체, 빛, 광명 자체입니다. 결국 부처님이나 모든 성인이 깨치면 그 진리 자체가 비로자나라고 표현됩니다. 부처님께서 탄생하셔서 법을 편 곳은 남방화주 세계입니다. 이 바로자나가 남쪽으로 와서 화신을 한 곳이 남방화주 석가모니불입니다. 우리가 서방 극락세계라고 하지요. 비로자나불이 서쪽에 가서 화신하면 서방세계 극락세계 아미타불입니다. 그 다음 동방유리광세계 약사여래불이 있습니다. 최소한 비로자나불, 아미타불, 약사여래불 같은 경우는 석가모니불 대웅전 보다 위치가 낮은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우리가 똑같이 높다 해도 실질적으로 우리가 살고 있는 것은 남방화주 이 세계입니다. 똥개도 자기 집에서는 점수를 따고 들어간다고 합니다. 똑같은 부처님의 높이라 해도 가장 중요한 것은 이 세계에 태어나서 이 세계를 다스리고 우리에게 진리를 전한 석가모니 부처님을 우선적으로 생각해서 가장 중요한 위치에 석가모니 대웅전이 있습니다. 어떤 경우에 대중전에 비로전을 모셔 놓은 곳이 있는데 비로전은 부처님을 모신 대웅전하고 똑같은 자격과 위치를 가집니다. 또 어떤 절은 약사전을 주불로 모셔 놓은 곳도 있습니다. 대웅전이 없는 경우 약사여래불을 주불로 모셔 놓은 곳입니다. 약사여래불을 모신 절의 유래는 병든 사람이나 불구였던 사람이 기도를 정성스럽게 해서 그 몸이 나아 약사여래 부처님을 모셨다면 그 불이 주불이 되어 약사 도량이 되는 것입니다. 또 아미타불, 미타전이 있는 곳으로는 전라도에 있는 금산사가 유명합니다. 국보급의 유명한 미타전의 큰 절인 금산사에는 비로전이나 약사전 미타전은 대웅전과 똑같은 격을 가집니다. 대웅전이 없더라도 상관이 없습니다. 


 대부분 대웅전을 중심으로 부처님 보다 한 단계 낮은 곳에 보살들이 모셔져 있습니다. 보살들을 모셔 놓은 집은 관음전, 지장전입니다. 보살님들이 계신 곳은 문패를 보고 찾아가면 됩니다. 그 다음 나한전입니다. 보살님 보다 한 단계 낮은 나한전, 웅진전, 명부전 순으로 인사를 하면 됩니다. 그런데 기막히게 부처님 보다 더 높은 곳에 또 집이 있습니다. 산신각입니다. 산신각은 부처님전 보다 더 높은 곳에 있습니다. 산신각은 우리의 고유 민간 신앙입니다. 고유 민간 신앙인 산신을 대웅전의 가장 중요한 곳에 모셔 놓았지만 산의 기운을 가장 많이 받고 산의 영험을 많이 받는다는 곳에 산신각을 지어 놓고 받들어 모시고 있습니다. 


 2500년의 불교 역사가 흘러오면서 불교가 지나간 곳은 이 세상 어디에도 전쟁이나 다툼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불교문화는 흡수 문화, 서로 상생하는 문화입니다. 한국에 왔을 때 한국의 고유 신앙인 산신사상을 그냥 흡수해서 절과 더불어 같이 공존하는 것입니다. 실질적으로 대웅전에는 부처님만 모셔 놓아야지 다른 것은 못 옵니다. 그런데 부처님도 모시고 신중단에는 부처님을 수호하는 신중이 있습니다. 팔부신중은 부처님을 감히 침범하지 못하게 옹호하는 신들입니다. 


 원효와 의상 이야기를 잠깐 해 봅시다. 의상과 원효는 한국 불교계에서 길이 빛나는 인물들 입니다. 원효 정도가 되면 원효 보살이라고 해도 됩니다. 원효는 보살이 될 수 있는 모든 조건을 다 갖춘 분인데도 원효 보살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의상대사가 한번은 자신의 높은 도력을 보여줄려고 원효 스님을 초청했습니다. 의상은 밥을 지어 먹지 않고 천공을 합니다. 하늘나라에서 의상 대사에게 천녀들이 공양을 갖다 바칩니다. 그날도 원효 대사에게 점심을 한턱 내겠다고 모셨는데 아무리 기다려도 점심이 안 옵니다. 점심을 굶고 원효가 돌아가고 난 다음 점심 공양이 막 날아옵니다.

