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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7강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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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9,099회 작성일 21-07-22 0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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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7강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


반갑습니다. 오늘도 지난 주에 이어 부처님의 생애에 대해서 계속 공부 하겠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 첫째 해, 둘째 해, ……, 8년째, 9년째, 10년째 해까지 년도별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성도하시고 난 다음 36세부터 80세에 열반하실 때 까지 어떤 시기에 어떤 사건이 있었고 어떤 법을 설하셨는지 알 수 있습니다. 팔만대장경에는 부처님께서 교화한 내용은 나오지만 어느 때쯤에 교화했는지가 거의 없어서 저도 불교 공부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 중 하나가 부처님께서 그 많은 경을 설하시면서 그 많은 제자들을 어느 시기에 어떻게 교화했는지 궁금했습니다. 우리가 이것을 알면 불교를 좀더 명쾌하게 알게 되는 그림이 그려지는데 우리 한국 불교계에서는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우연하게 한 20년전 ‘고요한 소리’에서 발간한 소책자에서 그 궁금증을 해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고요한 소리라는 것은 한 스님이 원을 세우시고 중국 한자로 번역된 경전보다는 산스크리트로 된 원어를 우리가 접할 수 있으면 부처님의 생생한 육성을 전할 수 있지 않겠나 싶어서 산스크리트 원어의 경전을 번역하겠다는 원을 세워서 이 작업을 시작한 것입니다. 그래서 젊은 스님과 대학생들을 인도로 유학 보냅니다. 이 사람들이 출가해서 불교를 제대로 알고 산스크리트로 된 경전을 번역해 보자는 뜻으로 일을 벌이고 계셨는데 그 때 나온 책이 ‘고요한 소리’ 라는 책입니다. 이 사업은 지금도 계속하고 계시는데 세세생생 이런 분들로 인해 제대로 번역이 되지 않겠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 책 중에 우연히 부처님의 생애 대해서 본 적이 있습니다. 부처님의 생애를 보니까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 해부터 일어났던 일들이 연도 순으로 산스크리트 원어 내용들이 그대로 번역되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보는 순간 얼마나 반갑고 기뻤는지 모릅니다. 여기 있는 내용들이 그때 산스크리트로 번역된 원본에 준한 것과 다시 추가해서 정리 한 것 입니다. 연도 별로 조금씩 차이가 나긴 하지만 전체 흐름만 이해하시면 됩니다. 지금부터 2500년 전에 있었던 사건입니다. 연도가 1-2년 빠르고 늦고는 크게 문제가 안 될 것 같습니다. 10년째 사건까지 지난 시간에 공부했습니다. 


  11년째 되던 해는 부처님께서 46세 되던 해로 마가다국의 카알라는 마을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여기서 부처님께서는 유명한 수타니파타경이 설해집니다. 부처님의 경전 중 가장 쉽게 접할 수 있는 경전 중에 법구경이 있습니다. 거의 사구계로 되어 원수를 원한으로 갚지 말라. 라는 식으로 교훈적이면서 삶을 긍정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 법구경의 내용입니다. 법구경과 같이 수타니파타카 경전은 경집 경을 모아 놓은 것입니다. 부처님의 많은 경전 중에서 인간적인 면이 가장 많이 포함된 경이 수타니파카입니다. 그래서 일반적으로 불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경전이 수타니파카 일 것입니다. 