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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2강 부처님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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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988회 작성일 21-07-22 0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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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강 부처님의 탄생



반갑습니다. 한 주 잘 지내셨습니까? 

갑자기 날씨가 너무 추워져서 저녁에 다니시기 힘이 듭니다. 

오늘은 부처님의 생애와 사상 두 번째 시간입니다. 

지난 시간에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는 부처님 전생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부처님의 일생을 이야기할 때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에서 시작해서 “쌍림열반상”의 팔상성도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가장 잘 정리 해놓은 것이 이 8가지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이 8가지를 보면 제일 먼저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도솔천에서 부처님께서 내려오시는 겁니다.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 도솔천에 계시다가 마야 부인의 몸을 빌어 태어나시는 것이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이고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  어릴때 동, 서, 남, 북에서 일어나는 병든자 노인들을 보면서 인생의 무상무아를 직접 몸으로 체험하면서 거룩한 수행자의 길을 걸어가야 겠다고 결심 한 것이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입니다.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29살 때 출가해야 겠다는 생각을 하고 홀로 출가 수행하는 것이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이고 6년 동안 설산에서 수도하는 설산수도상(雪山修道相)으로 드디어 6년의 고행 끝에 모든 마구니에게 항복 받고 마음에서 일어나는 탐진치를 모두 깨뜨립니다.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드디어 도를 이루고 깨달음을 이룬 것이고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  35세 때부터 열반에 드시는 80세까지 끊임없이 법을 전하는 것이 바로 녹원전법상(鹿苑轉法相)입니다. 8번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마지막까지 법을 전하고 열반에 드는 것입니다.  이것이 부처님의 일대기를 요약하는데 있어서 가장 핵심되는 8가지입니다. 이번 시간에는  거룩한 부처님께서 걸어신 길들을 하나씩 살펴보면서 공부해 보겠습니다. 제일 먼저 부처님을 낳아주신 마야부인이 도리천에서 태어나셨고 미래에 부처가 되실 미륵보살이 도솔천에서 공부하고 있습니다. 바로 도솔천이 부처를 만드는 학교입니다. 부처님께서도 이 세상에 싯타르타 태자로 내려오기 전에 도솔천에 계시면서 수행정진하고 계셨습니다.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도솔천 내원에서 천상 인간들을 교화하고 계셨습니다. 다음 세상에 부처가 되실 미륵보살도 도솔천에 계십니다. 석가모니 부처님도 도솔천에서 호명 보살로 있다가 이생에서 부처를 이루었고 미륵불도 도솔천에서 공부하고 계시다가 다음 생에 미륵보살 부처를 이루게 됩니다. 도솔천에 공부하고 계시는 그 모습을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 이라 하고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은 이 세상에 몸을 빌어 태어나게 됩니다. 지난 시간에 부처님께서 기원전 623년 4월8일에 카필라성 정반왕의 아들로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난 이야기를 배웠습니다. 