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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의 생애

제 9강 부처님 구시나가라에서 열반(涅槃)에 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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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1,426회 작성일 21-07-22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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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9강 부처님 구시나가라에서 열반(涅槃)에 들다




반갑습니다. 한주 잘 계셨습니까? 이제 참선도 열심히 잘 하시고 계시지요?

오늘은 지난 시간에 이어 부처님께서 20년 되던 해 아난을 부처님 시자로 맞이하였습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다음 부처님 법을 전한 제1대 제자가 가섭입니다. 부처님의 법은 가섭에게 전해집니다. 가섭이 열반에 드시고 난 다음 부처님의 법을 전하는 사람은 제2대 제자 아나한 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제1대 법이 전해 진 것이 가섭이고 제2대 부처님의 법이 전해진 것이 아나한 입니다. 긴 시간 동안 불교의 흐름에 있어서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이 아나한의 법맥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시고 난 다음 부처님의 법은 가섭에게 전해지고 가섭 이후에는 아나한에게 전해집니다. 아나한은 가섭의 제자가 아니고 부처님의 형제간입니다. 아나한의 제자들로 인해 부처님의 법이 계속 전해집니다. 20년째 되던 해 아나한이 부처님의 시자가 됩니다. 


  그다음 21년째 되던 해부터 43년까지니까 약 21년 동안 부처님께서는 사위성의 기원정사에 계십니다. 20년 동안 작심하고 앞에 하신 설법을 계속 같은 설법을 되풀이 하시면서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불교 경전의 원형이 대부분 다 설해집니다. 오랜 기간 동안 한 곳에 계신 것은 기원정사가 마음에 드셨고 또 부처님께서 설하신 법의 내용들이 잘 전해지고 기록하기 위해서 부처님께서는 오랫동안 기원정사에 계셨습니다. 그래서 21년부터 43년까지 23번의 안거 중 18번을 기원정사에서 보냅니다. 나머지 안거는 동원 정사에서 보내셨고 이 기간 동안 아나타피카와 비사카가 주된 시주자였습니다. 