수타니파카가 11년째 되던 해에 설해집니다. 밭을 가는 농부의 유명한 이야기인 바라드바자경이 설해진 곳이 바로 여기입니다. 에칼랄라 마을에서 설해졌고 농사를 지은 바라문의 이름이 바라드바자입니다. 바라문은 4성제 계급 중에서 최고 계급이고 부농입니다. 바라드바자는 큰 농사를 짓는 대농에 출신은 바라문이며 부처님의 계급은 크샤트리아로 바라드바자보다 계급이 낮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바라문 출신이 아니고 크샤트리아 출신이기 때문에 많은 바라문들이 부처님을 멸시하는 내용들이 여러 군데서 나옵니다. 부처님께서 새벽에 걸식하러 나갑니다. 그때 바라드바자가 다른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부처님 차례가 되자 부처님께 한마디 합니다. 부처님이여! 나도 밭을 갈고 열심히 일해서 밥을 먹는데 당신도 걸식만 하지 말고 직접 농사를 지어서 먹으면 좋지 않겠느냐고 합니다. 이렇게 해서 바라드바자와 부처님 사이에 대화가 오고 갑니다. 그것이 유명한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내용인데 농사짓는 바라문이 부처님께 무례한 말을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특유의 침착성으로 대응해서 바라문을 부처님의 열렬한 신도로 만듭니다. 교재의 내용을 보면 수타니파타에 나오는 가장 중요한 내용 중 하나로 비를 뿌리는 목동 다니아 이야기와 뒷장에 보시면 ‘나도 나도 뿌리고 먹는다’는 내용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바라드바자 내용입니다. 내용을 보면 ‘어느 때 부처님께서는 마가다국 남산에 있는 한 바라문 촌에 머물고 계셨다. 바라문 바라드바자는 씨를 뿌리고 밭을 가는데 500자루의 괭이를 소에게 매었다. 부처님이 바라를 들고 걸식하러 가셨을 때 마침 음식을 나누어 주고 있었다. 음식을 받기 위에 한쪽에 계시는 부처님을 보고 바라드바자는 말했다. 사문이시여! 나는 밭을 갈고 씨를 뿌립니다. 밭을 갈고 씨를 뿌린 후에 먹습니다. 당신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십시오. 그런 다음에 음식을 먹으십시요’ 라고 말합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바라문이여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리오. 씨를 뿌린 후에 나도 먹소. 라고 응답을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당신의 멍애와 호미 작대기와 소를 본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나도 밭을 갈고 씨를 뿌린다고 하십니까? 당신이 밭을 갈고 씨를 뿌리는 것을 우리들이 알아듣도록 이야기 해주십시오. 라고 바라드바자가 이야기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믿음은 종자요 고행은 비명, 지혜는 내 멍애, 호미는 부끄러움, 괭이자루는 의지라 잡념은 줄이고, 생각은 내 호미 날과 작대기라오. 몸을 조심하며 말을 조심하고 음식을 절제하여 과식하지 않소. 나는 진실로써 김을 매며 온화한 성질은 내 멍애를 벗겨주오. 노력은 내 황소, 나를 안온의 경지에 실어다 주오. 물러남 없이 앞으로 나아가 그곳에 이르면 근심 걱정이 없어지오. 내 밭갈이는 이렇게 이루어지고 과보를 가져오는 것이오. 이런 농사를 지으면 온갖 고뇌에서 풀려나게 되오. 이렇게 대답을 합니다. 이때 밭을 가는 바라문 바라드바자가 큰 청동그릇에 우유죽을 가득 담아 부처님께 올립니다. 그러면서 고타마여! 우유죽을 드십시오. 당신이야 말로 정말 밭을 가는 분이십니다. 고타마시여! 당신은 감로의 과보를 가져다주는 농사를 지어십니다. 부처님께서는 사양을 하시면서 시를 읊어 얻는 것을 나는 먹을 수 없소. 이것은 바르게 보는 사람의 행동이 아니오. 눈뜬 사람들은 시를 읊어 생긴 것을 받지 않소. 오로지 진리에 따르는 것이 눈뜬 사람들의 생활 방법이오. 여기서도 진리를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번뇌의 때를 다 없애고 나쁜 행위를 소멸한 사람에게는 다른 음식을 드리시오. 그것은 공덕을 바라는 이의 복 밭이 될 것이오. 라고 부처님께서는 이야기 하십니다. 그러자 바라드바자는 그럼 이 우유죽은 누구에게 드려야 합니까? 