마야부인이 출산을 위해 코살라국의 수도인 라마가마로 가는 도중에 룸비니 동산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 산기를 느껴 부처님을 낳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자마자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삼계계고 아당안지(三界皆苦 我當安之)라고 했습니다. 천상 천하(天上天下)라는 것이 바로 하늘 위 하늘 아래 나홀로 높네, 생명에 대한 존엄성의 일대 선언이 바로 천상천하 유아독존(天上天下 唯我獨存)으로부터 이루어 집니다. 삼계계고(三界皆苦) 이 세상은 모두 다 “고(苦)”다 아당안지(我當安之) 내가 고(苦)를 물리치고 모두 편안한 세상으로 인도하리라. 부처님께서 출연한 목적입니다. 바로 우리가 가지고 있는 무아와 무상을 인식 시킴으로써 모두 편안한 세계로 들게 하는 것이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 출연하게 된 목적이 됩니다. 우리가 불교를 믿으니까 부처님의 탄생이라던지 불교의 역사를 받아 들이는데 쉽지만 인도에 가보면 불교에 관한 유적이 별로 없습니다. 그런데 1200년대 마호멧 교회에 의해 가지고 불교가 완전 전멸하게 됩니다. 그 중에 남아 있는 귀한 자료는 아쇼카왕 때문입니다. 아쇼카 왕은 부처님의 불법을 전파하는데 1등 공신입니다. 부처님이 탄생하셨을 때 인도는 부족 국가 였는데 그 중에서 가장 힘이 강했던 국가가 마가다국과 코살라국입니다. 빈비사라왕이 부처님의 평생 막강한 후원자인데 마가다국의 왕이고 인도 전체를 통일한 나라가 마가다국입니다. 그 때가 BC 317년으로 인도를 통일한 국가를 마우리아 왕조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진시왕이 중국을 통일한 때는 BC 221년 쯤이니까 그 당시에 유럽, 인도, 중국에서 세계의 모든 문명의 발상지인 고대국가가 형성되는 시기입니다.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했을 때 이때가 3대 아쇼카왕입니다. 아소카왕 때 통일된 마우리아 왕조가 가장 강성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소카왕 때 인도가 통일하게 됩니다. 아소카 왕은 많은 전쟁을 치루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을 죽였겠습니까? 많은 사람을 죽이면서 결국은 회의를 느끼고 불교에 귀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평생을 불법수호와 불법 전파에 목숨을 바칩니다. 아소카 왕이 부처님이 태어나신 곳을 기리기 위해서 부처님께서 머무셨던 많은 곳에 석주를 세우게 됩니다.이곳은 부처님의 탄생지다. 이곳은 도를 이룬 곳이다. 이렇게 석주를 세워 놓았던 것이 1800년 만에 유럽인들에 의해 발굴이 됩니다. 석주가 발굴되면서 실질적으로 부처님께서 역사상 실존했던 인물이라는 것이 밝혀 집니다. 아소카 왕이 부처님이 탄생하신 룸비니 동산에 석주를 세우고 이곳에서 수확의 8분의 1만 받고 세금도 면제해 줍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이라고 최고의 특혜를 준 것입니다. 아소카 왕에 의해서 불교는 세계화 되면서 부처님께서 실제 인물이라는 것이 증명 됩니다. 부처님은 어릴 때부터 학문을 좋아하시고 우뇌가 뛰어 났습니다. 그래서 7세부터 제왕의 학문을 배우기 시작하셨고 12세때부터는 죽음에 대해서 고뇌를 했습니다. 부처님은 약 5년 동안 그 당시 베다 문화와 무술까지 다 습득을 합니다. 그리고 왜 죽어야만 하는가에 대해서 12살부터 고뇌합니다. 마야 부인이 부처님을 낳으시고 7일만에 돌아가시는데 돌아가시기 전에 마야 부인은 여동생에게 태자를 잉태 했을 때 태몽을 이야기 해줍니다. 부처님의 태몽은 상아가 6개 달린 흰 코끼리가 자신의 몸속에 들어오는 꿈이었습니다. 부처님은 9살이 되는 해에 이모를 통해 태몽을 듣게 됩니다. 마야 부인은 태몽을 꾸고 싯달타를 낳을 때까지 기쁨으로 충만되어 있었고 편안한 상태로 있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거룩한 성인을 잉태했을 때 느껴지는 기쁨과 편안함으로 지냈다고 합니다. 태어나자마자 우리에게 ‘아당안지(我當安之)’ 모든 고통을 소멸 시켜 주셨는데 몸속에 있을 때도 편안함을 마야부인이 느낍니다. 마야부인의 몸을 빌어 이 세상에 태어나는 ‘비람강생상(毘藍降生相)’입니다. 3번째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부처님께서 7살 때부터 공부를 하여 9살 때쯤에는 많은 문제에 대해 명상을 하게 됩니다. 