 “원효 스님 모시고 점심 공양 대접 할려고 했는데 지금 오면 어떻게 하느냐” 

 하니까 

 “원효 대사님의  신중들이 막고 있어서 저희들이 감히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신중들이 지키고 있으면 꼼짝을 못 합니다. 우리는 불보살님의 가피가 있다고 합니다, 지극 정성으로 기도하고 공부의 도가 올라가면 신중들이 보호를 합니다. 어느 누구든지 해롭게하지 못해요. 원효와 의상의 이야기에서 보았듯이 바로 신중은 부처님을 모시는 전차 부대입니다. 항상 부처님 옆에는 신중단이 있어서 부처님을 보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찰성각도 항상 대웅전하고 같이 들어와 있습니다. 다른 것은 못 들어와도 신중단과 칠성각만은 들어와 있어요. 따로 칠성전이라는 집이 아니고 칠성각입니다. 부처님 집에 셋방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칠성 신앙은 중국 신앙이지만 우리의 민간 신앙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들 점지해 달라 딸 낳아 달라 하는 것이 칠성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불교가 넘어오면서 함께 전래된 것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부처님과 더불어 법당 안에서, 대웅전 안에서 삽니다. 그래서 지금도 법당 안에는 신중단도 있고 칠성각도 옆에 붙어 있습니다. 감히 부처님과 같이 살 수는 없습니다. 신중은 부처님을 보호하기 위해서 있고 칠성각은 중국 불교가 전래되면서 정착된 것입니다. 나머지 많은 전각들이 그런 식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불교문화의 가장 중심을 이루는 것은 불교 건축들로 많은 건물들이 남아 있습니다. 절에 가서 대웅전과 비로전 등의 건물을 잘 보면 불교의 역사도 알 수 있고 우리 조상들이 얼마나 정성스럽게 건물을 짓고 수호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건물은 대부분 목조 건물이어서 수명이 오래 가지 못합니다. 안동 봉정사에는 최고 오래된 목조건물이 있고 그 다음 무량수전인데 둘 다 국보급입니다. 

 불교 조형으로는 불상, 탑, 석등,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절에 가면 제일 먼저 그 절을 표시하는 당간지주가 있습니다. 일주문에 들어가기 전에 그 절을 상징하는 당간지주가 있어요. 작은 절은 당간지주가 대웅전 바로 앞에 있는 경우도 있고 큰 절에는 당간지주가 절 입구에 있습니다. 당간지주를 거쳐 가면 석등을 만나게 되는데 부처님의 불이라는 것은 지혜를 밝힙니다. 불과 계속 연관이 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 계시는 사찰 내에는 석등으로 불을 켜고 있습니다. 그 다음 대웅전을 향해 가면 대웅전 바로 맞은 편에 탑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사리를 모셔 놓은 곳이 탑입니다. 부처님과 똑같습니다. 부처님은 돌아가셨지만 부처님의 거룩한 삶을 기리기 위해서 우리도 그렇게 살겠다고 생각하면서 부처님을 형상화한 것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형상이 보물로 남아 있는 경우나 탑과 석등이 보물로 남아 있는 경우와 당간지주가 보물로 남아 있는 것들이 불교문화의 중요한 부분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 다음 불교 미술로써는 탱화, 벽화, 괘불이 있습니다. 괘불은 사월초파일 같은 날에 야외에 걸어 두고 볍회를 볼 때 사용합니다. 옛날에는 법당이 그리 크지 않았습니다. 여러 마을의 사람들을 초대하면 수백 명이 모이는데 작은 법당 안에서는 행사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바깥에서 행사를 합니다. 그런데 부처님을 바깥으로 모시고 나갈 수는 없습니다. 야외에서 행사할 때 부처님을 그린 괘불을 걸어놓고 합니다. 이런 괘불은 바깥에서 큰 잔치를 하거나 행사할 때 필요하였던 것입니다. 그 다음 부처님께서 어떻게 사셨는지 또 부처님의 제자들이 어떻게 살았는지에 대한 그림이 건물에 벽화로 남아 있습니다. 벽화로서 많은 것들을 그림으로 표시해 놓았습니다. 불교를 설명할 때 말로 하는 것 보다 그림으로 보면 훨씬 이해하기가 쉽습니다. 그래서 벽화가 상징적입니다.  