신, 인간, 바라문, 사문을 포함해서 여러 중생 가운데서 완전한 사람과 그의 제자를 제외하고 이 우유죽 먹고 소화 시킬 사람은 아무도 없소. 하자 부처님께서 이 우유죽은 산에 풀이 적은 곳에 버리시오. 그러자 바라드자바는 생명이 없는 물속에 우유죽을 버렸습니다. 그런데 그 우유죽이 물속에 버려지자마자 부글부글 소리를 내면서 많은 거품을 내 품었던 것입니다. 이때 바라드바자는 모골이 송연하여 두려움에 떨면서 부처님 발밑에 끊어 앉아 말했습니다. 놀라운 일입니다 고타마여! 마치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주듯이, 덮힌 사람을 벗겨주듯이, 길 잃은 이에게 길을 가르쳐 주듯이, 혹은 눈이 있는 자 빛을 보리라하여 어둠 속에서 등불을 비추어주듯이 고타마님께서는 여러 가지 진리를 밝혀 주셨습니다. 저는 고타마 당신께 귀의하고 진리와 수행하는 스님들께 귀의합니다. 저는 출가하여 완전한 계율을 받겠습니다. 밭을 가는 바라드바자는 이렇게 해서 부처님께 완전한 계를 받았습니다. 그래서 열심히 정진하여 아라한과를 얻게 됩니다. 이것이 바라문이 부처님께 ‘당신도 노동을 해서 먹으시오.’ 라고 거칠게 항의하면서 이야기 했을 때 진리에 추구하는 이익보다도 더 큰 일이 없다는 것을 부처님께서 바라드바자에게 이해를 시킵니다. 소치는 바리아와 밭을 가는 바라문이 부처님과 대화하면서 부처님께 귀의 하는 내용들이 수타니파타경에 실려 있습니다. 그러니까 가장 인간적이고 소박한 이야기로 부처님께 귀의한 내용이 실려 있는 것이 수타니파타경 입니다. 부처님께서는 11년째 되던 해 수타니파타를 설하게 되십니다. 12년째 되던 해 부처님께서는 배란자 마을에 계십니다. 배란자의 사건이 일어난 것이 부처님께서 12년째 되던 해입니다. 브라만인 배란자라가 부처님을 친견하고 불교에 대해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하고 부처님께서 대답 하시는 것을 듣고 부처님의 재가 신도가 되겠다고 서약을 합니다. 재가 신도가 되고 난 다음 해에 부처님과 부처님 제자들에게 공양을 올리겠다고 합니다. 부처님과 제자들은 우기 한철동안 배란자 마을에 계시면서 공양을 받기로 했는데 브라만이 부처님과 승단에 공양 올리겠다는 약속을 지키지 못합니다. 집안 일이 바빠서 부처님께 공양 하는 것을 잊어 버립니다. 부처님과 그 제자들은 3개월동안 공양을 받지 못해 전부 굶어 죽게 된 상황에서 말 장수들이 올리는 매우 조악한 음식인 말들이 먹는 음식을 먹고 한 철을 보냅니다. 안거가 끝나고 난 다음 배란자는 약속을 지키지 않았지만 부처님께서는 한철의 안거가 끝났기 때문에 배란자에게 한철 잘 보냈다고 인사를 하러 갑니다. 그때서야 배란자는 부처님과 약속한 것이 생각나 깜짝 놀랍니다. 바라문은 부처님과 그 제자들을 청하고 집안일로 인해 약속을 지키지 않은 허물을 사과하고 다음날 부처님과 성단에 옷을 보시하고 부처님의 신자가 됩니다. 공양을 올리겠다고 약속해놓고 지키지 않아 부처님께서는 말이 먹는 음식을 먹고 한철을 보내시고도 끝난 후에 찾아 가서 인사를 할 때 베란자는 그때 부처님과 한 약속을 기억하고 참회하고 후회하면서 결국 부처님의 열렬한 신자가 된 이야기입니다. 12년째 되신 해에 부처님께서는 배란자 마을에서 말이 먹는 음식으로 식사를 하면서 보낸 때가 이때입니다. 그리고 부처님께서 처음 계율을 정한 해입니다. 배란자가 자기 집안일에 몰두한 것은 인도 전역에 가뭄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인도 전역에서 걸식하는 모든 사람들이 고통을 받은 해가 12년 째 되던 해 입니다. 그러니까 음식 자체가 거의 없었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중에 수디나라는 젊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수디나는 귀족 집안이라 부자였고 홀어머니와 둘이 살다가 출가하니까 집안에서는 난리가 났습니다. 부처님 때문에 많은 젊은 이들이 출가 하니까 인도 전역에는 초 비상이 걸렸습니다. 젊은이들이 새로운 사상 새로운 진리 새로운 삶에 도취되어서 출가합니다. 수디나도 출가해서 수행을 하고 있었는데 12년째 되던해 흉년이 들어서 어느 교단이든지 걸식하기가 힘들었습니다. 수디나가 생각해보니 자신의 집에 가면 먹을 것이 많을 것 같아서 청을 합니다. 지금은 걸식을 하러 가도 제대로 주지 않습니다. 제가 집에 가서 한철동안 먹을 음식을 가지고 오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전부 굶게 생겼는데 수디나가 음식을 가지고 온다고 하니 허락을 합니다. 