나무 밑에 앉아 명상를 하고 있다가 밭에서 농부가 쟁기질을 하는 것을 보게 되는데 그 쟁기에 벌레가 잘려나가는 것을 목격하게 됩니다. 잘려나가는 벌레를 새들이 쪼아 먹고 날아가는 것을 또 보게 됩니다. 그 상황을 보면서 부처님께서는 나무 밑에 앉아서 명상에 듭니다. 아마도 이것이 부처님이 출가하게 되는 최초의 동기가 되지 않겠나 싶습니다. 왜 생명들이 저렇게 무의미하게 죽을 수 있고 약육 강식의 조직과 굴fp 속에서 살아야하는가 하는 이런 문제를 9살 때부터 명상하기 시작합니다. 여기서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은 부처님께서 출가하게 되는 계기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정반왕은 명상을 좋아하는 태자에게 병자의 모습, 힘들게 일하는 농부의 모습, 이런 것들을 못보게 애썼지만 부처님께서는 우연한 기회에 보게 됩니다. 한 번은 동문에서 늙어서 기력이 없는 사람의 고통을 목격하게 됩니다. 왕궁에 있을때는 대부분 젊고 발랄한 모습만 보다가 동문에서 기력이 쇠한 모습을 보니까 부처님께서는 인생의 고뇌에 대해서 새로운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 다음 서문을 통해서는 병들어 고통 받는 사람을 목격하게 됩니다. 왜 우리가 병들고 고통을 받느냐? 건강하게 평생을 잘 살면 좋을텐데, 병들어 있는 고통스러운 모습을 서문을 통해 보게 됩니다. 남문을 통해 죽어서 한줌의 재로 변하는 인생의 실상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당연히 살다 죽으면 한줌의 재로 변하는 인생의 실상을 주위에서 보니까 인간이 늙고 병들고 죽게 되는데 과연 이렇게 사는 것이 맞는가, 아니면 다른 새로운 길이 있는가? 여기에 대해서 고민을 하고 명상하게 되는 것이 싯타르타 태자가 9살 때입니다. 그리고 우연히 북문에서 도를 닦는 수행자를 만나게 됩니다. 옷은 다 떨어져 남루하지만 가부좌를 틀고 앉아 있는 단정한 모습을 보고 싯달타는 눈물을 흘립니다. 수행자의 모습을 보고 내가 평생 걸어가야 할 길이 바로 저것이 구나 하는 것을 그 순간에 직감합니다. 어떻게 살아야 할지 확신이 생기는 순간입니다. 이런 상황속에서 부처님께서 출가 하겠다고 결심한 것이 12살 때입니다. 12살때 결심을 하지만 출가는 29세때 합니다. 이 세상에서 본인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부모님을 공양하고 주위를 다스려 놓고 결국 29세때 출가 합니다. 이 과정에서 야수다라를 만나 결혼하게 됩니다. 야수다라가 전생에 구리 선녀였습니다. 구리 선녀가 부처님께서 선애 보살로 있던 시절 세세생생 나와 부부의 인연을 맺으면 꽃을 팔겠다고 해서 선애 보살은 고민하다가 부처 이루는 순간까지 부인으로 맞겠다고 허락했고 그래서 이생에서 야수다라를 만나게 됩니다. 야수다라는 천비성의 성곽왕의 딸이라고 지난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2500년 전에는 성품이 뛰어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대부분 왕이면 왕으로 누려야 할 것을 누리고 노예면 노예로 사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는 인도의 사성제 계급에 매여 거부감 없이 살아가는 것이 대부분이였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부처님의 생각은 상당히 뛰어난 것인데 야수다라도 성품이 어질고 뛰어난 자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극빈자와 소외 계급이 가지고 있는 고통과 어려움을 헌신적으로 잘 돌봐주었습니다. 인도의 카스트 계급을 보면 1. 브라만 : 승려계급 2. 크샤트리아 : 귀족과 무사 계급 3. 바이샤 :평민, 상인 4. 수드라 :노예, 수공업자, 노동자로 4개의 계급으로 나누는데 4계급에 속하지 않은 불가촉 천민이 있었습니다. 2500년 전에 불가족 천민은 조상때부터 하던 천한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인도에서 위대한 성인인 간디는 잘 아시겠지만 안베르카르라는  이름을 들어보신 분이 계십니까? 안베르카르가 이 불가족 천민들의 계급을 깨뜨립니다. 인도 사회 운동자의 한 사람으로 불교에 귀의해서 인도 사회에서 새로운 불교를 일으킨 분이 바로 안베르카르입니다. 안베르카르가 살아 있을 때는 불교 인구가 200만이 넘었습니다. 상상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급속하게 불어 갔습니다. 다음은 불교 문화의 좋은 귀감으로서 안네 스카르를 말합니다. 