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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레징거의 고양이와 불교적 깨달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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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통섭불교
댓글 0건 조회 18,569회 작성일 21-07-14 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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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전통적인 해석은 피관찰체계의 파동함수에 포함된 모든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이 현실화되고 나머지는 사라진다는 것이다.

예컨대 파동함수에 포함된 가능성 가운데 하나가 우주의 이쪽에서 현실화되는 것이다(나는 윗층으로 뛰어올라 간다). 아울러 파동함수에 포함된 다른 가능성(나는 아랫층으로 뛰어내려 간다)도 실재의 다른 쪽에서이지만 현실화된다. 실재의 이쪽에서는 나는 윗층으로 뛰어올라 가고 다른 쪽에서는 아랫층으로 뛰어내려 간다. 「나」는 다른 하나를 알지 못한다. 양쪽의 「나」는 우주의 그 두 쪽들이 실재의 전체를 구성한다.고 믿는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하나의 우주가 있고 이 우주의 파동함수는 그것 자체를 관찰자와 피관찰자로 분해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나타낸다고 말한다. 우주는 여기서 큰 상자 안에 모두 같이 있는 것이고 외부에서 그것을 현실화시키기 위해서 상자를 볼 필요는 없다.

「슈뢰징거의 고양이」는 고전물리학, 양자역학의 코펜하겐 해석과 양자역학의 복수세계 해석 사이의 차이점을 요약해준다. 「슈뢰징거의 고양이」는 슈뢰징거파동 방정식의 유명한 발견자에 의해 오래 전에 제기된 딜레마이다. 고양이는 상자 안쪽에 놓여 있다. 상자 안에는 가스를 뿜어서 고양이를 순식간에 죽일 수 있는 장치가 있다. 임의로 발생하는 사건(원자의 방사능 소멸)이 가스가 분출하는가, 하지 않는가를 결정한다.

상자의 바깥에서는 상자 안에서 무엇이 일어나는가를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상자는 밀폐되었고 실험은 시작된다. 조금 뒤에 가스는 분출되거나 되지 않았거나 했다. 이제 문제는 보지 않고서도 상자 안에서 무엇이 일어났는가를 결정해야 한다.

고전물리학에 의하면 고양이는 죽었거나 죽지 않았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상자를 열고 어떤 경우로 되어 있는가를 보는 것이다. 양자역학에 의하면 상황은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양자역학의 코펜하겐해석은 고양이가 죽었을 가능성과 살아있을 가능성을 모두 포함하는 파동함수에 의해서 표현되는 일종의 망각상태 속에 고양이가 있다고 말한다. 우리가 상자 안을 보았을 때 그 가능성 가운데 하나만이 현실화되고 다른 것은 사라진다. 이것은 파동함수 속에서 발생하지 않았던 가능성을 나타내는 둥근 부분이 붕괴하기 때문에 파동함수로 알려져 있다.

각각의 가능성이 일어나기 전에 상자 안을 들여다보는 것은 불필요한 것이다. 그때까지는 다만 파동함수만이 있다.

복수세계 해석에 의하면 우리가 상자 안을 들여다본 순간 세계는 각각 고양이의 다른 복제판을 갖고 있는 두 개의 부분으로 갈라진다. 고양이를 나타내는 파동함수는 붕괴하지 않는다.

고양이는 살아있고 또 죽어있다.

세계의 한쪽에서는 살아있고 우리는 그것을 보는 것이며 세계의 다른 쪽에서는 죽어있고 우리는 또 그것을 보고 있다. 세계의 양쪽에서 우리의 다른 복제판들은 같은 사건을 각각의 다른 사건으로 보고 있다. 양자론의 복수세계 해석에 이르면 불교적 깨달음의 세계와 일치하게 된다.

하나에 모두 있고 많은 데 하나 있어 

하나가 곧 모두요, 모두가 곧 하나이니

한 티끌 작은 속에 세계를 머금었고

낱낱의 티끌마다 세계가 다 들었네.

한없이 긴 시간이 한 생각 찰나이고

찰나의 한 생각이 무량한 긴 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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