수디나는 기쁜 마음으로 집에 갑니다. 몇 년만에 어머니를 뵙게 됩니다. 어머니께서는 오랜만에 아들이 오니까 아들을 붙잡아 두어야겠는데 결혼을 하라고 해도 죽어도 싫다고 하자 그럼 결혼하지 않더라도 재산을 물려줄 아들 하나만 낳으라고 합니다. 인도에서는 재산이 딸에게는 상속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들이 없으면 재산이 나라에 귀속 됩니다. 수디나는 어머님께서 너무나 간절하게 말씀하셔서 어머니께서 정해준 여자와 합궁을 합니다. 그리고 곧 많은 음식을 가지고 절로 돌아와서 한철을 잘 보냈습니다. 한철이 지나고 친구들이 아무리 보아도 수디나가 옛날 같이 명랑하지 않고 우울해 보입니다. 합궁을 할 때는 어머니의 소원이라 했지만 수디나는 계속 그것이 마음에 걸려서 우울해 합니다. 그래서 친구들이 부처님께 수디나의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께 그 때는 공식적으로 계율을 정하지는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계율은 주었지만 그 계율을 지키고 어김에 대해 한번도 제제를 가한적이 없었습니다. 제가 신자가 되면 오계를 주었지만 그 계율을 지키고 어김에 대해서는 제제가 없었는데 수디나의 사건이 생기자 수디나를 불러 엄하게 꾸짖습니다. 너는 출가 사문으로서는 절대로 행할 수 없는 일을 하였다하시며 이때 나온 이야기가 음행의 과오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를 말해 줍니다. 남근을 차라리 뱀의 아가리에 넣을망정 음행은 하지 말라는 이야기를 이때에 하십니다. 그것은 뱀에 대가리에 넣어 한번 죽으면 그만이지만 음행은 세세생생 윤회하는 원인이 된다 하시면서 부처님께서 단호하게 이야기하십니다. 수디나는 그 자리에서 참회하고 평생을 계를 범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하고 승단에 남아있게 됩니다. 이것이 부처님께서 최초로 계율을 정한 해로 12년째 되던 해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혹시 밀린다왕문경 들어보셨습니까? 밀린다왕은 유럽 쪽의 왕으로 나선비구와 주고 받는 대화입니다. 이 밀린다왕도 세상에서 자신이 제일 똑똑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이제까지는 어느 누구하고도 논쟁을 해서 진적이 없기 때문에 자신이 최고라고 믿고 나선비구와 논쟁을 하게 됩니다. 서양의 지혜와 동양의 지혜가 부딪히는 것이 밀린다왕문경에 나타나 있습니다. 밀린다왕문경의 내용은 불교에서 나오는 용어들을 적절하게 설명한 것으로 밀린다왕문경 만큼 설명이 잘 된 것이 없습니다. 모든 불교에서 나오는 용어들을 적절하게 잘 설명해 놓은 것이 밀린다왕문경입니다. 밀린다왕이 묻습니다. 계율 지키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부처님께서는 왜 12년째 되던 해에 누가 계율을 어기니까 그때서야 단호하게 지키라고 합니까? 하고 나선비구에게 묻습니다. 나선 비구가 말하기를 임금님이시여 새 옷을 칼이나 가위로 잘라서 기워입겠어요? 새 옷을 입고 있다가 떨어져 헌 옷이 될 때 기워입어도 늦지 않습니다. 계율이라는 것은 바로 새 옷과 같은 것입니다. 강제로 지켜라고 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계율은 어겼을 때 계율을 지키는 것으로 새 옷을 입고 있다가 떨어지면 기워입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설명을 해 줍니다. 밀린다왕이 나선 비구여! 정말 타고난 설명이다 하면서 감탄합니다. 이와같이 12년째 되던해 부처님께서 처음으로 계율을 제정해서 출가한 모든 사람은 지키라고 한 것이 바로 이 해입니다. 13년째 되던해 부처님께서 48세가 되십니다. 인생에서 황금기라고 생각하는 40대 후반에 부처님께서는 이렇게 엄청난 일을 하셨는데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는가? 생각해보시고 더욱 정진하셔서 꼭 부처가 되어야겠습니다. 48세 되던해 부처님께서는 찰리아 바위산에서 수행하고 계셨습니다. 이때 부처님을 시봉한 사람은 메기아장노입니다. 메기아 장노는 찰리아의 강가에서 지내면서 강가의 아름다움에 마음이 끌려 정전을 하고 싶다고 부처님께 이야기 합니다. 