부처님에 버금 갈 만큼 새로운 교주로서 존경의 대상이 됩니다. 인도 5천년의 고질병인 불가촉 천민들을 위해서 새로운 삶과 질서를 던져 준 것입니다. 안으로 소외계급과 노예계급 불가촉 천민들이 똑같습니다. 사회 천민족과 불가촉 천민의 고통과 어려움을 헌신적으로 야소다가가 돌봐줍니다. 야소다라가 싯달타와 결혼 후에는 싯달타가 가장 큰 후원자가 됩니다. 끝까지 경제적으로 어려움이 있는 소외 계급을 돌봐주고 도와 줍니다. 그런데 아무리 도와주어도 끝이 없습니다. 그래서 본질적으로 도와줘야지 물질적으로 봉사하고 헌신하면서 도와주다가 도와주지 않았을 때 본인 스스로 절망하게 된다는 것을 부처님께서는 너무나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야소다라에게 명상을 통해서 삶의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가르칩니다. 진정한 봉사가 무엇인지 대해서 생각하게 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하면서 도와 줄수 있도록 야소다라에게 명상을 가르칩니다. 싯달타는 긍적적인 후원자였지만 외부적인 도움은 끝이 없습니다. 야소다라는 언젠가 싯다르타가 왕궁을 떠나 출가의 길을 갈 것이라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러다가 라훌라가 태어 납니다. 라훌라는 “굴레” 혹은 “장애”란 뜻으로 결국 라훌라는 부처님께서 굴레에서 벗어나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라훌라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부처님께서 언제 출가를 결행 할지 알 수가 없었지만 라훌라가 태어남으로써 늙은 아버지께 도리를 다 했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버지 정반왕에게 출가에 대한 허락을 청합니다. 부처님께서는 깨달음의 길을 떠나게 되고 깨달음을 이루기 전에는 결코 카필라 성에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굳은 결심을 하고 출가의 길을 떠납니다. 여기까지가 부처님께서 어린 시절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문제에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본질적인 삶에 접근 해 갈 수 있는가? 야소다라와 결혼을 하고 라훌라가 태어나서 출가를 하기전까지가 사문유관상(四門遊觀相)에 잘 그려져 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유성출가상(踰城出家相), 드디어 출가를 결심하게 됩니다. 29세에 출가를 결심하고 긴시간 동안 부처님께서는 세속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마무리 해놓고 출가하게 됩니다. 권력, 명예, 부, 모든 기득권을 스스로 포기하고 처음부터 다시 출발하는 것이 출가입니다. 출가 사문이 될 때는 세속에서 모든 것을 없애고 출가하는 순간부터 출가자로서의 새로운 삶을 걸어가게 됩니다. 목표와 가치를 새롭게 하기 위해 부처님께서는 경전에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아직 젊은 청년으로 칠흙 같은 머리에 청춘은 즐거움으로 넘치고 있었다. 그리고 죽음의 문제를 해결 할 수가 없어서 인생의 고뇌에 휩싸여 부모가 눈물로 만류하는 것을 뿌리치고 머리와 수염을 깎고 집을 떠나 가사를 입고 출가 수행자가 되었다.” 결국은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것을 깨닫지 않고는 출가 할 수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그때의 심정을 이렇게 이야기 하셨습니다. 태자는 한밤중에 성을 벗어나 밤새도록 말을  달려 아노마 강을 건너자 먼동이 트기 시작합니다. 강을 건너자 자기가 가지고 있던 모든 패물들을  시종인 찬다카(나중에 찬다카도 출가해서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에게 주면서 이 목걸이는 부왕에게 드려라. 그리고 싯다르타는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시라고 전하여라. 내 뜻을 이루기 전에는 죽는 한이 있더라도 돌아가지 않을 것이다. 얼마나 비장한 결심인지 알수가 있을 것입니다. “나는 왕위 같은 세속의 욕망은 티끌 만큼도 없다. 다만 생로병사의 길에서 벗어나기 위해서 이 길을 걷는다고 말씀 드려라 왜 늙고 병들고 죽는가 그 문제는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와 자비의 길을 간다고 말슴 드려라. 