56세 되던 해 살인마 앙굴리말라(央瞿利摩羅)를 제도 합니다. 부처님의 경전에 나오는 살인자입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 당시 어떤 외도의 밑에서 공부를 열심히 한 젊은 청년입니다. 그런데 외도의 스승의 부인이 앙굴리말라를 유혹 합니다. 앙굴리말라가 유혹을 거절하자 스승의 부인은 남편에게 앙굴리말라가 자신을 겁탈할려고 했다고 거짓말을 해서 스승에게 미움을 받게 됩니다. 앙굴리말라는 진심을 이야기 하여도 스승은 부인의 말만 믿고 앙굴리말라에게 분노를 느껴서 사람 100명을 죽여서 손가락 하나씩을 끊어서 손 목걸이를 만들어 오면 너의 죄를 용서해주겠다고 합니다. 앙굴리말라가 정상이었다면 이런 비정상적인 말을 듣지 않았을텐데 너무 억울하다 보니 정신이 돌아버립니다. 그래서 스승의 말을 그대로 실천하기 위해서 사람들을 죽이고 손가락 목걸이를 만들기 시작합니다. 99명을 죽이고 손가락 하나씩을 잘라 목걸이를 만드는데 마지막 한사람을 죽이기 위해 돌아다닙니다. 앙굴리말라는 젊은 청년이고 힘도 대단한데다가 정신까지 돌아버렸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감당을 하지 못했습니다. 사람들은 앙굴리말라가 나타났다고 하면 모두 숨었는데 부처님께서 앙굴리말라 쪽으로 걸어갑니다. 부처님께서 지나가는 것을 보고 앙굴리말라는 부처님을 잡으려고 따라 옵니다. 빠른 걸음으로 부처님을 따라갔지만 부처님을 따라 갈 수가 없자 서라고 합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는 내가 도망가는 것도 아닌데 왜 나를 잡지 못하느냐 합니다. 앙굴리말라는 죽을 힘을 다해서 따라갔지만 따라 갈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하여 부처님께서는 긴 시간동안 앙굴리말라와 이야기를 합니다. 그리고 앙굴리말라의 정신이 돌아오게 만듭니다. 모든 사람들이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법에 감화를 받고 귀의하게 됩니다. 부처님께 귀의하게 되자 앙굴리말라는 사람들에게 앙갚음을 당합니다. 앙굴리말라가 무서워 곁에도 못 갖던 사람들이 앙굴리말라가 부처님 법에 귀의하여 비구가 되어 탁발하러 나가면 앙굴리말라에게 죽음을 당한 사람들의 가족이나 친척들이 혹은 시민들이 돌을 던져 머리가 터져 항상 상처가 나서 돌아옵니다. 앙굴리말라가 사위성(舍衛城) 거리를 지날 때면 사람들은 살인마라고 돌을 던지지만 부처님께서 그 모습을 보고 참고 견디라고 이야기 합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 시간이 흘러도 앙굴리말라는 대적하지 않고 맞기만 하자 시민들도 하나 둘씩 앙굴리말라를 이해하고 용서하게 됩니다. 앙굴리말라는 온갖 수모를 이겨내고 아라한과까지는 얻지 못해도 의인이 됩니다. 그래서 앙굴리말라는 귀인이 되었습니다. 앙굴리말라는 부처님 법에 귀의해서 깨달음의 즐거움을 얻고 나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정열이 없는 곳에 정열을 낳고 과거의 허물을 미덕으로 감싸주고 일찍이 부처님께 의지하는 사람은 달과 같이 빛으로 지면을 싣는다. 우리의 적으로 하여금 법음을 듣게 하고 이 교리를 받아들이게 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지혜에 의지하게 한다. 우리의 적으로 우아한 인내를 설하는 사랑의 말을 듣게 하고 그들의 생활을 안락하게 한다. 나는 손가락 목걸이라 불리며 세상 사람에게 죄를 짓다가 부처님에 의해 구제 되었다. 손가락 목걸이로 나는 피바다에 잠겨 있었지만 지금 나는 구제 되었다. 이제는 한 점 티끌도 없이 편안하게 깨끗한 마음으로 수행하고 이 눈으로 진리를 보았으니 이생에도 다음 생에도 어느 생에나 수행정진 할 것이다’ 하면서 부처님의 은혜에 감사드립니다. 앙굴리말라(央瞿利摩羅)도 이렇게 부처님의 제자가 됩니다. 이 당시 부처님의 법에 귀의해서 율법을 따르는 무리들은 불가촉 천민들은 비롯해서 살인마, 창녀, 왕족, 인도 사회의 모든 계층이 부처님의 제자가 되어 출가하게 됩니다. 지금도 사성제 계급이 그대로 남아 있는 인도 사회에서 부처님 당시에 사성제 계급뿐 아니라 남녀노소 직업의 계층 없이 모든 것들을 부처님 교단에 받아들여서 똑 같이 하나로 만들어 버립니다. 당시에 부처님의 교단이 우리 인간의 삶의 목표나 형태에 있어서 그렇게 이상적이고 아름다운 것을 보인 것은 전무후무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단순한 하나의 교단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을 부처님의 교단에 들어오게 해서 아름다운 작품이 되게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부처님께 귀의해서 평등으로 이루어진 것은 바로 사바세계에서 즉 인도 사회에 새로운 큰 집단이 만들어집니다. 평등한 나라 평등한 인간의 삶은 여기 승가로부터 창출해냅니다. 56세 때에는 살인마 앙굴리말라가 부처님의 제도를 받아서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 57세 되던 해는 빔비사라 왕과 후비 바히테하 사이에 "아쟈타삿투"태자가 태어납니다. 빔비사라 왕은 부처님께서 출가 하셨을 때 만약 당신이 도를 이루고 나면 나에게 맨 먼저 도를 이루게 해달라고한 사람이기도 하고 죽림정사를 지어서 부처님께 기증한 왕입니다. 평생 동안 부처님의 가장 큰 후원자였던 사람입니다. 57세 빔비사라 왕에게는 정비의 아들이 있었지만 후비가 들어와서 아쟈타삿투를 낳습니다. 부처님의 사촌동생 제바달다는 아쟈타삿투를 꼬셔서 나는 부처님을 죽이고 제단을 장악할 테니 너는 너의 아버지를 죽이고 나라를 차지하라고 유혹을 합니다. 아쟈타삿투는 반란이 성공해서 왕이 됩니다. 하지만 제바달다는 계속 실패하다가 끝에는 참회하지만 부처님을 친견하지도 못하고 자신의 죄를 용서 받지 못하고 죽습니다. 