부처님이시여 아름다운 숲에 들어가서 참선을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졸라서 허락을 받습니다. 부처님께서는 다른 비구가 올 때까지 기다리자고 하는데도 계속 졸라서 마침내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 혼자서 강가의 망고 숲으로 참선을 하러 갑니다. 거기서 이 메기아는 감각적 쾌락에 시달리기만 하다가 돌아옵니다. 한달 동안 선정에 들지도 못하고 온갖 육체에서 일어나는 나쁜 생각과 해학심으로 가득차서 깨끗한 마음으로 공부도 못하고 번뇌망상에만 시달리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메기아는 마음이 성숙하지 못한 상태에서 혼자 공부를 하려고 했지만 잘 되지 않았던 것입니다. 선방에서 스님들이 혼자 공부합니까? 강원에서 혼자 공부합니까? 대학에서 혼자 공부합니까? 결국 여럿이 모여서 공부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을 주기 때문에 모여서 공부를 많이 합니다. 공부가 성숙하지 못한 사람은 혼자 공부하기가 어렵습니다. 공부가 성숙 되었을 때는 혼자서도 잘 될 수 있겠지만 성숙 될 때까지는 대중과 더불어 하는 것이 좋습니다. 우리도 여럿이 함께 공부하니까 한주도 안 빠지고 할 수 있는데 혼자 공부하면 이핑계 저핑계 대면서 빠집니다. 부처님께서 메기아를 보고 말씀하십니다. 메기아여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마음이 성숙하는데는 5가지 도움이 있다. 첫째 선지식 즉 좋은 벗이 공부하는데 가장 소중하다. 둘째 기본적 계율에 따라 공부하는 것이 중요한 두 번째 행위다. 세 번째 평정, 침착하고 멸진하고 깨달음과 열반으로 이끌어주는 훌륭한 조언을 해주는 보다 도반이나 스승만큼 더 좋은게 없다. 넷째 나쁜 생각들을 버리고 건전한 생각을 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이것은 혼자 있으면 잘 안되기 때문에 대중과 더불어 있으면서 스승과 공부한다면 우리는 훨씬 공부하기가 더 쉽다는 것입니다. 다섯째 사물의 발생과 소멸을 분명히 보는 지혜의 습득이 바로 그것이다. 어떤 사물이 왜 생겼는지 지혜가 왜 생겼는지 알면 우리가 소멸하는 과정도 알게 됩니다. 내 마음에 생긴 번뇌가 왜 생겼는지 알게 되면 소멸시키는 방법도 알 수 있습니다. 다섯 개를 기본적으로 습득해야 혼자서 공부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추게 된다고 부처님께서 이야기 하셨습니다. 좋은 벗과 교단이 만들어지고 선단이 만들어지는 데는 좋은 벗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구와 더불어 살아갑니까? 친구들과 더불어 평생을 살아갑니다. 친구들이 맑고 깨끗하고 진리를 향해서 마음이 열려 있다면 큰 복덕입니다. 그런 친구들과 어울렸을 때는 진리추구에 힘쓰고 또한 부처님 이야기도 합니다. 그런데 진리추구에 관심이 없는 친구들과 노래방이나 고스톱 이야기만 좋아한다면 우리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겠습니까? 주위에 있는 친구나 도반들이 한 생을 결정하는데 많은 영양을 주고 그들과 함께 흘러갈 수밖에 없습니다. 부처님 곁에는 사리불도 있고 가섭도 있고 목련도 있어 모두들 열심히 공부합니다. 아나한도 공부가 잘 되어 좋아서 부처님께 여쭈어 봅니다. 부처님이시여! 좋은 도반이 공부하는데 절반이라고 해도 좋겠습니까? 하고 부처님께 조심스럽게 여쭙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아나한아! 아니다. 도반은 우리가 공부하는데 전부다. 출가한 사문은 평생 공부하는 사람들과 어울린다. 세속에 있는 우리와 어울리다 보면 공부가 잘 안된다.’ 세속에 있는 우리는 도반이 그만큼 중요한 겁니다. 공부하는데 자비광명이 넘치는 도반과 함께 한다면 한 생이 얼마나 행복하고 좋겠습니까? 스승과 도반을 잘 만난 인연은 이생에서 그보다 더 큰 복은 없다고 했습니다. 어짜피 우리가 태어나는 것은 업에 의해서 부모의 몸을 빌어 태어나는 것은 바꿀수 없습니다. 우리를 진리로 나아가게 하고 한 생을 잘 살게 하는 것은 스승과 도반을 잘 만난 인연입니다. 그 인연 하나 때문에 세세생생 빛나는 삶이 될 수 있습니다. 좋은 도반 만큼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는데 전부라고 할만큼 중요한 것이 도반입니다. 