그리고 이 패물은 이모님과 야소다라에게 전하여라. 내가 출가 사문이 된 것은 세속을 떠나기 위해서가 아니라 지혜와 자비의 길을 찿기 위해서라고 전해다오. 결국 출가라는 것이 세속을 떠나는 것이 아니라 세속과 더불어 세속에 지혜와 복덕을 제대로 전하고 펴기 위해서 출가하는 것입니다. 세속의 가치든지 출가의 가치든지 결국 진정한 삶을 추구하는데 있어서 모든 생명에게 끝없는 감사하는 마음입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 출가하시면서 세속을 떠나기 위해서 출가하는 것이 아니라 지혜와 자비의 길을 찿기 위해서 출가한다고 전해 달라고 하십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출가 하시면서 자신의 생각을 이야기한 것이 유성출가상입니다. 어린시절부터 결혼하고 29살까지 학문을 익히고 늙고 병들고 죽는 사람들을 보면서 꼭 출가 해야 겠다는 결심한 이야기가 바로 유성 출가상입니다. 그 다음 부처님께서 출가 후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이 바가다 국의 고행자인 바가바 입니다. 출가 후 처음으로 만난 스승이 바로 바가바입니다. 바가바는 바로 하늘나라에 태어나기 위해서 고행 한다고 부처님께 가르킵니다. 그래서 시체와 함께 지내기, 개미에게 물려 가면서 고통을 참는것, 풀만 먹고, 한발로 오래 서 있기, 숨 참기 등 이런 고통을 참으면서 육신을 조복 받아서 하늘 나라에 태어 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바가바는 부처님께 이런 것들을 가르킵니다. 그런데 부처님께서 생각해 보니까 고행의 복덕으로 하늘 나라에 태어 난다고 해도 그 복이 다하면 다시 세상에 떨어지므로 영원한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면서 바가바를 떠납니다. 중국에서 고대 국가가 성립할 즈음에는 제자 백가들이 자신의 이상을 부르짓고 새로운 정치이념을 토로 합니다. 어떤 왕이 받아들여서 정치에 적용하기도 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통일을 이루기도 했습니다. 인도에서도 똑같은 상황 입니다. 견성했던 마가다 국의 수도가 왕사성입니다. 부처님께서도 과연 공부를 제대로 할려면 어디로 가야 하는가? 깊이 생각한 후에 새로운 사상가들이 가장 많이 밀집해 있는 왕사성을 찾아 갑니다. 왕사성에 가서 알라라칼라마를 찾아갑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에 이 도를 누구에게 가장 먼저 전할 것인가 고민 하시다가 스승 알라라칼라마를 생각해 봅니다. 스승들은 이미 나이가 많아 다 돌아가셨습니다. 그래서 자기와 더불어 5년의 긴 시간 동안 고행을 했던 5비구들을 찾아가서 부처님께서 깨치신 법을 전합니다. 실질적으로 인도를 통일하는 시기는 BC 317년으로 마우리아 왕조가 성립하게 됩니다. 부처님께서는 마가다 국에서 빈비사라왕을 만나게 됩니다. 빈비사라왕은 부처님의 거룩한 상호와 논리 정연한 말씀에 감탄하면서  반합니다. 저런 사람이라면 나라를 나누어 주어도 되겠구나 생각하고 나라의 반을 다스려 보라고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나는 출가 사문의 길을 걷고 진리를 찾기 위해서 출가 수행자가 되었습니다.’ 그것 외에는 다른 목적이 없다고 합니다. 빈비사라왕은 그러면 만약 당신이 왜 죽어야 하는가 하는 이유를 깨치고 도를 이룬다면 나에게 먼저 찾아 와서 그 법을 설해 주시오. 라고 청을 합니다. 우리의 정신 세계의 영역을 보면 사왕천, 야마천, 도리천, 도솔천, 화락천, 타화자재천으로 올라 가서 제일 마지막에 있는 하늘 나라인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으로 표현합니다. 불교의 우주관 세계관을 배울 때 불교의 세계에서 제일 마지막에 있는 하늘이 우리의 정신 영역입니다. 알라라칼라마는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까지 자기의 정신으로 확고하게 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부처님께 무엇을 가르치느냐 하면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을 가르칩니다. ‘너가 선정에 들어서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을 인식해라’ 부처님께서 ”공무변처정“이 되니까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경지까지는 금방 가버립니다. 우리가 이제까지 공부했던 6근, 6경, 6식에 대해서 인식을 해보면 이들이 했던 공무변처정(空無邊處定)의 공空은 아무것도 없는 끝없이 넓은 세계에 대한 인식입니다. 