  이 사건이 부처님께서 57세 때 일어난 사건입니다. 부처님이 53세 때 아쟈타삿투가 왕위를 찬탈 합니다. 코살라국의 공주였던 빔비사라 왕의 정비가 자살을 하여 코살라국과 전쟁이 납니다. 부처님의 부인 야수다라도 이웃의 조그마한 나라의 공주였습니다. 이 당시이웃나라 끼리 정략결혼을 하는 것은 전쟁을 막기 위함이기도 했습니다. 이웃나라와 결속해서 정략결혼을 많이 했습니다. 그 당시 가장 큰 나라가 빔비사라 왕이 있었던 마가다국이고 부인은 코살라국의 공주였습니다. 빔비사라 왕의 정비인 코살라국의 공주가 자살을 하게 되니까 마가다국은 코살라국과 전쟁을 하게 됩니다. 왕비를 자살하게 만들어서 전쟁을 하게 되고 56세 때 코살라국의 비두자바 태자가 부왕 프라세라짓을 내쫓고 왕이 됩니다. 코살라국의 프라세라짓 왕과 마가다국의 왕 빔비사라는 부처님의 막강한 후원자 입니다. 그래서 빔비사라 왕은 죽림정사를 지었고 코살라국에서는 기원정사가 있습니다. 그런데 두 나라가 똑같이 아들 대에서 모반이 일어납니다. 결국 두 나라가 전쟁으로 말미암아 약200년 쯤 후에 마가다국이 전 인도를 통일합니다. 그래서 새로운 고대국가가 마가다국에 의해 이루어집니다. 21년부터 43년까지 사위성에 계시면서 일어났던 가장 큰 사건입니다. 이 외에도 부처님께서는 앞에서 설했던 법들을 계속 설하시면서 아난으로 하여금 많은 경전을 기억하게 해 준해가 바로 이해입니다. 부처님이 살아계실 때 가장 가슴 아픈 사건은 사리불의 죽음이고 목건련의 죽음입니다. 사리불은 선정에 들어가서 보니까 부처님이 돌아가시는 것을 못 볼 것 같아서 부처님보다 먼저 죽어야 겠다 생각합니다. 그래서 ‘부처님이시여 제가 먼저 열반에 들겠습니다’ 하고 청을 해서 부처님의 허락을 받아냅니다. 사리불 정도가 되면 부처님의 가장 큰 제자라 열반을 거창하게 할 수도 있었지만 자신이 고향집에 어릴 때 놀던 방에서 참선하다가 열반에 들고 싶다고 청합니다. 사리불은 혼자서 고향으로 갈려고 하지만 부처님께서는 그럴 수는 없다 하시며 시자 한명을 동행하게 합니다.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보낸 고향집 그 방에서 지내다가 열반에 듭니다. 사리불이 한 번은 안거후 유행을 떠날 때 모함을 받았습니다. 그때 사리불은 “부처님이시여 오늘은 내가 4개월동안 안거를 마치고 결제를 해서 떠나는 날입니다. 저는 평생을 부처님 곁에서 수행정진(修行精進) 하면서 풀 한포기 개미 한 마리 죽인적이 없습니다. 그것이 제 삶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떻게 수행정진하고 떠나는 날 다른 사람을 모함하고 비방했겠습니까?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럼이 없습니다. 만약 했다면 참회하겠습니다‘ 라고 말할 정도로 깨끗하게 살았던 사리불이 마지막에는 자신이 살던 고향에 돌아가서 작은 방에 허리를 구부리고 들어가서 3일 동안 있다가 열반에 듧니다. 부처님 살아 계실 때 가슴 아픈 사건으로 제바달다(提婆達多)의 모반과 사리불(舍利弗)의 죽음과 목건련(目健蓮)의 순교입니다. 항상 부처님의 교단은 다른 외도들의 공격의 대상입니다. 부처님의 교단을 무너뜨리면 외도들이 새로운 주도권을 잡을수 있다고 생각해서 부처님의 교단을 시기 질투했습니다. 특히 목건련을 돌로 쳐서 죽였던 나형 외도들이 보기에 부처님의 교단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이 누군가 생각해 보니 목건련이라고 여겨 죽여야겠다 생각합니다. 사리불은 언제 보아도 체구가 왜소하고 힘도 없어 보이는데 목건련은 건강하니까 목건련만 없어면 부처님의 교단을 쉽게 없애 버릴수 있다고 생각하고 항상 노리다가 목건련이 혼자 유행을 떠나 포교를 하던중 이교들의 돌에 맞아 죽습니다. 부처님의 제자중 신통제일(神通第一) 이 목건련인데 목건련이 이교도의 돌에 맞아 죽습니다. 그런데 부처님 교단에서는 목건련이 돌에 깔려 쉽게 발견되지 않아서 목건련의 소식을 몰랐습니다. 며칠이 지나고 목건련이 이교들의 돌에 맞아 죽었다는 소문이 나고 사실로 밝혀지자 부처님의 교단은 이교들과의 전쟁이 일어날 만큼 분위기가 험악해집니다. 목건련의 죽음으로 부처님의 교단은 분노로 분위기가 엄악해지자 부처님께서 묻습니다. 너희들이 생각할 때 목건련이 왜 죽었겠느냐? 신통(神通) 제일 목건련이 몰라서 이교들의 돌에 맞아 죽었겠느냐? 목건련은 피할 수가 있었을 것이다. 