  14년째 부처님께서 49세 되던 해에는 사바티의 제파다나 정사에 머물러 계셨습니다. 부족계는 20세가 되어야만 받을 수 있는데 라훌라 존자가 부처님께서 49세 되던 해에 20세가 됩니다. 라훌라는 12살에 부처님을 따라와서 출가합니다. 어린나이에 출가해서 평생 수행자로서 살아갑니다. 12살이 된 라훌라가 생각해보니 친구들은 성도 물려 받았고 땅도 물려 받았는데 자신은 물려 받은게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을 찾아갑니다. 부처님이시여! 저의 친구들은 아버지께 성을 물려받았다고 이야기 합니다. 또 땅을 물려받았다고 합니다. 저는 아버지께 무엇을 받을 수 있는지 설명해 달라고 합니다. 라훌라야 성을 물려받은 친구를 한번 생각해봐라. 사람은 일생동안 몇 년을 사느냐? 70~80년은 살 것입니다. 그럼 70~80년 살고 난 다음 그성을 가지고 가느냐? 아닙니다. 그 성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땅을 물러 받은 친구도 몇 년을 살겠느냐? 70~80년 살고 난 후에 그 땅을 가지고 가느냐? 그 친구도 땅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오늘 너가 만난 친구들은 비록 아버지로부터 성도 물려 받고 땅도 물려 받았지만 죽을 때는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 그런데 나는 너에게 진리를 물려 줄려고 한다. 너가 진리를 깨친다면 70~80년 살고 난 다음 너가 죽을 때도 그 진리를 가지고 갈 수 있으면서 세세생생 복전이 될 것이다. 진리를 너에게 유산으로 물려주겠다. 진리보다 좋은 것이 또 있겠습니까? 어린시절에 라훌라는 이 이야기를 듣고 열심히 수행을 합니다. 라훌라도 부처님의 10대 제자중에 들어갑니다. 라훌라는 인욕(밀행)제일입니다. 어린나이에 출가를 했기 때문에 참아야 할 것이 많았습니다. 부처님께서 왜 인욕제일이라고 했냐하면 어린 라훌라가 출가했을 때 라훌라의 스승이 사리불입니다. 사리불과 라훌라는 탁발하고 걸식도 할 때 항상 같이 다닙니다. 사리불하고 어린 라훌라가 시내에 탁발하러 나가면 악한 사람이 사리불의 밥그릇을 깨버리고 그 돌에 라훌라가 맞게 됩니다. 라훌라의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립니다. 어린 라훌라가 흐르는 피를 감싸 안으며 사리불과 더불어 정사로 돌아옵니다. 그 때 부처님께서 라훌라에게 한 이야기가 ‘세상에 인욕을 뛰어넘는 용기는 없으며, 세상에 가장 힘 센 인간 씨름꾼도 인욕을 이기지는 못한다.’ 어린 라훌라는 속이 얼마나 부글부글 끓었겠습니까? 악한 사람이 던진 돌에 머리를 맞아서 피를 흘리며 돌아왔을 때 부처님께서 라훌라에게 인욕이 최고다. 천상의 그 어떤 것도 인욕을 이길 수는 없다고 라훌라에게 말해줍니다. 이것이 라훌라의 평생의 지침이 됩니다. 인욕하고는 직접 관련이 없지만 사리불과 라훌라가 부자집에 공양 초대를 받아서 갑니다. 사리불은 대접을 잘 받지만 어린 사미승은 별로 좋지 않은 음식을 따로 줍니다. 그래서 공양 대접을 받고 돌아왔을 때 부처님께서 사리불에게 잘 다녀왔냐고 하니까 사리불은 별 생각 없이 음식도 맛있고 잘 다녀왔다고 합니다. 사리불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훌라는 아닙니다. 저는 먹기도 힘든 조악한 음식을 먹고 돌아왔습니다. 사람을 초대해놓고서 어떻게 그런 음식을 줍니까라고 합니다. 사리불이 생각할때는 자기하고 똑같이 공양을 대접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비록 다른 방에서 대접을 받았지만 사리불이 사미승인 라훌라도 똑같은 음식을 받았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사리불은 자기가 잘 챙기지 못해서 그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그 자리에서 부처님이시여! 