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건이 같아도 과보는 다를 수 있다
페이지 정보
본문
빛(광자)이 질량을 갖고 있는지 아닌지 덩어리인지 파동인지 아니면 어떤 것인지에 관한 문제는 인류의 역사이래 과학자들 사이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로 다루어져 왔다.
결국 토마스 영박사의 실험과 아인슈타인박사의 광전효과에 따르면 빛은 파동과 입자의 두 가지 성질을 모두 갖고 있는 어떤 것이야만 설명이 가능하며, 이것은 고전적 인과론의 종말을 예고하고 있었다.
고전적 인과론에 따르면 만약 어떤 첫번째 조건을 안다면 우리는 그것을 표현하는 법칙을 알고 있기에 그 사건이 앞으로 어떻게 진행될 것인가 하는 것을 알 수 있지만 실제로 영의 실험에서 나타난 현상은 두 빛은 같은 곳으로 가지 않으며 우리는 빛이 가는 길을 예측할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빛의 파동 - 입자 이원론적인 성질을 밝히는데 있어서 1924년에 보어박사는 파동의 확률화라는 것을 제안하므로써 해결의 실마리를 찾았으며, 양자역학의 확립을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였다.
예를들면 영의 실험에서 하나의 광자가 사진판의 어느 곳을 때릴 것인가 하는 것은 계산할 방법이 없지만, 실험이 적절하게 준비되고 결과가 정확하게 측전만 된다면 광자가 일전한 장소에서 사진판을 때릴 확률은 정확하게 게산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령 A지점에 빛이 떨어질 확률이 60%라면 1,000,000번의 실험을 되풀이 할 때 600,000번 정도는 빛이 A지점에서 포착된다는 것이다.
이와같은 아원자적 규모의 입자들은 파동과 같은 확률모형으로 해석되며 궁극적으로 이러한 모형들은 물체의 확률이 아니라 상관관계의 확률을 나타내고 있으며, 독립된 실체로서의 의미보다는 실험의 준비와 그 다음의 측정 사이에 있는 상호연관으로 이해될 수 있는 사건이다.
생명과 무생명을 포함한 우주의 모든 현상이 확율론적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에게 가르쳐주는 가장 큰 명제는 “인과는 변한다”는 사실이다.
같은 조건에서 광자가 어디를 때릴 것인가 하는 실험을 1,000,000 번 되풀이 했을때 결과적으로 같은 위치에 맞출 수 있는 경우가 십만번도 될 수 있고, 이십만번, 삼십만번, 육십만번도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인과의 확율론적 해석의 결정적 단서가 된다.
구체적인 예를 하나 살펴보자.
박이라는 사람이 자신이 지은 업에 의하여 1995년 5월 12일 교통사고로 죽게 될 운명이라고 하자.
우리는 이 사건을 놓고 인과론적인 해석과 확율론적인 해석을 할 수 있다.
첫째, 인과론적인 해석은 박이라는 사람의 현재 행위가 어떻든 간에 1995년 5월 12일에 일어날 사건은 피할 수 없는 숙명적인 것으로 죽게 되는 것이다.
둘째, 확율적인 해석은 1995년 5월 12일에 있을 교통사고는 어떻게 피할 수 없지만 교통사고로 받는 과보는 박이라는 사람의 현재 행위에 따라 죽을 수도 있고, 중상을 입을 수도 있고, 조금 다칠 수도 있고, 자동차만 찌그러지고 본인은 안 다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자신의 운명을 결정하고 있는 업력은 엄청나게 강하여 숙명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을 내 건 지극한 의지로 현재의 행위에 집중시킨다면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인과는 고정된 틀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과 행위에 의해서 끊임없이 변해가는 실체인 것이다. 인과는 변한다.
- 이전글뒤섞여 있는 인과는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 21.07.14
- 다음글인과를 벗어날 수는 없다 21.07.14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