신통제일(神通第一) 목건련을 어느 누구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목건련이 왜 맞아 죽었겠느냐? 목건련은 자신의 인과를 잘 알고 있어서 이생에서 자신의 인과를 정리하고 싶었던 것이다. 자신이 지은 전생의 과보를 이생에서 돌에 맞아 죽음으로써 모든 인과를 정리 한 것이다. 하시며 목건련의 전생을 이야기 해주고 설득함으로써 분노에 가득찬 제자들이 평소와 같이 공부에 전념합니다. 이렇게 사리불이 죽고 목건련이 순교한 해가 바로 44년째 되던 해 입니다. 45년째 부처님께서 80세 되던 해 배살리 근처에 있는 작은 마을 벨루바(Beluva) 마을에서 크게 앓았지만 의지력으로 이겨 내시고 3개월 뒤에 열반(涅槃)에 드시겠다고 예언을 합니다. 부처님께서는 이때 안거가 끝나고 하티, 안바, 장부, 보가, 피아바, 가꾸타 강에서 목욕을 하시고 구시나가라까지 유행을 하시다가 대장장이 춘다의 공양 음식인 전단나무에서 자라는 버섯 요리를 드시고 구시나가라 사라쌍수 나무숲에서 열반에 듭니다. 45년 동안 법을 설하신 여정이 이렇게 열반에 들면서 마무리가 됩니다. 부처님의 전도를 연도에 따라 살펴보았습니다. 저는 불교 공부를 하면서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법을 설하시면서 연도별로 법을 어떻게 설하셨는지 궁금했었지만 풀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 때 우리나라 경전 어디에도 어느 시기에 어떻게 전도 했다는 내용이 없었기 때문에 상당히 궁금했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생에를 살펴보면서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 어디에 계셨고 어느 시기에 누구를 포교했는지를 연도 순으로 정리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지 않겠나 생각 했습니다. 연도 순으로 정리 해보다 보니까 구체적이고 체계적인 이야기는 많이 부족합니다. 부처님께서 45년 동안 걸어오신 이력을 이야기 하면서 부처님께서 어떻게 천민들을 제도 했고 여성들을 제도했고 당시 사회현상을 대충 공부했습니다.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고 난 다음 45년 동안 체계적인 내용의 설명보다는 연도에 따라 살펴보았습니다. 교단이 체계화 되고 부처님의 제자들이 어떤 성분이며 인도 사회에 어떤 영양을 미쳤는지 살펴본 것입니다. 우리가 그 부분들을 체계적으로 이해해야 되지 않겠나 생각합니다. 이제 부처님의 생애와 전도는 끝나고 열반에 대해 공부하게 될 것 입니다. 다음 시간에 공부하게 될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서는 부처님이 마지막까지도 얼마나 인간적인 대화가 오고 가는지 또 부처님의 일생동안 인간적이 부분들이 많이 남아 있습니다. 부처님께서 마지막 우안거(雨安居)의 혹독한 고통을 이겨내고 난 다음 오랜만에 집밖에 나와서 그늘에 바깥 공기를 즐기고 있을 때 아난이 부처님 곁으로 옵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하신 말씀이 ’아난아, 나는 노쇠했다. 나이가 이미 80이 아니냐? 비유하자면 낡은 수레가 움직일 수 없음과 같느니라. 수레는 가죽 끈으로 얽어 매어야 겨우 움직일 수 있다. 이 몸도 가죽 끈으로 얽어 맨 수레와 같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러니까 80세라는 연세에 대해 이렇게 표현 하시면서 그날 부처님께서는 마을에 걸식을 나갔다가 거리의 여기저기를 둘러보시며 이것이 베살리를 보는 마지막이라고 아난에게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마지막 공양을 대장장이의 아들 춘다가 올리는 수카바 마다바라는 공양을 드셨습니다. 이것이 마지막 공양이 된 것입니다. 버섯 요리를 드시고 복통과 설사가 심해지고 고통스러워 하십니다. 춘다는 고통스러워 하시는 부처님을 보면서 어쩔줄 몰라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는 고통을 참으시면서 춘다를 위로 합니다. 불편한 몸으로 부처님께서 부시나가로 여정를 떠나려 하시자 많은 제자들이 걱정스러워 하면서 부처님의 뒤를 따라갑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아 나의 유행은 여기서 끝내야겠다. 