오늘 일은 저의 불찰이 너무 큽니다. 앞으로 저는 죽을 때까지 어떤 공양에도 응하지 않겠습니다. 평생 걸식만 하고 살겠습니다 라고 합니다. 그 후 사리불은 공양 초대를 가지 않고 평생 동안 걸식을 하면서 살아 갑니다. 지혜 제일인 사리불이 부처님을 대신해서 설법을 가장 많이 했던 사람입니다. 많은 공양 초대에 갈 수 있었지만 그 후로 죽을 때까지 한번도 공양초대에 가지 않았습니다. 인간적인 소박한 면을 가장 많이 가지고 지녔던 사람이 바로 사리불입니다. 지극하면서도 소박한 사리불이 라훌라의 스승이였습니다. 15년째 되던해 부처님께서 50세 되던해에는 부처님께서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곳인 카필라밧트에서 한철을 보내셨는데 그 곳의 니그로마 동산에서 멸망 직전의 카필라성주 마하마난에게 설법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태어나신 카필라성이 멸망 한 때가 부처님께서 바로 50세 되던 해입니다. 코살라국에게 멸망을 당합니다. 코살라국이 카필라성을 멸망 시킵니다. 그런데 기막힌 인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 왕들에게는 왕비와 왕자가 수십명입니다. 수십명의 왕자중에서 대부분 첫째가 임금이 되는데 동생들이 왕이 되기도 합니다. 카필라성은 나름대로 석가족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해서 마음에 들지 않으면 공주들을 시집을 보내지 않습니다. 코살라국은 강국이니까 카필라성 공주를 왕자에게 시집 보내라고 하는데 카필라성에서는 공주를 보내는 것이 아니라 공주의 예쁜 시녀를 단장해서 시집을 보냅니다. 이 시녀와 왕자가 결혼해서 아들이 태어났습니다. 태어난 아들이 다음에 쿠데타를 일으켜 코살라국의 임금이 됩니다 .임금이 되고 보니까 자기 어머니가 카필라성의 공주가 아니고 시녀였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카필라성을 멸망시켜야겠다고 결심을 하고 군대를 몰고 카필라성을 멸망시키러 갑니다. 가는 길목에 부처님께서는 혼자 땡볕에 앉아 참선하고 계십니다. 왕이 부처님이시여! 왜 여기 혼자 앉아 계시는 것입니까? 하자 임금님이시여, 아무리 도를 이룬 부처라도 나무 그늘이 없는 햇볕은 뜨거운 것과 같이 나의 종족이 없어지면 나는 햇빛에 앉아 있는 것과 같습니다 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이야기를 들은 임금은 부처님 때문에 군대를 돌려 돌아갑니다. 성에 돌아와서 가만히 생각해보니 카필라성을 멸망시키지 못한 것에 화가 나서 몇 달 뒤에 다시 출전을 합니다. 부처님께서 또 땡볕에 앉아 계십니다. 부처님을 다치게 할 수가 없어서 도저히 치지 못하고 다시 돌아갑니다. 하지만 세 번째는 부처님이 앉아 계셔도 꼭 치겠다고 다짐을 하고 찾아갑니다. 부처님께서는 이 인과는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다. 내가 두 번 막아서 일년 동안 버텼는데 더 이상은 어쩔수 없다고 하시며 세 번째는 나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바로 멸망합니다. 멸망하기 직전에 임금이 인과법을 설하시면서 멸망하더라도 슬퍼하지 말라고 합니다. 이때가 부처님께서 50세 되던 해입니다. 부처님의 부인이였던 야소다라의 아버지 숫다붓다의 아버지가 죽은 해도 바로 이 해입니다. 16년째 되던 해에 알라바시에서 부처님이 머물고 계시는데 사람 잡아먹기를 즐기는 야차 알라바퀴를 제도하여 제자로 만든 해입니다. 숫타니파카에 알라니바카경이 나옵니다. 숫타니파카는 여러개의 경이 모여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부처님의 제자중에서 사람을 수 없이 죽인 앙굴리말라를 아시지요? 앙굴리말라보다도 사람을 더 많이 죽인 것이 알라바카입니다. 앙굴리말라는 한 100명정도 죽였습니다. 