광대무변한 영역에 대한 인식이 바로 공무변인식의 무한의식의처전 식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 바로 식무변처정(識無邊處定)입니다. 이런 것을 다 이루고 나니까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 바로 무상에 대해서 인식하는 것이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이며 무소유 영역에 대해서 수행과 고행을 하면 바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알라마칼라마는 바로 여기까지 가르칩니다. 부처님께서는 여기까지 배우는데 오래 걸리지 않고 배워 버립니다. 여기까지 터득하고 난 다음 부처님께서는 무엇을 생각했느냐하면 존재하는 것은 없다, 하지만 없다는 의식은 존재하지 않느냐?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까지 가야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하지만 존재하는 것이 없다고 하는 그 의식은 존재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무소유처정(無所有處定)까지 가더라도 자기 자신이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를 깨닫게 하는 데에 본질적인 답은 주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부처님께서는 아라마카나를 떠납니다. 부처님께서는 더 높은 경계가 있다고 생각 하시고 떠나 우다카 라마푸타를 찾아 갑니다. 부처님께서 이 세상에서 배운 마지막 스승이 바로 우다카 라마푸타입니다.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에 대해서 배우게 됩니다. 우다카 라마푸타가 가지고 있는 비상, 생각이 없는 것 비비상, 없는 것도 아닌 경계에 다다르는 것이 바로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입니다. 생각이 있는 것도 아니고 생각이 없는 것도 아니라고 우다카 라마푸타는 가르칩니다. 의식이 있다는 것은 존재하는 것이 있다는 관념이다. 없다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에 대한 관념이다. 이와 같이 있고 없고는 오직 관념임을 통찰하는 것이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자아의식의 완전한 소멸이 아니기 때문에 정에서 깨어지면 자의 의식에 얽매여 있지 않겠는가? 선정에 들어가 있을 때는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을 인정 하지만 선정에서 깨어나게 되면 자아 의식은 다시 얽매이게 된다. 어찌 이것이 마지막 깨달음이라고 할수 있겠느냐? 비상비비상처정(非想非非想處定)까지 부처님께서는 바로 터득해 버립니다. 이제까지 많은 스승들을 찾아 다니면서 배워보니까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고 물었을 때 본질적으로 해답을 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해야 되겠구나 하고 혼자 고행에 들어갑니다. 욕심을 떠나고 적정의 상태에 있기 위해서 고행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6년 고행한 곳이 어디입니까? 레난자란강 건너편 우루벨라 숲에서 혼자 수행을 합니다. 자신을 가르친 스승은 다 돌아가시고 전날 우다카 라마푸타 밑에서 공부하던 앗사지나 콘다니 같은 뛰어난 젊은 5비구가 있었습니다. 부처님께서는 오비구들이 스승으로 모시고 있는 우다카 라마푸타라는 선인 밑에서 도를 이루고 나서도 더 큰 경계를 넘어서 공부 할 것이 있다고 생각하고 떠납니다. 뛰어난 젊은 오비구들은 부처님이 자신들을 가르킨 우다카 라마푸타 경계를 넘어선 무엇인가 있다고 생각하고 떠나자 우리도 같이 공부하자고 하며 부처님을 따라 갑니다. 그래서 5명의 비구도 같이 공부하게 됩니다. 이 세상에 어느 누구도 부처님과 같이 그렇게 고행할 사람이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할 만큼 엄청난 고행을 합니다. 힘든 고행을 하는 5비구에게 부처님은 우상이였습니다. 힘든 5년을 공부하고 6년째 접어 들면서 부처님께서는 그 고행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부처님께서는 우르벨라 숲에서 이를 악물고 혀를 윗턱에 대고 마음으로 억누르고 숨을 오랫 동안 참는 수행 단식을 행하여 극단에 까지 도달하는 6년 동안 쌀 한 숟가락으로 시작해서 마지막에는 쌀 세톨로 지탱합니다. 