쌍라쌍수나무 아래 가사를 접어 깔아다오. 나는 오늘밤 여기서 열반에 들어야겠다고 말씀 하십니다. 그말을 듣고 여러 제자들이 슬픔에 복받쳐 울자 부처님께서는 울지 말아라. 세상에 태어나면 언제가는 반드시 죽게 된다. 그 동안 너는 임무에 너무 충실해서 고맙다며 부처님께서는 아난에게 고마운 마음을 전합니다. 내가 열반에 든 후에도 더욱 정진하여 도를 이루거라. 그리고 너희 수행자들은 여래가 열반에 든 뒤 장례 절차에 대해서는 상관하지 마라. 재가 신도들이 알아서 할 일이다. 너희들은 오로지 진리를 위해서 “부지런히 애쓰고 노력하고 정진하라” 이것이 부처님께서 마지막 하신 말씀입니다. 부처님께서 열반에 드신다는 소식을 듣고 수많은 제자들이 모여 듭니다. 이때 쿠시나가라에 있는 늙은 수행자 수바드라도 이소식을 듣고 그는 부처님이 돌아가시기 전에 평소의 품고 있던 의문을 풀어야겠다고 사라쌍수의 숲에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아난은 부처님께서 지금 매우 피곤하고 병을 앓고 계시니 번거롭게 해서는 아니 된다고 청을 받아 주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수바드라는 큰 소리로 어떻게든 부처님을 만나야겠다고 합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에게 “진리를 알고자 찾아온 사람을 막지 말아라. 내 설법을 듣고자 온 것이다. 그는 내말을 들으면 곧 깨닫을 것이다.” 마지막 열반에 드는 순간에도 의문을 가지고 찾아온 수바드라에게 부처님은 설법을 들려 주셨고 수바드라는 부처님의 마지막 제자가 되었습니다. 부처님은 열반에 드실 시간이 가까워지자 많은 제자를 돌아보시면서 조용하고 다정한 음성으로 최후의 가르침을 펴시었습니다. 그동안 내가 한 설법중에서 의심나는 것이 있으면 묻도록 하여라. 승단이나 계율에 대해서도 물어라. 이것이 마지막 설법이 될 것이다라고 말씀 하셨지만 어느 누구도 슬픔 때문에 말을 못합니다. 그럴 때 부처님께서 이 생에서 마지막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저마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자신을 의지하여라. 진리를 등불 삼고 진리를 의지하여라. 이 밖에 다른 것에 의지해서는 안 된다. 그리고 내 가르침을 중심으로 서로 화합하고 공경하며 다투지 말아야 한다. 물과 젖처럼 화합하라 가르침대로 행동한다면 설사 내게서 멀리 떨어져 있더라도 항상 내 곁에 있는것과 다름이 없다. 육신은 여기서 죽더라도 깨달음의 지혜는 진리와 너희들과 더불어 영원할 것이다. 너희들과 더불어 항상 같이 할 것이다. 끊임없이 변하고 죽는다 "모든 것은 덧없다. 게으르지 말고 부지런히 정진하여라." 이것이 부처님께서 이생에서 하신 마지막 말씀입니다. 오늘은 녹원정법상(鹿苑傳法相)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 까지 하면서 부처님께서 도를 이루시고 난 다음부터 열반에 드시는 80세까지 연대순으로 공부했습니다. 다음 시간부터 더 중요한 부처님의 삶을 분석해가면서 체계적으로 살펴 보겠습니다. 좀 더 사회와 조직속에서 체계화된 부처님의 삶을 살펴보는 것이 다음 시간부터 이어집니다. 부처님의 삶을 되새겨 보시면 얼마나 아름답고 거룩하고 위대하게 사셨는지 좋은 귀감이 될 것입니다. 부처님의 삶보다 더 좋은 귀감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생에서 어떻게 살아야겠다, 무엇이 되겠다 하는 이상과 목표의 중요한 귀감이 되는 것은 부처님의 삶 이상이 없습니다. 도를 이루겠다고 평생을 앉아 공부하시는 스님이나 어느 누구에게도 어떻게 살 것인가 하는 가장 중요한 목표는 부처님 삶 보다 좋은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부처님의 깨치신 연기도 잘 알아야겠지만 부처님의 살아가신 일생만큼 더 좋은 교훈이 없습니다. 


부처님 삶은 세세생생 살아가면서 어느 누구에게나 가장 좋은 삶의 교훈입니다. 

감사합니다. 

오늘 강의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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