그런데 알라바카는 4300명 정도 죽였다고 기록에 남아 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사람을 죽였습니다. 이 때 부처님과 알라바카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느냐 하면 부처님께서 알라바카를 제도하기 위해서 알라바카 집에 들어갑니다. 그때 알라바카가 부처님이시여 나가시오. 하니까 부처님은 두 말 안 하시고 나갑니다. 그리고 알라바카가 부처님이시여 들어오시오. 하니까 들어갑니다. 부처님이시여 나오시오. 또 나갑니다. 부처님이시여 들어오시오. 또 들어갑니다. 들어오시오 나가시오를 경전에서 보면 3번까지는 부처님께서 용서를 하십니다. 4번째 부처님이시여 나가시오 했을 때 알라바카여! 내가 3번까지는 시키는대로 했지만 지금부터는 너가 시키는대로 할 수 없다 라고 합니다. 알라바카는 부처님이시여 내가 묻는 말에 정확히 대답을 한다면 잡아먹지 않겠소 합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사람에게 으뜸 가는 재산은 무엇입니까?’ 하고 묻습니다. 또 어떠한 신행이 안락을 가져옵니까? 맛 중에서 참으로 맛있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그리고 어떻게 사는 것을 최상의 삶이라고 할 수 있습니까? 라고 알라바카가 묻습니다.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 세상에서 믿음이 으뜸가는 재산이다. 이 세상에 믿음보다도 더 큰 세상은 없다. 그리고 덕행이 두꺼우면 안락을 가지고 온다. 많은 선행을 하면서 내가 덕이 있으면 안락을 가지고 온다. 진실이야 말로 모든 맛 중에 으뜸이다. 지혜롭게 사는 것이 최상의 삶이다. 라고 부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그러자 알라바카는 멋진 대답을 들었다며 손뼉을 칩니다. 사람은 무엇으로 생사의 거센 흐름을 건너갑니까? 라고 하니까 부처님께서는 신앙의 힘으로 거센 흐름을 건너간다고 합니다. 신앙이라는 것은 믿음을 바탕으로 생깁니다. 생사를 이겨내고 생사를 끊을 수 있는 것은 신앙의 힘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고해는 무엇으로 건너갑니까? 정진으로 고해의 바다를 건널 수 있고 고통을 극복하는 것은 근면으로 고통을 극복할 수 있다. 내가 부지런하고 성실한 근면으로 이 고통을 벗어날 수 있다. 그리고 무엇으로서 맑고 깨끗해질수 있습니까? 내 삶을 맑고 깨끗하게 할 수 있는 것은 지혜다. 지혜만이 맑고 깨끗하게 할 수 있다고 부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부처님께서 답하고 알라바카는 묻는 대화가 계속되면서 알라바카가 비로소 크게 깨닫게 됩니다. 알라바카는 부처님의 대답을 듣고 탄복하고 귀의하게 됩니다. 그래서 마지막 대답이 ‘무엇 때문에 사문이나 바라눈에게 묻고 답할 것이 있습니까? 저는 오늘 많은 이익됨을 깨닫았습니다. 저는 이제 누구에게 물을 필요도 없이 정답을 알았습니다. 오늘 비로소 이익되는 일을 깨달았습니다.’ 하면서 부처님께 귀의합니다. 알라바카는 시골과 도시에 있는 깨달은 분과 진리의 위대함에 예배를 드리면서 진리의 세계로 돌아와서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다음에 공부하다보면 다시 살인마 앙굴리말라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겠지만은 오늘 공부한 중요한 부분은 가장 소박하고 인간적인 면으로 부처님께서 다른 사람들을 참을성 있게 교화시키고 그사람들이 마음의 조복을 받으면서 불법에 귀의하는 것을 보여 준 것입니다. 오늘은 16년째 51세되던 해의 이야기까지 했습니다. 다음 시간에는 52세 되는 해부터 공부하겠습니다.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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