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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불확정성 원리(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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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작성일 21-07-14 18:52 조회 19,898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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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무리의 전자가 운동을 할 때 전자 한 개 한 개의 운동은 예측할 수 없으나 일정한 시간과 어떤 특정한 공간에 전자가 있음직한 분포를 예측하는 것이 양자이론이다.

 인과론적인 우주의 전체 개념은 불확정성 이론에 의하여 파괴되었다. 이 고전적인 인과론의 파괴가 바로 불확정성이론이 우리에게 던진 최대의 파문이었다.

 입자 운동에 있어서 위치와 운동량의 개념은 우리의 관념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이 무엇이건간에 그것은 일정한 운동량과 일정한 위치를 가질 수 있지만 그 두 가지 성분 중에서 우린 어떤 한 순간에 초점을 맞추어야만 한다.

 이 말은 ‘움직이는 입자’에 관해서 우리는 그 입자들이 실제로 존재하는 방법으로는 결코 볼 수가 없고, 다만 그것을 보려고 우리가 선택하는 방법으로만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이젠베르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가 관찰하는 것은 자연 그 자체가 아니고, 우리가 의문을 갖는 방법에 드러나 있는 자연인 것이다.”

 불확정성 원리는 우리의 주위에 있는 세계와 분리된 ‘나의 길’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철저하게 인식시켜 준다.

 아원자 입자의 운동에서는 과학은 더 이상 정확하지도 않고 객관적인 것과 주관적인것의 차이도 사라졌다.

 이러한 새로운 물리학이 우리를 어디론가 이끌어 간다면 우리가 갈 수 있는 유일한 곳인 우리 자신에게로 돌아오게 될 것이다.

대주 혜해가 처음 마조를 찾아 인사를 드리자 마조가 물었다.

“어디서 왔느냐?”

“월주 대운사에서 왔습니다.”

“무엇을 구할려고 여기에 왔느냐?”

“불법을 구할려고 왔습니다.”

“너는 어째서 자기의 보배창고는 살피지 않고 다른 곳을 찾아 방황하며 다니느냐? 도대체 자신을 떠나 무슨 불법을 구하겠다고 찾아 왔느냐? 나는 너에게 줄것이 아무 것도 없구나.”

대주 혜해가 어리둥절해 물었다. 

“무엇이 이 혜해의 보배 창고입니까?”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그것이 바로 그대의 보배 창고이다. 그것은 일체를 다 갖추었으므로 조금도 부족함이 없어 작용이 자유자재하니 어찌 밖에서 구할 필요가 있겠느냐?”

이 말에 대주 혜해는 더 이상 의심함이 없이 자신의 참본성을 꿰뚫어 볼 수 있었다. 진정 꿰뚫어야 할 과녁은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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