 절에 가면 또 사물이 있습니다. 법고, 운판, 범종, 목어가 사물입니다. 법고는 축생 및 중생을 위해 치는 북입니다. 운판은 조류와 떠도는 영혼, 천도 못 받고 떠도는 부유영을 천도하는 것이 운판입니다. 범종은 천상과 지옥 중생을 제도하는 것이 범종입니다. 천상과 지옥 끝까지 다 제도합니다. 범종은 아침에 28번 치고 저녁에는 33번을 칩니다. 불교 세계관을 보면 지옥에서 비상비비천까지가 28천입니다. 또 33천은 도리천이 33천입니다. 그래서 저녁에 33번을 칩니다. 목어는 어류를 제도합니다. 물고기는 항상 눈을 뜨고 있기 때문에 수행하라고 경책하는 것이 목어입니다. 절에서 목탁을 칩니다. 목어가 변해서 목탁이 됩니다. 절에서의 가장 보편적인 필수품이 목탁입니다. 최초의 생명의 탄생은 바다에서 이루어졌기 때문에 어류의 의미는 참 중요합니다. 

 절마다 부처님의 손모양이 다 다릅니다. 기본적인 수인만 알면 부처님을 이해하기 쉽습니다. 부처님은 대부분 근본오인을 다 하고 계십니다, 근본 오인 중에서 제일 많이 하고 계시는 것이 항마촉지인입니다. 여기 법당에 하나는 항마촉지인이고 하나는 선정인으로 되어 있습니다. 부처님이 6년 고행을 하시면서 선정에 들었을 때 가장 보편적으로 했던 명상의 자세가 선정인이었고 마지막 도를 이룰 때 지옥을, 이 세상의 모든 마구니를 조복 받으면서 했던 수인이 항마촉지인입니다. 손을 밑으로 내리는 것은 지신을 제압하는 모습입니다. 선정인은 내 자신이 선정삼매에 들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고 항마촉지인은 이 우주에 존재하고 있는 모든 마구니를 조복 받았다는 것을 표시하는 것입니다. 전법륜인은 부처님이 전법을 하면서 가장 원만한 모습을 하고 있는 것이 전법륜입니다. 시무외인은 왼손을 높이 들고 있고 오른손은 아래로 합니다. 왼손을 높이 든 것이 시무외인인데 모든 중생의 두려움을 없애주고 우환과 고통을 없애 준다는 뜻입니다. 여원인은 중생에게 자비를 베풀어 중생들의 모든 소원을 들어주는 것으로 손을 밑으로 하고 있는 것이 여원인입니다. 대부분의 부처님은 항마촉지인을 하고 있습니다. 


 법당의 예절이라는 것은 법당안에 있는 사람이나 들어오는 사람이나 가장 편하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예라는 것은 예를 들어 어른을 찾아갔을 때 그 어른은 대접을 받으면서 편하고 찾아가는 나도 가장 편안하게 어른을 뵐 수 있는 것이 기본적으로 예입니다. 법당에 들어갈 때도 어른이 중앙에 앉아계시는데 중앙으로 들어갑니까? 양옆으로 들어가는 게 예입니다. 법당에서 나갈 때도 엉덩이 뒤로 해서 어른에게 보이도록 나갑니까? 뒷모습 안 보이도록 나가는 것이 예입니다. 이와 같이 서로가 서로에게 가장 편리하면서 아름다운 것이 좋은 예입니다. 절에서 스님을 만나거나 법당에 들어갈 때 또 도량을 둘러 볼 때 가장 편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유지할 수 있으면 그것이 바로 예의 가장 중요한 정신입니다. 그것이 지켜지면 예입니다. 법당문을 열고 들어갈 때도 왼 발이 먼저냐 오른 발이 먼저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편안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스님은 출가해서 공부하는 수행자입니다. 이 세상을 복되고 아름답게 거룩하게 하기 위해 자신의 삶뿐만 아니라 이 우주에 수행자로 살아가는 사람에게 표하는 예는 아버지와 어른 대하듯 하면 서로 어긋나는 게 없습니다. 기본적인 것은 예를 생각하면 절에서 스님을 만나더라도 자연스럽게 잘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최초사원의 겁립과 사찰의 구조, 사찰에 있는 조형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 공부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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