그래서 부처님 고행상을 보면 갈비뼈만 남아 있습니다. 그것이 실제 부처님의 모습 그대로입니다. 5명의 비구들도 이런 수행를 같이 합니다. 부처님께서 수행을 시작하신지 6년쯤 되니까 기력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집니다. 부모님이나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좋지 않은 일이 생기면 불길한 꿈을 꾸는데 정반왕이 꿈을 꿉니다. 꿈이 하도 불길하여 우다인이란 대신에게 싯타르타 태자가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찾아 보라고 합니다. 우다인이 찾아가보니 싯타르타 태자는 6년째 고행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져 죽은듯이 누워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태자 주위에 모여서 6년 동안 수행과 고행을 너무나 열심히 한 착한 수행자가 세상을 떠났구나 애도하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우다인이 도착해서 보니 태자가 상상도 할 수 없는 모습으로 쓰러져 있습니다. 겨우 흔들어 깨워서 ‘태자님이시여! 이제는 고행을 그만 하시고 고향으로 돌아 갑시다’ 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러니까 싯타르타는 겨우 눈을 떠 ‘우다인이여! 그런 말 하지마라 내가 처음 출가할 때 그 마음이 어떤 마음이였는데 내가 만약 이 고행을 계속 하다가 죽는다면 너는 내 시체를 가지고 돌아가서 처음 먹었던 마음을 끝까지 변하지 않고 고행하던 사람의 시체라고 그렇게 전해 달라’고 이야기 합니다. 그 이야기에 우다인도 감동을 받습니다. 싯타르타가 죽었다고 구경하던 마을 사람들도 새로운 충격과 감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는 그렇게 확고 부동한 생각과 의지로써 도를 이루어 왜 죽어야만 하는가 하는 이 문제를 해결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한 것입니다. 부처님의 그 모습을 생각 할 것이 아니라 중요한 것은 우리도 똑 같습니다. 우리의 삶에서 되돌아 볼 때 왜 사느냐? 어떻게 사느냐? 이생에서 이몸 받아 살아가는 동안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실천 할 수 있고 꼭 이룰 수 있다 하는 겁니다. 중요한 것은 부처님이 그렇게 살아가신 모습을 내 삶 속에서 찾아 봐야 합니다. 내가 이생에서 이 몸 받아 이렇게 살아 갈 때 목적이 분명하다면 나도 부처님과 같이 그 목적을 꼭 성취 하겠다, 또 이룰 수 있다는 겁니다. 의지의 문제로 부처님의 삶이 우리에게 귀감을 보이는 것은 목숨을 걸고 실천했다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돌아가시면서 하신 말씀이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라’ 평범한 말씀을 하시고 돌아가셨지만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목적 의식입니다. 목적이 분명하다면 그 목적을 가지고 이 한 생을 멋지게 살아 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행복하고 아름답게 빛나느냐 하는 것은 내가 갖고 있는 목적 때문에 그렇습니다. 한생 동안 갖고 있는 그 목적을 실천하기 위해 끊임 없이 노력할 때 얼마나 아름답고 빛나는 삶이 되는지 알게 됩니다. 부처님께서 보여주신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목적입니다 부처님을 통해서 우리의 삶을 되돌아 봐야 합니다.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이 모습 속에서 늦고 빠름은 없습니다. 수억겁 동안의 삶을 생각한다면 생각하는 그 순간이 가장 빠른 삶입니다. 이생에서 무엇인가 마음을 먹고 그것을 실천을 하겠다는 의지가 분명하다면 우리도 부처님 같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방향이 있고 목적이 있어야지 내 삶의 모든 것을 투자 할수 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수하항마상(樹下降魔相)을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강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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